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학봉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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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만사(挽詞) - 정부인(貞夫人) 권씨(權氏)에 대한 만사 [도사(都事) 정전(鄭佺)]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만사(挽詞) - 학봉 선생 부인에 대한 만사(挽詞) [오여은(吳汝檼)]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문(文) - 학봉 선생의 유고(遺稿) 뒤에 삼가 제(題)하여 김 세마(金洗馬)의 안우(案右)에 부치다.[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유영순(柳永詢)]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서문(序文)

예로부터 현인 군자(賢人君子)가 종시토록 입신(立身)을 함에 있어서는 행(幸)과 불행(不幸)이 있는 법이다. 만약 그 행과 불행이 단지 본인의 득실(得失)에만 관계되고, 당시와 후세에는 아무런 손익(損益)되는 바가 없는 경우는 논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가령 그 사람이 앞에서 잘못된 것을 당시에 불행으로 여기고, 뒤에서 잘된 것을 후세에서 다행으로 여긴다면,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찌 세도(世道)의 소장(消長)과 사림(士林)의 성쇠(盛衰)에 관계되어, 행과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있고 자신에게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봉 선생은 아름답고 기걸찬 자질을 가지고 예법(禮法)의 고장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퇴도 선생(退陶先生)의 문하에서 배워, 나아간 길이 몹시 곧았다. 이에 사문(師門)에서 선생에게 기대를 걸고 후학들이 선생에게 바라는 것이 적지 않았다.
선생은 스스로 통현(通顯)의 자리에 올라서 관직에 몸이 매여 있는 탓에 학문 공부에 크게 힘을 쏟을 수 없는 것을 죽을 때까지 통한으로 여겼다. 또한 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품고 있는 뜻을 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그 불행에 대해 탄식하였다.
그러나 퇴도 선생의 글이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부터는 선생이 스승을 찾아가서 질문하고 사도(斯道)를 보위하기를 부지런히 한 것과, 사문에서 장려하면서 부탁한 것의 중함이 가장 두드러지고 성대하게 나타났는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우뚝하였다. 이에 선생이 죽은 뒤에는 여강서원(廬江書院)에 배향(配享)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었는바, 남쪽 고을의 유사(儒士)들이 의귀하는 바가 되어 감발(感發)시키고 흥기시킨 것이 한둘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어찌 사도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선생의 곧은 도(道)와 아름다운 절조(節操)는 행하는 것마다 강직하고 곧았는바, 올리는 말은 모두 임금을 바로잡고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 왜적들의 정세를 잘못 헤아린 탓에,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 뒤흔들어, 위로 임금의 노여움에 저촉되었다. 이에 은대(銀臺)와 옥서(玉署)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흉문(凶門)으로 내쳐진 뒤, 항오(行伍)간에서 공로를 쌓아, 마침내는 한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참으로 그 자신을 위해서는 불행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서생(書生)의 몸으로서 갑작스럽게 왜적들이 쳐들어오는 날을 당하여 피나는 충성심만으로 떨쳐 일어났다. 그리고는 도망쳤던 군사들을 끌어모아 강우(江右)를 가로막음으로써 왜적들로 하여금 호남 지방을 엿보지 못하게 하였다. 선생은 또 몸소 미음과 약을 들고 다니면서 다 죽어가던 백성들을 구제하여 물과 불 속에 빠진 자들을 건져 편안한 곳으로 옮겨 놓아서 남쪽 지방의 백성들이 지금까지 부자간에 서로 보전되어 다시금 생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어찌 우리 백성들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선생은 처음에는 문학(文學)으로 발신하였는바, 아름다운 문장이 무성하게 피어나 사원(詞苑)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선묘(宣廟)께서 일찍이 문병(文柄)을 누구에게 주면 좋을지를 모르던 차에, 조정의 의논이 모두들 선생을 수망(首望)으로 추천하였는데,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결국 문병을 잡았다.
공이 평소에 저술한 시문(詩文)이나 대각(臺閣)에 있으면서 올린 주의(奏議)는 그 모두가 성정(性情)을 근본으로 하고 치란(治亂)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병화(兵火)가 일어난 즈음에 모두 사라져서 없어졌으니 참으로 불행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해사록(海槎錄)》 3편(編)과 유고(遺稿) 몇 권이 우연히도 불타는 것을 면하여 선생의 문장 전체 내용을 알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누가 제기(祭器)에 담긴 제육(祭肉) 한 조각이 큰 잔치의 남은 진미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이는 실로 사문(斯文)의 다행인 것이다.
아아, 행(幸)인 것이 세 가지이고, 불행(不幸)인 것도 세 가지이다. 자신에게는 불행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이 되고, 당시에는 불행인 것이 후세에는 행이 되니, 선생은 행과 불행에 대해서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이 역시 하늘의 뜻일 뿐이다.
나는 까마득한 후생으로서 어려서부터 일찍이 대현인(大賢人)의 유풍(遺風)을 듣고서는 항상 직접 모셔보고자 하는 소원을 품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한마디 짤막한 말로써 선생의 글 뒤에 붙이게 되었으니, 이것은 나의 행(幸)인 것이다.
기축년(1649, 인조 27) 봄에 후학(後學) 완산인(完山人) 이민구(李敏求)는 삼가 서(序)한다.

[주-D001] 죽을 …… 돌아다니다가 : 원문에는 ‘필명분주(畢命犇奏)’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필명분주(畢命犇湊)’로 바로잡았다.[주-D002] 흉문(凶門) : 북쪽에 있는 문으로, 옛날에 장군이 출정(出征)할 때에 나가던 문이다. 여기서는 김성일이 경상 병사(慶尙兵使)로 나간 것을 말한다.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명첩 발(名帖跋) - 학봉선생연시제명첩(鶴峯先生延諡題名帖)의 발문(跋文)

금상(今上) 5년인 기미년(1679, 숙종 5) 11월 정사(丁巳)에 이조(吏曹)의 낭관(郞官) 신(臣) 남익훈(南益薰)에게 명하여 선정신(先正臣)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김공(金公)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하사하였는데, 이는 예법(禮法)에 따른 것이다.
그 당시에 선생의 증손인 송헌공(松軒公)이 별검(別檢)으로서 선생께서 예전에 살던 집에서 시호를 맞이하는 예를 거행하였는데, 바로 안동부(安東府) 치소(治所)의 서쪽에 있는 금계리(金溪里)가 그곳이다. 그때 내외의 자손으로서 모여든 자가 수백 명이었으며, 사방의 사대부들 역시 600여 명이나 모여들어 서로 사운시(四韻詩)를 읊으면서 이를 노래하였다. 이로 인해 원근에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까지도 모두들 달려와 일하면서 그들의 정성을 바쳤다. 아아, 상도(常道)를 지키고 덕(德)을 좋아하는 천성은 귀천(貴賤)에 따라서 더하고 덜한 것이 아님이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 동방에 신라(新羅)로부터 고려(高麗)를 거쳐 국조(國朝)에 이르는 동안 유선(儒先)으로서 시호를 받은 분들이 줄줄이 있었다. 고려 때의 사실이야 이미 시대가 멀어서 상고할 수 없으나, 지금의 조정에서는 자손들 가운데 재주가 이역(吏役)을 감당할 만한 자를 발탁해 고을의 관직에 제수하고, 공해(公廨)에서 시호를 맞이하는 예를 올리게 하니, 이것 역시 영광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건대, 우리 선생께 시호를 추증하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이 있다. 송헌공은 덕이 빛나고 나이가 많아서 이역을 제수하여 몸을 굽신거리게 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부(大夫)의 직질(職秩)인 별검(別檢)을 제수하여 대대로 그 녹(祿)을 누리면서 편안히 지내게 하였다. 또 영남의 영진(營鎭)과 주현(州縣)에 고하여 녹봉(祿俸)을 희사해서 그 비용을 돕도록 하였다.
이보다 앞서 유선들에게 시호를 추증할 적에 자손과 사대부들로서 와서 모인 자가 몇 사람이며, 시를 읊어 노래한 자가 몇 사람이며, 원근에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조차도 달려와서 일을 하여 그들의 정성을 바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진과 주현에서도 모두들 녹봉을 희사해서 비용을 도운 일이 있었던가?
내가 듣건대, 선생을 장사 지낼 적에는 국법(國法)에 구애되어서 시호를 청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금 시호를 추증하게 된 것은, 오늘날의 진신(搢紳) 대부(大夫)들이 서로 더불어 조정에 아뢰기를, “살아서 이름이 있으면 죽어서 시호가 있는 것이 옛날의 법도입니다. 더구나 선생의 성대한 덕과 크나큰 업적은 옛사람보다 더욱 빛나는 데이겠습니까. 시호를 추증하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을 권장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모두들 같은 말로 선생의 덕과 업적을 칭찬하면서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자 성상께서 특별히 가납(嘉納)하여 이조에 명해서 지금의 직책을 추증하고, 태상시(太常寺)로 하여금 시호를 의논하게 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상국(相國)인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같은 분이 그 직첩(職帖)을 썼고, 시호는 학사(學士) 이하진(李夏鎭)이 썼다. 이보다 앞서 유선들에게 시호를 내릴 적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던가? 고금(古今)의 일이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다.
송헌공이 이미 제명첩(題名帖)을 만들고는 나 태시(泰時)에게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비록 어리석고 불초하기는 하지만 선생의 덕업(德業)을 흠모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으며, 또한 선생의 외예(外裔)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감히 글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사양할 수 있겠는가.
이에 참람되고 망녕됨도 헤아리지 않은 채 삼가 그 대강의 사실을 기록하여 뒤에 붙였다. 후대에 이를 보는 자들 역시 장차 감발(感發)하고 흥기(興起)하여, 선비가 되어서는 학문을 널리 닦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을 다한다면, 선생에게 영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마 우리나라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
상장군탄(上章涒灘) 정월 하순에 안동후인(安東後人) 권태시(權泰時)는 삼가 기록한다.

[주-D001] 상장군탄(上章涒灘) : 상장은 고대의 간지로 경(庚)이고 군탄은 신(申)으로, 경신년을 말한다. 권태시가 살았을 때의 경신년은 숙종 6년(1680)이다.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문(文) - 학봉 선생이 아들인 세마공(洗馬公)에게 준 시의 시첩(詩帖) 뒤에 쓰다.

내가 매번 학봉 선생의 글을 읽을 적마다 선(善)과 이(利)를 행하고 취(取)와 사(舍)를 결정하는 즈음을 보건대, 판단이 분명하고 결단이 과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출처(出處)와 이험(夷險)이 비록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였지만,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금 그의 아들인 세마공에게 준 시 한 편을 보고서는 또 집안에서의 가르침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세교(世敎)가 쇠해지면서부터 사람들이 오직 이욕(利欲)만을 추구하여, 송곳 끝만한 이익을 다투고 골육간에 원수처럼 지내는 자가 있기까지하다. 그런데 홀로 능히 천륜(天倫)의 중함을 생각하여 자신이 소유한 것을 양보해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세마공이 한 것처럼 하였다면, 이미 옛날에 행실을 독실히 한 군자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이에 선한 말 한마디를 듣고서는 이를 미루어 나아가 확충시켜 주고 이끌어서 나아가게 해 주었는데, 말이 높고 먼 것 같으나, 실로 인륜의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참으로 사문(師門)의 지극한 요결(要訣)이어서 어리석음을 바로잡아주는 가르침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께서 직접 실천함이 없었다면 또한 어찌 능히 그 말이 친절하고 맛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감흥시킴이 이와 같은 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내가 듣건대, 세마공 때에 내외(內外)의 친족 가운데 가난하여 살아갈 수가 없는 자를 모두 살아가게 해 주고 시집보내 주었다고 하며, 그 뒤로도 대대로 능히 그 아름다움을 실행하였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그러한 것을 직접 본 기억이 있으니,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아름다운 법도가 참으로 성대하다고 할 만하다.
이 시편(詩篇)은 난고(亂稿) 속에 버려져 있어서 본집(本集) 속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번에 선생의 5대손인 김이탁(金以鐸) 씨가 비로소 배접하고 표구한 다음,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을 붙였다. 그러면서 일찍이 나에게 보여주고는 그 뒤에다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보건대, 다른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先代)의 유문(遺文)과 고적(故蹟)에 대하여 소중히 여기지 않아, 먼지가 묻거나 좀이 슬어 망가지거나 더럽혀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이것을 위하는 것이 이와 같이 조심스러우니, 이것만도 착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에 또 대대로 내려온 덕을 추모하고 생각하여 뒤따라 행할 것으로써 뜻을 품는다면, 대현인(大賢人)의 후손이 되는 데에 어찌 더욱더 빛이 나지 않겠는가.
시첩(詩帖)에 실려 있는 시문(詩文)이 모두 약간 편인데, 이는 모두 선생께서 직접 쓰신 것으로, 수적(手蹟)이 완연하여 공경하면서 완상할 만하다.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당시의 여러 어진 이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찰(詩札)에서도 선배들이 서로 어울리는 즈음에 언론(言論)과 풍지(風旨)를 구차스럽게 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애오라지 나의 마음속에 느껴지는 바를 시첩의 뒤에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공경스레 쓴다.
중광협흡(重光協洽) 중추(仲秋) 초하루에 후학(後學) 이재(李栽)는 손을 올려 절하고 삼가 쓴다.

[주-D001] 중광협흡(重光協洽) : 중광은 고대의 간지로 신(辛)이고 협흡은 미(未)로, 신미년을 말한다. 이재(李栽)가 살아 있었던 때의 신미년은 숙종 17년(1691)이다.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수첩축 서(手帖軸序) - 학봉선생수첩축(鶴峯先生手帖軸)의 서문(序文)

아아, 우리 선조 대왕(宣祖大王)의 초년에는 인재가 참으로 성대하였다고 할 만하다. 이미 뭇 현인들이 조정에 가득 차 있는 데다가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들도 착하고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에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께서 큰 덕과 높은 학문을 지니고 조정에 우뚝 서 있었으며, 그의 문인과 후학들이 속속 조정의 반열에 나와서 임금께 계책을 올리고 정사를 도와 한 시대의 다스림을 이룩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아, 위대하기도 하다.
이러한 때에 학봉 김 선생이 퇴계 문하의 고제자(高弟子)로서 오랫동안 학문을 쌓은 다음 아름다운 모습을 드날리면서 솟구쳐 올랐는데, 꼿꼿하여 옛사람이 임금을 섬기는 풍모가 있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맑은 조정의 호랑이요 물수리[淸朝虎鶚]’라고 하면서, 모두들 선생께 아름다움을 돌렸으니, 참으로 스승께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그 당시에 앞뒤로 수십 년 사이에는 비록 선후배 군자들이 다툼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는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를 미는 것과 같아서, 끝내는 모두 제 길로 나아가 다함께 치화(治化)를 도왔으니, 이 역시 후세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미 공의 이름을 우러렀으며, 약관(弱冠)의 나이가 되어서는 요행히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우리 형제가 금성(錦城)에서 아버님의 상을 당하였을 적에 공은 조정에 있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 않아 우리 고을로 수령이 되어 왔었다. 나의 돌아가신 큰형님과 공은 사마시(司馬試)를 나란히 합격하였고, 또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공은 수령의 신분이면서도 매번 우리들이 여묘살이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예의(禮儀)에 대해 담론하고 고금의 시사(時事)까지 언급하였는데, 간혹 밤이 늦도록 담론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나는 이에 곁에 있으면서 그분들의 말을 듣고는 더욱더 선생의 장자(長者)다운 풍모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에 대해 흠앙하였다.
이미 상을 마치고는 일찍이 어떤 한 가지 공사(公事)를 가지고 공이 있는 방으로 갔더니, 공이 막 관복(冠服) 차림을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다가 즉시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는 나를 돌아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그대가 말을 떠들어대면서 비평하기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노장(老莊)의 학설에 통달한 것으로 여겼는데, 바로 아름답고 나이어린 학자이구나.” 하였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학문을 닦으면서 글을 읽으라고 경계하였다. 나는 물러나와서 마치 무언가 얻은 것이 있는 것만 같아서 이응(李膺)의 수레를 비로소 몬 것을 기뻐하였다.
돌아보건대, 나는 공이 경계한 것을 잊어버리고서 시사에 대해 골똘하다가 밝은 시대에 죄를 얻어 이곳 남쪽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에 이미 나의 마음을 내 스스로 가다듬을 길이 없었으므로, 공의 유고(遺稿)를 얻어보아 나의 소원을 이루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공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였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바닷가로 쫓겨나 있어서 참으로 그렇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여사(旅舍) 안에서 우연히 성헌(惺軒) 백견룡(白見龍)을 만나게 되었는데, 공이 자신에게 보내 준 서첩(書帖)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면서 그 끝에다 서문을 써 달라고 하였다.
나는 즉시 손을 씻은 다음 받들어서 읽어보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렸으며, 공의 의표(儀表)가 완연히 여기에 있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공경심이 일었다. 인하여 다시금 공을 우러르면서 말하기를, “군자가 서로 권계(勸戒)하고 논변(論辨)하며 풍영(諷詠)하고 애석(愛惜)하게 여기는 도는 참으로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비록 공의 전체 글을 얻어보지는 못하였으나, 이것만으로도 나의 경앙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펼 수 있었다.
무릇 산을 보고자 하는 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거나 깊은 골짜기를 다 뒤져볼 필요 없이 산등성이에만 올라가 보면, 위로는 푸른 하늘에 닿아 있고 아래로는 뭇 산들을 굽어보며, 솔과 계수나무, 지초와 난초가 그 속에서 울창하게 자라고 향기를 풍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다를 보고자 하는 자는 돛과 노를 갖추고서 파도를 헤치면서 가 볼 필요 없이 바닷가의 언덕에만 올라보면, 역시 어룡(魚龍)들이 그 속에서 자라고 거북 따위가 그 속에서 노닐며, 명주(明珠)와 보패(寶貝)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즉 이 수첩축(手帖軸) 하나만 보아도 공의 전체의 글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의 절의(節義)와 공명(功名)은 국사(國史)에 환하게 실려 있고, 학술(學術)과 문장(文章)은 가고(家稿)에 많이도 실려 있다. 그런데도 한 장의 짤막한 편지조차 다른 사람들이 보배로 여기기를 또 이와 같이 하니, 이는 대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것이 깊은 것이다.
지금 성헌이 사우(師友)간의 의리를 잊지 아니하고 이 수적(手蹟)을 가지고 다니면서 병화(兵火)로 인해 경황이 없는 중에도 내버리지 않은 채 수첩축을 만들어서 먼 후대에까지 전해지게 하였으니, 그 신의(信義)가 또한 어떻다고 하겠는가. 이는 참으로 선생께서 취한 바이다.
후학(後學)으로서 죄를 지고 있는 팽성인(彭城人) 임회(林檜)는 삼가 서문을 쓴다.

[주-D001] 이응(李膺)의 …… 것 : 어진 이를 가까이서 대하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 때 이응이 어질다는 명성이 있었는데, 그가 직접 접견한 사대부들은 신분이 크게 높아졌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용문(龍門)에 올랐다.’고 하였다. 순상(荀爽)이란 사람이 이응을 찾아가서는 이응이 탄 수레를 몰게 되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에야 내가 이응의 수레를 몰 수 있게 되었다.” 하였다. 《後漢書卷67 李膺列傳》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제문(祭文) [안동 부사(安東府使) 이인복(李仁復)]

공경스레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 伏以
도옹께서 가르치신 사람들 중에 / 陶翁鑄人
그 가운데 공이 가장 우뚝하였네 / 公維其卓
성실하고 곧은 자질 타고난 데다 / 諒直之姿
연원 있는 학문을 갈고 닦았네 / 淵源之學
이 세상에 나오매 상서(祥瑞)가 되어 / 出而瑞世
봉황이나 기린 같은 모습이었네 / 乃鳳乃麟
화살처럼 곧은 데다 쇠처럼 굳세 / 迺金迺矢
온 나라 사람들의 모범이었네 / 刑于迺寀
내 의리를 내 자신이 간직했나니 / 我珮我義
오랑캐가 또한 나를 어찌하리오 / 何有於卉
함부로 쳐들어와 서성이는 건 / 豕食而盤
그들 병기(兵器) 날카로워 그런 거였네 / 爾器之利
하늘이 우리나라 돕지 않아서 / 天不祚我
큰 별이 떨어져서 돌아가셨네 / 大星之隕
그런 경우 천 년토록 있었거니와 / 千載在前
지사들이 불쌍하게 여기는 바네 / 志士之愍
선담이라 연못 물빛 푸르고 / 仙潭之黝
석정이라 정자 경치 밝고 맑지만 / 石亭之朗
그게 어찌 경치 좋아 그런 거리오 / 豈伊地勝
생전에 공이 놀던 곳이라서네 / 公屨攸往
가수(嘉樹)라 공이 묻힌 언덕 위에는 / 維嘉之阜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져 있네 / 菀有松柏
또한 역시 상향이 거기 있으매 / 亦有桑鄕
바라보며 머뭇대며 못 떠나누나 / 瞻焉蹢躅
말을 타고 돌아가며 부탁하자니 / 屬戒歸鞅
나의 마음 더욱더 경경해지네 / 我懷之耿
혼령께서 부디부디 강림하시어 / 尙靈降鑒
올리는 제 술잔을 흠향하소서 / 我酌之泂

[주-D001] 상향(桑鄕) : 선대(先代)의 고향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반(小弁)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보면, 반드시 공경한다.[維桑與梓必恭敬止]” 하였는데, 그 주(註)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는 부모께서 심으신 바라 반드시 공경하는 것이다.” 하였다.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제문(祭文) [안동교수 겸 제독관(安東敎授兼提督官) 최진방(崔鎭邦)]

생각건대 돌아가신 학봉공께선 / 惟公
광악의 정기를 타고나시어 / 光岳精英
우주를 버틸 만한 기둥이었네 / 宇宙棟樑
주공(周公)이나 공자 같은 생각 품어서 / 周情孔思
옥금(玉金)처럼 깨끗하고 강하였었네 / 玉粹金剛
양대(兩代)의 조정에 꼿꼿하게 서 있으매 / 鶚立兩朝
천 길 높이 나는 봉새의 풍모였었네 / 鳳翔千仞
한 조각 붉디붉은 그 충성심은 / 一片丹心
맨발로도 하얀 칼날 밟을 만했네 / 可蹈白刃
만난 시절 몹시도 어려운 때라 / 遭時孔棘
온 세상이 물결처럼 무너졌었네 / 擧世頹波
한 손으로 구제할 맘 품었으나 / 隻手欲援
오호라 애통쿠나 어찌하리오 / 嗚呼奈何
하늘이 호걸을 빼앗아 가고 / 天奪豪傑
귀신이 공 이룸을 방해하였네 / 鬼靳功成
형산(衡山)의 산봉우리 무너졌으니 / 衡嶽峯嶊
나라를 어느 누가 지탱하리오 / 王國誰楨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熊掌) 취하니 / 舍魚取熊
의리(義理)가 자신보다 더 중하였네 / 義重身輕
한 번 죽음 그 어찌 유감 있으랴 / 一死何憾
만고토록 아름다운 이름 전하리 / 萬古芳名
그런데도 그 누가 애통해하나 / 而誰爲慟
긴긴밤은 아득하고 아득만 하네 / 長夜冥冥
공경스레 술 석 잔을 올리옵나니 / 敬奠三杯
하찮은 이내 정성 살펴주소서 / 冀照微誠
오호라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 嗚呼哀哉

[주-D001] 광악(光岳) : 해, 달, 별의 삼광(三光)과 태산(泰山), 숭산(嵩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의 오악(五岳)으로, 천지(天地)를 가리킨다.[주-D002] 물고기를 …… 취하니 : 어느 두 가지를 다 원하면서도 한꺼번에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의(義)에 맞는 쪽을 택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웅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을 경우,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을 경우,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하였다. 《孟子告子上》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제문(祭文) [현감(縣監) 김부륜(金富倫)]

예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님께서는 / 昔我先君
그대의 부친과 같은 해에 급제했지 / 與子之嚴府而同年
두 분이 사귄 정분 몹시나 친밀해서 / 交契甚密
호형호제 하면서 곳곳에서 술 마셨지 / 呼兄呼弟兮到處開筵
그런 정분 우리들 자손에게 남겼으니 / 施及後人
대대로 맺은 교분 어찌 감히 잊겠는가 / 敢忘世分
더구나 난 그대 형과 같은 해에 급제하여 / 況吾子與之仲兄又同一榜
서로 간에 공경하며 가정 훈육 받았었지 / 每每相敬兮承庭訓
그 뒤로는 그대의 형제들까지 모두 / 自玆以來竝及君之昆季
나와는 친동기간 같은 사이 되었었지 / 皆如我之同氣
그대가 스승님의 문하에 들어오자 / 及登師門
사람들은 그댈 보고 경외심을 품었었지 / 人稱可畏
태산이 무너져서 스승님이 돌아간 뒤 / 泰山之頹
내가 장차 그 누구를 우러러 보았겠나 / 我將安仰
스승님께 배웠던 학문을 가지고서 / 唯以所聞之緖餘
서로 간에 정녕하게 권면하며 오고갔지 / 丁寧相勉兮來往
그대가 조정에서 풍모를 드날릴 때 / 君其軒騰兮鳳閣龍墀
나는 이곳 시골에서 막걸리를 마시었지 / 我乃蹭蹬兮殘杯冷灸
그대가 날 찾아온 건 눈내리는 밤이었고 / 君訪我兮雪夜
내가 그대 찾아간 건 더운 여름철이었지 / 我尋君兮炎夏
봄바람 불 때나 가을달 밝을 때면 / 春風兮秋月
몇 번이나 서로 만나 술잔을 기울였나 / 又幾傾乎盞斝
그게 비록 붕우간에 늘상 있는 일이지만 / 此雖是朋友間尋常之事也
그때의 그 정회를 어찌 차마 잊으리오 / 一時情懷昭昭不可忘兮心交
그대가 연경으로 사신길을 갈 적에는 / 子如燕京
내 서쪽 교외에서 가는 그대 전송했지 / 我送西郊
그대가 금성 땅에 수령으로 내려갈 땐 / 子赴錦城
내 남쪽 포구에서 가는 그대 전송했지 / 我送南浦
내가 동복(同福) 고을 수령으로 있을 적엔 / 我宰福川
그대가 이웃 고을 수령 되어 찾아왔지 / 子之來兮其馬五
그대가 체임되어 돌아오던 그날에는 / 至於君之遞歸
추운 아침의 눈 덮인 산 따라가며 전송했지 / 追而送兮雪山寒朝
그대가 창파만리 일본으로 사신갈 땐 / 君有滄波萬里之行
나는 관직 매인 데다 길마저 또 아득했지 / 我縻官職兮道路遙逮
그대가 막 배를 타고 일본에서 왔을 적엔 / 初回海上之槎
미처 소식 모른 탓에 가서 보지 못하였지 / 未及知之而往見
잇달아 그대가 보내어준 편지 받자 / 連承信書
마치 서로 만나서 얼굴 대한 듯하였지 / 如相對面
그 어찌 알았으랴 섬오랑캐 변란이 / 那知島夷之變
통신사가 돌아온 뒤 곧바로 일어날 줄 / 卽生於通信之後
조정에선 그대를 원수로 추대했고 / 朝廷推以子爲元帥
곧바로 경상도의 감사로 임명했지 / 旋有方伯之命兮祗受
나라 위해 몸바쳐서 집안일을 잊었고 / 許國忘家
임금을 지키느라 적개심을 불태웠지 / 勤王愾
호은정 정자에서 하룻밤을 묵을 적엔 / 壺隱亭中
서로 만나 기뻐하며 서로 간에 위로했지 / 相逢喜慰
내가 지은 못난 시를 그 뒤에 보냈는데 / 荒詩追寄
그댄 받아 보았는가 받아 보지 못하였나 / 未知見否
그로부터 날짜가 얼마 아니 지난 뒤에 / 曾日月之幾何
사람들이 그대가 죽었다고 말들 했지 / 人或傳其不壽
그 말이 긴가민가 의심을 하였건만 / 將信兮將疑
끝내는 헛말이 아닌 것을 내 알았지 / 終乃知其非虛
그대의 혼은 비록 고향으로 왔건마는 / 魂之來兮故鄕
기운은 임금 계신 평양으로 갔으리라 / 氣已歸兮箕墟
생과 사가 천명에 달린 거긴 하지마는 / 雖死生之有命
실로 나라 안위가 달려 있는 바이라네 / 實安危之所係
하늘은 어찌하여 우리나라 안 도와서 / 天之何爲使我邦
병들게만 하고서 은혜 아니 베푸는가 / 殄瘁而莫惠
내가 와서 놀라면서 이리 울부짖는 것은 / 我來驚呼
그대와의 정 때문에 곡하는 게 아니라오 / 非爲哭私
유명간에 비록 서로 격해 있긴 하지마는 / 幽明雖隔
애통한 나의 마음 그대 어찌 모르리오 / 痛豈不知
이계라 시냇물이 흐르는 남쪽이요 / 伊溪之南
가수의 북쪽이 그대 무덤 자리이네 / 嘉樹之北
푸른 솔 울울창창 우거져 자랐나니 / 靑松鬱鬱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선영 곁이구나 / 先塋之側
애오라지 간략하게 제수를 차려 놓고 / 聊將薄奠
잔 올려 슬프고도 슬픈 이내 정 펴나니 / 用伸哀誠
신령이여 혹시라도 아는 것이 있다면 / 靈其不昧
부디 와서 이내 술잔 흠향하기 바라노라 / 歆我一觥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제문(祭文) [군수(郡守) 김응성(金應聖) 등]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제문(祭文) [진사(進士) 김철(金澈)]

저 하늘은 아득하고 저 땅은 막막한데, 애통하게도 우리 숙부께서는 어디로 떠나가셨습니까?
효성스럽고 인자하고 공손하고 우애로워서 화목하면서도 은혜로웠던 것은 우리 숙부의 착한 행실과 아름다운 말이었고, 성실하고 진실되며 굳세고 곧아서 공정하면서도 의연하였던 것은 우리 숙부의 높은 덕과 아름다운 절개였습니다. 우리 숙부의 학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의 밥이나 옷과 마찬가지였고, 우리 숙부의 문장은 임금 곁에서 정사를 시행하는 겨를에 아름답고 화려하게 수놓아졌습니다.
우리 숙부의 정충(精忠)은 조정에서 임금께 아뢸 적에 임금의 마음을 대궐 안에서 움직이기에 충분하였고, 우리 숙부의 성신(誠信)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이역 땅에서 교화를 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형구(刑具)가 앞에 벌여져 있고 창칼이 뒤에 늘어서 있어도 우리 숙부의 마음을 뒤흔들기 어려웠고, 요사한 기운이 꽉 차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부화뇌동하여도 우리 숙부의 뜻은 더욱 빛났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크나큰 어려움이 닥치던 날에 영남의 기둥이 부러졌단 말입니까. 어지러움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서 남쪽 지방의 장벽이 마침내는 무너졌습니다. 착한 자에게 복을 주는 것이 하늘의 도이건만 하늘은 막막하기만 하고,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귀신이 돕는 바이건만 귀신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천명이 이미 일정치 않으니 그 누구를 다시 믿겠습니까.
서성거리면서 황황해하노라니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다 찾지 못한 것만 같아 저의 마음은 쪼개지고 불타는 듯합니다. 위태롭고 급급하기가 마치 쓰러지려하는데 버틸 길이 없는 것과 같은바, 착한 사람이 죽어서 나라가 병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저 혼자만의 하늘에 닿을 듯한 애통함이겠습니까. 참으로 온 나라의 몹시도 큰 불행입니다.
천릿길을 지나 단정(丹旌)이 돌아오매 바야흐로 반장(返葬)하였다고 말하겠습니다. 한 번 현관(玄關)이 닫혀지매 어느 때나 뒤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삼가 존귀하신 혼령께서는 저의 속마음을 굽어살펴 주소서. 말재주가 없으매 많은 말을 하였으나 공사(公私)의 정을 다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의 피눈물이 구천에 도달하거든 하해(河海)처럼 많은 눈물 흘렸다고 헤아려 주소서. 아아, 슬프고도 애통합니다.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봉안문(奉安文) - 영산서원(英山書院)의 봉안문(奉安文)

산하의 빼어난 기운 받아서 / 山河間氣
오백 년 만에 명현 태어나시어 / 五百名世
마음 가라앉히어서 정학 닦았고 / 潛心正學
힘껏 실천하여 묘한 부합 이뤘네 / 力踐妙契
부옹의 적통 이어받은 데다가 / 涪翁嫡統
고정의 정맥조차 이어받았고 / 考亭正脈
왕진의 학문 힘껏 물리친 데다 / 攘斥王陳
육선의 이론 극력 배격하였네 / 抵排陸禪
이단을 가려내고 성현 이으니 / 辨異承聖
그 공 어찌 우 임금의 아래이리오 / 功豈禹下
태산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나 / 山頹旣久
아직까지 그 교화는 남아 있도다 / 尙有遺化
제사 지내 성대하게 보답하는 건 / 俎豆崇報
영남 땅 전 지역이 모두 그러네 / 實徧南土
생각건대 이곳 영해(寧海) 우리 고을은 / 念此海邑
위치 실로 동로 땅에 가까운데도 / 側近東魯
성대한 의식 유독 못 올린 것은 / 縟儀獨闕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세 / 責在吾黨
하물며 지금 이곳 영산서원은 / 矧伊英院
학봉께서 처음 직접 세운 곳으로 / 鶴峯所創
땅은 학문 익히기에 아주 합당코 / 地合藏修
공부는 오직 사물 이치 캐었네 / 工專窮格
드디어는 퇴계 문에 서서 눈 맞아 / 遂立溪雪
친히 직접 가르침을 받으시어서 / 親承誘掖
생전에 이미 당에 오르셨으니 / 生旣升堂
죽은 뒤에 배향됨은 마땅한 걸세 / 沒宜祔食
사당 모습 우뚝하게 새로워지매 / 廟貌有儼
길한 날짜 점을 쳐서 택하였으니 / 克日載卜
이로 인해 산은 더욱 높아질 거고 / 山增而高
시냇물 또한 더욱 넓어질 걸세 / 水闢益廣
도의 명맥 다시금 더 두터워지고 / 道脈重肥
사문 명맥 끊어지지 아니 하리라 / 斯文未喪
선비들이 너나 없이 모여들어서 / 靑衿坌集
경건하게 제사를 올리옵나니 / 虔薦明禋
혼령께선 부디 제사 흠향하시어 / 尙其歆格
우리들 후인들을 깨우치소서 / 牖我後人

[주-D001] 부옹(涪翁) : 송(宋) 나라의 학자인 정이(程頤)를 말한다. 정이가 소식(蘇軾)과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하다가 쫓겨나 부주(涪州)로 귀양갔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처음으로 이기(理氣)의 철학을 제창하여 유교 도덕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였다. 《宋史卷427 程頤列傳》[주-D002] 고정(考亭) : 송 나라의 대유학자인 주희(朱熹)의 호이다. 경학(經學)에 정통하여 송학(宋學)을 대성(大成)하였는데, 그의 학문을 주자학(朱子學)이라고 칭하며,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유학(儒學)에 큰 영향을 미쳤다.[주-D003] 왕진(王陳) : 명(明) 나라의 유학자인 왕수인(王守仁)과 진헌장(陣獻章)을 가리킨다. 왕수인은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주장하여 주자학파(朱子學派)와 서로 다투었는데, 세상에서는 그의 학파를 요강학파(姚江學派)라 불렀다. 진헌장의 학풍은 정좌(靜坐)하여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이치(理致)를 직관(直觀)하는 것으로, 주자의 학풍과는 대치되었다.[주-D004] 육선(陸禪) : 송 나라의 유학자인 육구연(陸九淵)의 학풍을 말한다. 육구연은 주희(朱熹)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그의 학풍은 전적으로 실천(實踐)에 힘쓰고 강학(講學)을 전부 폐하며 돈오(頓悟)로써 종지(宗旨)를 삼았다. 이에 일찍이 주희가 말하기를, “육씨의 종지는 본래 선학(禪學)으로부터 나왔다.” 하였다.[주-D005] 동로(東魯) : 동방(東方)의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뜻으로, 유학(儒學)이 성행하였던 영남 지방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특히 퇴계(退溪)가 있었던 안동(安東)을 가리킨다.[주-D006] 드디어는 …… 맞아 : 퇴계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갖추고 문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송 나라 때 양시(楊時)가 어느 날 정이(程頤)를 방문하니, 정이가 명상에 잠겨 앉아 있었다. 이에 양시가 곁에 시립(侍立)한 채 떠나지 않았는데, 정이가 명상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였다고 한다. 후대에는 이를 원용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宋史卷428 楊時列傳》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고유문(告由文) - 기미년(1679, 숙종 5)에 시호(諡號)를 추증할 때의 고유문(告由文)

학봉일고 부록 제1권 ● 경연(經筵)에서의 주대(奏對)

○ 갑오년(1594, 선조 27) 2월 6일의 조강(朝講)에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응남(金應南)이 나아가 아뢰기를,

“김성일이 영남에서 온 마음을 다한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추증하여야 합니다.”

하고, 옥당(玉堂)의 신하인 김우옹(金宇顒) 역시 아뢰기를,

“김성일은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의병을 수습하였으며, 온 마음을 다해 왜적을 막았습니다. 왜적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고 호남과 영남 지방이 보존된 것은 모두 김성일의 힘으로, 그의 공이 몹시 큽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그렇다. 다만 김성일은 풍신수길(豐臣秀吉)에게 속임을 당하여 풍신수길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황윤길(黃允吉)은 두려워할 만하다고 하였으니, 이 사람이 도리어 식견이 있는 듯하다.”

하자, 김우옹과 정경세(鄭經世)가 아뢰기를,

“김성일은 성품이 곧아서 왜인들이 공경하면서 꺼렸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이는 속임을 당한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이항복(李恒福)이 아뢰기를,

“당시에 신이 승지(承旨)로 있으면서 김성일을 보고 일본의 일에 대해 물어보니, 김성일은 도리어 깊이 걱정하면서도 단지 ‘남방(南方)에는 방어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일이 몹시 번거로운 탓에 민심이 소요하여 왜적이 이르기도 전에 먼저 무너지게 생겼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여서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한 것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을미년(1595, 선조 28)에 김우옹이 또 차자(箚子)를 올려서 아뢰기를,

“김성일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능히 절개를 굽히지 않아 섬오랑캐들로 하여금 공경하여 꺼리는 마음이 일게 하였습니다. 이에 현소(玄蘇)와 같이 교활한 자도 오히려 감히 절의를 숭상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가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남 지방을 맡아서는 잔폐된 뒤끝인데도 능히 인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규합해 막고 지켜서 왜적들로 하여금 함부로 유린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어육이 됨을 면하였으니, 그의 공이 몹시 큽니다. 김성일이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다가 군중(軍中)에서 죽었으므로, 남쪽 지방 사람들이 그를 생각하고는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에 김면(金沔)이나 곽재우(郭再祐) 같은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해서 드러나게 공훈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김성일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추증하는 명이 김면에게만 미치고 김성일에 대해서만은 빠뜨려져, 은전(恩典)에 흠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분하게 여기고 있으니, 어떻게 온 도 사람들의 소망에 답하여서 뒷날 격려하는 바탕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 금상(今上) 병진년(1676, 숙종 2) 2월 8일의 주강(晝講)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홍우원(洪宇遠)이 아뢰기를,

“선묘조(宣廟朝)의 명신(名臣) 김성일은 바로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유성룡(柳成龍)과 더불어 이름이 나란한 자입니다. 임진왜란 때 영남의 관찰사로서 온 힘을 다해 일하다가 죽었으니, 시호(諡號)를 추증하는 일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하고, 영의정 허적(許積)은 아뢰기를,

“김성일은 학문이 고명하고 곧은 절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는바, 임진왜란 때 영남에서 의병이 일어난 것은 모두 그의 공입니다. 정2품 이상에 대해서는 으레 시호를 추증하는 은전이 있으며, 명신의 경우에는 이 전례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초에 증직하면서 단지 한 자급만 올려주었으므로 논하는 자들이 모두 불만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특별한 예로 추증하여야 할 듯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정경(正卿)에 대해서 관작을 추증하고 시호를 추증하는 일은 해당 조로 하여금 품의해서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 이해 12일에 예조에서 회계(回啓)하기를,

“김성일의 학문과 충절이 표표히 빛나는 것은 참으로 온 조정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영남의 인사들이 그의 덕을 계속해서 칭송하면서 장차 대궐에 와서 시호를 내려 주기를 청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소연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특별히 시호를 하사함으로써 어진 이를 본받는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 실로 권장하고 장려하는 도리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은전을 시행하는 데 관계되는 일이니, 상께서 결단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특별히 시호를 하사하여 어진 이를 본받는 뜻을 드러내라.”

하였다.
○ 숙종 15년인 기사년(1689) 7월 21일 주강에서 특진관(特進官) 목창명(睦昌明)이 아뢰기를,

“선정신 김성일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하사하면서 당초에 ‘도덕박문(道德博聞)하여 문(文)이라 한다.’라고 시주(諡註)를 단 것을 계하(啓下)하였는데, 그 뒤에 이이명(李頤命)이 이를 두고 지나치다고 하였으며, 김수항(金壽恒) 역시 김성일은 한 가지 절개가 있는 선비인데 도덕박문이라고 시주를 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여, ‘학문을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하였다.[勤學好問]’라고 시주를 고쳤습니다. 김성일은 절의가 있는 선비일 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과 도덕은 실로 여러 유자(儒者)들이 미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김수항과 이이명의 무리가 감히 가벼이 시주를 고쳤으니, 도로 예전의 시주를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으며, 좨주(祭酒) 이현일(李玄逸)은 아뢰기를,

“김성일은 바로 선정신 이황의 고제자(高弟子)로서 일찌감치 도(道)에 대해 들었는바, 평생토록 마음을 세우고 자신을 행한 것이 모두 도의(道義) 가운데에서 나왔습니다. 이황이 일찍이 요순(堯舜) 이래의 도통(道統)과 진결(眞訣)을 직접 써서 그에게 주었으니, 사문(師門)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고 할 만합니다. 김수항의 무리가 어찌 그의 도덕의 깊고 얕음을 알아서 감히 가벼이 고친단 말입니까. 사론(士論)이 모두들 분통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초의 시주를 그대로 쓴다면 실로 사림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공의(公議)가 모두 시주를 고치는 것을 그르다고 하니, 당초에 시주한 ‘도덕박문’을 그대로 두라.”

하였다.

[주-D001] 갑오년(1594, 선조 27) : 김우옹(金宇顒)이 지은 《경연일기(經筵日記)》에는 갑오년이 을미년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에 나오는 을미년은 병오년으로 되어 있다.[주-D002] 시주(諡註) : 시호를 정할 때 시호의 각 글자의 의미를 주석 형태로 밝혀 주는데, 시호 한 자당 네 글자로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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