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학봉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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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쇄미록(瑣尾錄)》 [오희문(吳希文)]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난중잡록(亂中雜錄)》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 선조 23년 경인(1590) 2월에 황윤길(黃允吉)을 통신사(通信使)로 삼고, 김성일(金誠一)을 부사로 삼고, 허성(許筬)과 차천로(車天輅) 등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삼아 일본에 들여보내기로 하였다. 황윤길 등이 대궐에 들어가서 하직하니, 임금이 술자리를 마련하여 술을 내리면서 명하기를, “조심하고 힘써서 잘 갔다가 잘 돌아오라. 저들의 국경에 들어가서는 행동을 반드시 예로써 해야지 조금이라도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생각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체통이 높아지고 왕의 위광을 멀리 퍼지게 하는 것이 이번에 가는 사신들의 행차에 달려 있으니, 경들은 어김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황윤길 등이 어명을 받고 길을 떠나서 수행원 200여 인을 거느리고 동래(東萊)로 가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 경인년 8월에 통신사 황윤길 등이 바다를 건너 대마도(對馬島)에 도착하여 한 달이 넘도록 머물러 있었다. 학봉(鶴峯) 김성일이 산전(山前) 허성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기를, “저 성일은 산전 족하(足下)께 돈수(頓首)하나이다. - 이하 전문(全文)은 본집(本集) 제5권에 실려 있다. ” 하였다.

○ 통신사 황윤길 등이 대마도에서 대판(大阪) - 일본의 관백(關白)이 도읍한 곳의 이름이다. - 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평수길(平秀吉)이 거처하는 곳에 이르러 몇 달을 머물러 있었다. 평수길이 왜승(倭僧)인 태 장로(兌長老)와 철 장로(哲長老) 등을 시켜서 답서(答書)를 만들게 하여 황윤길 등에게 보여주었다. - 이하 생략 - 그 글의 내용이 매우 참람하고 오만하였다. 이에 부사 김성일이 크게 노하여 답서를 밀치면서 말하기를, “바다는 안과 밖으로 서로 단절되어 있고, 나라는 화(華)와 이(夷)가 서로 구분이 있다. 그런데 몹시 업신여기고 오만하기가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은 한 번 죽음이 있을 뿐, 차마 이런 답서를 가지고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다.” 하니, 평수길이 그제서야 그 서신을 도로 가져가서 ‘합(閤)’ 자를 ‘전(殿)’ 자로 고치고, ‘봉(奉)’ 자를 ‘배(拜)’ 자로 고쳤다.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신중하면 비록 오랑캐의 땅일지라도 통할 수 있는 법이다. 학봉이 전후로 취한 태도는 모두 바른 데에서 나온 것으로, 임진왜란 초기에 이르러서 대개 그 충절(忠節)을 볼 수가 있었다.

○ 경인년 12월에 황윤길, 김성일 등이 대판에서 나와 대마도로 왔다.

○ 선조 24년 신묘(1591) 2월에 황윤길 등이 대마도에서 바다를 건너 돌아와 탑전(榻前)에서 복명(復命)하였는데, 그들이 가지고 온 평수길의 계사(啓辭)에는 군사를 출동시킬 정상이 뚜렷하였다. 상이 왜적들의 정세에 대해 묻자, 김성일이 대답하기를, “일본은 현재 군대를 일으킬 형세가 없습니다.” 하고, 이어 물러나왔다. 일행들이 평수길의 사나운 정상을 퍼뜨리자 조정과 민간이 흉흉해하면서 두려워하였다.

○ 선조 25년 임진(1592) 4월 15일에 김수(金睟)가 진주(晉州)로부터 말을 달려 반성(班城) - 진주의 속현(屬縣)이다. - 까지 갔다가는 부산(釜山)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즉시 장계를 갖추어 치계(馳啓)한 다음, 군대를 정비하여 함안(咸安)을 거쳐 칠원(漆原)에 이르렀다. - 《경상순영록(慶尙巡營錄)》에 나온다.
이때 본도의 우병사 신길(申硈)이 이미 체직되어 조대곤(曺大坤)이 대신 맡고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조대곤이 늙었다는 이유로 김성일에게 대신 맡게 하였다.

○ 임진년 4월 20일에 경상 우병사 김성일이 병영(兵營)으로 갔다. 처음에 김성일이 왕명을 받고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가다가 의령(宜寧)에 도착하여 정암진(鼎巖津)을 경유해 곧바로 병영(兵營)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왜적들이 이미 낙동강 오른쪽 지방에 꽉 차 있었다. 이에 휘하의 장사(將士)들이 서로 모의하기를, “이 길은 왜적들이 있는 소굴과 아주 가까우니, 진주를 경유하여 함안으로 가 왜적들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가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주장(主將)은 군령(軍令)이 엄하여 곧장 앞으로 나아가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 걸음은 위태할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는 드디어 속여서 보고하기를, “정암진에는 배가 없습니다.” 하고, 또 김성일의 아들 김역(金湙)에게 부탁하여 힘껏 간하게 하기를, “강물이 불고 배가 없으니 진주 길로 돌아가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였다. 김성일이 군관 김옥(金玉)을 시켜 가서 살펴보고 오게 했는데, 김옥이 돌아와서 거짓으로 보고하기를, “배가 없어서 건너갈 수가 없으니, 진주 길로 빨리 가야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전 목사(牧使) 오운(吳澐)이 촌사(村舍)에 있다가 새 병사(兵使)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와서 배례(拜禮)하면서 말하기를, “영공(令公)께서 왔으니 군대의 사기가 배나 증가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곧바로 정암진을 건너지 않고 진주로 해서 빙 돌아가려고 하십니까?” 하니, 김성일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이 길을 와보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휘하 사람들이 왜적을 두려워하여 나를 속인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즉시 직접 가서 보니, 큰 배가 언덕에 매여 있었다.

김성일이 크게 노하여 군관 김옥과 아들 김역 등을 잡아와서 사형을 집행하게 하니, 김옥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만, 공께서는 현재 왜적들과 대치하고 있으니, 한 번 저의 목숨을 바쳐서 속죄(贖罪)하였으면 합니다.” 하자, 김성일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용서해 주기를 구하였으니, 앞으로 왜적을 만나거든 반드시 먼저 나가서 싸워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앞의 죄까지 아울러 다스려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군사를 재촉하여 강을 건너서 해망원(海望原)에 도착하였다.

전 병사 조대곤(曺大坤)이 이미 이곳에 퇴각해 와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맞이해 읍하였다. 그리고는 김성일에게 직인(職印)과 부절(符節)를 넘겨준 다음, 곧바로 하직하고 가려고 하였다. 김성일이 이에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장군은 병사의 신분으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김해(金海)를 함락당하게 하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세신(世臣)으로서 나라의 후한 은혜를 받았으니, 이러한 큰 변란을 당하여서는 의리상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하자, 조대곤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띠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마 뒤에 척후병이 와서 왜적의 선봉이 이미 도착하였다고 알리자, 조대곤이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김성일을 재촉하여 말을 타고 도망가자고 하니, 김성일이 그를 꾸짖어 저지시켰다. 그런 다음에 군사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영을 내리고, 용맹한 군사를 뽑아 좌우에 복병으로 잠복시키고 왜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에 2명의 왜적이 흰 말을 타고 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입고 금빛 갑옷에 금빛 가면을 쓰고 왔는데, 사방에 모두 눈과 귀가 달려 있었으며, 빙글빙글 도는 답차(踏車)의 형상과도 같았다. 그들이 칼을 빼어 휘두르면서 말을 달려 앞으로 다가오자, 여러 장수와 군사들이 두려워서 벌벌 떨었는데도 김성일은 조대곤과 더불어 태연히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있었다. 왜적들은 김성일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괴이하게 여겨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였다.

부채를 휘두르는 왜적의 보병 수십 명이 그 뒤를 따라왔는데, 김성일이 군관 20여 명을 시켜 앞으로 나아가서 그들을 쏘게 하고, 또 용맹한 군사를 뽑아 돌격하게 하였으나, 모두들 서로 돌아보면서 미적거렸다. 그러자 김성일이 특별히 김옥을 불러 말하기를, “네가 전에 먼저 진격하는 공을 세우게 해 달라고 해 놓고서는 지금에 와서 회피한단 말인가?” 하니, 김옥이 즉시 앞장서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몇 리 밖에까지 쫓아가서 금빛 가면을 쓴 왜적의 기병을 쏘아 꺼꾸러뜨린 다음, 승세를 타고 뒤쫓아가서 금으로 장식한 안장, 준마, 보검 등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 싸움에서 군졸이 1000명도 못되었고 무기도 전혀 없었는데도 능히 왜적들의 예봉을 꺾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서 군대의 사기가 조금 진작되었다. 이에 곧바로 군관 원사립(元士立)과 이숭인(李崇仁)으로 하여금 적의 수급을 바치고 치계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보졸을 앞세우고 김성일이 맨 뒤에서 말고삐를 조여잡고 천천히 갔다.

이날 밤에 함안(咸安)으로 진을 옮겨 내지(內地) 지역을 수습하려고 했는데, 나명(拿命)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충분(忠憤)에 격동되어 사졸들이 목숨을 내놓고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싸우니, 강한 왜적들이 지탱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의 장수와 군사들은 어찌하여 이를 거울삼지 아니했던가.

○ 임진년 4월 22일에 김성일이 나명(拿命)으로 인해 길을 떠났다. 이보다 앞서 김성일이 일본에서 돌아와 탑전(榻前)에서 아뢰기를, “일본은 현재 군대를 움직일 정세가 없습니다.” 하였다. 그 뒤에 사변이 일어나자, 임금이 앞서 아뢴 말의 책임을 추궁하여 이 나명이 있었던 것이다.

김성일은 나명이 장차 도달할 것이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길이 막혀서 아직 도달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상의 전지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고, 큰 적은 앞에 닥쳐 있는데, 병사가 어찌 쉽사리 진영을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하니, 김성일이 말하기를, “임금의 명령을 오래 지체시켜서는 안 된다.” 하고는, 즉시 길을 떠났다. 이날 우후(虞候) 이협(李俠)이 군기(軍器)를 연못 속에 가라앉히고 창고를 불태우고서 도망쳤으며, 창원 부사(昌原府使) 장의국(張義國)도 성을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김성일이 올라가는 도중에 김수(金睟)가 나와서 체포되어 가는 것을 위로하니, 김성일은 그런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단지 말하기를,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영공께서는 힘써 왜적을 토벌해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그러자 영리(營吏)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체포되어 가는 것은 근심하지 않고 나랏일만을 걱정하니, 참으로 충신이다.” 하였다. 조대곤이 용서를 받아 다시 병사가 되었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5월 4일에 영남 초유사(嶺南招諭使) 김성일이 남원(南原)에 도착하였다. 김성일이 처음에 나명을 받고 직산(稷山)까지 갔다가 용서를 입어 다시 초유사의 명을 받았는데, 그때서야 조정이 서쪽으로 파천(播遷)했다는 말을 듣고는 통곡하면서 돌아왔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5월 5일에 영남 초유사 김성일이 함양(咸陽)을 향하여 갔다. 본도 순찰사 김수(金睟)가 함양에서 운봉(雲峯)으로 가다가 길에서 초유사를 만났는데, 초유사가 말하기를, “지방을 맡은 신하는 마땅히 죽더라도 지방을 지켜야 하는데,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단 말입니까? 온 도를 다 잃는데 구하지 못했으면서 혼자서 말을 타고 멀리 와보았자 능히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영공께서는 빨리 돌아가십시오.” 하니, 김수가 함양으로 돌아갔다가 이어 안음(安陰)으로 갔다.

김성일이 함양에 이르니, 군수 이각(李覺)이 혼자 텅 빈 관아에 앉아 있었으며, 늙은 아전 몇 명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김성일이 군수를 독려하여 고을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하자, 함안(咸安)의 전 현감 조종도(趙宗道)와 전 직장(直長) 이노(李魯)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김성일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격문(檄文)을 초(草)하였다. - 이하 격문의 본문은 문집 제3권에 실려 있다.

○ 처음에 김성일이 문사(文士)로 하여금 격문을 초하게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직접 지었는데,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붓을 먹물에 적실 겨를도 없었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5월 20일에 김성일이 함양에서 산음에 도착하니, 현감 김낙(金洛)이 김성일을 환아정(換鵝亭)에서 묵게 하고는, 다반(茶盤)을 성대하게 차려서 바쳤다. 그러자 김성일이 낯빛을 달리하면서 김낙을 불러 꾸짖기를, “이런 성찬은 신하로서 오늘날 차마 먹을 수 없다. 비록 먹는다 하더라도 음식이 목구멍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하니, 김낙이 부끄러워하면서 사과하고 물러갔다.

그 고을 사람인 오장(吳長)과 의령 사람인 이지(李旨), 단성(丹城) 사람인 김경근(金景謹)이 모두 칼을 잡고 김성일을 맞이해 뵈었는데, 김성일이 오장 등에게 말하기를, “여러 유생들이 은근하게 찾아왔으니 반드시 기이한 계책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 말을 들었으면 한다.” 하니, 김경근이 말하기를, “김수(金睟)를 목베지 않으면 대의(大義)를 펴서 나라를 회복시키는 공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김성일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라. 그래서는 일을 성공시킬 수 없다.” 하였다. 김낙이 군사 800여 명을 모았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흉악한 왜적들이 진해(鎭海), 고성(固城) 등지를 분탕질하니 본도 우수사(右水使) 원균(元均)이 퇴각하여 남해(南海) 노량(露梁)에 진을 치고 전라도 수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적병들이 진주를 향하여 간다고 큰소리치자, 진주 목사 이경(李璥)과 판관 김시민(金時敏)이 지리산으로 도망쳐서 적병을 피해 숨었다. 김성일이 이 소식을 듣고는 말을 달려가 진주에 도착하니, 온 고을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판관은 김성일이 진주로 온다는 기별을 듣고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경은 병을 핑계 대고 나오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이 명령을 전하여 그를 나오라고 하였는데, 이경은 등창이 나서 죽어버렸다.

김성일이 김시민으로 하여금 군사 수천 명을 정돈시켜 대오를 나누어 성을 지키게 하는 한편, 전 군수 김대명(金大鳴)을 소모관(召募官)으로 삼고, 손승선(孫承善)을 수성유사(守城有司)로 삼고, 허국주(許國柱)와 정유경(鄭惟敬)을 복병장(伏兵將)으로 삼았으며, 하천서(河天瑞)로 하여금 군량(軍糧)을 맡게 하고, 강기룡(姜起龍)으로 하여금 군기(軍器)를 정돈하게 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적병이 고성(固城)으로부터 사천(泗川)에 와서 주둔하고는 장차 진주를 침범하려고 하였는데, 김성일이 군관 중에서 용감하고 건장한 사람 10여 명을 시켜 남강(南江)을 건너가 쳐서 쫓게 하니, 왜적들이 이에 물러갔다. 또 군사를 나누어 진격하여 사천성 아래에 가까이 다가가서 왜적들이 나무하고 물 긷는 길을 끊어 버리자, 왜적들이 퇴각하여 고성으로 되돌아갔다.

또 전 군수 김대명(金大鳴)을 도소모관(都召募官)으로 삼아 생원 한성(韓誠)ㆍ정승훈(鄭承勳)과 함께 군사 600여 명을 모집한 다음, 고성의 의병장(義兵將) 최강(崔堈) 등과 군사를 합쳐서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복병을 매복시켜 밤중에 공격하게 하기도 하니, 얼마 안 되어 왜적의 무리가 무너져서 웅천(熊川)과 김해(金海) 등지로 달아났다. 김대명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창원의 마산포(馬山浦)에 들어가서 진을 쳤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각도 사림(士林)의 의병을 일으키는 격문이 빈번하게 나돌았다. - 이로부터 국가의 명맥이 점차 활발하게 떨쳐 일어나는 기운이 있었다.

○ 초유사가 통유문(通諭文)을 내기를,

“해적이 함부로 날뛰면서 우리의 성지(城池)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우리의 인민을 도륙하였다. 그리고는 동서(東西)로 충돌하면서 무인지경에 들어오듯이 거침없이 쳐들어왔다. 그런데도 우리 경상도의 67개 고을 중에서 일찍이 한 사람의 의사(義士)도 대의(大義)를 선창하여 군사를 일으켜 나라의 치욕을 씻는 자가 없어서, 가만히 앉은 채로 온 도를 왜적들의 손에 넘어가게 하였다. 이에 종사(宗社)가 깃술보다 위태롭게 되었고, 정기(正氣)라고는 씻은 듯이 없어져, 산하(山河)가 수치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무릇 혈기가 있는 사람치고 그 누구인들 통분스럽게 여기지 않겠는가.

당직(當職)은 왕명을 받들고 이 지방에 도착하여 눈물을 뿌리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왜적들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이미 여러 고을이 무너진 데다 병력은 이미 꺾여진 터이니, 맨주먹을 휘두르면서 시퍼런 칼날을 무릅쓴 채 홀로 서서 강개한들 어찌 하겠는가.

어렴풋이 듣건대, 족하께서는 민간에서 떨쳐 일어나 의병을 불러모아 강중(江中)에서 왜적의 선척을 섬멸해 대의의 명성을 한 고장에 퍼지게 함으로써,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들 기운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니 선대부(先大夫)께서는 후손다운 후손을 두었다고 하겠다. 그 뜻을 관철하도록 힘쓰면서 더욱더 의병을 많이 일으켜, 역내(域內)에 있는 강포한 왜적들을 도륙하고 도탄에 빠진 생민을 구제하라. 그리하여 위로는 군부의 원수를 갚고, 아래로는 충효의 가문을 빛낸다면,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당직은 비록 노둔하고 용렬하기는 하지만, 충의는 천성에 뿌리박고 있어서 한 번 죽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에 있어서는 감히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에 동지를 규합하여 의열(義烈)로써 격려한 다음, 족하 등과 더불어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와 나라를 중흥시키는 큰 공로를 함께 이루고자 하는데, 족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아서는 충의로운 선비가 되고, 죽어서는 충의로운 귀신이 되도록 족하께서는 힘쓰기 바란다.”

하였다. - 이상은 의령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에게 내린 것이다.
○ 임진년 6월 6일에 박진(朴晉)을 경상 좌병사로 삼았다. 이때 박진이 김수(金睟)의 근왕(勤王)하는 군사를 따라서 온양(溫陽)까지 갔다가 왕명을 받고 다시 내려와서 경상도에 도착하였는데, 사천(泗川), 하동(河東), 곤양(昆陽), 진주(晉州) 등지의 왜적들의 기세가 한창 강성하였기 때문에 낙동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김성일이 우도에 있으면서 공문을 보내어 이르기를,

“장군께서는 삼가 포상하는 어명을 받아 병권(兵權)을 잡고 변방에 내려왔으므로, 위세와 명성이 이미 드러나서 온 도의 사람들이 간성(干城)처럼 믿고 있으나, 현재 좌도의 길이 막히고 끊어져서 위무(威武)를 쓸 길이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진주는 장차 왜적들의 침공을 당하게 되어 형세가 매우 위급합니다. 당직의 수하에 비록 1000명의 병졸이 있지만, 백발 서생인 저는 군대의 일에 익숙하지 못하니, 어찌 능히 공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만약 단기(單騎)로라도 이곳으로 온다면, 의병을 모두 장군의 휘하에 맡길 생각입니다.

좌병사와 우병사가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여 사천에 남아 있는 왜적들을 토멸함으로써 거진(巨鎭)인 진주를 보전하여 내지를 지키는 일이 장군께서 발 한 번 내딛는 사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좌도와 우도의 책임이 다르다는 이유로 핑계를 삼지 말고, 종전에 품었던 자신을 잊고 국난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던 뜻을 실현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6월 15일에 전라 감사 이광(李洸)이 김수와 더불어서 전주(全州)로 도망쳐 돌아왔다가 김수는 곧바로 함양(咸陽)으로 향해 가고, 이어 거창(居昌)에 도착하였다. 그때 김성일 역시 본현(本縣)에 머물러 있었다.

○ 임진년 6월 17일에 곽재우가, 김수가 경상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몹시 통분하면서 말하기를, “당초에 왜적들이 쳐들어왔을 적에는 조금도 방어할 계책이 없었고, 지금 근왕(勤王)함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의리를 몰랐다. 그러고서도 우리 도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감히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고 다시 왔다. 내가 군사를 출동시켜 먼저 그를 치겠다.” 하였다. 그러다가 초유사 김성일이 준열하게 꾸짖자, 이에 그쳤다.

○ 임진년 6월 17일에 초유사 김성일이, 곽재우가 충렬한 인물인데도 모함을 당하는 것을 원통하게 여겨, 그의 무죄를 밝히고자 치계하기를,

“의령 사람 곽재우가 군사를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일에 대해서는 이미 누차 계달하였습니다. 지금 의외의 변고가 뜻밖에 나왔는데, 적절히 조처할 방도를 모르겠으니,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곽재우는 바로 고(故) 통정대부(通政大夫) 곽월(郭越)의 아들이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손자 사위로서, 중간에 무학(武學)을 배우다가 이를 버리고 글을 읽었습니다. 그의 사람됨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으며, 거상(居喪)함에 있어서 극진히 슬퍼하여 향리(鄕里)에서 자못 효행을 칭송하였습니다.

변란이 처음 일어났을 때 병사와 수사가 잇달아 도주하고, 왜적들이 밀양(密陽)을 범하게 되자, 감사 김수는 절제하는 장수가 포위된 성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서 영산(靈山)으로 퇴각해 있다가 곧바로 초계(草溪)로 향하였습니다. 그러자 곽재우가 분연히 일어나서 말하기를, ‘병사와 수사가 도망하였는데도 처형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서 지금은 또 왜적들이 좌도(左道)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초계로 퇴각해 달아났다. 그러니 감사 역시 베어 죽이는 것이 옳다.’ 하고는, 칼을 잡고 여러 길목에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향리 사람들이 극력 말리므로 중지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우병사 조대곤(曺大坤) 및 방어사(防禦使), 조방장(助防將), 수령(守令) 등이 모두 풍문만 듣고 무너져서 달아난 탓에, 열흘 사이에 왜적이 서울의 대궐을 범하였습니다. 그러자 곽재우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의분에 못 이겨 말하기를, ‘이런 무리들은 왜병을 호위하여 서울로 들어가 군부에게 화를 끼친 것이니, 모두 베어 죽여야 한다.’ 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항상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자기 집 재산을 흩어 장사들을 모집하니, 그의 첩이 ‘어찌하여 이러한 개죽음을 하려고 하십니까.’ 하면서 말리자, 곽재우는 몹시 노하여 칼을 빼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처자식의 의복조차도 군졸의 처자식들에게 다 내주었으므로, 가업이 이로 인해 탕진되어 굶주림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이에 그의 매부인 허언심(許彦深)의 집에 처자식을 맡긴 다음, 모집한 장사들을 거느리고 가면서 왜적을 치겠다고 큰소리치자, 향리 사람들이 듣고는 모두들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벌써 의령과 초계 두 고을은 모두 왜적들이 휩쓸고 지나가 텅 비어 있었으며, 의령의 관고(官庫)가 불에 타버린 탓에 곽재우의 군사는 식량이 없었습니다. 이에 초계와 신반현(新反縣)의 창고 곡식을 내어 군사에게 먹였는데, 합천 군수(陜川郡守) 전현룡(田見龍)이 도둑이라고 논하여 병사에게 보고하니, 병사가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의병에 응모하였던 자들이 그 말을 듣고는 뿔뿔이 흩어지려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 지방에 도착한 처음에 즉시 글을 보내서 그를 부르자 군위(軍威)가 다시 진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곽재우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줄곧 왜적을 쳤는데, 적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앞장서서 힘차게 돌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거느린 전사들이 용기백배하여 누구나 할 것 없이 일당백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싸울 때에는 반드시 붉은 비단으로 만든 철릭(帖裏)을 입고 당상관의 전립(氈笠) 차림을 하고서, 스스로를 ‘천강장군(天降將軍)’이라 불렀습니다.

말을 달려 적진을 유린하였는데, 오고가는 것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여 왜적들이 철환(鐵丸)을 일제히 쏘아도 맞히지 못하였습니다. 혹은 말을 타고 천천히 가서 행군하는 절도로 삼기도 하였으며, 혹은 사람을 시켜 피리도 불고 호루라기도 불게 하여 두려워하는 뜻이 없음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숲 속에 의병(疑兵)을 많이 풀어놓고 피리도 불고 북도 치고 하면서 떠들어대었으며, 혹은 곳곳에 복병을 숨겨놓아 고요하기가 마치 사람이 없는 듯하다가 왜적들이 이르면 갑자기 쏴 죽이기도 하였으며, 혹은 왜적의 배를 뒤쫓아가 해안에서 활을 쏘기도 하여, 어느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는 싸우면 반드시 이겼고 왜적의 머리를 벤 것이 모든 장수 중에 가장 많았으며, 쏴 죽인 자는 그 숫자를 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왜적들도 그를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고 부르면서 감히 해안에 올라와 도둑질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의령(宜寧), 삼가(三嘉) 두 고을의 백성들은 모두 생업에 편안하여 농사에 힘써서 평소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내의 나머지 백성들이 지금까지 보전된 데에는 곽재우의 공이 아주 큽니다.
그런데 갑자기 삼도(三道)의 군대가 수원(水原)에서 무너졌다는 말을 듣고는 미친 사람과도 같이 위태로운 말과 망녕된 말을 수없이 지껄여대었습니다. 이에 순찰사(巡察使)가 비록 편지를 보내어서 공적을 표창하고 계문하여 공을 아뢰었으나, 역시 뜻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혹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면 반드시 칼을 움켜잡고 성을 내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갑자기 두 차례나 순찰사의 영문(營門)에 격서(檄書)를 보내어서 낱낱이 그 죄를 열거하고는 토벌하겠다고 떠들어대었습니다. 그리고 또 각 고을의 의병장들에게 통문을 돌려 토죄(討罪)하겠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는 놀라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순찰사가 신에게 공문을 보내어 의령 고을에 명하여 곽재우를 잡아 가두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곽재우가 실제로 역심(逆心)을 품었다고 한다면, 현재 정병(精兵)을 거느리고 있으니 한 사람의 역사(力士)로는 잡을 수가 없을 것이며, 만약 역심을 품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편지 한 장으로도 넉넉히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곧바로 곽재우에게 수서(手書)를 보내어 다방면으로 비유해 깨우쳤으며, 김면(金沔)도 글을 보내서 경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곽재우가 곧바로 마음을 돌이켜 잘 따랐습니다. 진주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는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구원하고자 이미 길을 떠났습니다.

곽재우는 일개 도민으로서 감사를 범하려고 하여 죄를 성토하고 격서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것이 비록 스스로는 나라를 위한 마음에서 분통스러워 이렇게까지 한 것이라고는 하나, 행적이 난민(亂民)에 가까운 만큼 즉시 토죄하여 제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곽재우는 온 나라가 함몰된 뒤에 능히 외로운 군사로 용감히 왜적을 쳤으므로, 도내의 잔민(殘民)들이 그를 간성(干城)처럼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난폭한 말을 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베어 죽인다면, 보전되어 있는 남은 성은 왜적을 막을 계책이 없어지고, 군민(軍民)들은 그의 죄를 모르고서 한꺼번에 흩어져 떠날 것입니다. 이에 신이 사태를 미봉시켜 진정시킬 계획으로 재삼 경계하였던바, 곽재우가 이미 신의 말을 따라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순찰사(都巡察使)에게 죄를 얻었으니, 서로 용납하기가 어려워서 다른 변고를 야기시킬까 염려스럽습니다.

신이 듣건대, 을묘년의 왜변(倭變)이 일어났을 때 전라 감사 김주(金澍)가 영암(靈巖)에서 다른 고을로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전 수원 부사(水原府使) 윤기(尹箕)가 당시에 유생으로서 포위된 성 안에 있다가 칼을 뽑아 베어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김주는 성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여 잘 처리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논자(論者)들이 지금까지도 윤기의 용기에 대해 칭송하고, 김주가 능히 포용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곽재우의 일이 비록 미치광스럽고 망녕되기는 하나, 그의 마음은 실로 다른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만약 김주가 처리한 바와 같이 대처한다면 반드시 조용해져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김수(金睟)에게 글을 보내어 선처하도록 부탁한 결과, 걱정될 만한 변은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김수가 이미 곽재우를 반적(叛賊)이라고 계문하였으며, 또 다른 사람을 사주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이 일로써 그를 죄준다면 그가 죄에 승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 도의 인심을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몹시 마음아프고 절박합니다.

곽재우가 충의(忠義)를 일으켜 분발한 상황과 용감히 왜적을 친 공은 온 도에 널리 퍼져서 아이들이나 군졸들까지도 모두 곽 장군(郭將軍)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리고 듣건대 그는 용병(用兵)에 뛰어나서 장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만약 미치광스럽고 망녕스러운 짓을 한 데 대한 주벌을 조금만 늦추어 준다면, 반드시 공을 세워 보답할 것입니다.

신은 불행하게도 명을 받든 이후에 두 번이나 이런 변을 만났습니다. 신이 4월 중에 호남 길로 오다가 운봉현(雲峯縣)에 이르렀을 때 호남 사람들이 순찰사 이광(李洸)이 근왕(勤王)하는 데 늦게 달려갔다는 이유로 토죄하고자 하면서, 신에게 비밀히 말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에 신이 대의로써 그 말을 꺾었으며, 곧장 김수와 상의하여 이광에게 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김수가 말하기를, ‘그들이 근왕하는 데 늦게 달려갔다는 이유로 토죄하려고 하니, 의로운 선비라고 이를 만하다. 그런데 만약 이 사람을 베어 죽인다면 온 도의 인심이 더욱 격해질 것이다. 이광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그의 말에 따라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곽재우의 일이 꼭 저번의 그 일과 같습니다. 김수가 진실로 호남 사람들을 조처한 의리로써 곽재우에 대해 조처한다면, 난처한 일이 없을 듯합니다. 신과 김면이 곽재우에게 보내 경계하여 신칙한 글과 곽재우가 보낸 답서를 아울러 등서(謄書)하여 올려보냅니다.”

하였다. - 이 계사(啓辭)에서 공의 충후(忠厚)한 평소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있다.
○ 임진년 6월 23일에 경상 초유사 김성일이 전 현풍 군수(玄風郡守) 엄홍(嚴泓)을 본현의 의병장으로 삼고, 곽찬(郭趲)을 소모관(召募官)으로 삼았다. 이때 현풍 등지의 대가거족(大家巨族)들이 모두 낙동강을 건너 가야산(伽倻山)과 덕유산(德裕山) 등으로 들어가 버렸으므로, 김성일이 영을 전하여 엄홍 등을 불러와서 본임(本任)에 임명하는 한편, 격문을 보내어 이민(吏民)들을 효유하였다. - 효유한 본문은 본집 제3권 ‘통유현풍사민문(通諭玄風士民文)’에 실려 있다.

○ 경상도 삼가(三嘉)의 학유(學諭) 박사제(朴思齊) 형제가 군사를 모집하여 900여 명을 얻고, 봉사(奉事) 노흠(盧欽), 유생(儒生) 권양(權瀁)과 단성(丹城) 사람 권세춘(權世春) 등도 군사를 일으켰다. 김성일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그날 즉시 치계하고는 함안(咸安) 사람 이정(李瀞)을 소모관으로 삼았다. 이때 함안 군수 유숭인(柳崇仁)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이때에 와서 임소(任所)로 돌아왔으므로, 그와 더불어 일을 함께 처리하였다. 이정이 군사 1000여 명을 모집하여 이를 군수에게 맡겨서 진해(鎭海), 창원(昌原)에서 충돌해 오는 왜적들을 막았는데, 싸움에 이길 적마다 그 공을 군수에게 돌리고 자신이 차지하지 않았다. 박사제가 봉사(奉事) 윤탁(尹鐸)을 대리 장수로 삼아 그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 곽재우에게 소속되게 해 영산(靈山)과 창녕(昌寧) 사이를 오가는 왜적을 막도록 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7월 10일에 보낸 영남 초유사의 관문(關文)에 이르기를, “이달 23일에 창원 부사(昌原府使)의 치보(馳報)에, ‘이달 19일에 성에 항시 머물러 있던 왜적 계병부(桂兵部) 33명이 성 안에 사는 잡인(雜人) 10여 명을 불시에 붙잡아가서 물건을 짊어지게 한 다음, 기관(記官) 박춘정(朴春丁)과 함께 김해(金海) 바다의 선척을 살피러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항상 머물러 있던 왜적들도 본토로 돌아갈 계책을 하고 있다.’ 하였다.

지금 김해에서 나온 사람을 만나서 왜적들의 거취를 물어보았더니, ‘김해 바다 각처에는 적선(賊船)이 즐비하고, 좌우 산기슭에는 가가(假家)가 잇대어 있었으며, 김해와 밀양을 오가는 사람들은 소를 잡고 술을 빚어 서로 함께 마시고 먹으면서 마치 이웃 마을 사람처럼 지냈다. 이렇게 10여 일을 지내는 사이에 왜적 6명이 서울에서 내려와 귀에 대고 말을 전해 주자, 뭇 왜적들이 일시에 통곡하였으며, 두 고을을 오가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조리 베어 죽였는데, 죽인 숫자가 2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각처에 있던 가가들을 모두 불살랐으며, 강에 가득 떠 있던 배도 하룻밤 사이에 다 내려갔다.’고 하였는바, 군사를 거두어 도망갈 계획을 하는 것 같다.

귀도의 금산(錦山)과 무주(茂朱)에 있는 왜적들이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 통지해 달라.” 하였다. - 이상은 전라도에 보낸 관문이다.

○ 임진년 7월 10일에 영남 초유사가 보낸 관문에 이르기를, “본도 우로(右路)의 여러 의병 2만여 명이 날마다 왜적을 쳐서 고령(高靈) 이하의 지역은 이미 회복되었으며, 경성(京城)에서 도망쳐 온 왜적들도 진퇴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여 나왔다가는 도로 들어갔다. 그러니 산중에 피난한 사람들에게 급히 이 뜻을 통지하여, 사람마다 떨쳐 일어나 왜적을 토멸하도록 하라.” 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8월 4일에 초유사 김성일을 좌순찰사(左巡察使)로 삼았다. 김성일이 아뢰기를, “5월 이후로 신이 네 차례 장계를 올렸습니다.” 하였다. - 이하 본문은 속집(續集) 제3권 ‘좌감사장(左監司狀)’에 실려 있다.

○ 임진년 8월 10일에 경상좌도 감사 김성일이 아뢰었다. - 이하 본문은 속집 제3권 ‘이배좌감사시론우도기의장(移拜左監司時論右道機宜狀)’에 실려 있다.

○ 임진년 8월 27일에 경상 우도의 사민(士民)들이 김성일을 좌도 감사로 옮겨 제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애처롭기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젖을 잃은 듯하여, 통문을 돌려 사람을 모아서는 좌도로 떠나가는 길을 기필코 막으려고 하였다. 그 통문에 이르기를,

“우리 영남 지방은 흉악한 왜적들이 침범해 온 이후로 열읍(列邑)의 성이 토붕와해되어, 왜적들이 마치 무인지경에 들어오듯이 거침없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에 병영의 장수는 썰물처럼 퇴각하고, 고을의 수령은 쥐새끼처럼 도망치고, 백성과 군졸은 무너져 숨고, 읍과 촌락이 텅 빈 채 쓸쓸하게 되었는바, 전 지역이 모두 흉악한 왜적들의 소굴이 되어 다시는 손쓸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초유사 김 상공(金相公)께서 애통해하는 성상의 교지를 나라가 어지러워진 뒤에 받들고는, 간담을 키우고 눈물을 뿌리면서 이 왜적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음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회복시키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이 지방에 도착한 즉시 열읍(列邑)에 통문을 보내 효유하여 군신(君臣)의 명분을 밝히고, 복수의 대의를 선창하였습니다. 말이 매우 간절하고 충의가 솟구쳤으므로, 이를 들은 사람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를 본 사람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소리로 서로 호응하고, 멀고 가까운 데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서, 수백 명의 피곤에 지치고 흩어진 군졸로써 돌진해 들어오는 흉악한 왜적에게 대항하여, 요해지를 차단함으로써 왜적들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회복될 가망이 있게 된 것이 그 누구의 힘이겠습니까.

지금 듣건대, 초유사를 좌도 감사로 옮겨 임명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단지 우리 몇 고을 사민(士民)들만 복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아마도 장수와 군사들 역시 마음이 이반되어 반드시 흩어질 기세가 있으니,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산을 쌓는 공을 이루지 못해, 또다시 나라를 회복시키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에 망했다가 다시 보존된 것은 초유사 김 상공께서 왔기 때문이요, 뒤에 거의 성공될 뻔하다가 다시 무너진 것은 초유사 김 상공께서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오고가는 것이 똑같이 국사를 위한 것이지만, 일의 급하고 급하지 않은 형세는 피차의 구별이 있는 법입니다. 좌도와 우도가 같이 한 도이니, 왜적을 평정할 기회는 반드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뜻은 여러 유생들과 더불어 구공(寇公)을 1년 동안만 더 빌려 달라는 소(疏)를 만들어 선전관(宣傳官)이 가는 편에 부치는 한편, 초유사께 이곳에 남아서 우리를 살려 달라는 청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군들께서도 반드시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군들께서 고을의 자제(子弟)들을 거느리고서 모두 저의 향교에 왕림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유학(幼學) 강위로(姜渭老) 등이 통문을 돌립니다.”

하였다.
○ 임진년 8월 27일에 경상좌도 감사 김성일이 거창(居昌)에서 초계(草溪)로 옮겨 주둔하기 위하여 장차 낙동강을 건너려고 하였다. 사인(士人) 이대기(李大期) 등이 길을 막고 머물러 있기를 청하니, 김성일이 말하기를, “이미 임금의 명령이 계시니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낙동강을 건너 좌도로 들어가서는 강우(江右)의 여러 사자(士子)들이 왜적을 토벌한 일을 크게 칭찬하면서 낱낱이 논공(論功)하여 아뢰었다. 그러자 뭇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흡족해하여 강좌(江左)의 인심이 흡연해졌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8월 27일에 경상도 합천(陜川)의 진사(進士) 박이문(朴而文)과 안음(安陰)의 진사 정유명(鄭惟明) 등이 상소하여 김성일을 그대로 우도 감사로 삼아 우도를 안무(按撫)하게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토포사(討捕使) 한효순(韓孝純)을 경상좌도 순찰사로 삼았다.

이때 여러 사신들이 모두 샛길을 통해 다녀서 큰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효순이 순찰사로 임명된 뒤에 항상 자포(紫袍)를 입고 나각(鑼角)을 울리면서 감사의 위의(威儀)를 성대히 차리고 다녔다. 그러자 각 고을에 주둔해 있던 왜적들이 성 위에 올라가 손으로 가리키면서 바라보았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로부터 도로가 비로소 개통되었으며, 사람들이 그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다시금 조정 관원의 위의(威儀)를 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9월에 김성일이 좌도로부터 낙동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서 우도를 안무하였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9월 16일에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정랑(正郞) 박성(朴惺)을 모곡차사원(募穀差使員)으로 삼았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임진년 9월 24일에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왜적들이 함부로 내지를 침입한 일로써 전라 감사 및 좌도와 우도의 의병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 임진년 10월 2일에 왜적들이 소촌(召村) - 진주의 역(驛) 이름이다. - 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첨정(僉正) 조종도(趙宗道)를 보내어 전라좌도와 우도의 의병 및 여러 장수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전라우도의 의병장 최경회(崔慶會)가 남원(南原)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운봉(雲峯), 함양(咸陽)으로 향하여 오다가 인하여 산음(山陰)과 단성(丹城)으로 향하였다.
○ 임진년 10월 6일에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이 또다시 정랑(正郞) 박성(朴惺)을 보내어 전라좌도의 의병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임계영(任啓英)이 남원에서 함양으로 왔다.

○ 임진년 10월 6일에 진양(晉陽)이 왜적에게 포위당한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도 구원병은 이르지 않고 왜적들의 기세는 날로 강성해졌다.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온갖 방법으로 계략을 내어 밤낮으로 방어하면서, 항상 한 마음으로 함께 죽을 것으로써 여러 군사들을 권면하고, 몸소 밥과 미음을 가지고 다니면서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을 구해 주었으며, 탄환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속에서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때때로 눈물을 흘리면서 타이르기를, “온 나라가 함락되어 남아 있는 곳이 적은바, 단지 이 한 성에 나라의 명맥이 매여 있다. 이번에 또 싸움에 진다면 우리나라는 끝장나게 될 것이다. 더구나 한 번 패한다면 성 안에 있는 수백 명의 목숨이 모두 칼 끝의 원귀(冤鬼)가 될 것이다. 아아, 너희 장사들은 온 힘을 다하여 용감히 싸우되, 죽을 각오를 하여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니, 사졸들이 감격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싸움이 오래되어 화살이 다 떨어지자 성 안의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였다. 이에 김시민이 밤중에 사람을 시켜 성을 넘어가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감사가 무기를 보내 주려고 하였으나,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에 중한 상을 내걸고 모집하여 영리(營吏) 하경해(河景海)를 뽑아서 그 일을 맡겼다. 하경해가 밤을 틈타 몰래 빠져나와 성 아래에 도달하자, 성문을 열고 하경해를 맞아들여서 장전(長箭) 100여 개를 얻어 이로써 잇대어 사용하였다. 그렇게 되자 사졸들의 기세가 배나 고조되었다.

○ 임진년 10월 10일에 진주 목사 김시민이 적병을 진주성 아래에서 크게 쳐부수니 남은 적이 도망하여 본진으로 돌아가므로, 추격하여 소촌역(召村驛)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본도 순찰사 김성일이 이때 거창(居昌)에 있었는데, 승리하였다는 보고가 도착하자 즉시 달려서 본주에 이르러서는 적의 시체가 서로 베고 누웠고 비린 피가 땅에 흥건한 것을 보고는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인하여 성 안에 들어가서 목사가 누워 있는 방 안에 - 김시민이 탄환에 맞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 나아가서 한참 동안이나 위로하고 감탄하였다. 얼마 뒤에 김해 부사(金海府使) 서예원(徐禮元)을 임시 목사로 삼아 그 군사를 대신 거느리게 하고는 그날로 진주의 전투 상황을 치계하여 운운하기를, “김해와 부산에 머물러 주둔해 있던 왜적들이 …….” 하였다. - 이하의 본문은 본집 제3권 ‘치계진주수성승첩장(馳啓晉州守城勝捷狀)’에 실려 있다.

○ 처음에 진주성의 위급함을 여러 진영에 알리니 정인홍(鄭仁弘)이 가장(假將) 김준민(金俊民)과 중위장(中衛將) 정방준(鄭邦俊) 등으로 하여금 스스로 정예로운 사수(射手) 500여 명을 선발하여 달려가서 구원하도록 하였다. 10월 9일에 단계(丹溪)에 도착하였는데, 해가 이미 돋았다. 어떤 큰 마을이 시내 동쪽에 있고 그 앞에 대숲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피곤하고 말은 병이 났으므로 안장을 풀고 밥을 짓고 있었다. 전라우도 의병대장 최경회(崔慶會)는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막 단성(丹城)에 주둔하고 있다가 합천(陜川)의 군사와 세력을 합하여 앞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진주와 단성에서 난을 피해 온 사녀(士女)들이 산에 올라가서 바라다보고는 말하기를, “전라도의 대군이 본현에 머물러 있으며, 또 합천의 군사가 잇달아 도착할 것이니, 잠깐 동안이나마 죽음을 면할 수 있겠다.” 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장수와 군사들이 길을 떠났는데, 짐을 실은 부대가 앞장섰다. 몇 리쯤 가자 앞서 가던 자가 달려와서 외치기를, “수많은 적병이 이곳에 도착하였다.” 하였다. 김준민이 놀라 일어나서 바라보니, 단성의 청고개(靑古介)로부터 단계의 산야에 이르기까지 촌락을 일시에 분탕질하여 연기와 불꽃이 하늘까지 치솟고 포성이 땅을 진동하였다. 김준민 등은 뜻밖의 상황에 처하자 형세가 매우 다급하게 되어 몸을 날려 말을 타고는 대숲 밖에 나가서 아래위로 말을 달려 돌진하였다.

그런 즈음에 군관(軍官) 윤경남(尹景男) 등도 달려와서 큰소리로 외치기를, “두 장수가 이미 적의 포위 속에 들어가 있는데, 너희들은 와서 구하지 않을 것인가?” 하였다. 그러자 500여 명의 군사가 고함을 지르면서 한꺼번에 진격하니, 왜적들이 우리 군사를 바라다보고는 대숲 속으로부터 점점 빠져나갔는데, 많은 군사가 매복하고 있을까 두려워하여 접전한 지 얼마 안 되어 퇴각하여 시냇물을 건너갔다.

양쪽 진이 대치한 곳에는 화살은 비오듯이 쏟아지고, 포성은 천둥을 울리는 것 같았는데, 왜적들은 오히려 용감하게 싸우면서 물러가지 않았다. 이때 마침 승군(僧軍)의 의병장 신열(信悅)이 군사를 거느리고 잇달아 도착하매 성세(聲勢)가 더욱 장해졌으므로 군사들의 사기가 배가(倍加)되어 한꺼번에 힘을 합하여 공격하니, 적이 마침내 물러가 달아났다. 이에 왜적을 추격하여 청고개까지 이르니, 왜적들이 깃발을 버리고 산으로 달아났다. 또 읍내를 바라보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가리고 포성은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정방준이 김준민을 불러 말하기를, “저것은 반드시 전라도 군사가 왜적들과 서로 싸우는 것이니, 구원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는, 즉시 말을 달려서 단성의 길을 향하여 가니, 넘어진 시체가 길바닥에 서로 이어져 있었다.

전라도의 의병은 이미 무너져 퇴각하였으며, 남은 적병이 뒤에 떨어져 분탕질하고 있었는데, 우리 군사가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형세를 관망하다가 물러가 버렸다. 장수와 군사들이 물을 길어서 창고의 불을 끄고, 타다 남은 쌀 600여 석을 거두어 관인(官人)을 불러 이를 지키게 하였다.

그 다음 날 진양으로 진군하니, 성은 이미 포위가 풀렸다.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들 ‘합천 군사다.’라고 하면서 이르기를, “어제 왜적들이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끌고서 달아나는 놈이 많았고 지금은 퇴각해 도망치기에, 모처에서 접전한 군사들이 왜적들의 예기(銳氣)를 꺾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더니, 필시 그대들일 것이다.” 하였다.
김준민 등이 왜적을 뒤쫓아 함안(咸安)까지 갔으나, 추격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최강(崔堈)과 이달(李達)도 군사를 거느리고 뒤쫓아 반성(班城)까지 가서 적의 수급 20여 개를 베었다. - 《경상순영록》에 나온다.

○ 선조 26년 계사(1593) 1월 8일에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이 장계하기를,

“지난해 12월에 진주성이 장차 함락되려고 할 때 신이 장악원 첨정(掌樂院僉正) 조종도(趙宗道)와 공조 정랑(工曹正郞) 박성(朴惺)을 나누어 보내어 호남의 좌도와 우도의 의병(義兵)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임계영(任啓英), 최경회(崔慶會) 두 장수는 호남과 영남은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은 형세가 있어서 존망(存亡)과 성패(成敗)가 매우 긴밀하다고 하면서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서로 잇달아 달려와 응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주부(主簿) 민여운(閔汝雲)도 태인(泰仁)으로부터 와서 비록 진주의 싸움에는 미처 참가하지 못하였지만, 인하여 성주(星州)와 지례(知禮)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본도의 의병대장 김면(金沔), 정인홍(鄭仁弘) 등과 힘을 합하여 왜적을 토벌하였는데, 여러 번 접전하여 적병을 죽인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에 왜적들의 기세가 자못 꺾여져서 숨어만 있고 나오지 못하고 있는바, 온 도의 사람들이 바야흐로 중하게 의지하여 함께 앞뒤에서 협격하는 형세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호남 사람이 행재소(行在所)에서 돌아와 전하기를, ‘조정의 의논이 두 의병장을 불러와 근왕(勤王)하게 하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두 장수가 이 기별을 듣고는 편히 앉아 쉴 겨를도 없이 즉시 올라가려고 합니다. 본도가 적에게 함몰된 나머지 보존된 곳은 5, 6개의 쇠잔한 고을뿐인데, 흉악한 왜적들이 사방에 가득 차 있으면서 반드시 이를 삼켜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서는 호남의 군사가 비록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로 응원하더라도 또한 성사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군사를 거두어 물러간다면, 왜적들이 구원군이 없는 것을 알고는 거침없이 휘몰아쳐 올 걱정이 결단코 조석간에 있을 것입니다.

본도가 만약 함몰된다면 호남이 그 다음에 병화를 입게 될 것이며, 호남이 지탱하지 못한다면 나라를 회복하는 터전이 아마도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정에서 충분히 참작하여 헤아리시어 두 장수를 본도에 머무르게 해서 보장(保障)이 견고해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체찰사(體察使) 또한 사실을 낱낱이 들어 치계하자, 조정에서 두 의병장을 불러 올리는 일을 정지하였다.
○ 계사년 4월 29일에 영남초유사 겸 우도순찰사 김성일이 졸하니, 안집사(安集使) 김늑(金玏)에게 대신 맡게 하였다.

위의 《난중잡록(亂中雜錄)》은 고(故) 진사(進士) 조공 경남(趙公慶男) 선술(善述)이 지은 것인데, 산서(山西)는 그의 호(號)이다. 그의 선대는 한양인(漢陽人)으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혜(趙惠)의 후손이며, 호조 판서(戶曹判書) 조숭진(趙崇進)의 현손(玄孫)이다. 그의 아버지인 사직(司直) 조벽(趙璧)이 남원 양씨(南原梁氏)에게 장가들어서, 인하여 남원부 동쪽의 원천리(元川里)에 살았다.

융경(隆慶) 경오년(1570, 선조 3)에 공이 태어났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매우 총명하고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독실하게 공부하고 몸소 실행하여 유림(儒林)의 중망(重望)을 짊어지고 있으면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조모가 늙은 나이에 의탁할 데가 없었으므로 참고 견디면서 그러지 못한 채 시(詩)를 지어 자기의 뜻을 나타내었다.
정유년(1597, 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략해 오자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가 병란을 피하였는데, 왜적들이 수색 토벌하였으나 공을 따른 사람 300여 명이 아무런 부상도 당하지 않은 채 모두 살아났다. 그 뒤 전라 병사(全羅兵使) 이광악(李光岳)의 막하(幕下)로 들어갔다가 뒤에 다시 명(明) 나라 장수인 도독(都督) 유정(劉綎)의 선봉이 되어 왜적을 쏘아 죽인 공로가 많았다.
조공(趙公)은 임오년(1582, 선조 15)에서 무인년(1638, 인조 16)까지 57년간의 사실을 날마다 기록하였는데, 공이 기록한 임진왜란 중의 충신(忠臣)과 절사(節士)의 사적(事跡)은 능히 착한 사람으로 하여금 권장되는 바가 있게 하니, 실로 후세의 한 귀감(龜鑑)이다. 그중에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있으면서 선조(先祖)의 사적을 들은 것을 낱낱이 수록한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본집에 누락되어 있는 글이 있는 듯하기에, 아울러 이를 초록(抄錄)하여 후일의 참고에 대비하게 하였다.

[주-D001] 임진년 6월 17일 : 《대동야승(大同野乘)》 제26권에 실려 있는 《난중잡록(亂中雜錄)》 제1권에는 임진년 6월 19일로 되어 있다.[주-D002] 경상도 …… 하였다 : 《대동야승》 제26권에 실려 있는 《난중잡록》 제1권에는 7월 6일 기사로 되어 있다.[주-D003] 구공(寇公)을 …… 소(疏) : 김성일을 더 머물러 있게 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구공은 구순(寇恂)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구순이 영천 태수(穎川太守)가 되었을 적에 치적을 세우고 이임(離任)되었는데, 그 뒤에 광무제(光武帝)가 남정(南征)할 때 구순이 광무제를 따라가 영천에 이르렀다. 그러자 영천의 백성들이 길을 막고서 광무제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다시금 구군(寇君)을 저희에게 1년 동안만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後漢書卷16 寇恂列傳》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금대유고(錦帶遺稿)》 [금대 이가환(李家煥)]

학봉 김 선생이 올린 신미년(1571, 선조 4) 상소의 발문(跋文)

일에는 천만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일러 ‘공언(公言)’이라고 하고, 천만 사람이 말하려고 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한 사람이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일러 ‘감언(敢言)’이라고 한다. 무릇 천만 사람이 말하려고 해도 능히 말하지 못한 것을 한 사람이 말한다면, 이 사람은 천만 사람의 한 사람인 셈인데, 학봉 선생이 올린 이 상소가 그런 것이다. 그 뒤에 단종(端宗)이 복위(復位)되고 사육신(死六臣)과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잇달아 신원(伸冤)된 것은 모두 이 상소에서 발단된 것이다.
이 상소는 처음에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았는데, 200여 년이 지난 뒤에 옛 책상자 속에서 나와 속집(續集)에 편입되었다. 이에 온 세상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읽고 외우게 되었다. 내가 또 선생의 7세손인 김상호(金相虎)에게서 원고(原稿)를 얻어 보았는데, 주석을 달고 문장을 고친 자취가 완연하였다. 종이는 해지고 먹물은 변했지만, 옛날의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니, 보배로 삼을 만하다.

일본(日本) 사람 도국흥(陶國興)이 보낸 편지의 발문

목릉(穆陵) 23년 경인(1590)에 학봉 김 선생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었는데, 원릉(元陵) 40년 갑신(1764)에 조공 상관(趙公相觀)이 통신사(通信使)를 따라갔다가 이 글을 도국흥에게서 얻어왔다. 시대의 거리가 235년이 되었는데도 해외의 비록(秘錄)과 본조(本朝)에 전해진 것이 마치 부신(符信)이 서로 맞듯이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기이한 일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생의 사적(事蹟)이 이 글이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야 없겠지만, 이 글에는 귀중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충신(忠信)을 오랑캐 지방이라도 행할 수 있음을 알게 하여, 성인(聖人)의 훈계가 더욱 높아지게 한 것이 첫 번째 귀중한 것이고, 착한 행실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이를 알아주어서 반드시 남모르게 수양을 더욱 힘쓰도록 한 것이 두 번째 귀중한 것이고, 성심(誠心)으로 구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는바, 효성의 생각을 더욱 도탑게 한 것이 세 번째 귀중한 것이다.

내가 또 듣건대, 동명(東溟) 김공(金公)은 왜인들에게서 받은 금(金)을 개울에 던져버렸고, 용주(龍洲) 조공(趙公)은 왜인들에게서 받은 칼을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두 분 다 지금까지 일본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에 뒤에다가 이 사실을 이어 써서, 이분들의 뜻을 계승하여 사신 가는 사람이 있기를 기다린다.

[주-D001] 235년 : 175년의 잘못된 표기이다. 김성일은 1590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고, 그로부터 175년이 지난 뒤인 1764년에 조상관이 일본에 갔다. 그런데 이가환(李家煥)이 글을 지으면서 한 갑자(甲子)를 잘못 따져서 235년 뒤인 것으로 하였다.[주-D002] 동명(東溟) : 김세렴(金世濂)의 호이다. 그는 인조 14년(1636)에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주-D003] 용주(龍洲) : 조경(趙絅)의 호이다. 그는 인조 21년(1643)에 통신부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졸재집(拙齋集)》 [졸재 유원지(柳元之)]

감사(監司) 김휘(金徽)에게 보낸 별지(別紙)

근일에 선대(先代)의 상국(相國) 김시양(金時讓)이 저술한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과 《부계기문(涪溪記聞)》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 중략 - 그중에 혹 의심이 확 풀리지 않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 중략 - 대개 상국께서 이미 지난 사적(事跡)에 대해서 역시 친히 본 것이 아니라, 전해 들은 것을 가지고 기록했다면, 전한 사람의 말이 반드시 모두가 사실이 아닐 것임은, 그 사세가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 중략 - 친히 본 것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잘못 들은 것을 가지고 잘못 전하여 더욱더 그 참을 잃은 것이겠습니까. - 중략 -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지금 상국께서 기록한 글 가운데에서 사실에 어긋난 곳이 있으면 대략 산삭(刪削)을 가하는 것이 적절할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중략 -

《부계기문》에 학봉 선생이 일본에 사신 갔을 때의 일을 논하면서 말하기를, “자질구레한 절목(節目) 사이에 발끈 화를 내어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반드시 상국께서 잘못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해사록(海槎錄)》은 그 당시에 세상에 반포되지 않았으니, 상국께서 반드시 미처 이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봉 선생께서 일본에 있을 때 행한 일의 전말을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기록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된 것입니다. 이에 들은 바를 진술하여 바로잡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옛날 춘추 시대 진(晉) 나라가 제(齊) 나라를 쳐서 그 땅에 침입해 들어가자, 제 나라에서 국좌(國佐)로 하여금 진 나라에게 화친을 청하게 하였는데, 진 나라 사람들이 제 나라로 하여금 경내의 모든 토지의 이랑을 동쪽으로 향해 내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제 나라에게 자기 나라를 향하여 굴복하는 의사를 보이게 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국좌는 의연한 자세로 이를 꺾으면서, 차라리 온 나라가 죽을지라도 따르려고 하지 않으니, 진 나라 사람들이 감히 그 뜻을 꺾지 못하고 마침내 화친을 허락하였습니다.

그 뒤에 송(宋) 나라 이종(理宗) 때 원(元) 나라 사람들이 침범해 오자, 송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화친하기를 요구하면서, 원 나라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기로 하였는데,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가 이종에게 상주하여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무릇 두 나라가 서로 화친하는 즈음에는, 상대편에게 범하기 어려운 기색을 보이면 화친하기가 쉽고, 상대편에게 쉽게 엿볼 수 있는 기색을 보이면 화친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지금 조정에서는 원 나라 사람의 요청에 대해서 그 가부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한결같이 그들의 뜻에만 따르면서 화친을 빨리 성사시키려고만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우리를 업신여기는 마음만 더욱 열게 하는 것인 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인하여 제 나라 국좌가 진 나라 사람을 꺾었던 일을 들어서 증거를 대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를 살펴본다면, 토지의 이랑을 동쪽으로 향하게 하는 일은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서, 이해에 관계될 것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따르려고 하지 않으면서 죽기로써 이를 다툰 것은 무슨 이유에서 그랬겠습니까. 진실로 그 한마디 말에 대해 허락하고 허락하지 않는 사이에 나라 형세의 경중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학봉 선생께서 왜노를 대하면서 대처하는 방도가 장차 어떠해야 했겠습니까?

국본사(國本寺)의 연회에서 평의지(平義智)가 교자(轎子)를 탄 채 섬돌까지 이르렀으므로, 학봉 선생이 일어나 나와서 그 연회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비전주(肥前州)에서 음식을 보내왔을 적에는 그들이 보낸 서신 중에, ‘조선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입조(入朝)했다.’고 하였으므로, 선생은 물리치고 그 음식을 받지 않았습니다.

상사(上使)가 관백(關白)의 행차를 관광(觀光)하려고 하자, 선생은 불가하다고 했으며, 상사가 예복 차림으로 왜국의 국도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자, 선생은 이를 따르지 않았으며, 상사가 관백의 측근에게 뇌물을 써서 국서(國書)를 빨리 전하려고 하자, 선생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상사가 국서에 대한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레 계빈(界濱)에 나가 있었으며, 왕명을 전하기 전에 상사가 영인(伶人)으로 하여금 풍악을 베풀어서 왜인을 기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옳지 못한 일 가운데 큰 것입니다. 그리고 관백에게 뜰에서 배례하는 것이 비례(非禮)임을 바로잡고자 하여, 현소(玄蘇)와 더불어 질문하여 규식을 정한 것은 또 국가의 큰 체면에 관계된 일이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분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계빈으로 나온 뒤에야 관백의 답서가 비로소 왔는데, 그 언사가 아주 패만(悖慢)하여서 더욱더 개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전후에 걸쳐 왜국의 중 현소와 그 나라의 사신 접대하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따졌던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은 따위는 여러 나라의 국좌가 다투던 일과 비교해 본다면, 그 경중과 대소가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 ‘자질구레한 절목 사이’라고만 말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상사에게 답하는 서신에 이르기를, “섬오랑캐가 비록 무지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약 편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면서 내버려둔 채 따지지 않는다면, 나라를 욕되게 함이 아주 심할 것입니다. 사신이 치욕을 당하는 것은 바로 국가가 치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이처럼 나라를 욕되게 하는 서신을 가지고 돌아가서 군부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어떻게 우리 삼한(三韓)의 사대부들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던 것입니다.

그 밖의 것들도 모두 이와 같은 따위로서, 섬오랑캐들의 사납고 교만한 마음을 철저히 꺾고 우리 문화 민족의 기운을 편 것이 가을 서리나 뜨거운 햇볕과 같아서 그들의 마음을 저지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저 왜인들이 모두 두렵게 여겨 공경하면서 감히 업신여기는 마음이 없게 되었으니, 그것들을 자질구레한 절목으로 보아 다투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하물며 선생이 왜노들과 변론한 것은 오직 도리에 따라 억눌러서 의리로 돌아가게 해서 그들의 완악한 태도를 고치게 하는 데 그칠 뿐이었으며, 애당초 너무 심하여 그들을 격동시켜서 노여움을 초래하고 소란을 야기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른바 ‘발끈 화를 냈다’는 글은 또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아아, 저들이 비록 인의(仁義)는 부족하지만 흉악하고 교활함은 남음이 있으니, 만약에 예의로써 자신을 검속하지 못하고 그들의 의사에만 곡진히 따라서 그들의 마음대로 하게 하였다면, 의리에 관계된 것은 우선 논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우리의 천심(淺深)을 엿보아 우리의 강약(強弱)을 시험하면서 조종하는 것이 장차 이르지 않는 데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선생께서 안색을 바르게 하고 말을 바르게 하여 그들에게 놀아나지 않은 일이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얕보이고 낭패를 당하여 나라에 치욕을 끼침이 또한 이에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또한 자질구레한 절목이라고 여겨서 그 사이에 살펴서 처리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 ‘앞서 사신으로 갔던 10여 명’ 운운한 글은 또한 모두 박절한 말이니, 아마도 이 말을 선생께 써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일찍이 선생께서 복명(復命)하였을 때에 올린 서계(書啓)를 보았는데, 그 서계에는 단지 말하기를, “신은 그들이 반드시 쳐들어오리라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였으며, 물러나와서 나의 선인(先人)과 더불어 말할 때에도 또한 이르기를, “낸들 어찌 왜놈들이 끝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마는, 황윤길(黃允吉)의 말이 너무 심하여 마치 왜놈들이 곧바로 사신들의 뒤를 따라서 쳐들어올 것처럼 말하였으므로, 이런 두려움을 해소시켜 준 것일 뿐이네.” 하였습니다. 이런 말들이 과연 단정을 내리고 고집을 부려 반드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까?

그리고 상사 황윤길이 왜놈들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라고 한 말 또한 어찌 참으로 왜적들의 정세를 알고서 한 말이겠습니까. 대개 일본에 있었을 적에 마음이 약하여 겁을 집어먹은 잘못을 꾸며대어 가리고자 그렇게 말한 데 불과할 뿐입니다. 하물며 조정에서도 애당초 이런 말들로 인하여 왜적들을 방비하는 일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선생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하면서, 국사를 그르친 죄를 선생에게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한 조항은 삭제하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주(海州)의 부용당(芙蓉堂)에 선생의 제영(題詠)이 있었는데, 왜노가 푸른 비단으로 이를 싸가지고 갔으니, 마음속으로 깊이 복종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말하는 태도와 웃는 모습으로써 능히 할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지산집(芝山集)》 [지산 조호익(曺好益)]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에게 답하는 편지

지난번에 상공(相公)께서 멀리까지 보내 주신 수서(手書)를 받았는데, 말뜻이 친절하고 정성스러우며, 저를 인정해 주심이 과중하므로,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는바, 스스로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새 봄이 돌아와서 온갖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데, 상공께서는 기후가 만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저 호익은 깊은 산속에서 두문불출하면서 겨우 잔명(殘命)을 보전하고 있는바, 실로 생각이 이에 미치매 우러러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 진사(進士) 강덕문(姜德文)이 보내 준 편지를 보건대, ‘진주의 인사(人士)들이 학봉(鶴峯) 김성일을 위하여 촉석루(矗石樓) 옆에 사당을 세우려고 하는데, 신묘년에 일본으로 사신 갔던 일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장차 상공의 의견을 듣고 난 뒤에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공의 뜻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못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상공은 군자이십니다.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이루어 주기를 좋아할 것이니, 어찌 차마 허물이 없는 데에서 허물을 찾아내겠습니까. 이것은 진주 사람들이 스스로 소인의 마음으로 망녕되이 군자의 마음을 추측한 것이니, 생각이 지나쳐서 이런 염려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묘년의 일은 본디 전혀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대개 학봉은 성품이 엄정하였으므로, 다른 나라에 사신 가서는 이류(異類)들과 교제하면서 서로 허물없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 의리로써 자주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 나라에 가 있었지만 서로 막혀 있음이 호(胡)와 월(越) 같았으니, 왜국의 사정을 아는 것이 참으로 일행들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국의 서신을 보고 난 뒤에는 비록 그것이 허세를 부려 위협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는 하였지만, 또한 어찌 염려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동래(東萊)에 도착함에 미쳐서는 일행들이 지레 이 사실을 누설하여, 미처 복명(復命)하기도 전에 온 나라가 흉흉하여 장차 내변(內變)이 일어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진정시키는 말을 하여 급한 환란을 구제한 것일 뿐입니다. 그 뜻이 어찌 다른 것이 있었겠습니까.

설자는 또 말하기를, ‘학봉이 왜국에 있을 때 아무런 일이 없는 데에서 사단을 일으켜 왜인을 격노시켜 화란을 불러왔으므로, 그 죄를 면하고자 하여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너무나도 심한 말입니다. 만약 학봉이 왜적들이 반드시 침범해 올 것을 알았더라면, 그 당시에는 비록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끝내 이를 숨기겠으며, 말하지 않은 죄를 또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인데, 학봉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그의 정충(精忠)과 대절(大節)은 종들조차도 모두 그의 성대한 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사류(士流)라는 자들이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살해해서 죽이려 하였고, 그가 죽어서는 사적을 엄폐시켜 없애버리려고 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촉석루의 돌이 무너지지 않고 남강(南江)의 물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 사람의 훌륭한 발자취는 만고토록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니, 사당을 세우고 안 세우고가 이 사람의 사적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유독 애석한 것은, 조정에서 증질(增秩)하고 사제(賜祭)하는 은전(恩典)이 아직 미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구천(九泉)을 떠도는 충혼(忠魂)을 위로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공훈을 갚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엇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에 인심을 격려하고, 후대에 절의를 권장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여기에서 실책하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상공께서는 조정에 돌아가는 날 임금의 귀에 한 번 진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에게 사사로운 정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가 격동하는 바에 능히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어서 이러는 것입니다. 삼가 상공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당후일기(堂后日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서애집(西厓集)》 [서애 유성룡(柳成龍)]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징비록(懲毖錄)》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 신묘년(1591, 선조 24) 봄에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김성일(金誠一)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인 평조신(平調信)과 현소(玄蘇)도 함께 왔다.
처음에 황윤길 등이 지난해 4월 29일에 부산포(釜山浦)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러 한 달 동안을 머물렀다가, 또 대마도에서 수로(水路)로 40여 리를 가서 일기도(一歧島)에 이르렀으며, 박다주(博多州), 장문주(長門州), 낭고야(郞古耶)를 거쳐 7월 22일에야 비로소 일본의 국도(國都)에 이르렀다. 대개 왜인들이 고의로 멀리 돌아서 가고, 또 곳곳에서 지체하여 머물러 있었던 까닭에 이렇게 여러 달 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신 일행이 대마도에 있을 때 평의지(平義智)가 우리나라의 사신들을 청하여 산중의 절간에서 잔치를 베푼 일이 있었다. 그때 사신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평의지가 교자(轎子)를 탄 채 문 안으로 들어와 섬돌까지 와서 내리자, 김성일이 노하여 말하기를, “대마도는 바로 우리나라의 번신(藩臣)이다. 사신인 우리가 왕명을 받들고 왔는데, 어찌 감히 이토록 업신여겨 오만하게 굴 수가 있느냐. 나는 이 잔치를 받을 수 없다.” 하고는, 즉시 일어나 나오니, 허성 등도 잇따라 나왔다. 그러자 평의지가 그 허물을 교자를 메고 온 하인에게 뒤집어씌워 그들을 죽인 다음, 그들의 머리를 가지고 와서 사과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왜인들이 김성일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더욱 극진히 예우하였으며, 멀리서 김성일을 바라만 보고도 말에서 내렸다.

우리나라 사신들이 일본의 국도에 이르러서는 큰 절에 유숙하였다. 그때 마침 평수길(平秀吉)이 동산도(東山道)에 출정(出征)하고 있었으므로 몇 달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평수길이 돌아온 뒤에도 또다시 궁실을 수리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즉시 국서(國書)를 받지 않았다. 이에 이럭저럭 지내는 사이에 다섯 달 동안이나 숙소에 머물러 있다가 비로소 국명(國命)을 전하였다.
일본에서는 그들의 천황(天皇)을 높여서 평수길 이하의 관원이 모두 신하의 예절로써 천황을 섬겼다. 평수길은 자기 나라에서는 왕(王)이라 일컫지 않고 단지 관백(關白)이라고만 일컬었으며, 혹은 박륙후(博陸侯)라고도 불렀다. 그들이 우리 사신을 접대할 때에는 교자를 타고 궁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고 날라리와 피리를 불고 앞에서 인도하였으며, 당상(堂上)에 올라가서 예를 행하게 했다.

평수길은 용모가 작고 추하며, 낯빛이 검어서 보통 사람과 다른 위의(威儀)는 없었으나, 다만 눈빛이 번쩍거려 사람을 쏘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평수길은 삼중(三重)의 자리를 깔고 남쪽을 향하여 마룻바닥에 앉았고, 사모(紗帽)를 쓰고 검은 도포를 입었는데, 신하 몇 사람이 옆에 늘어앉아 있다가 우리 사신을 인도하여 자리에 앉게 하였다. 자리에는 잔치의 기구는 설비하지 않고 탁자 하나만 앞에 놓았으며, 탁자 한가운데에는 떡 한 접시를 놓았다. 술을 질그릇 사발에다 부어 돌리는데 술도 탁주였다. 그 예절이 매우 간략하여 두서너 번 술잔을 돌리고는 그만두었으며, 절하고 읍하면서 서로 술잔을 주고 받는 절차가 없었다.

잠시 후에 평수길이 갑자기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갔으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 중략 - 사신이 하직하고 물러나왔다. 그 뒤로는 사신들이 평수길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상사와 부사에게 은 400냥씩을 주었고, 서장관과 통사 이하의 수행원에게도 차등을 두어 주었다.

우리 사신이 귀국하려고 하였으나, 평수길이 답서(答書)를 즉시 써주지 않은 채 먼저 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김성일이 말하기를, “내가 사신이 되어서 국서를 받들고 왔는데, 만약 답서가 없다면 이것은 국명을 풀밭에 팽개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였다. 황윤길은 혹시 억류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출발해 계빈(界濱)에 와서 기다렸다. 답서가 비로소 왔는데, 글 내용이 거칠고 오만하여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김성일이 답서를 받지 않은 채 몇 차례나 개정한 뒤에야 받아 가지고 떠났다. 일행이 지나는 곳마다 여러 왜인들이 물건을 선사하였는데, 김성일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황윤길이 돌아와 부산에 도착해서는 급히 장계를 올려서 일본의 정세를 보고하면서 말하기를,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서울에 와서 복명(復命)한 뒤에 상이 그들을 인견하여 물으니, 황윤길은 먼저 말한 대로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김성일은 아뢰기를, “신은 그러한 정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이어 또 아뢰기를, “황윤길이 인심을 동요시키는 것이 옳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의논하는 자들이 어떤 사람은 황윤길의 말을 지지하고 어떤 사람은 김성일의 말을 지지하였다. 내가 김성일에게 묻기를, “자네가 말한 것이 황윤길이 말한 것과 다른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될 경우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니, 김성일이 말하기를, “낸들 어찌 왜인들이 끝내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하겠는가.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나라 안팎의 인심이 놀라고 당황해할까 염려되기 때문에 그것을 해명하였을 뿐이네.” 하였다.

○ 경상 우병사 조대곤(曺大坤)을 체직하고 특지(特旨)로써 승지(承旨) 김성일을 대신 임명하였다. 그러자 비변사(備邊司)가 아뢰기를, “김성일은 유신(儒臣)입니다. 이러한 때 변방 장수의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김성일은 마침내 배사(拜辭)하고 임지로 떠나갔다.

○ 4월 13일에 왜병이 국경을 침범하여 부산포(釜山浦)를 함락시키니, 첨사(僉使) 정발(鄭撥)이 전사하였다. 이보다 앞서 왜국의 평조신(平調信), 현소(玄蘇) 등이 통신사(通信使)와 함께 와서 동평관(東平館)에 머물러 있었는데, 비변사에서 황윤길과 김성일 등으로 하여금 사사로이 술자리를 베풀어 그들을 위로하면서, 조용히 그 나라의 사정을 물어 정세를 살피게 한 다음에 방비할 계책을 마련하자고 청하니, 임금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김성일이 동평관에 가니, 현소가 과연 은밀히 말하기를, “중국이 오랫동안 일본과 국교를 끊고 조공(朝貢)을 통하지 못하게 하므로, 평수길이 이 때문에 마음속으로 분개하고 수치스럽게 여겨 싸움을 일으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에서 먼저 이런 내용을 중국에 알려 조공할 길이 열리게 한다면, 조선은 반드시 별 일이 없을 것이며, 일본 66주의 백성도 전쟁의 고통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김성일 등이 대의(大義)로써 그들을 꾸짖고 타일렀다. - 이하 생략 -
○ 경상 우병사 김성일을 잡아서 옥에 가두라고 하였다가 김성일이 서울에 이르기 전에 도로 초유사(招諭使)로 삼았으며, 함안 군수(咸安郡守) 유숭인(柳崇仁)을 병사(兵使)로 삼았다.

처음에 김성일이 상주(尙州)에 이르러서는 왜적들이 이미 국경을 침범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달려서 본영(本營)으로 가던 중, 조대곤(曺大坤)을 중로에서 만나 인장과 부절을 교환하였다. 이때 왜적들은 벌써 김해(金海)를 함락시키고 우도의 여러 고을을 나누어 침략하고 있었다.

김성일이 나아가다가 왜적들과 만났는데, 부하 장수와 병졸들이 달아나려고 하였다. 김성일이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군관(軍官) 이숭인(李崇仁)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용사이다. 적을 보고서 먼저 물러나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때 왜적 한 명이 금빛 가면을 쓰고 칼을 휘두르면서 돌격해 왔는데, 이숭인이 말을 타고 달려나가서 화살 한 방으로 쏘아 죽였다. 그러자 여러 왜적들이 뒤로 물러나 달아나면서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김성일이 흩어진 군사를 불러모으고,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보내어 수습할 계책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임금께서, 김성일이 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왜적들이 쉽사리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해 인심을 해이하게 하고 국사를 그르쳤다는 이유로, 의금부 도사(義禁莩事)를 보내어 잡아오라고 명령하여, 일이 장차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감사 김수(金睟)가 김성일이 잡혀간다는 말을 듣고 길에 나아가서 작별하였는데, 김성일은 언사와 안색이 강개하여 한 마디도 자신의 일은 말하지 않은 채, 오직 김수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 왜적들을 토멸하라고 격려하였다. 이것을 본 늙은 아전 하자용(河自溶)이 감탄하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오직 나랏일만 근심하니, 참으로 충신이다.” 하였다.

김성일이 가다가 직산(稷山)에 이르렀을 때 임금은 노여움이 풀렸으며, 또 김성일이 경상도 사민(士民)의 마음을 얻은 것을 알았다. 이에 김성일의 죄를 용서한 다음, 경상우도 초유사(慶尙右道招諭使)로 삼아 도내의 인민을 효유해서 군사를 일으켜 왜적을 토멸하도록 하였다. - 이하 생략 -

○ 내가 안주(安州)에 있을 때 우인(友人) 김사순(金士純)이 경상우도 감사가 되었는데, 서신을 보내어 이르기를, “진주성을 수리하여 죽을 힘을 다해 지킬 계획이다.” 하였다. 이보다 앞서 왜적들이 일찍이 한 차례 진주를 침범했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던 터이므로, 내가 김사순에게 회답하기를, “왜적들이 조만간에 반드시 와서 보복할 것인데, 온다면 반드시 대군이 몰려올 것이니, 수비하기가 예전보다는 조금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포루(砲樓)를 세워서 대비해야만 걱정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는 서신 중에 그 제도에 대해 상세히 말해 주었다.

계사년(1593, 선조 26) 6월에 내가 왜적들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종사관(從事官) 신경진(辛慶晉)에게 말하기를, “진주의 일이 매우 위급한데, 다행히 포루가 있으면 지탱해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였다. 얼마 뒤에 합천(陜川)에 내려가서 진주가 벌써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단성 현감(丹城縣監) 조군 종도(趙君宗道)는 김사순의 친우인데, 나에게 말하기를, “지난해에 김사순과 함께 진주에 있을 때 김사순이 상공이 보낸 서신을 보고는 좋아 뛰며 기이한 계책이라고 하면서, 즉시 막하(幕下)의 사우(士友) 몇 사람과 함께 성을 순시한 다음, 그 지형을 인하여 여덟 곳에 포루를 설치해야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베어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게 하였는데, 고을 백성들이 그 역사를 꺼려서 말하기를, ‘이전에는 포루가 없어도 성을 수비하고 왜적을 물리쳤다. 지금 무엇 때문에 사람을 괴롭히는가?’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김사순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재목을 준비하여 역사를 시작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 때마침 김사순이 병이 들어 영영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그 일은 마침내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함께 한 번 통곡하고는 헤어졌다. 아아, 김사순의 불행은 곧 한 성 수천 명의 불행이었다. 이것은 진실로 운수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국조보감(國朝寶鑑)》 선조조(宣祖朝)

○ 계유년(1573) 선조 6년 봄 정월에 - 중략 - 김성일을 정언(正言)으로 삼았다. 상이 어느 날 경연에서 묻기를,

“나를 전대의 제왕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겠는가?”

하니,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이십니다.”

하였는데, 김성일이 아뢰기를,

“요순이 될 수도 있고, 걸주(桀紂)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순과 걸주가 그와 같이 비슷한가?”

하니, 김성일이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천품이 고명하시니 요순처럼 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여겨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병통이 있으십니다. 이것은 걸주가 망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상이 얼굴빛을 바꾸고 바르게 앉았다.

○ 정축년(1577) 선조 10년 여름 4월에 사은사(謝恩使)로 윤두수(尹斗壽)와 김성일(金誠一) 등을 파견하여 종계(宗系)를 개정(改正)하는 일을 주청(奏請)하게 하였다. 이때 칙서(勅書)를 내려 유시해 준 데 대해 사은하고, 겸하여 종계를 변무(辨誣)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 경인년(1590) 선조 23년 봄 3월에 황윤길(黃允吉)을 통신사(通信使)로, 김성일(金誠一)을 부사(副使)로, 허성(許筬)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었는데, 왜사(倭使)인 평의지(平義智) 등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였다.

○ 임진년(1592) 선조 25년 8월이다. 이때 이순신(李舜臣)이 주사(舟師)를 거느리고 서해(西海)의 입구에 주둔해 있었고, 김성일 등이 진주(晉州)의 요해처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왜적들이 금산(金山)의 길을 경유하여 호남(湖南) 경계로 들어가려다가 여러 차례 저지당하여 온 길로 되돌아갔으며, 호서 지방 역시 함락됨을 면하였다. 나라가 이 두 도가 보전된 데에 힘입어서 군흥(軍興)을 댈 수가 있었으니, 당시의 장사들이 방수(防守)한 공이 크다고 하겠다.

○ 계사년(1593) 선조 26년 4월에 경상좌도 순찰사(慶尙左道巡察使) 김성일이 졸하였다. 김성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왜적의 정세를 잘못 주달하여 처형을 당할 뻔하였다. 그러다가 용서를 받고 왕명을 받음에 미쳐서는 나랏일을 걱정하고 임금의 은혜에 감격하여 죽기를 맹세하고 왜적들을 토벌하였다. 평소에 군무에 대해서 잘 몰랐으나, 지성으로 백성들을 효유하였고 관군(官軍)과 의병(義兵)을 서로 화해시켰는바, 한 해가 넘도록 한쪽 모퉁이를 보전한 것은 모두 그가 잘 통솔했던 효과였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숙종(肅宗) 12년 병인(1686) 7월 13일(을미). 비가 왔다. 오시(午時)에 상이 희정당(煕政堂)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행 강화 유수(江華留守) 신정(申晸), 행 호조판서 조사석(趙師錫), 행 지사(知事) 신여철(申汝哲), 형조 판서 이사명(李師命), 공조 참판 서문중(徐文重),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창협(金昌協), 응교(應敎) 이이명(李頤命), 헌납(獻納) 이국방(李國芳), 기사관(記事官) 심계량(沈季良), 가주서(假注書) 신역(申湙), 기사관 유상재(柳尙載)ㆍ송주석(宋疇錫)이 입시(入侍)하였다. - 중략 - 이이명이 아뢰기를,

“신이 본관(本館)에 있는 의시등록(議諡謄錄)을 상고해 보니, 선조조(宣祖朝)의 재신(宰臣) 김성일(金誠一)의 시호를 문충(文忠)이라고 하였는데, 문(文) 자의 시석(諡釋)이 ‘도덕박문(道德博聞)’이었습니다. 김성일은 과연 재주가 있고 공로가 있으며 명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도덕박문’이라고 시주(諡註)를 붙이는 것에 이르러서는, 종사(從祀)한 여러 신하나 도덕으로 일세(一世)의 유종(儒宗)이 된 사람 외에는 한 사람도 이를 함부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명신과 석보(碩輔)가 대부분 문(文) 자 시호를 받았습니다만, 모두들 ‘근학호문(勤學好問)’의 문 자 시호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김성일의 시호는 지극히 분수에 넘치는 것입니다. 지난날 당인(黨人)이 용사(用事)할 적에 공심(公心)을 가지고 의논해 정하지 않아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신은 김성일의 시호 가운데 문 자에 대한 시주를 개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어떠한가?”

하자, 김수항이 아뢰기를,

“시법(諡法)은 몹시 엄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선악을 막론하고 모두 사실에 의거하여 시호를 의논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기리는 경우도 있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리는 경우에도 그 사람의 행적에 맞지 않게 합니다. 이것은 비단 김성일 한 사람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덕박문’의 문 자 시호는 참으로 세상에 이름난 유현(儒賢)이 아니고서는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김성일은 선정(先正) 이황(李滉)의 문하에 출입하였으며, 대각(臺閣)에 있으면서는 강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고, 청간한 절개 역시 남들보다 뛰어나서 그 당시에 명재(名宰)라고 칭해졌습니다. 그러나 연신(筵臣)이 주달한 바가 그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시호에 대해 뒤늦게 그 글자를 고치는 것은 전례가 있습니다만, 시법을 뒤늦게 고치는 것도 전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연신이 주달한 바가 참으로 맞다. 김성일의 시호에 대한 주석을 고치라.”

하였다. - 거행 조건(擧行條件)을 내었다.

○ 숙종 15년 기사(1689) 7월 21일(을묘). 날씨가 맑았다. 오시(午時)에 상이 시민당(時敏堂)에 나아가 주강(晝講)하였다. 지경연사(知經筵事) 민암(閔黯), 특진관(特進官) 목창명(睦昌明), 좨주(祭酒) 이현일(李玄逸), 참찬(參贊) 신후명(申厚命), 시독관(侍讀官) 민창도(閔昌道), 검토관(檢討官) 이태귀(李泰龜), 무신(武臣) 민성(閔晟), 가주서(假注書) 이이만(李頤晚), 기사관(記事官) 박연(朴涎)ㆍ심중량(沈仲良)이 입시하였다. - 중략 - 목창명이 아뢰기를,

“신에게 구구한 소회가 있어서 감히 이처럼 우러러 아룁니다. 지난해에 선정신(先正臣) 김성일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는데, 그 시법에 ‘도덕박문(道德博聞)의 문(文)’이라고 시주를 단 것을 계하(啓下)하였습니다. 그 뒤에 이이명(李頤命)이 ‘도덕박문’은 지나치다고 하였으며, 김수항(金壽恒) 역시 김성일은 한 가지 절개가 있는 선비인데 도덕박문이라고 시주를 다는 것은 과연 지나치다고 하여, 끝내는 ‘근학호문(勤學好問)’이라고 시법을 고쳤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이명이 과연 진달한 바가 있어서 시주를 고친 적이 있다.”

하였다. 목창명이 아뢰기를,

“김성일은 한갓 절의가 있는 선비일 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과 도덕은 실로 여러 유자(儒者)들이 미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김수항과 이이명의 무리가 감히 가벼이 시주를 고쳤으니, 도로 예전의 시주를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이현일은 아뢰기를,

“김성일은 바로 선정신 문순공(文純公) 이황의 고제자(高弟子)로서, 이황이 심지어는 ‘박약양지(博約兩至)’ 등 여덟 글자를 써서 김성일에게 주기까지 하였으니, 의발(衣鉢)을 전수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에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등 여러 유자들과 더불어 한때에 나란히 칭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도덕박문’이라고 한 시주는 실로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김수항 같은 따위의 무리가 어찌 선정(先正)의 도덕의 깊이를 안단 말입니까. 당초에 이미 ‘도덕박문’으로 계하한 뒤에 김수항의 무리가 감히 가벼이 고쳤으므로 사론(士論)이 모두들 분통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초의 시주를 그대로 쓴다면 실로 사림(士林)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하니, 목창명이 아뢰기를,

“김성일 역시 영남 사람이므로 이현일이 더욱 상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공의(公議)가 모두 시주를 고친 것을 그르다고 하니, 당초에 시주한 ‘도덕박문’을 그대로 두라.”

하였다. - 거행 조건을 내었다.

[주-D001] 15년 : 원문에는 ‘삼십오년(三十五年)’으로 되어 있는데, 연대가 맞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 《정조실록(正祖實錄)》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숙종실록(肅宗實錄)》

○ 숙종 대왕 2년 병진(1676) 2월 2일(갑인). 안동(安東)의 생원(生員) 이선(李亘)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안동은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의 선향(先鄕)인데, 이미 서원을 세워 유성룡(柳成龍)과 김성일(金誠一)을 배향(配享)하였으니, 사액(賜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선정(先正) 문순공 이황은 순수한 자질과 정대한 학문을 가지고 있었는바, 한 시대의 명유(名儒)이다. 선액(宣額)하는 일을 예조(禮曹)로 하여금 품의해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예안(禮安)에 이황의 서원이 있어서 이미 사액하였습니다. 안동의 서원은 겹쳐서 설치한 것이니, 감히 가볍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문순공은 우리나라의 유종(儒宗)이다. 비록 문묘(文廟)에 배향하였을지라도 선향(先鄕)인 안동 땅에 아직 사액한 일이 없으니, 이는 참으로 흠전(欠典)이다. 특별히 사액하라.”

하였다.

○ 숙종 대왕 2년 병진 2월 8일(경신).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 중략 - 시강관(侍講官) 김덕원(金德遠)이 아뢰기를,

“선조(宣祖) 때의 명신 김성일은 임진왜란 때 경상도 감사로서 국사에 수고하다가 죽었으니, 증시(贈諡)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자,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정2품 이상이라야 증시할 수 있는데, 명신은 이 예(例)에 구애되지 아니합니다. 또 당초 증직할 때 1품계만 더하여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었으므로, 사론(士論)이 불만스럽게 여겼습니다. 추증(追贈)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1품으로 추증하라.”

하자, 허적이 아뢰기를,

“1품은 지나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경(正卿)으로 추증하고 증시하라.”

하였다.

○ 숙종 대왕 5년 기미(1679) 8월 4일(병인). 노수신(盧守愼)에게 문의(文懿)란 시호를, 김성일(金誠一)에게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이순신(李純信)에게 무의(武毅)란 시호를 내렸다.

○ 숙종 대왕 12년 병인(1686) 7월 13일(을미). 대신과 비변사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 중략 - 이이명(李頤命)이 정축년(1637, 인조 15)에 척화(斥和)한 세 신하에게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 없이 특별히 시호를 내릴 것을 청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이이명이 또 아뢰기를,

“고(故) 재신(宰臣) 김성일의 시호인 문충(文忠) 가운데 문(文) 자에 대해 ‘도덕박문(道德博聞)’으로 시주(諡註)를 달았는데, 김성일이 비록 강직하고 청간(淸簡)하다는 칭찬이 있었으나, 유현(儒賢)과는 다름이 있으니, 시주를 고치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김수항이 또 그렇다고 하니, 상이 그 의견에 따라서 결국 ‘근학호문(勤學好問)’으로 시주를 고쳤다.

○ 숙종 대왕 15년 기사(1689) 7월 21일(을묘). 주강에 나아갔다. 특진관(特進官) 목창명(睦昌明)이 김성일의 학문과 도덕은 제유(諸儒)들이 미칠 바가 아님을 극력 말하자, 좨주(祭酒) 이현일(李玄逸)도 극구 거들었다. 이에 상이 드디어 ‘도덕박문(道德博聞)’이란 시주를 회복시키라고 명하였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선조 대왕 6년 계유(1573) 7월. 김성일(金誠一)을 정언(正言)으로 삼았다. 상이 어느 날 경연에서 묻기를,

“나를 전대의 제왕과 비교해 볼 때 어느 군주와 비슷한가?”

하니,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이십니다.”

하였는데, 김성일이 아뢰기를,

“요순이 될 수도 있고 걸주(桀紂)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순과 걸주가 그와 같이 비슷한가?”

하니, 김성일이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천품(天稟)이 고명하시니 요순처럼 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똑똑하게 여겨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병통이 있습니다. 이는 걸주가 멸망한 이유가 아닙니까?”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두 사람의 말이 다 옳습니다. 요순 같다는 대답은 임금을 격려하는 말이고, 걸주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은 경계시키는 말입니다.”

하니, 상이 숙연한 태도를 지었다.

○ 선조 대왕 6년 계유 9월. 상이 경연에서 이황(李滉)의 문인 중에 조정에서 벼슬한 자가 몇 명이 있는가를 물으니, 유희춘(柳希春)이 정유일(鄭惟一)과 구봉령(具鳳齡)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김우옹(金宇顒)이 아뢰기를,

“김성일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대왕 7년 갑술(1574) 11월. 이조 좌랑 이성중(李誠中), 수찬(修撰) 김성일(金誠一), 교검(校檢) 이발(李潑), 정랑(正郞) 유근(柳根), 봉교(奉敎) 최운보(崔雲溥)를 선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하게 하였다.

○ 선조 대왕 10년 정축(1577) 4월. 사은사(謝恩使)로 윤두수(尹斗壽)와 김성일 등을 파견하여 종계(宗系)의 개정(改正)에 대한 일을 주청(奏請)하게 하였다. 이때 칙서(勅書)를 내려 유시해 준 데 대해 사은하고, 종계를 변무(辨誣)하는 일을 겸하여 보낸 것이다.

○ 선조 대왕 12년 기묘(1579) 5월. 김성일을 사헌부 장령으로 삼았다. 김성일은 근시(近侍)로 있을 적에 귀근(貴近)들을 논핵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전상호(殿上虎)’라고 일컬었다. 하원군(河原君) 이정(李珵)이 왕실의 지친으로서 술에 빠져 방자하게 행동하고 여리(閭里)에 해를 끼치고 있었는데, 김성일이 그 집의 노복을 체포하여 중형으로 다스렸다. 이에 궁가(宮家)에서 원망하면서 노엽게 여겼으나, 감히 말하지는 못하였다. 상이 경연 석상에서 묻기를,

“근래에 염치가 아주 없어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하니, 김성일이 대답하기를,

“대신으로 있으면서 뇌물을 받는 자도 있으니 염치가 없어진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때 정승 노수신(盧守愼)이 수석(首席)에 있다가 앞으로 나와서 땅에 부복하고 아뢰기를,

“김성일의 말이 옳습니다. 신의 일가 사람이 북방의 변장(邊將)이 되었는데, 신에게 늙은 어미가 있다고 하여 작은 초피 갖옷을 보내왔기에 신이 받아서 어미에게 주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간의 곧은 말과 대신이 허물을 인책한 것은 둘 다 정도(正道)를 얻었다고 할 만하다. 신료들이 서로 이와 같이 책려(責勵)한다면 나랏일을 잘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노수신도 김성일에게 후히 사례하였고 거슬려 하지 않았다.

○ 선조 대왕 16년 계미(1583) 8월. 특지(特旨)로 사인(舍人) 김성일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삼았다. - 이하 생략 -

○ 선조 대왕 23년 경인(1590) 3월. 첨지(僉知) 황윤길(黃允吉)을 통신사(通信使)로, 사성(司成) 김성일(金誠一)을 부사(副使)로, 전적(典籍) 허성(許筬)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왜사(倭使)인 평의지(平義智) 등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였다. - 4월에 바다를 건넜다.

○ 선조 대왕 24년 신묘(1591) 3월. 통신사 황윤길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사(倭使)인 평조신(平調信) 등과 함께 왔다.
당초에 황윤길 등이 지난해 4월 바다를 건너 대마도(對馬島)에 도착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당연히 영접사(迎接使)를 파견해서 사신 일행을 인도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은 그들의 거만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논하고 한 달을 지체한 뒤에야 출발하였다. 일기도(一歧島), 박다주(博多州), 장문주(長門州), 낭고야(郞古耶)를 거쳐 계빈주(界濱州)에 당도했을 때에야 도왜(導倭)의 영접을 받았으며, 왜인들이 일부러 길을 돌아간 탓에 몇 달을 지체하고서야 일본의 국도(國都)에 도착하였다.

사신 일행이 대마도에 있을 때 도주(島主) 평의지(平義智)가 국본사(國本寺)에서 사신들을 청하여 연회를 베풀고자 하였는데, 국본사는 산속에 있었다. 사신들이 먼저 가 있는데 평의지가 가마를 탄 채 문 안으로 들어와 뜰 아래에까지 와서 내리자, 김성일이 그의 무례함에 노하여 즉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니, 허성(許筬) 이하도 따라서 일어났으나, 황윤길은 그대로 앉아서 잔치에 임하였다. 김성일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자 그 다음 날 평의지가 그 까닭을 듣고서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하여 시종하였던 왜인의 머리를 베어 와서 사죄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왜인들이 김성일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김성일을 보기만 하면 말에서 내려 더욱 깍듯이 예를 지켜 대접하였다.

그들의 국도인 대판성(大板城)에 도착해서는 큰 절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마침 평수길(平秀吉)이 산동(山東)으로 출병(出兵)하였다가 몇 달 만에 돌아온 데다가 또다시 궁실(宮室)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즉시 국서(國書)를 받지 않은 탓에 5개월을 지체한 뒤에야 명을 전하였다.

그들 나라에서는 천황(天皇)이 제일 높아 평수길 이하가 모두 신하로서 천황을 섬기지만, 국사(國事)는 모두 관백(關白)이 통괄하였다. 천황은 형식적인 지위만 가지고 있었으나, 깍듯한 예절로 받들고, 의장(儀章)도 특별하여 부처를 받들 듯이 하였다. 관백이라고 한 것은 곽광전(霍光傳)에 ‘모든 일을 먼저 보고받는다.[凡事皆先關白]’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때문에 평수길을 대장군(大將軍)이라 부르고 왕(王)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이는 본래 천황을 국왕전(國王殿)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신을 접대함에 있어서 가마를 타고 궁궐 문을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날라리와 피리를 불면서 선도하였으며, 당(堂) 위에 올라가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평수길의 용모는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얼굴은 검고 주름져 원숭이 형상이었다. 눈은 쑥 들어갔으나 눈빛이 빛나 사람을 쏘아보는 듯하였다. 사모(紗帽)와 흑포(黑袍) 차림으로 방석을 포개어 앉고 신하 몇 명이 늘어서서 모시고 있었다. 사신이 좌석으로 나아가니, 연회의 도구는 배설하지 않고 앞에다 탁자 하나를 놓고 그 위에 떡 한 접시를 놓았으며, 옹기사발로 술을 마시는데 술도 탁주였다. 세 순배를 돌리고 끝냈는데 수작(酬酢)하고 읍배(揖拜)하는 예가 없었다.

얼마 뒤에 평수길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자리에 있던 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뒤에 편복(便服) 차림으로 어린아기를 안고 나와서 당상(堂上)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 우리나라의 악공(樂工)을 불러서 여러 음악을 성대하게 연주하도록 하여 듣는데, 어린아기가 옷에다 오줌을 누었다. 그러자 평수길이 웃으면서 시자(侍者)를 부르니, 왜녀(倭女) 한 명이 대답하며 나와 그 아이를 받았고, 평수길은 다른 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모두들 태연자약하여 방약무인하게 행동하였다. 사신 일행이 사례하고 나온 뒤에는 평수길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였다. 상사(上使)와 부사(副使)에게 각각 은 400냥씩을 주었고, 서장관(書狀官) 이하에게도 차등을 두어 주었다.

우리 사신이 돌아가게 해줄 것을 재촉하였으나, 평수길은 답서(答書)를 즉시 재결하지 않고 사신에게 먼저 가도록 요구하였다. 이에 김성일이 말하기를, “우리가 사신으로서 국서를 받들고 왔는데, 만일 답서가 없다면 이는 왕명을 풀밭에 내팽개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고, 물러나오려 하지 않았다. 황윤길 등이 구류당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국도를 나와 계빈(界濱)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비로소 답서가 왔다. 그런데 답서의 말투가 거칠고 거만해서 우리 측에서 바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김성일이 그 답서를 받지 않고 여러 차례 고치도록 요구한 뒤에야 받았다. 지나오는 길목의 여러 왜진(倭陣)에서 왜장(倭將)들이 주는 물건들을 김성일만은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부산(釜山)으로 돌아와 정박하자 황윤길은 그간의 실정과 형세를 치계(馳啓)하면서,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복명(復命)한 뒤에 상이 인견(引見)하고 하문(下問)하니, 황윤길은 전일에 치계한 내용과 같은 의견으로 아뢰었고, 김성일은 아뢰기를,

“신은 그러한 정상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을 동요시키니, 사의(事宜)에 매우 어긋납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평수길은 어떻게 생겼던가?”

하니, 황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략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

하고, 김성일은 아뢰기를,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됩니다.”

하였다. 대개 김성일이 일본에 갔을 때 황윤길 등이 겁에 질려 체모를 잃은 것에 분개하여 말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한 것이었다. - 중략 -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하니, 김성일이 말하기를,

“난들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는가.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될까 두려워서 그것을 풀어 주려고 그런 것이다.”

하였다.
왜인의 답서(答書)에 이르기를,

“일본국 관백(關白)은 조선 국왕 합하(閤下)에게 바칩니다. - 중략 - ”

하였다. 김성일은 답서의 내용이 거칠고 거만하여, 마땅히 전하(殿下)라고 칭해야 할 것을 합하라 하고, 보내 준 예폐(禮幣)도 ‘방물(方物)을 받았다.’ 하였으며, 또 ‘한 번 뛰어 곧바로 대명국(大明國)으로 들어가겠다.’느니 ‘귀국이 선구가 되라.’느니 하는 등의 말이 있음을 보고서 말하기를,

“이는 대명(大明)을 빼앗고자 하여 우리나라를 보고 선구가 되라고 한 것이다.”

하고는, 현소(玄蘇)에게 곧바로 서신을 보내어 대의(大義)를 들어 깨우치면서 말하기를,

“만일 이 글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음이 있을 뿐, 가져갈 수는 없다.”

하였다. 이에 현소가 서신을 보내어 사과하면서 글을 짓는 자가 말을 잘못 만든 것이라 핑계하였다. 그러면서 전하(殿下)와 예폐(禮幣) 등의 글자만 고쳤을 뿐, 그 나머지 거만하고 협박하는 식의 말에 대해서는 ‘이는 대명에 입조(入朝)한다는 뜻’이라고 핑계 대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김성일이 두세 차례 서신을 보내어 고칠 것을 청하였으나, 일본에서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황윤길과 허성 등이 말하기를,

“현소가 그 뜻을 스스로 이렇게 해석하는데 굳이 서로 버티면서 오래 지체할 것은 없다.”

하였다. 이에 김성일이 논쟁하였으나 관철하지 못하고 마침내 돌아왔다.
사신 일행이 일본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왜장들이 수행한 기악(伎樂)을 관람시켜줄 것을 청하자, 김성일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국서(國書)를 아직 전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기악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수모(受侮)인 것이오.”

하였다. 서장관 허성은, ‘관백을 우리나라 주상(主上)이 동등한 예로 대하니, 사신은 의당 정배(庭拜)를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김성일이 말하기를,

“관백은 바로 천황의 신하이지 왕(王)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국서에는 비록 대등한 예로 대하였으나, 이곳에 도착해서는 그가 왕이 아님을 알았으니, 사신은 의당 전권(專權)으로 이를 고쳐야만 합니다.”

하였다. 그러나 허성은 따르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이 단독으로 현소와 따져서 당에 올라가 기둥 밖에서 절하는 것으로 결정한 다음, 영구히 법식으로 삼도록 하였다.
평의지가 또 사신에게 청하기를,

“관백이 내일 천궁(天宮)에 들어갈 것이니 사신은 구경하십시오.”

하였으나, 김성일이 말하기를,

“사신으로서 국명을 전하지 못하였으니 사사로이 나가서 유람할 수가 없소.”

하였다. 그러자 평의지가 또 관백의 말이라 하면서 넌지시 말하기를,

“만일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사신 일행이 근심과 두려움을 품었다. 그리하여 허성 혼자서 서둘러 그곳에 갔다가 관백이 가는 것을 중지하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만두었다. 다음날 또 갔다가 헛걸음을 치고서 돌아왔으며, 세 번째 가서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자 김성일은 또 서신을 보내서 책망하였다.

사신 일행은 오래도록 명을 전하지 못했으므로 관백의 측근에게 뇌물을 주어 속히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를 바랐으나, 김성일이 또 논쟁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황윤길과 허성은 서로 교환한 재화가 행장에 가득하였는데, 김성일이 불순한 언사로 배척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일행과의 사이가 크게 틀어졌다. 왜인들은 황윤길과 허성은 비루하게 여기고 김성일의 처신에 감복하여 갈수록 더욱 칭송하였다.

○ 선조 대왕 24년 신묘 윤3월. 왜사(倭使)인 평조신(平調信)과 현소(玄蘇) 등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상이 비변사의 의논에 따라서 황윤길과 김성일 등으로 하여금 사적으로 술과 음식을 가지고 가 위로하면서 왜국의 사정을 조용히 묻고 상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자 현소가 김성일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본을 거절하여 조공(朝貢)을 바치러 가지 못하였습니다. 평수길이 이 때문에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쌓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만약 조선에서 먼저 주문(奏聞)하여 조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면, 조선은 반드시 무사할 것이고 일본 백성들도 전쟁의 노고를 덜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김성일 등이 대의(大義)를 들어 옳지 못한 일이라고 타일렀다.

○ 선조 대왕 24년 신묘 11월. 부제학 김성일 등이 상차하여 시폐(時弊) 10조(條)를 논하고, 이어 또다시 상차하였다. 김성일이 모두 세 차례 상차하면서 조금도 기휘(忌諱)하지 않았는데, 동료들은 대부분 인피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편지를 보내 치하하였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1592) 3월. 김성일을 경상 우병사로 삼았다. 당시에 조대곤(曺大坤)이 노병(老病)으로 체직되자, 특지(特旨)를 내려 김성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였다. - 중략 - 비변사가 아뢰기를,

“김성일은 유신(儒臣)이라서 이러한 때에 변방 장수의 직임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 4월. 경상 우병사 김성일을 잡아와서 국문하도록 명하였다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석방시켜 도로 본도의 초유사(招諭使)로 삼고, 함안 군수(咸安郡守) 유숭인(柳崇仁)을 대신 병사로 삼았다.

이에 앞서 상이, 전에 김성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왜적이 틀림없이 침략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인심을 해이하게 하고 국사를 그르치게 하였다면서, 의금부 도사를 보내어 잡아오도록 명해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김성일이 왜적을 만나 교전한 상황을 아뢰는 장계가 올라왔다. 그러자 유성룡이 김성일의 충절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므로 상의 노여움이 풀려 이와 같은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 김성일이 상주(尙州)에 이르러 적변(賊變)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본영(本營)으로 달려가 전 병사 조대곤(曺大坤)을 머물게 하여 함께 군사를 다스렸다. 이때 왜적들이 김해(金海)에서 벌써 우도(右道)로 들어와, 김성일이 순식간에 왜적의 척후(斥候)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좌우에서 물러나 피하려고 하였으나, 김성일이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군관(軍官) 이숭인(李崇仁)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려나가 왜적 한 명을 쏘아 죽이게 하니, 왜적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였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이로 인해 조금 안정되었다.

김성일이 잡아오라는 명이 내려졌다는 말을 듣고는 말을 달려 직산(稷山)에 이르렀다가, 또다시 초유하라는 명을 받고는 도로 본도(本道)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의병을 불러모아 점점 형세를 이루었으므로, 한 도(道)가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 6월. 여러 도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났다. 당시에 삼도(三道)의 수신(帥臣)이 모두 인심을 잃은 데다가 변란이 일어난 뒤에 군사와 식량을 징발하자, 사람들이 모두 밉게 보아 왜적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그러다가 도내(道內)의 거족(巨族)과 명인(名人)이 유생(儒生) 등과 함께 조정의 명을 받들어 창의(倡義)하여 일어나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격동하여 원근에서 응모하였다. 이에 크게 성취하지는 못했으나 인심을 얻었으므로 국가의 명맥이 그 덕분에 유지되었다. - 중략 -
이에 관군과 의병이 서로 갈등을 일으켰고 수신들이 대부분 의병장과 화합하지 못하였는데, 초유사 김성일만은 요령있게 잘 조화시켰다. 이 때문에 영남의 의병이 그를 믿어 중하게 의지하였으므로 패하여 죽은 자가 적었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 6월. 경상도를 나누어 좌도 감사와 우도 감사를 두고는 이성임(李聖任)을 우도 순찰사로, 김성일(金誠一)을 좌도 순찰사로 삼았다. 이는 대개 영남은 지역이 넓은 데다가 왜적들이 중로(中路)를 따라 진영을 연결하여 좌우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우도의 사민(士民)들이 상소하여 김성일을 우도에 머물도록 해줄 것을 청하자, 김성일을 우도 감사로 삼고, 영해 부사(寧海府使) 한효순(韓孝純)을 좌도 감사로 삼았다.

○ 초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郭再祐)의 공과(功過)를 논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왜적을 토벌하게 할 것을 청하자, 그대로 따랐다.
곽재우는 본래 강개(慷慨)한 선비로서 맨손으로 의병을 일으킨 뒤 오로지 의기(義氣)로 많은 군사들을 고무시켰다. 그런데 처음에 감사 김수(金睟)가 패배하여 도망친 것을 보고는 의리에 의거하여 그를 벤 뒤에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는데, 김성일 등이 타일러서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이때에 이르러 공을 이루지 못했음을 분하게 여기던 차에 또 김수가 곽재우가 기병한 것은 순수하게 나라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터무니없이 날조하여 치계(馳啓)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에 곽재우가 마침내 상소하기를, “왜적들이 쳐들어오게 된 것은 단지 인심이 이반되고 흩어져 흙덩이가 무너지듯 손댈 수 없는 근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대체로 인심이 이반되게 한 자는 감사 김수입니다. 김수가 두 차례나 본도(本道)의 감사가 되어 정사를 행하는 것이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가혹하였으므로 성상의 은택이 막혀 내려오지 않게 되었는바, 흙덩이가 무너지듯 손댈 수 없는 형세가 이미 사변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다가 왜구가 침입해 오자 자신이 먼저 도망침으로써 온 도내의 수장(守將)들로 하여금 한 번도 왜적들과 싸워보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김수의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면서 처벌하더라도 인심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합니다. 이에 신이 삼가 격문(檄文)을 도내에 돌려 그의 죄를 나열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잡아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주(道主)의 과실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아무런 일이 없는 평상시라면 참으로 도주를 비난하는 것이 마땅치 않겠으나, 이처럼 위급한 때에도 모두가 침묵만 지킨다면, 이는 한갓 도주가 있다는 것만 알고 전하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곽재우 자신이 격문을 지어 도내에 전파시켜 김수의 죄 10가지를 수죄(數罪)한 뒤, 도내의 여러 장령(將領)으로 하여금 일제히 김수가 있는 곳에 모이게 하여 그의 머리를 베어 행재소(行在所)에 보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 격문의 끝에 이르기를, “네가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고 있으나 실제로는 머리가 없는 시체와 같다. 네가 조금이라도 신자(臣子)의 의리를 안다면, 너의 군관(軍官)으로 하여금 너의 머리를 베게 하여 천하 후세에 사죄해야 마땅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너의 머리를 베어 신인(神人)의 분노를 씻겠다. 너는 그것을 알라.” 하였다. 그러자 김수가 크게 노하여 역시 휘하의 수령 등을 시켜 격문을 지어 곽재우의 죄를 수죄하면서 ‘역적 곽재우’라고 부르는 한편, 김성일의 진(陣)으로 하여금 곽재우를 의령(宜寧)에 수금(囚禁)케 하고, 또 곽재우가 불궤(不軌)를 도모하는 정상이 불측(不測)하다는 내용으로 장계하였다.

그러나 김성일은 이에 따르지 않고 장계를 올려 곽재우가 충성심에서 분발한 것과 가산을 흩어 의병을 일으킨 정상을 낱낱이 아뢰고, 인하여 아뢰기를,

“곽재우가 실제로 역심(逆心)을 품고 있다면 현재 정병(精兵)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 사람의 역사(力士)를 보내어 체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역심을 품고 있지 않다면 한 장의 편지로도 충분히 개유(開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직접 편지를 써서 효유하였고 김면(金沔)도 편지를 보내어 경계시켰습니다. 그러자 곽재우가 바로 태도를 바꿔 순종하였으며, 진주(晉州)가 포위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사를 이끌고 벌써 구원하러 달려갔습니다.

곽재우가 일개 토민(土民)의 신분으로 감사를 범하려고 하여 격문을 돌려 그 죄를 성토한 일은, 아무리 스스로는 국가를 위하여 분격해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 자취가 질서를 어지럽힌 난민의 행위에 해당되는바, 즉시 토벌하여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건대, 곽재우는 온 나라가 함몰된 때를 당하여 외로운 군사를 일으켜 의기를 분발하여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도내의 쇠잔한 백성들이 그를 간성(干城)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난언(亂言)을 하였다는 이유로 즉시 주륙(誅戮)을 가한다면, 남은 성을 보존하여 왜적을 막을 계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군민들도 그의 죄를 알지 못한 채 필시 일시에 무너지고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에 신이 미봉책(彌縫策)으로 재삼 경계시키고 타이른 결과, 이미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순찰사에게 죄를 얻게 되었으니, 서로간에 용납되기 어려울 듯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또 김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잘 대우하게 하였으니, 염려할 만한 변고는 없을 듯합니다.

다만 김수가 이미 곽재우를 반적(叛賊)이라는 내용으로 계문하였고, 또 다른 사람을 사주하였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만약 이런 이유만으로 곽재우를 처벌한다면, 곽재우가 복죄(服罪)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도의 인심을 수습하기 어려울 듯하니, 매우 가슴아프고 절박합니다.

곽재우가 충의심에서 분발하여 용맹스럽게 왜적을 토벌한 상황은 한 도에 널리 알려져 아동(兒童)과 주졸(走卒)들도 모두 ‘곽 장군(郭將軍)’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의 광망(狂妄)한 언동에 대한 처벌을 조금 늦추어 준다면 틀림없이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4월 중에 호남(湖南)으로 들어가 운봉현(雲峯縣)에 도착하니, 호남 사람들이 순찰사 이광(李洸)이 근왕(勤王)하는 일에 태만하다고 하여 성토하려 하면서, 신에게 비밀히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신이 대의로써 그들을 책망한 뒤에 즉시 김수에게 의논한 다음, 이광에게 알려 대비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수가 말하기를, ‘저들이 근왕하는 일을 태만하게 한다는 이유로 성토하려고 하니 의사(義士)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만약 이광이 듣고서 그 사람들을 처벌한다면 인심이 더욱 격분할 것이니, 이 일을 이광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하였으므로, 신이 그의 말에 따라서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곽재우의 일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김수가 진실로 호남 사람들의 의로움에 대하여 조처한 것처럼 곽재우의 일을 처리한다면 난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행조(行朝)에서는 김수의 장계를 보고 난처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김성일의 장계를 보고는 미심쩍은 의심이 확 풀려 즉시 김수를 소환하니, 영남 사람들이 크게 감복하였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 8월. 이때 이순신(李舜臣)이 주사(舟師)를 거느리고서 서해(西海) 입구를 막고 있었으며, 김성일 등이 진주의 요충지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왜적들이 금산(金山)을 지나 전라도의 경내로 들어가려 하다가 여러 번 저지당하여 오던 길을 따라 퇴각하였다. 이에 호서(湖西)도 함몰되는 것을 면하였고, 국가도 이 두 도가 보전된 데에 힘입어 군량(軍糧)을 댈 수가 있었으니, 당시의 장사들이 막고 지킨 공이 크다고 하겠다.

○ 선조 대왕 25년 임진 10월. 부산(釜山) 등지에 주둔해 있던 왜적들이 군사를 합하여 대거 침입해 와 진주성을 포위하였다.
당초에 왜적들이 유숭인(柳崇仁)의 군사를 패퇴시키고는 여러 고을을 분탕질한 다음, 진주성으로 향하고자 하였다. 이에 김성일이 호남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호남의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와 임계영(任啓英)이 달려왔다. 김성일이 의병장 곽재우와 이달(李達)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게 하고, 사잇길로 군기(軍器)를 수송하게 하였다.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왜적들을 크게 격파하여 진주가 포위에서 풀렸다.

당초에 왜장(倭將)이 군사 수만 명을 모두 동원하여 진주성을 포위하였는데, 성 안의 군사는 3000여 명뿐이었다. 김시민이 여러 성첩을 나누어 지키게 하면서 조용히 기다리도록 하니, 성 안이 고요하였다. 왜적들이 기치(旗幟)와 개삽(蓋翣)을 많이 설치하고 금으로 꾸민 가면에 이상한 옷을 차려 입어 햇빛에 번쩍이고 바람에 펄럭이니, 온갖 형상에 눈이 부시고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왜장 6명이 진(陣)을 나누어 전투를 독려하였는데, 총수(銃手) 수천 명이 항상 산 위에서 성 안을 향해 일제히 조총을 쏘아대니, 그 형세가 마치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는 듯하였으며, 총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김시민은 군사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말고 있다가 왜적들의 성세가 약해지기를 기다려 즉시 포(砲)를 쏘고 북을 울리며 응전하게 하였다.

왜적들이 대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많이 베어 엮어서 방패막이를 만들고 흙을 쌓아 그 속을 채워 우리 군사가 모르게 한 다음, 대나무 사다리 수천 개를 만들었는데, 너비가 한 칸쯤 되었으며, 그 위에 망석(網席)을 덮어 많은 군사가 동시에 일제히 오를 수 있게 하였다. 또 3층 높이의 산대(山臺)를 만들어 성첩을 내려다보게 하였다. 그러자 김시민은 화구(火具)를 미리 준비하고 화약(火藥)을 종이에 싸서 풀로 묶어 성 위에 감춰두게 하였으며, 대포(大砲) 및 대석(大石)을 나누어 설치하게 하고, 여장(女墻) 안에다가는 가마솥을 비치하고 물을 끓여 대기하도록 하였다.
왜적들이 공격할 장비를 모두 갖추고 사면으로 육박해 오자, 성 안에서는 현자총(玄字銃)을 쏘아 산대의 왜적을 맞춰 떨어뜨리고, 화약과 풀로 송장(松障)을 태웠으며, 대포로 대나무로 엮은 긴 사다리를 부수고, 끓인 물을 퍼붓기도 하고 큰 돌을 던지기도 하여, 여러 가지의 공격용 장비를 격파하였다.

9월 10일 밤중에 적병이 거짓으로 물러가는 체하다가 몰래 되돌아와 왜적의 대장이 직접 전투를 독려하였다. 여러 왜적들이 모두 방패로 가리어 머리를 감싸고서 처음에는 동문(東門)을 공격하였는데, 앞에서 한꺼번에 올라가게 하고 뒤에서는 1000자루나 되는 총으로 일제히 사격하여 성 위에 사람이 설 수 없게 하였다. 그러자 김시민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활과 쇠뇌와 포를 쏘고 돌을 굴리게 하니, 적병이 이르는 곳마다 죽어 넘어져 쓰러진 시체가 삼대처럼 즐비하여 왜적들의 공격을 좌절시켰다.

바야흐로 전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또 하나의 대진(大陣)이 동문을 공격하던 것과 똑같은 형태로 북성(北城)을 갑자기 공격하였다. 이에 만호(萬戶) 최덕량(崔德良) 등이 죽기를 무릅쓰고 대항해 싸우면서 일사불란하게 막아내었는데, 동녘이 밝아오자 왜적들의 공격이 조금 뜸해졌다. 성 안의 나무와 돌, 기와, 띠풀 등이 거의 없어졌으며, 김시민도 탄환에 맞아 누워 있었다. 이때 곤양 군수(昆陽郡守) 이광악(李光岳)이 왜장을 쏘아 죽이니, 한낮이 되어서야 적진이 비로소 퇴각하여 시체를 태우고 포위를 풀고 흩어졌다. 성이 포위당한 10여 일 동안에 4, 5차례 큰 전투를 벌이면서 안팎에서 힘껏 싸웠으므로 왜적들이 먼저 도망하였다.

왜적들이 포위하고 있을 때 양도(兩道)의 구원병은 모두 요새지에 웅거하여 결진(結陣)하고서 밤이면 가까운 산에 올라가 성 안과 더불어 횃불을 올리면서 북을 쳐 서로 호응하였으나, 감히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왜적들이 부대를 나누어 이웃 고을을 노략질하자, 구원병이 요로에서 막고 습격하여 상당수를 살해하거나 상처를 입혔는데, 김준민(金俊民)은 여러 차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왜적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왜적이 이미 퇴각하여 본 소굴로 돌아갔으므로 여러 고을이 모두 수복되었다. 김시민의 병이 심해지자 김성일이 서예원(徐禮元)을 그 대신 목사로 삼았다. - 이하 생략 -

○ 선조 대왕 26년 계사(1593) 4월. 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이 졸하였다.
당시 혹심한 병란에 백성은 굶주리고 여역(癘疫)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김성일이 직접 나아가 진구(賑救)하면서 밤낮으로 수고하다가 여역에 전염되어 죽었다. 일로(一路)의 군사와 백성들이 마치 친척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김성일은 성품이 강직하고 방정하며 재질이 매우 뛰어났는데, 이황(李滉)에게 사사(師事)하였다. 젊어서부터 격앙하고 강개하여 기절(氣節)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조정에 있을 때에는 기탄없이 탄핵하였으므로 사대부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는 예절을 철저하게 지켰으므로 왜인들이 경복(敬服)하였다. 그런데 동행한 사람들과 서로 불화한 나머지 적정(敵情)을 잘못 주달한 탓에 처형을 당할 뻔하였다. 그러다가 용서를 받고 왕명을 받음에 미쳐서는 나랏일을 걱정하고 임금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력을 다해 왜적을 칠 것을 맹세하였다.

평소에 군려(軍旅)에 대한 일은 알지 못했으나, 지성으로 백성들을 효유하였고 관군과 의병 등 여러 군사들을 잘 조화시켰는데, 한 지역을 1년 넘게 보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가 훌륭하게 통솔한 덕분이었다.

그는 임종할 적에도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 김역(金湙)이 옆 방에 있으면서 함께 염병에 걸려 위독하였으나, 한 번도 그의 병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직 국사(國事)를 가지고 종사관들에게 권면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의열(義烈)에 감동하였다.

김면(金沔)과 김성일이 잇달아 죽으니 모여들었던 군병들이 대부분 흩어져 수습할 수 없었다. 한효순(韓孝純)이 김성일을 대신하였으나, 군정(軍政)이 김성일에 미치지 못하였는바, 최경회(崔慶會)가 거느린 군사는 겨우 수백 명에 불과했는데도 굶주리고 병에 걸려 죽는 자가 잇따랐다.

[주-D001] 어떤 사람 : 정이주(鄭以周)이다.[주-D002] 종계(宗系)의 …… 일 : 조선 초 이래 선조 때까지 말썽이 되었던, 조선 왕조의 조상이 명(明) 나라의 서적에 잘못 기록된 것을 개정하는 일을 가리킨다. 명 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조의 권신(權臣)인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고치고자 여러 차례 주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선조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수정되었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선조실록(宣祖實錄)》- 2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선조실록(宣祖實錄)》 1에서 연결

○ 선조 25년 임진 6월 28일(병진). 경상우도 초유사(慶尙右道招諭使) 김성일이 치계하기를,

“신은 죄가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특별히 천지 같은 재생(再生)의 은혜를 입어 형벌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초유(招諭)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신은 명을 받고 감격하여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면서 이 왜적들과는 함께 살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지난달 29일에 직산(稷山)에서 남쪽으로 달려가 이달 5일에 공주(公州)에 도착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幸行)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면서 걸어서라도 호종(扈從)의 대열에 끼어 말굴레 밑에서 죽고자 하였으나,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은 의리로 보아 차마 물러나 앉아 있을 수 없어 맨주먹으로라도 김수(金睟)를 따라다니다가 싸움터에서 죽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유의 명을 받았으니, 마음대로 임무를 저버릴 수 없는바, 백성들을 혈성(血誠)으로 개유(開諭)하고 충의(忠義)로써 격려한다면, 작은 힘이나마 나라를 위하는 신의 마음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잠시 죽음을 미루고서 구차스럽게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본도(本道)는 함락되어 패전한 나머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도망한 군사나 패전한 병졸들만이 산속으로 숨어든 것이 아니라, 대소 인민들이 모두 산속으로 숨어들어 새나 짐승처럼 엎드려 있습니다. 이에 아무리 되풀이해서 알아듣도록 설득해도 응모(應募)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근일에는 고령(高靈)에 사는 전 좌랑(佐郞) 김면(金沔), 합천(陜川)에 사는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이 그의 동지인 현풍(玄風)에 사는 전 군수(郡守) 곽율(郭𧺝), 전 좌랑 박성(朴惺), 유학(幼學) 권양(權瀁) 등과 더불어 향병(鄕兵)을 모집하니, 따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인홍은 정예병(精銳兵)이 거의 수백 명이며 창군(槍軍)은 수천 명이나 되는데, 고을의 가장(假將) 손인갑(孫仁甲)을 추대하여 장수로 삼고는 왜적을 방어할 계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삼가(三嘉)에 사는 전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윤탁(尹鐸), 전 봉사(奉事) 노흠(盧欽)도 의병(義兵)을 일으켜 서로 응원하려고 합니다. 김면은 스스로 장수가 되어 바야흐로 병사들을 모집하고 있던 차에, 적병들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병사들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니, 왜적들이 패전하여 달아났습니다. 이에 10여 리를 추격하여 거의 대첩(大捷)을 거두려는 찰나에 복병(伏兵)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 군사가 놀라 무너져 퇴각하였습니다. 순찰사(巡察使)는 전 현령(縣令) 조종도(趙宗道)를 소모관(召募官)으로 삼아서 제법 많은 인민을 불러모아 여러 일들을 수습하였습니다.

또 의령(宜寧)에 사는 고(故) 목사(牧使) 곽월(郭越)의 아들인 유생(儒生) 곽재우(郭再祐)는 젊어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혔고, 집안이 본래 부유하였는데 변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자기 재산을 다 내놓아 의병을 모집하였습니다. 수하에 장사(壯士)들이 자못 많이 모이자 가장 먼저 군사를 일으켜 초계(草溪)의 빈 성(城)으로 들어가 병장기(兵仗器)와 군량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때 같은 고을에 사는 정대성(鄭大成)이란 자가 무리를 모아 도적질을 하였으므로 합천 군수(陜川郡守) 전현룡(田見龍)은 곽재우까지 도적으로 의심하여 감사(監司)와 병사(兵使)에게 급히 통보하였습니다. 이에 감사와 병사가 마침내 명령을 내려 정대성을 잡아 참수하니, 곽재우의 병사들도 모두 흩어졌습니다.

도사(都事) 김영남(金穎男)이 곽재우는 도적이 아니라고 말하자, 감사 김수는 전현룡의 말을 믿지 않고 신으로 하여금 초유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즉시 공첩(公帖)을 보내어 곽재우를 부르니, 곽재우가 며칠 뒤에 단성현(丹城縣)으로 신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비록 담력과 용맹은 있으나 심원한 계책이 없으며, 또 당치도 않게 큰소리만 잘 칩니다. 패주한 수령(守令)이나 변장(邊將) 등의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참수(斬首)하려고 하여, 심지어는 감사와 병사에 대해서도 불손한 말을 많이 하였으므로, 그를 비방하는 말이 비등하여 미친 도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위급한 때를 당하여 이런 사람을 잘 다루어 쓰면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기에, 즉시 동현(同縣)으로 보내 돌격장(突擊將)이란 칭호를 붙여주고서 그로 하여금 왜적들을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곽재우는 그의 아비가 명(明) 나라 북경(北京)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帖裏)을 입고서, 현재 장사(壯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宜寧縣)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이에 왜적에게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왜적들이, 이 지방에는 홍의 장군(紅衣將軍)이 있으니 조심하여 피해야 한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의령 고을 사람들이 그에 힘입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신은 비록 그가 사납고 경솔할까 의심스럽습니다마는, 격려하고 권장하여 힘을 다하도록 하면서 서서히 그가 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 곽재우는 4월 24일에 의병을 일으켜 왜적들을 토벌하였다. 김천일(金千鎰) 등이 그 뒤에 비록 창의사(倡義士)로 이름하였지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실제로는 곽재우이며, 왜적들이 감히 정암진(鼎巖津)을 건너 호남(湖南)으로 가지 못하게 한 것도 바로 곽재우의 공이다. 곽재우는 김수가 싸우지 않고 점차 퇴각하는 것에 분격하여, 당초 의병을 일으킬 적에 김수에게 격문(檄文)을 보내어 김수의 죄를 일일이 따졌다. - 중략 - 김수가 마침내 성(城)을 지키면서 곽재우를 피하고 김성일로 하여금 그를 타이르게 하였다. 김성일이 힘껏 저지하지 않았다면 김수는 아마 죽음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김수는 산음현(山陰縣)에 있다가 곽재우의 선봉이 이미 바싹 다가왔다는 소식을 듣고 함양(咸陽)으로 도망갈 때에 심지어 말을 거꾸로 타고 달아나니, 좌도와 우도의 사람들이 김수가 왜적에게 겁먹고 또 곽재우에게 겁먹은 것을 비웃었다. 김수가 전현룡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리가 없을 터인데, 지금 김성일의 치계에 ‘김수도 전현룡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하였다.
진주(晉州)에 사는 유생 300여 명이 또 서로 통문(通文)을 돌려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막기로 모의하였습니다. 비록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가가 믿는 것은 인심이니, 인심이 이와 같기를 하찮은 소신은 밤낮으로 하늘에 축원하였습니다.

다만 변란이 발생한 초기에 도내(道內)의 병사(兵使), 수사(水使), 방어사(防禦使), 조방장(助防將) 등이 각 고을의 군기(軍器)들을 옮겨 전쟁터에 쌓아두었다가, 무너져 달아날 때에는 물이나 불 속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도중에 버리기도 하여, 병기(兵器)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창고 곡식의 경우는 수령 등이 왜적이 닥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겁을 집어먹고서 창고를 불사르기도 하고 백성들이 훔쳐먹도록 내버려두기도 하여, 군량도 일체 없어졌습니다.

의병이 비록 일어났어도 병기와 군량이 없어서 사람들이 견고한 뜻이 없으니, 적변(賊變)을 들으면 모였다가는 바로 흩어져 버립니다.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병기와 군량을 조달해 낼 방도가 없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왜적은 대부대가 서울로 향한 뒤에 잔여 왜적들이 혹은 100여 명, 혹은 5, 60명씩 부대를 편성하여 곳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성주성(星州城)을 점거하고 있는 왜적은 고작 4, 50명에 불과할 뿐인데도 우리 병사들이 감히 그 소굴을 엿보지 못하며, 왜적들이 목사(牧使)나 판관(判官)이라고 자칭하면서 관곡(官穀)을 나누어 주자 백성들이 모두 복종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에 왕래하는 적선(賊船)이 혹은 100여 척, 혹은 수십 척씩 강을 뒤덮고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이는 모두 약탈한 물건을 운송하는 배들입니다.

또 한떼의 왜적들이 좌도(左道)의 경주(慶州), 영천(永川), 신령(新寧), 의흥(義興), 군위(軍威), 의성(義城), 안동(安東) 등지를 경유하면서 도처마다 함락하는데, 감히 그들의 예봉(銳鋒)을 당해 낼 수가 없어서 좌도와 우도의 길이 끊어졌으니, 지금은 왜적들이 어느 곳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도에 침범한 왜적의 한 패는 김해(金海), 창원(昌原), 우병영(右兵營), 칠원(漆原) 등지를 약탈하여 소굴로 삼고 있고, 또 한 패는 연해(沿海)의 여러 섬에 출몰하는데, 여러 진보(鎭堡)의 장수들은 왜적을 바라만 보고서도 겁을 먹어 앞다투어 육지로 도망쳤으므로, 바다의 군영이 모두 텅 비어 버렸습니다.

우수영(右水營)은 수사(水使)와 우후(虞候)가 스스로 군영을 불태웠으며, 우후는 간 곳을 알 수가 없고, 수사는 배 한 척을 타고서 현재 사천(泗川) 해포(海浦)에 있는데, 격군(格軍) 수십 명 이외에는 군졸이 한 명도 없습니다. 신이 보건대, 고성(固城)이 비록 함락되었지만 왜적들이 이미 돌아갔고 군량도 있으니, 만약 수사가 성에 들어가 웅거하여 지킨다면 무너져 흩어진 인민들이 반드시 앞다투어 모여들어 안집(安集)할 것 같았습니다. 이에 두 차례나 수사에게 통문(通文)을 보냈더니, 수사가 지난 19일 성으로 들어가 지킬 계획으로 고성현 지경에 배를 대자, 전날의 왜적 100여 명이 배반한 백성들을 거느리고 재차 와서 성을 점거하였으므로 결국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수사가 선전관(宣傳官) 원전(元㙉)이 전한 명에 의하여 전라도 수사와 재차 약속하여 근간에 적선을 쳐부수려 한다고 합니다. 신의 망녕된 생각으로는, 소소한 왜구는 배를 쳐부수어 돌아갈 길이 없게 한다면 궁벽한 산속에서 굶어 죽거나 변방 장수에게 섬멸당하게 될 것이니, 진실로 좋은 계책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왜적들은 서울에 웅거하고 여러 도(道)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빈 배를 쳐부순다면 적에게 손해를 입히지는 못하고 다만 죽기를 각오하는 그들의 마음만 부추길 뿐이니, 오랫동안 나라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거제 현령(巨濟縣令)은 - 김이민(金履民)이다. - 성을 아주 굳건히 지켜 죽어도 떠나지 않을 뜻을 품고 있어서 온 섬이 그를 의지해 저절로 견고해졌습니다. 그런데 순찰사(巡察使)가 - 김수(金睟)이다. - 근왕(勤王)할 일로 불러 현령이 육지로 나가자마자 곧바로 군사와 백성들이 무너져 흩어져서 왜적들이 성 안에 가득합니다.

남해(南海)는 호남(湖南) 지경에 끼여 있어 왜적이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는데, 현령 기효근(奇孝謹)이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에게 보고하기를, ‘본현(本縣)은 좌수영(左水營)과 가까우므로 왜적들이 만약 이곳을 탈취할 경우, 이곳에는 군량이 많기 때문에 오래 주둔하면서 반드시 호남을 침범하려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현령이 바다로 나간 사이에 그의 군관(軍官)으로 하여금 창고를 다 불태우게 하니, 고을 백성 및 미조항(彌助項), 평산포(平山浦)로 들어가 있던 군사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현령이 관아로 되돌아와 보니 빈 성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부득이 보리를 거두어 군량을 마련하고 흩어진 군졸들을 수합하여 어렵게 성을 지키고 있는데, 왜적이 쳐들어오면 반드시 먼저 무너져 흩어질 것입니다.

진해(鎭海), 고성(固城)은 전일에 파선(破船)되어 육지로 올라온 왜적 40여 명이 고을 경내에 출현하자, 진해 현감은 먼저 도망하였습니다. 고성 현령 김현(金絢)은 부임한 지가 7년인데, 형벌이 너무 가혹하여 민심을 잃은 지 오래이므로, 진해에 적이 들어온 뒤에는 배반한 백성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현령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현령이 그 기미를 알아채고는 복병을 배치해 놓고 거짓으로 도망한 체하니, 배반한 백성들이 앞다투어 성 안으로 들어가 관고(官庫)의 물건들을 훔쳐냈습니다. 그러자 매복해 있던 복병들이 이들을 엄습하여 50여 명을 사로잡아 참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더욱 원망하여 배반하므로 현령은 수사(水使)와 더불어 일시에 바다로 나갔는데, 이때 왜적이 입성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하므로 현령이 도망하였습니다.
함안 군수(咸安郡守) 유숭인(柳崇仁)은 장기간 전쟁터에 나가 있어 백성들이 흩어져 성이 빈 지가 거의 한 달이 되었는데도 왜적들이 아직 쳐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달 중에 순찰사가 비로소 군수로 하여금 돌아가 그 고을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14일에 왜적들이 쳐들어와 여염집을 분탕질하자 군수가 흩어져 도망한 사람 100여 명을 소집하여 연일 공격하니, 왜적들이 자못 퇴각하여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순찰사가 군수를 근왕(勤王)할 일로 불러가자 왜적이 이미 온 군(郡) 안에 두루 널렸습니다.

초계군(草溪郡)과 합천군(陜川郡)은, 군수가 처형당하거나 혹은 체직당하였으므로 순찰사가 최몽성(崔夢星), 손인갑(孫仁甲)을 초계군과 합천군의 가장(假將)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잇달아 치보하기를, ‘이달 16일에 적선 200여 척이 강을 뒤덮고 초계 지방으로 올라와 상륙하여 도적질하니, 인민들은 달아나 숨고 최몽성은 군(郡)을 버리고서 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18, 19일에 왜적이 잇달아 합천 지경을 침범하였습니다.’ 했습니다. 병사(兵使)가 현재 거창에 있지만 휘하의 군졸이 다 도망하여 한 명도 없으므로 응원할 방책이 없습니다. 왜적들이 만약 합천으로 들어온다면 보존되어 있는 내지(內地)의 4, 5개 고을이 차례차례 함락당할 것입니다.

본도의 순찰사는 서울로 올라갔고, 병사(兵使)는 군졸이 없고, 수사(水使)는 군영을 잃었으며, 남은 고을로는 다만 거창(居昌), 안음(安陰), 함양(咸陽), 산음(山陰), 단성(丹城), 진주(晉州), 사천(泗川), 곤양(昆陽), 하동(河東), 합천(陜川), 삼가(三嘉) 등 10여 고을이 있을 뿐인데, 인민들이 모두 깊은 산중으로 도망쳐 들어가 빈 성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비록 수령(守令)과 가장(假將)이 있기는 하지만 호령이 시행되지 않아 군사를 조달하여 응원할 방책이 없으니, 불원간 모두 왜적들의 소굴이 될 것인바, 애통하고 절박한 상황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이 보건대, 진주는 남쪽 지방의 거진(巨鎭)으로 양도(兩道)의 요충지에 위치하였으니, 이곳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 일대만 보존할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고을도 토붕와해(土崩瓦解)되어 조석간도 보존할 수 없을 것이어서 왜적들이 반드시 호남을 침범할 것입니다. 호남은 지금 근왕(勤王)으로 인하여 도내(道內)가 텅 비었으니, 또다시 왜적들의 침입을 받는다면 더욱 한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바로 수양(睢陽) 한 군(郡)이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이 된 것과 같으니, 오늘날 꼭 지켜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진주의 정병(精兵)은 이미 감사와 병사에게로 갔다가 모두 무너져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갔고, 그 나머지 성을 지키는 군사는 겨우 1000여 명이며, 아병(牙兵)으로서 활을 잘 쏘는 자도 겨우 6, 70명뿐입니다.

신은 진주에 머물러 있으면서 독려하고 조치하여 이 고을을 견고하게 지킴으로써 호남 및 내지를 방어하는 계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 이경(李儆)이 목에 종기가 난 지 한 달이 지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순찰사가 이경이 실제로 아픈 줄을 모르고서 또다시 이미 주청하여 그를 파직시켰으므로, 판관(判官)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어서 성을 지킬 장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이 편의에 따라 진(鎭)을 버린 수령과 변장 등을 수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을 세워 스스로 충성을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가덕 첨사(加德僉使) 전응린(田應麟)과 고성 현령(固城縣令) 김현(金絢)이 스스로 나타났으므로, 전응린은 군관(軍官)을 거느리고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정암진(鼎巖津)을 지키게 하였으며, 김현은 진주의 수성장(守城將)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또 권관(權管) 주대청(朱大淸) 등도 나타났기에 판관과 함께 성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사(兵使)와 수사(水使)가 패망한 뒤에 휘하에 한 명의 군졸도 없으므로 성을 지키는 군졸들을 보내달라고 독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서 성을 나가면 모두 흩어질 것이므로, 피차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신이 사유를 갖추어 관문(關文)을 보내고 진주에 현재 남아 있는 군졸에게는 전적으로 성을 지키는 일을 맡겨 호남과 이 지방 고을을 방어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이 또 생각하건대, 진주를 보존하려면 반드시 인근을 침범해 오는 왜적을 공격해야만 병세를 펼칠 수 있을 듯하기에, 곤양 군수(昆陽郡守)를 중위장(中衛將)으로, 사천 현감(泗川縣監) 및 진주 판관(晉州判官)을 좌우 돌격장(左右突擊將)으로 삼은 다음, 정병 300명을 거느리고 가서 함안군에서 왜적을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연일 비가 내려 접전하지 못하였으며, 왜적들은 우리의 대군이 이른 것을 바라보고는 곧바로 퇴각해 흩어졌습니다.

잠시 뒤에 왜적 100여 명이 또 고성(固城)을 침범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고성은 진주와 사천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부득이 군사를 돌려 합동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왜적들이 배반한 우리 백성들을 거느리고 현성(縣城)에 웅거하여 철환(鐵丸)을 많이 쏘았으며, 또 배반한 우리 백성들을 시켜 활을 마구 쏘도록 하였으므로 관군이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내(道內)에 감사(監司)가 없으므로 모든 적변(賊變)을 당연히 신이 아뢰어야 합니다. 신이 도내에 있으면서 여러 성이 함락된 사유와 여러 장수들이 패전한 상황을 목격하였는데, 말하는 자들은 모두 ‘군졸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왜적과 대진하자마자 무너져 흩어졌기 때문에 장수가 속수무책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좌수사(左水使) 박홍(朴泓)은 화살 한 대도 쏘지 않고 먼저 성을 버렸으며, 좌병사(左兵使) 이각(李珏)은 뒤이어 동래(東萊)로 도망하였으며, 우병사(右兵使) 조대곤(曺大坤)은 연로하고 겁이 많아 시종 물러나 움츠려 있었고, 우수사(右水使) 원균(元均)은 군영을 불태우고 바다로 나가 배 한 척만을 보전하였습니다. 병사와 수사는 한 도(道)의 주장(主將)인데도 하는 짓이 이와 같으니, 그 휘하의 장졸(將卒)들이 어찌 도망하거나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양산(梁山)의 가장(假將)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진(朴晉)도 창고와 병기(兵器)를 불태우고 도망하였습니다. - 이때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趙儆)과 종사관(從事官) 이수광(李睟光)이 말하기를, “박진(朴晉)이 밀양 부사로 있으면서 왜적들이 크게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성을 지키다가는 반드시 빠져나가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이에 도망갈 계책을 내어, 황산(黃山)으로 가 잔도(棧道)에서 왜적들을 방어하겠다고 핑계 대고서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나가 그대로 도망쳤다.” 하였다. 영남 사람들은 오로지 밀양의 방어만을 믿고 있었는데, 밀양이 이미 스스로 무너지자 왜적들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승승장구하였다. 비록 그때 왜적들의 기세가 하늘을 뒤덮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기세를 펼치도록 한 것은 실로 박진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박진은 순찰사가 군령(軍令)을 집행할까 두려워서 감히 곧바로 순찰사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가 순찰사가 근왕(勤王)하는 일로 충청도에 도착하자, 친한 사람을 시켜 순찰사에게 통정(通情)하도록 하여 순찰사가 군령을 집행하지 않을 것을 확실하게 안 뒤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순찰사 역시 실제로는 형벌을 시행할 뜻이 없었으므로 박진을 뜰 아래에 꿇어앉히고 잠시 꾸짖는 말을 한 다음 즉시 풀어 주었다. 순찰사는 박진과 서로 친하였기 때문에 비록 휘하의 여러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부득이 약간 꾸짖는 말을 하였지만, 일찍이 치계한 말에서는 박진이 공로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그 곡절을 모르고서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어 당상으로 승급시켜 병사(兵使)로 삼기까지 하였다. 뜰 아래에 꿇어앉힌 그 다음 날 박진을 병사에 제수하는 관교(官敎)가 이르자, 박진이 순찰사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영남으로 도로 내려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하여 말한 사람이 없었으며, 유독 김성일만이 이렇게 직절(直切)한 말을 하였을 뿐이다.

바다 안의 여러 고을들이 왜적의 배를 바라만 보고서도 일시에 달아나 흩어져 육지로 나와서는, 장수는 도주하는 것을 상책(上策)으로 삼고, 수령(守令)은 성(城)을 살아날 길이 없는 매우 위험한 곳으로 여기는데, 온 도내가 다 그러합니다. 이에 왜적들이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수십 일 사이에 서울을 침범하였으니, 예로부터 남의 나라의 수도를 오늘날처럼 이렇게 쉽사리 함락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군법이 엄하여 패전한 자는 반드시 죽이고, 성을 포기한 자는 반드시 죽이며, 또한 변란이 발생한 뒤에 장수가 군법을 제대로 시행하여 범죄자를 즉시 참수하였다면, 사람들이 후퇴하면 반드시 처형당할 줄을 알았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처럼 무너져 달아나는 지경에야 이르렀겠습니까. 장수나 수령 등을 처벌하지 않고 도망한 군졸들만 처벌하는 것은 아무래도 말단만 다스리는 것일 듯합니다.

신이 지금 성지(聖旨)를 받들어 흩어져 도망한 사람들을 초유(招諭)하여 돌아와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유식한 부로(父老)나 유생(儒生)들이 모두들 말하기를, ‘백성들도 이대로 있다가는 끝내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알고서 모두들 스스로 분기(奮起)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내에 장수가 없으니 우리들이 비록 나가더라도 누구에게 의지하여 공을 이루겠습니까?’ 하였는데, 신도 어떻게 답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근래에 부역(賦役)이 번거롭고 무거워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는 데다가 형벌마저 매우 가혹하였습니다. 이에 군졸이나 백성들이 마음속에 원망이 가득한데도 호소할 길마저 없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이산된 지가 벌써 오래입니다. 왜국에는 정수(征戍)나 요역(徭役)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데, 왜적들이 또 민간에 명을 내려 회유(誨誘)하자, 어리석은 백성들이 모두 왜적들의 말을 믿어, 항복하면 반드시 살고 싸우면 반드시 죽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연해(沿海)의 무지한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옷도 바꾸어 입고서 왜적을 따라다니는데, 곳곳에서 도적질하는 자들 가운데 왜적은 몇 명 안 되고 절반이 배반한 우리 백성들이니 매우 한심합니다.

지난번 애통해하시는 교서(敎書)를 내리자, 사람들이 듣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인심이 쉽게 감동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관대한 명령을 내려, 전쟁이 평정된 뒤에는 요역을 경감하고 부세를 가볍게 하며, 형벌(刑罰)을 완화하고 옥사(獄事)를 느슨히 하며, 진공(進貢)을 감하고 포흠(逋欠)을 면제하며, 일족(一族)이 연대 책임지는 법을 제거하고 공적을 세운 장수에 대한 율(律)을 중하게 하여, 일체 군민에게 해가 되는 것은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약속하여, 국가가 구습을 개혁하고 백성들과 다시 시작한다는 뜻을 알게 한다면, 백성들이 감격하여 기뻐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기뻐하면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있으니, 왜적들이 아무리 창궐한다 하더라도 섬멸하는 공을 거둘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 같은 날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조대곤(曺大坤)이 치계하기를,

“5월 23일에 적은 무리의 왜적들이 고령현(高靈縣)에 침입하였습니다. - 중략 -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홍걸(洪傑)이 돌진하여 그들을 베었습니다.”

하였다. - 김성일이 병사(兵使)가 되어 내려간 뒤에 조대곤이 교대하여 곧바로 돌아가려고 하자, 김성일이 말하기를, “영공(令公)은 비록 돌아가더라도 할 만한 일이 없으니 이곳에 있으면서 나와 협력하여 왜적을 공격합시다.” 하였으므로, 조대곤이 돌아가지 못하였다. 조대곤의 군관으로서 병영(兵營)을 지키던 자가 왜적들이 급히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쳐 돌아와 조대곤을 알현하였다. 이때 김성일이 조대곤과 함께 앉아 있다가 그를 문책하기를, “너는 무인(武人)으로서 비록 성을 버리고 나오더라도 마땅히 왜적 한 놈이라도 베었어야 할 터인데, 지금 빈손으로 왔으니, 너의 죄는 참수해야 한다. 그리고 너를 참수하는 것은 너를 죄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 장수를 죄주는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서는 조대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참하니, 조대곤이 사색(死色)이 되었다. 그 뒤에 왜적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조대곤이 몹시 두려워하면서 김성일에게 청하기를, “왜적이 크게 쳐들어오니 영공은 말을 타고 달아나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김성일은 곧바로 승상(繩床)에 걸터앉아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활을 잘 쏘는 군관 8명으로 하여금 앞으로 진격하여 왜적을 사로잡도록 하고, 또 군관으로 하여금 왜적 1명을 참하게 하니, 왜적이 마침내 퇴각하였다. 조대곤이 영남 절도사의 중임을 받고서 감히 이런 것을 가지고 치계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공으로 삼으려는 심산이었던가, 아니면 죄를 모면해 보려고 한 것인가? 이와 같이 하고서도 오히려 관작을 보존할 수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군령(軍令)이 시행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이하 생략 -

○ 선조 25년 임진 7월 5일(임술). 비변사(備邊司)가 아뢰기를,

“ - 중략 - 김성일의 서장(書狀)에, 전 군수 곽율(郭𧺝)과 유학(幼學) 권양(權瀁)이 향병(鄕兵)을 불러모았는데 의거(義擧)를 일으킬 만하다고 하였으니, 곽율은 승서(陞敍)하고 권양은 관직을 제수하여 권장하소서.”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25년 임진 8월 7일(갑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이하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곽재우가 김수를 죽이려는 뜻을 품고 있는데, 혹 자신의 병세(兵勢)를 믿고 죽이려는 것이 아닌가? 김수를 체차(遞差)할 수도 없고 곽재우를 견책(譴責)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김성일을 시켜서 화복(禍福)을 가지고 타이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 이하 생략 -
○ 같은 날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경상 감사와 초유사(招諭使)의 장계를 보았습니다. 동래 부사(東萊府使) 손인갑(孫仁甲)은 사변을 듣고 즉시 달려가서 조그마한 공이라도 세우기를 맹세하고는 낙동강을 건넌 이후로 싸우다가 죽을 곳을 찾았으며, 전후 죽인 왜적의 수가 거의 수백 명이나 되었는데, 어느 날 말이 자빠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전 판관(判官) 이형(李亨)은 먼저 성에 올라 창의(倡義)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다가 피살되어 부자(父子)가 잇달아 죽었으니, 그가 몸을 돌보지 않고 순국(殉國)한 절의는 옛사람에 견주어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가덕 첨사(加德僉使)의 군관(軍官) 김경욱(金景郁)은 전후 세운 전공(戰功)이 매우 많았는데 왜적을 베다가 죽었습니다. 고령(高靈) 사람 이호신(李好信)은 역전(力戰)하면서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왜적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의령(宜寧) 사람 조언남(曺彦男)은 용맹이 뛰어나 처음부터 끝까지 먼저 성에 올라가 왜적을 치다가 탄환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들 모두에 대해서 시급히 표창하여 풍성(風聲)을 세우고 그 집을 후히 돌볼 것은 물론, 후일 그들의 아들 한 명을 벼슬시키소서.”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같은 날에 김성일(金誠一)을 경상좌도 관찰사로, 한효순(韓孝純)을 경상우도 관찰사로 삼았다.

○ 선조 25년 임진 10월 25일(신해). 상이 비변사에 하문(下問)하기를,

“경상 감사 김성일은 한 일이 많으니, 가자(加資)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그 다음 날 비변사가 회계(回啓)하기를,

“김성일은 일찍이 본도(本道)의 초유사가 되었을 때 공로가 많았고, 지금 또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한 일이 없지 않습니다. 가자하여 다른 사람을 권면시키소서.”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 선조 25년 임진 10월 27일(계축). 김응남(金應南)을 부제학(副提學)으로, 성혼(成渾)을 우참찬(右參贊)으로 삼았다. 경상 감사 김성일(金誠一)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 김성일은 젊어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다. 이황이 죽을 무렵 조정에 천거하였는데, 조정에 벼슬하게 되어서는 준엄하고 강직하다는 말이 있었다. 일찍이 왜국(倭國)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는 왜인들이 접대하는 것이 조금만 예절에 어긋나면 번번이 지적하였으므로, 왜인들이 그를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왜인들이 회답하는 서장(書狀)의 내용이 공손하지 않자, 김성일이 받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고치지 않으면 죽어도 가지고 돌아갈 수 없다.” 하였다. 이에 왜인들이 그의 의기에 감복하여 끝내는 내용을 고쳤다. 조정에 돌아와서는 옥당(玉堂)의 장관에 보임되었다. 차자(箚子)를 올려 시폐(時弊)를 논하면서 궁위(宮闈)와 왕자(王子)들의 일에 저촉되는 말이 있었는데, 내용이 매우 긴절하고 곧았다. 그러자 상이 겉으로는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였으나 속으로는 좋지 않게 여겨 승지(承旨)로 좌천시켰다. 그때 마침 전옥서(典獄署)의 옥수(獄囚)가 도망친 일이 생겼는데, 상은 김성일이 전옥서의 제조(提調)를 겸하고 있으면서 검칙을 잘못하였다는 이유로 파직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김성일을 과감하게 공격하는 데에 합당하다고 하여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에 제수했다. 김성일이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왜적들이 경상도를 침범하였다. 그러자 상이, “김성일이 일본에서 돌아와 왜노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극력 주장함으로써 변경의 방비를 소홀케 하여 결국 이 난리가 터지게 하였다.” 하고서는, 금오랑(金吾郞)을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김성일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면하여 경상도의 초유사(招諭使)로 삼았으며, 다시 감사에 제수하였다. 김성일은 강개한 마음으로 임지에 나아갔고 험난한 일도 피하지 않은 채 죽기를 각오하고 일을 하였다. 일찍이 갑작스럽게 왜적을 만났는데, 장수와 사졸들이 중과부적임을 들어 피하자고 청하였으나, 김성일은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고서 기다렸다. 그러자 왜적들이 복병(伏兵)이 있는가 의심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였다. 남쪽 지방의 사민(士民)들은 김성일이 불러 위무하고 효유한 데 힘입어 안집(安集)해서 무너져 흩어지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영남의 인심을 수습한 데에는 김성일의 공로가 대부분이었다. 이때 절도사와 순찰사 등의 여러 관원들이 모두 의관을 차려 입지 않고 군사들과 섞여 지냈는데, 김성일이 말하기를, “어찌 우리나라 원문(轅門)의 의용(儀容)을 변형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군관들이 모두 붉은 옷을 입고 관(冠)에는 깃털을 꽂았다. 그가 위험한 때나 평온한 때나 한결같이 한 것을 여기에서도 볼 수가 있다. 김성일이 많은 공로를 세웠다는 이유로 상이 자급을 올리라고 명하였다.

○ 선조 25년 임진 11월 6일(임술). 비변사가 아뢰기를,

“일찍이 김성일(金誠一)의 장계(狀啓)로 인하여 호남의 곡식을 영남으로 옮겨서 구황(救荒)하는 일에 대해 이미 행이(行移)하였습니다. 지금 경상좌도 감사의 장계를 보니, 우도의 곡식을 옮겨 좌도를 구하고, 전라도의 곡식을 옮겨 우도를 구하기를 청했습니다. 차차로 곡식을 옮기면 운반하기가 매우 편할 것이니, 장계대로 시행하도록 - 이하 생략 - 삼도(三道)의 감사에게 행이하소서. - 이하 생략 - ”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25년 임진 12월 5일(신묘).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이 치계(馳啓)하기를,

“지난 10월 5일에 왜적들이 1만 명의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곧바로 진주(晉州)를 침범하였는데,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 유숭인(柳崇仁), 사천 현감(泗川縣監) 정득열(鄭得悅), 배량 권관(背梁權管) 주대청(朱大淸)이 출전하였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진주 목사(晉州牧使) 김시민(金時敏)과 판관(判官) 성수경(成守慶)이 곤양 군수(昆陽郡守)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는 제장(諸將)들과 함께 각 문(門)을 나누어 지켰습니다.

7일에 왜적들이 대나무를 베어 방패로 삼아 줄지어 진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목판(木版)을 끼운 다음 점차 진격해 와 크게 소리치며 포를 쏘았습니다. 신시(申時)에 잠깐 물러갔다가 초경(初更)에 또 진격해 왔으며, 삼경에 다시 물러갔습니다.
이보다 앞서 신은 진주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삼가 의병장(三嘉義兵將) 윤탁(尹鐸), 의령 가장(宜寧假將) 곽재우(郭再祐), 초계 가장(草溪假將) 정언충(鄭彦忠) 등으로 하여금 동쪽을 통하여 들어가고, 합천 가장(陜川假將) 김준민(金俊民)은 북쪽을 통하여 들어가고, 전라도의 의병(義兵) 최경회(崔慶會)는 서쪽을 통하여 들어가고, 고성 가장(固城假將) 조응도(趙凝道)와 복병장(伏兵將) 정유경(鄭惟敬)은 남쪽을 통해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윤탁이 200여 명을 거느리고 정언충이 100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강변에서 모였는데, 마현(馬峴)에서 왜적들과 부딪쳐 오랫동안 크게 싸우다 군사가 궤멸되어 돌아왔습니다. 곽재우가 선봉장 심대승(沈大昇)으로 하여금 북산(北山)에 올라가 햇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방포(放砲)하면서 성 안에 대고 크게 외치게 하기를, “전라도의 원병(援兵) 1만여 명과 의령(宜寧)의 홍의장군(紅衣將軍)이 합세하여 내일 아침에 와서 왜적을 쳐 죽이기로 하였다.” 하니,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크게 외치면서 서로 호응하였습니다.

김준민이 결사대 80여 명을 거느리고 단계현(丹溪縣)에 이르니, 왜적들이 막 관사(官舍)를 불사르고 있었습니다. 김준민이 곧바로 돌격하여 20여 리를 뒤쫓으니, 왜적은 흩어져 퇴각했습니다. 조응도가 남강(南江) 10리 밖에 이르러 멀리서 형세를 이루고 있으면서 영적(零賊)들을 소탕하였습니다.

10일 한밤중에 왜적들이 동문, 북문, 서문 등 세 문으로 나누어 침범해 왔는데, 긴 사다리를 세우기도 하였고, 성 밑을 파기도 하였고, 장작을 쌓아 불을 놓기도 하여 연기가 하늘을 가렸습니다. 김시민이 직접 독전(督戰)하였는데 철환(鐵丸)이 김시민의 이마를 맞히니, 성 안이 소란해졌습니다.

왜적들이 북문을 5, 6척이나 뚫고 그곳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이광악(李光岳)이 다시 제장들을 독려하여 화살을 쏘고 돌을 던졌는데, 왜적들은 개미처럼 성에 붙어 올라왔습니다. 이에 불을 밝히고 끓는 물을 쏟아 붓거나 혹은 진천뢰(震天雷)를 던지기도 하였는데, 죽은 왜적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비단옷을 입은 한 왜적이 양견마(兩牽馬)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여 돌진해 왔는데, 이광악이 화살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러자 왜적들이 모두 통곡하면서 시체를 메고 돌아가니, 성 안 사람들이 이로 인해 사기가 충천하였습니다.

최덕량(崔德良)이 서문을 방수(防守)하고 있었는데, 왜적 수천 명이 뜻밖에 충돌해 오는 바람에 진영을 지키던 수천 명이 일시에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최덕량이 그의 관하(管下)를 거느리고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물리쳤습니다. 왜적들은 성 밖에 있는 1000여 채의 집을 불사르고 신시(申時)에 포위를 풀고 물러나 함양(咸陽) 등의 길로 퇴각하였습니다.”

하였다.
○ 비변사가 아뢰기를,

“김성일이 올린 왜적들이 포위를 풀었다는 장계를 보건대, 수만 명의 왜적들이 누차 이긴 기세를 타고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함락시키려 하였으므로 위태로움이 조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시민(金時敏)이 수천 명의 외로운 군사를 가지고 홀로 성을 보전하여, 이미 저상(沮喪)되었던 한 도의 인심을 분연히 흥기시켰습니다. 그가 한 성(城)을 보전한 것은 큰 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원근에서 그 소문을 들은 자들이 이로 인하여 스스로 힘쓸 것입니다. 그러니 특별히 논상(論賞)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곤양 군수 이광악은 김시민이 철환을 맞은 이후부터 모든 조치를 다 적절하게 처리했고, 말 탄 장수를 죽이기까지 해서 온 성안 사람들로 하여금 기운이 치솟게 하였으니, 역시 별도로 논상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판관 성수경(成守慶)은 가장 위급한 동문을 지키면서 죽을 힘을 다해 막았으니, 초서(超敍)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26년 계사(1593) 1월 11일(병인). 원 주사(袁主事)가 경상도에 아직도 남아 있는 병마(兵馬)의 수와 어느 지방에 있는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답보(答報)하면서 헤아려 개진한 것이 다음과 같다.

“ - 중략 - 경상우도의 진주(晉州)에 주차(駐箚)한 본도 순찰사 김성일의 군사 1만 5000명, 창원부(昌原府)에 주차한 본도 절도사 김시민의 군사 1만 5000명, 합천군(陜川郡)에 주차한 의병장 정인홍(鄭仁弘)의 군사 3000명, 의령현(宜寧縣)에 주차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군사 2000명, 거창현(居昌縣)에 주차한 의병장 김면(金沔)의 군사 5000명. - 이상은 왕경의 남쪽에 있으며, 경성(京城)과의 거리는 7, 8일 일정이나 혹 12, 3일 일정이다. - ”

○ 선조 26년 계사 1월 22일(병자).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치계하기를,

“진주성이 포위되었을 때 힘써 싸운 장사들은 만 번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워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지켜냈으므로, 사람들이 그제서야 비로소 성지(城池)에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공이 지극히 큽니다. 왜적들은 현재 창원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바야흐로 다시 침범할 계획을 세워 호남으로 향하고 있는데, 흉계를 이미 다 짜 놓았습니다. 그러니 공이 있는 장사들에게는 따로 포상하는 은혜를 내려서 뭇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뒷날의 성과를 바라소서.

중위장(中衛將)인 목사(牧使) 김시민은, 본래 군사와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었는바, 성을 지키고 왜적을 물리친 것이 모두 그의 공로입니다. 곤양 군수 이광악은, 고을의 날랜 군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김시민과 함께 진주성을 지켰는데, 8일에 김시민이 성을 온전하게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몰래 수문(水門)을 열고서 노약자를 내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광악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군사들의 마음이 크게 변하여 성을 지켜낼 수 없다.’ 하면서 큰소리로 말렸으며, 김시민이 탄환에 맞은 뒤에는 혼자 한 모퉁이를 담당하여 왜적을 쏘아 죽여서 마침내 왜적을 물리쳐 성을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판관(判官) 성수경(成守慶)은, 왜적들이 성에 기어오를 도구를 많이 준비하여 처음부터 동문(東門)을 오로지 공격하였지만, 5일 밤낮을 굳게 지키면서 용맹을 떨치며 혈전(血戰)하여 무수히 많은 왜적을 살해해 마침내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수성대장(守城代將) 최덕량(崔德良)은, 왜적들이 불시에 옛 북문에 충돌해 와서 군사들이 도망하여 흩어지자, 왜적들이 개미처럼 성에 달라붙어서 기어올라왔습니다. 이에 성이 순식간에 함락될 뻔하였는데, 최덕량이 이눌(李訥) 등과 함께 도망하는 군졸 몇 사람을 베어 죽이자, 군사들이 그제야 다시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영장(領將) 이눌의 공은 최덕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율포 권관(栗浦權管) 이찬종(李纘宗)은, 왜적들이 진주성을 포위하려 할 때 사람들이 모두 성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는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전 우후(虞候) 이협(李浹)이 성문에 이르렀다가 도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찬종은 혼자 성 안으로 들어가 협력하여 남문(南門)을 지켰으니, 난리에 임하여 명령을 받든 것이 매우 가상하며, 거기에다 재주와 국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 위급할 때 쓸 만합니다.”

하였다.

○ 선조 26년 계사 2월 9일(갑오).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이 치계하기를,

“김해 부사(金海府使) 서예원(徐禮元)이 치보(馳報)하기를, ‘창원에는 왜적들이 성 안팎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해에는 성 안에 남아 있는 왜적이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왜적 모습을 한 자가 매우 많습니다. 창원에 머무는 왜적들은 바로 전날에 진주성을 포위했던 자들이고, 성 밖의 왜적들은 모두 좌도(左道)에서 새로 온 자들입니다. 성 밖에 있는 왜적들이 성 안의 왜적들과 합세하여 진주를 다시 침범하려고 하나, 성 안의 왜적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김해 성 안에는 역질이 크게 발생하여 왜적들의 형세가 매우 고단하므로, 왜적에게 붙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왜적의 머리를 베어 오려고 합니다.’ 하였습니다.

서예원이 보고한 바로 보면 김해의 왜적들은 거의 다 돌아갔고, 창원의 왜적들 역시 오래 머물 의도가 없는 데다가 역질마저 치성하여 사망자가 잇달고 있고, 혹한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흉악한 예봉이 조금은 꺾였습니다. 이에 곽재우(郭再祐)를 중위장(中衛將)으로 삼아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형세를 보아 거사할 계획입니다.”

하였다.

○ 선조 26년 계사 4월 12일(병신). 상이 영유현(永柔縣)에 있었다.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이 치계하였는데, 군공(軍功)의 논상(論賞)이 공평치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상이 전교하기를,

“군공의 논상이 어찌하여 이처럼 공평하지 못하단 말인가? 전후의 군공을 상고하여 다시 마련하라. 해사(該司)에서 마련한 군공이 이와 같이 전도되었는데도 양사(兩司)에서는 어찌하여 규찰하지 않았는가?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 같은 날에 대신들이 아뢰기를,

“신들은 모두 변변치 못한 자들로서 중한 지위에 있으면서 구름처럼 쌓이는 각처의 군공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듣기에 이르렀는바, 항상 스스로 황공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가 정원에 내리신 하교를 보고 김성일의 장계 내용을 참고해 보건대, 이름은 쓰지 않고 행적만을 논하였으므로 어느 일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수문장(守門將)으로서 한 번 힘을 다해 싸웠다는 이유로 목사(牧使)에 뛰어오른 자가 있다는 것은 제말(諸沫)을 가리킨 듯하고, 노비를 시켜 중 한 명을 목베게 하고서 그 주인이 3품의 정직(正職)에 오른 자가 있다는 것은 배덕문(裵德文)을 가리킨 듯합니다. 그러나 감히 분명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병(正兵)으로서 하나의 수급(首級)도 베지 않고 판관(判官)에 오른 자가 있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말의 공은 전후의 장계에 극찬하였으므로 여러 번 승진해서 주부(主簿)에 이르렀고, 그 뒤 전조(銓曹)에서 그가 힘을 다해 싸웠다는 말을 듣고 성주 목사(星州牧使)에 제수하였으며, 신들도 그를 병사(兵使)에 의망(擬望)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의 말을 듣건대, ‘사실은 한 번도 큰 싸움을 하지 않았는데 헛된 칭찬이 이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신들도 괴이하게 여겨집니다. 전 군수 배덕문의 경우는, 전번의 장계에서, 승려인 찬희(贊煕)란 자가 임시로 성주 목사에 제수되어 권력을 남용하여 피해를 끼치는 상황을 극언하면서 배덕문이 그를 잡아 죽였다고 하였으므로, 정직에 초승(超陞)하게 된 것입니다.

논공행상(論功行賞)할 즈음에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위에서 하교를 내리시는 수고로움을 끼쳐드렸는바, 황공하여 대죄(待罪)합니다.”

하였다.

○ 선조 26년 계사 4월 16일(경자). 간원이 아뢰기를,

“사기(士氣)를 격려하고 인심을 수습하는 것은 오직 논공행상하는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공로의 등급을 정해 마련할 때에 십분 신중히 해서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한 점이 없게 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해사(該司)의 태만이 날로 심해져서 전혀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작상(爵賞)이 혼란하여 경중(輕重)이 마땅함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이 있는데 빠뜨리기도 하고 공이 없는데 함부로 주기도 하여, 장사들이 분하고 원통해하여 원근이 해이해지고 있습니다.

김성일의 장계에서 전후에 잘못한 것을 일일이 거론했는데, 그런 예(例)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에서 공이 있는 자들에게 보답해 주는 은전(恩典)이 도리어 군민들의 원망과 탄식을 일으킬 뿐이니, 이렇게 하고서 일을 이루고 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군공(軍功)을 마련한 당상(堂上)과 낭청(郞廳)을 모두 파직시키소서. - 이하 생략 - ”

하니, 답하기를,

“군공을 마련한 당상과 낭청을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26년 계사 4월 18일(임인). 상이 하교하기를,

“경상도의 군량이 매우 염려된다. 공명고신첩(空名告身帖)을 김성일과 한효순(韓孝純)이 있는 곳으로 보내라.”

하였다.

○ 선조 26년 계사 4월 29일(계축).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이 졸(卒)하였다.

○ 선조 26년 계사 5월 22일(을해). 선전관(宣傳官) 이춘영(李春榮)이 전라도 좌수영(左水營)에서 와서 아뢰기를,

“전해 듣건대, - 중략 - 4월 29일에 영남우도 감사 김성일이 죽었고, 3월 11일에는 우병사(右兵使) 김면(金沔)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며, 중위장(中衛將) 김영남(金穎男)이 그 군사를 대신 지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 이하 생략 - ”

하였다.

○ 선조 28년 을미(1595) 2월 6일(기유).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응남(金應南), 행 대사헌 홍진(洪進), 동지사(同知事) 이항복(李恒福), 특진관(特進官) 이제민(李齊閔), 참찬관(參贊官) 김우옹(金宇顒), 특진관 윤선각(尹先覺), 참찬관 정숙하(鄭淑夏), 정언(正言) 이형욱(李馨郁), 검토관(檢討官) 정경세(鄭經世), 기사관(記事官) 신성기(辛成己)ㆍ민유경(閔有慶)ㆍ윤의립(尹義立) 등이 입시하였다. - 강(講)이 끝나고 - 중략 - 김응남이 아뢰기를,

“김성일은 당초에 의기를 분발하여 왜적을 막았는바 그 공이 매우 크니 특별히 포상을 내려 증직(贈職)하여야 합니다.”

하고, 홍진이 아뢰기를,

“김성일은 당초에 웅천(熊川)을 지켰는데, 왜적의 예봉이 몰려와 그 위세가 매우 성대하였습니다. 무장과 군졸들은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감히 화살을 쏘지 못하였는데, 김성일이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꼼짝 않고 앉아서는 군관으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왜졸 한 명을 죽이니, 왜적이 조금 물러나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성일이 있었더라면 진주(晉州)도 보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고, 정경세가 아뢰기를,

“김성일이 있었더라도 진주가 보전될 수 있었을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의(倡義)하여 독전(督戰)하기로는 김성일만한 자가 없습니다. 그의 초모(招募)하는 격서(檄書)를 보면, 충의가 북받쳐서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하였다. - 이하 생략 -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성일은 자가 사순(士純)이고 안동(安東) 사람인데, 사람됨이 강직하고 강개하여 대절(大節)이 있었다. 조정에서 벼슬할 때에는 과감한 말로 직간(直諫)하였다.

기축년에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갔을 때에는 정직하게 몸가짐을 하여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었다. 왜인의 서계(書契)에 패만(悖慢)한 말이 많자 엄격한 말로 꾸짖어 물리치고 받지 않으니, 왜적의 괴수도 모두 두려워했고, 따라서 서계의 내용도 고쳤다. 그가 귀국해서 옥당(玉堂)의 장관이 되어서는 자주 소차(疏箚)를 올려서 당시의 병폐를 절실하게 지적하였다.

권신(權臣) 정철(鄭澈)이 기축역옥(己丑逆獄)으로 인하여 처사(處士) 최영경(崔永慶)을 터무니없는 죄로 얽어 죽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최영경의 원통함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김성일이 어전에서 항언(抗言)을 하면서 이를 명백하게 따져 설원(雪冤)하고 복관(復官)시키니, 청론(淸論)의 한 맥이 이를 힘입어 이어졌다.

임진년 봄에 영남의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남쪽 변방으로 달려갔는데, 왜적들이 이미 쳐들어와 열군(列郡)이 와해되어 풍문만 듣고도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그런데도 김성일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보수(保守)할 계획을 하였다. 왜적들이 웅천(熊川)에 쳐들어왔을 때 그는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버티고 앉아 비장(裨將)을 독촉해서 싸우게 하여 왜적의 선봉장을 베니, 왜적이 이 때문에 조금 물러가게 되었다.

그 당시 조정에서는 김성일이 ‘왜구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고 큰소리 쳐서 방비를 해이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잡아다가 국문하도록 명이 내려져 있었는데, 특별히 이를 용서하고 곧바로 초유사(招諭使)로 임명하였다. 김성일은 도로 영남 지방으로 들어가서 동지를 불러모으고 의병을 규합하니, 원근에서 모두 메아리처럼 호응하였으므로, 함락되었다가 도로 우리의 차지가 된 고을이 16, 7개나 되었다.

김성일이 지은 초유하는 격문(檄文)은 충의가 북받치고 말뜻이 격렬하였으므로, 아무리 어리석은 남녀들조차도 그 말을 들으면 반드시 모두가 마음이 동해서 눈물을 떨구었다. 우도 순찰사로 승진 제수되었다가 계사년 여름에 병으로 인해 군막(軍幕)에서 죽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들 애통해하였다. 아, 김성일은 옛날의 유직(遺直)이라고 할 만하다.

○ 선조 28년 을미 12월 28일(병인). 진시(辰時) 정각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 중략 - 김응남(金應南)이 아뢰기를,

“ - 중략 - 신이 요즘 수년 간의 일을 살펴보니, 반드시 충의로운 사람을 쓴 뒤에야 나랏일을 해볼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등에서 사변 초기에 힘써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이 포상을 입지 못하였으니, 실망이 매우 큽니다. 김면(金沔)뿐만 아니라 군사들 중에 포상할 만한 자가 많이 빠졌습니다. 김성일의 경우는, 성심으로 나라를 위하다가 죽었으니 포증(褒贈)하는 은전이 없을 수 없습니다. - 중략 - ”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계사(啓辭)를 비변사에 말하여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선조 29년 병신(1596) 2월 16일(계축). 이조 참판 김우옹(金宇顒)이 상차하기를,

“봄철이 점점 다가오는데 왜적의 정세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 걱정하시고 제공(諸公)이 애쓰고 있으므로 묘당(廟堂)의 계책은 진실로 십분 세밀하리라 믿습니다. 신은 오활한 선비로 외람되이 대부의 반열에 있으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목격하고 마음속으로 울분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보익(輔益)하지 못하였으니, 나라를 등진 죄가 실로 큽니다. - 중략 - 또 생각건대, 대업(大業)을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는 모름지기 사심(私心)을 극복하고 백성을 감동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정사를 닦고 어진 이를 임용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이에 우매한 생각이 미치는 바에 대해서 하나하나 조목별로 나열하여 만에 하나라도 채택하실 자료를 갖춥니다. - 중략 -

그 하나는, 김성일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높은 절의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교활한 현소(玄蘇)라 할지라도 감히 그의 절의를 숭상하여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영남 지방을 맡는 직임을 받아서는 의병을 규합하며 강개한 마음으로 애쓰다가 군중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영남 사람들이 이를 생각하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정인홍(鄭仁弘),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등의 무리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고 큰 공로를 세운 것은 모두가 김성일이 주도하여 성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추증(追贈)의 명이 김면에게만 미치고 김성일은 빠졌으니, 실로 성세(聖世)의 흠전(欠典)입니다. - 이하 생략 - ”

하였는데, 상이 답하기를,

“상소를 올린 뜻이 가상하다.”

하였다.

○ 선조 29년 병신 2월 21일(무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김우옹이 올린 차자의 내용을 보았습니다. - 중략 - 김성일을 포증하는 일은 뭇사람들의 의논이 모두 같으니, 김우옹 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이는 사기를 격려하는 일대 거조이니, 성상께서는 의당 깊이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 중략 - 오직 성상의 재량을 기다릴 뿐입니다.”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36년 계묘(1603) 3월 22일(무인). 미시(未時)에 상이 별전에 나아갔다. - 중략 - 특진관 이희득(李希得)이 아뢰기를,

“악운(樂運)이 직간(直諫)하다가 위태롭게 되었을 적에 원암(元巖)이 그를 잘 구제하였으니, 사람으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기축년에 산림처사(山林處士) 최영경(崔永慶)이 죄없이 옥사(獄死)하였는데, 임진년 봄에 직언(直言)으로 소문난 김성일(金誠一)이 한마디 말로써 구해주었다. 임금의 노여움 아래에서 직간한다는 것은 과연 어려운 일이다.

○ 선조 40년 정미(1607) 5월 13일(을해).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 유성룡(柳成龍)이 졸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 중략 - 유성룡은 조목(趙穆),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퇴계(退溪)의 문하에서 배웠다. 김성일은 강의(剛毅)하고 독실하여 풍도(風度)가 엄숙하고 단정하였으며, 너무 곧아서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절(大節)이 드높아서 사람들의 이의(異議)가 없었는데, 계사년에 나랏일에 진력하다가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 중략 - 퇴계의 문하에서는 이 세 사람을 영수(領袖)로 삼는다. - 이하 생략 -

[주-D001] 심희수(沈喜壽) : 원문에는 ‘심희수(沈希壽)’로 되어 있는데, 《선조실록》 제8권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주-D002] 참시관(參試官)은 4명씩인데 : 원문에는 ‘참시관(參試官)’으로 되어 있는데, 《선조실록》 제8권에 의거하여 ‘참시관사(參試官四)’로 바로잡았다.[주-D003] 신희남(愼喜男) : 원문에는 ‘신희남(愼希男)’으로 되어 있는데, 《선조실록》 제8권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주-D004] 신들이 : 원문에는 ‘관등(官等)’으로 되어 있는데, 《선조실록》 제25권에 의거하여 ‘신등(臣等)’으로 바로잡았다.[주-D005] 최흥원이 아뢰기를 : 《선조실록》에 최흥원이 아뢴 것처럼 되어 있으나, 이는 유근(柳根)이 아뢴 말이다.[주-D006] 이형욱(李馨郁) : 원문에는 ‘이형□(李馨□)’으로 되어 있는데, 《선조실록》 제60권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학봉일고 부록 제3권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선조실록(宣祖實錄)》- 1

○ 선조 6년 계유(1573) 2월 8일(기미). 홍문록(弘文錄)을 선발하는 일로 부제학(副提學) 유희춘(柳希春), 직제학(直提學) 구봉령(具鳳齡), 교리(校理) 정언지(鄭彦智)ㆍ유도(柳濤), 부교리(副校理) 정지연(鄭芝衍)ㆍ홍성민(洪聖民), 부수찬(副修撰) 우성전(禹性傳)ㆍ이성중(李誠中)이 등록할 사람에 대하여 완의(完議)하였다. 인물에 대해 개략적으로 논하고 병상(屛床)을 설치한 뒤 차례로 권점(圈點)을 찍은 다음, 약속대로 6점(點) 이상을 받은 9인을 뽑았다. 박점(朴漸), 홍적(洪迪)이 8점이고, 권벽(權擘), 김우굉(金宇宏), 김성일(金誠一)이 7점이고, 조유성(趙惟誠), 안용(安容), 배삼익(裵三益), 홍혼(洪渾)이 6점이었다. 허봉(許篈), 이경중(李敬中), 윤선각(尹先覺)은 5점이었으므로 참록(參錄)되지 못하였다.

○ 선조 6년 계유 4월 25일(갑술). 양사(兩司)가 모두 체직(遞直)되었다. 박근원(朴謹元)을 대사헌(大司憲)으로, 유도(柳濤)를 집의(執義)로, 최흥원(崔興源)을 장령(掌令)으로, 정언신(鄭彦信)을 헌납(獻納)으로, 김성일(金誠一)ㆍ윤선각(尹先覺)을 정언(正言)으로 삼았다.

○ 선조 6년 계유 5월 5일(을유). 정언 김성일이 피혐(避嫌)하여 아뢰기를,

“사간(司諫) 김규(金戣)는 전에 본직(本職)에 있을 때에 정언신(鄭彦信), 홍인건(洪仁健) 등과 더불어 왜인(倭人)에 대하여 험포(驗包)할 것을 논계(論啓)하면서 한자리에 앉아서 피차간에 서로 상의하여 확정하였으니, 논의를 함에 있어서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계사(啓辭)가 부실하였다는 것으로 인하여 함께 사피(辭避)할 즈음에, 정언신과 홍인건은 곧바로 험포가 짐을 열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허물을 인책하면서 자기의 죄라고 하였으나, 김규는 도리어 칭량(稱量)이 그의 본뜻이라고 하면서 포자(包子)를 열어서 조점(照點)한 것은 해당 관원의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험포가 짐을 풀어 보는 것이어서 칭량과는 다른 것입니까? 그의 계초(啓草)를 보면 꾸며대면서 회피하는 말이 많으니, 이것은 김규가 계사가 부실하였던 허물을 면하려고 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감추는 데에 빠지는 줄을 모른 것입니다. 그가 임금을 속이고 조정을 속인 정상이 분명하여 가릴 수 없으니,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겠으며 하늘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신은 전에 사직(史職)에 있으면서 입시(入侍)하였을 즈음에 늘 그가 탑전(榻前)에서 아뢰는 말을 들었는데, 번번이 간사하게 아첨하고 뜻을 맞추는 작태가 있었으므로 이미 그의 심술(心術)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이 일을 보았으므로 서로 용납하여 같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신의 벼슬을 체차(遞差)해 주소서.”

하고, 대사간 홍천민(洪天民) 등이 와서 아뢰기를,

“김성일이 아뢴 것에 동료와 맞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험포에 관한 한 가지 일은 과연 의논이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하게 논하는 일에 있어서는, 신들은 참으로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신들은 동료에게 미더움을 받지 못하였으니, 체차해 주소서.”

하였다.
○ 대사헌 박근원(朴謹元) 등이 아뢰기를,

“대사간 홍천민 등은 김규의 계사가 마땅하지 않아서 서로 용납하지 못할 형세인 줄 알면서도 곧바로 김규를 체차하도록 논계하지 않았으니, 체차하소서. 사간 김규는 동료의 논척(論斥)을 두드러지게 받았으므로 벼슬 자리에 있기가 어려운 형세입니다. 홍천민과 김규 등은 모두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정언 김성일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으니, 출사(出仕)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체차하는 일은 아뢴 대로 윤허한다. 다만 김성일은 동료와 함께 의논하지 않고 경솔히 홀로 아뢰었으니, 뒤에 폐단이 없지 않다. 아울러 체차하라.”

하였다. 그러자 정원(政院)이 아뢰기를,

“대간(臺諫)을 진퇴시키는 것은 공론(公論)에 따라야 마땅한데, 정언 김성일을 체차하는 것은 도리어 특명(特命)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므로 전지(傳旨)를 받들기가 미안합니다.”

하였으나, 상이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홍문관(弘文館)이 상차(上箚)하여 극력 아뢰기를,

“언관(言官)에게 참으로 소견(所見)이 있다면 홀로 아뢰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김성일의 충정(忠正)은 장려해야 하는 것인데 도리어 내쳤으니,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하였다.

○ 선조 6년 계유 5월 6일(병술). 대사헌 박근원(朴謹元)과 장령 유희림(柳希霖) 등이 피혐하여 아뢰기를,

“김성일이 피혐할 즈음에 김규에 대해 중하게 논한 것은 그의 평소의 소견을 아뢴 것입니다. 이는 임금 앞에서 감히 그 품은 뜻을 다 아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다른 일에 대해 논사(論事)할 때 동료와 더불어 의논하지 않고 지레 홀로 아뢴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들이 김성일의 출사를 청하였다가 성명(聖明)께 믿음을 받지 못하였으니, 대간을 경시하는 풍조가 신들로부터 비롯될 것입니다. 신들의 벼슬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였다. 간원이 아뢰기를,

“대사헌 등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으니,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6년 계유 5월 21일(신축). 홍문관이 상차하여, 상이 물흐르듯이 간언(諫言)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진술하였다. - 중략(中略) - 또 상께서 간관(諫官) 김성일을 체차하라고 명한 잘못을 대간이 극간(極諫)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에 대간이 예궐(詣闕)하여 자책하였으나, 상이 윤허하지 않으니, 드디어 물러가서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 선조 6년 계유 5월 22일(임인). 대간을 모두 체차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6년 계유 6월 2일(경술). 이날 정사(政事)가 있었다. 최흥원(崔興源)을 장령(掌令)으로, 김성일(金誠一)을 예조 좌랑(禮曹佐郞)으로 삼았다.

○ 선조 6년 계유 6월 3일(신해). 이날 의정부(議政府)에 합좌(合坐)하여 홍문록(弘文錄)을 과시(課試)하여 14인을 뽑았는데, 한호(韓灝), 김우굉(金宇宏), 허봉(許篈), 박점(朴漸)이 6권(圈)이고, 홍진(洪進), 심충겸(沈忠謙), 유근(柳根), 홍적(洪迪)이 5권이고, 김충갑(金忠甲), 조보(趙溥), 홍혼(洪渾), 이정형(李廷馨), 김성일(金誠一), 송응개(宋應漑)가 4권이었다.

○ 선조 6년 계유 6월 25일(계유). 정사가 있었다. 최응룡(崔應龍)을 충청 감사(忠淸監司)로, 이증(李增)을 승선(承宣)으로, 유성룡(柳成龍)을 이조 좌랑(吏曹佐郞)으로, 김성일(金誠一)을 수찬(修撰)으로 삼았다.

○ 선조 6년 계유 11월 5일(신사). 밤에 상이 비현각(丕顯閣)에 나아가 시신(侍臣)을 불러 《서전(書傳)》 태갑편(太甲篇)을 진강하였다. - 중략 - 검토관(檢討官) 김성일이 아뢰기를,

“진번(陳蕃)이 ‘나라에 세 가지 빈 것이 있는데, 조정(朝廷)이 비고, 창름(倉廩)이 비고, 전야(田野)가 빈 것을 세 가지 빈 것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랏일을 담당할 만한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국계(國計)와 민생(民生)이 어떻다는 것은 위에서도 이미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렇게 하다가는 10년도 못 가서 위망(危亡)의 화(禍)가 닥칠 것입니다. 조정의 명령은 막혀서 행해지지 않고, 상하의 형세는 흩어져서 통솔이 되지 않고, 경연 석상에서 한두 가지 건백(建白)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절목(節目)이 시행되자마자 다른 폐단이 곧바로 일어나니, 이러하고도 나라가 잘 다스려진 경우는 드뭅니다. 맹자(孟子)는 임금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고, 주자(朱子)는 정심(正心)과 성의(誠意)를 말하였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정심하여 본원(本源)을 닦지 않으신다면 온 나라 사람들의 인심을 어떻게 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까닭도 오늘밤에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군신(君臣) 사이는 부자(父子) 사이와 같아서 상하가 서로 미더움이 있어야만 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였다. - 중략 - 상이 이르기를,

“오늘날은 폐단을 고치기가 아주 어렵다.”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인재를 얻으면 폐단을 고치기가 어렵지 않지만, 마땅한 인재를 얻지 못하면 반드시 일을 성취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그러나 인재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송(宋) 나라 신종(神宗)처럼 뜻만 크고 재능이 부족하다면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하니, 김성일이 아뢰기를,

“신종은 왕안석(王安石)을 어질다고 여겨서 등용했기 때문에 화란(禍亂)을 초래한 것입니다. 만약 한기(韓琦),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과 더불어서 일하였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였겠습니까.”

하고, 이이가 아뢰기를,

“신종이 뜻을 세운 것 역시 잘못되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데, 신종은 부강(富強)을 이루려고만 하였으므로, 소인들이 그 틈을 타 흥리설(興利說)을 진달하였습니다. 임금으로서는 모름지기 백성을 보전하는 것으로 뜻을 세워야 합니다.”

하였다.

○ 선조 6년 계유 11월 13일(기축). 정사가 있었다. 신점(申點)을 사간으로, 김성일(金誠一)을 정언으로, 박점(朴漸)을 부교리로 삼았다.

○ 선조 6년 계유 11월 26일(임인). 조강(朝講)이 있었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노수신(盧守愼), 지사(知事) 정종영(鄭宗榮), 특진관(特進官) 성세장(成世章)ㆍ허세린(許世麟), 양사(兩司)의 노직(盧稙)과 김성일(金誠一), 승지(承旨) 이이(李珥), 진강관(進講官) 유희춘(柳希春)ㆍ조정기(趙廷機), 사관(史官) 심희수(沈喜壽)ㆍ홍인헌(洪仁憲)ㆍ허봉(許篈)이 입시하였다. ‘이윤궁선(伊尹躬先)’에서부터 ‘사씨(史氏)가 말한 충신(忠信)하여 끝맺음이 있다.’는 설(說)까지 진강(進講)하였다. - 중략 - 노직과 김성일이 나아가 아뢰기를,

“행장(行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황(李滉)에게 시호(諡號)를 내리소서.”

하였는데, 노수신과 특진관(特進官), 참찬관(參贊官) 이하가 모두 행장을 가져다 본 뒤에 시호를 내리고자 하였다. 김우옹(金宇顒) 등이 아뢰기를,

“명현(名賢)의 행장은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유(先儒) 주자(朱子)의 행장은 수십 년이나 기다렸고, 이천(伊川)의 경우는 문인(門人)과 고제(高弟)가 다 먼저 죽었으므로 끝내 감히 지을 자가 없었으니, 그 어렵기가 이와 같습니다. 대현(大賢)을 대우함에 있어서는 상규(常規)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어찌 행장이 없다고 하여 이천이나 정자, 주자의 시호를 내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김우옹이 또 아뢰기를,

“이황은 박순(朴淳)이 지은 묘지(墓誌)와 그 문인들의 서술(敍述) 등이 있으니, 가져다 보고 의거하여도 무방할 듯합니다.”

하니, 이이 등이 다 옳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성일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아뢰기를,

“대현을 대우하는 데는 상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반드시 그것을 본 뒤에야 한다면, 이는 그것을 본 뒤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같으니, 또한 부족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김우옹이 아뢰기를,

“그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다만 상의 뜻이 반드시 고사(故事)에 어긋나지 않게 하고자 하시므로 신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니, 이 또한 부득이해서 한 말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빨리 시호를 내리고 싶지만 전례가 없는 일을 하여 뒷날의 폐단을 열 수는 없다.”

하였다. 김성일이 이 말씀을 인하여 이황의 바른 학문과 높은 조예에 대해 말하였고, 김우옹도 이황의 학문은 우리 동방에 한 사람뿐이라고 말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우리 동방에 정몽주(鄭夢周)가 창학(倡學)한 뒤부터 아조(我朝)에 들어와서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같은 이가 도학(道學)을 한 사람인데, 이들 역시 공부하는 데 대한 상세한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 밖에는 비록 학문을 한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이 다 모양새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황 같은 사람은 그의 언론(言論)과 풍지(風旨)를 들으면 옛사람의 학문을 참으로 안 사람으로서, 참으로 그와 비견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자품(資稟)과 정신(精神)이 옛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듯한데, 전하께서는 아마도 이 때문에 부족하게 여기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공이 지극해짐에 따라 기질이 변화되어 옛사람의 학문에 잠심(潛心)하여 시종 한결같이 공부를 쌓아서 조예가 날로 깊어졌으니, 아마도 부족하게 여겨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니, 김성일이 아뢰기를,

“이분의 학문은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눈이 있으면 볼 수가 있으니, 어찌 언론과 풍지 등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이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김우옹이 아뢰기를,

“행장을 기다려서 시호를 의논하게 한 것은, 국가가 법을 세움에 있어서 대강(大綱)만을 두어 통용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 이황은 보통 사람이 따르지 못할 덕업(德業)이 있으니, 시호를 내리는 일도 상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매사를 고사(故事)만을 고수하고 변통하지 않는다면, 치도(治道)에 크게 방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 중략 - 인하여 관원들의 피혐(避嫌)과 휴고(休告)가 많다는 데에 말이 미치자, 김성일이 아뢰기를,

“지금 위로 삼공(三公)과 육경(六卿)에서부터 모두들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의정부의 좌기(坐起)에도 중대한 일에 관계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예식만을 갖출 뿐이라고 합니다. 대신이 이러하니 관원들이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내가 임금으로서 임금답지 못하니, 신하들이 그러한 것은 당연하다.”

하였다. 노수신이 인하여 병을 핑계로 해면(解免)을 청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6년 계유 12월 6일(임자). 조강(朝講)이 있었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섬(洪暹),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박근원(朴謹元), 특진관(特進官) 심수경(沈守慶)ㆍ윤근수(尹根壽), 승지 이중호(李仲虎), 장령 박응복(朴應福), 정언 김성일(金誠一), 부제학 유희춘(柳希春)이 입시하였다. 태갑 중편(太甲中篇)의 ‘유삼사십유이삭(惟三祀十有二朔)’에서부터 ‘실만세무강지휴(實萬世無彊之休)’까지를 강독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7년 갑술(1574) 1월 6일(계미). 어제 이산해(李山海)를 대사간으로, 최흥원(崔興源)ㆍ윤탁연(尹卓然)을 장령으로, 남언경(南彦經)ㆍ김우굉(金宇宏)을 지평으로, 곽월(郭越)을 사간으로, 김성일(金誠一)을 정언으로 삼았다.

○ 선조 7년 갑술 6월 1일(정미). 정지연(鄭芝衍)을 직제학으로, 김성일(金誠一)을 부수찬으로, 이양원(李陽元)을 부총관(副摠管)으로 삼았다.

○ 선조 7년 갑술 6월 17일(계해). 부수찬 김성일이 경기(京畿)의 각포(各浦)를 순무(巡撫)하고 서울에 들어와서 그가 본 폐단에 대해 진달하였다.

○ 선조 7년 갑술 8월 16일(기미). 문과(文科) 일소 시관(一所試官)은 3명씩인데 심수경(沈守慶), 윤현(尹鉉), 유희춘(柳希春), 이희검(李希儉), 윤두수(尹斗壽), 권벽(權擘), 최옹(崔顒)이고, 참시관(參試官)은 4명씩인데 윤고(尹杲), 윤승경(尹承慶), 김효원(金孝元), 김성일(金誠一), 이홍인(李弘仁), 이인(李訒), 임국로(任國老), 민복(閔福)이었다.

○ 선조 7년 갑술 9월 27일(무술). 박소립(朴素立)을 대사헌으로, 윤의중(尹毅中)을 대사간으로, 신희남(愼喜男)을 집의로, 한수(韓脩)ㆍ임국로(任國老)를 장령으로, 김우굉(金宇宏)ㆍ이노(李輅)를 지평으로, 조정기(趙廷機)를 헌납으로, 허사흠(許思欽)ㆍ김성일(金誠一)을 정언으로, 이준(李準)을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삼았다.

○ 선조 7년 갑술 윤12월 22일(임진). 정언 김성일이 경연 석상에서 우상(右相) 노수신이 사정(私情)을 써서 사람들을 벼슬시킨 잘못에 대하여 대놓고 공격하였다.

○ 선조 8년 을해(1575) 2월 3일(임신). 전적(典籍) 김우옹(金宇顒)이 상소하여 여전(廬殿)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려고 하다가 김성일이 충고하여 곧바로 그만두었다. - 이때 인순왕후(仁順王后)가 승하하여 인산(因山)하기 전이었다.

○ 선조 12년 기묘(1579) 7월 2일(병오). 이날 정사에서 정지연(鄭芝衍)을 대사헌에, 홍혼(洪渾)을 집의에, 이원익(李元翼)ㆍ김성일(金誠一)을 장령에, 성혼(成渾)ㆍ강서(姜緖)를 지평에, 구봉령(具鳳齡)을 대사간에, 최황(崔滉)을 사간에, 이노(李輅)를 헌납에, 김태정(金泰庭)ㆍ허감(許鑑)을 정언에 제수하였다.

○ 선조 13년 경진(1580) 윤4월 1일(신축). 함경도 순무어사(咸鏡道巡撫御史) 김성일의 장계로 인해, 변장(邊將)으로서 그 직책을 충실히 다한 혜산 첨사(惠山僉使) 김수(金璲)를 당상관(堂上官)에, 영건 만호(永建萬戶) 우응신(禹應辰)ㆍ정현룡(鄭見龍)ㆍ김광옥(金光玉) 등을 선전관에 제수하라고 하교하였다.

○ 선조 16년 계미(1583) 윤2월 1일(갑인). 순무어사(巡撫御史)로 경기(京畿)에 허봉(許篈)을, 강원도(江原道)에 이길(李佶)을, 황해도(黃海道)에 김성일(金誠一)을 각각 나누어 보내도록 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군기(軍器)를 점검하게 하였다.

○ 선조 16년 계미 4월 9일(경신). 황해도 순무어사 김성일(金誠一)의 서장(書狀)에 ‘황주(黃州)는 군기(軍器)가 유독 정비가 안 된 상태이고, 창곡(倉穀)도 축난 것이 많으니, 목사(牧使) 윤인함(尹仁涵)을 파출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입계(入啓)하니, 잡아들여 국문(鞫問)하라고 전교하였다.

○ 선조 16년 계미 7월 1일(경진).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하였다. 정청(政廳)에 전교하기를,

“ - 중략 - 김성일을 나주 목사(羅州牧使)에 제수하라.”

하였다.

○ 선조 19년 병술(1586) 11월 12일(임인). 전라 감사가 치계(馳啓)하기를,

“나주(羅州) 사직단(社稷壇)의 위판(位版)이 밤중에 모두 타버렸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목사 김성일을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推考)하라.”

하였다. - 이하 생략 - 정원에 전교하기를,

“군현(郡縣)에서도 많은 변고가 생기고 있다. 세도(世道)와 인심(人心)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하였다. 나주 사직단의 위판이 불탄 뒤에 목사 김성일이 하루라도 신주(神主)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곧바로 위판을 만들어 위안제(慰安祭)를 지냈다. 그러자 사간원이 아뢰기를,

“조정에 아뢰지도 않고서 수토(守土)하는 신하가 지레 신주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으니, 이는 신(神)을 섬기는 예(禮)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목사와 감사 한준(韓準)을 추고하고, 신주를 고쳐 만드소서.”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선조 22년 기축(1589) 11월 21일(임술). 황윤길(黃允吉)과 김성일(金誠一)을 일본 통신사(通信使)의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로, 허성(許筬)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차출(差出)하였다.

○ 선조 23년 경인(1590) 3월 4일(정미). 일본 통신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이 출발하였다.

○ 선조 24년 신묘(1591) 1월 13일(경술). 통신사의 서장(書狀)에 이르기를,

“신들이 지난 7월 21일에 일본의 왕도(王都)에 들어갔으나, 11월 7일에야 비로소 명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11일에 그곳을 떠나 사포(沙浦)에 이르러 19일까지 유숙하고 20일에야 비로소 서계(書契)를 받았는데, 서계에 온당치 못한 글자가 있었습니다. 이에 신들이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반복하여 말하였더니, 평조신(平調信)이 도로 서계를 가지고 개정하려고 국왕에게 갔는데, 이달 2일에야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들의 배가 출발하는 시기는 3, 4일쯤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나라가 회례사(回禮使)로 상관(上官) 현소(玄蘇)와 부관(副官) 평조신(平調信)을 차임하였으므로, 신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여 행장(行裝)을 모두 배 안에 실었습니다. 신들은 사포에 머물러 있는데, 뜻밖에 평의지(平義智)가 먼저 대마도(對馬島)로 갔습니다. 이에 상용(常用)하는 얇은 종이를 사용하여 주달하게 되니, 매우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였는데, 예조에 계하(啓下)하였다.

○ 선조 24년 신묘 2월 3일(계유). 경상 감사(慶尙監司)의 서장에, ‘통신사가 1월 28일에 나왔다.’고 하였는데, 입계하였다.

○ 선조 24년 신묘 7월 21일(을유). 정사가 있었다. 부제학 정창연(鄭昌衍)을 이조 참판에 특별히 제수하고, 김성일(金誠一)을 부제학에 제수하였다.

○ 선조 24년 신묘 8월 1일(경자). 부제학 김성일이 조강(朝講)에서 최영경(崔永慶)이 원통하게 죽은 일을 아뢰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을 청하니, 상이 대신에게 복직(復職)에 대해 논의하라고 명하였다. 김성일이 아뢴 내용에 대략 이르기를,

“최영경이 일찍이 ‘정철(鄭澈)은 본래의 성품이 소인이다.’ 한 적이 있었는데, 정철이 이 때문에 감정을 품고 있다가 끝내는 그를 옥중에서 병사(病死)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 선조 25년 임진(1592) 4월 13일(임인). 왜구(倭寇)가 침범해 왔다. - 중략 - 우리나라는 200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지내던 터라 각 군현(郡縣)들이 풍문만 듣고도 놀라 무너졌다. 오직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진(朴晉)과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 김성일(金誠一)만이 진주(晉州)에서 적을 맞아 싸웠다. 김성일이 아장(牙將) 이숭인(李崇仁)을 시켜 백마를 탄 왜적의 두목을 쏘아 죽이니, 드디어 왜적들이 조금 물러났다.

○ 선조 25년 임진 5월 6일(기축). 최흥원(崔興源)과 윤두수(尹斗壽) 등을 인견(引見)하였다. - 중략 - 상이 이르기를,

“신립(申砬)이 정말 죽었는가?”

하니, 최흥원이 아뢰기를,

“죽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고, 윤두수가 아뢰기를,

“이빈(李薲)은 죄를 주어야 마땅합니다. 병사(兵使)는 김성일이나 박진(朴晉)으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 이하 생략 -

○ 선조 25년 임진 5월 23일(임오). 상이 대신(大臣) 최흥원(崔興源)ㆍ윤두수(尹斗壽), 예조 판서 윤근수(尹根壽), 호조 판서 한준(韓準), 병조 판서 김응남(金應南), 대사헌 이항복(李恒福), 동지(同知) 이성중(李誠中), 부제학 심충겸(沈忠謙), 대사간 정곤수(鄭崑壽), 동지 이덕형(李德馨), 병조 참판 이정립(李挺立), 참의(參議) 황섬(黃暹), 참지(參知) 정사위(鄭士偉), 승지 유근(柳根), 주서(注書) 박정현(朴鼎賢), 가주서(假注書) 한우신(韓禹臣), 한림(翰林) 김선여(金善餘)ㆍ김의원(金義元)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들과의 싸움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하니, 최흥원이 아뢰기를,

“ - 중략 - 경상도 사람 중엔 산골짜기로 도망친 사람이 많은데, 처음엔 비록 몰라서 출전하지 못하였지만, 저들의 부모 형제와 처자식이 모두 왜적들에게 사로잡혔으니, 사람을 파견하여 강원도를 기점으로 하여 군사를 모집한다면 틀림없이 죽을 힘을 다해서 나아가 싸울 것입니다.”

하자, - 중략 - 상이 이르기를,

“지금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좋긴 좋으나 경상도는 멀어서 호령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김성일과 김늑(金玏)을 그 때문에 보낸 것이다.”

하였다. 정곤수가 아뢰기를,

“김성일이 이제야 비로소 내려갔으니 무슨 일을 조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심충겸이 아뢰기를,

“유근의 말이 매우 타당합니다. 모름지기 의병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니, - 중략 - 윤두수가 아뢰기를,

“김수(金睟)를 체직해야 하는데, 합당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런 때 감사를 체직한단 말인가?”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그 직책에 합당한 자가 있다면 체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이항복이 아뢰기를,

“체직하지 않더라도 좌도 감사와 우도 감사를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곳에서 차임하여 보내기가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김성일이 이미 그곳에 가 있으니, 그를 차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어떠한가?”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모두들 그런 말을 하지만 신의 생각에는 옳은 줄 모르겠습니다. 김성일은 너무 강직(剛直)하여 인자하게 어루만져 줄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홍(泓)이 아뢰기를,

“윤두수의 말은 곧 너그러운 마음이 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강직하고 강개(慷慨)하니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최흥원이 아뢰기를,

“설령 김성일을 차임해 보낸다 하더라도 김수는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윤두수가 아뢰기를,

“을묘년에 좌도와 우도의 감사를 두었다가 중도에 폐했는데, 그 뒤에 다시 두려고 하다가 역로(驛路)의 폐단이 염려되어 나누어서 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모두 좋다고 한다면 김성일을 차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김성일 이외에는 합당한 자가 없는가?”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모두들 황해 감사(黃海監司) 조인득(趙仁得)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 감사는 변동시킬 수가 없다. 모두들 감사에 합당한 사람을 의논해서 천거하라.”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이와 같으니 김성일을 차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이항복이 아뢰기를,

“김성일이 일을 마땅하게 조처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는 없으나, 이런 때를 당하여 무엇인가 해보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것입니다.”

하고, 심충겸이 아뢰기를,

“김성일은 절대로 위축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할 것입니다.”

하였다. - 중략 - 윤두수가 아뢰기를,

“강원도는 황정식(黃廷式)이 갔고 경상도는 김성일과 김늑이 이미 갔습니다.”

하고, 최흥원이 아뢰기를,

“만일 잘 초유(招諭)한다면 어찌 의사(義士)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이미 종묘사직의 죄인이 되었으나 경들만은 조종(祖宗)을 생각해서 나라를 수복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

하였다.

○ 선조 25년 임진 5월 24일(계미). 좌부승지 유근(柳根)이 아뢰기를,

“삼가 - 중략 - 공세(貢稅) 가운데에서 - 중략 - 연한(年限)을 정해서 감면해 줌으로써 흔쾌히 은덕(恩德)을 보이시면, 대소 군민(大小軍民)들이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분명하게 사목(事目)을 만들어 사신(使臣) 편에 주고, 겸하여 김늑과 김성일에게도 유시하신다면,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될 듯합니다.”

하니, 상이 대신들에게 의논해서 아뢰게 하였다.

●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상 《선조실록(宣祖實錄)》 2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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