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학봉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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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물속에 가라앉힌 비석

이름내기 좋아하여 제 스스로 자랑했고 / 好名時世喜自衒
공 세움에 먼저 남이 모를까 봐 걱정했네 / 立功先憂人不知
분분하게 후세에서 알아주길 구하여서 / 紛紛要取後世名
괜히 심신 괴롭히며 온갖 궁리 다하였네 / 謾勞身心罄百思
산꼭대기 세운 것도 이미 가소롭거늘 / 山頭竪碣已可笑
물속에다 깨어진 비석 가라앉히었네 / 水中底事沈殘碑
그 당시에 남쪽 지방 경략하던 두 장군은 / 鎭南當日杜將軍
상호의 웅지 품은 참다운 남자였네 / 桑弧壯志眞男兒
청운의 뜻 일찌감치 큰 공 세울 기약하여 / 靑雲早期立大功
몇 년 동안 무위를 떨쳐 깃발 휘둘렀네 / 鷹揚幾年揮旌旗
오 땅 평정 되놈 진압 묘책을 펼쳤으니 / 平吳鎭戎展英謀
그 공명과 그 사업은 어쩜 그리 기이했나 / 功名事業何雄奇
자신 이름 한 시대의 으뜸이라 여기어서 / 自擬鴻名藉一時
그 공명을 천추 후세 드리우길 생각했네 / 持此擬欲千秋垂
한스런 건 뜬인생이 쉽게 잔멸되는 거로 / 只恨浮生易殘滅
백대 세월 흐르는 새 몇 번이나 바뀌었나 / 百世光陰知幾移
현과 우와 선과 악이 모두 아득해져서 / 賢愚善惡俱亡羊
초목과 함께 썩음 정말 슬퍼할 만하네 / 同腐草木眞堪悲
좋은 이름 백대토록 남길 보장 없으니 / 流芳難保百代留
착한 일을 무슨 수로 썩지 않게 전하려나 / 有善何由傳不虧
역사책에 이름 남김 그도 믿기 어려우니 / 垂名靑史亦難憑
임금 계책조차 되레 진화에 태워졌네 / 聖策猶爲秦火罹
저 산 바위 쳐다보니 견고하고 단단하여 / 睠彼雲根堅且頑
공 새기면 영원토록 전할 것만 같았네 / 鐫功庶可垂無涯
빗돌 깎아 이미 현산 서쪽에다 세우고서 / 螭頭已竪峴山西
높은 산이 언덕으로 변할 것을 걱정했네 / 千仞更慮丘陵夷
다른 비석 어디 둬야 영원토록 전하려나 / 一碑何處俾永久
고개 돌려 한수 보니 푸른 물결 넘실댔네 / 回首漢水波漣漪
창해조차 오히려 뽕나무 밭 되거늘 / 滄海桑田尙有日
강이 언덕 되는 날이 그 어찌 없으리요 / 一水陵谷寧無期
잠긴 것이 숨었으나 역시 또한 밝은 거로 / 潛雖伏矣亦孔昭
만대 뒤엔 응당 이름 알아줄 때 있을 거네 / 萬世知名應有時
이에 비석 가져다가 물속에다 넣으면서 / 竟將龜額鎭水府
마음속에 기약함이 몹시 정성스러웠네 / 此心所期何勤斯
그렇지만 이름 좋아함은 군자의 수치거니 / 雖然好名君子恥
대장부의 뜻과 소원 어찌 그런 데 있겠나 / 丈夫志願寧在玆
덕 세움은 오직 자신 수양하는 데 있나니 / 立德唯知在修己
초초한 뜬이름은 구할 바가 아니라네 / 草草浮名非所爲
착한 이름 있으면 덕이 멀리 퍼져서 / 況乃令名德之輿
덕 있으면 남들이 절로 알아주는 거네 / 有德自然人知之
널리 입에 전해지고 태사가 글로 써서 / 曠土銘口太史書
위대한 공렬 역시 솥에 새겨질 만한데 / 偉烈亦可銘鼎彝
하필이면 구구하게 돌에다가 새기어서 / 何必區區勒頑礦
푸른 물 속 가라앉혀 오래도록 전하리요 / 淪彼滄波爲遠規
이름 후세 전하려다 웃음거리 되었으니 / 欲流芳名反囮笑
두 장군이 한 짓은 바보스런 짓 아닌가 / 將軍所爲無乃癡

[주-D001] 물속에 가라앉힌 비석 : 진(晉) 나라 때 오(吳) 지역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운 두예(杜預)는 평소에 후세에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였다. 이에 일찍이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구릉으로 된다.” 하면서, 자신의 공을 새긴 비석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만산(萬山)의 아래에 묻고, 하나는 현산(峴山)의 위에 세워놓았다. 《晉書卷34 杜預列傳》[주-D002] 상호(桑弧) : 뽕나무 활로 쑥대 화살을 사방에 쏘는 것으로, 천하를 경략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고대에 아들이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활을 쏘아, 남아로 태어났으면 응당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품어야 함을 표상하였다. 《禮記內則》[주-D003] 진화(秦火) :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말한다. 진시황(秦始皇) 때 사람들이 정치에 대하여 비평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천하의 시서(詩書) 및 백가(百家)의 서책들을 모두 모아 불태웠으며,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史記卷6 秦始皇本紀》

1021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전연(澶淵)에서 옛날 일을 회상하다.

시경의 융적(戎狄) 막는 시를 오래 노래 안 해 / 周詩膺狄久不歌
정벌하는 남은 위엄 다시 보기 어려웠네 / 薄伐餘威難復覩
청의 입는 치욕이 관가에 미치더니 / 靑衣幽辱及官家
양진 이래 오랑캐들 더욱더 발호했네 / 兩晉年來尤跋扈
어느 날에 전연으로 친정 나갈 결정했나 / 澶淵何日決親征
구공의 웅략이야 짝할 만한 사람 없네 / 寇公壯略人無伍
그 당시에 험윤이 중국에서 날뛰어서 / 當年猾夏劇玁狁
명분 없이 관남의 땅 떼어주길 의논했네 / 無名議割關南土
백만 군사 둔병하며 변경을 압박하자 / 屯兵百萬壓邊疆
북쪽에서 오는 급보 분분하게 날아왔네 / 北來羽檄飛旁午
묘당(廟堂)에서 남쪽으로 옮길 계책 잘못 정해 / 臨江閬州誤廟筭
나라 형세 한 가닥 실 매달린 듯 위태했네 / 國勢將傾危一縷
당당해라 추부에 다행히도 인물 있어 / 堂堂樞府幸有人
위태할 때 홀연 하늘 버티는 기둥 됐네 / 臨危忽樹擎天柱
황제 앞서 신묘한 계책을 결정하니 / 天庭決策定神謀
혁혁한 황제 위엄 뇌정처럼 떨치었네 / 皇威赫赫雷霆怒
친히 수레 몰아가니 우뚝하기 산이라서 / 親扶日轂屹如山
백만 명의 천자 군대 비바람이 치듯 갔네 / 天兵百萬如風雨
무위(武威) 만리 떨치면서 남성에 도착하여 / 鷹揚萬里到南城
흰 깃발 누런 도끼 강가 바짝 임하였네 / 白旄黃鉞臨江滸
소문만 듣고서도 적국 기세 꺾였으니 / 先聲已伐敵國謀
오합지졸 백만인들 헤아릴 게 뭐 있겠나 / 烏合萬衆何足數
되놈 추장 기 꺾이어 군사 지휘 못하였고 / 單于氣奪不能軍
어리석은 되놈 목숨 경각에 달렸었네 / 蠢蠢醜命懸一鼓
무기 모두 내던지고 화친하길 청하면서 / 投戈捲甲反輸平
남쪽 향해 감히 화살 겨누지 못하였네 / 南向不敢鳴弓弩
천자 군대 정벌하나 싸움은 안 하나니 / 王師有征本無戰
칼에 피 안 묻히고 공을 이미 수립했네 / 未血兵鋒功已樹
변방 성에 이로부터 도두 소리 끊어지고 / 邊城從此刀斗絶
온 나라 안 편안해져 되놈 외침 안 당했네 / 王國以寧無邊侮
세운 공을 기록함에 소호와 나란하여 / 記功端可並召虎
위대한 공 천고에 드리우기 충분하네 / 偉烈亦足垂千古
한스런 건 기회 임해 일에 견제 받은 탓에 / 獨恨臨機事掣肘
공이 세운 만전 계책 황제가 안 따른 거네 / 萬全忠謀君不取
한 번 화친 맺자 끝내 망국의 화 터 닦아져 / 一和終基亡國禍
오국성(五國城)에 두 황제가 포로되어 끌려갔네 / 五國居然巡二主
그 어찌 알았으랴 뒤에 형제 나라 되어 / 豈知異日作弟兄
후손들이 오랑캐를 신하되어 섬길 줄을 / 後世殘孫臣事虜
기미 알고 화를 끼침 이에 이와 같나니 / 知機貽禍乃如此
비록 맹장 있다 한들 장차 무슨 도움되랴 / 雖有虎臣將何補
산하만이 괜스레 망국의 한 품고 있어 / 山河空帶故國恨
천 년토록 지사들의 가슴속 썩게 하네 / 志士千秋心膽腐
고개 돌려 소리치다 옛일을 회상하며 / 回頭三叫一撫古
당시 무략 못 떨쳤던 황제를 비웃누나 / 爲笑當年君不武

[주-D001] 전연(澶淵) :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송(宋) 나라 때 구준(寇準)이 거란(契丹)을 물리친 곳이다. 송 나라 진종(眞宗)이 즉위한 함평(咸平) 초년에 거란군이 침입해 오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황제에게 남쪽으로 피해 가 있을 것을 청하였으나, 구준만은 친정(親征)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진종이 친정을 결정하였으나, 남성(南城)에 이르러서는 군사를 주둔한 채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준이 다시 강을 건너기를 고집하여 황제가 할 수 없이 강을 건넜는데, 이로 인해 사기가 고무되어 거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거란을 물리친 뒤 거란에서 화친을 요청하자, 구준은 이에 반대하였으나 황제가 구준의 말을 듣지 않고 화친하였다. 《宋史卷281 寇準列傳》[주-D002] 시경(詩經)의 융적(戎狄) 막는 시 : 《시경》 노송(魯頌)의 비궁(閟宮)을 가리킨다. 비궁은 천자가 군대를 출동하여 융적을 정벌하는 것을 읊은 시로, 그 시에 “융적을 이에 막으며, 형서를 이에 징계하도다.[戎狄是膺荊舒是懲]” 하였다.[주-D003] 청의(靑衣) 입는 치욕 : 청의는 낮은 관리나 평민이 입는 옷이다. 진(晉) 나라 6대 황제인 회제(懷帝)가 유총(劉聰)에게 포로로 잡혀서 푸른 옷을 입고 술을 따르는 치욕을 당했다. 《晉書卷5 孝懷帝紀》[주-D004] 양진(兩晉) : 동진(東晉)과 서진(西晉)을 가리킨다.[주-D005] 험윤(玁狁) : 중국 북방의 오랑캐 종족으로, 여기서는 거란(契丹)을 가리킨다.[주-D006] 도두(刀斗) : 조두(刁斗)로, 군중(軍中)에서 낮에는 밥을 짓는 데 쓰고 밤에는 경보를 알리는 데 쓰는 솥 같이 생긴 것이다.[주-D007] 소호(召虎) : 주(周) 나라의 소공(召公)을 가리킨다. 소공은 선왕(宣王)의 명을 받아 사방의 오랑캐를 평정하였다.[주-D008] 오국성(五國城)에 …… 끌려갔네 : 북송(北宋) 정강(靖康) 2년에 금(金) 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을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철종(哲宗) 두 황제와 황족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을 말한다. 오국성은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일대에 있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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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시를 낚는 낚싯바늘[釣詩鉤]

풍류 시인 시 짓느라 골몰한 채 앉았으니 / 風流騷客坐詩囚
시의 운격 - 원문 1자 빠짐 - 마음 바다 그 속에 들어 있네 / 吟韻□藏胸海頭
마음 바다 속의 시구 낚을 자가 누구인가 / 胸海瓊琚釣者誰
마음 장군 환백과 낚기를 꾀하누나 / 知是將軍歡伯謀
형양의 금 아니어도 바늘 만들 수 있어서 / 盤針不待荊楊金
철옹성의 머리에서 낚싯바늘 만드누나 / 鐵甕城頭鑄一鉤
대나무 잎 가지고도 낚싯대로 쓸 수 있고 / 擬將竹葉擧爲竿
향기로운 미끼야 술을 쓰면 되는 거네 / 香餌還憑綠蟻浮
줄 없던 바늘 위에 낚싯줄이 매였으니 / 無絃鉤上繫有絲
어찌 청수 탁수 가려 낚시를 드리우리 / 垂釣何分淸濁流
낚시를 하기 위해 배를 타지 않았거니 / 釣來曾是不上船
갈대 있는 물가에서 낚시 던질 필요 없네 / 投來不必蘆花洲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 던진 것 아니니 / 無心其釣不在魚
뜻은 가을 강호의 바람과 달 거기 있네 / 意在江湖風月秋
홀로 낚시하는 모습 참으로 호호하니 / 獨釣風采正浩浩
그 신세는 완연히 신선 세계 노는 거네 / 身世宛然壺中遊
봄바람의 따순 기운 얼굴에 불어오니 / 春風和氣一入面
소리 있는 그림 속에 생각은 유유하네 / 有聲畫裏思悠悠
첨두에선 새 생각이 샘솟듯 솟아나고 / 尖頭新思涌如泉
맑은 시재 드넓은 뜻 거두기가 어려워라 / 淸料浩意知難收
눈 아래의 천지를 그윽하니 더듬다가 / 眼底乾坤任幽討
생각 밖의 강산을 다시금 탐색하여 / 念外江山更窮搜
시구를 낚아 내니 옥을 낚은 것만 같아 / 釣得瓊琚擬釣璜
무한한 깊은 생각 다 거두길 기약하네 / 無限深思期盡抽
금강이라 그 강가에 살던 시의 성인은 / 錦江江上詩中聖
시를 낚는 바늘 몇 번 못과 숲 향했던가 / 釣鉤幾向林塘幽
용주 타고 노 저으며 놀던 술의 신선은 / 龍舟移棹酒中仙
한 말 술에 백 편 시를 읊어 시름 잊었네 / 一斗百篇堪忘憂
뜬구름 같은 인생 천태만상 변하거니 / 浮雲變態千萬狀
시 지음에 이 갈고리 안 던질 이 뉘리요 / 釣得誰非此鉤投
내 평생을 돌아보니 노니는 걸 즐겼을 뿐 / 顧我平生樂天放
바다에서 자라 낚길 구하지 아니하여 / 釣鰲滄溟非所求
도처에서 어느 때나 시 낚을 마음 품고 / 到處恒懷釣詩志
낚싯바늘 들고 - 원문 1자 빠짐 - 물가 갈매기와 어울렸네 / 持鉤□伴煙波鷗
낚으려고 하는 것이 그 어찌 시뿐이랴 / 釣兮豈但釣此詩
가슴속의 천만가지 시름 모두 쓸어냈네 / 掃盡胸中千斛愁
너와 함께 평생을 같이하길 원하노니 / 願將與爾同死生
달과 바람 읊조리며 함께 노닐 것이리 / 咏月吟風共優游

[주-D001] 시를 낚는 낚싯바늘[釣詩鉤] : 술의 별칭이다. 술이 시를 짓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므로 이렇게 칭한다. 소식(蘇軾)의 시 ‘동정춘색(洞庭春色)’에, “응당 시를 낚는 낚시를 부르고, 또한 시름을 쓰는 비도 부르리라.[應呼釣詩鉤亦號掃愁帚]” 하였다.[주-D002] 환백(歡伯) : 술의 이칭(異稱)이다.[주-D003] 형양(荊楊)의 금 : 형주(荊州)와 양주(楊州)에서 나는 금으로, 품질이 좋은 금을 말한다.[주-D004] 소리 있는 그림 : 시(詩)를 가리킨다.[주-D005] 첨두(尖頭) : 붓을 말한다. 북위(北魏)의 고필(古弼)이 총명하여서 태종(太宗)에게 사랑을 받아 필(筆)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는데, 곧으면서 유용하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하사한 것이다. 고필은 머리 끝이 뾰족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항상 필두(筆頭)라고 불렀다. 어느 날 조서를 내려서 살진 말을 기인(騎人)에게 주라고 하였는데, 고필이 약한 말을 주자 세조가 대노하여 ‘첨두노(尖頭奴)가 감히 나의 뜻을 멋대로 재량하다니, 짐이 돌아가면 먼저 이놈을 참수하겠다.’ 하였다. 그 뒤에는 붓을 첨두노라고 하게 되었다. 《魏書卷28 古弼列傳》[주-D006] 금강(錦江)이라 …… 성인(聖人) :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금강은 민강(岷江)의 지류(支流)로 사천성(四川省)에 있는데, 두보가 이곳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주-D007] 용주(龍舟) …… 신선(神仙) : 주성(酒聖)으로 일컬어지는 이태백(李太白)을 가리킨다. 용주는 용 모양을 장식한 배로, 황제가 타는 배를 말한다.[주-D008] 바다에서 자라 낚길 : 옛날에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다섯 선산(仙山)을 떠받치고 있는 여섯 마리의 큰 자라를 낚시질하여 한꺼번에 다 낚아서 이를 짊어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자, 두 산이 북극으로 흘러가서 큰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1019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연릉(延陵)의 칼

당계에서 막야의 정기가 쏘아지니 / 棠溪飛出莫邪精
한낮에 칼집 속서 교룡이 승천했네 / 匣裏白日蛟龍騰
연릉계자 그 칼 한 번 쳐다보자 중해져서 / 延陵季子一顧重
값어치가 불어난 게 세 배도 넘었다네 / 光價豈啻三倍增
행장 꾸려 상국으로 사신 가는 길 오르니 / 輕裝遙指上國路
허리춤의 검기(劍氣)에서 위풍이 생겨났네 / 腰間紫焰生風稜
서 임금이 한 번 보곤 얼굴색이 변했으니 / 徐君一見色已動
그 칼 갖고 싶어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네 / 他人有心吾可徵
길 떠날 때 칼 풀어서 주지는 못했지만 / 臨行縱未解相贈
주려는 뜻 마음속에 품은 지 오래였네 / 金諾已久藏諸膺
돌아올 때 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 心期未晚指歸期
인사 어찌 삽시간에 변할 줄을 알았으랴 / 豈謂人事飜風燈
돌아오자 오직 한 개 무덤만이 보이어서 / 歸來唯見土一杯
손에 잡은 외로운 칼 줄 사람이 없었다네 / 孤劍在手無人承
유명간에 격했으나 마음은 아니 격해 / 幽明雖隔心不隔
밝고 밝은 그 마음은 떠오르는 해 같았네 / 此心昭昭如日昇
푸른 용이 무덤 앞의 나무에 걸리자 / 蒼虯忽躍墓前樹
초목에는 생기 돋고 산은 더욱 높아졌네 / 草木生氣山崚嶒
큰 믿음을 약속하지 않는 데에 있게 하니 / 能令大信在不約
높은 의리 만장 뻗쳐 구름 뚫고 치솟았네 / 高義萬丈凌雲層
황천에선 죽지 않은 혼령이 눈물 짓고 / 重泉應泣未死魂
나쁜 습속 물든 사람 소문 듣고 감흥했네 / 薄俗聞風爭感興
지난날에 공은 제후들의 칼 풀게 한 뒤 / 昔公曾解諸侯劍
임금 자리 내던지고 연릉으로 갔거니와 / 脫屣千乘歸延陵
무덤 앞에 칼 한 자루 건 것이야 여사로 / 一劍懸墓是餘事
이런 작은 절개 따윈 칭할 것도 못 된다네 / 小節未足爲君稱
말세가 된 지금에는 신의가 서지 않아 / 吁嗟季葉信不立
거듭거듭 약속해도 끝내 믿기 어려운데 / 複言重諾終難憑
공이 건 그 칼만은 저 우주에 걸려 있어 / 惟公此劍掛宇宙
세상 사람 격려하여 못된 자들 징계했네 / 勵世可使頑夫懲

[주-D001] 연릉(延陵)의 칼 : 연릉은 춘추 시대 때 오(吳) 나라의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로 어질다는 명성이 있어서 수몽이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양한 채 연릉으로 가서 머무르자 연릉에다가 봉하였으므로 흔히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 불리운다. 일찍이 진(晉) 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서(徐) 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 나라의 임금이 계자가 차고 있는 칼을 보고는 갖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진 나라의 사신이 함께 있었으므로 계자가 즉시 칼을 풀어 주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주기로 마음먹었다. 계자가 진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 나라를 다시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서 나라의 임금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자는 서 나라 임금의 무덤 앞에 있는 나무에다가 칼을 걸어 놓고 떠나갔다. 《新序節士》[주-D002] 당계(棠溪)에서 …… 쏘아지니 : 당계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옛날부터 명검(名劍)이 산출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막야(莫邪)는 보검 이름으로, 옛날에 오(吳) 나라의 무고(武庫) 안에 두 마리의 토끼가 있어서 무기의 쇠를 모두 먹어치웠는데, 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쇠로 된 쓸개가 나왔다. 이에 오왕이 검공(劍工)에게 명해서 이 쓸개로 검 두 개를 만들게 하였는데, 하나는 간장(干將)이고, 하나는 막야이다. 《拾遺記卷10》

1018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증점(曾點)이 비파를 놓은 그림

내 이미 통달한 자 소견 큼을 보았거니 / 吾觀達人見已大
품은 생각 다른 이와 같지가 않았다네 / 所懷不與人同趨
동정에서 그 기상을 알 수가 있거니와 / 動靜端可見氣像
이 마음이 향한 바는 본디 거짓 아니었네 / 此心所向元非誣
쟁그랑 비파 놓은 그는 어떤 사람인가 / 鏗爾捨瑟彼何人
증점이 대답한 건 다른 이와 달랐다네 / 點也一對凡人殊
그 당시에 성문 있어 의귀할 곳 얻었는데 / 聖門當日得依歸
삼천 명의 제자 중에 기도(氣度) 가장 뛰어났네 / 氣度迥出三千徒
얼굴 맞대 끌어주며 날마다 훈도함에 / 面承提挈日薰炙
드넓은 마음속은 구애됨이 없었다네 / 浩浩方寸無蔽拘
현가하던 어느 저녁 스승을 모셨을 때 / 絃歌一夕侍函丈
천기가 우는 곳에 봄기운이 퍼졌다네 / 天機鳴處春和敷
가없는 지극한 낙 비파 줄에 부쳤으니 / 無邊至樂付絃上
화락한 한 이치를 가슴속에 함께했네 / 融融一理胸中俱
태극에서 마음 노니 다시 무얼 하겠는가 / 心遊太極復何爲
가슴속이 쇄락하여 맑고도 깨끗했네 / 襟期灑落氷生壺
그 자리서 각자의 뜻 말해 보란 말씀 듣고 / 當筵忽承各言志
몇몇 사람 대답한 건 대부분 엉성했네 / 數子所對多疏迂
무릇 품은 생각이야 각자 다른 법이거니 / 夫人所抱固異撰
구구하게 저들과 어찌 뜻을 같이하랴 / 肯與彼珍區區
유연히 비파 놓고 품은 생각 말하는데 / 悠然捨瑟展所蘊
도를 밝게 보았으니 어찌 밖서 구하겠나 / 見道已明寧外須
화락한 그 모습은 중화에 합했으니 / 雍容儀度合中和
뜻은 오직 무우에서 바람 쐬는 데 있었네 / 志願唯在風舞雩
소위의 즐거움이 어찌 끝이 있으리요 / 素位之樂豈有窮
인욕이 다 맑아져서 추호도 안 남았었네 / 人欲淨盡絲毫無
천지와 함께 흘러 원화에 순응해서 / 同流天地順元和
사해의 만물 모두 피차 구별 없었다네 / 四海萬物無彼吾
그 기상은 요순과 더불어서 짝이 되어 / 氣像堯舜與同侔
봉황새가 구름 속을 나는 것 같았다네 / 恰似鳳凰翔雲衢
공자께서 감탄하며 그를 허여하였으니 / 聖門興喟亟嘆與
뜻 말함에 하나하나 부합되어 기뻤다네 / 言志一一欣相符
나머지 세 사람은 각자 겉을 구했으니 / 視彼三子各慕外
잗달은 명리 구해 무엇을 하잔 건가 / 規規利名胡爲乎
논어 보며 남아 있는 풍모를 생각는데 / 遺風曾想魯論中
누가 용면 시켜 다시 그림으로 그리었나 / 誰敎龍眠重作圖
천 년 뒤에 쟁그랑 소리 듣는 것만 같아 / 千載如聆鏗爾聲
경건해져 모르는 새 몸 움츠러드는구나 / 敬之不覺僂余軀
내 홀로 한스런 건 뜻만 크게 가진 거라 / 獨恨嘐嘐行不掩
그림 보며 오늘 길게 탄식을 내뱉누나 / 撫圖此日成長吁

[주-D001] 증점(曾點)이 비파를 놓은 :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각자의 뜻을 묻자, 증점이 타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늦은 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면 대여섯 명의 어른과 예닐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서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공자가 감탄하였다. 《論語先進》[주-D002] 현가(絃歌) :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것으로, 전하여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뜻한다.[주-D003] 태극(太極) : 천지와 음양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혼돈한 상태를 말한다.[주-D004] 중화(中和) : 천지 만물이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서로 화합하는 경지를 말한다.[주-D005] 소위(素位) : 현재 처해 있는 자리를 말한다.[주-D006] 나머지 …… 구했으니 : 이때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증점보다 먼저 자신들의 뜻을 말했는데, 모두 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주-D007] 용면(龍眠) : 송 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

1017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초량주(招涼珠)

하늘이 부린 조화 재주 몹시 많거니와 / 洪鈞造化太伎倆
온갖 보배 빚어내어 없는 사물 없구나 / 槖鑰萬寶無物無
분분하게 정기(精氣) 모아 각자 공효 다른데 / 紛紛儲精各效異
연 나라 소왕(昭王) 가진 초량주는 기이하네 / 異哉燕室招涼珠
남쪽 지방 유월이라 물시계 소리 긴데 / 南天六月宮漏長
주조는 천천히 하늘 위를 날아가네 / 朱鳥按節飛天衢
염관의 불 우산이 남극을 에워싸자 / 炎官火傘擁南極
만국 모두 불 화로 곁에 있어 뜨거웁네 / 烈烈萬國當紅爐
쇠 궁전과 옥 집이 녹아 흘러내리니 / 金宮玉戶爛欲流
황도에 열 개 해가 날아가는 것만 같네 / 黃道還疑飛十烏
칠륜선(七輪扇)을 휘두르나 바람 없어 무더운데 / 煩揮七輪暖無風
더위 싫은 임금 마음 어찌하면 달래려나 / 病暑何以君心娛
신령스런 구슬 홀연 항산에서 나와서는 / 神珠忽自出恒山
발이 없는데도 능히 천릿길을 달려왔네 / 無脛千里能來輸
태음을 녹여낸 정령 기운 모였으매 / 陶甄大陰鍾精英
밝은 달이 가을 못에 잠긴 듯이 빛나네 / 炯如皎月涵秋湖
맑은 광채 투명하여 절로 바람 생겨나고 / 淸光瑩徹自生風
손에 넣자 가을 기운 차가웁게 일어나네 / 入手秋氣寒疏疏
한 덩이 옥 처음에 대궐 문에 들어오자 / 一枚初入九重門
맑은 바람 이미 휘장 수술에 일어나네 / 淸飆已興吹流蘇
집 모퉁이 서늘해서 대궐 안이 엄숙하고 / 涼生殿角禁闈肅
겨드랑이 바람 일어 소름이 돋아나니 / 兩腋習習霜凝膚
축융이 언제 적에 신통력을 부렸던가 / 祝融何曾逞其神
불의 용은 위엄 잃고 쳐다만 보고 있네 / 火龍戢威徒覬覦
율관(律管) 속의 양률은 음률로 변하고 / 管中陽律變陰慘
온 궁 안의 기후가 삽시간에 바뀌누나 / 一宮氣候移須臾
더위 씻기 위해 어찌 찬 고구마 씹으리요 / 滌暑何須啖冷蔗
몸이 절로 봉호에 올라간 것만 같네 / 身世自如登蓬壺
대궐 안에 오래도록 별천지가 펼쳐지니 / 天門長占別乾坤
둔일의 학염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 盾日虐焰其如吾
그렇지만 천도는 떳떳함이 귀한 거로 / 然聞天道貴有常
음과 양이 순환하며 기틀 운용한다 하네 / 二氣巡環運其樞
하늘 대신 다스림엔 의당 절서 따라야지 / 代天之工宜順序
어찌 위로 천시를 어겨서야 되겠는가 / 豈宜上干天時乎
하물며 음 기운이 양 건드리는 데이겠나 / 況乃至陰剝陽德
이런 것은 임금 곁에 두어서는 아니 되네 / 尤物不宜邇君軀
옛날에는 초현하는 누대를 쌓았는데 / 招賢築臺昔可觀
오늘에는 완물하니 어쩜 그리 어리석나 / 玩物此日君何愚
그대 믿고 태양에 대든다고 자랑 말라 / 憑君莫誇抗太陽
차가운 북풍 바람 끝내 우려스럽도다 / 北風其涼終可虞
지극하네 순(舜) 임금은 남풍곡(南風曲)을 연주하여 / 至矣重華彈南風
오현금 하나로다 태평성대 이뤘다네 / 一琴陶作仁風區

[주-D001] 초량주(招涼珠) : 서늘함을 부르는 구슬이란 뜻으로,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항산(恒山)에서 나온 구슬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더울 때 이 구슬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몸이 저절로 시원해졌다고 한다. 《拾遺記燕昭王》[주-D002] 주조(朱鳥) : 남방(南方)을 맡은 신인 적제(赤帝)를 말한다.[주-D003] 염관(炎官) : 전설 속에 나오는 화신(火神)의 이름이다.[주-D004] 황도(黃道) : 태양이 운행하는 궤도를 말한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해에는 중도(中道)가 있고 달에는 구행(九行)이 있는데, 중도란 것은 황도(黃道)이며, 광도(光道)라고도 한다.” 하였다.[주-D005] 칠륜선(七輪扇) : 일곱 개의 바퀴를 움직여서 부치는 부채로, 장안(長安)에 사는 어떤 공인(工人)이 이 부채를 만들었는데, 이 부채를 부치면 온 집안이 다 시원하였다고 한다. 《西京雜記卷1》[주-D006] 태음(太陰) : 지극한 음(陰)의 기운으로, 차가운 북방의 기운을 말한다.[주-D007] 축융(祝融) : 고대의 화신(火神) 이름이며, 남방(南方)을 맡은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주-D008] 율관(律管) …… 변하고 : 율관(律管)은 고대에 절후를 관측하던 기구로, 대나무나 금속으로 만들며, 모두 12개로 이루어졌다. 밀실에 이 율관을 놓아 두고 갈대를 태운 재를 채운 다음 흰 천을 덮어 두면 절후가 바뀔 적마다 한 개의 율관씩 재가 올라와서 천에 달라붙는다고 한다.[주-D009] 봉호(蓬壺) : 전설 속의 바다 속에 있다는 신선들이 사는 산인 봉래산(蓬萊山)으로, 그 모양이 마치 호리병처럼 생겼다고 한다.[주-D010] 둔일(盾日) : 조둔(趙盾)의 해란 뜻으로, 여름날의 뜨거운 해를 말한다. 춘추 시대 때 어떤 사람이 조둔과 조최(趙衰)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은가를 묻자, 가계(賈季)가 “조최는 겨울날의 해이고, 조둔은 여름날의 해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文公 7年》[주-D011] 옛날에는 …… 쌓았는데 :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에게 패한 뒤 소왕(昭王)이 즉위해서 자신을 낮추고 후한 폐백을 갖추어 어진 자를 초빙하고자 하였다. 이에 먼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곽외(郭隗)를 위해 누대를 개축하고 스승으로 섬겼다. 그러자 악의(樂毅)가 위(魏) 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齊) 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趙) 나라에서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 왔다. 《史記卷34 燕召公世家》[주-D012] 남풍곡(南風曲) : 순 임금이 지었다고 전하는 노래 이름이다. 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뜯으면서 남풍의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남풍이 솔솔 붊이여, 우리 백성들의 울분을 풀 수 있겠도다. 남풍이 때맞추어 붊이여, 우리 백성들의 재산을 늘릴 수 있겠도다.[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 하였다. 《孔子家語辨樂解》

1016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소리가 있는 그림

내 용면이 사물 잘 그리는 걸 한하나니 / 我恨龍眠工畫物
형체야 그리지만 소리 그릴 수는 없네 / 模形未能模其聲
붓끝으로 고생하며 울긋불긋 색칠하나 / 毛錐謾勞塡靑紅
엉성하긴 장난 같아 평할 것도 못 되나니 / 草草兒戱無足評
그 어찌 시인이 아름다운 붓끝으로 / 豈如詩人彩筆下
천기 그려 소리 크게 울리는 것 같겠나 / 幻出天機聲大鳴
가슴속에 저절로 한 천지가 있나니 / 胸中自有一天地
정신은 조물주와 더불어서 통한다네 / 神與化工通其精
풍운과 같은 생각 드넓기가 한이 없고 / 風雲意思浩無邊
산해와 같은 흉회 우뚝하게 드높도다 / 山海襟度高崢嶸
가슴속에 감추어진 오성이 있어서 / 藏中爲體有五性
밖으로 드러남에 칠정이 갖춰지네 / 發外爲費具七情
가슴속 가득 찬 걸 그리려고 할 때에 / 想當磅礴欲畫時
타는 듯한 그 마음을 어떻게 운용하나 / 惔惔意匠何經營
정신을 응집하매 묘함 헤아릴 수 없어 / 凝神會精妙莫測
팔극의 경위로다 생각 마구 뻗쳐가네 / 經緯八極思縱橫
긴 붓 한번 휘두르자 온갖 만상 생겨나고 / 長杠一揮萬象生
모든 사물 포용하여 뜻대로 다 그려내네 / 大包物物隨意形
흐드러진 봄꽃은 금수처럼 펼쳐지고 / 春花爛曼鋪錦繡
격렬하게 쏟는 폭포 옥구슬이 흐르누나 / 飛泉激涌流琮琤
거센 바람 소낙비가 삽시간에 일어나고 / 飄風驟雨起頃刻
시내 구름 달 이슬이 잠깐 사이 이뤄지네 / 溪雲月露須臾成
묘함은 솔숲 들어 소슬한 소리 내고 / 妙入松林響蕭蕭
생각은 봄새 따라 정겨웁게 우는구나 / 思隨春鳥鳴嚶嚶
천지를 다 포용하여 긴 소리로 읊조리고 / 天地牢籠入長吟
산천을 꾸미어서 광채를 내게 하네 / 山川賁飾生光榮
터럭 끝서 가없이 큰 것까지 모두 그려 / 小入秋毫大無外
조화 솜씨 붓끝 들어 묵병이 내달리네 / 造化入筆驅墨兵
만 편의 시 읊조림에 오음이 갖춰지고 / 萬篇吟罷五音俱
육률에 소리 맞아 조화롭고 평안하네 / 聲協六律和而平
큰 소리는 장중하여 화려한 종 울리고 / 洪韻端如發華鍾
처량한 음 쓸쓸하여 쇠 울리는 소리 내네 / 凄音廖亮金錚錚
갖가지 사물 모습 모두 소리 품었으매 / 形形物物摠含聲
용이 울고 봉새 울어 귀신조차 놀라누나 / 龍吼鳳叫神鬼驚
그림 속의 오묘함이 어느 게 이 같으랴 / 畫中之妙孰如此
만고의 남은 소리 팔굉에 머무르네 / 萬古餘聲留八紘
그렇지만 시를 씀엔 바른 소리 귀하나니 / 雖然聲畫貴正音
번잡스런 말로 어찌 시단(詩壇) 시끄럽게 하리 / 繁吹豈但喧詩城
주시 중의 풍과 아가 몹시도 아려하니 / 周詩風雅最雅麗
사물 실정 묘사하여 문명을 밝혔도다 / 模寫物情昭文明
관현에다 실어 교화 먼 곳까지 미쳤으니 / 被之管絃聲敎遠
화창한 그 성정은 이름하기 어렵도다 / 和暢性情吁難名
후대 와서 수식하여 읊어댐을 탄식타가 / 雕蟲後代嘆蟬噪
시사에서 기쁘게도 맑은 음조 얻었구나 / 詩史喜得音調淸
천 년 뒤에 되돌이켜 묘한 솜씨 있었으니 / 歸來千載有妙手
송인들의 시 짓는 법 다툴 만한 사람 없네 / 宋人筆法無人爭
방화수류 시구는 하늘 이치 그려내고 / 傍花隨柳寫天理
제월광풍 그 말에선 기이함이 생겨나 / 霽月光風奇態生
그 소리로 하여금 크고 멀게 하였는데 / 能使其聲大而遠
후대에 끊긴 운격(韻格) 이어받을 이가 적네 / 後世絶韻人難賡
내 시를 좋아함이 일찍부터 병이 되어 / 吾人愛畫早成癖
정신이 점차 서로 동화됨을 깨달았네 / 漸覺精神相與幷
끝내는 이를 대해 성정을 기르고자 / 終期對此養性情
높이 고인 좇아서 함께하길 기약하네 / 高追古人同其程

[주-D001] 소리가 있는 그림 : 시(詩)를 가리킨다.[주-D002] 용면(龍眠) : 송(宋) 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주-D003] 오성(五性) :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성정(性情)으로, 희(喜), 노(怒), 욕(欲), 구(懼), 우(憂)를 말한다.[주-D004] 칠정(七情) :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의 감정으로,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欲)을 말한다.[주-D005] 팔극(八極)의 경위(經緯) : 팔극은 팔방(八方)의 아주 먼 곳으로 천하의 끝을 가리키고, 경위는 우주의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를 가리킨다.[주-D006] 溪 : 소주에, “어떤 데에는 ‘연(煙)’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07] 오음(五音) : 음률의 기본이 되는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를 말한다.[주-D008] 육률(六律) : 고대 악률(樂律)의 표준이 되는 십이율(十二律) 가운데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으로, 황종(黃鍾), 대주(大蔟),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無射)을 말한다.[주-D009] 如 : 소주에, “어떤 데에는 ‘가(加)’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10] 팔굉(八紘) : 팔방(八方)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구주(九州)의 바깥에는 팔인(八殥)이 있고, 팔인의 바깥에는 팔굉이 있다고 한다. 《淮南子》[주-D011] 주시(周詩) 중의 풍(風)과 아(雅) : 주시는 《시경(詩經)》이며, 풍은 국풍(國風)이고, 아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를 말한다.[주-D012] 人 : 소주에, “어떤 데에는 ‘유(儒)’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13] 방화수류(傍花隨柳) : 봄날에 우거진 꽃과 버들을 따라 노니는 정경을 표현한 말로, 정이(程頤)의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에, “구름 엷고 바람 약한 한낮이 됐을 쯤에, 꽃과 버들 따라가다 앞 시내를 건너누나.[雲淡風輕近午天傍花隨柳過前川]” 하였다.[주-D014] 제월광풍(霽月光風) : 비 갠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사람의 도량이 넓고 시원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송사(宋史)》 도학열전(道學列傳) 주돈이(周敦頤)에, “인품이 아주 높고 흉회가 쇄락하여 비 갠 뒤의 달과 바람과 같았다.” 하였다.

1015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화우(火牛)

병가에서 승리함엔 기책(奇策) 쓰는 법이거니 / 兵家取勝在設奇
양장은 정상적인 계책만 쓸 필요 없네 / 良將不必循常謀
임기응변 그 계책은 귀신과도 같았으니 / 臨機變化若鬼神
강적인들 웅대한 계책 어찌 엿보겠나 / 勁敵那得窺雄籌
안평군(安平君)의 기략은 만고에 떨치거니 / 安平奇略振萬古
연 이기고 제 지킨 건 일개 화우였다네 / 克燕全齊一火牛
선왕이 제 나라와 원수 관계 한 번 맺자 / 先王一結敵國讐
황금대(黃金臺)가 이미 연산 기슭에 우뚝 섰네 / 金臺已屹燕山陬
쓸개 씹다 홀연 회계 군사 떨쳐 일어나니 / 嘗膽忽奮會稽師
칠십 개의 제 나라 성 삽시간에 함락됐네 / 七十齊城朝暮收
임금 죽고 나라 망해 하늘 해도 어두운데 / 君亡國破白日昏
의 지켜서 누가 다시 임금 원수 갚을 건가 / 杖義誰復君父讐
종인들의 충성 용맹 남들보다 특별나니 / 宗人忠勇百夫特
철롱의 지혜 이미 남들보다 뛰어났네 / 鐵籠智已超凡儔
외론 성서 계속하여 장부 의리 떨치어서 / 孤城繼奮丈夫義
백장 되는 지주처럼 거센 물결 막아섰네 / 砥柱百丈橫奔流
삼 년 동안 한 성으로 연 나라에 대항하다 / 三年一堞拒全燕
승세 타고 홀연히 용호의 꾀 펼치었네 / 乘勝忽展龍虎猷
천 마리 소에다가 용 무늬를 그려넣자 / 畫盡千牛作龍文
찬란한 신령 광채 짝을 찾기 어려웠네 / 神光眩曜難比侔
그런 뒤에 꼬리에다 기름 먹인 섶 매달고 / 還將油荻懸後尾
들쭉날쭉 칼날을 천 머리에 매달았네 / 嵯峨白刃森千頭
성문을 밤에 열고 불붙여서 내보내니 / 城門夜開烈火發
소와 군사 노하여서 적진 마구 유린했네 / 士奮牛怒齊騰蹂
하늘과 땅 무너뜨릴 기세 이미 장하여 / 天傾地崩勢已壯
적군들이 바라보곤 놀라 창을 내던졌네 / 燕軍望風驚投矛
백만 군사 하룻밤 새 휩쓸어 버리고는 / 橫衝百萬一夜盡
유성처럼 번개처럼 도망치는 적 쫓았네 / 星流電掣追奔飅
곤양의 코끼리도 이것만은 못하거니 / 昆陽戰象不足方
기북의 만 마리 말 구할 필요 뭐 있겠나 / 冀北萬馬何須求
뉘 말했나 강약은 서로 상대 안 된다고 / 誰云强弱力不敵
한 마리의 화우가 천 명 군사 짓이겼네 / 一牛馘盡千豼貅
임금 수치 나라 치욕 시원하게 다 씻고 / 君羞國恥快洗盡
왕실 다시 일으켜서 온 나라를 보전했네 / 再基王室全金甌
여기에서 전투에선 장수 중함 알겠거니 / 是知行兵貴得將
군사의 많고 적음 걱정할 게 아니라네 / 兵之衆寡非所憂
그 당시에 제 나라는 성 하나만 남아 있고 / 當年齊國只一城
사직 이미 기울어져 곧 망할 듯하였네 / 社稷已傾如綴旒
장군이 신령스런 지략 펴지 않았다면 / 自非將軍騁神智
거(莒)로 쫓긴 임금 끝내 어디로 갔겠는가 / 一莒竄君終寄疇
누가 싸움 잘하는 자 극형받아야 한다 했나 / 善戰誰云服上刑
나라 지킨 장렬한 공 높아 산과 나란하네 / 匡國壯勳齊山丘
역사책을 읽노라니 그 웅렬함 상상되어 / 一編靑史想雄烈
머리카락 곤두서고 우수수 바람 부네 / 毛髮竪竹風颼颼

[주-D001] 화우(火牛) : 등에다가 용 무늬를 그려 넣고, 양쪽 뿔에다가 병기를 매달고, 꼬리에 기름 먹인 섶을 매단 다음, 여기에 불을 붙여서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는 소를 말한다. 전국 시대 때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를 쳐들어와 제 나라의 모든 성이 함락되고 즉묵성(卽墨城)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전단(田單)이 즉묵성에 있으면서 이 화우를 이용해 한밤중에 연 나라 군사를 쳐 승리를 거둔 뒤, 그 승세를 타고 삽시간에 제 나라의 72성을 수복하여 거의 망해 가던 제 나라를 재건하였다. 그리고는 당시 거(莒) 땅으로 피해 있던 양왕(襄王)을 맞이하여 임치(臨淄)로 들어갔다. 《史記卷82 田單列傳》[주-D002] 안평군(安平君) : 전단이 연 나라 군사를 물리친 뒤에 받은 봉호(封號)이다.[주-D003] 황금대(黃金臺) : 전국 시대 때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제(齊) 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사방의 어진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쌓았다는 대(臺)로, 그 위에 황금을 놓아두었다고 한다.[주-D004] 철롱(鐵籠) : 수레 축이 서로 닿아 부러지지 않도록 끝 부분을 잘라내고 쇠로 감싼 것이다. 전단이 안평(安平)에 있다가 연 나라가 쳐들어와 도망칠 적에 다른 사람들은 다 수레 축이 부러져서 포로가 되었으나, 전단의 종인(宗人)들만은 철롱을 씌운 덕에 도망칠 수 있었다.[주-D005] 지주(砥柱) : 삼문협(三門峽)을 통해 흐르는 황하의 한 복판에 있는 산 이름으로, 황하의 거센 물결에도 쓸려나가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흔히 어려움에 임해 굳건하게 버티는 것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주-D006] 嵯峨 : 소주에, “어떤 데에는 ‘차차(差差)’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07] 곤양(昆陽)의 코끼리 : 후한(後漢) 경시(更始) 원년에 왕망(王莽)의 군사가 곤양에서 왕풍(王風), 유수(劉秀) 등 후한의 군사와 싸울 적에 코끼리를 이용해서 싸웠다. 《後漢書卷1 光武帝紀》[주-D008] 기북(冀北) : 좋은 말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이곳에서는 천리마가 난다고 한다.[주-D009] 基 : 소주에, “어떤 데에는 ‘조(造)’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10] 누가 …… 했나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극형을 받아야 하고, 외교를 잘하는 자는 그 다음 형을 받아야 한다.” 하였다.

1014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삼협(三峽)의 원숭이 울음소리

추풍 속에 가는 배 초수 물은 차가운데 / 秋風桂棹楚水寒
옅은 구름 가랑비에 형문은 시름겹네 / 斷雲殘雨愁荊門
관산에서 옛 생각에 절로 눈물 흐르는데 / 關山自墮弔古淚
산골짝 속 어디에서 원숭이는 울음 우나 / 峽裏何處啼淸猿
처음에는 바람 따라 구름 끝서 들리더니 / 初隨風縷漏雲端
가는 울음 저 멀리 삼파 물가 떨어지네 / 殘叫遠落三巴濆
천 시름 만 가지 한 담은 두세 소리에 / 千愁萬恨三兩聲
강과 하늘 적막하고 서산의 해 어둑하네 / 江天寂歷山日昏
애절하고 원통하고 하소연하듯 울다 / 如哀如怨復如訴
소리 홀연 끊어지니 도리어 원한 많네 / 餘韻忽斷還煩冤
서리 깊어 계수가지 애절하게 소리 내고 / 霜深桂枝轉苦吟
달 어두워 숲속은 시름 다시 삼키누나 / 月黑林巒愁更呑
어렴풋이 나그네의 꿈에 와서 감기다가 / 依依來繞客夢初
가느라니 구름과 물 덮인 마을 서성이네 / 裊裊直逗雲水村
소리마다 처량한데 초 땅의 하늘 넓고 / 聲聲凄斷楚天闊
한밤중에 우는 소리 푸른 산 뿌리 뚫네 / 半夜響徹蒼山根
소리 듣자 모르는 새 눈물 흘러 옷깃 젖고 / 聞來不覺淚沾衣
객 시름이 바람 속의 깃발처럼 일어나네 / 客思正如風中幡
상령은 뻑뻑하여 비파 타지 못하니 / 湘靈瑤瑟澁不彈
대숲 사이 원한 눈물 흔적이 얼마런가 / 竹間冤淚知幾痕
고당에선 선녀 꿈을 놀라서 못 꾸고 / 高唐神夢驚未圓
아침 구름 저녁 비에 찬 기운 머무누나 / 朝雲暮雨寒成屯
천애에서 쫓겨난 객 혼 일찍이 끊겼는데 / 天涯曾斷逐客魂
봄풀은 만리토록 왕손을 슬퍼하네 / 春草萬里哀王孫
한 소리에 능히 만인 눈물을 쏟게 하니 / 一聲能灑萬人淚
그 가운데 슬픔 원한 누가 다 표현하리 / 箇中哀恨將誰言
사물 절로 정 없건만 사람 절로 상심하여 / 物自無情人自傷
대나무에 스민 원망 천 년토록 남아 있네 / 怨入竹枝千年存
먼 나그네 오늘 저녁 그 울음 소리 듣자 / 遠客今宵正側耳
두 눈에서 슬픈 눈물 흐름 금치 못하겠네 / 兩眼不禁哀淚飜
흘린 눈물 가지고서 만고의 일 조상하니 / 還將此淚弔萬古
원한 되레 절실해져 생각 잊기 어렵구나 / 苦恨轉切思難諼
원숭이여 원숭이여 울음소리 내지 마라 / 猿乎猿乎且莫啼
나그네의 강남 꿈이 끊어질까 두렵도다 / 遊人恐斷江南魂
새벽까지 시 읊으며 슬픈 소리 화답하다 / 寒吟達曙和哀叫
골짝 저쪽 바라보니 아침 해 떠오르네 / 回首峽角生朝暾

[주-D001] 형문(荊門) :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장강(長江) 가에 있는데, 형세가 몹시 험고하여 옛날부터 파촉(巴蜀)과 형오(荊吳) 사이의 요새였다.[주-D002] 삼파(三巴) :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일대 지역인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의 지역을 말한다.[주-D003] 상령(湘靈) : 상수(湘水)의 신으로, 상수에 빠져 죽은 순(舜) 임금의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한다. 요(堯) 임금의 딸인 아황과 여영이 순 임금에게 시집 가 비가 되었는데, 순 임금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죽어 창오(蒼梧)의 들에 묻혔다. 그러자 두 비가 순 임금이 그리워 통곡하면서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서 반점이 생겼다. 두 비가 그 뒤에 상강에서 죽으니, 사람들이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칭하였다. 《列女傳》[주-D004] 고당(高唐)에선 선녀 꿈 : 고당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누대(樓臺) 이름으로, 운몽택(雲夢澤) 속에 있는데, 초 나라 회왕(懷王)이 이곳에서 놀다가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선녀(仙女)를 만나 놀았다고 한다.[주-D005] 쫓겨난 객 : 초(楚) 나라 때 비방을 당해 유배되어 떠돌다가 상수(湘水) 가에서 죽은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고향을 떠난 나그네를 가리킨다.[주-D006] 봄풀은 …… 슬퍼하네 : 고향땅을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의 노닒이여 돌아가지 않고, 봄풀이 자람이여 우거졌도다.[王孫遊兮不歸春草生兮萋萋]”에서 온 말이다.

1013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세수항표(世修降表)

군자 절개 두 마음 안 품는 게 귀하거니 / 君子志節貴不二
어려움에 임해 생각 그르쳐선 아니 되네 / 臨亂不可謬所謀
나라가 망할 경우 임금 따라 죽어야지 / 國亡同君死社稷
어찌 원수 맞이하여 구차하게 살겠는가 / 偷生豈宜迎敵讐
바꿔 섬겨 신하 절개 이미 짐승 같거니와 / 歷事臣節已狗彘
두 조정의 항복 표문 그대 어찌 지었는가 / 兩朝降表君胡修
그 당시의 관서 땅 이씨의 아들이여 / 關西當日李氏子
비루해라 몸과 마음 바르지 못했구나 / 鄙哉身心曲如鉤
태어난 때 어지러운 오대 시대 말기라서 / 生逢風雨晦五季
간웅들이 할거하여 천하 나눠 차지했네 / 奸雄割據分金甌
행장은 자신 굽혀 따름 면치 못하였고 / 行藏未免道徇人
명예 구해 제후 협박 사양하지 아니했네 / 干名不辭干諸侯
왕가에서 몇 년 동안 녹만 먹는 신하였나 / 王家幾年作具臣
녹봉 탐해 시류 따라 부침만 하였구나 / 貪祿但知時沈浮
위태할 때 조처한 계책이 뭐였던가 / 臨危所畫是何策
한 표문에 나라 임금 망국의 포로 됐네 / 一表君爲亡國俘
꼬리를 쳐 다시 맹씨 조정에 서서는 / 搖尾更立孟氏庭
뻔뻔스레 천지간에 구차하게 살았다네 / 靦然天地甘生偷
앞 조정서 절개 잃어 그 속마음 알 만하니 / 前朝失節心可知
뒷 조정서 어찌 다시 임금 걱정 근심하랴 / 後代寧復憂君憂
비굴하게 예전처럼 비루한 짓 하면서 / 苟容依舊鄙夫態
일생 동안 오로지 명리만을 추구했네 / 一生惟將名利求
진교에서 하룻밤 새 상서로운 해가 뜨자 / 陳橋一夕瑞日昇
천리가 하늘 뜻에 응해 창을 휘둘렀네 / 天吏應天揮神矛
간웅의 참람됨이 어찌 능히 오래 가랴 / 奸雄僭業豈能久
한 구역의 종묘사직 몹시 위태로웠다네 / 一區宗社如綴旒
신하 되어 이미 아무 역할 하지 못했으니 / 爲臣旣未爲有無
목숨 바쳐 죽더라도 남은 허물 있을 건데 / 效死猶當有餘尤
어찌하여 나라 팔아먹은 솜씨 다시 놀려 / 如何復弄賣國手
다시 서토 가져다가 중주에다 바치었나 / 再將西土輸中州
항복 깃발 한밤중에 금성에서 나오자 / 降旙夜出錦城頭
아미산은 빛을 잃고 부끄러운 빛 띠었네 / 峨嵋失色懷慚愁
목 빼들고 항복하여 목숨 살길 구하면서 / 投降歸命獲全生
득계라고 여겼으니 어찌 자신 허물하랴 / 自謂得計寧自訧
전후로 항복한 글 한 붓끝서 나왔으니 / 前亡後降在一筆
절의라곤 하나 없는 진짜 간신이로구나 / 節義掃地眞奸儔
선비가 태어나서 글 짓는 걸 배웠으면 / 士生天地學爲文
써먹는 데도 도가 있다는 걸 그댄 아나 / 用之有道君知不
공명의 두 표문은 인륜 기강 드높였고 / 孔明雙表揭人紀
숙피의 한 논문은 정말 좋은 꾀였었네 / 叔皮一論眞嘉猷
서촉에서 자란 너는 일찍 그 말 듣고서도 / 爾生西土夙所聞
표문 짓던 그날에는 어찌 수치 못 느꼈나 / 作表此日寧無羞
한밤중에 대문에다 글 쓴 사람 누구기에 / 夜書門外是何人
추한 이름 써붙여서 천추 후세 남기었나 / 留寄醜名貽千秋
오늘날에 내가 다시 널 내치는 붓 휘둘러 / 騷人今日繼鈇鉞
금강 물에 오명 흘려 보내어도 오명 남네 / 流惡錦江難盡流

[주-D001] 세수항표(世修降表) : 오대(五代) 때 촉(蜀) 나라 사람 이호(李昊)가 네 번이나 항복하는 표문(表文)을 기초(起草)한 것을 기롱하는 말이다. 전촉(前蜀)이 당(唐) 나라에 항복할 때 이호가 그 표문을 기초하였으며, 후주(後周)가 송(宋) 나라에 항복할 때도 역시 이호가 그 표문을 기초하자, 당시 어떤 사람이 그의 집 문에 몰래 ‘대대로 항복하는 표문을 기초한 이가의 집[世修降表李家]’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宋史卷479 世家列傳李昊》[주-D002] 행장(行藏) : 행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고, 장은 물러나 은거하는 것으로, 《논어》 술이(述而)에, “등용되면 나아가 행하고 버려지면 물러나 은거한다.” 하였다[주-D003] 왕가(王家) : 오대(五代) 시대 전촉(前蜀)을 세운 왕씨(王氏)의 조정을 말한다.[주-D004] 맹씨(孟氏) 조정 : 오대 시대 촉(蜀)을 세운 맹씨의 조정을 말한다.[주-D005] 진교(陳橋)에서 …… 뜨자 : 송(宋) 나라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이 즉위하였다는 뜻이다. 후주(後周) 현덕(顯德) 7년에 거란(契丹)이 침입해 오자 조광윤이 군사를 거느리고 막으러 가다가 군사가 진교역(陳橋驛)에 주둔하였는데, 그날 밤 부하들이 병란을 일으켜서 조광윤을 옹립해 황제로 삼고는 송(宋)이라고 국호를 고쳤다. 《宋史卷1 太祖本紀》[주-D006] 천리(天吏) : 하늘의 명을 받들어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으로, 황제를 가리킨다.[주-D007] 다시 …… 바치었나 : 서토는 서촉(西蜀) 지방으로 오대 시대 촉(蜀)을 말하고, 중주(中州)는 송 나라를 가리킨다.[주-D008] 금성(錦城) : 촉 나라 성도(成都)의 금관성(錦官城)을 말한다.[주-D009] 공명(孔明)의 두 표문(表文) : 공명은 촉 나라 제갈량(諸葛亮)의 자이며, 두 표문은 전출사표(前出師表)와 후출사표(後出師表)를 가리킨다.[주-D010] 숙피(叔皮)의 한 논문(論文) : 숙피는 한(漢) 나라 반표(班彪)의 자이며, 논문은 그가 지은 《왕명론(王命論)》을 가리킨다.

1012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단기견로도(單騎見虜圖)

병법에선 본디 마음 치는 것이 귀중하고 / 兵法元來貴攻心
승산은 우리 군사 피로하게 하지 않네 / 勝筭不須勞我師
내게 있는 성과 신을 떨쳐 일으킨다면야 / 在我誠信苟一激
구구하게 싸움 벌일 필요 뭐가 있겠는가 / 安用區區爭戰爲
곽공의 이 계책은 뛰어난 생각으로 / 郭公此計出尋常
단기 타고 적진에 간 계책 정말 기이하네 / 單騎赴敵何其奇
일찍부터 나라 위해 몸바칠 뜻 품었으매 / 將軍早負許國志
넓고 넓은 그 웅략은 엿보기도 어려웠네 / 恢恢壯略難可窺
당시에 오랑캐들 분분하게 날뛰었으니 / 當時胡虜紛陸梁
사해 백성 상처입는 것을 어찌 차마 보랴 / 忍看四海含瘡痍
당당하게 깃발 들고 나라 간성 자임하니 / 堂堂持節任干城
그 한 몸의 성패에 국가 안위 달렸었네 / 一身成敗安危隨
치솟는 적의 기세 당해 내기 어려워서 / 憑凌賊氣勢莫當
경양 땅 바라보매 점점 위태로웠다네 / 回首涇陽事轉危
예로부터 중과부적이라고들 말했거니 / 從來衆寡不相敵
오랑캐들 물리치길 장차 어찌 기약하랴 / 執訊獲醜將安期
앉은 채로 적의 칼날 차마 못 받을 거로 / 坐受鋒鏑所不忍
경경한 그 충성심 하늘만이 알았었네 / 耿耿忠誠天獨知
성신 다해 저들의 맘 바로잡아 돌리려고 / 擬將誠信可格彼
혼자서 말을 타고 되놈 군영 들어갔네 / 挺身獨向胡營馳
도도한 웅변 듣고 오랑캐들 맘 놀랐고 / 桓桓雄辯驚醜類
늠름한 그 기상에 변방 땅이 들썩였네 / 凛凜壯氣掀四陲
격렬한 말투로다 화와 복을 말해 주니 / 談鋒激烈諭禍福
피차간에 품고 있던 의심이 확 풀리었네 / 洞然彼此無猜疑
- 원문 2자 빠짐 - 강한 적 어찌할 줄 모른 채 / □□勁敵知奈何
꼬꾸라져 절을 하며 풀 쏠리듯 무너졌네 / 顚倒羅拜爭風靡
쌈 않는 게 쌈하는 것보다 나음 알겠거니 / 固知無戰勝有戰
단기로도 되레 능히 일만 기병 막았다네 / 一騎猶能拒萬騎
예로부터 지성이면 돌과 쇠도 뚫었는데 / 由來至誠貫金石
하물며 인간 도리 아는 회흘이겠나 / 矧此回紇同秉彝
이내 성심 다하면 남의 마음 돌리나니 / 所以推心置人腹
당 나라가 다시 선 건 이로부터였다네 / 唐家再造知由玆
담소 속에 적 물리친 것과 서로 부합되니 / 談笑却軍遠相符
성 아니면 누가 능히 이처럼 떨치리요 / 不誠誰能激如斯
기린각 공신 중에 공이 가장 으뜸이매 / 麒麟閣上功第一
그림 보자 모르는 새 긴 탄식이 나오누나 / 撫圖不覺成長嘻
말에 탄 그 모습은 진짜처럼 완연하니 / 馬上儀刑宛如眞
병가에 남겨두면 좋은 법도 될 것이리 / 留與兵家作良規

[주-D001] 단기견로도(單騎見虜圖) : 당(唐) 나라 곽자의(郭子儀)가 단기를 타고 오랑캐 추장을 만나러 가는 그림이다. 곽자의는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여 1등 공신에 봉해졌으며, 대종(代宗) 영태(永泰) 원년에 복고(僕固)와 회은(懷恩)이 토번(吐蕃), 회흘(回紇), 당항(黨項) 등의 종족을 꾀어 침입해 오자, 수십 기(騎)만을 거느린 채 회흘의 군사가 주둔해 있는 곳으로 가서는 의리를 가지고 깨우쳐 다시금 우호 관계를 맺고 물러가게 하였다. 《新唐書卷137 郭子儀列傳》[주-D002] 恢恢 : 소주에, “어떤 데에는 ‘탁락(卓犖)’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주-D003] 경양(涇陽) :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涼縣) 서쪽에 있었던 현(縣)의 이름으로, 곽자의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주-D004] 담소 속에 적 물리친 것 : 전국 시대 때 제(齊) 나라의 노중련(魯仲連)이 말로 진(秦) 나라 군대를 물러가게 한 것을 말한다. 일찍이 노중련이 조(趙) 나라에 머물러 있을 적에 진 나라가 조 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그때 조 나라에 와 있던 위(魏) 나라의 신원연(辛垣衍)이 조 나라로 하여금 진 나라 왕을 황제(皇帝)로 추대하여 군대를 철수시키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이 신원연을 만나서 진 나라가 무도한 나라임을 역설한 뒤, 진 나라가 칭제(稱帝)한다면 자신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여 중지시키니, 진 나라 군사들이 퇴각하였다. 《史記卷83 魯仲連列傳》[주-D005] 기린각(麒麟閣) : 공신들의 화상(畫像)을 모셔놓은 전각(殿閣)을 말한다.

1011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낭랑하게 읊조리며 축융봉(祝融峯)을 나는 듯이 내려오다.

형산이라 큰 산이 남쪽에 웅대한데 / 衡山巨鎭雄南紀
그 가운데 한 봉우리 부용꽃 푸르르네 / 中有一朶靑芙蓉
유선께서 유람한 게 어제인 양 싶은데 / 儒仙壯遊如昨日
천 년토록 우러르며 남은 자취 흠앙하네 / 景仰千載欽遺蹤
태산 위에 올라보매 천하가 작았거니 / 泰山山頭天下小
그 당시의 선생 흉회 상상해 볼 수가 있네 / 此日可想先生胸
천리 먼 호남에서 친구가 찾아와서 / 湖南千里訪同人
세상 밖서 한 번 웃자 만난 것이 기쁘네 / 物外一笑欣相逢
돌아가는 날이 바로 한 해 저물 때이라서 / 歸期政値歲暮天
찬 하늘과 텅 빈 산 푸르름이 겹치었네 / 寒空岳色靑重重
처음에는 석탄에서 말 나란히 타고 가다 / 初從石灘聯騎行
눈길 따라 오르면서 지팡이를 짚고 갔네 / 登登雪逕扶吟筇
바람이 나를 불어 하늘 위에 올려 놓자 / 天風吹我到上方
모르는 새 천 봉우리 위로 몸 솟구쳤네 / 騰身不覺凌千峯
봉우리 위 눈과 달은 대낮처럼 교교하여 / 峯頭雪月皎如晝
위와 아래 한 색이라 은이 녹은 것 같네 / 上下一色如銀鎔
천근에다 월굴이 눈앞에 쫙 펼쳐지니 / 天根月窟在眼中
경위에다 팔극으로 생각 맘껏 뻗어가네 / 經緯八極思橫縱
손으로 은하 잡아 천표에다 따르니 / 手傾銀漢酌天瓢
갑작스레 폐부에 봄빛 짙음 깨닫겠네 / 陡覺肺腑春光濃
가슴속의 호연지기 천지사이 꽉 차거니 / 浩氣生胸塞兩間
막힌 성정 쏟아내어 큰 종을 울리누나 / 陶寫性情鳴洪鐘
꼭대기에 올랐다가 처음으로 내려오니 / 上上頭來始下來
삽시간에 이는 기상 어느 누가 형용하리 / 造次氣象誰形容
진정으로 상서 세상 나타나는 봉황이라 / 端如瑞世雙鳳凰
천 길 높이 날아올라 화락하게 울음 우네 / 翺翔千仞聲嗈嗈
새가 날고 고기 뛰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 鳶飛魚躍俯仰間
가슴속이 쇄락하니 사람 중에 용이로세 / 襟懷灑落人中龍
바람과 우레 타고 가없는 데 거치나니 / 鞭霆駕風歷無際
구구하게 교송을 좇을 게 뭐 있겠는가 / 區區何用追喬松
구름 열고 말을 하여 귀신 감동시키고 / 開雲謾說感鬼神
달빛 보며 나 자신의 용렬함에 놀라누나 / 玩月只自驚愚憃
광악 같은 양부자에 비하여 어떠한가 / 爭如光岳兩夫子
오백 년 뒤에 서로 따르기를 기약하네 / 期應五百來相從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데서 시작커니 / 登高陟遐自卑邇
성역 뛰어 오른다면 유종이 될 것이리 / 一蹴聖域爲儒宗
하늘 높고 땅 두터워 산은 아니 무너지니 / 天高地厚山不崩
우리 유교 그와 함께 온 천하를 지탱하리 / 吾道與之撑八封

[주-D001] 축융봉(祝融峯) : 경북 봉화(奉化)에 있는 청량산(淸涼山)의 봉우리 이름이다.[주-D002] 유선(儒仙) :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을 가리킨다. 청량산에는 최치원이 수도(修道)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가 있다.[주-D003] 선생(先生) : 최치원이나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가리키는 듯하다.[주-D004] 천근(天根)에다 …… 펼쳐지니 : 천근은 별자리로 《국어(國語)》 주어 중(周語中)에 “천근이 드러나면 물이 마른다.” 하였으며, 월굴은 달 속에 있다는 궁전이다. 소옹(邵雍)의 〈관물(觀物)〉이란 시에, “건이 손을 만날 때 월굴이 되고, 지가 뇌를 만난 곳에 천근이 드러난다.[乾遇巽時爲月窟地逢雷處見天根]” 하였다.[주-D005] 경위(經緯)에다 팔극(八極) : 경위는 우주의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를 가리키고, 팔극은 팔방(八方)의 아주 먼 곳으로 천하의 끝을 가리킨다[주-D006] 천표(天瓢) : 전설 속에 나오는 표주박으로, 천신(天神)이 비를 내릴 때 쓰는 표주박이다.[주-D007] 새가 날고 고기 뛰는[鳶飛魚躍] : 만물이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소리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노는도다.[鳶飛戾天魚躍于淵]” 하였다.[주-D008] 교송(喬松) :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의 병칭(幷稱)이다.[주-D009] 광악(光岳) 같은 양부자(兩夫子) : 광악은 해, 달, 별의 빛인 삼광(三光)과 태산(泰山), 숭산(嵩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의 오악(五岳)으로, 천지(天地)를 가리키며, 양부자는 주자(朱子)와 장남헌(張南軒)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자와 장남헌은 남악(南岳)인 형산(衡山)에 오른 적이 있다.[주-D010] 유종(儒宗) : 유학(儒學)의 영수(領袖)나 종사(宗師)를 말한다.

1010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둘째 형님에 대한 만사(挽詞)

내 나이 칠팔 세가 되던 그해에 / 我年在髫齔
어머님을 잃어 몹시 애처로웠지 / 零丁失母慈
형님께선 그때 나이 약관인데도 / 兄時甫弱冠
온 정성을 다해 나를 보살펴 줬지 / 撫我實勤斯
글을 읽어 몽매함을 처음 깨치고 / 口讀初擊蒙
점점 더 서사까지 넓히어 갔지 / 書史漸旁馳
나에게 옷 입히고 밥 먹이는 것을 / 衣我與哺我
대부분 형님께서 해 주시었지 / 多爲兄所資
우애로움 천성에서 나온 거라서 / 友愛出天性
손 잡고 다니면서 안 떨어졌지 / 提携不相離
차윤(車胤) 반디 산사에서 나눠 밝혔고 / 車螢分野寺
강굉(姜肱) 이불 집에서 함께 덮었지 / 姜被共家塾
어려서부터 자라 독립할 때까지 / 愚蒙至成立
그 어느 게 우리 형님 힘이 아니랴 / 孰非我兄力
내 요행히 조정 반열 들어갔을 때 / 弟幸忝朝列
형은 되레 고향 집을 지키시었지 / 兄猶守圭蓽
고상한 마음으로 개의치 않고 / 高懷不介意
강호에서 맘 편하게 지내시었지 / 江湖任放逸
정자 지어 백운이라 이름짓고는 / 開亭名白雲
효성 생각 존몰간에 한결같았지 / 孝思同存沒
지난해에 선친께서 돌아가시자 / 往歲哭先子
삼 년토록 피눈물을 흘리시었지 / 三霜對血洫
말씀하길 아버님 상 마친 뒤에는 / 謂言外除後
넌 서울로 갈 생각을 말라 하셨지 / 爾毋期帝鄕
나는 산기슭에다 터 잡고 살고 / 我居介山麓
형은 연못가에 터를 잡으시었지 / 爾卜落淵傍
양쪽 땅서 선영까지 떨어진 거리 / 兩地去先塋
양쪽 모두 그다지 멀지 않았지 / 不過數牛鳴
둘이 함께 더불면서 선영 지키며 / 相與護松楸
영원토록 속세 정을 사절하였지 / 永謝塵世情
그윽한 기약 끝이 아니 났는데 / 幽期結未了
비바람이 불어 홀연 헤어졌었지 / 風雨忽分床
낭패 중에 대궐 문 들어서면서 / 狼狽入脩門
진토에서 마음 놀라 황급하였지 / 塵土驚劻勷
그럭저럭 세월은 빨리도 흘러 / 荏苒歲云徂
이별 회포 깊어 머리 희어졌었지 / 離懷添鬢霜
봄이 되어 형이 보낸 편지를 보고 / 春來見兄書
형님께서 병에 걸린 것을 알았지 / 知兄遘疢疾
마침 나는 서쪽으로 가란 명 받아 / 適我有西命
달려가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지 / 行止恨拘掣
천리에서 시름 생각 쌓이었으나 / 千里積愁思
한걸음에 달려갈 길이 없었지 / 一往那可得
곧바로 병 나았단 소리 들었고 / 旋聞勿藥喜
관직 제수 받은 것도 알게 되었지 / 且知除一職
병이 새로 들었는데 어떻게 가나 / 新瘥豈敢行
근심 걱정 기쁜 마음 함께 일었지 / 憂喜來交幷
초여름 되어 사월 말쯤 됐을 때 / 維夏四月末
형님이 막 서울 왔단 소식 들었지 / 聞兄初入京
만나보지 못한 것만 한탄했을 뿐 / 但作未見恨
어찌 병마 찾아들 줄 생각했겠나 / 豈料二竪嬰
역졸이 갑작스레 소식 전하매 / 郵人忽傳信
놀라 일어나서 한참 서성거렸지 / 驚起久繞壁
왕사가 그때 아직 아니 끝나서 / 王事尙未完
달려가서 병수발 들 길이 없었지 / 無緣往侍藥
병중에 세 차례 보낸 서신에 / 病中三寄書
먹물 자국 아직도 안 말랐는데 / 手墨猶未乾
그 어찌 뜻했으랴 몇 달 안 되어 / 何意數月中
만사 모두 죽어서 다 끝나버릴 줄 / 萬事歸蓋棺
마음 놀라 저 하늘을 쳐다보아도 / 驚呼視彼蒼
저 하늘은 어쩜 그리 막막만 한가 / 彼蒼何漠漠
우리 형님 이 세상에 살아계실 땐 / 吾兄在世日
마음속 깊이 의를 좋아하였지 / 好義着心曲
몸 건장한 데다가 병도 없어서 / 身健且無恙
장수 복을 누릴 거라 여겼더니만 / 謂享胡老福
어찌하여 하늘 이치 어그러져서 / 如何理多爽
갑작스레 혹독스런 화를 입었나 / 遽爾罹酷罰
형제간에 걱정하는 그 깊은 정은 / 具爾孔懷情
단지 장사 치르는 데에 있는데 / 只在死喪威
큰형님과 착한 나의 아우님들은 / 伯氏及賢弟
정과 의리 둘 다 모두 어김 없었네 / 情義兩無違
나만 유독 그 어떠한 사람이기에 / 顧我獨何人
한 차례 곡하는 것도 제때 못하나 / 一哭尙後時
사람 도리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 人理至於此
오래 살아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 / 久生欲何爲
음산한 바람이 비 몰고 왔으니 / 陰風吹積雨
장맛비는 어느 때나 개이려는가 / 天漏何時晴
영남 길은 먼 데다가 또 험난한데 / 嶺路阻且脩
강물 불어 바다인 양 아득만 하네 / 江流成海溟
상여 깃발 날마다 앞으로 가나 / 丹旐日遷次
어느 때에 고향땅에 도착하려나 / 將何達鄕城
널 붙들고 갈 계획은 이미 글렀고 / 扶櫬計已左
장사 참여할 길조차 아득하구나 / 會葬猶杳冥
하늘가서 뒤늦게 통곡하면서 / 天涯哭望後
펑펑 솟는 눈물 괜히 흩뿌리누나 / 有淚空河傾
만사 지어 돌아가는 편에 부치곤 / 緘詞付歸使
쓰러졌다 근근이 또 깨어나누나 / 殞絶且偷生

[주-D001] 둘째 형님 : 학봉의 둘째 형 김수일(金守一)로, 김성일이 선조 16년(1583) 6월에 황해도 순무어사(黃海道巡撫御史)로 나가 있던 중에 상을 당하였다.[주-D002] 차윤(車胤) 반디 : 동진(東晉) 때 차윤이 집이 가난하여 등불을 밝힐 수 없자 반딧불을 주머니에 많이 잡아넣어 그 불빛으로 글을 읽은 고사를 말한다.[주-D003] 강굉(姜肱) 이불 : 형제간의 각별한 우애를 말한다. 후한(後漢) 때 강굉이 그의 두 아우인 강중해(姜仲海), 강계강(姜季江)과 우애가 지극해서 잠을 잘 때 반드시 한이불을 덮고 잤다고 한다. 《後漢書卷53 姜肱列傳》[주-D004] 지난해에 선친께서 돌아가시자 : 학봉이 부친상을 당한 것은 선조 13년(1580) 윤4월이다.[주-D005] 형제간에 …… 있는데 :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죽어 장사하는 두려움에 형제간에 몹시 걱정한다.[死喪之威兄弟孔懷]” 하였다.

1009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맑은 날 마루에서 두시(杜詩)를 읽다가 느낌이 있어서 짓다.

1008

학봉일고 제1권 시(詩) ● 부질없이 흥이 일어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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