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학봉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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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집(鶴峯集) 제2권 사(辭)-무장공자사(無腸公子辭) 병서(幷序)

섬 안에 작은 게가 있는데, 크기는 작고 맛은 비려서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다. 이에 산에 살거나 물에 살아도 아무도 잡지 않는바, 지혜가 있는 듯하기에 느낌이 있어서 사(辭)를 지었다. 그 사는 다음과 같다.

어찌하여 공자는 맘 꼿꼿도 한데 / 夫何公子之耿介兮
홀로 이 이역 땅서 살아가는가 / 謇獨生此殊方
이 세상의 생물 모두 오장 있는데 / 世皆蟲肝而鼠胃
그대는 어찌하여 내장이 없나 / 爾胡爲乎無腸
나쁜 땅의 시끄러움 싫어하여서 / 厭下土之喧卑
물가에다 그대 자취 숨긴 것인가 / 聊晦迹於滄洲者耶
먹어야만 살아가는 삶이 슬퍼서 / 悲口腹之有累
아니 먹는 지렁이를 닮은 것인가 / 學蚯蚓之無求者耶
몸에다간 갑옷을 입고 있어서 / 介冑兮在身
꿇지 않는 장군처럼 늠름하구나 / 凜乎將軍之不屈
기개 있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 橫行兮氣槩
고사처럼 아름다운 절개가 우뚝 / 卓乎高士之姱節
두 개의 창 앞에 뽑아 들고 있으니 / 雙戟抽前
네 마음에 지킴이 있음 알겠고 / 知爾心之有執
두 개의 눈 별처럼 반짝거리니 / 兩眼如星
네 눈 밝아 잘 살핌이 가상하구나 / 嘉爾明之能察
진흙 속에 산다 해서 치욕 아니니 / 泥塗兮非辱
운수 속에 산다 해서 뭐 고결하리 / 水雲兮何潔
산 속이나 물 속이나 어디 살아도 / 山居兮水處
제 스스로 만족하지 않은 곳 없네 / 蓋無入而不自得
고기 맛은 비린 데다 모습 추하니 / 且復腥其肉而穢其形
맛없어서 먹고픈 맘 안 생겨나네 / 薄滋味兮無可欲
짐승조차 쳐다보지 아니하는데 / 猫犬過而不顧
하물며 제사상에 너를 올리랴 / 況從事於籩豆
고을에선 있고 없음 관계 않으며 / 州何關於有無
사람 손에 너를 들려 하지 않누나 / 手任空於左右
어쩜 그리 처신함이 지혜로운가 / 胡處身之獨智兮
끝내 사리 밝은 데에 안 부끄럽네 / 終不愧於明哲
내 알겠네 공자의 덕 두루 갖춤이 / 吾知公子之周於德兮
그 모두가 내장 하나 없어서임을 / 何莫非一無之所獲
아아 / 嗚呼
아무것도 없으면 물체가 없고 / 無則無物
물체가 없으면 텅 빈 것이네 / 無物則虛
텅 비어 있는 고로 밝음 생기고 / 惟虛故明生
밝은 고로 가리어짐 제거되누나 / 惟明故蔽祛
텅 비어서 밝음으로 처세를 하니 / 用虛明而處世
그 무엇이 너에 대해 간여하겠나 / 物何得而干余
신령스런 저 거북과 신령스런 용 / 彼靈龜與神龍
모습 자질 기이하지 않겠나마는 / 豈不形奇而質異
오직 지혜 굴리고 욕심 많아서 / 惟其逞智而多慾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구나 / 故爲人之所斃
무장공자 그대의 내장 없음은 / 嗟公子之無腸兮
참으로 보신하는 좋은 꾀이네 / 實保身之良規
돌이켜 봄에 홀연히 깨닫겠으니 / 忽反觀以有得
내 공자를 안 따르고 누굴 따르리 / 微公子兮吾誰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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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집(鶴峯集) 제2권 사(辭)-차오산의 ‘천풍해도사(天風海濤辭)’의 운을 차운하다. 경인년(1590, 선조 23)

객 있어서 원유편의 시를 읊으니 / 若有客兮賦遠遊
하늘 모양 바뀌고 바다 색 변하네 / 天改容兮海動色
정원이 붓 던진 걸 흠모하나니 / 慕定遠之投筆
어찌 한갓 문묵만을 일삼으리오 / 豈徒事乎文墨
만 섬 실은 빠른 배를 몰아서 가니 / 駕萬斛之飛艎
태산 같은 붕새 등을 밟은 듯하네 / 躡太山之鵬背
잡은 옥절 휘황하게 빛을 발함에 / 仗玉節之煒煌兮
아침에는 북궐 있다 저녁엔 남해 / 朝北闕兮暮南海
대황 쪽을 가리키며 기약하고는 / 指大荒而爲期兮
인간 세상 시끄러움 하직하누나 / 辭下土之喧豗
흰 해 아래 붉은 깃발 휘날리면서 / 揚紅旗兮揮白日
북을 치고 배 떠남에 뇌성 울리네 / 搥鼓發船兮轟雲雷
긴 바람은 날 몰아서 어디로 가나 / 長風駕我兮欲何之
별안간에 가없는 바다 나왔네 / 瞥然一踔兮出無外
은빛 산 일어나고 눈 언덕 쌓여 / 銀山起兮雪阜堆
하늘과 땅 뒤엎음에 참말 놀랐네 / 天飜地覆兮吁可駭
천오 자봉 갈팡질팡 갈피 못 잡고 / 天吳紫鳳顚倒而後先兮
비렴은 교만하고 해동 어리네 / 飛廉驕兮海童穉
구름 하늘 치솟았다 황천 내려가 / 上雲霄兮下重泉
숨 한 번 쉴 동안도 그치지 않네 / 無一息之小夷
돛대 삿대 순식간에 꺾이어짐에 / 檣傾楫摧在須臾兮
낭패스런 형세되어 갈피 못 잡네 / 勢狼狽而差池
사공조차 돌아보며 숨도 못 쉬니 / 長年三老相顧而脅息
그 누가 정신 차려 안 넘어지랴 / 夫孰不顚仆而失常
내 한 몸 창해에 뜬 한 좁쌀임에 / 嗟余身一粟乎滄海
천군을 의지하여 버티이누나 / 倚天君而主張
서재인 듯 배 가운데 오똑 앉으니 / 兀舟中兮在齋閣
하늘 한쪽 떠올랐다 가라앉누나 / 載沈浮兮天一角
지남침을 손에 들고 방위 찾으며 / 手南針而定方位兮
맑은 하늘 우러르고 땅 굽어보네 / 仰天淸兮俯地濁
귀신이 출몰하고 변화하지만 / 神出沒兮鬼變化
어찌 족히 나의 마음 움직이리오 / 曾何足人我心天
아득해라 봉래산은 어디쯤 있나 / 藐蓬萊兮何許
삼천 리의 약수에 격하여 있네 / 隔弱水之三千
슬프구나 화식을 오래함이여 / 悲煙火之久食
천 년 뒤에 한만을 기약하누나 / 期汗漫於千年
어찌하여 하늘이 날 안 돌보아서 / 何天之不我順兮
만리의 미친 파도 일으키었나 / 起萬里之狂波
푸른 산 한 점 홀연 눈에 보이자 / 靑螺一點忽入望兮
뱃사람들 춤을 추니 기쁨 어떠리 / 舟人鼓舞兮喜若何
저녁 무렵 대마도에 배 정박함에 / 夕漂泊於馬島
왜인들이 마중 나옴 가상하구나 / 嘉遠人之迎我
먼 이역에 왕의 명령 선포를 함에 / 宣王命於絶域
우리 도가 행해질까 여기었었네 / 兆吾道之行可
섬 왜놈들 우리들을 기만하여서 / 嗟鹽奴之瞞我
한 달이나 사신 배를 잡아 두누나 / 留漢槎於一月
길일 택해 내 장차 떠나려는데 / 擇吉日余將行兮
바다는 또 어찌하여 눈을 내뿜나 / 海胡爲乎又噴雪
바람 하늘 눈 멀어서 앞 안 보임에 / 風盲天瞽不辨咫尺兮
바다에서 긴긴 밤을 나게 되었네 / 作長夜於重溟
비 쏟아져 기세를 더욱 돋우니 / 雨飜盆兮助聲勢
어룡은 울부짖고 구름은 아득 / 魚龍叫嘯兮雲杳冥
부상 쪽 바라보니 갈 수 없기에 / 望扶桑兮不可到
돌아갈 날 생각하며 수심에 젖네 / 念歸期兮更愁
내 어찌 돌아갈 날 생각하랴만 / 予豈歸期之足念
임금 얼굴 그리워서 편한 날 없네 / 懷美人兮不遑居
사신됨에 간서가 두려웁나니 / 仗國信兮畏簡書
어느 때나 왜왕에게 전해 주려나 / 將何時兮遺女
천공에게 글 올려서 풍백 헐뜯고 / 箋天公兮訟風伯
계수나무 가지 잡고 서성이누나 - 이때 산사(山寺)에 있었으므로 계지(桂枝) 자(字)를 썼다. / 攀援桂枝兮聊猶與

[주D-001]정원(定遠)이 붓 던진 걸 : 정원은 한 나라 반초(班超)의 봉호(封號)이다. 반초가 집이 가난하여 관청에서 글씨를 쓰면서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글씨를 쓰다가 붓을 내던지면서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더라도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이 이역 땅에서 공을 세운 것을 본받아 봉후(封侯)가 되어야지, 어찌 이 따위 짓을 일삼으랴.” 하였다. 《後漢書卷47 班超傳》
[주D-002]대황(大荒) : 중국에서 아주 먼 지역으로,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킨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동경(大荒東經)에, “동해의 밖, 대황의 안에 대언(大言)이란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나오는 곳이다.” 하였다.
[주D-003]천오(天吳) 자봉(紫鳳) : 천오는 전설 속에 나오는 수신(水神)의 이름이고, 자봉은 바다에 산다고 하는 신조(神鳥)의 이름이다.
[주D-004]비렴(飛廉) : 전설 속에 나오는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는 신수(神獸)의 이름이다. 또는 풍신(風神)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5]해동(海童) : 전설 속에 나오는 바다 속에 산다고 하는 신동(神童)의 이름이다.
[주D-006]息 : 소주에, “수본(手本)에는 식혜(息兮)로 되어 있다.” 하였다.
[주D-007]약수(弱水) : 선경(仙境)에 있다고 하는 물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기러기털조차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주D-008]천 년 …… 기약하누나 : 한만(汗漫)은 광대무변한 세계를 말한다. 《장자(莊子)》에, “한만과 더불어서 천지 밖을 기약한다.” 하였다.
[주D-009]간서(簡書)가 두려웁나니 : 간서는 이웃 나라 간에 서로 보내는 공문서로, 공무로 인해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출거(出車)에, “그 어찌 돌아갈 맘 없으리오만, 이 간서를 두려워하여서라오.[豈不懷歸畏此簡書]” 하였다.
[주D-010]풍백(風伯) : 바람을 맡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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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집(鶴峯集) 제2권 사(詞)-서흥(瑞興)의 동헌(東軒)에서 모암(慕庵)이 지은 폭포사(瀑布詞)를 차운하다.

폭포는 서흥부에서 북쪽으로 7리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산이 세 방면에 솟아 빙 둘러 있어서 한 개의 동부(洞府)를 이룬 가운데, 허공 중에 걸려 있는데, 그 안에는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다. 동부의 세 방면에는 만 길이나 되는 절벽이 솟아 있어서 사람들이 드나들 수가 없으며, 오직 동남쪽 한쪽만이 골짜기가 터지고 절벽이 열려 있다. 여러 골짜기에서 나온 물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쏟아지는데,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된다. 마치 은하수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하여 우레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우박이 어지러이 쏟아지는 듯하다. 이에 멀리서 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내가 간 날 마침 큰비가 내려서 폭포의 형세가 더욱더 웅장하였는바, 이 어찌 신룡(神龍)이 구름을 부르고 비를 쏟아부어 장관을 더해 사람들에게 과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詞)는 다음과 같다.

바람 수레 멍에 메어 멀리 감이여 / 駕飆軫兮言邁
우뚝하고 아스라한 북산을 넘네 / 凌北山之巍峩
놀랍게도 철벽의 남쪽 갈라져 / 驚鐵壁之南坼
만 길 되는 은하수가 걸려 있네 / 懸萬丈之銀河
골짝 속에 신령스런 못을 엿보고 / 窺神湫於絶壑
산굽이에 나의 눈을 스치는도다 / 流余目於巖阿
태항산의 장검 길어 날 예리하고 / 橫磨太行之長劍兮
여산의 천신 곧게 드리워졌네 / 直垂廬山之天紳
우레 울고 방울 튀겨 빛과 섞이고 / 吼雷疊雪兮交白日
옥 토하고 구슬 날려 티 하나 없네 / 噴玉揚珠兮絶點塵
돌다리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 謇吾徘徊乎石矼
유반에다 나의 머리 풀어 감누나 / 濯余髮於洧盤
이내몸 들판 습지 떠도는 동안 / 自余之載馳原隰
바다 달은 몇 번이나 둥글어졌나 / 嗟海月之幾彎
부질없이 꿈 옥계에 걸려 있는데 / 夢空懸於玉界
누추한 속세에서 곤욕 당하네 / 困卑湫於塵寰
뉘라 알리 한 번 동천 들어가면은 / 誰知一入乎洞天
이내 마음 편안함을 얻는다는 걸 / 獲余心之所安
학 등 타고 참 은자를 불러와서는 / 招隱眞於鶴背
한만에다 영원한 기약을 맺네 / 結永期於汗漫
천태산과 적성산이 여기 있으니 / 天台赤城卽在此兮
바람타고 요대 오름 뭐 부러우리 / 又何羨登閬風而躡瑤臺也哉
꼭대기에 기대 길게 휘파람 불며 / 倚絶頂而長嘯
하방 세계 이는 티끌 굽어다보니 / 俯下土之坌埃
삼농에 죽어감이 애처롭구나 / 憫喝死於三農
폭포 속서 잠자는 용을 깨우자 / 起眠龍於嶺瀧
한 차례 신령스런 물결 쏟아 내 / 一注靈派兮
온 세상을 촉촉하게 두루 적시네 / 沾洽普土
큰 소리로 희우시를 읊조리고는 / 高吟喜雨兮
붓 들어서 깃대처럼 휘갈기누나 / 揮彩筆之如杠

[주C-001]모암(慕庵) : 김극일(金克一)의 호이다.
[주D-001]태항산(太行山)의 장검 : 계곡의 폭포를 가리킨다. 한유의 ‘개장시(開張詩)’에, “이때 비 막 개어 천정 넘쳐 흐르니, 누가 장검 가져다가 태항산에 기대놓았나.[是時新晴天井溢誰把長劍倚太行]” 하였다.
[주D-002]여산(廬山)의 천신(天紳) : 천신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띠로, 폭포를 말한다. 한유의 ‘송혜사시(送慧師詩)’에, “이때 비 처음 개어 폭포가 하늘에서 띠를 드리웠네.[是時雨初霽懸瀑垂天紳]” 하였다.
[주D-003]유반(洧盤) : 전설 속에 나오는 물 이름으로, 엄자산(崦嵫山)에서 발원한다고 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저녁에 궁석(窮石)으로 돌아가 머물고, 아침에 유반에서 머리를 감는다.” 하였다.
[주D-004]한만(汗漫) : 광대무변한 세계를 가리킨다.
[주D-005]천태산(天台山)과 적성산(赤城山) : 모두 절강성(浙江省)에 있는 산으로, 선경(仙境)을 말한다. 적성산은 천태산의 남쪽에 있으며, 토석의 색깔이 붉고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겼다. 《문선(文選)》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적성의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 하였다.
[주D-006]삼농(三農) : 봄, 여름, 가을 세 철에 철에 맞게 농사짓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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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집(鶴峯集) 제2권 부(賦)-차오산(車五山)의 회귀부(懷歸賦)에 차운하다.

군자가 먼 길에 사신 감이여 / 夫何君子之于役兮
만리의 풍파에다 몸 내맡겼네 / 任萬里之風波
시절 이미 바뀜에 마음 놀래어 / 驚時物之已變
긴 칼을 두드리며 비가 부르네 / 鼓長劍而悲歌
지난날에 나의 뜻 원대함이여 / 曩余志之脩謇兮
한 구석에 얽어매임 부끄러웠네 / 恥匏繫於一隅
경인년에 행장 꾸려 길 떠남이여 / 惟庚寅吾戒行兮
삼호에다 먼 기약을 맺었었다네 / 結遐期於三壺
늦은 봄에 왕명을 받들음이여 / 仗王命於暮春兮
궁벽한 데서 사행 지체하였네 / 滯漢節於窮秋
은하수가 홀연히 밝아짐이여 / 星河忽其昭回兮
계절은 욕수가 저물었도다 / 序又晏於蓐收
강 언덕에 외로운 배 매였음이여 / 繫孤舟兮江之岸
긴 숲 속에 말 달리기 생각하였네 / 思騁馬於長楸
명월주를 차고 옥을 끌고 감이여 / 佩明月兮曳琳琅
신선 불러 나의 행차 인도케 했네 / 招列仙兮導余行
내 머리털 유반에다 감음이여 / 濯余髮於洧盤兮
항해를 금경에다 내 마시었네 / 吸沆瀣於金莖
일찍이 세월 얼마 지나갔는가 / 曾日月之幾何
절에 꽂힌 깃털 문득 떨어지누나 / 奄節旄之飄零
나의 행차 어찌 그저 가는 것이랴 / 余之行豈徒然兮
오랑캐의 뜰에 장차 일 있을 거네 / 將有事乎蠻庭
도리로써 먼 곳 사람 회유함이여 / 通周道兮綏遠人
가없는 어진 교화 드날리려네 / 暢無外之仁聲
오랑캐라 감화하기 뭐 어렵겠나 / 豈殊類之難化兮
그들 역시 한 기운을 타고났다네 / 亦含生於一氣
관백은 어찌하여 먼 원정 가서 / 何關白之遠征兮
천 리 밖 군영에서 머물러 있나 / 駐轅門於千里
안고 있는 국서 전할 곳 없음이여 / 抱國信兮無所傳
피리 소리 들으면서 관산 지나네 / 度關山於篴裏
내 맘대로 못함에 생각 길어서 / 思悠悠兮不自由
소나무 숲에 오똑 홀로 있다네 / 塊獨處乎松關
충신으로 위의를 간직함이여 / 服忠信兮攝威儀
오랑캐 땅서 감히 게을리하랴 / 敢自懈於行蠻
시 삼백 편 못 외울까 걱정됨이여 / 誦三百兮懷靡及
사신 길 고생 어찌 원망하겠나 / 寧致怨於行役
회남 땅에 지는 낙엽 내버려 두고 / 任淮南之木落
이료들 손 창 잡도록 내맡기었네 / 信夷獠之手戟
해 가에서 임금 얼굴 바라봄이여 / 望美人於日邊
어느 때나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 賦言歸兮何時
구가를 노래하여 먼 회포 풀고 / 歌九歌兮寄遙懷
북산편을 읊어서 나의 시 잇네 / 詠北山兮賡我詩
슬프다 인생살이 한 백 년인데 / 嗟人生兮百年
나의 몸을 티끌 속에 괴롭히누나 / 役吾形於塵勞
이로부터 훌쩍 떠나 벼슬자리를 / 豈不欲自此而遐擧
터럭처럼 보고 싶지 않겠나마는 / 等軒冤於一毫
부모님 살아 계신 고국의 땅을 / 夫惟父母之故國
의리상 멀리 떠날 수가 없구나 / 義不可以離遠
항차 임금 생각하는 나의 한 마음 / 況愛君之一念
하늘의 북극성에 달렸음에랴 / 懸北辰於霄漢
간절한 정 풀 길이 없음이여 / 情綢繆兮莫之解
바다를 건너고자 결심하였네 / 喟憑心於蹈海
서풍 향해 나의 옷깃 풀어 헤치고 / 開余襟兮西風
저 해를 바라봄에 등질 수 없네 / 瞻彼日兮不忍背
다행히도 대방에서 도를 들으니 / 幸楣於大方
누런 소의 가죽 질김 맘 기쁘구나 / 喜黃牛之鞏革
곤란 당해 운명 편히 여기고서는 / 聊處困而安命
지나가는 곳곳 풍요 채집하누나 / 采風謠兮歷歷
시인 있어 날 만난 걸 좋아하나니 / 嘉詞客之獲我
처한 경우 둘이 서로 다르지 않네 / 羌所遭之靡異
시인 단사 이어 지어 내 회포 쓰니 / 續短詞兮述余懷
평생토록 잊지 말길 기약하세나 / 期勿忘於沒齒

[주D-001]삼호(三壺) : 전설 속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이 산들은 발해(渤海) 바다 가운데 있는데, 신선들이 살고 불사약(不死藥)이 있으며, 새와 짐승이 모두 희고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주D-002]秋 : 두주에, “추(秋)는 아마도 추(陬)일 듯하다.” 하였다. 번역은 두주에 의거하였다.
[주D-003]욕수(蓐收) : 전설 속에 나오는 가을의 신으로, 여기서는 가을을 뜻한다.
[주D-004]유반(洧盤) : 전설 속에 나오는 물 이름으로, 엄자산(崦嵫山)에서 발원한다고 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저녁에 궁석(窮石)으로 돌아가 머물고, 아침에 유반에서 머리를 감는다.” 하였다.
[주D-005]항해(沆瀣)를 …… 마시었네 : 항해는 한밤중에 생겨나는 감로(甘露)로, 선인들이 마시는 것이며, 금경은 높은 하늘의 이슬을 받는 승로반(承露盤)이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감로를 받아 마셔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건장궁(建章宮)에 신명대(神明臺)를 세우고 동(銅)으로 선인장(仙人掌) 모양을 만들어 세워서 동반(銅盤)을 떠받치고서 감로를 받게 하였다. 《漢書卷25 郊祀志上》
[주D-006]회남(淮南) : 중국의 회수(淮水) 남쪽 지방으로,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킨다.
[주D-007]이료(夷獠) : 중국의 서남방에 사는 오랑캐의 이름으로, 여기서는 왜인들을 가리킨다.
[주D-008]구가(九歌) : 고대의 악곡으로, 우(禹) 임금 때의 음악이라고 전한다. 또는 각종의 악곡을 범범하게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악가를 말한다.
[주D-009]북산편(北山篇) :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주(周) 나라 유왕(幽王) 때에 역사(役使)가 고르지 못하여 자신만이 일을 하느라 수고로워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읊은 시이다.
[주D-010]누런 …… 질김 : 《주역(周易)》 혁괘(革卦)에, “공고히 하는 데는 누런 소의 가죽을 쓰라.[鞏用黃牛之革]” 하였다.
[주D-011]시인(詩人) : 여기서는 차천로(車天路)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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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집(鶴峯集) 제2권 부(賦)-수양산부(首陽山賦) 병서(幷序)

내가 정축년(1577, 선조 10) 봄에 중국 조정에 사신으로 갈 때 고죽성(孤竹城)을 지나면서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사당을 알현하였다. 난하(灤河)의 강물에서 갓끈을 씻고, 채미정(採薇亭) 위에서 배회하였는데, 맑은 바람이 옛날처럼 불고 남은 자취가 완연하였다. 이에 백이 숙제의 음성과 얼굴을 직접 보고 듣는 것만 같아 백대(百代)나 멀리 시대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제 서해의 해주(海州)에 도착해 보니, 진산(鎭山)을 수양산(首陽山)이라고 하는데, 두 봉우리가 대치하여 만 길 높이 우뚝 솟아 있어서 감히 범할 수 없는 늠름한 기운이 있었는바, 백이 숙제의 특립 독행(特立獨行)한 절개를 어렴풋하게 상상할 수가 있었다.
아아, 시대는 예와 지금이 다르고 땅은 멀고 가까움이 있지만 흥기하는 마음이 같은 것은 참으로 피차간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 산 아래를 지나가면서 백이 숙제의 높은 풍모를 우러르는 자가 어찌 완악한 자는 청렴하게 되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우지 않겠는가. 그런데 더구나 이곳 해주에 살면서 이 수양산의 정기를 받은 자는 뜻을 세우는 것이 마땅히 어떻겠는가. 참으로 혹시라도 착하지 못하고, 행실이 없고, 충성스럽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여 이 천지간에 하나의 버려진 사람이 된다면, 어찌 한갓 백이 숙제의 죄인일 뿐이겠는가. 아마도 이 수양산에 대해서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으며,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사(辭)는 다음과 같다.

그 옛날에 은 나라가 쇠망할 적에 / 有殷之衰兮
주 나라는 그때 막 흥기하였네 / 有周之興
하늘의 토벌을 결행한 것이 / 惟天討夫
그 어찌 천하 탐내 한 것이겠나 / 豈利天下爲哉
뭇 백성들 소원에 답한 것이네 / 用以答霓望於黎烝
어떻게 저 청성은 특립하여서 / 夫何淸聖之特立兮
순일한 덕 변치 않고 정절 지켰나 / 恆一德而守貞
아아, 슬프고도 슬프도다 / 吁嗟乎
뭇사람이 옳다고 여긴 것은 권도였고 / 衆之所是者權
당신께서 그르게 여긴 것은 상도였네 / 子之所非者經
차라리 상도 지켜 죽음 당할지언정 / 無寧守經而之死
권도 따라 구차하게 살기 원치 않았네 / 不願達權而苟生
굴레 잡고 간했으나 들어 주지 아니하니 / 叩馬而諫予不入
끝났구나, 당신께선 어디로 갈 것인가 / 已焉哉吾將何之
아득한 저 서산은 북해 가에 있는데 / 邈彼西山北海之湄
오백 년의 은택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 五百年雨露餘物
홀로 이 수양산의 고사리뿐이었네 / 獨玆山之薇蕨
주 나라의 곡식은 의리상 못 먹겠으니 / 周井之粟義不可飽兮
비록 굶어 죽더라도 그 어찌 걱정하리 / 雖餓死兮何恤
큰 바다의 봉새 날아 서산으로 들어가서 / 鴻冥鳳擧兮山之中
달가운 마음으로 세상과는 영결했네 / 甘與世而永訣
한 곡조 길다랗게 노래 부름에 / 一曲長歌兮
만고토록 맑은 바람 전하여졌네 / 淸風萬古
삼강을 한 몸으로 실천했기에 / 三綱一身兮
우주간에 해와 달이 길이 밝았네 / 日月宇宙
아아, 슬프고도 슬프도다 / 嗚呼噫嘻
주 나라의 난신인 열 명 신하는 / 周亂十人
팔백 년 주(周)의 왕업 도왔다지만 / 纘姬籙於八百
상 나라의 백이 숙제 두 분께서는 / 商之二子
천억 년에 사람 도리 수립하였네 / 立人紀於千億
지금 와서 이들의 일 살펴본다면 / 以今觀之
그 공로가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 / 功孰與多
후대 와선 풍속이 더욱더 경박해져 / 況世降而俗末
간사한 자들 서로 시끄러이 싸우면서 / 嗟姦軌之紛拏
탕무가 정벌한 걸 구실로 삼는 자가 / 以湯武征伐爲嚆矢口實者
분분하게 그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네 / 紛不知其幾何
내 그런 뒤에야 그날 한 번 죽은 것이 / 吾然後知當日之一死
쇠퇴한 세파에 지주됨을 알았도다 / 作砥柱於頹波
내 일찍이 현인 살던 옛 고향을 지나면서 - 고죽성(孤竹城)에 있다. / 余嘗歷賢人之舊里
산기슭 사당 들러 참배를 하였었네 / 瞻聖祠於山阿
거기 있는 청풍대와 채미정 정자에는 / 臺淸風兮亭採薇
남은 기상 엄연하여 어제만 같았었네 / 儼遺像之如昨
시냇물 떠 잔 올리고 산고사리 천신하여 / 酌明泉兮薦山蕨
깨끗한 나의 정성 흠향하길 바랐었네 / 潔余誠兮昭格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 曾日月之幾何
꿈은 늘상 고죽국 땅 거기에 맴돌았네 / 夢長懸於孤竹
그런데 어찌하여 황해도의 한 산에다 / 胡爲乎西海之一山
또한 역시 수양이란 높은 이름 내걸었나 / 亦揭之以高名
거룩한 발자취가 어찌 이곳 지났으랴 / 豈芳躅之曾過
높은 산을 경앙하는 인정에서 나온 거네 / 其亦出於高山景仰之人情也歟
하늘이 준 인성을 고르게 얻었으니 / 噫天畀之均得
중국과 우리나라 무슨 차이 있겠는가 / 曷嘗有間於彼此
지역 서로 떨어지고 세대에 선후 있어 / 地相距世先後
아득하고 멀다고 비록 말들 하지마는 / 雖曰邈乎遼矣
진실로 유풍 듣고 흥기만 한다면야 / 苟能聞風而興起
두 분에게 부끄러움 없을 수 있으리니 / 亦庶幾無愧乎二子
빛나고 아름다운 우리 고장 선비들이 / 顧吾黨之斐然
약한 마음 분발해서 날로 진보 안 하겠나 / 盍立懦而日進
내 다시금 거듭해서 말을 하노니 / 重曰
나라를 사양하고 도망한 것은 / 讓國而逃
인에 있어 극진한 것이었다네 / 仁之盡兮
정벌 말라 간하고서 굶어 죽은 건 / 諫伐而餓
의에 있어 지극한 것이었도다 / 義之至兮
인과 의 둘 다 모두 극진했으니 / 仁盡義至
그 무슨 원망의 맘 있었으리오 / 有何怨只
산은 아니 무너지고 바다 아니 마르리니 / 山不崩兮海不渴
큰 명성과 높은 절개 모두 끝이 없으리라 / 鴻名峻節兮幷無極也

[주D-001]청성(淸聖) : 순결한 성인으로, 백이 숙제를 가리킨다.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순결한 자이다.” 하였다.
[주D-002]굴레 잡고 간했으나 : 주 나라의 문왕(文王)이 주(紂)를 정벌하려고 하자, 백이 숙제가 말 굴레를 잡고서 간하기를, “아버지가 죽어서 장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을 잡고 정벌을 하니, 효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史記卷61 伯夷列傳》
[주D-003]난신(亂臣) : 나라를 잘 다스리는 신하를 말한다. 《서경(書經)》 태서 중(泰誓中)에, “나에게는 난신 열 명이 있어서 마음과 덕을 함께 한다.” 하였다.
[주D-004]纘 : 두주(頭註)에, “찬(纘)은 아마도 찬(贊)일 듯하다.” 하였다. 번역은 두주를 따랐다.

133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촉석루(矗石樓)에서 지은 절구 한 수

선생이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처음에 진양(晉陽)에 도착하였을 적에 목사(牧使) 이경(李璥)은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 있었고, 성 안에는 적막하여 사람 그림자가 없었다. 선생이 조종도(趙宗道),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산하를 바라보고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조종도가 선생의 손을 잡고는 말하기를, “진양은 거진(巨鎭)이고 목사는 명관(名官)인데도 지금 이와 같으니, 앞으로의 사세는 다시 손써 볼 도리가 없을 것이므로, 빨리 죽느니만 못합니다. 공과 함께 이 강물에 빠져 죽었으면 합니다.” 하고는, 공을 강가로 이끌었다. 그러자 선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나, 헛되이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필부들이나 지키는 작은 의리를 나는 따라 하지 않을 것이다. 선왕(先王)께서 남기신 은택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고, 주상께서도 이미 자신을 죄책하는 교서를 내리셨다. 이에 하늘이 현재 화를 내린 것을 후회하고 있다. 여러분들과 더불어 군사를 모은 다음 나누어 점거하고 있다가 함부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는다면, 적은 숫자의 군대로도 충분히 나라를 흥복(興復)시킬 수가 있어서, 회복의 공을 분명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불행히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에는 당(唐) 나라의 장순(張巡)처럼 지키다가 죽어도 되고, 안호경(顔杲卿)처럼 적을 꾸짖다가 찢겨서 죽어도 된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처럼 서두르는가. 이 강물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였다. 인하여 절구 한 수를 읊고는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통곡하고 자리를 파하였다.

촉석루 누각 위에 올라 있는 세 장사 / 矗石樓中三壯士
한 잔 술로 웃으면서 장강 물을 가리키네 / 一杯笑指長江水
장강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 長江之水流滔滔
물 마르지 않는 한 우리 넋도 안 죽으리 / 波不渴兮魂不死

[주C-001]곽재우(郭再祐) : 이 부분은 1649년에 초간본(初刊本)이 간행된 후 70여 년이 지난 뒤인 1726년에 밀암(密菴) 이재(李栽)가 속집(續集 1782년 간행)의 연보(年譜)를 편찬할 적에 곽재우 대신 이노(李魯)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술하였다. 이는 초간본이 나오고서 약 80년을 경과하는 동안에 임진년 당시의 일이 차차 밝혀져서 속집의 연보에서 고쳐쓴 것으로, 이른바 ‘촉석루 삼장사’가 김성일, 조종도, 이노를 뜻한 것임이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그 뒤 1851년에 본 문집을 재판(再版)하면서 초간본의 목판(木版)을 그대로 찍어냄으로써 이 시의 주석이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되었다. 후손 김시인(金時寅)의 말에 의하면 “당시 사실은 이미 연보에서 밝혀진 것이고, 조상들이 간행한 원본(原本), 즉 초간본의 목판에 함부로 손을 대어 깎아내거나 바꿔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하였다.
[주D-001]한 잔 …… 흘러가니 : 소주에, “어떤 본에는 ‘일배소지청천수 청천만고류도도(一杯笑指菁川水菁川萬古流滔滔)’로 되어 있고, 어떤 본에는 ‘일배소지청강수 청강만고류도도(一杯笑指淸江水淸江萬古流滔滔)’로 되어 있다.” 하였다.

132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한강(漢江)에서 이별하면서 남기다. 임진년(1592, 선조 25). 병사(兵使)가 되어 도성을 나올 때 친구들이 와서 전송연을 베풀었는데, 이 시를 남겨 주었다.

131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서악서원(西岳書院)에 제하다.

130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봉황대(鳳凰臺)에 있는 시의 운에 차운하다.

129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허산전이 지은 ‘해도를 바라보다[望海島]’의 운에 차운하다

128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김응방(金應邦)의 첩자(帖子)에 제(題)하다. 신묘년(1591, 선조 24)

전에 내가 남쪽에 있었을 적에 / 昔我在南時
금성의 객관에서 너를 보았지 / 見汝錦城館
몸 위에 걸쳤던 게 무엇이었나 / 身上何所掛
해진 장삼 겨우 발목 가리었었지 / 破衲纔掩骭
손에는 무엇을 가졌었던가 / 手中何所有
마니주의 광채가 번쩍였었지 / 摩尼光璨璨
곁으로 오라 해서 말을 시킴에 / 扶几導之言
송곳 끝 삐져 나와 민첩하였지 / 穎脫物不間
기예 재주 조물주의 솜씨 훔쳐서 / 技藝奪天工
많은 불상 손을 놀려 만들어 냈지 / 萬佛能手幻
귀인들 사이 끼어 놀기 좋아해 / 好遊公侯間
성중에도 또한 자못 익숙하였지 / 城市頗亦慣
나를 위해 열흘 동안 머무르면서 / 爲我留十日
기쁘게도 방외 친구 되어 주었지 / 喜作方外伴
인생이란 모였다간 흩어지는 것 / 人事有聚散
오 년 동안 제비 기럭 처지되었지 / 五載成燕鴈
금년에 내가 먼 길 나그네 되어 / 今年我遠征
부상 땅에 사신으로 오게 되었지 / 奉使扶桑岸
부상 길은 바닷길로 삼천 리라서 / 扶桑海三千
오는 이들 모두 다 한숨 쉬었지 / 行者皆有嘆
너는 홀로 따라오길 소원하여서 / 獨汝願從之
머리 길러 묶은 위에 모자를 썼지 / 束髮顚其冠
훤칠하니 한 사람의 대장부 되어 / 頎然一丈夫
나를 좇아 봉래로 달려왔었지 / 追我蓬萊觀
뱃사공 되는 것도 안 꺼렸으니 / 不憚充水手
풍파쯤은 걱정할 바 아니었었지 / 風濤非所患
대마도서 큰 바람을 만났을 적에 / 馬海遇颶風
온 배 안의 사람 모두 혼이 나갔지 / 一舟渾神叛
너는 능히 삶과 죽음 초월하여서 / 汝能外死生
위급할 때 어지럽지 아니하였지 / 造次猶不亂
몸뚱이야 부처가 초월했던 것 / 形骸佛所遺
너 역시도 그에 대한 애착 끊었지 / 汝亦善割斷
이역 땅에 볼 만한 경치 많음에 / 殊方多偉觀
하늘 밖서 마음대로 유람하였지 / 天外恣遊玩
평소의 먼 유람을 하려던 뜻이 / 平生遊方志
그제서야 거짓 아닌 진짜 되었지 / 今乃眞不贗
구만 리를 날아가는 대붕 같아서 / 有如九萬鵬
구름 같은 날개를 한 번 저었지 / 一揮垂雲翰
바람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갈 제엔 / 扶搖上寥廓
어찌 다시 뱁새를 뒤돌아보리 / 豈復顧斥鷃
도를 닦는 여가에 기술을 익혀 / 餘事逞智巧
온갖 변화 속셈에서 헤아리었지 / 機變由心筭
금 솥에다 유황 수은 넣어 달임에 / 金鼎煮硫汞
붉은 빛은 어쩜 그리 찬란했던가 / 朱丹何燦爛
삼신산에 단약 짓는 부엌이 있어 / 三山有丹竈
거기 가서 한 번 보길 원하였었지 / 仍之願一看
해 넘기고 배 돌리어 되돌아오니 / 經歲始回棹
나와 함께 온갖 고생 같이하였지 / 與我同患難
너의 눈은 이미 벌써 크게 떠졌고 / 汝眼旣已大
너의 유람 역시 또한 드넓어졌지 / 汝遊亦汗漫
긴 파람에 인간 세상 내려와 보니 / 長嘯下人間
청구 땅엔 해가 아직 안 저물었네 / 靑丘日未晏

[주D-001]송곳 끝 삐져 나와[穎脫] : 재능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사기(史記)》 제76권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평원군(平原君)이 말하기를, ‘무릇 현사(賢士)가 이 세상에 처함에 있어서는 비유하자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 끝이 드러나지 않으면 남들이 알 수가 없다.’ 하자, 모수(毛遂)가 말하기를, ‘신을 오늘 주머니 속에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로 하여금 일찌감치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서[穎脫而出] 끝이 보이는 정도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하였다.
[주D-002]제비 기럭 처지되었지 : 서로 헤어져 있다는 뜻이다.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올 적에는 기러기는 이미 북쪽으로 날아가고, 기러기가 날아올 땐 제비는 이미 남쪽으로 날아가서 서로 만나지 못한다.
[주D-003]死生 : 소주에, “초본에는 생사(生死)로 되어 있다.” 하였다.

127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취중에 영귀갑(靈龜匣)을 열었더니 ‘경인년 삼월 초육일’이라는 글자가 있었으므로 느낌이 있어서 시를 읊다.

126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차오산이 지은 ‘느낌이 있어서[有感]’의 운을 차운하다. 오산이 자신의 생일날 아침에 읊은 시이다

창려의 늙은이가 삼진을 읊으면서 / 昌黎老子賦三辰
우성 기성 떠벌리며 자기 신세 한탄했네 / 牛奮箕張嘆厥身
명은 하늘 달려 있어 궁함 달함 다르지만 / 有命在天窮達異
인 행함은 자기 할 탓 성인 우인 똑같다네 / 爲仁由己聖愚均
뜬인생은 파초 속에 사슴 감춘 것과 같고 / 浮名政似蕉藏鹿
양귀는 응당 옥이 돌 속에 든 것 같네 / 良貴應如璞蘊眞
처세함에 그 어찌 험난함을 걱정하리 / 處世何須憂險釁
그대는 평지에서 통진 찾기 바라노라 / 願君平地覓通津
차오산이 말조심을 하지 않아서 자못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불우하게 된 탄식이 있었으므로, 시 가운데에서 시종 그에 대해 말하였으니, 이 역시 붕우 간에 서로 권면하는 의리이다.

[주D-001]창려(昌黎)의 …… 한탄했네 : 창려는 한유(韓愈)의 호로, 한유가 시를 지어서 자기의 생년월일에 우성(牛星)과 두성(斗星)이 끼어 있어서 평생의 운수가 나쁘다고 한탄하였다.
[주D-002]파초 …… 것 : 꿈 속에서 있었던 허무한 일을 말한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에, “들판에서 나무를 하고 있던 정(鄭) 땅 사람이 사슴을 잡은 다음 이를 죽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가져갈까 염려되었다. 이에 사슴을 끌어다가 구덩이 속에 감추고는 풀로 덮은 다음 몹시 기뻐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에 감추어 둔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드디어 꿈 속에서 있었던 일로 여겼다. 그 사람이 길을 내려오면서 그 일을 떠들어 대자 곁에 있던 사람이 듣고는 그 말에 따라 찾아가서 사슴을 얻었다.” 하였다.
[주D-003]양귀(良貴) : 본연(本然)의 선(善)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관작(官爵)은 인귀(人貴)이고, 덕은 본래 타고난 귀함[良貴]이다.” 하였다.
[주D-004]통진(通津) : 사방을 두루 통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나루터를 말한다.

125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차오산이 지은 ‘밤 배[夜舟]’의 운을 차운한 절구 한 수

124

학봉집(鶴峯集) 제2권 시(詩)-차오산이 송옥(宋玉)의 시를 모방하여 지은 시에 화답하다.6수

두 눈 속에 해와 달이 매달려 있고 / 雙瞳懸日月
한 손으로 하늘과 땅을 굴리네 / 隻手轉乾坤
숨을 쉬자 만 구멍에 바람이 울고 / 噫氣萬竅號
대 던지자 여섯 자라 달아나누나 / 投竿六鰲奔
푸른 바다 기침 따라 일렁거려서 / 滄溟隨咳唾
장맛비를 온 세상에 흠뻑 내리네 / 甘霔洽無垠

빗긴 창은 지는 해를 후려 때리고 / 戈橫揮落日
뾰족한 노 하늘 문을 찔러 쪼개네 / 檣矗劃天門
마루 높아 팔황이 펼쳐져 있고 / 軒闢八荒闥
뜨락 넓어 사해를 받아들이네 / 庭涵四海盆
기지개를 켜면서 잠을 깨고는 / 欠伸一睡罷
두 다리로 곤륜산을 걷어차누나 / 雙脚蹴崑崙

이상 두 수는 대언(大言)이다.

태산이 터럭처럼 가느다랗고 / 太山秋毫細
천지가 손가락 하나만 하네 / 天地一指然
몸은 푸른 바다에 뜬 좁쌀알이고 / 身爲滄海粟
말은 개미 둔덕을 빙빙 도누나 / 馬向蟻封旋

무엇이 이 세상서 가장 작은가 / 何物爲無內
가벼운 터럭 또한 무거운 거네 / 輶毛亦有倫
그대는 위에 있는 하늘을 보게 / 君看上天載
소리 냄새 묘하여서 혼돈 상태네 / 聲臭妙渾淪

이상 두 수는 소언(小言)이다.

맨손으로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 徒手履虎尾
산을 지고 봄 얼음을 건너가누나 / 負山涉春冰
백 길의 절벽 위에 발 내디디고 / 垂跟百仞上
허공에다 등을 대고 기대어 섰네 / 背立太虛憑

아교풀로 붙인 배로 초택 건너고 / 膠舟楚澤深
썩은 줄에 매인 육마 놀래키누나 / 朽索六馬驚
섶에 누워 아래에다 불을 지르고 / 薪臥燃其下
외나무 다리 위를 눈감고 가네 / 台橋擿埴行

이상 두 수는 위언(危言)이다.

[주C-001]송옥(宋玉)의 시 : 송옥이 대언부(大言賦)와 소언부(小言賦)를 지었는데, 대언부는 천지간에 가장 큰 것을 읊었고, 소언부는 천지간에 가장 작은 것을 읊었다.
[주D-001]대 …… 달아나누나 : 발해(渤海)의 동쪽에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그 안에 대여(岱輿), 원교(圓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선산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바다에 떠 있으므로 항상 조수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므로 상제(上帝)가 사방으로 떠내려갈까 걱정스러워서 열다섯 마리의 자라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떠받치고 있게 하였는데, 3교대로 하여 6만 년마다 한 번 교대하게 하였다. 이에 다섯 선산이 비로소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용백국(龍伯國)에 거인이 있어서 한 번 낚시질을 하여 여섯 마리의 자라를 잡아서 이를 짊어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자, 대여와 원교 두 산이 북극으로 흘러가서 큰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列子湯問》
[주D-002]아교풀로 …… 건너고 : 주(周) 나라 소왕(昭王)이 초(楚) 땅에 가서 배를 타는데, 초 땅 사람들이 왕을 미워하여 왕이 탈 배를 아교풀로 붙여 만들었으므로 중간쯤 갔을 적에 아교가 물에 녹아 빠져 죽었다. 《史記卷4 周本紀》
[주D-003]썩은 …… 육마(六馬) : 몹시 위태로운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만백성을 대함에 썩은 고삐로 여섯 마리 말을 몰듯이 두려움을 느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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