국역 학봉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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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3) 4월

1일(경오) 맑음.
창고에 올라가 번고하였다.

2일(신미) 맑음.
번고하였다.

3일(임신) 맑음.
번고를 마쳤다. 방백이 청송정(聽松亭)으로 맞이하여 이야기하였다. 도사와 승문원 정자도 참석하여 한껏 즐기다가 서상(西廂)으로 돌아오니 날이 이미 어두웠다.

4일(계유) 맑음.
기일(忌日)이기 때문에 좌기하지 않았다. 판관이 먼저 고천창(高遷倉)에 가서 곡식을 내어 뜰에 배설하였다
5일(갑술) 비가 내림.
기일이기 때문에 좌기하지 않았다.

6일(을해) 맑았으며, 저녁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다가 잠시 뒤에 그침.
이날 고천창으로 가는데 방백이 성천(城川)의 장교(長橋) 위에서 전송하였고, 도사와 승문원 정자도 참석하였다. 다리 아래에 고기 잡는 통발이 있었는데, 어부가 황어(黃魚)를 잡아 바쳤다. 바람 때문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자리를 파하였다. 고천창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이날 번고하였다.

7일(병자) 맑음.
이날 번고를 마치고 함흥으로 돌아왔다. 밤에 승문원 정자와 유생들의 제술(製述)을 과차(科次)하였다.

8일(정축) 맑고 바람이 붊.
상아(上衙)로 되어 있으매 가서 방백을 보았다. 관등(觀燈)하는 저녁이어서 행차를 만류하고 주석(酒席)을 베풀었는데, 도사와 판관, 승문원 정자가 참석하였다. 날이 저물어서 서상(西廂)으로 돌아왔다. 북청(北靑)의 화포장(火砲匠) 20명이 왔기에 그들의 기예를 시험하였다.

9일(무인) 맑고 바람이 붊.
기일이기 때문에 좌기하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갈 뜻이 급하여 체류하지 않고 정평(定平)을 향해 출발하려 하는데, 방백이 동상(東廂)에 나와서 보았다. 오후에 말에 올라 정평에 도착하니, 부사가 병으로 인해 나와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유생들이 출제(出題)하기를 청하므로 시(詩), 부(賦), 논(論), 표(表) 등의 제목을 내어 글을 지어 오도록 하였다.

10일(기묘) 맑음.
기일이기 때문에 좌기하지 않았다. 방에 앉아서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도 점고하였다. 이날 백성이 몰래 익명서(匿名書)를 바쳤는데, 모두 정평과 영흥(永興)의 불법에 대한 것이었다. 곧바로 불에 던져 넣도록 하였다. 유생의 제술(製述)을 고열(考閱)하였다. 영흥 판관(永興判官)이 겸찰방(兼察訪)으로서 왔다. 이날 활쏘기 시험에 입격(入格)한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공궤(供饋)했다.

11일(경진)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판관과 훈도의 사례(私禮)를 받았다. 제술에서 입격한 유생들을 불러서 술과 음식을 대접한 다음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하였다. 한낮에 말에 올랐으며, 초원역(草原驛)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사(驛舍) 옆에 반송(蟠松)이 매우 기이하게 생겼는데, 지나가는 객이 쓴 시가 역사 벽에 가득히 적혀 있었다. 저녁에 용흥강(龍興江)을 건넜고, 영흥부(永興府)에 들어가서 유숙하였다.

12일(신사) 맑음.
아침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부사와 판관의 예를 받고, 바깥 대문에 나가 앉아서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고하였다. 부(府)의 과녁 쏘는 곳으로 가는 길 안쪽에 석문(石門)이 있고, 앞에 연못이 두 곳에 있었는데, 못 복판에 섬을 만들고 섬 위에 노송을 심어서 매우 기이하였다. 늘어진 버들이 길 양 옆에 늘어섰고, 푸른 소나무가 과녁 뒤를 둘러서 마치 그림 속인 듯하였다. 저녁에 활쏘기를 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13일(임오) 맑음.
아침에 화포 쏘기를 시험하였다. 식후에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하였다. 창고는 옛 화주성(和州城) 안에 있으며, 성은 성력산(聖歷山)에 있었다. 성 안에 큰 못이 있으며, 사면의 산이 그대로 성으로 되어 있었다. 북쪽은 용흥강을 임했고 남쪽은 큰 들을 임해 있어서 지세가 매우 웅장하고 견고하였다. 적간한 다음, 북성(北城)에 올라서 두루 둘러보고 내려왔다. 용흥강을 건너 말응도(末應島) 목장(牧場)을 향해 출발하였다. 도중에 한 늙은이가 소리치면서 왔는데, 살펴보니 부의 백성으로서 굶어 죽게 된 자였다. 이에 곧바로 부에서 쌀 7말을 주어서 보내도록 하였다. 평창(平倉)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곳에서 유숙하였다.

14일(계미) 맑음.
새벽에 일어나서 목장으로 갔다. 섬이 바다 복판에 있는데, 북쪽에서 온 산맥 한 줄기가 겨우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섬은 동서가 7, 8리이고, 남북이 20리였다. 국사당(國祀堂) 남쪽 봉우리에 오르니 온 섬의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이 다 보였다. 섬의 남쪽과 서쪽에는 푸른 산이 점점이 있고, 영흥(永興), 안변(安邊) 등 두세 고을의 여러 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바, 참으로 뛰어난 경치였다. 점마청(點馬廳)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물길로 30리를 가서 임성진(臨成津)에 나와 배를 대었다. 평창에 돌아와서 유숙하였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3) 3월

1일(경자)
맑음.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하였다. 몸이 불편하였다. 늦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덕만동 권관(德萬洞權管) 이시언(李時彦)이 와서 알현하였다. 군기를 점고하고 돌려보냈다.

[주-D001] 망궐례(望闕禮) :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각 지방의 수령이 궐(闕) 자를 새긴 위패(位牌) 모양의 나무 패(牌)인 궐패(闕牌)에 절하는 의식을 말한다.

2일(신축)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3일(임인) 맑음.
이날 동헌에 좌기하여 입격(入格)한 유생 13명을 불러서 술을 대접하여 보냈다. 저녁에 담소루에 올라가 홀로 술 몇 잔을 마시다가 밤에 방으로 돌아왔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4일(계묘) 흐림.
식후에 서북보(西北堡)를 향해 출발하였다. 낮에 시냇가에서 쉬었다. 서북보에 도착하니 날이 아직 일러서 번고하였다. 내일 장백산에 오를 참이었으므로 목사와 찰방에게 채비를 차리도록 하였다.

5일(갑진) 흐리고 눈발이 날림.
이날 산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비와 눈 때문에 중지하였다. 서북보에서 고개 위까지는 세 참 거리인데, 고개 위에 오르면 오랑캐 지역의 산천을 모두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올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인데, 산신령이 방해를 놓으니, 한탄스럽다. 북도(北道)에 와서 모든 순시(巡視)가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가 지금 비로소 저지당했다.
이날 번고를 마치고 성문에 앉아서 훈도(訓導) 김문표(金文豹)를 불러서 만나보았는데, 칠보산(七寶山)의 훌륭한 경치를 능히 말하여 사람들을 크게 감탄시켰다. 오후에는 보로 돌아와서 보의 마루에 좌기하여 장군파(將軍坡)의 군기를 점고하였다. 서북보 만호와 장군파 만호를 불러서 병서(兵書)와 진서(陣書)를 강(講) 받았는데, 명천 현감(明川縣監) 한윤선(韓允善)이 임시 찰방으로서 와서 함께 강했다.
북문(北門) 밖의 시냇가 대(臺)의 경치가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비를 무릅쓰고 가서 보았다. 바위는 높이가 몇 길 되었으며, 그 위가 평평하여 수십 명이 앉을 만하였다. 한 시내는 장백산에서 흘러 나오고 한 시내는 두리산(頭里山)에서 흘러 나와 대 아래에서 합류하면서 대를 치고 감돌아 깊은 못을 이루었으며, 바위가 그 못에 반쯤 잠겼는데, 참으로 훌륭한 경치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다시 북문으로 들어와서 남문으로 나갔다. 검산(劍山) 밑 시냇가에서 잠시 쉬었다가 길주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서북보가 예전에는 두 보로 되어 있어 하나는 장백산동(長白山洞)에 있고, 하나는 두리산동(頭里山洞)에 있었는데, 천순(天順) 연간에 보를 이곳에다 합쳤다고 한다. 산천이 매우 기절(奇絶)하고 옥(玉)이 보의 경내에서 산출된다. 이날 비를 무릅쓰고 길주로 돌아왔다.

6일(을사) 흐림.
길주의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이날 동헌에 돌아와서 탈이 있는 군기를 점고하였다. 목사가 온 마음을 다해 조처해서 새 활이 100장이고, 새로 만든 철환(鐵丸)이 5만여 개이며, 활과 화살을 간직하는 궤가 40여 수(隋)이고, 화살이 800개인데, 모두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다. 훈도 김문표(金文豹)를 불러서 경성(鏡城) 유생들의 제술(製述)을 함께 고사(考査)하였다. 밤에 함께 술을 조금 마시면서 또 길주 교생(校生)들의 제술을 고사하였다.

7일(병오) 비가 내림.
임영창(臨瀛倉)을 향해 출발할 참이었으나, 비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체류하였다.

8일(정미) 맑음.
길을 가다가 다신산성(多信山城) 아래의 원(院)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성은 산 위에 있고, 그 안에는 못이 있었다. 옛날에 창고가 있었으나, 이시애(李施愛)가 패하고서는 창고를 불태우고 도망쳤다. 산성에서 남쪽으로 10리 남짓 되는 곳에 평야가 있고, 북쪽에는 석성이 있고, 남쪽에는 토성이 있으며, 사(社)의 명칭이 다신(多信)이라 하였다. 윤관(尹瓘)이 쌓은 웅주(雄州)나 영주(英州) 가운데 한 성이 이 안에 있었던 듯하다.
한 고개를 넘어서 임영창에 도착하니, 큰 들판이 앞에 트여 있고, 큰 바다가 동쪽을 둘러 있어서 형세가 매우 웅장하였다. 창고에 들어가서 번고하고, 저녁에는 임영역(臨瀛驛)에 묵었다.

9일(무신)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역관(驛館)이 꽤 멀어서 왕래하는 데 폐단이 있으므로 저녁에 창고 옆의 작은 집에서 묵었다.

10일(기유) 맑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11일(경술) 맑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이날 목사가 진상 물품을 딴 것으로 바꿔서 진봉했다는 내용으로 감사가 계품(啓稟)하여 파직되었다는 기별을 들었다. 단천 군수(端川郡守)가 봉고차사원(封庫差使員)으로 임명되어서 도착하였다. 새 부령 부사(富寧府使) 양사준(梁思俊)이 지나갔다. 이날 낮에 번고를 마치고 영동창(嶺東倉)을 향해 출발하였다.
큰 들판을 지나고 바닷가를 따라서 가 쌍개원(雙介院)에 도착하였다. 큰 바위가 바다 항구 복판에 홀로 서 있는데, 바위 복판에는 큰 구멍이 나 있어서 그 밑으로 배가 지나다닐 만하여 마치 100척이나 되는 홍문(虹門) 같았다. 호인(胡人)들이 구멍을 쌍개(雙介)라고 하므로 그에 따라서 원의 이름도 쌍개라고 하였다 한다.
고개 하나를 넘어 영동창에 도착하니 날이 아직 일러서 창고에 들어가서 번고하였다. 저녁에는 역관에 묵었다. 이성 현감(利城縣監) 신호의(愼好義)가 겸찰방(兼察訪)으로서 도착하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12일(신해) 아침에 눈이 내리다가 오후에 갬.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13일(임자) 맑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단천 군수가 봉고(封庫)한 다음 돌아갔다. 명천 현감(明川縣監) 한윤선(韓允善)이 겸찰방으로서 왔다가 이성 현감이 이미 도착하였으므로 되돌아갔다. 식후에 번고를 끝내고, 역사에 돌아와서 네 곳 창고의 곡식 수량을 회계(會計)하였다. 북청(北靑)에 부방(赴防)한 군사가 소장을 바쳤는데, 서북 만호(西北萬戶) 어득해(魚得海)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으므로, 말을 보내어 잡아오도록 하였다. 이선(李瑄)의 사건에 대해 장계하면서 길주를 그대로 맡기기를 겸하여 청하였다.

14일(계축)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에는 바람이 붊.
아침에 회계하였다. 식후에 역을 출발하여 보제원(普濟院)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가 마천령(磨天嶺)에 올랐는데, 고개가 아주 높아서 하늘에 닿을 듯하였다. 압해정(壓海亭)에 오르니 동해(東海)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이날 안개가 사방을 막아 지척도 분간할 수가 없어서 장관을 구경하지 못하여 한스러웠다. 고개를 내려와 마곡역(磨谷驛)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단천군(端川郡)에 도착하였는데, 목장(牧場)에 관한 일로 소장을 바치는 고을 사람들이 뜰에 가득하였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5일(갑인)
맑음.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하였다. 이날 군기를 점고하고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활쏘기를 마친 다음 활쏘기에 능한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내렸다. 서북 만호 어득해(魚得海)가 뒤따라 도착하였으므로 추문(推問)하고 벌을 내렸다. 군사로서 장수를 고소한 자도 아울러 장형(杖刑)하였다. 저녁에 유생(儒生)의 제술(製述)을 과차(科次)한 다음 술을 대접하여 보냈다.

[주-D001] 과차(科次) : 원문에는 ‘과차(課次)’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과차는 과거시험의 등수를 매기는 것이다.

16일(을묘)
맑고 바람이 붊.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증미(蒸米)를 적간한 다음 나가서 성을 순시하였다. 목장을 향해 출발하여 오리정(五里亭)에 도착해 읍호루(挹灝樓)에 올랐다. 읍호루는 넓은 들판에 있는데, 북쪽에는 큰 산이 버티고 있고, 남쪽으로는 큰 바닷가를 임했으며, 긴 시냇물이 북쪽에서 누 앞으로 흘러들어,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목장에 도착하여 서쪽 봉우리에 올라 지형을 살폈다. 고을 사람으로서 따라와 소장을 바치는 자가 무려 100여 명이나 되었는바, 목장의 폐단을 알 수가 있었다. 단천 군수 원호(元豪)를 불러서 옮겨 방목하는 것이 편리한가의 여부를 물었다.
충순원(忠順院)에 가서 점심을 먹은 다음, 마운령(磨雲嶺)을 넘고, 곡구역(谷口驛)에서 말을 쉬게 하였다. 온성 부사(穩城府使) 한공칙(韓公則)이 이성(梨城)에 왔기에 서울에 보내는 편지를 부치고는 곧바로 말에 올라 이성에 도착하니 밤 1경이었다. 온성 부사와 닭이 울 때까지 이야기하였다.

[주-D001] 읍호루(挹灝樓) : 원문에는 ‘읍호루(挹浩樓)’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曾東國輿地勝覽)》 권49 단천군(端川郡) 조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17일(병진) 맑음.
동헌에 좌기하여 점고하였다. 낮에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한 다음, 활쏘기에 능한 군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렸다. 동헌에 돌아와서 온성 부사와 방에 앉아서 조용하게 이야기하였다. 밤에 온성 부사와 함께 동쪽 행랑에 앉아서 달을 구경하였다. 이어 호호정(浩浩亭)에 올라가 오래도록 있다가 동헌으로 돌아오니, 닭이 벌써 울었다. - 소시 1수를 지었다.

18일(정사) 맑음.
아침에 온성 부사와 이야기하다가 헤어져 성을 나왔다. 오리정에 이르니, 장송(長松)이 10여 리 길을 옹위해 있었다. 또다시 30여 리를 가니 큰 고개가 서쪽에서 와 해구(海口)를 가로질렀는데, 이름을 경령(慶嶺)이라고 하였다.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 고개를 점거하여 관군에 항거하였는데, 높은 데 의지하여 진을 펴고는 화살과 돌을 비오듯이 퍼부어 관군이 진격하지 못하였다. 그때 어유소(魚有沼)가 몰래 바닷가를 지나 적의 뒤로 돌아가 공격하자, 적들이 깃발과 북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곳이다. 지형을 보건대, 적들이 만약 이 고개를 점거했다면 바닷가 길이 눈앞 지척에 있는바, 적들이 기병 수십 명으로써 항거할 경우에는 기병 1000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험로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평삭방서(平朔方序)에는 ‘몰래 바닷가를 지나갔다’고 하였으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고개 한 줄기가 바다를 임해 문득 솟아난 곳 중앙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이른바 시중대(侍中臺)라는 곳이다. 솔숲이 울창하고 푸른 바다가 망망하여 경치가 매우 훌륭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쉬면서 홀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거산역(居山驛)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조금 쉬고서 말을 재촉하여 북청(北靑)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어두웠다.

19일(무오) 비와 눈이 내림.
아침에 동헌에 좌기하여 군기를 점고하고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20일(기미) 흐림.
이날 활쏘기를 시험한 다음, 색리 등에게 벌을 내렸다. 효행(孝行)이 있는 사람들을 소견(召見)하였다. 저녁에 병사(兵使)가 뵙기를 청하였다. 밤에 병사, 우후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였다.

21일(경신) 맑음.
몸이 고단하여 늦게 일어났다.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한 다음, 북문으로 나가 성을 순시하고, 서창(西倉)에 도착하여 증미를 적간하였다. 효행이 있는 사람들을 소견하고 술을 대접하였다. 낮에 성을 나와서 홍원(洪原)의 평포참(平浦站)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서 유숙하였다. 품관(品官) 김한공(金漢恭), 김응기(金應璣), 강빈(姜濱)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길 옆에 와서 알현하였다. 저녁에 이들을 역(驛)으로 불러서 보고 술을 대접하였다.

22일(신유)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홍원현(洪原縣)에 도착하였다. 군기를 점고하고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품관과 아전들이 모두 뜰에서 알현하였다. 군기에 탈이 있어서 현감 김삼(金參)을 불러서 조목(條目)을 받고는 장형(杖刑)하려고 하다가 병이 있어서 장형만은 면케 하였다. 밤에 김응기 등을 소견하였다. 늙은 관비(官婢)들이 와서 알현하였다.

23일(임술) 맑고 안개가 낌.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하였다. 오후에 천도(穿島)에 가서 노닐었는데, 바다 안개가 사방을 막아서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서풍이 문득 불어 음예(陰曀)가 걷히자, 바다 속의 여러 섬들이 모두 은산(銀山)ㆍ설악(雪岳)으로 변해 사방에 둘러 있어, 천태만상이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천도를 구경한 다음, 사하(沙河)에 돌려 대고 고을로 돌아오니, 밤 1경이었다. 이날 함흥의 새 창고가 홍원현 경내의 바닷가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함흥부에 관문을 보내어 창고에 나와서 기다리도록 하였다.

24일(계해)
맑음.
오후에 성을 나와 남산(南山)에 올라가 관망하니, 젊었을 때 다니던 자취가 완연하였다. 이리저리 서성이면서 사방을 돌아보노라니 지난일에 대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바닷가를 지나서 함흥 경계에 도착하니, 푸른 소나무숲이 바닷가에 둘러선 속으로 길이 뚫려 있어서 매우 아름다운 정취가 있었다. 창령(倉嶺)을 넘었는데, 고개가 매우 높고 가팔랐다. 장성(長城)이 바닷가로부터 곧장 고개 위를 지나 함관령(咸關嶺)까지 뻗쳐 있는데, 여기가 바로 옛날의 국경이었던 곳이다. 퇴조창(退潮倉)에 도착하니 판관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에 앉아서 조운(漕運)하여 온 쌀을 점고하여 들였다. 저녁에 촌가에 유숙하였다.

[주-D001] 퇴조창(退潮倉) : 원문에는 ‘퇴조창(退朝倉)’으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8 함흥부(咸興府) 조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25일(갑자) 맑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反庫)하였다. - 4운시 4수를 지었다. - 이날 번고를 마치고, 오후에 말을 재촉하여 함흥을 향해 출발하였다. 20리를 가니 고개가 있어 하늘에 깎아지른 듯하였다. 말이 발을 헛디뎌서 천 길 구렁으로 떨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화를 면했다. 고개를 넘으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함흥에 들어서니 밤 1경이었다. 방백(方伯)이 사람을 시켜서 행리(行李)를 위문하였다.

26일(을축) 맑음.
방백이 동상방(東上房)에 나와서 서로 보았다. 판관을 시켜 창고에 올라가 곡식을 뜰에 배설(排設)토록 하였다.

27일(병인) 맑음.
창고에 올라가 번고하였다. 좌기하였다. 포은 선생(圃隱先生)의 시를 새긴 현판을 걸게 하였다.

28일(정묘) 맑음.
창고에 올라가 번고하였다.

29일(무진) 비가 내림.
번고하지 못하였다. 방백이 중간 대청에 나와서 상회례(相會禮)를 거행하였다. 도사 이경린(李景鱗)과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유영순(柳永純)이 참여하여 한껏 즐기다가 파하였다.

30일(기사) 맑음.
상아(上衙)에 가서 방백을 보았다. 돌아와서 창고에 올라가 번고하였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3) 2월

1일(신미) 아침에 눈이 오다가 낮에는 갬.
늦게 성을 나서서 유원진(柔遠鎭)에 도착하니 날이 아직 저물지 않았다. 곧바로 길을 재촉하여 영건보(永建堡)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려고 하였다. - 소시 1수를 지었다.

2일(임신)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점고를 마치고 온성 판관 장세구(張世球), 만호 우응진(禹應辰)을 불러서 병서를 강 받았다. 식후에 성을 나서서 동건성(童巾城)에 올랐다.
동건성은 영건보(永建堡)과 동관(潼關) 경계에 있었다. 산 위에는 층층 바위가 사방으로 솟아나서 저절로 천험의 성으로 되었다. 성 밖에서는 남쪽 벼랑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매우 험준하여 인마가 겨우 통하며, 그 위는 험한 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성으로 만들었다. 남쪽 편에 있는 두 못은 겨울에는 마르며, 서쪽 편에 있는 큰 못은 그 깊이가 밑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깊고 사면의 돌이 어제 쌓은 것만 같았다. 못 물이 매우 비릿하였는데, 사람들이 쇠붙이가 못 속에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물 맛이 그렇다고 하였으며, 옛사람 중에는 혹 구리 시루를 얻은 자가 있었다고 하였다.
네 모서리에는 천연적으로 된 석대(石臺)가 있었는데, 그 위에 오르자 중국과 오랑캐 땅의 산천이 모두 눈앞에 펼쳐졌다. 이에 화공(畫工)에게 그리도록 하였으나, 형세의 원근(遠近)을 비슷하게 못 그렸다. 못 아래쪽에는 초가로 된 암자가 있어 중 몇 명이 살고 있었다. 못 위쪽에는 예전에는 비석이 있었는데, 원 나라 태정(泰定) 원년(1324, 충숙왕 11)에 세운 것으로, 세월이 오래되어 못 속으로 빠져서 지금은 찾을 수가 없었다. 동건(童巾)은 원 나라 장수(將帥)로, 이 성에 와서 진수한 까닭에 이 성을 동건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산을 내려와서 동관진성(潼關鎭城)에 도착하니, 박선(朴宣)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받은 다음 좌기하여 군기를 점열하였으며, 첨사 최몽성(崔夢星)을 불러서 병서를 강 받았다. 영건 만호(永建萬戶)가 날쌔고 건장하다는 소문이 있으므로 재주를 시험토록 했더니, 활을 쏘고 말을 타는 재주가 참으로 온 나라에 둘도 없는 장수였다. 저녁에 종성(鍾城)에 도착하였다.

3일(계유) 눈이 내림.
점고를 마치고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다.

4일(갑술) 새벽에 출발하여 방원(防垣)의 세천(細川)을 지나 행영(行營)에 도착하였다. 병사(兵使), 평사(評事)와 함께 방안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밤중까지 이야기하였다. 또 방 밖에 앉아서 풍악을 벌이고 군관들에게 차례대로 춤을 추게 하였다.

5일(을해) 맑음.
아침에 사문(赦文)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병사와 함께 교외에 나가서 명(命)을 맞이하였다. 관아의 뜰에 들어와서 예식을 마친 다음,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낮에 병사의 관아에 들어가서 해가 어두울 때까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였다. 저녁에 방에 돌아와 있는데 병사가 오려고 하기에 취한 체하고 누웠더니, 병사가 과연 오지 않았다.

6일(병자) 맑음.
출발할 참인데 술에 시달렸고 날씨도 추웠으므로 병사가 억지로 만류하였다. 군마(軍馬)에 폐단이 있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더니, 병사가 이에 군마의 먹이를 지급해 주고, 일행의 상하 사람들을 병영(兵營)에서 지공(支供)하였다. 이날 늦게 영소당(永嘯堂)에 앉아서 풍악을 벌이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군관에게 기사(騎射)하고 방포(放砲)토록 했는데, 우후(虞候)와 평사도 함께 참석하였다.

7일(정축) 맑음.
아침에 병사와 평사가 와서 보았다. 영소당에 나와 앉았는데, 전별하려고 하기에 술에 시달렸다는 이유로 사양하니, 병사가 섬돌 위에서 절을 하면서 전송하였다. 낮에 고령(高嶺)에 도착하였다. 몸이 노곤하여 종일토록 방에 누워 있었다. 저녁 무렵에 말을 달려서 회령부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황혼이었다.

8일(무인) 맑음.
우후 이정(李挺), 고령 첨사(高嶺僉使) 권이평(權以枰), 온성 판관(穩城判官) 장세구(張世球)를 파출(罷黜)하는 일로써 서장(書狀)의 초고를 작성하였다. 이날 이곳에서 유숙하였다. 병사가 군관을 시켜 문안하였다.

9일(기묘) 맑음.
서장을 봉해 올려보내고 체류하였다.

10일(경진) 맑음.
아침에 병사가 또 자제군관(子弟軍官)을 시켜 와서 문안하였다. 식후에 성을 나서니 전에 향화(向化)한 호인의 처자들이 성 밖에 모여 있다가 아울러 향화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배리(陪吏)를 시켜서 그들의 숫자를 기록하게 하였다. 호기(胡騎)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들 가운데 한 호인의 용모가 이상했는데, 바로 조정에서 효자 정문(旌門)을 내려 준 마가우내(馬加于乃)였다. 이에 보을하진(甫乙下鎭)에 와서 현신(現身)하도록 하고는 술과 음식 및 소금과 쌀을 주어서 보냈다. 저녁에 풍산보(豐山堡)에 도착하여 유숙하였다.

11일(신사) 맑음.
아침에 성을 나서서 이현(梨峴)을 넘어 양영만동보(梁永萬洞堡)에 도착하였다. 군기를 점고한 다음 국덕령(國德嶺)을 넘어 무산보(茂山堡)에 도착하였다. 내일 정승파오달(政丞破吾達)에 들어갈 참이었으므로 회령 판관(會寧判官) 김흠조(金欽祖)에게 군마를 나누어서 거느리도록 하였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2일(임오) 맑음.
새벽에 정승파오달에 들어갔다. 회령 판관 김흠조를 중위장(中衛將)으로, 무산 만호(茂山萬戶) 박응지(朴應趾)를 선봉장(先鋒將)으로, 양영만동 권관(梁永萬洞權管) 이종윤(李宗胤)을 척후장(斥候將)으로, 부령 가장(富寧假將) 이선(李瑄)을 한후장(捍後將)으로 삼았는데, 군마와 시역(廝役)이 모두 300여 명이었다. 차유령(車踰嶺)에 도착하니 해가 비로소 돋았다. 고개 높이는 겨우 수십 길이나, 꼭 문턱 같았다. 고개 이북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하늘에 솟아 있었다. 군사와 말이 어지러운 숲 속을 20리쯤 지나가니 수목이 점점 듬성듬성해지고 가끔 작은 들판도 보였다.
정승파오달에 도착하니 양쪽 산이 조금 벌어져서 골짜기의 어귀를 이루었다. 한 줄기 물이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면서 대홍빈(大紅濱)과 소홍빈(小紅濱)을 지난 다음 정승파오달을 지나서 허수라동(虛修羅洞) 입구에 도착하여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그 형세를 살펴보니, 장백산이 백두산에서 나와 길주(吉州), 명천(明川), 경성(鏡城) 세 고을에 가로로 뻗치다가 경성의 주을온보(朱乙溫堡) 뒤에 와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한 줄기는 서북쪽으로 내려오다가 허수라동 입구에 와서 끝나고, 한 줄기는 동북쪽으로 내려오면서 보을하보의 운두성에 와서 끝났다. 차유령은 바로 동쪽 줄기의 중간이 끊어진 곳이었다.
물은 장백산이 갈라진 곳에서 나와 북쪽 두 줄기의 산 사이로 흐르면서 정승파오달 앞 시냇물로 되었다. 시냇물의 넓이는 겨우 베 한 필 길이이며, 깊이도 겨우 정강이가 잠길 정도였다. 한 산맥이 차유령 남쪽 편에서 나와 서쪽으로 20여 리를 내달리다가 시냇물에 임해서 끊어져서 양쪽 줄기를 가로막았는데, 동구(洞口)에는 물길만 겨우 통했다. 또 한 산맥은 차유령 북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내달리다가 또 시냇가에서 그쳤다. 양쪽 산이 긴 골짜기를 이루었는데, 골짜기의 길이가 거의 30리나 되었으나, 넓이는 겨우 몇 리밖에 안 되었다.
시냇물 서쪽 건너편은 장백산의 서쪽 줄기가 만 길이나 높이 가로막은 탓에 인마가 통행하지 못하였다. 보를 설치할 만한 곳은 바로 차유령 남쪽 줄기가 서쪽으로 내달리다가 시냇물을 임해서 문득 끊어진 곳이다. 차유령 북쪽 줄기가 서쪽으로 내달리다가 장백산 서쪽 줄기와 서로 만나는 곳은 넓이가 겨우 1, 2리이다. 골짜기 어귀가 항아리 주둥이처럼 비좁고, 양쪽 산은 높고 험해서 사람이 통행할 수가 없다.
여기에다 만약 진을 설치하고 골짜기 어귀에다 장성(長城)을 쌓아서 적로(賊路)를 차단한다면 적들이 들어올 길이 없게 되는바, 지리(地利)의 편리함은 이곳만한 데가 없다. 어유간보(魚游澗堡), 옥련보(玉蓮堡), 무산보(茂山堡), 양영만동보(梁永萬洞堡) 등 여러 보로 나오는 적로가 모두 여기를 경유해서 들어오게 되는바, 진을 여기에다 설치하면 위에서 말한 여러 보를 아울러서 한 진(鎭)으로 만들 수가 있다.
정승파오달에서 북쪽으로 5리 남짓 내려가면 부이서동(夫伊饍)이 있는데, 산이 높고 길이 험하다. 대박가천(大朴加遷)과 소박가천(小朴加遷) 및 검천(檢天)은 적호가 경유하는 길이다. 또 5리쯤에 하대(何大) 등 부락과 소거(所居), 자동(自同) 부락이 있어 벌서(伐鋤), 응거(應巨) 등 부락과 거리가 10여 리이며, 자동 부락에서 금말갈(金靺鞨) 부락까지는 20여 리이다. 이상에서 말한 10여 부락은 모두 우리나라에 향화(向化)한 번호(藩胡)이다.
이날 하대 부락 앞 들판에서 진을 치니, 여러 부락의 남녀 500여 명이 모두 나와서 맞이하였다. 이들에게 모두 술과 고기를 먹이고 진을 설치하는 것이 편리한가의 여부를 물으니, 모두들 “만약 진을 설치하면 대국(大國)의 성원에 의지하게 되어 을아(乙阿)의 오랑캐들이 범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호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데도 대국에서 오래도록 진을 설치하지 않으니,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오후에 돌아오는 길에 산천의 토지를 두루 보았다. 무산보에 돌아오니, 초저녁이었다.

13일(계미) 맑음.
아침에 탈이 있는 군기를 점열하고 늦게야 성을 나섰다. 중로(中路)에서 기운이 편치 않아 교자(轎子)를 탔으나, 더욱 불편하여 도로 말을 타고 간신히 부령부(富寧府)에 도착하였다. 부령부에서 서쪽으로 20리 되는 지점에 시내를 임해서 문득 솟아난 바윗돌이 있는데, 이름을 무릉대(武陵臺)라고 하였다. 사객(使客)을 전송하는 장소가 그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이날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열하였다.

14일(갑신) 흐리고 안개가 사방을 덮었으며, 낮에 눈이 조금 내리고 바람이 크게 붊.
부령부의 교생(校生)이 소장을 올렸는데, 부령부의 가장(假將) 이선(李瑄)이 전에 무산 만호(茂山萬戶)로 있을 적에 불법을 저지른 일이었다. 곧바로 수색하여 말 4필, 매 2마리, 개 9마리를 찾아냈으며, 기타 장물(贓物)이 어지럽게 나왔다. 이선을 잡아다가 초사(招辭)를 받으니, 모든 사실을 인정하기에 경성(鏡城)으로 옮겨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이날 출발하려 했으나, 날이 저물어서 출발하지 못하였다.

15일(을유) 맑고 바람이 붊.
일찍 출발하여 형제암원(兄弟巖院)에서 잠시 쉬었다. 형제암은 길 옆 시냇가에 있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데, 쌍으로 우뚝하게 마주 서 있으므로 형제암이라 불렀다. 수성역(輸城驛)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판관 김민선(金敏善)이 나와서 맞이하였다. 어두울 무렵에 경성부에 들어갔다.

16일(병술) 맑음.
어유간 만호(魚游澗萬戶) 오정방(吳定邦)과 오촌 권관(吾村權管)이 와서 알현하였다. 탈이 있는 군기를 점고하고 곧바로 돌려보냈다. 오후에 원수대(元帥臺)에 가니, 판관이 기생과 악공을 거느리고 와서 함께 대에 올랐다. 원수대는 바닷가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난 곳에 있는데, 만리 창파가 동남쪽에 아득하게 넓고, 장백산 등 여러 산이 서북쪽을 가로질러 있어서, 참으로 장관이었다. 이날 바람이 자고 물결이 고요한데 밝은 달이 저녁에 뜨자 은빛 다리가 물결 복판에 가로누워 있었다.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니 표표하게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선 듯하였다. 밤이 깊어서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왔다. 수성 찰방(輸城察訪) 장응년(張應年)도 자리에 참여하였다. 부에 와서 또다시 판관을 불러 술을 마셨다.

17일(정해) 맑음.
부(府)와 영(營)의 탈이 있는 군기를 점고하였다. 이곳에서 체류하였다.

18일(무자) 흐림.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증미(蒸米)를 적간하였다. 영의 군기를 수선하지 않았으므로 군관과 색리를 벌주었다. 낮에 서문(西門)으로 나서서 - 원문 2자 빠짐 - 에서 잠시 쉬었다. 저녁에 보로지보(甫老地堡)에 들어갔다.

19일(기축) 맑음.
식후에 성을 출발하여 - 원문 1자 빠짐 - 령을 넘어 보화보(甫化堡)에 도착하였다. 군기를 점고한 다음, 말에 올라 사리령(沙里嶺)을 넘어 삼삼파보(森森坡堡)에 도착하였다. 군기를 점고하였다. 만호(萬戶) 정현룡(鄭見龍)은 재능이 탁이(卓異)하였는바, 군기를 잘 수리하여 날카롭지 않은 것이 없었고, 적들이 왕래하는 길목과 산천의 평탄하고 험함을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가 말하기를, “상리파(上梨坡)가 보에서 남쪽으로 20리 되는 지점에 있는데, 지형이 매우 편리하고 땅도 매우 좋으며, 적들이 왕래하는 요충입니다. 만약 여기로 보를 옮긴다면 토병들의 생활이 풍족해질 뿐만 아니라, 방어하는 것도 견고해질 것입니다.” 하였다. 그가 그린 산천의 형세도 매우 상세하였다.

20일(경인) 맑음.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성을 나서서 상리파에 직접 가서 지세가 편리한가의 여부를 살펴보았다. 삼삼파보에서 상리파까지는 다섯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길이 매우 험준하였다. 상리파 뒷고개에 도착하여 고개 위에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고 상리파에 내려가서 쉬었는데, 과연 만호가 말한 바와 같았다. 긴 시내가 장백산에서 나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상리파 앞을 감돌았으며, 적로(賊路)는 수동(水洞)을 지나 나와, 참으로 요충지였다.
시냇물을 건너 영천파덕(嶺天巴德)에 오르니, 영천파덕 위가 십여 리나 평평하게 넓어서 전지(田地)를 만들 만하였다. 영천파덕을 지나 사오리령(沙五里嶺)을 넘으면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장백산을 바라보았다.
오후에 사마동보(斜麻洞堡)에 들어가서 군기를 점고한 다음, 저녁에 명천(明川)에 도착하였다. 수성 찰방(輸城察訪) 장응년(張應年)이 하직 인사를 하기에 밤에 불러서 작은 술자리를 벌였다.

21일(신묘) 맑음.
식후에 장응년(張應年)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동헌에 좌기하여 공무를 보았다. 향화호인(向化胡人) 만석(萬石) 등 10여 명을 불러서 술과 밥을 먹이고 쌀과 소금을 주었다. 그들의 처자식들이 아직도 오랑캐 땅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름을 대조해서 기록하도록 하였다. 낮에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점고하였다. 길주(吉州)를 향해 출발하려 했으나, 날이 이미 저물어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22일(임진) 맑음. 4운시 2수를 지었다.
이날 식후에 성을 나서서 가목덕(椵木德)을 넘었다. 옛 역참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온정(溫井) 고개를 넘었다. 온정에서 목욕하여 해묵은 때를 다 씻어 버리니 참으로 ‘몸이 가벼워서 봉새처럼 구름 사이를 날아오를 듯하다.[身輕可試雲間鳳]’는 말과 같았다. 온정은 길주 경계에 있다. 저녁에 길주에 들어갔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23일(계사) 맑음.
아침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예를 받았다. 이어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고하였다.

24일(갑오)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反庫)하기 시작하였는데, 곡식에 흙과 먼지가 많으므로 목사를 시켜 깨끗이 하도록 하였다.

25일(을미)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고, 화포(火砲)에 대한 규식을 적은 책을 남쪽 강변에 나누어 보냈다.

26일(병신) 맑음.
이날 목사가 환자곡(還上穀)을 나누어 주었으므로 번고하는 일을 정지하였다.

27일(정유)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군관 정기문(鄭起文)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도내(道內)의 풍속이 나쁘다는 말을 듣고 방문(榜文)을 내어 유시하였다. - 소시 1수를 지었다.

28일(무술)
맑음. 4운시 2수를 지었다.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저녁에는 담소루(談笑樓)에 올랐다. 담소루는 객사(客舍)의 남쪽, 남성(南城)의 안에 있었다. 장백산 등 여러 산이 서북쪽을 가로질렀고, 눈앞에는 큰 들판이 아득하게 펼쳐 있었다. 누 앞에는 작은 못을 팠고, 못 한복판에는 작은 당(堂)을 지었다. 누 아래에는 양쪽으로 나누어 방(房)을 만들었는데, 동쪽 방은 낙민(樂民), 서쪽 방은 애민(愛民), 복판 마루에는 시민여상(視民如傷)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고(故) 부사(府使) 박희립(朴希立)이 창건한 것이다. 이어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몇 잔을 마셨다.
서리(書吏) 정덕건(鄭德健)이 능히 전후로 온 방백(方伯)들의 일을 말하였다. 이후백(李後白)이 감사로 있을 때 도내의 민폐를 다 혁파했으나, 계속 시행할 만한 방도가 없어서 각 고을이 현재 그 폐단을 받고 있으며, 이후백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역정(驛亭)에다가 시를 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혜초 난초 꺾어지고 옥이 흙에 묻히니 / 蕙折蘭摧玉委塵
한 평생의 맑은 덕에 신과 사람 감동했네 / 一生淸德動神人
가련쿠나 맥도는 끝내 잇기 어려워서 / 可憐貊道終難繼
상국의 백성 걱정 되레 백성 괴롭혔네 / 相國憂民是病民

[주-D001] 맥도(貊道) : 북방 야만족의 습속이나 제도로, 정상적인 제도가 아닌 것을 말한다.

29일(기해) 맑음.
창고에 올라가서 번고하였다. 이날 사하수 권관(斜下水權管) 어등급(魚登汲)이 와서 알현하였으므로 첫 순시 때 탈이 있던 군기를 점고하였다. 대개 번고하는 일로 본주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으면서, 사하수보는 거리가 멀지 않으므로 본주에 내려와서 점고를 받도록 한 것이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3) 1월

1일(신축) 흐림.
병 때문에 좌기하지 못하였다. 식후에 동헌에 나가서 투호(投壺)를 하였다. 찰방과 군관을 시켜 과녁을 쏘아서 승부를 겨루게 하였다.
이감(李戡)이 여기에 귀양와 있다는 말을 듣고 서리(書吏) 정덕건(鄭德健)을 시켜 안부를 묻고, 음식을 보냈다. 이감이 영남(嶺南)을 안찰(按察)할 때 사형(舍兄)께서 도사(都事)로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안동(安東)을 순시하면서 우리 집에 와서 아버님을 뵙고, 아버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서 은근한 정을 보였다. 그때 우리 형제도 모두 잔치에 참여하여 이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 마침 여기에 왔다가 예전 일을 생각하니, 그 당시의 후한 뜻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에 사람을 보내 나의 뜻을 알린 것일 뿐, 그의 죄를 불쌍하게 여긴 것은 아니다.

2일(임인)
맑음.
국기일이기 때문에 좌기하지 않았다. 방안에 앉아서 군관에게 활쏘기를 시험하도록 하였다. 서울에서 온 파진군(破陣軍)에게 화포 쏘기를 시험하였다. - 4운시 1수와 장편시 1수를 지었다.

[주-D001] 파진군(破陣軍) : 적의 진지에 돌격하여 격파할 수 있는 무술을 가진 자로 편성된 군대로, 일종의 특공대이다.

3일(계묘) 맑음.
아침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예를 받았다. 돌아와서 동헌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한 다음, 납의를 나누어 주었다. 저녁에 창고에 올라가서 증미를 헤아려 보았다.

4일(갑진) 눈이 많이 내림.
안원보(安元堡)로 갈 참이었으나, 눈 때문에 정지하였다. 오후에 투호(投壺)를 하다가 이어서 찰방과 군관 등에게 과녁을 쏘도록 하였다. 밤에 바람이 크게 불었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5일(을사) 맑음.
큰 바람이 산을 흔들고 바다를 출렁이게 하였으며, 쌓인 눈이 흩날려서 하늘이 컴컴하고 어두웠다. 이날 또 순행을 정지하고 객창에 외로이 앉았노라니, 더욱더 무료함을 느꼈다. - 장편시 1수를 지었다.

6일(병오)
맑음.
몹시 춥고 바람이 불었다. 출발하려고 하다가 군마(軍馬)가 동상에 걸릴까 염려되어 결행하지 못하였다. 비변사에서 보낸 삼현령(三懸鈴) 관자(關字)가 도착했는데, 회령 부사(會寧府使)를 추고하는 일이었다. 오후에 나가서 성을 순시하였다. - 소시(小詩) 3수와 4운시 1수를 지었다.

[주-D001] 삼현령(三懸鈴) 관자(關字) : 매우 긴급한 공문을 말한다. 공문을 보낼 적에 긴급한 정도에 따라서 봉투에 방울을 다는데, 가장 긴급한 것은 세 개, 그 다음 긴급한 것은 두 개, 그 다음 긴급한 것은 한 개를 달았다. 때에 따라서는 동그라미를 그려서 표시하기도 하였다. 관자는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에 보내는 공문서를 말한다.

7일(정미) 맑고 바람이 붊.
식후에 성을 나서서 한낮에 안원보에 도착하였다. 기일이었으므로 좌기하지 않았다. 찰방과 군관을 시켜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열하게 하였다. 회령에서 장계를 가지고 갔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서울과 시골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았다. 남이관(南以寬)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8일(무신) 맑음.
아침에 성을 나서서 강가를 따라가 낮에 건원보(乾元堡)에 도착하였다. 활 쏘기를 시험하고 군기 점고를 마친 다음, 곧바로 나와서 오롱초천(吾弄草川)을 건넜다. 강가의 길을 따라가 저녁에 아산보(阿山堡)에 도착하였다.

9일(기유) 맑음.
아침에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고하였다. 낮에 동성(東城)을 나서서 저녁에 아오지보(阿吾地堡)에 도착하였다. 아오지보는 큰 들판 복판에 있었다. 토지가 자못 기름졌으나, 지역이 두만강 가에 있어서 잇달아 수재를 당한 탓에 백성들이 대부분 생업을 잃었다. 동쪽에도 보가 있었는데 옛 성에 석축이 완연하였다. 밤에 찰방과 더불어 술을 조금 마셨다.

10일(경술) 맑음.
아침에 몸이 노곤하여 군관을 시켜 활쏘기를 시험하게 하였다. 낮에 나아가서 좌기했는데, 방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이 대부분 정돈되지 않았으므로 만호 이하에게 벌을 내렸다. 창고에 올라가서 군량을 적간하고, 곧바로 말에 올랐다. 큰 들을 지나서 두만강 가에 이르니, 호인 80여 명이 와서 맞이하였다. 한 고개를 넘어서 저녁에 무이보(撫夷堡)에 도착하였다.
무이보는 산기슭이 강을 임해서 불쑥 솟아난 곳에 있었다. 호인 땅의 100여 리나 되는 큰 들판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서쪽에는 금장 다루가치[金粧達魯火赤]의 옛터가 있고, 북쪽에는 야춘(也春) 부락이 있었으며, 서북쪽에는 시전(時錢) 부락이 있었다. 8개의 못이 들판 한복판에 있었는데, 바라다보니 마치 바다의 눈알과 같았으며, 산하의 형세가 극히 웅장하였다. 두만강이 보 앞을 둘러 흘러서 누런 모래와 마른 풀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끝이 없었다. - 4운시 3수를 지었다.

11일(신해) 맑음. 4운시 3수를 지었다.
이날 낮에 동성을 나서서 강가의 길을 따라가 경흥(慶興)의 하양평(河陽坪)에 도착하였다. 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면서 그 가운데가 하나의 섬으로 되어 있었다. 강물이 불어나면 큰 들판에 널리 퍼져서 전답과 벼가 다 잠기곤 하는 탓에, 부의 백성들이 해마다 수재를 당하여, 버려진 고을이 될 지경이라 몹시 염려스러웠다.
갑인년(1554, 명종 9) 무렵에 김수문(金秀文)이 부사가 되어서 이응거도(伊應巨島)에 진을 설치하고, 백성들에게 변경을 넘어서 호인 지역에 가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산(造山)에서 적호(賊胡)들의 변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조정 의논이 모두들 변경을 개척한 데에 허물을 돌려서, 진을 설치한 지 2년 만에 철폐하였다.
부사가 오리정(五里亭)에 나와서 맞이하였다. 저녁에 성에 들어갔다. 중간 대청에 좌기해서 예를 받았다. 저녁에 서울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았다. - 소시(小詩) 2수를 지었다.

12일(임자) 맑음.
전에 회령에 있을 적에 호인 김이시(金伊時) 등에 대한 장계를 마패(馬牌)도 없이 올려보내고서는 이어 대죄(待罪)하였는데, 이날 아침에 대죄하지 말라는 유지(有旨)를 받았다. 식후에 사당(射堂)에 나아가서 군기를 점고하고 활쏘기도 시험하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13일(계축) 흐림.
병 때문에 좌기하지 못하고 군관을 시켜서 활쏘기 시험을 마치게 했다. - 소시 11수를 지었다. - 이날 오후에 납의를 나누어 주었다.

14일(갑인) 맑고 바람이 몹시 붊.
병 때문에 체류하였다. 경원(慶源)에 비밀리에 관문을 보내서 적호(賊胡) 매도지(梅都只)를 체포하게 하였다. 오랑캐들이 이보다 앞서 우리나라 사람과 재물을 약탈해 갔는데, 번호(藩胡)로 하여금 이들을 잡아서 바치도록 하였다. 그러자 번호들이 딴 사람의 죽은 시체를 가져다가 경흥부에 고발하였는데, 부사가 이를 곧이듣고 조정에 계달하여 상을 논하기까지 하였다. 매도지가 드디어 이름을 앙상아(仰商阿)라고 고치고는 그대로 동천(童遷) 부락에 살고 있다가 지난해에 흉년으로 인해서 경원 경내의 부락으로 옮겨 와서 붙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5일(을묘) 맑음.
늦게서야 동헌에 좌기하여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추문하고, 화포 쏘기를 시험하였다. 저녁에 망덕대(望德臺)에 올랐다. 망덕대는 진산(鎭山)의 잠두(蠶頭)로, 뒤로는 두만강을 굽어보고, 앞으로는 부성(府城)을 감싸안은 듯하였다. 대에 오르니 인거도(仁巨島), 강양평(江陽坪), 슬해(瑟海) 및 무이(撫夷) 등 여러 산이 모두 눈앞에 펼쳐졌다. 두만강의 흐름은 무이 앞에서 동남쪽으로 곧게 흐르다가 강양평 위에 와서 강물이 두 줄기로 갈라지면서 복판에 한 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대 앞에 와서는 모여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강양평을 꿰뚫는다. 홍수가 져서 강물이 진산에 부딪히면 수구가 막혀서 물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강양평으로 거슬러 넘쳐 흘러 논밭이 모두 다 물결 속에 파묻히고 만다. 이 때문에 해마다 농사를 망치게 되어 백성들이 매우 괴롭게 여겨, 부를 아오지보(阿吾地堡)로 옮기고, 강양평보(江陽坪堡)는 부성(府城)으로 옮기기를 청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연혁(沿革)이 중하다고 하면서 백성들의 소원대로 따르지를 않는다고 한다.
찰방과 군관 등을 불러서 술 두어 순배를 마시고, 피리를 불고 칼춤을 추도록 하다가 밤 1경에 술자리를 파하였다.

16일(병진) 맑고 바람이 붊.
식후에 동성(東城)을 나서서 강가의 길을 따라가 조산보(造山堡)로 향하였다. 덕릉(德陵)과 안릉(安陵) 두 능의 옛터를 지났다. 도조(度祖)를 당초에 여기에다 장사 지냈는데, 태조(太祖)께서 왕위에 오른 뒤에 함흥 지역으로 이장했던 것이다. 능침의 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왔는데, 가운데에 큰 들판을 안았으며, 강물이 앞에 흘러서 지세가 매우 웅장하였다. 능 앞의 들판은 흙이 기름져서 좋은 전지였으나, 수재가 발생할 염려가 강양평과 같은바, 부민(府民)들의 재해가 몹시 걱정스러웠다.
귀신구비령(鬼神仇非嶺)을 넘어서 작은 들판 하나를 지나고 두리산(豆里山)을 넘었다. 산 아래에 10여 리 되는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반포(反浦)라고 불렀다. 호숫가를 따라가 조산보에 들어갔다. 조산보는 앞쪽으로는 두만강과의 거리가 몇 리이고, 서쪽으로는 반포와의 거리가 1리이며, 서남쪽은 산을 의지해 있었는데, 형세가 매우 외롭고 성 안의 토병도 겨우 수십 집밖에 안 되었다. 정동쪽으로 강 건너편은 큰 들이 아득하게 넓었으며, 깎아지른 듯한 큰 산 하나가 해안가에 서 있는데, 아초곶(阿草串)이라고 불렀다. 그 동북쪽에는 슬해(瑟海)가 있는데, 물이 곧바로 경흥부(慶興府) 북쪽 이응거도(伊應巨島)로 흘러 들어간다. 슬해의 동북쪽에는 초곶산(草串山)이 있는데, 바로 신해년(1551, 명종 6)에 들어가서 오랑캐를 정벌하던 곳이다. 아초곶의 동쪽에는 섬이 있는데, 이름을 후라도(厚羅島)라고 하며, 후라도의 동북쪽에 있는 섬은 호라산(虎羅山)이라고 부른다. 이곳들은 모두 호인들이 들어가서 사는 곳이다.
이날 군기를 점열하고 활쏘기를 시험한 다음 그곳에서 묵었다.

17일(정사)
맑음.
아침에 몸이 편치 않았다. 늦게서야 동성을 나서서 고개 하나를 넘으니 7, 8리나 되는 넓은 호수가 있었다. 호숫가를 지나서 또다시 큰 고개를 하나 넘은 다음, 해안을 따라가서 서수라보(西水羅堡)에 들어갔다.
서수라보는 해안의 산 어귀에 있는데, 동남쪽은 큰 바다가 하늘과 닿은 듯하였다. 보의 진산(鎭山)은 두리산에서 한 가닥 산줄기가 근근이 이어져 30여 리를 내려오다가 보가 있는 곳에 와서 끝맺음을 하였다. 보에서 동쪽으로 1리쯤 되는 곳에 큰 바위가 바다 어귀에 서 있으면서 보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그 복판이 항구로 되었는데, 바위는 조촉암(鳥蜀巖)이라고 부른다. 바위 뒤로 8, 90리 너머에 후라도 등 여러 섬이 바다 복판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보의 서쪽에는 난도(卵島), 적도(赤島), 소서근도(小鋤斤島), 대서근도(大鋤斤島) 등 여러 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적도는 바로 도조(度祖)가 피란했던 곳이다. 보를 설치한 지는 오래됐으나 성이 없고 오직 해작(海作) 40여 집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임자년(1552, 명종 7) 무렵에 부사(府使) 김수문(金秀文)이 이응거도(伊應巨島)에 보를 설치한 뒤로 호인들이 분하게 여겨, 해구(海口)를 지나 300여 명이 자피선(者皮船)을 타고 와서 100여 일 동안이나 약탈하다가 갔다. 이로 말미암아 성을 쌓고 권관(權管)을 두었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주-D001] 해작(海作) : 해착(海錯)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말한다.[주-D002] 자피선(者皮船) :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배로, 피선(皮船)이라고도 한다.

18일(무오) 맑음.
새벽에 중당(中堂)에 나와서 해돋이를 보았다. 식후에 북성(北城)으로 나와서 해안을 지나 석문(石門)을 넘었다. 조산(造山) 앞 10리쯤에 오니, 강 너머에 녹둔도(鹿屯島)가 보였다.
녹둔도는 조산보(造山堡)에서 동쪽으로 5리 되는 곳에 있었다. 두만강이 조산 동북쪽에 와서는 두 줄기로 갈라져 흐른다. 한 줄기는 동남쪽으로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에 들어간다. 그 복판이 하나의 큰 들판이 되었는데, 들판의 넓이가 거의 100여 리나 되며, 기름진 전답이 눈길 닿는 데까지 끝없이 펼쳐졌다. 전에 이 섬에 목책(木柵)을 설치하였다. 3월 초하루가 되면 섬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10월 초하루에는 조산으로 돌아오는데, 이를 입첩(入疊)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풍년이 들어 변경 군사들의 식량이 충분하였는데, 이응거도에 보를 설치하여 호인들과 틈이 생긴 뒤부터는 포로로 잡혀갈까 염려하여 지금까지 농사짓는 것을 금단한다고 한다.
섬에 들어가 10여 리를 가다가 예전에 목책을 설치했던 곳에 도착해 말에서 내려 풀을 깔고 앉아서 군사와 말을 조금 쉬게 하였다. 그런 다음 곧바로 말에 올라 강을 건너서 조산보에 들어갔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19일(기미) 맑음.
아침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진법(陣法)을 연습하고 이어서 성을 수어(守禦)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형조(刑曹)의 서리(書吏) 송천수(宋千壽)란 자가 제법 변방의 일을 말하므로 그의 말을 끝에다 기록하였다. - 소시 2수와 4운시 3수를 지었다. - 이날 식후에 동문으로 나와서 낮에 바로 경흥부(慶興府)로 돌아오니, 부사가 5리 밖에 나와서 맞이하였다.

20일(경신) 맑음.
식후에 동헌(東軒)에 좌기하여 범죄를 저지른 자를 형신(刑訊)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의 역자(驛子)가 비변사의 관문(關文)을 가지고 왔다. 서울과 시골에서 보낸 편지를 보았다. 저녁에 부사를 만나 변방의 일을 물었다. 밤에는 또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천수(宋千壽)가 오랑캐의 실정을 자세히 물었다.

21일(신유) 눈이 내림.
이날 진법을 연습하려고 하다가 눈이 와서 하지 못하였다. 밤에 술을 마셨다.

22일(임술) 맑음.
몸이 노곤하여 좌기하지 않았다.

23일(계해)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 증미를 적간하고, 이어 창고에 좌기하여 공무를 보았다. 서울과 시골에 보낼 편지를 써서 병조의 역자(驛子)에게 부쳤다. 오후에 성을 나서서 해질 무렵 무이보(撫夷堡)에 들어갔다. 동헌에 좌기하여 탈이 있는 군기를 점고하였다. 만호 윤추(尹樞)를 불러서 진서(陣書) 및 병서(兵書)를 강(講) 받았다.
이날 번호(藩胡)의 고발로 인하여 적호(賊胡)인 매독(梅毒)이 살아 있다는 것을 듣고는 경원부로 하여금 체포토록 하였다. 이 호인은 일찍이 우리나라 사람과 재물을 약탈해 팔아먹었다가 일이 발각되자 도피했던 자이다. 경흥 부사가 번추(藩酋)에게 잡아 바치라고 독촉하자, 번추 등이 죽은 시체를 싣고 와서 매독의 시신이라고 부에 신고하였다. 부에서는 그들의 말을 믿고 계품하여 논상(論賞)하기까지 했는데, 이때에 와서 비로소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이날 밤 방에 불이 나서 이불이 탔다.

24일(갑자)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진법을 연습하는 것과 성을 수어하는 절차를 보았다. 식후에 성을 나서서 낮에 아오지보(阿吾地堡)에 도착하였다. 탈이 있는 군기(軍器)를 점고하였다. 만호 - 원문 2자 빠짐 - 불러서 병서(兵書)와 진서(陣書)를 강(講) 받았다. 무이보의 도훈도(都訓導) 등 4인을 잡아와서 초사(招辭)를 받았는데, 대개 매독(梅毒)의 시신이라고 증인을 선 사람들이었다. 저녁에 성을 나서서 어두울 무렵에 아산보(阿山堡)에 들어갔다. 밤에 바람이 크게 불었다.

25일(을축) 바람이 크게 붊.
아침에 좌기하여 탈이 있는 군기를 점고하였다. 만호 김덕남(金德男)을 불러서 병서와 진서를 강 받았는데, 제법 글을 깨쳐서 두 책의 글을 모두 통했으므로 술을 주었다.
바람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묵었다. 저녁에 매우 무료하여서 피리를 불고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다. 찰방과 더불어 술을 마셔서 취하게 되었는데, 찰방이 술에 취해 법도를 잃어가므로 술자리를 속히 파하도록 하였다.

26일(병인) 맑음.
바람이 그쳤으므로 북쪽 성문으로 나왔다. 낮에 건원보(乾元堡)에 도착하여 군기 점고를 마치고, 곧바로 말에 올라서 안원보(安元堡)에 도착하였다. 병조의 역자가 비변사의 관문을 가지고 왔다.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보니, 온성 부사 이원성(李元成)과 유원 첨사(柔遠僉使) 이희인(李希仁)을 잡아온 일이었는데, 앞서 이미 장계를 올렸으므로 관문을 보내는 편에 나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권관 권세인(權世仁)을 불러서 병서와 진서를 강 받았는데, 진서는 조(粗)이고 병서는 불(不)이었다. 저녁에 북쪽 성문으로 나와서 경원부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27일(정묘) 저녁에 눈이 오고 바람이 크게 붊.
동헌에 좌기하여 죄인에게 초사를 받았는데, 적호 매독(梅毒)에 대한 사건이었다. 무이보에 있을 때 경원부에 관문을 보내서 비밀리에 매독을 체포하도록 하였는데, 경원부에서 제때에 체포하지 않아서, 기미를 알아차리고 이미 도망쳤으므로 그의 아내 및 족호(族胡)를 잡아온 것이다. 판관 민계중(閔繼中)을 불러서 병서를 강 받았다.

28일(무진)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매독(梅毒)과 관련된 사람들을 다시 추문(推問)하였다. 오후에 방에 들어와서 부사 최여림(崔汝霖)을 만나보았다. 이날 진법을 연습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하지 못하였다. 병조의 역자가 돌아가므로 서울에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남문으로 나와서 저녁에 훈융진(訓戎鎭)에 도착하여 군기를 점고하였다. 밤에 눈이 내렸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29일(기사) 눈이 내림. 4운시 1수를 지었다.
이날 식후에 성을 나서서 황자파(黃子坡)에 도착하였다. 점고를 마치고는 곧바로 말에 올라 옛 연대(煙臺)를 넘어서 미전진(美錢鎭)으로 들어갔다. 진 사람들이 황자파에 와서 원통함을 하소연하였는데, 온성부(穩城府)에서 군졸들을 침학(侵虐)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이 아닐까 염려되어 차꼬를 채운 다음 진에 와서 추문해 조사해 보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날이 저물어서 이곳에서 묵었다.

30일(경오) 맑음.
아침에 동헌에 좌기하여 첨사 유수(兪須)를 불러서 병서를 강 받았다. 식후에 성을 나서서 온성부로 들어갔다. 늦게 동헌에 좌기하여 판관 장세구(張世球)를 불러서 조목(條目)을 받았는데, 미전진의 토병이 하소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밤에 김용(金容)과 함께 술을 두어 순배 마셨다. - 4운시 5수를 지었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2) 12월

1일(임신)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고 점열하였다. 아침에 군의(軍儀)를 엄숙하게 한 다음, 잡아들인 호인(胡人) 안춘(安春)과 김이시(金伊時), 이들을 향도(嚮導)한 유한평(劉漢平)에게 초사(招辭)를 받았다. 회령 판관(會寧判官) 김흥조(金興祖)와 수성 판관(輸城判官) 장응년(張應年)으로 하여금 호인들이 나오는 길을 살펴보도록 하였는데, 날이 저물어서 이들이 돌아와서는 길이 멀어 가지 못했다고 핑계 대면서 내일 새벽에 다시 가겠다고 하였다. 어두울 때 점열을 마쳤다. 이곳에서 묵었다.

2일(계유)
맑음.
식후에 군의(軍儀)를 갖추고서 운두성(雲頭城)에 올랐다. 운두성은 진(鎭)의 서쪽, 장백산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서쪽은 벼랑과 구렁이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그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어서 천연적으로 성을 이루고 있었으며, 오직 동쪽으로만 사람이 통행할 수가 있었다. 석성(石城)의 둘레는 10여 리이며, 두만강이 그 밑을 둘러 있었다. 호인들의 부락이 강변을 따라 둔(屯)을 만들면서 수십 리나 널리 퍼져 있었다. 성에 오르니 오랑캐와 중국의 산천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바, 실로 형세가 좋은 곳이었다. 호인 60여 기(騎)가 일제히 절하면서 맞이하였다. 회령부(會寧府)에서 보낸 술과 생선으로 호인들을 불러 먹였다. 출발할 무렵에 현자총통(玄字銃筒)을 쏘니 소리가 산하를 찢는 듯하였다. 호기(胡騎)가 모두 놀라서 뒤로 물러나고, 총통의 화살이 거의 700여 보나 날아갔다.
성에서 내려와 장성(長城) 밖의 호인 지역을 지나가는데, 호인들이 말을 달리며 용맹을 뽐냈다. 가다가 옛 연대(煙臺) 부락에 도착하였는데, 바로 내지(內地)에 투탁(投託)하여 들어온 호인 안춘(安春) 등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무랑개(茂郞介)의 아내와 자식 6, 7명이 상복(喪服)을 입고 말 앞에 꿇어앉아 무랑개가 살해당한 사유를 호소하였는데, 대국(大國)에 향화(向化)하기를 청하는 말이 매우 슬펐으며, 모여서 보는 호인 남녀도 매우 많았다. 무랑개의 조카들도 모두 상복을 입고 있어서 몹시 가상하였다.
가다가 상문(上門)에 도착하니, 회령부에서 호인들에게 공궤(供饋)하는 술과 생선이 장성문(長城門)에 배설(排設)되어 있었다. 대개 마중을 나온 호인들이 여기까지 왔다가는 도로 돌아가므로 으레 술을 공궤하는 것이었다. 이날 호인 부락을 지나면서 그들의 가옥 제도를 보니, 바로 중국인들의 제도와 같았다. 남녀 노소의 안색이 모두 살지고 윤택한 것을 보니, 역역(力役) 같은 괴로운 일이 없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장성문으로 들어가서 저녁에 회령부에 들어갔다. 회령부는 오산(鰲山)에 기대어 있고, 큰 들판에 임해 있으며, 알목하(斡木河)가 동남쪽을 지나가고, 두만강(豆滿江)이 서북쪽을 가로질러서 형세가 매우 웅장하였다.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도 무려 6, 7백 호나 되었다.
이날 보을하 첨사(甫乙下僉使) 등을 잡아온 나장(羅將)이 도착하였다. 북병사(北兵使)의 편지와 서울에서 온 기별 몇 장을 보았다. 병사는 호인들이 마구 들어왔던 사건에 걸려서 파직되었다고 하였다. 밤에 판관 등이 첨사 최곤(崔坤)과 더불어 도로를 살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서로 따지므로, 곧바로 동헌에 나가 좌기하여 추문(推問)한 다음 판관에게 곤장을 치고는 즉시 돌아가서 살펴보도록 하였다.

[주-D001] 알목하(斡木河) : 원문에는 ‘간목하(幹木河)’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3일(갑술)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고 점열하였다. 나장이 최곤을 잡아갔다. 이날 이곳에서 유숙했다. 밤에 찰방이 도로를 조사하고서 돌아왔다.

4일(을해)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고 장계를 초하였다. 이날도 이곳에서 묵었다.

5일(병자) 맑음.
이곳에서 머물렀다. 납의를 나누어 주었다.

6일(정축) 맑음.
장계와 집에 보내는 편지를 보냈다. 낮에 제승정(制勝亭)에 올랐다가 이어 군의(軍儀)를 갖추고서 성을 순시한 다음, 도로 서문(西門)으로 들어왔다. 창고에 올라가 증미(蒸米)를 점고하였다. 쌀이 거의 4000여 섬이나 되는데 창고를 담당한 사람이 미리 정돈하지 않아서 다 점고하지 못하였다. 감고(監考) 및 군관(軍官) 등을 태형(笞刑)하고, 어두울 무렵에 부에 돌아왔다.

7일(무인) 맑음.
아침에 창고에 올라가서 증미의 점고를 마쳤다. 낮에 성을 나서서 고령(高嶺)을 향해 출발하였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호인 60여 기가 와서 맞이하였다. 어떤 호인 부락을 지나가면서 보니 길 옆에 정문(旌門)이 있었는데, 호인으로서 중추(中樞) 직첩(職帖)을 받은 마다수(馬多秀)의 효자문(孝子門)이었다. 운두성(雲頭城)에서 고령까지는 강을 따라서 오랑캐들의 둔(屯)이 매우 총총하여 마을이 서로 바라보였다. 한낮에 고령성(高嶺城)에 들어갔다. 성 밖에는 호인 부락이 흩어져 있어서 우리나라 백성과 다름이 없었다. 이날 활쏘기를 시험하고 점열한 다음 이곳에서 묵었다.

8일(기묘)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고 납의를 나누어 주었다. 낮에 성을 나서서 행영(行營)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맞이하러 왔던 호인들이 장성(長城) 아래에서 하직하고 떠났다. 저녁에 행영에 도착해서 성지(城池)를 순시하였는데, 도리어 작은 보(堡)만도 못하여 기계(機械)가 극히 놀라웠다.

9일(경진) 맑음.
활쏘기를 시험하고 점열하였다. 이곳에서 묵었다.

10일(신사)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성지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색리 및 예방 군관(禮房軍官)에게 벌을 내렸다. 성을 출발하여 망천보(網川堡)에 도착하니, 성지가 마치 어린애 장난 같았으므로 색리에게 곤장을 쳤다. 망천보는 소백산(小白山) 아래에 있는데, 땅이 메마르고 서리가 일찍 내리는 곳이었다. 이에 토병들이 모두 보를 포항(浦項) 지역으로 옮기기를 원하였다. 저녁에 성을 출발하여 박달령(朴達嶺)을 넘어 방원보(防垣堡)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묵었다. 행영(行營)과 망천(網川)은 모두 내지(內地)에 있었고, 여기에 오자 비로소 두만강 가로 나왔다.

11일(임오) 맑음.
아침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고 점열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의 역자(驛子)가 비변사(備邊司)의 관문(關文)을 가지고 왔는데, 향화호인에게 마초(馬草)와 양식을 주어서 서울로 올려보내라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온 편지를 보았다.
오후에 성을 출발하여 오갈산(烏碣山)을 지나 장성 아래에 도착하니, 호인 50여 기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장성 밖은 넓은 들이었는데,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는 모두 번호(藩胡)들이 농사를 짓는 곳이었다.
저녁에 종성(鍾城)에 들어갔다. 종성 부사가 오리장(五里場)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삼공형(三公兄) 및 행수 군관(行首軍官)을 잡아 가두었다. 길주와 명천에서 장계를 가지고 갔던 사람이 돌아왔다. 고향 집의 안부를 듣지 못한 지가 벌써 석 달이었는데, 부형의 편지를 받아 읽게 되었기에 너무 기뻐서 엎어질 뻔하였다. 신 만호(申萬戶) 아저씨가 상처(喪妻)했고, 권선대(權宣代)의 조부도 죽었다는 기별이었다.

12일(계미) 맑음.
아침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종성 부사 이하로부터 예를 받았다. 다시 동헌에 좌기해서 활쏘기를 시험하고 군기를 점열하였다. 회령 부사(會寧府使)의 공문(公文)이 공손하지 않았으므로 색리에게 벌을 내렸다. 밤에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 귀양살이할 적에 가르쳤던 유생(儒生)인 김공수(金恭守), 한경두(韓景斗), 허응세(許應世) 세 사람을 만나보았는데, 미암이 귀양살이할 때의 일을 자못 말하였다. 술을 대접하여 보냈다.

13일(갑신) 맑음.
날씨가 추워서 나가 좌기하지 못하고 방에 앉아 공무를 보았다. - 율시(律詩) 1수와 4운시 4수를 지었다.

14일(을유) 맑음.
이곳에 머물면서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청파역의 역자가 돌아가기에 서울과 시골에 보내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15일(병술) 맑음.
이곳에 머물렀다. 온성(穩城)의 번호(藩胡)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해 간 사건에 대한 장계의 초고를 작성하였다. 유원 첨사(柔遠僉使) 이희인(李希仁)을 잡아 가두었다. 유원에 사는 사람이 땔감을 채취하기 위해 강을 넘어갔다가 호인들에게 포로로 잡힌 사건 때문이었다.

16일(정해) 맑음.
이곳에 머물렀다. 아침에 장계를 보냈다. 오후에 성을 순시한 다음, 창고에 올라가서 군량(軍糧)을 재어보았다. 저녁에 동헌으로 돌아왔다.

17일(무자) 맑음.
아침에 색리 등에게 벌을 내리고 북성(北城)을 출발하였다. 부사 박선(朴宣)이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입고 장성 안까지 전송하였다. 호인 30여 기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오후에 동관진(潼關鎭)에 들어갔다. 동관진은 동건성(童巾城) 아래에 있었다. 동건산(童巾山)이 불쑥 솟았는데, 산 위에는 바위 벼랑이 벽처럼 서 있어서 저절로 천험의 성을 이루었다. 그 위에 큰 못이 있는데, 못의 사면이 벽돌을 쌓은 것처럼 깎여져 있었다. 원(元) 나라 태정(泰定) 연간에 동건(童巾)이 이곳에 와서 진수(鎭守)했던 까닭에 동건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18일(기축) 맑음.
군기의 점고를 마치고 오후에 성을 출발하였다. 동건성 아래를 지나서 영건보(永建堡)에 이르니, 온성 판관(穩城判官)이 군마를 거느리고 나와서 맞이하였다. 영건보는 소동건산(小童巾山) 아래에 있었다.

19일(경인) 아침에 눈이 내림.
군기의 점고를 마치고 북성(北城)을 출발해서 유원진(柔遠鎭)에 도착하였다. 유원진은 강변의 큰 들 한복판에 있는데, 온성과 20리쯤 사이를 두고 서로 바라보였다. 호인들의 둔(屯)이 강가를 따라 벌여 있는데, 매우 번성하였다. 호인 50여 기가 강을 사이에 두고 나와서 맞이하였다. 두만강은 회령의 운두성에서 북쪽으로 흐르면서 회령과 종성을 지난 다음, 유원에 도착하여 비로소 굽어져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흥에 도착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20일(신묘) 맑음.
아침에 일어나서 군기를 점고하였다. 저녁에 온성에 도착하니, 온성 부사 이원성(李元成)이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입고 오리정(五里亭)에 나와서 맞이하였는데, 군마가 자못 훌륭했고 깃발이 전후 10여 리에 뻗쳐 있었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21일(임진) 맑고 바람이 붊.
식후에 중간 대청에 좌기하여 부사 이하의 예를 받았다. 동헌에 돌아와 좌기하여 군기를 점고하였다.

22일(계사)
흐리고 바람이 붊.
이곳에 머물렀다. 기일(忌日)이었으므로 좌기하지 않고 군관을 시켜서 제색(諸色) 군사들의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온성부는 바로 기복재 선생(奇服齋先生)께서 귀양와 있다가 죽은 곳이다. 허미숙(許美叔 허봉(許篈))이 일찍이 시를 지어서 조상(弔喪)하였고, 나도 서울에 있을 적에 홍태고(洪太古 홍적(洪迪)) 등과 함께 그 운에 화답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여기에 온 것이 마침 복재 선생께서 화를 당하던 그 해를 당해 왔는바, 지난일을 생각하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뺨에 줄줄 흘러내렸다. 이에 전에 지었던 시를 새겨 미숙의 시를 새겨 놓은 현판 뒤에 달아서 감모(感慕)하는 뜻을 부쳤다. - 4운시 3수를 지었다.

[주-D001] 기복재 선생(奇服齋先生) : 원문에는 ‘기복재선생(奇復齋先生)’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복재는 기준(奇遵)의 호이다. 기준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온성에 유배되어 있다가 교살(絞殺)되었다.

23일(갑오) 맑음.
기일이었므로 좌기하지 않고, 군관(軍官)을 시켜서 포 쏘는 재주를 시험하게 하였다. 오후에 납의를 나누어 주었다. 부사에게 공문을 보내서 사람과 재물을 약탈해 간 호인을 잡아오게 하였다.

24일(을미) 맑음.
국기일(國忌日)이었므로 좌기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식후에 나가서 성을 순시하다가 남성(南城) 밖에 도착하여 방패를 성 아래에 세운 다음, 군사들에게 양쪽 격대(擊臺)에 올라가서 서로 바라보고 쏘도록 하였다. 그런데 토병이 성 안으로 잘못 쏘아서 어린아이가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몹시 놀랍고 참혹하기에 곧바로 성에 들어가서 특별히 휼전(恤典)을 베풀었다. 창고에 올라가서 증미를 헤아려 보았다. 저녁에 동헌으로 돌아왔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25일(병신) 맑음.
아침에 동성(東城)을 나서서 낮에 미전진(美錢鎭)에 도착하였다. 미전진은 강가의 산 언덕에 있었다. 성은 큰데 군사는 적었고, 성 안에는 단지 수십여 집이 있을 뿐이었다. 경성(鏡城)에서 장계를 가지고 갔던 사람이 돌아왔다. 서울과 시골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비로소 고향 집의 안부를 알았으므로 기쁨이 한량없었다.

26일(정유) 맑음.
식후에 성을 출발하여 한 고개를 넘은 다음 황자파(黃柘坡)에 도착하였다. 점고를 마치고 훈융진(訓戎鎭)을 향해 출발했는데, 호인 60여 기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어스름이 질 무렵에 훈융진에 들어갔다.

27일(무술) 맑음.
아침에 좌기하였다. 점고를 마치고 오후에 동성(東城)으로 나가서 경원(慶源)에 들어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남도(南道)의 화포장(火砲匠)이 5리 밖에까지 찾아왔다. 밤에 찰방과 더불어 술을 조금 마셨다. 행영(行營)의 군관(軍官) 이광(李光)이 함부로 폐단을 일으킨다고 하므로 듣고는 회령(會寧) 관아에 잡아 가두었다.

28일(기해) 맑음.
병 때문에 좌기하지 못하였다. 훈융진에서 경원까지는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으며, 두만강이 그 복판을 가르면서 북쪽에서 동쪽으로 흘렀다. 번호(藩胡)들이 강을 따라서 둔(屯)을 만들었는데, 부락이 매우 번성하였다. 이쪽은 땅이 모두 메마르고 소금기가 있는 탓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 거친 갈대밭만 끝없이 바라보일 뿐이었다.

29일(경자) 맑음.
이곳에 머물렀다. 몸이 불편하여 좌기하지 않고 군관(軍官)과 배리(陪吏)를 시켜서 군기를 점고하게 하였다. 밤에 방안에 앉아서 찰방과 군관 등을 불러 섣달 그믐밤을 보내다가 4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 4운시 3수와 장편시 1수를 지었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2) 10월

1일(계유) 맑음.
서문(西門)으로 나가서 앞 시냇물을 건너고 큰 들판 복판으로 갔다. 큰 들판은 둘레가 7, 80리 가량 되었으며, 제법 기름져 보였다. 그러나 홍수가 밀려들어서 온갖 곡식이 제대로 익지 못하였는바, 보기에 아주 참혹하였다.
덕원(德源)의 경계에 이르니 수재(水災)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탓에 곡식이 제법 여물어 백성들이 해를 넘길 만하였다. 안변에 있을 때에 들으니, 서울의 장사치들이 금물(禁物)을 많이 가지고 덕원의 원산리(元山里)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으므로, 비밀리에 덕원 부사로 하여금 잡아 가두게 하였다. 그런데 원산에 도착해서 보니, 도장(都將)이 5, 6명을 잡아 놓았으나, 금물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석방하였다.
오전에 덕원에 도착하였다. 성지(城池)와 기계, 군기 등의 물품이 낱낱이 정돈되어 있는바, 부사 안상(安瑺)이 국사에 온 힘을 다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안상은 일찍이 백성을 다스리는 데 첫째간다는 이유로 당상(堂上)에 승진되었으며, 또 잉임(仍任)하도록 하여 이미 1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아전과 백성들이 부모와 같이 여기니, 매우 가상하다.
저녁에 문천(文川)에 도착하였다. 군기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았으므로 색리(色吏)를 치죄(治罪)하였다. 고을 백성들이 목장(牧場)을 옮겨서 방목(放牧)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내용으로 정장(呈狀)하였다. 이날 고을의 관사에서 유숙하였는데, 꿈속에서 퇴계 선생(退溪先生)을 뵈었다.

2일(갑술)
맑음.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뜰에 국화 몇 포기가 피어 있어서 갑자기 눈이 환해지므로 이어 술을 한 잔 마셨다. 북도에 온 이후로 입이 벌어질 만한 일이 없었는데, 식물은 참으로 예전에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루에 임해서 멍한 채 오래도록 있었다.
낮에 고원군(高原郡)에 도착하니, 고을 백성들이 앞다투어 폐막(弊瘼)을 진소(陳疏)하였는데, 이를 처리하는 동안에 날이 이미 저물었다. 출발할 무렵에 고원 군수 정희룡(鄭煕龍)이 또 뵙기를 청하여 폐막을 말하였다. 대문 밖에 나서니 두 노인이 말머리에 왔기에 뵈었는데, 정문(旌門)된 효자(孝子)였으므로 말 위에 앉은 채로 위로하여 보냈다.
영흥(永興)의 경내에 들어서서 15리쯤 가다가 준원전(濬源殿)에 들러 태조(太祖)의 어용(御容)을 우러러보면서 배알하였다. 준원전은 넓은 들판 한복판에 있었다. 낮은 산과 솟아난 언덕이 북쪽에서 내려오면서 수십 리를 뻗쳐 있다가 들 한복판에 와서는 서린 용(龍) 모양 같은 작은 언덕을 이뤘는데, 서남쪽을 향하여 작은 골이 만들어졌으며, 앞에는 나즈막한 언덕 하나가 솟아 있어 안산(案山)을 이루고 있었다. 준원전은 골 한복판에 있는데, 북쪽을 뒤로 하고 남쪽을 향해 있었다. 좌우와 전후에는 큰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는데도 골 안에서는 그 들판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사방의 여러 산이 울퉁불퉁하게 일어났거나 엎드려 있었고, 겹친 봉우리와 고개가 고리처럼 빙 둘러서 솟아 있었으며, 용흥강(龍興江)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준원전 북쪽 산 밖을 감싸안듯 흘렀는바, 참으로 천부(天府)의 지역이었다. 준원전 터는 태조의 잠저(潛邸) 터라고 한다.
저녁에 영흥부(永興府)에 들어갔다. 영흥부는 북도의 큰 변진(邊鎭)이었으나 근래에는 수령이 적임자가 아니었던 탓으로 고을이 쓸쓸해져서 옛날의 번성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사행(私行)이 이아(二衙)에 많이 있다고 듣고는 반자(半刺)와 이방(吏房)을 형신(刑訊)하였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렸다.

[주-D001] 이아(二衙) : 각 고을의 유향소(留鄕所)를 말한다. 고을의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으로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의를 대변하였다.

3일(을해) 맑고 바람이 붊.
식후에 배를 타고 용흥강(龍興江)을 건넜다. 낮에 초원역(草源驛)에서 쉬는데 정평 부사(定平府使) 유덕수(柳德粹)가 와서 맞이하였다. 역 앞에 있는 반송(盤松)은 매우 기이하여, 시원한 그늘이 수십 명을 가릴 만하였다. 판상(板上)에 시를 읊어 적어 놓은 것이 매우 많았는데,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의 시가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었다. 저녁에 정평부에 들어갔다. 정평부의 성(城)은 산을 의지하여 설험(設險)하였는데, 남쪽으로 큰 들판을 임해 있어서 동헌(東軒)이 제법 시원하였다.

4일(병자) 맑음.
정평을 출발하여, 함흥(咸興)의 경내에 도착해 학선정(鶴仙亭)에서 잠시 쉬었다. 길에서 성주(星州)에 산다고 하는 도응복(都應復)을 만나 원(院)으로 불러들였다. 성천강(成川江)의 장교(長橋)를 건너서 함흥부로 들어갔다. 함흥부는 산을 뒤로 하고 들판을 임해 있었다. 언덕과 산이 북쪽을 진수(鎭守)하고 있고, 큰 강이 오른편을 둘렀으며, 큰 바다가 동쪽에 일렁거렸다. 들판은 넓이가 거의 수백 리인데, 민가가 들판에 널려 있어서 중원(中原) 땅과 비슷하였다. 해변에는 격구장(擊毬場)이 있고, 북쪽에는 함양평(咸陽坪)이 있으며, 동쪽에는 태조의 잠저(潛邸)가 있었다. 낙천정(樂天亭)은 성천강 가에 있었는데, 바로 장교의 입구에 해당되었다. 이날 납의(衲衣)를 점고하였다.

5일(정축) 흐리고 비가 내림.
함흥에 머물러 군기를 점고하였다. 아침에 감사와 도사가 동상(東廂)에 찾아왔는데, 술을 조금 마셨다.

6일(무인) 맑음.
함흥(咸興)에 머물렀다. 식후에 남문으로 나가 장교를 건넜다. 목장으로 가서 목장을 옮기는 것이 편리한가의 여부를 간심(看審)하였다. 목장은 해안에 있었으며, 흙을 쌓아서 목장을 만들었다. 둘레가 거의 50리이고 넓고 평평하여 산이 없었다. 함흥(咸興), 홍원(洪原), 정평(定平) 세 고을의 백성들이 목장을 분담하여 수축하는데, 흙을 쌓는 대로 곧바로 무너지는 탓에 말이 뛰어나와서 농사를 해쳤다. 가을과 겨울에는 말을 전부 방목하는데, 호랑이가 잡아먹고 도둑들이 죽여서 거의 다 없어지므로, 이를 고실(故失)로 처리하여 백성에게 나누어서 징수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몹시 괴로워하였다. 감사 이후백(李後白)이 문천(文川)의 사눌도(四訥島)로 옮겨서 방목하기를 청하였다. 조정의 논의도 그의 청대로 따를 참이었는데, 어사(御史) 허봉(許篈)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이때에 와서 다시 간심해서 아뢰도록 하라는 명이 내려진 것이다.
저녁에 부로 돌아와서 성지와 기계를 순시하였다. 어두울 무렵에 감사와 도사가 찾아왔기에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7일(기묘) 맑음.
새벽에 함흥을 출발하는데 감사와 도사가 무양당(武揚堂)에 와서 전송하였다. 무양당은 함흥부의 북쪽, 성천강 서쪽 언덕에 있었는데, 감사가 새로 설치한 훈련장이다. 감사가 무사들에게 격구 따위의 놀이를 베풀도록 명하였다. 50리쯤 가서 조금 쉬었다가 큰 고개 하나를 넘었다. 고개 위에 짧은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북방을 순시할 적에 세운 것이었다.
초방원(草芳院)에 도착하여 묵었다. 초방원은 황초령(黃草嶺) 밑에 있었다. 일행의 인마(人馬)가 모두 밖에서 노숙하게 되었는데, 서리와 이슬이 사람들을 엄습하고, 고개 위에는 쌓인 눈이 산에 가득하였으므로 모두들 걱정하는 기색이 있었다.

8일(경진) 맑음.
새벽에 어둠을 무릅쓰고 황초령을 올랐는데, 고개가 높아서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중간 고개를 오르고 나서는 이미 높은 고개 위에 올랐다고 여겼는데, 고개 위에 올라서니 또다시 한 고개가 반공(半空)을 가로질러 있었다. 눈이 두어 자나 쌓여 있었으며, 양쪽 벼랑에는 고목이 구름 속에 치솟아서 하늘과 해가 보이지 않았다. 지세는 대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았다. 초방원에서 고개를 오를 적에는 하늘에 오르는 듯하였으나, 고개 북쪽은 평지를 밟는 듯하여, 고개 꼭대기에 있는 줄을 몰랐다.
중간 고개에 오르니 함흥과 정평 지역이 모두 시야에 들어왔고, 만리 푸른 바다가 펼쳐져서 마치 산 아래에 있는 듯하였다. 고개를 몇 리쯤 내려가 눈을 쓸고 길 옆에 앉아서 조반을 지었다. 조반을 먹은 뒤에 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갔는데, 소나무와 전나무가 산에 가득하여 위를 쳐다보아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이 거의 60리나 되었다. 고갯머리에서는 쫄쫄 흐르던 물이 고개 아래에 내려오자 벌써 큰 시냇물이 되어 배도 다닐 만큼 깊었으니, 고갯길의 길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낮에 가을모노(加乙毛奴)라는 곳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고개 위에는 사방 산이 감돌아 있고, 가운데에는 동부(洞府)를 이루었는데, 넓이가 수십 리 가량 되었다. 서쪽은 야인(野人)들이 그 안에서 농사를 지었는바, 참으로 별도로 한 구역을 이루고 있었다.
저녁에 배를 타고 석을모노강(石乙毛奴江)을 건넜다. 저녁 어스름이 질 때 범박구비원(范朴仇非院)에 도착하였는데, 주민이 겨우 7, 8호밖에 안 되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평지를 보았는데, 백성들은 귀리와 메밀만 먹고 살았으며, 딴 곡식은 없었다. 이 지역은 5월이 되어서야 눈이 녹고 8월이 되면 서리가 내리는 까닭에 그런 것이었다.
설한령(雪寒嶺)은 석을모노강 서북쪽에 있는데, 여기가 바로 평안도 강계(江界)와의 경계라고 한다. 여연(閭延), 무창(茂昌) 등 사군(四郡) 지역이 고개 서쪽에 있어, 관서(關西) 지방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지나다닌다. 그러므로 방백이 여기에 보(堡)를 설치하여 떠돌이 백성들을 방비하고자 하였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9일(신사) 맑음.
새벽에 찰방 임제(林悌)를 만나보았다. 해가 돋은 뒤에 강 북쪽을 따라 내려가다가 - 원문 빠짐 - 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또다시 - 원문 빠짐 - 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향천(香遷), 장항(獐項)을 넘으니 거산도(居山道)의 사람과 말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항 이북서부터는 바로 삼수(三水) 지역이다.
향천은 함흥의 임현(任縣) - 원문 2자 빠짐 - 북쪽에 있는데, 새나 넘을 수 있는 듯한 길이 벼랑을 따라 꼬불꼬불하였으며, 몹시 높고 가팔랐다. 강물이 그 밑을 파고들어 굽어보니 두려워서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장항은 향천과 비교해 보면 높고 가파르지는 않았으나, 바위 벼랑이 강변에 불쑥 솟아났고 실 같은 길이 바로 그 위에 꼬불꼬불하였다. 발을 디딘 곳 외에는 모두 천 길의 절벽인데, 나무들을 엮어 벼랑에 기대 세워서 떨어지는 것을 방비하였다. 거산도의 말로 바꿔 타고서 벼랑 고개를 넘었다.
별해보(別害堡) 앞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서 강을 건너니 만호(萬戶) - 원문 3자 빠짐 - 나와서 맞이하였다. 별해보에 들어가니 밤 2경이었다. 대청에 좌기(坐起)하여 예를 받은 다음 그곳에서 묵었다. 삼수 군수(三水郡守) 변언수(邊彦琇)가 밤에 왔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10일(임오) 맑음.
아침에 대청에 좌기하여 예를 받은 다음, 군기를 점고하고 토병(土兵) 및 남군(南軍)들의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토병은 파리한 자가 겨우 10여 명뿐이었으며, 남군은 40여 명이었는데, 활을 쏠 줄 아는 자는 몇 사람 없었다. 성 안에 사는 인가도 수십 집이 못 되어 방비가 몹시 허술하여 극히 염려스러웠다. 모든 보(堡)가 강 건너편에 있고, 그 북쪽에 오만령(五萬嶺)과 시반령(始盤嶺)이 있었는데, 모두 적들이 왕래하는 길이었다. 그런데도 관하(關河)의 험고함이 없어서 오랑캐 기병이 몰아닥쳐서 곧장 쳐들어올 수가 있다고 한다.
별해보는 동남쪽으로 함흥과는 열세 참 거리이고, 북쪽으로 삼수군과는 열 참 거리이나, 보의 백성들은 모두 함흥에 소속되기를 원하였다. 이는 함흥까지는 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지만, 삼수군과의 사이에는 깊은 강과 가파른 고개가 300리나 가로질러 있어서 성세(聲勢)가 미치지 않는 탓에, 오랑캐의 변고가 있더라도 능히 응원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또 함흥의 황초령(黃草嶺) 이북과 삼수의 신방구비(神方仇非) 이남을 떼어서 따로 한 현(縣)을 설치했으면 하였는데, 이는 대개 길이 아득하게 멀어서 백성들이 관부(官府)에 왕래하기가 몹시 괴롭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성지(城池)와 군영(軍營)을 순시하고 도로 만호의 아문(衙門)에 들어가서 비리를 수색하였다. 이날 납의(衲衣)를 가지고 왔던 고산 찰방(高山察訪)이 하직하고 돌아갔다.

11일(계미) 맑음.
아침에 토병(土兵) 박언옥(朴彦玉)을 불러 보니,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 적로(賊路)의 멀고 가까움을 자못 알고 있었으며, 또 변경의 일도 능히 말하였는바, 실로 실무를 잘 알고 있는 노병(老兵)이었다. 출발할 무렵에 화포(火砲) 쏘기를 시험하였으나, 재주를 가지고 벌을 논하지는 않았다.
북문(北門)으로 나와서 신현(新峴)과 장항(獐項)을 넘고, 묘파(廟坡) 앞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묘파보는 바로 병자년(1576, 선조 9)에 원주(院主) 수리동(愁里同)이 포로로 잡혀간 곳이다. 전에는 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수리동이 진부(津夫)로서 홀로 강변에 살았다. 그런데 오랑캐 20여 명이 갑자기 쳐들어온 탓에 딸 둘과 손자 하나는 배가 뒤집혀서 빠져 죽었고, 수리동 부부는 포로가 되었으며, 아들 하나는 외출했다가 화를 면했다고 한다.
형제수곡(兄弟水谷)은 보의 북쪽에 있는데, 실로 적들이 왕래하는 길목이다. 호인(胡人)을 회령부(會寧府)에서 쇄환(刷還)할 때 수리동도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 조정에서는 또 포로로 잡혀가는 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새로 보를 설치하였다.
묘파보는 강 언덕 산기슭에 있는데, 지세가 기울고 또 자갈밭이어서 성 안의 사정을 오랑캐들이 다 볼 수 있으므로, 실로 보를 세우기에 편리한 곳이 아니었다. 이에 감사 박민헌(朴民獻)이 옮겨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의논이 합치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북루(北樓)에 좌기하여 군사를 점고하였다. 묘파보는 남쪽으로 별해보와 55리 거리이고, 북쪽으로 신방구비보와 40여 리 거리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12일(갑신) 맑았다가 저녁에는 비가 오고 밤에는 눈이 조금 내림.
아침에 말을 타고 성 안의 군영을 순시하였다. 권관(權管) 김위(金衛)가 군영이 허술하다는 이유로 벌을 받을까 염려하여 토병(土兵)의 새 집을 택해 거짓으로 군영이라고 보고하였으므로 신방구비보로 잡아오도록 하였다. 성을 나서서 강가의 자갈길과 잔도(棧道)를 따라가 신방구비보에 도착하였다. 묘파보 권관(廟坡堡權管)을 논죄한 뒤에 군기를 점고하고, 제색(諸色) 군사들의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군기는 완전하게 수리되어 있었으나, 군사들이 대부분 활을 쏠 줄을 몰랐다. 이에 권관 이눌(李訥) 이하에게 차등 있게 벌을 내렸다.

13일(을유) 아침에 눈이 조금 내리다가 저녁에는 갬.
새벽에 성을 출발하였다. 강가의 자갈길과 잔도를 따라갔는데, 길이 몹시 위험하여 겨우 한 갈래만이 통해 있었다. 벼랑이 끊어진 곳에는 목책(木柵)을 엮어서 허공에다 매어 길을 만들었는데,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판이었다. 혹은 견여(肩輿)를 타기도 하고 혹은 걸어가기도 하여 강 어귀의 수호소(守護所)에 도착하였다.
시냇물이 남쪽 골짜기에서 나와 큰 강으로 흘러드는데, 너비는 겨우 두어 발이나 깊이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위아래에 굴러 떨어진 돌이 칼처럼 뾰족하게 섰고, 나루를 건너는 곳에는 떠내려온 얼음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배가 들어오지도 못하고 다리도 만들 수가 없었다. 이에 종일토록 강 언덕에 앉아서 군인들을 시켜 도끼로 얼음을 깨고 배를 끌어와서 여울 아래쪽의 얼음이 풀린 곳을 따라서 겨우 강을 건넜다. 그런 다음 벼랑을 따라 길을 찾으면서 가느라 자주 넘어졌는데, 험한 길을 가는 고생이 이루 말로는 다 형언할 수가 없었다.
강 어귀에 수호소가 두 곳이 있었는데, 어면보(魚面堡)와 감파보(甘坡堡)에서 지키는 곳이었다. 오령(五嶺) 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말을 재촉하여 고개를 올라갔다.
고개는 모두 다섯 개였는데, 첫째 고개는 - 원문 2자 빠짐 -, 둘째 고개는 - 원문 2자 빠짐 -, 셋째 고개는 화덕(火德), 넷째 고개는 천덕(泉德), 다섯째 고개는 별덕(別德)이라고 하였다. 첫째 고개와 둘째 고개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화덕, 천덕, 별덕 세 고개는 매우 높아서 고개를 오를 적에는 하늘에 올라가는 듯했고, 내려갈 적에는 황천으로 들어가는 듯하였다. 고갯길이 삼백 굽이나 빙빙 돌았고, 삼나무와 전나무가 하늘에 치솟아 있어 눈 덮인 길만 보일 뿐,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어면보에 도착하니 밤 2경이었다. 침롱(寢籠)이 3경에 비로소 도착하였고, 납의는 4경이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이날 화덕령에 오르다가 말이 쓰러져서 낙마하였다.

14일(병술) 맑음.
식후에 동헌에 좌기하여 예를 받은 다음, 군기를 점고하고, 권관(權管) 이하의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어두울 무렵에 삼수 군수(三水郡守)를 불러서 변방 일을 물어보았다. 어면보는 산을 의지하고 강을 임해 있어서 지형이 제법 좋았으나, 성지(城池)가 넓어서 수어(守禦)하기가 어려울 듯하였다. 당초에는 토병이 매우 많아서 성 안에 가득했으므로 성이 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토병 10여 집만이 있을 뿐이어서 성 안이 태반이 비었는바, 매우 염려스러웠다.
어면보에서 서쪽으로 신방구비보와의 거리는 90여 리이고, 북쪽으로 감파보와의 거리는 30리이며, 동북쪽으로 삼수와의 거리는 90리였다. 별해보에서 신방구비보까지는 귀리와 메밀만 심을 뿐이었는데, 이 어면보에 오니 비로소 기장과 조 따위의 곡식을 심기도 하였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5일(정해) 맑음.
새벽에 어면보의 뒷산을 넘었다. 강가의 자갈길 곁으로 해서 가지곡(茄之谷)의 적로(賊路)를 지나 감파보(甘坡堡)에 도착하였다. 군기의 점고를 마치고 다시 어면보에 돌아와서 성지(城池)를 순시하니, 벌써 저녁나절이 되었다.
감파보는 남쪽으로 가파른 고개를 의지해 있고, 북쪽으로는 강물에 임해 있었다. 적들이 왕래하는 길로서 북쪽에 있는 것을 감곡(甘谷), 서쪽에 있는 것을 성동(性洞), 동쪽에 있는 것을 가지곡(茄之谷)이라고 하는데, 실로 관방(關防)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보가 만첩 산 깊은 골짜기 속에 있으며, 남쪽 고개가 몹시 높기 때문에 겨울에는 해를 보지 못하고, 늦봄이나 되어야 겨우 해가 보인다고 한다. 보 안의 군사는 겨우 10여 명뿐이고, 우역(牛疫)을 만나 소가 다 죽었으며, 금년에는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여 지금 한창 기근에 걸려 있는바, 몹시 불쌍하고 참혹하였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6일(무자)
맑음.
새벽에 어면보를 출발하여 강가의 자갈길을 지나서 동구비보(童仇非堡)에 도착하였다. 동구비보는 강 언덕에 있는데, 나무를 엮어서 성을 만들었다. 토병(土兵) 5, 6명과 남군(南軍) 30명이 들어와서 방수(防戍)하고 있으나, 모두 활을 쏠 줄도 모르니,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면 한 성채의 사람들이 다 죽고 말 것이다.
자작구비(慈作仇非)는 동구비보에서 동북쪽 강변으로 10여 리 되는 지점에 있는데, 지형이 자못 험하고 땅이 또한 살이 두터우므로, 군민(軍民)들이 보를 여기에 옮겨 설치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군기의 점고를 마치고 곧바로 말에 올라 보를 옮기기를 원하는 곳에 가서 보니, 지세가 과연 편리하였다. 만약 여기에 성보(城堡)를 옮겨서 설치한다면, 방어하기에 매우 편리할 뿐만 아니라, 토병들의 생업 또한 동구비보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동구비보에서 삼수군(三水郡)까지에는 적들이 왕래하는 길이 세 곳이나 있다.
동구비보를 5리쯤 지난 강변에 평평한 언덕이 있는데, 신파파(新坡坡)라고 부르며, 강 북쪽에 있는 골짜기는 석문(石門)이라 불렀다. 석문에서 강 자갈길을 따라 10리쯤 가면 한 둔덕이 있는데, 자작구비라 부르며, 자작구비에서 몇 리를 돌아가면 마곡(麻谷)이라는 데가 있다. 마곡에서 강 자갈길을 따라 몇 리를 가면 사곡(蛇谷)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석문과 - 원문 1자 빠짐 - 곡과 사곡은 모두 적들이 왕래하는 길이다. 지지난 기미년(1439, 세종 21)에 반민(叛民) 한세충(韓世忠)이 적들의 향도(嚮導)가 되어 적란(賊亂)을 일으켰을 때 마곡을 경유하여 몰래 나왔는데, 이때부터 신파(新坡) 등지에 주민이 싹 없어졌다고 한다.
낮에 대곡(大谷)의 시냇가에서 쉬다가 임옥수(林玉峀), 장항(獐項), - 원문 2자 빠짐 - 세 고개를 넘어서 삼수군에 도착하니, 밤 2경이었다. 군수가 많은 횃불을 성 위에 벌여 세워서 맞이하였다. - 4운시 2수와 절구 1수를 지었다.

[주-D001] 신파파(新坡坡) : 신파(新坡)의 잘못인 듯하다.

17일(기축) 맑음.
삼수군 및 가파지보(加波地堡)의 군기와 수병(戍兵)을 점고하였다. 가파지보는 고을에서 20리쯤 되는 곳의 오랑캐의 경계 안에 있는데, 얼음이 얼면 오랑캐 기병이 평탄한 길을 다니듯이 강을 다녀서 방수(防戍)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까닭으로 10월 초하루에 토병을 데리고 고을 성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것을 첩입(疊入)이라고 하고, 3월 초하루에는 토병을 보에 돌려보내는데, 이것을 방첩(放疊)이라고 한다. 토병들이 이를 몹시 괴롭게 여겨 모두들 첩입과 방첩을 파하기를 원하였다.
밤에 달빛을 타고 진융루(鎭戎樓)에 올랐다. 진융루는 서쪽 성문 위에 있었는데, 세 강이 누 앞에 모여들고 사방 산이 성을 둘러싸서 관방(關防)의 형세가 매우 좋았다. 한 강은 동쪽에서 흘러드는데, 강의 근원이 백두산(白頭山)에서 나오고, 한 강은 남쪽에서 흘러드는데, 강의 근원이 황초령(黃草嶺)에서 나오며, 한 강은 북쪽에서 흘러드는데, 강의 근원이 오랑캐 땅에서 나온다. 이 세 강이 모두 성루(城樓) 밑 1리쯤에서 모이는바, 고을 이름이 삼수(三水)인 것은 이 때문이다.
김우추(金遇秋)가 호인(胡人)을 죽인 곳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의 비파항(琵琶項)에서 20리쯤 되는 곳에 있었는데, 북새(北塞)의 호인으로서 서새(西塞)의 건주위(建州衛) 등에 왕래하는 자가 경유하는 길이라고 한다. 고을은 앞쪽이 오랑캐 경계 안에 임해 있으면서 10보(堡)를 통솔하고 있으니, 실로 관방에 있어서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군수가 적임자가 아닐 경우에는 관계되는 바가 작지 않은데, 김우추같이 무지한 자가 진장(鎭將)으로 있었으니, 아무리 변경에서 사단을 일으키고자 하지 않더라도 되겠는가. 지금의 군수인 변언수(邊彦琇)는 제법 재간이 있고, 또 마구 거두어들이지 아니하여 군민(軍民)들이 생업에 편안하다고 한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18일(경인) 맑음.
삼수에 머물러 있었다. 제색(諸色)의 군사들에게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저녁에 창고에 내려가서 적간(摘奸)하니, 증미(蒸米) 200여 곡(斛)이 부족하였다. 이에 돌아와서 동상(東廂)에 좌기하여 군수와 갈파지 권관(乫波地權管)을 불러 조목(條目)을 받고, 색리(色吏) 이하에게 벌을 내렸다.

[주-D001] 증미(蒸米) : 물에 담갔다가 쪄서 말린 쌀을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잘 부패되지 않는다고 한다.

19일(신묘) 맑음.
새벽에 북문(北門)을 나서서 강가의 자갈길을 지나 소농보(小農堡)에 도착하였다. 소농보는 평원에 있어서 땅이 제법 평평하고 넓은데,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논 몇 이랑을 볼 수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강가를 따라서 성을 쌓아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방비하였는데, 이를 장성(長城)이라고 부른다. 점고를 마치고 권관(權管) 이하에게 형벌을 내렸다. 권관이 서울에서 첩을 데리고 왔다는 소문이 있어서 수색해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하였다.
강가의 자갈길을 따라서 가다가 한 고개를 넘고서 나난보(羅暖堡)에 도착하였다. 나난보는 평야에 있어서 소농보와 비교해 볼 때 더욱 평평하고 넓었는데,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감싸안은 듯하여 형세가 매우 좋았다. 동쪽 강가에 있는 삼형제 바위는 생김새가 극히 기묘하였다. 문루(門樓)에 좌기하여 군기를 점고하였는데, 권관 김개(金漑)는 활쏘기에 능하여 재주가 취할 만하였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20일(임진) 맑음.
아침에 남문을 나서서 장령(長嶺)에 올랐다. 고개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는데, 서쪽으로의 높이는 20여 리이고, 동쪽으로의 높이는 20리였다. 길은 고개 등성이에 나 있고, 고개 꼭대기에는 원(院)이 있었다. 서쪽으로는 여연(閭延)과 무창(茂昌), 북쪽으로는 백두산(白頭山), 동쪽으로는 장백산(長白山)의 여러 봉우리가 둘러 있어서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백두산 남쪽에는 오랑캐 땅의 산이 꾸불꾸불 이어져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면서 천 리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평야로 되어 있어서 바라보아도 산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고개에서 내려오니 인차외보(仁遮外堡)가 고개 기슭의 강 언덕에 있었는데, 한쪽 면은 산을 의지했고 삼면은 절벽을 의지해 있어 형세가 매우 견고하였다. 갑산 부사(甲山府使) 이행(李行)과 만호(萬戶) 한인제(韓仁濟)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예를 받은 다음 관란헌(觀瀾軒)에 좌기하여 점고하였다. 이곳에서 유숙하면서 서울에서 보낸 편지와 감사가 보낸 편지를 보았다.

21일(계사) 비가 오다가 눈이 내림.
아침에 출발하여 강가의 자갈길과 잔도(棧道)를 따라서 갔는데, 길이 매우 위험하였다. 벼랑이 끊어진 곳에는 목책을 얽어서 허공에 걸쳐 놓아 겨우 한 갈래 길만이 통해 있었다. 이곳을 - 원문 2자 빠짐 - 비탈(非脫)이라고 부르는데, 이 비탈을 넘어야만 회곡(檜谷)의 수호소(守護所)를 지나가게 된다. 강가의 자갈길을 따라서 가다가 강 어귀를 건너서 신안보(新安堡)로 들어갔다.
신안보는 옛날에는 수호소였는데, 병자년(1576, 선조 9)에 묘파보(廟坡堡)의 김수리동(金愁里同)이 잡혀간 뒤에 남병사(南兵使) 곽흘(郭屹)이 이 보를 설치하였다. 보는 압록강과 갑산강(甲山江)이 교류하는 곳에 있었는데, 형세가 불편하였다. 서쪽에 있는 산이 성을 굽어보고 있어서 적들이 이 산 위에 올라가 활을 쏘고 돌을 굴려 내릴 경우 성 안에는 피할 만한 곳이 없었다. 또 성 안에는 샘과 우물이 없어서 강물을 길어다가 먹어야 하며, 성 밖에는 전지(田地)가 없어서 토병들이 생활할 수가 없었다. 이에 모두들 회곡으로 보를 옮기기를 원하였다. 보에서 혜산(惠山)까지의 거리가 겨우 10리밖에 안 되어서 본디 보를 설치할 곳이 아니었는바, 곽흘이 새로 보를 설치한 뜻을 알 수가 없다.
문루(門樓)에 좌기하여 점고하였다. 배종(陪從)하던 아전이 누에서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낙상하였으므로, 가리(假吏)에게 임무를 대행하도록 하였다. 취암(鷲巖)이 보의 북쪽 강가에 있었는데, 만 길 절벽이 구름 속에 거꾸로 꽂힌 듯이 솟아 있어서 제법 경치가 기이하였다.
저녁에 혜산진(惠山鎭)에 들어갔다. 진은 압록강 상류에 있는데, 강물 깊이가 말의 배에도 미치지 않아서 관방(關防)이 아주 긴급하였다. 이날 군기를 점고하였다. 밤에 우후(虞候) 이유(李蕤)를 만나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22일(갑오)
맑음.
아침에 우후를 만나 묘주(卯酒)를 마셨다. 식후에 괘궁정(掛弓亭)에 좌기하여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괘궁정은 북쪽 성 위에 있어서 압록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전야(田野)는 여러 보와 비교해 볼 때 가장 넓었으며, 군사와 백성도 제법 많았다. 혜산 첨사(惠山僉使) 김수(金鐩)가 잘 위무하였으므로 군사와 백성들이 앞다투어 정장(呈狀)하여 그의 선정(善政)을 일컬었다. 활 100여 정(丁)이 탈이 있었다. 저녁에 첨사에게 탈에 대한 조목(條目)을 받고, 도훈도(都訓導) 이하에게 형벌을 내렸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주-D001] 묘주(卯酒) : 이른 아침에 마시는 술을 말한다.

23일(을미) 맑음.
고개 하나를 넘어서 운총보(雲寵堡)에 도착하였다. 문루에 좌기하여 군기(軍器)를 점고하니, 군기에 탈이 없었다. 토병 역시 활쏘기에 능했으며, 권관 허숙(許淑)은 팔이 길어서 활을 아주 잘 쏘았다. 운총보는 시냇가에 있었고, 전토도 농사짓기에 알맞아서 토병이 모두 부유하였다.
저녁에 성 북쪽에 있는 녹반령(綠礬嶺)의 경치가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는 말을 달려서 고개에 올랐으나, 날이 이미 어두워서 멀리까지 볼 수가 없었다. 보에 돌아오니 밤이 이미 깊었다. 고개가 장령(長嶺)보다 높아서 시계(視界)가 더욱 멀어 백두산과 장백산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하다고 하였다.
이날 밤에 보의 군사가 순찰을 제대로 돌지 않았는바, 평상시에 방비가 엄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에 김용(金鎔)을 시켜 적간(摘奸)하게 하였더니, 10여 명이 걸려들었다.

24일(병신) 맑음.
아침에 권관을 불러서 순찰을 하지 않은 죄를 따지고, 입직(入直)을 하지 않은 자를 잡아오도록 하였다. 동인보(同仁堡)에 도착하여 벌을 차등 있게 내렸다. 동인보는 운총보에서 40리쯤 되는 곳에 있다. 중간에 고개가 하나 있는데, 제법 높았다. 동인보에 도착하여 군기를 점고하니, 군기가 정돈되지 않았으므로 권관 이하를 벌하였다.
저녁에 갑산부(甲山府)에 들어갔다. 성지와 기계가 제법 웅장하여 강변에서는 첫째가는 고을이었다. 토병도 많아서 180여 명이나 되었다. - 4운시 3수를 지었다.

25일(정유) 맑음.
일찍 식사한 뒤에 새 대청에 좌기하여 점고하였다. 토병이 활을 제법 잘 쏘았는바, 평소에 훈련을 잘 쌓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저녁에 납의(衲衣)를 가지고 왔는데 200여 벌이나 되었다. 충군(充軍)과 전어(前御) 등이 여러 고을에 횡행해서 군사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말을 듣고는 몇 명을 잡아 가두었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26일(무술) 맑음.
새벽에 진동보(鎭東堡)로 갔다. 진동보는 갑산부에서 15리이다. 군기의 점고를 마치고 갑산부에 돌아와서 증미(蒸米)를 적간하였다. 동상(東廂)에 좌기하여 토병에게 군물(軍物)을 나누어 주었는데, 어제 날이 저물어서 미처 나누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27일(기해) 흐렸으며, 저녁에는 비가 왔다 눈이 왔다함.
새벽에 성을 출발하여 중덕령(中德嶺)을 넘었다. 낮에 운덕원(雲德院)에서 쉬었다. 천성천(天城遷)을 넘어서 어수동(魚水洞)으로 들어가 황토령(黃土嶺)에 올라 고개 위에 있는 원(院)에서 쉬었다. 고개에 오르니 산꼭대기가 평평하고 넓어서 거의 10여 리나 되었다. 사방 산이 모두 낮은데 고개만 홀로 높아서 쳐다보면 하늘만 보였으며, 굽어보아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마치 넓은 들 복판을 가는 듯하니, 고갯길이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개를 내려가서 황토동(黃土洞)에 도착하니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석벽이 층층이 보이고 겹겹이 나타났다. 시냇물 한 줄기가 산골짜기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별도의 한 동천(洞天)을 이루었다. 천등봉(天燈峯) 아래에 못이 있었는데,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이는 지난해에 큰 비가 한 달이 넘도록 내린 탓에 뒷산이 무너져서 하류를 가로질러 막았기 때문에 물이 괴어서 깊은 못으로 된 것이었다. 삼나무와 소나무가 물 속에 천 척이나 높이 솟아 있어서 마치 용이 그 속에 있으면서 수염과 갈기를 움직이는 듯하였다.
조금씩 내리는 눈을 무릅쓰고 황토기보(黃土岐堡)에 들어가니 단천 군수(端川郡守) 원호(元豪)와 권관 이언우(李彦瑀)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 4운시 2수를 지었다.

28일(경자) 맑음.
황토동을 출발하여 시내 굽이를 따라 가다가 옛 황토기(黃土岐)에 도착하였다. 한 벼랑을 지나고 긴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쌍청보(雙靑堡)에 들어갔다. 쌍청보는 황토동에서 30여 리인데, 산천의 모습이 기묘하여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구경할 만하였다. 보의 남쪽에 있는 길은 단천(端川)까지의 거리가 다섯 참이고, 보의 동쪽에 있는 길은 단천까지의 거리가 아홉 참이었다. 이날 이곳에서 묵었다. 권관 - 원문 3자 빠짐 - 키가 크고 활을 잘 쏘았으며, 방비도 견고하였다. 토병 중에 활을 당길 줄 아는 자도 50여 명이나 되었다. - 4운시 1수를 지었다.

29일(신축) 맑음.
새벽에 동문(東門)으로 나왔다. 강 흐름을 따라서 산골짜기 곁을 지나 두일기(杜日歧)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검의령(檢義嶺)에 오르니 고개 높이가 장령과 서로 엇비슷하였다. 동남쪽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에 닿았고, 서북쪽에는 오랑캐 땅 산이 가없이 펼쳐졌으며, 안변(安邊) 이북과 회령(會寧) 이남 지역이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고개 위에 돈대(墩臺)가 있었는데, 그 위에 오르니 긴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듯한 형세여서 심혼(心魂)이 떨려 잠시도 머무를 수가 없었다.
고개 동쪽으로 내려가니 하늘에서 줄을 내린 듯한데, 고갯길이 빙빙 돌아서 삼백 굽이나 되었다. 고개 아래에 도착하니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골짜기가 따로 한 동천(洞天)을 이루고 있었다. 백 가닥으로 쏟아지는 시냇물이 두 골짜기 사이로 우레처럼 흐르는데, 불암(佛巖)이 한복판에 있어 가장 기이하였다. 백 척이나 되는 검봉(劍峯)이 허공에 깎아지른 듯이 솟았고, 어파동(魚波洞)이 그 아래에 있었다. 양쪽 벼랑이 동서로 서로 마주해 있어서 한 동문(洞門)을 이루었는데, 큰 시냇물이 그 사이로 흘러나와서 도원(桃源)의 경계(境界)가 그 가운데 있는 듯하였다.
골짜기를 나와서 긴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간 다음, 북쪽으로 돌아 10여 리를 가 오을족보(吾乙足堡)에 들어가니, 만호 홍여하(洪汝河)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당초에는 단천(端川)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길을 매우 많이 돌아가게 되므로 길을 바꿔 길주(吉州)의 덕만동(德萬洞)으로 곧바로 가기로 하였다. 이날 저녁에 역(驛) 사람에게 먼저 관문(關文)을 가지고 길주로 가도록 하였다. - 4운시 2수와 절구 1수를 지었다.

30일(임인) 아침에는 흐리다가 오후에는 눈이 조금 내림.
이날 이곳에 머물렀다. 저녁 때 만호 이하에게 벌을 내렸다.

학봉일고 제3권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2) 9월

21일(갑자) 흐림.
아침에 대궐에서 하직 인사를 하였다. 상께서 봉서(封書) 한 통을 내렸는데, 함흥(咸興)과 길주(吉州)의 원곡(元穀)을 번고(反庫)하는 일이었다. 하사품은 이엄(耳掩) 1벌이었다. 동대문(東大門)을 나서서 여러 벗이 전송하는 자리에 차례대로 들렀다가 저녁나절에 누원(樓院)에 도착하였다. 도봉서원(道峯書院)에서 자려고 하다가 해가 아직 지지 않았으므로 말을 달려서 양주(楊州)에 도착하니, 밤 1경이었다. 경기 경차관(京畿敬差官) 정이주(鄭以周)가 먼저 고을에 들어와 있었으므로, 동상(東廂)에서 대작(對酌)하였다.

[주-D001] 번고(反庫) : 창고에 있는 물품을 뒤적거려 가면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22일(을축) 흐리다가 맑았다가 함.
아침에 서상(西廂)에 가서 정 경차관(鄭敬差官)을 만나서 대작하였다. 동상에 돌아와서 목사 이정암(李廷馣)을 만나보았다. 아침을 먹은 뒤에 비를 무릅쓰고 석문령(石門嶺)을 넘어 포천현(抱川縣)에 이르렀다. 날이 아직 저물진 않았으나 몸이 좋지 못하여 묵었다. 밤에 자다가 무료하여 율시(律詩) 3수와 절구(絶句) 2수를 지었다.

23일(병인) 맑음.
아침에 고을 사람인 참봉(參奉) 양득배(楊得培)를 만나보았다. 말을 달려서 영평(永平) 경계에 이르니, 가을 산의 경치가 눈에 번쩍 띄었는데, 굽이굽이 맑은 시냇물이 붉은 비단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중도에서 멀리 바라보니 고을 집들이 숲 사이에 숨었다 보였다 하여 인간 세상의 경계가 아닌 것 같았는바, 이 고을을 맡은 자는 참으로 이은(吏隱)이라 이를 만하였다. 문득 “산수 좋은 고을의 원으로 나가, 솔과 계수 숲속에서 글을 읽누나.[出宰山水縣讀書松桂林]”라는 시구를 외우니, 사람으로 하여금 창연히 감흥을 일으키게 하였다. 백운산(白雲山), 우두연(牛頭淵), 도연(稻淵), 백로주(白鷺洲)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고 들었으나, 갈 길이 총총하여 찾아볼 겨를이 없으니, 평생에 한이었다.
낮에 칠문역(漆文驛)에서 쉬는데 고을원인 조흔(趙昕)이 나와서 맞이하였다. 저녁에 풍전역(豐田驛)에 도착하여 역리(驛吏)의 집에 묵었다. 찰방(察訪) 신호인(申灝仁)이 처음 운반하는 납의(衲衣)를 가지고 북도(北道)로 갔다. 김화(金化)의 원 민여운(閔汝雲)이 나와서 두 번째 운반하는 납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납의가 22일에 비로소 서울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본현(本縣)으로 돌아와서 나의 일행을 영접하였다. 평구도(平丘道)의 마두(馬頭)가 돌아가기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주-D001] 이은(吏隱) : 이록(利祿)에 마음이 매이지 아니하여 비록 관직에 있기는 하지만 은자(隱者)와 같이 지낸다는 말이다.[주-D002] 납의(衲衣) : 겹으로 된 두툼한 옷으로, 북쪽 변경에서 수자리 사는 군졸들에게 겨울철에 지급하였던 옷을 말한다.[주-D003] 마두(馬頭) : 역마(驛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24일(정묘) 맑음.
도원 찰방(桃源察訪) 황숙(黃璹)이 두 번째 운반하는 납의를 가지고 풍전역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데 나물 반찬이 모두 얼어 있었다. 길을 떠나 가령(茄嶺)에 도착하니 북풍이 몹시 매서웠다. 곧바로 두꺼운 갖옷을 입었으나 그래도 추웠다. 관내(關內)에서도 이와 같이 추우니 관북(關北)의 추위는 어떻겠는가.
길을 떠나 김화현에 도착하여 시냇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뭇 산들이 높이 솟아 있는 사이로 한 시내가 흘렀으며, 남쪽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지역이 자못 넓어서 멀리서 바라보니 좋아보였다. 마을 이름이 사곡(沙谷)이라 하였으며, 주민이 무려 수십 집이었는데, 하나의 아름다운 구역이었다. 고을 터는 북쪽 산 밑에 있어서 매우 그윽하고 훌륭하였으나, 이 마을 터보다는 못하였다. 무인년(1578, 선조 11) 봄에 나의 벗인 도사(都事) 노전(盧㙉)이 북관(北關)에서 서울로 오다가 여기서 갑자기 죽었는바, 옛날에 함께 지내던 일을 생각하면서 애도하노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직목역(直木驛)을 지나 금성현(金城縣)에 들어가니 진벽(鎭壁)이 둘러 있어서 은은히 성첩(城堞)과 같았는바, 고을 이름을 금성이라고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었다. 한 가닥 물이 두 언덕으로 갈라진 곳을 백로주(白鷺洲)라고 불렀는데, 지나가는 길손들이 지은 시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관청은 황량하고 백성들도 가난하여 마치 야사(野寺)와 같았다. 이날 금성현의 관사에서 묵었다.

25일(무진) 맑음.
새벽에 출발하여 창도역(昌道驛)에서 잠시 쉬었다. 가정(嘉靖) 갑인년(1554, 명종 9) 겨울에 내가 백씨(伯氏)를 따라 홍원(洪原)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다음해 을묘년 겨울에 백씨가 파직되어 돌아왔는데, 이 역에 이르러 백씨는 서울로 가고, 나는 계순(季純)과 함께 영남으로 갔다. 작별하는 즈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어느새 벌써 20여 년이나 지났다. 지금 이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기에 절구 한 수를 읊조려서 나의 뜻을 표현하였다.
길을 가서 보리진(菩提津)에 도착하였다. 이 나루는 김화(金化)와 회양(淮陽)의 경계에 있는데, 양쪽 언덕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천층이었고, 긴 강 한 줄기가 산골짜기 복판을 가로질러 흘렀다. 길 가는 사람들은 벼랑을 따라 내려가서 배로 강을 건넌 다음 또다시 벼랑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바, 참으로 천험(天險)이었다.
낮에 신안역(新安驛)에 도착하였다. 앞을 보니 팔뚝에 매를 앉힌 어떤 사람이 의롱(衣籠)을 싣고서 가고 있었다. 이것은 북도(北道)의 사행(私行)이라고 생각되어 그 종을 불러 누구인가를 물어보았더니, 종이 황급해하면서 말하기를, “상전은 영흥 부사(永興府使)의 자제이며, 은계 찰방(銀溪察訪)이 말을 주어서 싣고 가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미 비리가 드러났으므로 그냥 두고 가기가 곤란하여 사행을 잡아 회양부에 가두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정윤희(丁允禧) 영공(令公)의 아들 정호덕(丁好德)이었다.
저녁에 회양부에 도착하였다. 밤에 고을원 윤경수(尹景修)를 만나서 잔뜩 취하도록 대작하였다.

26일(기사) 맑음.
어제 마신 술이 깨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묵었다.

27일(경오)
맑고 바람이 붊.
아침에 고을원을 만나보았다. 은계 찰방 신호인(申灝仁)이 북도에서 돌아왔으므로, 관아 뜰에서 역마(驛馬)를 사사로이 출급(出給)한 사유를 따져 물어 자백을 받아냈다.
일찍 덕명진(德溟津)을 건넜다. 오래된 사당(祠堂)이 강 언덕에 있었는데 강신(江神)을 제사하는 사당이었다. 세속에 전해 오기를, 오랑캐 기병(騎兵)들이 강을 막 건너려고 하는 참에 한 중이 먼저 건넜는데, 물이 무릎에도 차지 않자, 오랑캐 기병들이 물이 얕은 줄 알고 앞다투어 건너다가 모두 빠져 죽었으므로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철령(鐵嶺)에 올랐다. 철령은 회양과의 거리가 42리인데, 지세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도 길이 매우 으슥하고 험난하였다. 서쪽에 한 줄기 시냇물이 우렛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빽빽하게 자란 나무가 하늘에 치솟았다. 고갯마루 위에 이르니 고개 아래에는 부야(富野)가 아득하게 펼쳐졌으며, 100리 안의 산천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지세는 관동(關東) 쪽은 매우 높고 관북(關北) 쪽은 매우 낮았다. 그러므로 회양에서 고개를 오를 때에는 길이 고개를 빙빙 두르면서 차츰 높아졌으므로 높은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런데 고갯마루에서 고산역(高山驛)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늘에서 곧바로 내려가는 듯하였으며, 길이 산허리를 따라서 무려 수십 굽이나 꼬불거렸다.
안변 부사(安邊府使) 양사언(楊士彦)과 겸찰방(兼察訪)인 문천 군수(文川郡守)가 고갯마루 위에 와서 맞이하였다. 고산역에 도착하여 유숙하면서 도내에 선문(先文)을 내었다. 안변 부사는 먼저 부(府)로 돌아가서 기다렸다.

[주-D001] 선문(先文) : 중앙 관서의 관원이 지방으로 출장갈 적에 도착할 날짜를 미리 그 지방에 통지하는 것을 말한다.

28일(신미) 맑음.
아침에 고산역을 출발하여 크고 작은 시냇물을 지났다. 부야(富野)를 지난 다음 남산원(南山院)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석왕사(釋王寺)가 북쪽으로 15리쯤 되는 곳에 있는 설봉산(雪峯山) 아래에 있었다. 뭇 산봉우리가 북쪽을 빙 둘렀고 남쪽으로는 큰 들을 임했는데, 철령의 남쪽 산 여러 봉우리가 수십 리 밖에 우뚝 솟았는바, 참으로 장관이었다. 오후에 안변에 도착하여, 대문(大門)에 좌기(坐起)하여 점고(點考)하였다. 이날은 여기에서 묵었다.

29일(임신) 맑음.
아침에 성지(城池)와 기계(器械)를 순심(巡審)하였다. 동문(東門)으로 나가서 성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북산(北山)에 올랐는데, 북산은 이 안변부의 진산(鎭山)이다. 서쪽으로는 큰 시냇물이 둘러 있고, 북쪽에는 큰 바다와 큰 들판이 임해 있어서 바라보아도 끝이 없었으며, 바다 복판에는 여러 섬들이 푸른 물결 속에 들쑥날쑥하여 온갖 형태를 드러내 보였다. 두루 둘러본 다음 산에서 내려와 북문(北門)으로 들어왔다. 다시 대문에 좌기하여 제색(諸色) 군사들의 활쏘기를 시험하였는데, 군사들이 모두 활쏘기에 능하였는바, 부지런히 연습시켰음을 알 수가 있었다. 활쏘기를 마치고 상을 주었으며, 술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이날 유지(有旨)를 전하는 서장(書狀) 및 비변사(備邊司)의 관문(關文)을 받았는데, 병영(兵營)의 군기(軍器)를 점고하라는 등의 일이었다. 사목(事目) 안에 병영에 대해서는 적간(摘奸)하라는 지시가 없었으므로 하직하던 날 계품(啓稟)한즉, 비변사에서 의계(議啓)하여 회유(回諭)하도록 하명하였기 때문에 서장이 뒤늦게 온 것이다. 곧바로 유지를 전하는 서장을 받은 데 대한 서장과 정호덕(丁好德)이 외람되게 역마(驛馬)를 탄 데 대한 서장을 올렸다. 날이 저물어서 유숙하였다.

학봉일고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6월

학봉일고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4월

1일(정축) 맑음. ○ 집에 있었다. 계순이 청기(靑杞)에서 돌아왔다. 영덕(盈德)에 사는 김인서(金麟瑞)가 술을 가지고 찾아와서 함께 유숙하였다. 밀양(密陽)의 행차가 내앞[川前]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2일(무인) 맑음. ○ 계순이 아침에 내앞으로 내려갔다. 김 우후(金虞候)가 아침을 먹은 뒤에 돌아갔다. 신 습독(申習讀), 박언필(朴彦弼)이 찾아왔다. 어제 오천(烏川)에 사는 금협지(琴夾之 금응협(琴應夾)) 형제가 편지를 보내 중도에서 만나보기를 약속하였는데, 객이 있어서 일찍 가지 못하고 늦게야 출발하였다. 두 사람은 새벽에 수다사(水多寺)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묵은 회포를 풀고 돌아왔다. 벌현(伐峴)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고 비가 왔다. 집에 이르니 밤 2경이었다.

3일(기묘) 비가 내림. ○ 집에 있었다.

4일(경진) 맑음. ○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백운정(白雲亭)에 가서 백씨(伯氏)와 계순을 만나보았다.

5일(신사) 맑음. ○ 외할아버님의 기제(忌祭)를 지내는데 민추(閔樞) 형이 와서 참사(參祀)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보은 현감(報恩縣監) 이유(李兪)가 찾아왔다.

6일(임오) 맑음. ○ 새벽에 길을 떠날 참인데 성주(城主)가 찾아온다는 소식이 있으므로 출발을 멈추었다. 밥을 먹은 뒤에 성주가 와서 간단한 술자리를 마련했다가 파하였다. 계순과 함께 저녁에 읍내에 있는 유종례(柳宗禮)의 집에서 묵었다.

7일(계미) 맑음. ○ 아침에 자부(子婦)를 보았다. 송암(松巖)을 지나다가 권장중(權章仲 권호문(權好文))을 만나보았다. 청송 부사(靑松府使)를 산소에서 조상(弔喪)하였다. 수동(水洞)에 도착하니 권진손(權震孫), 권창서(權昌緖)가 술을 가지고 와서 전송하였다. 풍산현(豐山縣)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정자(正字) 이공(李珙)을 찾아가 조문(弔問)하고, 진사(進士) 이숙인(李淑仁)에게 배례(拜禮)하였다. 밤에 여천(呂川)의 집승정(集勝亭)에 다다르니, 고을원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작은 술자리가 벌어졌다. 서매(庶妹)의 집에 들어가서 묵었다.

8일(갑신) 맑음. ○ 용궁(龍宮)에서 점심을 먹었다. 견탄(犬灘) 가에서 잠시 쉬었는데, 큰 비가 갑자기 와서 일행이 모두 흠뻑 젖었다. 날이 저물어서 문경(聞慶)에서 묵었다.

9일(을유) 비가 내림. ○ 비를 무릅쓰고 새재[鳥嶺]를 넘었다. 김형윤(金亨胤) 척사(戚史) 및 홍원해(洪元海)를 만났다. 낮에 안보역(安保驛)에서 쉬었다. 저녁에 중원(中原)에 도착하여 목사(牧使)의 관아에 들어갔다. 유사영(兪思永 유대수(兪大脩))과 더불어서 밤에 이야기하다가 객관(客館)에 나와서 묵었다. 이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10일(병술) 맑음. ○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닻줄을 풀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원주(原州)의 허흥점(虛興岾)에 도착하였다. 횡성(橫城)의 원 고흥운(高興雲)이 막 봉세차원(捧稅差員)이 되어서 창(倉)에 도착하였으므로 강가의 집에서 함께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별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얼마 뒤에 청심루(淸心樓) 아래에 도착하니 목사 박중보(朴重甫) 영공(令公)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술에 취해서 인사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한 번 읍한 다음에 바로 일어났다. 두모포(豆毛浦)에 정박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갯가의 인가에 가서 묵었다.

11일(정해) 맑음. ○ 성 안으로 들어왔다.

12일(무자) 맑음.

학봉일고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3월

1일(정미) 맑음. ○ 물에 막혀서 어머님의 산소에 올라가지 못하고 사당에서 제사 지냈으며, 동림(東林) 제사도 그렇게 하였다. 생원 형님과 전적 아우는 물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2일(무신) 맑음. ○ 아침에 예안(禮安) 아저씨와 안동(安東) 아저씨의 상차(喪次)에 가서 곡하였다. 영양(英陽) 아저씨 댁에 찾아가서 배례(拜禮)하고, 곧바로 내성(柰城)의 누이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 영양 아저씨와 김 직장(金直長), 김득일(金得一), 유란(柳瀾)과 함께 술을 조금 마셨다. 날이 저물어서 묵었다.

3일(기유) 비가 내림. ○ 아침에 남계권(南繼權)과 남희권(南希權)이 술병을 차고 찾아왔다. 낮에 납실[猿谷]로 돌아오다가 무실[水谷]에 있는 유씨(柳氏) 생질의 집에 들렀다.

4일(경술) 맑음. ○ 의원(醫院)의 약간(藥干)인 수원(守元)이 와서 약을 지었다. 영해(寧海)에 사는 만호(萬戶) 박효장(朴孝長)이 서울에서 찾아왔다. 파방(罷榜)에 대해 정계(停啓)하였다는 기별을 들었다.

5일(신해) 맑음. ○ 납실에 있었다.

6일(임자) 맑음. ○ 납실에 있었다. 우여경(禹餘慶) 삼형제가 술을 가지고 왔다. 좌수(座首)인 신씨(申氏) 두 아저씨가 찾아왔다.

7일(계축) 맑음. ○ 납실에 있었다.

8일(갑인) 맑음. ○ 납실에 있었다. 박연종(朴延宗) 등 네 사람과 윤흥문(尹興門) 등 두 사람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다.

9일(을묘) 맑음

10일(병진) 맑음. ○ 신 만호(申萬戶)와 권덕조(權德操)가 찾아왔다. 민추(閔樞) 형과 참봉 김돈서(金惇敍 김부륜(金富倫))가 뒤따라왔다. 민추 형은 묵었다.

11일(정사) 맑음. ○ 민추 형이 돌아갔다. 이응(李應)이 찾아왔다. 이간(李侃)이 뒤따라왔다가 먼저 돌아갔다. 이응이 가져온 술을 마셨다.

12일(무오) 맑음. ○ 진보(眞寶)에 사는 안정(安鼎)이 찾아왔다. 남이관(南以寬)이 왔다. 안정이 가져온 술을 마셨다.

13일(기미) 맑음.

14일(경신) 맑음.

15일(신유) 아침에는 맑다가 저녁에는 흐렸으며 밤에는 비가 내림.

16일(임술) 아침에는 흐렸다가 낮에는 맑음. ○ 안동(安東)의 유향소(留鄕所)에서 세 사람이 찾아왔다.

[주-D001] 유향소(留鄕所) : 고을의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의 성격을 지닌 곳인데, 수령의 다음가는 관청이라 하여 이아(貳衙)라고도 한다.

17일(계해) 맑음. ○ 청기에 들어가서 아버님을 뵈었다.

18일(갑자) 맑음. ○ 청기에 머물렀다. 김돈서(金惇敍), 구여응(具汝膺)이 영해(寧海)에서 왔다. 밤에 아버님을 모시고서 술을 마셨다.

19일(을축) 비가 내림. ○ 청기에 머물렀다. 김돈서가 가지고 온 영해의 술을 종일토록 마셨다. 두 객이 당초에는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비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물도록 술을 마셨다. 아버님이 또 객을 맞이하였으므로 밤에 술을 수도 없이 많이 마셨다. 제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술을 마시다가 닭이 울 때쯤 되어서야 술자리를 마쳤다.

20일(병인) 맑음.○ 두 객이 새벽에 일어나서 갈 참에 작별 술 대여섯 순배를 돌리고 마쳤다.

21일(정묘) 맑음. ○ 조카 김륜(金淪)과 함께 나무 연기를 쐬어서 병을 치료하였다. 민근효(閔根孝)가 말을 몰고 왔다. 아버님께서 학질(瘧疾)을 앓기 시작하셨다.

22일(무진) 맑음. ○ 나무 연기를 쐬었다. 말을 샀다. 민근효가 돌아갔다. 계순(季純)이 왔다.

[주-D001] 계순(季純) : 김성일의 동생인 김복일(金復一)의 자이다.

23일(기사) 맑음. ○ 아버님이 학질을 앓았다. 저녁에 계순과 함께 화굴(火窟)에 들어가서 병을 치료하였다.

24일(경오) 아침에는 비가 내리다가 낮에는 갬. ○ 화굴에 들어갔다. 정진(鄭溍)이 찾아왔다. 계순이 학질에 걸렸다.

25일(신미) 맑음. ○ 아버님의 학질이 심해졌으나 결핵 때문에 화굴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계순과 조카 윤은 그대로 들어갔다.

26일(임신) 비가 내림. ○ 계순이 학질을 앓았다. 좌수(座首) 신씨(申氏) 아저씨가 왔다.

27일(계유) 맑음. ○ 벽동(碧潼) 할아버님의 기제(忌祭)를 지냈다. 좌수 신씨 아저씨가 묵었다.

28일(갑술) 맑음. ○ 납실로 돌아왔다. 신씨 아저씨와 함께 진성(眞城)에 있는 만호(萬戶) 아저씨를 찾아뵈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박연종(朴延宗)의 집에 들렀다가 날이 저물어서 집에 돌아왔다.

29일(을해) 맑음. ○ 집에 있었다.

30일(병자) 맑음. ○ 집에 있었다. 이조(吏曹)의 구사(丘史)가 왔다.

[주-D001] 구사(丘史) : 각 관아에 딸린 노비를 말한다.

학봉일고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2월

1일(정축) 아침에는 흐렸다가 낮에는 맑음.

2일(무인) 맑음. ○ 이조 정랑 홍진(洪進)이 찾아왔다.

3일(기묘) 맑음. ○ 재종(再從) 누이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시정(寺正) 이언유(李彦愉), 시정 노준(盧埈), 학관(學官) 허사흠(許思欽), 좌랑 김제현(金齊賢), 직장(直長) 유영건(柳永健), 참군(參軍) 이운기(李雲起), 첨정(僉正) 이준(李寯), 지평(持平) 권수(權燧), 지평 김찬(金瓚)이 찾아왔다.

4일(경진) 맑음. ○ 이날 근친(覲親)하기 위하여 정사(呈辭)하였다.
양사(兩司)가 모두 사직하여 체직(遞職)되었다. 이보다 앞서 대간(臺諫)이 지난날에 효릉(孝陵)의 역사(役事)를 감독한 사람들의 관작(官爵)을 삭탈하기를 청하였다가, 몇 달이 지난 뒤에 간원(諫院)에서 먼저 정계(停啓 논계(論啓)하던 것을 중지함)하였는데, 그 뒤에 물의(物議)가 속히 정계한 것을 그르게 여겼다. 그러자 옥당(玉堂)에서 차자(箚子)를 올려 임금이 간언(諫言)을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하나하나 논하였는데, 지난날의 효릉에 관한 일도 그 가운데 들어 있었다.
간원에서 정계한 뒤에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은 그 뜻이 실상은 언관을 배척한 것이다. 그런데 정언(正言) 이경중(李敬中)의 무리들은 저희들의 의견을 스스로 옳다고 여겨 피혐(避嫌)하지 않았다. 이때에 와서 헌부(憲府)에서 또 정계하였다. 옥당이 2일에 모두 모여 장차 차자를 올려 이 일을 논하려고 하였으나, 논의가 일치되지 않아 그만두었는데, 이는 역시 양사로 하여금 스스로 처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3일에 인혐(引嫌)하여 체직을 청한 것이다.
○ 길을 떠나서 봉원(逢原)의 집에 들렀는데, 수원 현감(水原縣監) 우성전(禹性傳), 사인(舍人) 허봉(許篈), 사예(司藝) 한준(韓準), 정언 이경중(李敬中), 정랑 이양중(李養中), 첨정 이준(李寯), 참봉 김부륜(金富倫), 참봉 최담령(崔聃岭)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좨주(祭酒) 이산해(李山海)를 불러와서 만나 이야기하였다.
얼마 뒤에 수구문(水口門)을 나서니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다. 첨정 이준, 좌랑 김집(金緝), 직장(直長) 이영(李寗), 찰방 김요선(金堯選), 진사 이척(李惕), 참봉 권응시(權應時)가 남교(南郊)의 소나무 아래까지 따라와서 전별(餞別)하였다. 어두울 무렵에 권 참봉과 함께 한강 가로 향하였다. 김 참봉이 전생서(典牲署) 직소(直所)로 가다가 늦게 와서 갈림길에서 자리를 펴고 작별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결국 정좌(鼎坐)하고서 잠시 동안 막걸리를 마신 다음 자리를 파하였다. 권 참봉과 함께 묵었다.

[주-D001] 효릉(孝陵) : 인종(仁宗)의 능이다. 인종을 장사 지낼 적에 인종이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을 장사 지내는 예를 써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엉성하게 한 일이 많았으므로, 선조 11년에 개수(改修)하기를 명하고 그 당시 역사(役事)에 참여하였던 자들을 죄주자는 의논이 일어났다.[주-D002] 봉원(逢原) : 퇴계의 손자인 이안도(李安道)의 자(字)이다.

5일(신사) 맑음. ○ 새벽에 일어나서 술을 가지고 오라고 하여 이별의 회포를 풀고, 함께 배를 타고서 한강을 건넜다. 모래 언덕에 도착하여 바야흐로 헤어질 때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이 여기에 와서는 더욱 슬퍼졌다. 길에서 죽산 현감(竹山縣監) 김취려(金就礪)를 만났다. 낙생역(洛生驛)에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저녁에 용인(龍仁)에서 묵었다. 관사(館舍)가 정돈되어 있는 것이 전과 같지 않았는데, 바로 새로 도임(到任)한 원 남궁지(南宮芷)가 중수(重修)한 것이었다.
이 고을에 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음애(陰崖) 이자(李耔)의 무덤이 있다. 유선(儒先)의 체백(體魄)이 한 경내에 함께 봉안(奉安)되었으니,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흥을 일으키겠는가. 그러나 그 자손들이 미약하여 묘역(墓域)에서 나무하고 꼴베는 것을 능히 금단하지 못하였으므로, 식자들이 슬퍼하였다. 이에 수원 현감 우성전(禹性傳), 죽산 현감 김취려 및 본 고을의 원이 경기 감사(京畿監司) 윤근수(尹根壽)에게 보고하여 오천의 무덤 아래쪽에 서원을 짓고 세 현인을 묘사(廟祀)하고자 하니, 윤근수도 좋다고 하여 일머리가 잡힐 참이었다. 그런데 윤근수가 체직되어 갔다. 새 감사 남응운(南應雲)이 도임하자 다시 이런 뜻을 보고하였으나, 남응운은 평소에 서원 세우는 것을 그르게 여기는 자여서 “서원이 뭣하는 곳이냐?” 하면서, 전혀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아 도로 폐지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극히 탄식스럽다.

[주-D001] 음애(陰崖) : 원문에는 ‘음애(陰厓)’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6일(임오) 맑음. ○ 새벽에 용인을 출발하였다. 금령(金嶺)에 도착하여 금오랑(金吾郞) 윤유심(尹唯深)을 만났는데, 바로 밀양(密陽)에서 상전을 죽인 죄인을 잡아오는 길이었다. 양지(陽智)의 초정(草亭)에서 아침을 먹고, 고을원을 맞이하여 보았다. 노구원(路口院)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죽산(竹山)에서 묵었다. 관사가 용인보다 더 잘 정돈되어 있었다. 두 고을원은 경기 고을의 어진 관리였다. 그 고을의 경계에 들어서면 그 사람의 정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 역시 그 가운데 한 가지이다.

7일(계미) 맑음. ○ 아침에 죽산을 출발하였다. 무극역(無極驛)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낮에는 용안역(用安驛)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덕면(德面)의 이원양(李元揚)을 맞이하여 만나보니, 괴산 군수(槐山郡守) 정순적(鄭順績)이 중원(中原)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말을 달려 고을에 도착하니, 밤 1경(更)이었다. 충주 목사(忠州牧使) 유영(兪詠) 및 괴산 군수와 함께 정좌(鼎坐)하여 묵은 회포를 풀었다. 반자(半刺) 이공눌(李公訥)과 교관(校官) 김윤국(金潤國)이 와서 본 다음 곧바로 물러갔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누워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은 술자리를 벌이고, 아침을 먹은 뒤에 안보역(安保驛)으로 향하였다. 괴산(槐山) 원은 그의 고을로 돌아갔다. 이날은 안보역에서 묵었다. 괴산 원이 관아의 말을 보내 주어서 새재[鳥嶺]를 넘었다.

[주-D001] 반자(半刺) : 각 고을의 수령에게 예속되어 있는 서리(書吏)를 말한다.[주-D002] 아침에 …… 넘었다 : 이 부분의 기사는 날짜에 착오가 있는 듯한데, 상고할 수 없기에 우선은 그대로 번역하였다.

8일(갑신) 흐리고 비가 내림. ○ 고갯길이 몹시 힘들었다. 비를 맞으면서 용추(龍湫)의 새 원(院)에 도착하니, 문경(聞慶)의 원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앉아서 술을 두어 잔 마시고 자리를 파하였다. 눈이 처음 녹아서 흘러내려 용추 폭포가 몹시 웅장하였는데, 맑은 날에 우렛소리를 내면서 좌석을 흔드니, 역시 하나의 기이한 구경거리였다. 이날 문경을 지나가려고 하다가 비 때문에 그대로 묵었다. 응천 현감(凝川縣監) 손영제(孫英濟)가 재령 군수(載寧郡守)가 되어 상경하는 길이었다. 밤에 동헌(東軒) 방에서 함께 이야기하였다.

9일(을유) 맑음. ○ 괴산의 원이 보내온 말을 돌려보내고, 문경 고을 사람인 정위(鄭偉)의 말을 빌려 탔다. 견탄(犬灘)에서 점심을 먹고는 정위의 말도 돌려보냈다. 물이 불어났고 돌다리도 없으므로 회계천(會稽遷)으로 돌아서 저녁에 용궁(龍宮)에 도착하였다. 여천(呂泉) 사람인 안혼(安渾), 고을 사람인 강영(姜霙), 훈도(訓導) 신엄(申儼)이 찾아왔다. 안혼과 강영이 동상(東廂)에서 함께 묵었다. 밤중에 강영에게서 우담(禹湛)의 옥사(獄事)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담은 토호(土豪)가 아닌데도 고을원에게 노여움을 산 탓에 고을원이 큰 죄로 얽어 넣었다. 이에 온 고을의 품관(品官)들이 모두 그의 원통함에 대해 말하였으나, 고을원이 끝내 듣지 않았다. 그를 얽어 넣은 것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다.” 하였다.

10일(병술) 맑음. ○ 아침을 먹은 뒤에 고을원을 만나보았다. 사잇길로 빨리 가 양양(襄陽)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풍산(豐山)으로 향하였다. 노개리(蘆介里)의 시냇가에서 잠시 쉬었는데, 양양의 원은 병 때문에 나오지 않고, 부장(部將) 김원윤(金元胤), 훈도(訓導) 안잠(安潛)이 찾아왔다. 풍산에서 점심을 먹었다. 유이현(柳而見)이 능곡(陵谷)의 선영(先塋)에서 돌아오던 길이어서 고을의 관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고을 사람 권적(權適), 이홍인(李洪仁), 권식(權識) 등이 찾아왔는데, 밀양(密陽)의 원으로 있는 형님이 이미 관아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다. 조금 있으니 사제(舍弟)인 전적(典籍)이 와서 아버님의 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어두울 무렵에 주촌(周村)에 있는 누이동생을 현내(縣內)에 가서 찾아보고, 현의 관사에 들어가서 묵었다. 새벽에 안기 찰방(安奇察訪) 조안도(趙安道)가 찾아왔다. 아침에 이희옹(李希雍), 권응생(權應生)과 아객(衙客) 김귀수(金龜壽)가 찾아왔다.

[주-D001] 사제(舍弟)인 전적(典籍) : 김성일의 동생인 김복일(金復一)을 가리킨다.[주-D002] 아객(衙客) : 지방 고을의 수령을 찾아와서 관아에 묵고 있는 손을 말한다.

11일(정해) 맑음. ○ 추월촌(秋月村) 형님 댁에서 아침을 먹고 비리실[飛鯉谷]의 아저씨 무덤에 가서 곡하였다. 내앞리[川前里]에 도착하니 역질(疫疾)이 한창이었므로 사당에 참배하지 못하고, 호은정(壺隱亭) 상차(喪次)를 찾아가서 곡하였다. 영양(英陽)의 아저씨와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다. 백현룡(白見龍)이 상경하면서 안동(安東)에 왔다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와서 나를 만나보았는데, 이는 파방(罷榜)에 관한 기별을 듣고자 해서였다. 저녁에 내성(奈城)에 있는 누이의 집에서 묵었다. 백현룡은 누이네 종의 집에서 자고 새벽에 돌아갔다.

[주-D001] 파방(罷榜) :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12일(무자) 맑음. ○ 생원(生員) 형님이 여강서원(廬江書院)에서 왔다. 남계권(南繼權)이 술병을 차고 찾아왔다. 날이 저물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묵었다.

13일(기축) 맑음. ○ 밥을 먹은 뒤에 영덕(盈德)의 원인 강제(姜霽)를 찾아보았다. 술을 조금 마시고 자리를 파하였다. 이날 납실[猿谷]로 돌아왔는데, 밤에 병이 났다.

14일(경인) 맑음. ○ 병 때문에 청기(靑杞)에 들어가서 아버님을 뵙지 못하였다.

15일(신묘) 맑음. ○ 병 때문에 집에 머물러 있었다.

16일(임진) 맑음. ○ 병 때문에 집에 머물러 있었다.

17일(계사) 맑음. ○ 청기에 들어가서 아버님을 모시고서 술을 마셨다.

18일(갑오) 맑음. ○ 청기에서 머물렀다. 아침에 아버님을 모시고서 술을 마셨다.

19일(을미) 맑음. ○ 박회(朴會), 권함(權諴), 조광인(趙光仁), 오익수(吳益壽), 오민수(吳敏壽) 등이 찾아왔다. 종일토록 아버님을 모시고서 술을 마셨다.

20일(병신) 맑음. ○ 청기에 머물렀다.

21일(정유) 맑음. ○ 청기에 머물렀다. 병을 치료할 요량으로 화굴(火窟)을 만들었다.

22일(무술) 비가 내림. ○ 청기에 머물렀다. 비 때문에 화굴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23일(기해) 맑음. ○ 청기에 머물렀다. 화굴에 들어갔다. 저녁에 인의(引儀) 이정회(李庭檜)가 왔다.

24일(경자) 맑음. ○ 청기에 머물렀다. 서울 장사치에게서 말을 샀다. 밀양(密陽) 사람이 형님의 편지와 감사(監司)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화굴에 들어갔다. 이 인의가 머물렀다. 샀던 말을 도로 물렸다.

25일(신축) 맑음. ○ 이 인의가 돌아갔다. 권영길(權永吉)이 왔다. 안기(安奇) 사람이 방백(方伯)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26일(임인) 맑음.

27일(계묘) 맑음. ○ 납실로 돌아왔다. 길에서 신중호(申仲浩)를 만났다. 막산(莫山)의 집에서 조금 쉬다가 동산(東山)의 갈림길에서 또 자리를 펴고 작별하였다. 저녁에 금봉서(琴鳳瑞)를 찾아보았다. 집에 도착하여 서울에서 온 기별을 보니, 5일의 정사에서 이식(李拭)을 발탁하여 대사헌(大司憲)으로 삼았고, 이기(李墍)를 대사간(大司諫)으로, 송응개(宋應漑)를 사간(司諫)으로, 정사위(鄭士偉)를 집의(執義)로, 정희적(鄭煕績)을 장령(掌令)으로, 홍혼(洪渾)을 장령으로, 성혼(成渾)을 지평(持平)으로, 김우옹(金宇顒)을 헌납(獻納)으로, 유몽학(柳夢鶴)을 지평으로, 이산해(李山海)를 도승지(都承旨)로, 조원(趙瑗)을 괴산 군수(槐山郡守)로 삼았다는 내용이었다.

28일(갑진) 맑음. ○ 훈도(訓導) 신언(申漹)이 찾아왔다.

29일(을사) 비가 내림.

30일(병오) 비가 내림. ○ 내앞[川前]에 내려갔다. 내일 한식제(寒食祭)를 지내기 때문이다.

학봉일고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1월

1일(정미) 맑음. ○ 푸른 무지개가 해를 에워쌌음.

2일(무신) 맑음

15일(신유) 월식(月食)이 있었음.

19일(을축) 맑음. ○ 정사(政事)가 있었다. 판서 김귀영(金貴榮), 참판 박대립(朴大立), 참의 목첨(睦詹), 좌랑 김응남(金應南)ㆍ백유양(白惟讓)은 참여하였고, 정랑 홍진(洪進)과 나는 병 때문에 불참하였다. 이날 겸춘추(兼春秋)로 하비(下批)되었다.

20일(병인) 맑음. ○ 응교 유성룡(柳成龍)이 찾아왔다. 저녁에 장령 권수(權燧)를 가서 만나보았다.

21일(정묘) 맑음.
○ 겸춘추로 하비된 데 대해 사은(謝恩)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이 근친(覲親)하러 가기 위해 정사(呈辭)하고자 하여 함께 보루문(報漏門)에 앉아 있었다. 이날 조강(朝講)이 있었다. 조강을 마치고 부응교 이발(李潑), 부수찬 성낙(成洛)이 왔다. 잠시 뒤에 부제학 허엽(許曄), 교리 이순인(李純仁), 수찬 이원익(李元翼), 이조 좌랑 백유양(白惟讓), 병조 좌랑 홍적(洪迪)이 모두 모였다. 대개 옥당(玉堂)은 책을 교정하기 위해서 - 원문 2자 빠짐 -, 이조와 병조는 정사(政事)가 있었기 때문에 예궐(詣闕)했다가 이현(而見 유성룡)이 영남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부제학 허엽이, 이조의 낭관이 완의(完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힘껏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낭청(郞廳)이 완의하는 것은 옛 규례가 아니고 바로 말세(末世)의 나쁜 풍습이다. 주의(注擬)하는 즈음에 당상(堂上)이 전권(銓權)을 주장하여, 그 사람의 재주와 기국에 맞추어서 진퇴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낭관은 가부(可否)만 논하여 당상이 미치지 못한 점을 도우면 그만이다. 어찌 별도로 완의한단 말인가. 내가 일찍이 참의로 있을 적에 보니, 당상이 아무개를 주의하려 하면, 낭관이 말하기를, ‘낭관끼리 완의가 없으니 안 됩니다.’ 하고는, 반드시 붓을 던지면서 나가 버렸으며, 그들끼리 사사로이 완정(完定)한 다음에야 주의하였다. 이것이 무슨 정사하는 체모인가. 지난해에 홍담(洪曇)이 판서로 있었고, 정철(鄭澈)이 낭관으로 있었는데, 홍공(洪公)이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여 낭관의 말을 쓰지 않았고, 낭관도 당상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상하간에 어긋나서 서로 화합하지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홍공이 병을 구실로 삼아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사류(士類)가 이로 인해 홍공이 선인(善人)을 질시한다고 지목하여 종신토록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그때 사류였던 자가 어찌 홍공의 발 뒤꿈치인들 따라갈 수 있겠는가. 지금 나의 말은 실로 범범히 하는 말이 아니다. 낭관이 만약 완의하는 폐단을 고치지 않을 경우에는 옥당에서도 차자(箚子)를 올려 논해야 한다.” 하였다.
○ 대개 이 당시에 전권(銓權)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당상관(堂上官)과 백집사(百執事)는 당상이 주관하고, 대간(臺諫)과 시종신(侍從臣)은 낭관이 전담하였다. 그러므로 삼사(三司)를 주의할 즈음에는 당상은 가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저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당상이 주의한 것에 대해서는 낭관이 오히려 그 잘잘못을 따졌다. 이로 말미암아서 판서의 권한이 도리어 가벼워지고 낭관의 권한이 중해졌는데, 쌓인 습관이 이미 굳어져서 갑자기 개혁하기가 어려웠다. 식자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떻게 고치지도 못하였다.
○ 옥당에서 차자를 올려 당시의 폐정(弊政)을 논하려 하였으나, 논의가 일치하지 않아서 중지하였다. 삼윤(三尹)이 실각하자, 뜻을 얻지 못한 자들이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하는 말을 주창하여 시비를 현란시키고 인심을 동요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임금의 마음에도 의혹이 없지 않았고, 기회주의자들이 양쪽 사이에서 엿보다가 이익을 취하려는 형세가 되었다. 유성룡(柳成龍)이 말하기를, “국시(國是)가 확정되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다. 국시를 정하는 것은 마땅히 임금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임금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서는 국시가 능히 정해지는 이치는 없다.” 하고, 이에 차자를 올려서 극론(極論)하려고 하였는데, 부제학 허엽이 화기(禍機)를 촉발시키게 될까 염려하여 중지시키고는, 또 말하기를, “동인으로서 이것을 말한다면 누가 공정한 말이라고 하겠는가.” 하였으며, 부응교 이발(李潑)도 안 된다고 하여 결국 차자를 올리지 않았다.
○ 박순(朴淳)을 영의정으로 삼았다.
박순은 명종조(明宗朝) 때 홍문관 응교로 있을 적에 임백령(林百齡)의 시호(諡號)를 의논한 데에 연좌되어 장차 예측할 수 없는 죄에 빠지게 되었는데, 심의겸(沈義謙)의 은밀한 구제에 힘입어서 한산(韓山) 수령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심의겸에게 큰 덕을 입은 것으로 여겨 마침내 심복이 되었다. 윤원형(尹元衡)이 패하자 비로소 권세를 잡았고, 심의겸이 이량(李樑)을 공격할 때 박순도 참여하여 큰힘을 보탰다. 권간(權奸)을 제거하고 난 뒤에는 심의겸이 홀로 국정을 담당했고, 당시에 사류(士類)라고 불리던 자들이 모두 마음을 다해 추종하여, 하늘과 땅을 되돌린 공이 있다고 하였다. 심의겸의 권세가 이미 중해지자, 박순의 명망도 중해져서 두어 해가 못 되는 사이에 드디어 정승 자리에 올랐다. 금상(今上) 초년에 심의겸이 안으로는 수렴청정(垂簾聽政)하는 권세에 의지하고, 밖으로는 사류의 형세를 끼고서, 자못 제 마음대로 정사를 하자, 임금이 불평스럽게 여겼다. 박순이 심의겸의 당파임을 알고는 임금의 은총이 급속히 쇠해져 경연(經筵)을 여는 동안에 몹시 엄하게 임어(臨御)하여 말투와 안색을 조금도 부드럽게 하지 않았다. 김 귀인(金貴人)이 죽은 뒤에 임금이 한 주머니의 봉서(封書)를 찾아냈는데, 대부분이 서로 내통하면서 청탁한 편지들이었다. 그중에 박순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었으므로 - 박순이 쓴 편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편지 중에 박순의 일을 언급한 것이다. - 상이 더욱 미워하였다.
정승에서 체직(遞職)된 뒤에 박순이 다시 복상(卜相)된 것이 두 차례였으나, 제배(除拜)되지 못하다가 이때에 와서 비로소 수상(首相)이 되었다. 박순의 사람됨은 몸가짐이 단아하고 성품이 화평하였으며, 사류를 진출시켜서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자못 받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정승 자리에 있으면서도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고, 다만 시 읊조리기만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당시에 ‘황각(黃閣)의 두 시옹(詩翁)’이라는 나무람이 있었는데, 이는 박순과 노수신(盧守愼)이 모두 시를 잘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김효원(金孝元)과 심의겸이 서로 배척할 때 박순이 서인의 영수(領袖)가 되어서 심의겸을 힘껏 편들었으므로, 사람들이 이 때문에 더욱 하찮게 여겼다.

[주-D001] 완의(完議) : 여럿이 모여 앉아 완전히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주-D002] 삼윤(三尹) : 윤두수(尹斗壽), 윤근수(尹根壽), 윤현(尹晛)으로, 이들은 모두 서인(西人)으로 선조 11년(1578)에 김성일에게 탄핵당하여 파직되었다.

22일(무진) 맑음. ○ 경상 감사(慶尙監司) 정지연(鄭芝衍)이 흰 꿩을 바쳤다. 진주 목사(晉州牧使) 이제신(李濟臣)이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첩보(牒報)하였는데, 정지연은 마음속으로 그것이 망녕된 말임을 알면서도 그냥 바쳤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나무랐다.

23일(기사) 아침에는 흐렸고, 낮에는 눈이 내리다가 저녁에는 갬.

24일(경오) 맑음. ○ 헌납(獻納) 박숭원(朴崇元), 사예(司藝) 임국로(任國老), 좌랑(佐郞) 홍인서(洪仁恕), 화천정(花川正) 이수붕(李壽鵬), 참군(參軍) 이운기(李雲起)가 와서 이야기하였다. 밤에 이조 좌랑 김응남(金應南)이 왔다. 임국로(林國老)는 김 이부(金吏部)가 내 집에 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는데, 대개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청주(淸州)의 수령이 되기를 청하려던 것이었다. 이때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여 시사(時事)가 위태로웠으므로, 외직(外職)을 청해 나가 화를 피하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청주는 피폐한 고을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임국로가 애써 가려고 한 것은 실상은 제 몸을 보전하기 위한 꾀였다. 조금 있다가 임국로가 갔다. 김 이부와 더불어 시사를 논하다가 밤중에 자리를 파하였다.

25일(신미) 맑음. ○ 정사(政事)가 있었다. 민정명(閔定命)을 청주 목사(淸州牧使)로 삼았다.
민정명은 거칠고 비루한 데다 무식하였다. 김효원(金孝元)이 전조(銓曹)에 있을 때에는 뜻을 얻지 못하다가, 김효원이 세력을 잃자, 김계휘(金繼輝)에게 빌붙어서 오랫동안 언관(言官)으로 있었다. 삼윤(三尹)이 논핵(論劾)을 당하던 처음에 장령(掌令)으로 있었는데, 공론이 허여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내심 스스로 편치 않아서 마침내 병을 칭탁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때에 와서 외직에 보임되었다.
○ 김찬(金瓚)을 사헌부 지평으로 삼았다.
김찬은 성품이 온후하고 화평하여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하였다. 이전에 삼윤이 뇌물 받은 일이 도하(都下)에 전파되었으나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는데, 유성룡(柳成龍)이 그러한 실상을 알고 김찬에게 말하였다. 김찬이 부친을 뵈러 여주(驪州)에 갔고, 교리(校理)인 나는 남도(南道)에서 소명(召命)을 받고 오다가 배가 여주에 닿았는데, 이 일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
나는 성품이 엄하고 곧아서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이에 입대(入對)하여 당시의 폐정(弊政)을 낱낱이 아뢰면서 탐오한 풍습이 크게 일어나서 선물 꾸러미가 공공연하게 행해짐을 말하였다. 그러자 상께서 누가 그런 짓을 하였는지 물었다. 이에 드디어 이수(李銖)와 이신로(李信老)가 조정의 귀신(貴臣)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대답하였다. 이튿날 대부(臺府)에서 이수 등을 잡아들이기를 청하였다. 상께서 뇌물 받은 자의 성명을 따져 물으니, 대관(臺官)이 곧바로 지적해 말하기가 곤란하여 모른다는 것으로써 아뢰려고 하였다. 김찬이 그때 지평으로 있으면서 홀로 말하기를, “삼윤이 뇌물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하니, 좌우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러자 김찬도 두려움이 없지 않아서 범범히 ‘조사(朝士)’라고만 말하였다. 그 뒤에 수찬(修撰) 강서(姜緖)가 탑전(榻前)에서 곧바로 말하자, 비로소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니, 사람들이 그의 나약하고 겁 많음을 나무라면서 대신(臺臣)의 풍채를 잃었다고 하였다.

26일(임신) 맑음

27일(계유) 맑음.

28일(갑술) 맑음. ○ 교리 이순인(李純仁)이 《삼강행실(三綱行實)》을 간행하여 반포하기를 청하였다. 이순인이 앞서 수찬(修撰)으로 있을 적에 이런 청을 하였는데, 상께서 받아들이고 서국(書局)에 명하여 간행하도록 하였으나 유사(有司)가 봉행하지 않았다. 이때에 와서 이순인이 또다시 말하자, 상께서 해당 관원을 추고(推考)하도록 명하고, 속히 간행하여 반포하도록 하였다.
○ 이순인이 일찍이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김효원(金孝元)을 몹시 헐뜯었다. 이로 인하여 서인(西人)들이 서로 천거하여 드디어 전조(銓曹)에 들어가게 되었다. 윤현(尹晛), 조원(趙瑗)과 함께 일한 것이 몇 년이었는데, 공론이 허여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자못 후회하였다. 그 뒤 이산해(李山海)가 청의(淸議)를 주장하자, 서인을 배반하고 오직 이산해의 말만을 좇았다. 삼윤이 패하면서부터는 시론(時論)에 더욱 힘껏 영합하니, 서인들이 이를 갈았고, 사류들도 비루하게 여겼다. 사람됨이 경망하고 용렬하여 스스로의 주견(主見)이 없었던 탓에 자신을 그르치고 욕을 취하여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29일(을해) 맑음. ○ 수찬 윤선각(尹先覺), 부수찬 성낙(成洛), 사복시 첨정(司僕寺僉正) 이준(李準)이 찾아왔다.

30일(병자) 맑음. ○ 이조 좌랑 김응남(金應南)을 가서 만나보았다. 이때 김응남은 계모(繼母)의 모친상을 당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예기(禮記)》의 의복(義服) 조에, ‘어머니가 쫓겨났으면, 계모의 부모, 형제, 자매를 위하여 소공복(小功服)을 입는다.’ 하였다. 그러니 계모의 어버이를 위하여서는 복(服)을 입어야 할 듯하다.” 하자, 김응남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였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어머니가 쫓겨난 것이 비록 어머니가 죽은 것과 같지는 않으나, 계모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복을 입지 않겠는가.” 하니, 김응남이 말하기를,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가 쫓겨났으면 사당(祠堂)과도 의절(義絶)이 되니, 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 된다. 어머니가 없으면 외가 친척도 없어지는 법이니, 쫓겨난 어머니의 부모 형제에게는 복(服)이 없는 것이다. 계모는 아버지의 정실(正室)이 되니 의리에 있어서 친어머니와 같은바, 그 어머니의 부모 형제 또한 외가 친척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소공복을 입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죽은 어머니일 경우는 이 경우와는 다르다. 살아서는 아버지의 정실이었고, 죽어서는 조상의 사당에 모셔지니, 비록 죽었더라도 실상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계모가 비록 친모와 같으나, 이은 것과 쫓겨난 것을 비교해 보면 의리에 있어서 실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어찌 계모의 어버이의 복을 입겠는가. 예(禮)를 제정한 뜻이 곡진하고 정밀하니, 지금 의복(義服)을 입을 수는 없다.” 하였다. 사우(士友)들도 김응남의 말을 옳다고 하여 김응남이 마침내 복을 입지 않았다.

학봉일고 제3권 ● 조천일기(朝天日記) ○ 정축년(1577, 선조 10) 6월

1일(정사)
아침에 비가 조금 내리다가 늦게는 갰으며, 밤에는 비가 내림.
○ 이날 영평부에서 묵었는데, 차량이 뒤로 처졌기 때문이다.
○ 아침에 광녕(廣寧)에서 온 야불수(夜不收)가 긴급한 변보(邊報)를 가지고 달려가기에 물어보았더니, 말하기를, “삼위(三衛)의 달적(達賊) 20여 만 기(騎)가 광녕을 침범해 와 3일 동안 성을 에워싸고 있었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하였다. - 어떤 데에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자 떠나갔다고 하였다.

2일(무오)
아침에 비가 뿌리다가 곧바로 개더니 또다시 비가 약간 내림.
○ 이날 뒤떨어진 차량이 - 원문 7자 빠짐 - 포(鋪)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무령현(撫寧縣)에서 묵었다.

3일(기미)
맑음.
○ 이날 무령현을 출발하여 유관(楡關)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산해관(山海關)에서 묵었다.

4일(경신)
흐렸다 갰다함.
○ 이날 산해관에 머물렀다. - 원문 5자 빠짐 - 안정란(安庭蘭)을 보내서 - 원문 2자 빠짐 - 주사(主事)에게 고하기를, “저희 배신들이 어젯밤에 관(關)에 도착하여 - 원문 6자 빠짐 - 관을 지날 수 없으니, 노야께서는 차량을 발급해 주도록 독촉하여 - 원문 5자 빠짐 - 조패(早牌)로 관을 나갈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마땅히 원하는 대로 처리해 주겠다.” 하였다. 안정란이 고하기를, “관문 밖에 변방의 보고가 긴급하니, 노야께서는 별도로 군사를 내어 호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미 예전의 규례가 있으니, 또한 전례대로 해 주겠다.” 하였다. 조금 있다가 주사가 차임해 보낸 야불수가 패(牌)를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는데, 전로(前路)의 위소(衛所), 역체(驛遞), 아문(衙門)으로 하여금 수레와 말을 발급해 주고, 군사를 내어 호송하게 하는 일이었다. 뒤떨어졌던 차량이 다 도착하였다.
○ 안정란은 주사에게, 김치(金輜)는 참장(參將)에게 보내어 각자 예물을 가지고 가서 주게 하였다. 참장은 곧바로 예물을 받고 술와 음식을 먹여 보냈으며, 이어 하정(下程)을 보내왔으므로, 규례에 따라서 물품을 주어 보냈다. 안정란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예물을 가지고 가 바쳤더니, 주사가 말하기를, ‘가지고 온 물품은 받겠으나, 수량이 너무 많으니, 무슨 까닭인가?’ 하므로, 제가 답하기를, ‘저희 배신들의 본 마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나, 자질구레한 토산품으로 성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지금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예전 규례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노야께서 「표문(表文)을 올리기 전에 주는 것은 받을 수 없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만약 준다면 물리치지는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희 배신들이 전후(前後)의 예물을 올려 정성을 표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였더니, 주사가 말하기를, ‘받는 것이 온당치는 못하나, 후의를 거듭 무시할 수가 없으니 받아들이겠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부채 네 자루와 향(香) 두 봉지만 가져갔습니다.” 하였다.

학봉일고 제3권 ● 조천일기(朝天日記) ○ 정축년(1577, 선조 10) 5월

1일(무자)
맑음.
○ 이날 홍수언(洪秀彦)이 볼일이 있어 예부(禮部) 주객사(主客司)에 갔더니, 해당 관원이 - 원문 2자 빠짐 -, “지난번에 세 당상(堂上)이 그대 나라의 방물(方物)을 함께 검사하였는데, 상서가 - 원문 2자 빠짐 - 을 시켜 인삼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손으로 두어 뿌리를 꺾어 보고서 말하기를, ‘인삼은 색이 누런 것이 좋은데, - 원문 4자 빠짐 - 이는 필시 가짜 삼일 것이다.’ 하자, 우시랑(右侍郞)이 말하기를, ‘이것은 껍질을 벗긴 것입니다. - 원문 4자 빠짐 - 껍질이 없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벌레가 파먹기도 쉽고 약성(藥性)을 잃는 경우도 많으므로, 2년만 지나면 검게 변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하여 내가 말하기를, ‘지난번에 낭중(郞中)도 이런 사유를 가지고 그 나라의 통사에게 물어보니, 통사가 말하기를, 「피삼(皮蔘) 200근을 가지고 백삼(白蔘) 6, 70근을 겨우 만드는데, 공력이 몹시 많이 들어가면서도 쓰는 데에는 조금도 관계가 없습니다. 소방(小邦)에서도 황삼(黃蔘)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당초 진공(進貢)할 때에 이와 같이 하였으므로 감히 함부로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원문 4자 빠짐 - 소방이 어찌 감히 명령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하니, 당상이 말하기를, ‘외국에서 바치는 공물은 그 나라에서 바치는 대로 맡겨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찌 번거롭게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또 각종 자리[席子]를 살펴보고는 몹시 좋다고 말하였고, 또 백저포(白苧布)와 황저포(黃苧布)를 보고는 말하기를, ‘올이 가늘면서도 질기니, 남방의 저포(苧布)에 비해서 훨씬 좋다.’ 하였고, 흑마포(黑麻布)를 가리켜 말하기를, ‘이것은 황색인데 흑마포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매우 안 될 말이다.’ 하였다.” 하였다.

2일(기축)
비가 뿌리다가 곧바로 갬.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다.

3일(경인)
맑음.

4일(신묘)
맑음.

5일(임진)
맑고 바람이 붊.
○ 3일부터 오늘까지 3일 동안 휴가로 인해 각 아문이 좌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6일(계사)
약간 흐림.
○ 이날 홍수언(洪秀彦)이 사완장(事完狀)을 통정사(通政司)에 올리고, 그 길로 예부에 갔는데, 마침 예부에서는 유생(儒生)을 고시(考試)하는 일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는 바람에 서장(書狀)을 올리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7일(갑오)
맑다가 저녁에는 비가 조금 내림.
○ 이날 아침에 홍수언(洪秀彦)이 사완장을 가지고 예부로 갔다.
○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으므로 우리들이 전희헌(全希獻), 안정란(安庭蘭)을 시켜 가서 고하기를, “《대명회전》에 관한 일에 대해서 전일 상서께서 면대하여 ‘더 써 넣은 것은 명백하다’고 말씀하였는데, 더 써 넣은 글을 얻어볼 방도가 없습니다. 노야께서 상서에게 상의하겠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결론이 없습니다. 저희 배신들이 온 것은 사은만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겸해서 온 것입니다.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다시금 글을 올리고자 하니, 표첩(票帖)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마땅히 만들어 주겠다.” 하였다.
○ 홍수언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주객사(主客司)에서 - 원문 3자 빠짐 - ‘그대 나라의 종계(宗系)에 관하여 - 원문 2자 빠짐 - 제독이 낭중 심현화(沈玄華)에게 말하기를, 「조선의 배신들이 그 - 원문 3자 빠짐 - 소홀히 되거나 빠질 것을 염려하여 다시금 당상께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하자, 심 낭중이 가정(嘉靖) 42년(1563, 명종 18)과 만력(萬曆) 원년(1573, 선조 6)에 올린 제본(題本)을 가져다가 자세히 상고해 보고서는 말하기를, 「다시는 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는가?」 하니, 서리가 말하기를, 「의제사(儀制司)에 또 《황명조제(皇明詔制)》가 있습니다.」 하자, 심 낭중이 곧바로 가져오게 하여 - 원문 3자 빠짐 - 전 제독(錢提督)의 말로써 당상에게 아뢰었더니, 상서가 새로 찬수한 《대명회전》을 가져다 보고는 말하기를, 「 - 원문 5자 빠짐 - 당학징(唐鶴徵)이 찬수한 것이 과연 지나치게 소략하고 뒤바뀐 곳도 있으니 고쳐야겠다.」 하였다. 그리고는 임 시랑(林侍郞)에게 고칠 것을 청하자, 임 시랑이 상서에게 양보하였으며, 상서가 다시 심 낭중으로 하여금 조사해서 개찬하게 하고는 말하기를, 「찬수를 마치면 내가 보고 정하겠다.」 하였다. 심 낭중이 현재 고치고 있으니, 아마도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제독이 표첩을 보내왔다.

8일(을미)
비가 약간 내렸으며, 밤에는 새벽까지 비가 내림.
○ 이날 우리들은 홍수언(洪秀彦) 등 5인을 데리고 예부의 당상에게 갔다. - 원문 2자 빠짐 - 글을 올리겠다는 뜻을 먼저 심 낭중에게 고하였더니, 낭중이 정문(呈文)을 가져다가 보고는 - 원문 2자 빠짐 - 하였다. 조금 있다가 상서와 임 시랑이 당에 나와 좌기하였으므로 우리들이 - 원문 2자 빠짐 - 꿇어앉아 글을 올렸다. 상서가 다 보고서는 잘 알았다고 하고서 - 원문 2자 빠짐 - 일어나 나가려 하였다. 우리들이 홍수언을 시켜 고하기를, “전에 - 원문 4자 빠짐 -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는 노야의 말씀을 들었는바, 저희 배신들은 참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 원문 5자 빠짐 - 종계(宗系)와 시역(弑逆) 두 가지 일을 변무(辨誣)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는 것이 있으면 명백한 것이 아닙니다.” 하니, 상서가 말하기를, “이미 다 명백하게 되었다. 내가 그대에게 자문(咨文)을 줄 것이니, 그만 가라.” 하였다. 홍수언이 다시 고하기를, “노야께서 명백하게 더 써 넣은 글의 내용과 제본을 올려 준허를 받은 내용의 회답 자문을 지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국왕께서도 또한 명백하게 아시고 무한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니, 상서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홍수언과 전희헌(全希獻)이 나아가서 처마 밑에 꿇어앉자, 상서가 또다시 탁자 앞으로 오라고 하고는 말하기를, “ - 원문 4자 빠짐 - 열성(列聖)들의 분명한 유지(有旨)가 있으며, 또 여러 차례 내린 칙유(勅諭)와 만력 연간에 - 원문 4자 빠짐 -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의심하고 걱정하는가?” 하니, 홍수언이 말하기를, “영락(永樂) 연간에 소방(小邦)에서 이러한 정상을 가지고 진주(陳奏)하였더니, 성조 황제(成祖皇帝)께서 내린 성지(聖旨) 안에, ‘생각건대 이것은 앞서 전해들은 말과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에 의거하여 개정하라.’ 하였으므로, 소방에서는 성은을 우러르면서 거의 변무하였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홍치(弘治)와 정덕(正德) 연간에 《대명회전》을 찬수할 적에 이르러서는 빠진 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소방이 통탄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금 직접 뵙고 균지(鈞旨)를 받들었는바, - 원문 5자 빠짐 - 빠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종계(宗系)에 관한 한 조목은 - 원문 5자 빠짐 - 뒤라고만 쓰고 환조(桓祖) 아무개의 아들이라고 쓰지 않는다면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명(惡名) 한 조항에 있어서는 시역(弑逆)에 참여하지 않았다고만 쓰고 네 왕의 시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역시 명백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만약 미진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하소연하여 고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노야께서는 이 기회에 이 두 조목을 명백하게 더 써 넣으시고, 이어 더 써 넣은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 원문 4자 빠짐 - ” 하니, 말하기를, “더 써 넣은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대명회전》의 찬수를 완료하는 것은 명년이 될 것이다. - 원문 4자 빠짐 - 후년 봄에는 완전히 정할 것이고, 완전히 정한 다음에는 각판(刻板)하여 간행할 것이다. 간행을 하고서는 - 원문 2자 빠짐 - 그대 국왕에게도 줄 것이다. 이번에는 본부에서 마땅히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는 뜻으로 - 원문 2자 빠짐 - 알릴 것이다.”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머리를 조아리고서 물러나왔다.
홍수언이 또 - 원문 2자 빠짐 - 고하기를, “저희 배신들이 오늘 당상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하니, 낭중이 말하기를, “당상 - 원문 2자 빠짐 - ” 하자, 홍수언이 고한 말과 대답한 말을 갖추어 말해 주고, 또다시 고하기를, “삼가 노야께서는 - 원문 4자 빠짐 - 종계와 시역 두 조항을 더 써 넣었다는 뜻을 회답 자문 안에 - 원문 3자 빠짐 - ” 하니, 낭중이 알았다고 하였다. 그 정문(呈文)에는 운운(云云)하였다.
○ 이날 아침에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소복(素服)과 각대(角帶) 차림을 하였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 위하여 재계(齋戒)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소복은 바로 흉배(胸背)와 단령(團領)이 없는 옷이다.

[주-D001] 흉배(胸背) : 원문에는 ‘흉배(胸輩)’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9일(병신)
비가 내림.

10일(정유)
비가 내림.

11일(무술)
맑음.
○ 이날 홍수언(洪秀彦)이 제본을 얻어왔는데, - 원문 5자 빠짐 - 겨울에 한림원(翰林院)에서 《대명회전》을 중수할 것을 청한 일이다. 제본의 내용은 아래에다가 기록하였다.

12일(기해)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다. 나는 10일부터 병을 앓았다. 제독이 - 원문 3자 빠짐 - 스스로 병세를 살펴보았다.

13일(경자)
맑음.
○ 이날 회동관(會同館)에서 상마연(上馬宴)을 받았는데, 상서가 연회에 참석하였다. 우리들도 - 원문 2자 빠짐 - 갔었다. 연회가 파한 뒤에 상서가 곧바로 나와서 가마를 중문(中門) 밖에 머무르게 하고는 - 원문 4자 빠짐 - 사신에게 말하기를, “병을 앓는 관원은 십분 잘 조섭하라.” 하였다. - 원문 3자 빠짐 - 즉시 홍수언(洪秀彦)을 보내어서 사례하기를, “서장관(書狀官)이 병들어 누워서 - 원문 4자 빠짐 - 연회가 있었는데도 참석하지 못하였는데, 노야께서 직접 문병을 해 주시니, 더욱더 황공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물은 것은 그가 연회에 불참하여서가 아니라, 천 리 밖에서 병들어 누웠는 데다가 계절 또한 무더운 때이기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다. 그대의 재상(宰相)에게는 마음을 써서 잘 간호하라고 말해 주고, 서장관에게는 마음 편히 조리하라고 말해 주라.” 하였다.

14일(신축)
맑음.
○ 이날 대궐에 들어가 상마연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해 사례하였다. - 원문 4자 빠짐 - 또한 와서 사례하였다.
○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으므로,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 안정란(安庭蘭)을 시켜 고하기를, “환조(桓祖)의 성명과 네 왕의 시말을 명백하게 더 써 넣을 일로 전일 예부에 정문(呈文)하였더니, 상서께서 말씀하시기를,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라고 하였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결말이 없으므로 감히 여쭙는 것입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상서께서 지금 한창 개찬(改纂)하고 계시니, 회답 자문에 반드시 명백하게 적어서 보내 줄 것이다.” 하였다. - 원문 3자 빠짐 - 말하기를, “더 써 넣을 글은 비록 회답 자문에 갖추어 쓰지 않더라도 전항의 - 원문 6자 빠짐 - 뜻만 자세히 써 넣는다면 돌아가서 보고하는 데도 할 말이 있을 것이며, 국왕께서 무한히 감격할 것입니다. 저희 배신들이 어제 연회가 파한 뒤에 다시 품하고자 하였으나, 일이 너무 번잡스러운 듯하기에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지금 예부에 들어가서 낭중께 고하고자 하니, 표첩을 지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그대가 갈 필요는 없다. 내가 마땅히 그대의 - 원문 4자 빠짐 - 돌아와서 말해 주겠다. - 이하 원문 빠짐 - ” 하였다.

15일(임인)
맑음.
○ 이날 - 원문 8자 빠짐 -
○ 나는 병으로 인해 나아가지 않았다.
○ - 원문 8자 빠짐 - 관이 홍수언(洪秀彦) 등을 데리고 나아가 읍하였다. - 원문 5자 빠짐 - 고하기를, “전일 당상에게 정문(呈文)한 뒤에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 원문 5자 빠짐 - 고하기를, “상서께 물어보고 돌아와서 말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물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말하기를, “《대명회전》의 그대 나라 조항 아래에 새로 글자를 더 써 넣는 것은 원외랑(員外郞) 당학징(唐鶴徵)이 한 것인데, 소략하여 제대로 갖춰 쓰지 않았으므로 상서께서 친히 개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이 바쁜 탓으로 인해 아직 찬수를 완료하지 못하였다. 그대들이 돌아갈 때에는 회답 자문에 반드시 상세하게 써서 줄 것이다.” 하자, 홍수언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상서께서 면대하여 ‘명백하게 개정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저희 배신들이 감격스러워하면서 물러갔는데, 이제 듣건대, 아직까지 - 원문 6자 빠짐 - 돌아가서 국왕께 보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예부에서는 새로 찬수하는 문자를 미리 보여 줄 수는 없다. 각판(刻板)하여 간행한 뒤에는 그대 나라에서도 저절로 알 것인데, 지금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하자, 홍수언이 말하기를, “새로 찬수하는 문자를 미리 보여 줄 수 없다는 말은 저희 배신들도 이미 들었습니다마는, 정문 속에 적혀 있는 두 조항의 내용을 명백하게 더 써 넣고서 이어 그런 뜻을 회답 자문에 갖춰 써 주신다면, 책을 보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찬정(纂定)할 즈음에 두 조항의 내용이 소략해지거나 누락되면 다시는 뒤늦게 고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노야께서는 이 뜻을 상서께 상세히 고해 주시고, 저희들에게 그 결과를 말씀해 주시면 몹시 고맙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 - 원문 4자 빠짐 - 상서께 여쭙고 와서 말해 주겠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묻기를, “예부에서 새로 찬수하는 《대명회전》은 언제쯤 내각(內閣)에 보내게 됩니까?” 하니, 말하기를, “찬수해야 할 조항은 이미 찬수를 마쳤다. 단지 그대 나라의 일만 상서가 일이 바쁜 탓으로 인해 아직 개찬(改纂)하지 못하였으니, 오늘은 비록 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 원문 3자 빠짐 - 보내게 될 것이다.” 하였다.

16일(계묘)
○ 이날 - 이하 원문 빠짐 -

17일(갑진)
새벽에 비가 뿌리다가 곧바로 갬.
○ 이날 대궐에 들어가 상(賞)을 내려준 데 대해 사은하였다. 나는 병으로 인해 가지 못하였다.
○ 묘만(苗蠻)이 대들면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18일(을사)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회동관에 있으면서 옥하관(玉河館)에 패자(牌子)를 보내어 말하기를, “어제 상서를 뵙고 사신이 일전에 한 말을 갖추어 고하였더니, 상서께서 대답하기를,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두 조항의 찬수를 마칠 것이다. 그 뒤에 배신들에게 알려 주라. - 원문 2자 빠짐 - ’ 하였다. 내가 직접 가서 말해 주고 싶으나, 신열로 앓고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 원문 2자 빠짐 - 패자를 시켜 통사에게 말하여 사신에게 전하도록 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1] 패자(牌子) :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글발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 글발을 가지고 가는 심부름꾼의 뜻으로 쓰였다.

19일(병오)
맑음.
○ 이날 아침에 홍수언(洪秀彦)이 사조(辭朝)를 보고하는 단자(單子)를 - 원문 1자 빠짐 - 시(寺)에 올린다는 핑계를 대고는 곧바로 예부로 가서 《대명회전》에 더 써 넣을 문자를 개찬하였는가의 여부를 탐지하였더니, 해당 관리가 말하기를, “오늘 상서께서 찬수를 마칠 것이다.” 하였다. 이에 홍수언이 사자관(寫字官)에게 인정(人情)을 넉넉히 주고 새 《대명회전》 내의 본국 조항을 적은 책을 사서 돌아왔다.
○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다. 우리들이 홍수언, 전희헌(全希獻), 안정란(安庭蘭)으로 하여금 나아가게 하려는 참에 제독이 마주 오면서 말하기를, “일전에 사신의 뜻을 가지고 상서께 고하였더니, 상서께서 답하기를, ‘종계(宗系)와 시역(弑逆)의 두 조항을 더 써 넣어 명백하게 하는 일은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개찬을 완료할 것이다. 그 뒤에 배신들에게 알려 주라.’ 하였다.” 하자, 홍수언 등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하기를, “저희 배신들이 패자(牌子)가 전하는 말을 듣고는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여 지금 노야를 직접 뵙고 치사하려고 이미 관디[冠帶]를 갖추어 입고 있는 참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 - 원문 6자 빠짐 - 등은 어느 날 출발할 것인가?” 하자, 홍수언이 답하기를, “지금 - 원문 4자 빠짐 - 보고 단자를 내일 올리게 되면, 21일에는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 원문 3자 빠짐 - 찬수하는 일과 회답 자문을 받는 일을 만약 마치지 못하면 부득이 하루 이틀은 늦춰질 듯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예부의 해당 관리가 회답 자문의 초안을 사사로이 보내 준 것을 보았는데, 매우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20일(정미)
맑음.
○ 이날 이른 아침에 제독이 소갑(小甲)을 시켜서 표첩을 보내왔는데, 사조(辭朝)하는 데 대한 보고 단자를 올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21일(무신)
맑음.
○ 이날 일행이 대궐에 들어가 사조하고 - 원문 5자 빠짐 - 사은하고서 나왔다. 이어 예부로 가서 장차 당상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 원문 6자 빠짐 - 심 낭중에게 고하기를, “저희 배신들이 이미 사조하였으니, 또한 마땅히 - 원문 3자 빠짐 - 다만 《대명회전》을 개찬하는 일과 회답 자문을 받는 등의 일을 만약 마치지 못할 것 같으면 우선은 하직 인사를 올리는 일을 정지하고 물러가서 문서가 완성되는 날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하였다. 심 낭중이 곧바로 이런 뜻으로 당상에게 품하자, 상서가 말하기를, “문서는 과연 아직 마치지 못하였다. 그러니 내일 와서 하직 인사를 하고서 받아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22일(기유)
맑음.
○ 이날 예부에 갔더니, 세 당상이 막 당에 좌기하려는 참이었으므로 낭관(郞官)과 이서(吏胥)가 모두 벌여 서 있었다. 우리들도 뜰에 나란히 서 있었는데, 당상들이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도리(都吏)가 나와서 통사 홍수언(洪秀彦)과 전희헌(全希獻)을 부르므로, 곧바로 들어갔다. 그 도리가 당상의 말을 전하기를, “배신들은 아직은 예부에 하직 인사를 하지 말라.” 하고, 이어 서반(序班)을 시켜 데리고 갔다. 우리들은 물러나 상방(廂房)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이에 홍수언과 전희헌을 시켜서 낭중에게 가서 품하였더니, 낭중이 말하기를, “회답 자문에 대한 일은 상서께서 처음 - 원문 2자 빠짐 - 오늘의 좌기에서 당상이 다시 의논하기를, ‘제본을 만들어서 상주하려고 하자니 이미 성지(聖旨)가 있고, 또 칙유(勅諭)도 거쳤는바, 지금 다시 번거로이 제본을 올릴 수가 없다. 제본을 올려 아뢰지도 않고 미리 회답 자문을 써서 주는 것은 조사해 보아도 그런 전례가 없다. 그러니 배신들에게 - 원문 2자 빠짐 - 말로만 해 주어 보내야 한다.’ 하였다.”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깜짝 놀라서 곧바로 - 원문 4자 빠짐 - 민망하고 절박한 사정을 낭중에게 고하기를, “어제 하신 말씀대로 - 원문 6자 빠짐 - 저희 배신들은 내일 출발하고자 하여 밤에 잠도 자지 못하였으며, 오늘 일찍 - 원문 4자 빠짐 - 주시지도 않고, 예부에 하직 인사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전일에 상서 노야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시기를, ‘이미 명백하게 더 써 넣었으니 그대들이 귀국할 때에는 회답 자문에 반드시 소상하게 써 줄 것이다.’ 하였습니다. 저희 배신들은 그 말씀을 들은 이래로 노야의 말씀을 금석같이 믿어 절대로 딴 걱정은 없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어찌 오늘 갑자기 소망이 끊어질 줄을 알았겠습니까. 국서(國書)를 받들고 와서 회답 자문이 없이 돌아간다면 장차 무엇을 가지고 국왕께 보고하겠습니까?” 하였다. 그리고는 울면서 하소연하기를, “지금까지 머물러 있으면서 고대하던 뜻이 도리어 공허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저희 배신들이 실망하는 것이야 족히 말할 만한 것도 못 되나, 이 뒤에 오는 배신들이 예부의 말을 믿지 않고 모두 위태롭고 두렵게 여기는 마음이 있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먼 데서 온 사람이 우러러 바라보면서 하정(下情)을 아뢰는 곳은 오직 예부뿐인데, 예부에서 말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으니, 실망스럽고 절박한 심정을 다시는 아뢸 곳이 없습니다.” 하자, 낭중이 곧바로 이런 내용으로 당상에게 들어가서 품하였다. 그 뒤에 우리들이 낭중이 있는 곳에 들어가 거듭 고하자, 낭중이 말하기를, “즉각 정문(呈文)을 써서 가지고 오면 제본(題本)의 초안을 작성하여 내일 상서께서 재숙(齋宿)할 때를 기다려 품하여서 결정한 다음, 26일 하지제(夏至祭)를 마친 뒤에 제본을 올리겠다.” 하였다. 대개 낭중이 - 원문 4자 빠짐 - 민망하고 절박한 뜻을 상서에게 고하자, 상서가 - 원문 7자 빠짐 - 정문을 지어서 낭중에게 주고 물러나왔다.
○ - 원문 6자 빠짐 - 와서 우리들을 보자고 하므로, 우리들이 통사를 시켜 묻기를, “지난번에 여러 선비들을 고시(考試)하였을 때 어떤 제목으로 제술하였습니까?” 하자, 답하기를, “제목은 ‘영서에서 승리를 아뢴 것을 포고하다.[嶺西奏捷露布]’였으며, 150인이 응시하여 급제한 자는 28인입니다.” 하였는데, 영서에서 이겼다는 것은 바로 묘만(苗蠻)을 토벌하여 이긴 것을 말한다.

23일(경술)
맑음.
○ 이날 표첩(票帖)을 청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냈다. - 원문 6자 빠짐 - 머물러 있으면서 제본을 주달하는 것을 기다렸는데, 이른 아침에 예부 - 원문 6자 빠짐 -, “마야(馬爺)께서 조정에 나왔을 때 제본을 주달하는 일과 회답 자문에 써서 주는 일을 각로(閣老)와 의논하였는데, 각로가 말하기를, ‘그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명지(明旨)를 받들었고 칙유(勅諭)도 거쳤으니, 다시 제본을 올려 아뢸 필요가 없다. 예부에서 미리 회답 자문을 써서 준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방해되겠는가.’ 하자, 마야 역시 기뻐하였다. 마야가 조정에서 집으로 돌아가서는 도리(都吏)를 시켜 회답 자문을 가져오게 한 다음, 도장을 찍어 예부로 보내었다. 그리고는 이어 심 낭중으로 하여금 배신에게 직접 주게 하고, 하직 인사는 하지 말고 돌아가게 하였다.” 하였다. 조금 있다가 심 낭중이 차임해 보낸 사람이 관소에 와서 우리들에게 회답 자문을 받아가기를 재촉하였다. 우리들이 곧바로 들어갔더니, 심 낭중이 먼저 홍수언(洪秀彦)을 불러서 말하기를, “어제는 마야께서 제본을 올려 주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배신이 이미 사조(辭朝)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성지(聖旨)도 받았다. 그러니 자문에 써서 보내는 것이 참으로 아무런 방해될 것이 없기에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다. 마야는 오늘 당에 좌기하지 않으므로 하직 인사를 하지 말게 하였다. 나 역시 감히 예(禮)를 받을 수가 없으니, 배신들이 들어와서는 단지 읍(揖)만 하면 된다.” 하였다.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가 읍을 하였다. 그 뒤에 낭중이 홍수언에게 말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우리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홍수언을 시켜서 고하기를, “회답 자문은 이미 얻었습니다마는, 전일에 상서 노야께서 개찬한 글을 저희 배신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배신들은 개찬한 글을 본 다음에 귀국하여 보고하려고 합니다.” 하니, 낭중이 말하기를, “개찬한 것은 이미 명백하다. 마야께서 - 원문 4자 빠짐 - 오늘 마침 예부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나로 하여금 말로 전하도록 하였다. - 원문 6자 빠짐 - 일은 이미 옛 《대명회전》과 정덕(正德) 이후로 매년 상주하여 준허를 받은 - 원문 2자 빠짐 - 모두 갖추어져 실려 있고 - 원문 4자 빠짐 - 모두 명백하다. 또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안에 실려 있는 ‘왕요(王瑤)가 - 원문 4자 빠짐 -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성계(李成桂)가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한 조항 및 《황명조제(皇明詔制)》 안에 실려 있는 내용도 모두 실었다.”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홍수언을 시켜 고하기를, “말로 전하는 것은 소루함이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글로 대강 내용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하자, 낭중이 말하기를, “당상께서 써 주지 말라고 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써 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어 등록(謄錄)을 가져다가 - 원문 6자 빠짐 - 안에 영락(永樂) 연간 이후에 매년 상주하여 준허를 받은 것과 - 원문 7자 빠짐 -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 조항은 이미 기록해 넣었다.” 하였다. 그러면서 보여 주기도 하고 다시 가지고 가기도 하여 - 원문 4자 빠짐 - 우리들이 홍수언을 시켜 고하기를, “종계(宗系) 안에 환조(桓祖)의 성명이 명백하게 기록되지 않았을까 염려스럽습니다.” 하자, 낭중이 말하기를,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 하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책 안에서 만력 원년의 주본(奏本) 중에 종계에 관한 한 조항을 집어내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에 의거하여 명백하게 기록하였으니, 의심하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상서가 개찬한 글을 아직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미진하게 여겨, 다시 머물러 당(堂)에 좌기(坐起)하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재삼 간곡하게 청하였더니, 낭중이 말하기를, “마야께서 ‘사조(辭朝)한 배신이 다시 머무를 수는 없다.’ 하였으며, 수일 내로는 당에 좌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회답 자문을 가져다가 사제(私第)에서 도장을 찍어 준 것이다. 그리고 또한 당에 하직 인사를 하는 것도 면하게 한 뒤이니, 결단코 다시 머물러 있게 할 수는 없다.”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마지못해 물러나왔다.
○ 상서가 개찬하려고 할 때에 먼저 심 낭중을 시켜 원고를 작성하게 하였는데, 우리들이 홍수언, 전희헌(全希獻)을 시켜 사자관(寫字官)에게 원고를 보여 주기를 청하여 얻어 보았는데, 당학징(唐鶴徵)이 편찬한 것에 비하여 더욱 명백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 뒤에 담당 관리가 말하기를, “마야께서 심 낭중이 작성한 원고 안에 두 자를 지우고서 몇 줄을 더 써 넣으셨다.” 하였다. 심 낭중이 작성한 원고를 아래에다가 기록하였다.
○ 이날 우리들은 북경(北京)을 출발하였다. 저녁에 통주(通州)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4일(신해)
맑음.
○ 이날 아침에 서장(書狀)을 써서 - 원문 7자 빠짐 - 시켜서 그것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게 하였다. 우리들은 가다가 유하둔(柳河屯)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삼하현(三河縣)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5일(임자)
아침에는 흐리고 늦게는 갰으며, 저녁에는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침.
○ 이날 삼하현을 출발하여 배를 타고 초교하(草橋河)를 건너 방균점(邦均店)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계주(薊州)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6일(계축)
아침에 - 이하 원문 빠짐 -
○ 이날 계주를 출발하여 가다가 - 원문 6자 빠짐 - 에 도착하여 옥전현(玉田縣)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7일(갑인)
맑다가 밤에 비가 내림.
○ 이날 옥전현을 출발하여 사류하포(沙流河鋪)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풍윤현(豐潤縣)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8일(을묘)
아침에 비가 오다가 늦게는 갬.
○ 이날 풍윤현을 출발하여 가다가 망룡교(蟒龍橋)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칠가령(七家嶺) 성 안의 인가에서 묵었다.

29일(병진)
맑다가 저녁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침.
○ 이날 칠가령을 출발하여 안 - 원문 2자 빠짐 - 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 무렵에 배로 난하(灤河)를 건너 영평부(永平府)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학봉일고 제3권 ● 조천일기(朝天日記) ○ 정축년(1577, 선조 10) 4월

1일(무오)
흐림.
○ 이날 계주를 출발하여 가다가 서문 밖에 이르렀는데, 길가에 사당이 한 채 있었다. 현판에 삼의묘(三義廟)라고 적혀 있으므로, 통사를 시켜 그 연유를 물었더니, 한(漢) 나라의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를 삼의(三義)로 삼은 것이라고 하였다. 5리쯤 되는 곳에 어양교(漁陽橋)가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킨 곳이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이 여겨 다리 이름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다. 심장(沈莊)이란 곳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초교하(草橋河)를 건넌 다음, 저녁에 삼하현(三河縣)에 도착하여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2일(기미)
비가 약간 내림.
○ 이날 삼하현을 출발하여 유하둔(柳河屯)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교(浮橋)를 통해 노하(潞河)를 건넜다. 저녁에 통주(通州)로 들어가 성 밖의 인가에서 묵었다. 통주는 북쪽에 노하가 가로로 흐르는데, 노하 물은 호지(胡地)에서 흘러와서 황성(皇城)을 거쳐 곧장 통주의 북쪽 성 아래까지 이른다. 노하를 통해 금릉(金陵)까지 갈 수 있는데, 수로(水路)로 3600여 리로서 3개월 걸린다고 한다. 멀고 가까운 곳의 배들이 성 아래에 구름처럼 모여 있어 돛대가 빗살같이 서서 10여 리를 뻗쳐 있었다. 또 용과 봉을 그린 기를 단 크고 작은 배가 나루 아래에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 한 줄기가 옥천산(玉川山)에서부터 황성 북쪽을 뚫고 와서 금수교(金水橋)를 거쳐 내려오는데, 이름을 옥하(玉河)라 하며, 황성 남쪽으로 나와 동쪽으로 40리를 흘러 통주성에 들어와 노하와 합한다. 조선(漕船)이 그 가운데를 왕래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3일(경신)
맑음.
○ 이날 김치(金輜)를 옥하관(玉河館)에 먼저 보내었는데, 인정(人情)으로 줄 모자와 부채를 가지고 가서 조양문(朝陽門)의 파문대감(把門大監)에게 주게 하였다. 우리들은 통주를 출발하여 30리쯤 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조양문을 통해 황도(皇都)로 들어가 옥하관에 머물렀다. 수레 몇 대가 뒤로 처져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주-D001] 옥하관(玉河館) : 원문에는 ‘옥하관(玉河關)’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옥하관은 우리나라 사신이 가서 묵던 곳이다.

4일(신유)
맑음. 이날부터 조정을 하직할 때까지 옥하관에 머물렀다.
○ 이날 뒤떨어져 있던 차량이 도착하였다.

5일(임술)
맑음.
○ 이날 김치(金輜)를 시켜 보고 단자(報告單子)를 올리게 하였는데, 병부 상서(兵部尙書) 담륜(譚綸)이 졸서(卒逝)하여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각 아문(衙門)이 좌기(坐起)하지 않았다고 하므로 중지하였다.

6일(계해)
맑음.
○ 이날 보고 단자를 홍려시(鴻臚寺)에 올렸다. 그런데 서반(序班) 고운정(高雲程)은 요동(遼東)에 있어 미처 오지 못하였으므로 달자서반(達子序班) 장계유(張繼儒)가 그 일을 - 원문 2자 빠짐 -
○ 광록시(光祿寺)에서 땔감을 보내왔다. 5일마다 한 차례씩 보내 주는 것이 관례이다.
○ 압마관(押馬官) 이지복(李之馥)이 도중에서 병이 위중해졌는데, 관소(館所)에 와서도 낫지 않으므로 서조(西照)에 옮겨 있게 하였다. 제독주사(提督主事) 전약갱(錢若賡)이 의원을 보내어 병을 살펴보게 하였다. 본관 제독(本官提督) 서원춘(徐元春)이 제왕부(諸王府)에 사제(賜祭)하는 일로 나갔으므로 전약갱이 임시로 대행한다고 하였다.

7일(갑자)
아침에는 흐리고 저녁에는 비가 내림.
○ 이날 대궐에 들어가 동장안문(東長安門) 밖에서 시각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독의 고시(告示)에 이르기를, “홍려시에서 예의(禮儀)에 관한 일로 고시하는 것이다. 만력 5년(1577, 선조 10) 4월 7일 묘시(卯時)에 제왕관(諸王館)에서 대혼례(大婚禮)에 관한 칙유(勅諭)를 내리겠으니, 이날 아침 일찍 각 - 원문 1자 빠짐 - 문의 응당 참여할 집사관원(執事官員)들은 모두 길복(吉服)을 갖추어 입고 시반(侍班)하여 예를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여명에 대궐에 들어가 오문(午門) 밖에 나아가 어로상(御路上)에서 예를 행하고 좌액문(左掖門) 안으로 가서 광록시에서 주는 술과 음식을 먹은 다음, 어로(御路)로 돌아와서 머리를 조아려 사은(謝恩)하고 나왔다. 전에 술과 음식을 먹을 때에는 막 상을 차려 놓자마자 무뢰배들이 앞다투어 와서 빼앗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폐단이 없으니, 아마도 엄하게 금하여서 그런 것인 듯하다.
○ 황제는 전례대로 3, 6, 9일에만 시조(視朝)한다고 하였다.
○ 이날 태감(太監)들이 황후(皇后)를 간택하는 데 대한 칙유를 가지고 남경(南京) 등지로 가고, 예부 상서(禮部尙書)는 칙유를 반포하는 의식을 여는 데 참석하기 위하여 갔으며, - 원문 1자 빠짐 - 관(官)은 당(堂)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관소로 돌아와서 조금 쉬었다가, 오후에 예부로 가서 당(堂)에 인사드리고 표문(表文)과 자문(咨文)을 올렸다. 그런 다음 당에서 물러나와 주객사(主客司)와 의제사(儀制司)에 가서 예를 행하였다.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을 시켜 담당 관리에게 실록(實錄)의 완성 여부를 물었더니, 지금 이미 수정을 마쳤다고 하였다. 낭중(郞中) 심현화(沈玄華)가 변무(辨誣)에 관한 자문을 먼저 보고는 해당 관리를 시켜 등록(謄錄)을 가져 오게 하였는데, 바로 가정(嘉靖) 원년(1522, 중종 17)과 3년(1524, 중종 19)에 올린 주본(奏本)이었다. 이어 해당 관리를 시켜 홍수언에게 말하기를, “올릴 자문을 내가 초안을 잡겠다. 당(堂)에 올린 후에는 내가 임의로 볼 수가 없다. 만약 다른 초고가 있거든 속히 가지고 오라.”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즉시 써 가지고 온 초고를 보내 주었다.
○ 광록시에서 하정을 보내왔다. 5일에 한 차례씩 보내 주는 것이 관례이다.

8일(을축)
맑음.

9일(병인)
맑음.
○ 이날 홍수언(洪秀彦), 안정란(安庭蘭), 임봉춘(林逢春) 및 압마관(押馬官) 김희민(金希閔) 등을 시켜 방물(方物)과 공마(貢馬)를 - 원문 5자 빠짐 - 에 바쳤다. 낭중(郞中) 심현화(沈玄華)에게 고하기를, “이번에 국왕께서 저희 배신(陪臣)들을 차임해 보낸 것은 - 원문 2자 빠짐 - 사은(謝恩)하는 일 외에도 더 급한 일이 있어서 보낸 것으로, 그것은 종계(宗系)에 관한 악명(惡名)을 변무(辨誣)하는 일로서, 새 《대명회전(大明會典)》에 더 써 넣는 일입니다. 작년에 하절사(賀節使)로 왔던 저희 배신이 돌아와서 그들이 들은 바를 말하였는데, ‘선황(先皇)의 실록(實錄)을 찬수하는 일이 다 끝나 가니, 《대명회전》도 아마 내년 봄에는 개국(開局)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국왕께서도 자문을 보내어 이미 예부에 올렸는데, 당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명회전》을 찬수하는 일은 언제 시작합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대명회전》은 이제 찬수할 것인데, 육부(六部)에서 한창 찬수할 자료를 초록하여 내각(內閣)으로 보내고 있다. 그대 나라 자문에 관한 일은 아직 당(堂)에 품(稟)하지 않았으니, 품하여 의논하기를 기다려서 다시 말해 주겠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온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대명회전》이 찬수되기를 기다린 지가 지금까지 - 원문 2자 빠짐 - 년이 되었습니다. 과연 노야(老爺)의 말과 같이 이제 찬수하게 되었다면, 저희 배신들이 비록 오랫동안 관소에 머무는 한이 있더라도 새 《대명회전》에 더 써 넣을 글을 얻어가지고 돌아가서 국왕께 보고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홍수언이 주객사(主客司)의 서사리(書寫吏)에게 청하여 새 《대명회전》의 정서책(正書冊) 가운데 우리나라 조목의 아래에 쓰여 있는 내용을 얻어 보고서 베껴 왔는데, 정서책은 인간(印刊)할 내용을 해정(楷正)하게 쓴 것으로서 내각에 보내는 정본(正本)이다.

[주-D001] 종계(宗系)에 …… 일 : 조선 초 이래 선조 때까지 말썽이 되었던 조선 왕조의 조상이 명 나라의 서적에 잘못 기록된 것을 고치고자 주청하였던 종계변무(宗系辨誣)를 가리킨다. 명 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권신(權臣)인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 되어 있어, 이것을 고치고자 여러 차례 주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수정되었다.

10일(정묘)
맑음.
○ 이날 제독주사(提督主事)가 관소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이 중문(中門) 밖까지 나아가서 알현하기를 청하니, 주사가 말하기를, “지금은 날이 저물었다. 오는 12일이 바로 서반(序班)들이 인사를 하는 날이니, 그날 서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우리들이 다시 서반으로 하여금 들어가서 고하게 하기를, “3일에 관소에 도착하여 아직까지 인사를 올리지 못하였으므로 마음이 몹시 편치 않습니다.” 하니, 주사가 즉시 들어오게 하였다. 이에 우리들이 차례대로 앞으로 나아가 재배(再拜)하여 예를 올리자, 주사가 답례로 정사(正使)에게 절한 다음 다시 읍하여 나와 질정관(質正官)에게 답례하였다.
○ 홍수언(洪秀彦)이 주사에게 고하기를, “지난해에 돌아온 - 원문 4자 빠짐 - 실록은 완성이 가까웠고 《대명회전》은 장차 찬수할 것이라고 하므로, 국왕께서 - 원문 3자 빠짐 - 참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종계(宗系)의 악명을 변무(辨誣)하는 정상을 가지고 이번 기회에 - 원문 3자 빠짐 - 등의 사정에 대한 자문은 전에 이미 예부에 올렸는데, - 원문 4자 빠짐 -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나는 잘 모르니, 예부에 가서 고하여 - 원문 1자 빠짐 - 당상의 의견을 알아보고 말해 주겠다.” 하였는데, 아마도 상세하게는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홍수언이 곧바로 영락(永樂) 연간부터 만력(萬曆) 연간까지 차례대로 올린 주본(奏本)과 황제께서 윤허한 성지(聖旨)를 받든 것 및 지금 황상께서 더 써 넣으라고 명한 성지 등을 가지고 고하였더니, 답하기를, “실록에 쓰여 있는 것은 알 길이 없으나, 《대명회전》 편찬 원고에는 이미 자세히 실려 있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본국의 민망하고 절박한 사정은 이미 자문에 모두 말하였으나, 저희 배신들이 미진한 내용을 글로 써서 예부에 올리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다시 말하자.” 하였다.
○ 광록시에서 하정을 보내왔는데, 주사 - 원문 2자 빠짐 - 점검한 다음에 들여 보냈다.

11일(무진)
맑음.

12일(기사)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다.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 전희헌(全希獻), 안정란(安庭蘭) 등을 시켜 벼루, 붓, 종이, 먹을 예물로 주었더니,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홍수언이 고하기를, “저희 배신(陪臣)의 정은 이뿐만이 아니나, 황공하게도 이런 자질구레한 물품으로 정을 표할 뿐입니다. 더구나 이 벼루, 붓, 종이, 먹 따위는 다른 물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니, 노야께서는 물품은 보지 말고 오직 정성만을 보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러면 붓만 받겠다.” 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필묵통을 봉함한 것을 직접 열어 보려고 하였으나, 풀로 매우 단단하게 붙였으므로 열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하리(下吏)를 시켜 열게 하였는데, 하리도 열지 못하였다. 주사가 말하기를, “붓과 먹을 다 받을 수밖에 없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본국의 자문에 대한 일은 품하여서 당상의 뜻을 알아보셨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직 예부에 가지 않았으므로 미처 품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저희 배신들이 글을 올리고자 내일 들어가려고 하니, 표첩(票帖) - 원문 3자 빠짐 - ” 하니, 답하기를,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하였다.
○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압마관(押馬官)이 병 - 원문 3자 빠짐 - 밤에는 문을 굳게 잠그므로 병을 치료 - 원문 2자 빠짐 - 임의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 원문 4자 빠짐 - 약이(藥餌)나 음식을 때맞추어 먹이지 못하므로 딱한 생각은 피차간에 - 원문 3자 빠짐 - 이미 닫혀 있으니 중문(中門)을 열어 놓더라도 무슨 염려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 원문 4자 빠짐 - 닫을 때가 또한 많으니, 노야께서 중문만은 열어 놓게 하여 마음대로 왕래하면서 치료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어찌하여 병든 자를 동조(東照)에 옮기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 치료하는가?” 하였다. 또 고하기를, “ - 원문 3자 빠짐 - 월에 병든 사람을 - 원문 2자 빠짐 - 옮겨서 치료하지 못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문을 열어 놓는 일은 경솔히 할 수가 없다.” 하였다. 두세 번 간곡히 고하였으나,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 주사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소갑(小甲)을 보내와 말하기를, “글을 올리는 일은 14일에 예부에 들어가서 당상(堂上)께 품할 것이니, 그 뒤에 그대들이 예부에 가서 올리라.” 하였다.

[주-D001] 소갑(小甲) : 옛날에 향리(鄕里)의 사무를 맡아보던 갑장(甲長)을 말한다.

13일(경오)
맑음

14일(신미)
맑음.
○ 이날 오후에 제독주사가 표첩(票帖)을 보내왔다. 이어 소갑을 시켜서 말하기를, “글을 올리는 일은 오늘 내가 당상께 품하였으니, 내일 예부에 들어가서 글을 올리되, 종관(從官)과 종인(從人)을 너무 많이 데리고 가지는 말라.” 하였다.

15일(임신)
맑음.
○ 이날은 큰 조회를 하는 날인데, 황제 - 원문 3자 빠짐 - 그러므로 우리들도 조회하러 가지 않았다.
○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 등 4인을 거느리고 예부에 가서 상서(尙書)와 낭중(郞中)에게 글을 올렸더니, 상서가 다 보고서 통사를 불러 들어오라고 하였다. 홍수언과 전희헌(全希獻)이 곧바로 들어가서 꿇어앉자, 상서가 말하기를, “지금 《대명회전》을 찬수하는 데 있어 그대 나라의 변무(辨誣)하는 사정은 벌써 명백히 찬수하여 기록하였으니, 그대들은 마음놓고 돌아가라.” 하였다. 홍수언이 고하기를, “본국 종계(宗系)의 악명을 바로잡는 일은 영락(永樂) 이래로 줄곧 상주(上奏)하여서 모두 특별히 개정(改正)을 허락한다는 열성(列聖)들의 명지(明旨)를 받들었습니다. 만력 - 원문 2자 빠짐 - 또 전의 사항을 가지고 주본(奏本)을 갖추어 진달하여 또다시 - 원문 5자 빠짐 - 받았는데, 지금 마침 《대명회전》을 찬수하는 때를 맞아 옛 - 원문 4자 빠짐 - 저희 배신이 온 것은 사은하는 일 외에도 더 급한 일 - 원문 3자 빠짐 - 비록 몇 달 동안을 더 머물러 있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개찬한 명백한 글을 얻어 가지고 돌아가 국왕께 보고하겠습니다.” 하니, 상서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잘 알았으니, 그대들은 마음놓고 돌아가라.” 하였다. - 원문 5자 빠짐 - 당상이 물러가기를 기다려서 홍수언과 안정란이 - 원문 6자 빠짐 - 낭중에게 고하기를 당상에게 고한 것과 같이 하였더니, 낭중이 말하기를, “알았다. 그러나 찬수하는 것을 마치자면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인데, 그대들이 찬수를 마칠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하니, 홍수언이 고하기를, “찬수를 마치기만을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만력 원년에 예부에서 제청(題請)한 사례에 의거해, 사유를 갖추어 제본(題本)을 올리고 내각(內閣)에 공문을 보내 먼저 《대명회전》 새 책에다가 본국의 사항을 한 책 더 써 넣어 찬정(纂呈)한 것을 어람(御覽)하시고 흠정(欽定)하도록 한 다음, 칙지(勅旨)를 청하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소방(小邦)의 지극한 바람입니다.” 하니, 낭중이 답하기를, “그대들의 - 원문 2자 빠짐 - 품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 우리들이 올린 글에 이르기를, “운운. 이상의 내용으로 상서께 올립니다.” 하였다.
○ 우리들이 올린 글에 이르기를, “운운. 이상의 내용으로 낭중께 올립니다.” 하였다.
○ 정사(政事)하는 것을 보러 왔다는 진사(進士) 10여 인이 와서 읍(揖)하므로, 우리들이 그들의 관향(貫鄕)을 물어보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창부(南昌府)에 사는데, 위시량(魏時亮)의 일족(一族)이라고 하였다. 우리들이 통사를 시켜 위 조사(魏詔使)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안부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있으면서 뜻을 높게 가져 벼슬길에는 나올 생각이 없습니다.” 하였다.

[주-D001] 위시량(魏時亮) : 명종 22년(1567)에 명(明) 나라 목종(穆宗)이 즉위하였다는 내용의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정사(正使)인 허국(許國)과 함께 부사(副使)로 우리나라에 왔었다.

16일(계유)
흐림.

17일(갑술)
맑음.
○ 이날 우리 일행이 회동관(會同館)에서 하마연(下馬宴)을 받았는데, 상서(尙書)가 임석하였다. 연회가 파한 뒤에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을 시켜 상서에게 고하기를, “전일 노야의 균지(鈞旨)를 듣고서 《대명회전》을 명백하게 개찬(改纂)하였다는 것을 알고서 감격하면서 물러나왔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부득이 다시 고합니다. 만력 원년에 예부에서 제(題)한 데에 칭하기를, ‘한림원(翰林院)에 공문을 보내어 내부(內府)에 있는 《대명회전》에서 조선국에 관련된 한 책을 꺼내도록 청하여 국왕과 배신 - 원문 6자 빠짐 - 어람한 뒤에 본 조항의 말미에 첨부해 기록하라’는 내용으로 - 원문 4자 빠짐 - 제하였으나, 그때는 《대명회전》을 속찬(續纂)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 원문 4자 빠짐 - 찬수하는 기회를 만났으니, 원년 - 원문 5자 빠짐 - 따라 먼저 본국 관계의 한 책을 찬정하여 어람하시도록 올리고 - 원문 4자 빠짐 - 삼가 노야께서는 저희 배신들의 - 원문 4자 빠짐 - 생각하여 원통하고 억울함을 노야의 손으로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벌써 찬수하는 데 더 써 넣었으니 - 원문 2자 빠짐 - ” 하였다. 우리들이 다시 홍수언을 시켜서 고하기를, “찬록하는 데에 더 써 넣었다는 말씀은 이미 잘 들었습니다. 다만 책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미진한 내용이 있더라도 다시는 하소연해 고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희 배신들이 더욱더 민망하고 절박해하는 것입니다. 저희 배신들이 돌아가기 전에 먼저 본국 관계의 한 책을 사실대로 개찬해서 명백한 글을 얻어 가지고 돌아가 국왕께 보고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급박한 바람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개찬하는 일은 단연코 명백하여 의심할 것이 없으니, 그대들이 떠날 때에는 - 원문 2자 빠짐 - ” 하였다.
○ 아직 연회를 받기 전에 예부의 도리(都吏)가 홍수언에게 말하기를, “어제 좌기(坐起)하였을 때 상서께서 등록(謄錄)을 가져오라고 하여 담당 관리가 만력 원년의 주본(奏本)과 제본(題本)을 가지고 와서 먼저 낭중께 품하였더니, 낭중이 그 등록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 제본에 조선국에 관한 한 책을 찬정(纂呈)하여 어람하였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배신들이 올린 글에서도 역시 이 전례를 끌어대어 진달한 것이다.’ 하였다. 등록을 - 원문 2자 빠짐 - 뒤에 좌시랑(左侍郞) 왕당(汪鏜)과 더불어 상의하기를, ‘저 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이 일로써 - 원문 2자 빠짐 - 각로(閣老)께 글을 올리는 일이 없도록 처리하라.’ 하였다.” 하였다.
○ 광록시의 차관(差官)이 황제가 하사한 양, 거위, 닭, 술, 국수, 나물, 과일, 차, - 원문 3자 빠짐 - 가지고 왔으므로 우리들이 일행을 거느리고 관디[冠帶]를 갖추어 입고 절하여 받은 다음, - 원문 1자 빠짐 - 가져온 관원들에게 모자를 - 원문 3자 빠짐 - 또 메고 온 인부들에게 부채를 나누어 주었다.

[주-D001] 저희 …… 전에 : 원문에는 ‘진배신미회지전(趁陪臣未會之前)’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진배신미회지전(趁陪臣未回之前)’으로 바로잡았다.

18일(을해)
새벽에 비가 오다가 곧바로 갬.
○ 이날 우리들이 하마연(下馬宴)과 물품을 내려준 황제의 은혜에 대해 사례하였다. 상서 - 원문 4자 빠짐 - 오문(午門) 밖 어로(御路)에서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서 나왔다.

19일(병자)
맑음.
○ 이날 공부(工部)에서 황제가 내려준 시탄(柴炭)을 가지고 왔는데, 17일에 미처 보내지 못한 것을 가지고 온 것이다.

20일(정축)
맑음.

21일(무인)
맑음.

22일(기묘)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으므로 정사(正使)와 질정관(質正官)이 나가서 읍하였다. 홍수언(洪秀彦)을 시켜 - 원문 3자 빠짐 -, “《대명회전》 안에 변무(辨誣)하는 사정에 대해 전일에 상서께서 - 원문 4자 빠짐 - 더 써 넣은 일은 명백하다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단연코 명백하다.’ 하였으니,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는 것을 저희 배신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드러내어 보여주는 글이 없을 경우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끝내 석연치 않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만력 원년의 사례에 의거하여 칙서를 가지고 돌아가서 보고하게 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칙서는 어려울 듯하다.” 하자, 홍수언이 고하기를, “칙서를 얻을 수가 없다면 준허(準許)하였다는 자문(咨文)을 - 원문 2자 빠짐 - 원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자문은 꼭 써서 주겠다.” 하였다. 홍수언이 - 원문 2자 빠짐 -, “국왕이 보낸 자문에 대해서는 예부에서 회답 자문을 보내는 것이 규례이니 - 원문 1자 빠짐 -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제본(題本)에 대해 준허하였다는 회답 자문입니다. 저희 배신들이 이런 뜻으로 장차 예부에 글을 올리고자 하여 감히 먼저 노야께 품하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글을 올릴 필요는 없다. 내가 상서께 고하여 상의한 뒤에 그대들에게 말해 주겠다.” 하였다. 홍수언이 또 고하기를, “칙서를 내리는 법식과 제본에 대해 준허하였다는 회답 자문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 - 원문 4자 빠짐 - ” 하니, 답하기를, “나중에 와서 말하겠다.” 하였다. 나는 병으로 인해 불참하였다.

23일(경진)
맑음.

24일(신사)
맑음.

25일(임오)
맑음.

26일(계미)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으므로 - 원문 3자 빠짐 - 우리들이 홍수언(洪秀彦), 전희헌(全希獻), 안정란(安庭蘭) 등을 시켜 나아가 뵙게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칙서를 내리는 법식과 제본에 대해 준허하였다는 회답 자문을 보내는 일에 대해 상서에게 의논하였더니, 상서가 말하기를, ‘이 일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제본을 올려 성지(聖旨)가 이미 내려졌다. 그러나 새 《대명회전》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앞질러 제본을 올려 청할 수는 없다. 그러니 마땅히 명백하게 더 써 넣었다는 뜻으로 - 원문 3자 빠짐 - ” 하였다. 홍수언이 고하기를, “제본을 올려 청하는 일은 이미 할 수가 없으나, 회답 자문에 더 써 넣은 글을 분명하게 기록하여 온 나라 사람들의 소망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만도 다행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새로 편찬한 《대명회전》을 아직 보내 오지 않았으므로 내부(內府)에서도 아직 못 보았다.” 하자, 홍수언이 고하기를, “전일 상서께서 ‘더 써 넣었다’고 면대하여 말씀하셨으며, - 원문 3자 빠짐 - 또 ‘단연코 명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보여 주지 않으니, 돌아가서 국왕께 보고할 때에 아무런 증거가 없을 듯합니다. 또 새로 편찬하는 《대명회전》 안에는 ‘국조(國祖)는 환조(桓祖) 아무개에서 나왔다.’라고 갖추어 써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네 왕을 시역(弑逆)하는 데 참여하지 않은 사정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하니, - 새로 편찬하는 《대명회전》 안에 환조의 성명을 쓰지 않았으므로 글을 올리고자 하여 먼저 꼬투리를 발론한 것이다. - 답하기를, “그 두 가지 일은 국왕이 보낸 자문 속에 갖춰져 있는가?” 하자, 홍수언이 말하기를, “이 두 가지 일은 이미 만력 원년에 올린 주본(奏本)에 다 실려 있으며, 이번에 올린 글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마땅히 상서께 품하겠다.” 하자, - 원문 2자 빠짐 - 홍수언이 말하기를, “장차 두 가지 일을 찬수하는 데 자세히 써 넣어 달라고 다시 예부에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재차 올릴 필요는 없다. 상서에게 의논하여 결정하겠다.” 하자, 홍수언이 말하기를, “예부에서 찬수한 것을 내부에 보내면 다시 고치는 일은 없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미 성지(聖旨)를 받들었고 칙유(勅諭)도 거쳤으니, 비록 내부에 보내더라도 어찌 보태고 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쪽에서 주관하고 있으니, 본 예부에서 그대 나라에 유시하는 것은 일의 체모에 있어서 온당치가 못하다. 이런 내용을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하였다.

27일(갑신)
맑음.
○ 이날 제독주사가 관소에 왔다.

28일(을유)
오후에 약간 흐리고 비가 뿌리다가 곧바로 갬.
○ 이날 우리들이 문묘(文廟)에 가 뵈었다.

29일(병술)
맑음.

30일(정해)
맑음.
○ 이날 우리들은 교단(郊壇)에 가서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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