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生弱冠(선생약관) : 선생께서는 약관의 나이에

與季氏(여계씨) : 계씨(季氏)와 함께

負笈往拜溪上(부급왕배계상) : 서책을 싸 짊어지고 계상(溪上)으로 가서 퇴계 이 선생을 뵈었는데,

李先生見其容止(리선생견기용지) : 이 선생이 그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

已心許之(이심허지) : 이미 마음속으로 허여하였다.

嘗與人書曰(상여인서왈) : 이에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기를,

此人敏而好學(차인민이호학) : “이 사람은 민첩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므로,

與之共業(여지공업) : 그와 학문을 함께 하노라면

甚覺有益(심각유익) :  몹시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였다.

又寄書其孫安道曰(우기서기손안도왈) : 또 그의 손자인 이안도(李安道)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近看金某(근간금모) : “요사이 보니 김성일은

志趣甚好(지취심호) : 지취(志趣)가 매우 좋아

能專意此事(능전의차사) : 이 일에 뜻을 오로지 하고 있으니,

立心之誠切如此(립심지성절여차) : ,마음을 세움에 있어서 성실하고 절실하기가 이와 같다면

何求不得(하구불득) :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으며,

何學無成(하학무성) :무엇을 배운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又嘗歷敍聖賢道統相傳之心法(우상력서성현도통상전지심법) : 또 일찍이 성현들께서 도통(道統)을 서로 전한 심법(心法)을 하나하나 서술하여

作屛銘(작병명) : 병명(屛銘)을 만든 다음,

手自淨寫以與之(수자정사이여지) : 손수 깨끗하게 베껴 써서 공에게 주었는바,

其屬望期待(기촉망기대) : 이 선생이 선생에게 기대를 건 것이

異於他弟子矣(이어타제자의) : 다른 제자들과는 달랐다.

又嘗曰(우상왈) : 또 일찍이 이르기를,

此人他日必爲大器(차인타일필위대기) : “이 사람은 뒷날에 반드시 큰 그릇이 되리라.” 하였다.

乞退之日(걸퇴지일) : 이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해 주기를 빌던 날에

上引見(상인견) : 주상께서 인견(引見)하여

問朝臣及門下人才(문조신급문하인재) : 조정의 신하와 문하의 인재에 대해 묻자,

以李浚慶(이리준경) : 이준경(李浚慶),

奇大升及先生(기대승급선생) : 기대승(奇大升) 및 선생을

薦于榻前(천우탑전) : 탑전(榻前)에서 천거하였다.




辛未(신미) : 신미년(1571, 선조 4)에

陞奉敎(승봉교) : 봉교(奉敎)로 승진하여

請封植魯陵(청봉식로릉) : 노릉(魯陵)을 봉식(封植)할 것과

復六臣官爵(부륙신관작) : 사육신(死六臣)의 관작(官爵)을 회복할 것을 청하였으며,

及時弊累數千言(급시폐루수천언) : 당시의 폐단에 대해서 논하는 말 수천 마디를 올렸는데,

辭甚剴切(사심개절) : 상소 내용이 아주 절실하였다.

疏上(소상) : 이에 상소가 올라가자

搢紳莫不膚粟(진신막불부속) : 사대부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先生廉劌方嚴(선생렴귀방엄) : 선생은 성품이 꼿꼿하고 엄하여

直聲振朝(직성진조) : 곧은 소리가 조정에 떨쳐졌다.

及丁丑差書狀(급정축차서상) : 이에 정축년(1577, 선조 10)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차임되자,

一行悚憚(일행송탄) : 일행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初到平壤(초도평양) : 처음에 평양(平壤)에 이르러서

軍官譯官之僭侈者(군관역관지참치자) : 군관(軍官)이나 역관(譯官)들 가운데 참람하고 사치스러운 자들을

皆摘發決杖(개적발결장) : 모두 적발하여 곤장을 친 일이 있었다.

翌日宴饗就坐(익일연향취좌) : 그 다음 날 연향(宴饗)을 베푸는 자리에 나가 앉자,

正使曰(정사왈) :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赴京軍官侈行(부경군관치행) : “부경(赴京)하는 군관들이 행장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은

例也(례야) : 으레 그러한 것인데,

而書狀杖之(이서상장지) : 서장관이 곤장을 치는 바람에

乃是殺風情(내시살풍정) : 살벌한 기운이 돌게 되었다.

當以白浮之(당이백부지) : 그러니 벌주(罰酒)를 마시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는데,

羣下惶懼相謂曰(군하황구상위왈) : 아랫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 서로 떠들어 대기를,

書狀性峻(서상성준) : “서장관은 성품이 준엄하니

必不受罰(필불수벌) : 반드시 벌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此行應少和平氣象(차행응소화평기상) : 이번 행차는 응당 화평한 기운이 적을 것이다.” 하였다.

先生飮盡其爵(선생음진기작) : 그러나 선생이 그 잔을 다 마시고는

懽笑終日(환소종일) : 기쁜 얼굴로 종일토록 웃고 떠들자,

羣下始服其正直中有量也(군하시복기정직중유량야) : 아랫사람들이 비로소 선생이 정직한 가운데서도 포용력이 있음에 감복하였다.

正使(정사) : 정사는

卽梧陰尹斗壽(즉오음윤두수) : 바로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이다.




庚辰四月(경진사월) : 경진년(1580, 선조 13) 4월에

遭大故(조대고) :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卒哭之前(졸곡지전) : 졸곡(卒哭) 전에는

夜不臥寢(야불와침) : 밤에 누워서 자지 않았고

哭不絶聲(곡불절성) : 곡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旣葬(기장) : 장사(葬事)를 마친 뒤에는

廬於墓側(려어묘측) : 묘 옆에서 여묘살이를 하였는데,

悲哀憂慽(비애우척) : 비통스럽고 근심스러워 하여

未嘗見齒(미상견치) : 일찍이 이를 드러내 보인 일이 없었고

杖屨不出洞口(장구불출동구) : 동구 밖을 나간 일이 없었으며

家事一無所問(가사일무소문) : 집안일에 대해서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其節目則一遵家禮儀禮(기절목칙일준가례의례) : 상장(喪葬)의 절목(節目)은 일체 《가례(家禮)》와 《의례(儀禮)》를 따르면서

參藺氏通典(참이두씨통전) : 두씨(杜氏)의 《통전(通典)》과

丘公儀節(구공의절) : 구씨(丘氏)의 《의절(儀節)》을 참고하여 행하였는데,

雖喪祭急遽之時(수상제급거지시) : 비록 초상을 당한 황급한 때였지만

儀文俱備(의문구비) : 의문(儀文)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婦人女子(부인녀자) : 부녀자들도

亦皆閑於禮文(역개한어례문) : 모두 예문(禮文)에 익숙하였다.

鄕人具先生孝行(향인구선생효행) : 그 뒤에는 향리 사람들이 선생의 효행(孝行)을 갖추어서

報于官(보우관) : 관가에 보고하였는데,

時金東岡字顒爲邑宰(시금동강자옹위읍재) :  당시에 마침 고을 수령으로 있던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이

歎曰(탄왈) : 감탄하기를,

求忠臣於孝子之門(구충신어효자지문) : “효자의 집안에서 충신을 구하라는 말이

豈不信乎(기불신호) :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然以知舊形迹之嫌(연이지구형적지혐) : 그러나 서로 친구간이라는 혐의스러운 점으로 인해

竟不以聞(경불이문) : 마침내 조정에는 아뢰지 않았다.

三年之內(삼년지내) : 상제(喪制) 기간인 3년 동안에는

諸生或有請業者(제생혹유청업자) : 제생(諸生)들 가운데 학문을 배우기를 청하는 자가 있으면

辭以草土哀疚(사이초토애구) : 상을 당해 슬픔 속에 지내는 몸이라서

非講學討論之所(비강학토론지소) : 강학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면

不敢留也(불감류야) : 감히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사양하였다.

若有誠心願學者(약유성심원학자) : 만약 성심으로 배우기를 원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別處齋舍(별처재사) : 별도로 재사(齋舍)에 있게 하였으며,

隨門子弟請敎(수문자제청교) : 문중의 자제들을 따라와 가르침을 청할 경우에는

則亦不甚拒(칙역불심거) : 역시 심하게 거절하지는 않았는데,

至於禮經等書(지어례경등서) : 예경(禮經) 등의 서책에 이르러서는

反覆辨析(반복변석) : 반복하여 변론하고 분석하면서 가르치기를

誨誘諄切(회유순절) : 아주 간절하게 하여

必要心喩而後已(필요심유이후이) : 마음속으로 이해하도록 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癸未三月(계미삼월) : 계미년(1583, 선조 16) 3월에

以舍人出爲黃海道巡撫御史(이사인출위황해도순무어사) :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으로서 황해도 순무어사(黃海道巡撫御史)에 차임되어 나갔는데,

號令風動(호령풍동) : 호령이 바람 불듯 시행되어

兵民咸得其理(병민함득기리) :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 원통함을 풀 수가 있었으며,

而發摘貪汚(이발적탐오) : 탐관오리를 적발함에 있어서는

不饒威勢(불요위세) : .위세가 있다고 하여 용서치 않았으므로,

忌之者亦衆(기지자역중) : 선생을 꺼리는 자들이 많게 되었다.

適羅州闕牧使(적라주궐목사) : 이때 마침 나주 목사(羅州牧使)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鄭澈啓於經筵曰(정철계어경연왈) : 정철(鄭澈)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羅州地大民衆(라주지대민중) : “나주는 지역이 넓고 백성들이 많아서

號爲難治(호위난치) : 본디부터 다스리기 어렵다고 소문났으니,

必得剛直內臣以壓之(필득강직내신이압지) : 반드시 강직한 내신(內臣)을 차임해 보내어 진압해야 할 것입니다.” 하자,

翌日特旨除先生爲羅州牧使(익일특지제선생위라주목사) : 그 이튿날 특지(特旨)를 내려 선생을 나주 목사에 제수하였다.

旣復命(기부명) : 이에 선생은 복명(復命)한 뒤

旋卽陛辭(선즉폐사) : 곧바로 배사(拜辭)하였다.

時黨禍方起(시당화방기) : 당시에 당화(黨禍)가 막 시작되어서

內外名流(내외명류) : 안팎에 있던 명류(名流)들이

相繼貶竄(상계폄찬) : 서로 잇달아서 쫓겨났는데,

一日金吾郞馳入州境(일일금오랑치입주경) : 어느 날 금오랑(金吾郞)이 나주 고을 경내로 들어오자

州人驚怖罔措(주인경포망조) : 고을 사람들이 놀라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而先生端坐聽訟(이선생단좌청송) : 그런데도 선생은 단정히 앉아 송사(訟事)를 심리하면서

夷然不以爲意(이연불이위의) :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長興府使宋應漑亦被竄逐(장흥부사송응개역피찬축) : 또 장흥 부사(長興府使) 송응개(宋應漑) 역시 쫓겨나게 되었는데,

人皆畏縮不敢見(인개외축불감견) :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위축된 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先生馳往敍別(선생치왕서별) : 그런데도 선생은 말을 타고 달려가 전별하였으며,

具所騎鞍馬以贈之(구소기안마이증지) : 타고 갔던 말을 선물로 주었다.




丙戌(병술) : 병술년(1586, 선조 19)에

臨海宮奴奪占民田(림해궁노탈점민전) : 임해궁(臨海宮)의 궁노(宮奴)가 민전(民田)을 빼앗아 차지하자,

先生卽命捕囚(선생즉명포수) : 선생이 즉시 체포하도록 명하고는

請訊於監司(청신어감사) : 감사에게 형신(刑訊)하기를 청하였는데,

監司畏不敢題送(감사외불감제송) : 감사가 두려워서 감히 공문서를 보내지 못하였다.

再三論報之際(재삼론보지제) : 이에 두세 차례 논보(論報)하는 즈음에

被囚者知不可以干免(피수자지불가이간면) : 옥에 수금되어 있던 자가 죄를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嗾人放火于社稷壇(주인방화우사직단) : 다른 사람을 사주하여 사직단(社稷壇)에 불을 놓았으므로,

廟宇盡爇(묘우진설) : 묘우(廟宇)가 모두 불에 타 버렸다.

州人請葺而新之(주인청즙이신지) : 그러자 고을 사람들이 묘우를 새로 짓기를 청하였는데,

先生曰(선생왈) : 선생은 이르기를,

社廟火(사묘화) :  “사직단이 불탄 것은

罪當罷(죄당파) :그 죄가 파직에 해당되는바,

不可掩其迹(불가엄기적) : 그 자취를 덮어 숨겨서는 안 된다.” 하고는,

遂報方伯見罷(수보방백견파) : 드디어 방백(方伯)에게 보고해서 파직당하였다.

闔境嗟惋(합경차완) : 이에 온 고을 사람들이 탄식하면서 분통해하였다.




朝廷議遣使(조정의견사) : 조정에서 통신사(通信使)를 보내

以探倭情(이탐왜정) : 왜적의 정세를 탐지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而狼心莫測(이랑심막측) : 왜적의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고

海道艱危(해도간위) : 바닷길이 어렵고 위험하였으므로, 사

人皆規避(인개규피) : 람들이 모두 눈치만 보면서 가기를 회피하였다.

先生謂家人曰(선생위가인왈) : 그러자 선생은 가인(家人)에게 이르기를,

速治裝(속치장) : “속히 행장을 꾸리라.

我必行(아필행) : 내가 반드시 가게 될 것이다.” 하였다.

果有時宰忌先生者(과유시재기선생자) : 그런데 과연 당시의 재신(宰臣) 가운데 공을 꺼리는 자가 있어서

欲因此害之(욕인차해지) : 이 일을 인해 해치고자 하였으므로,

卽擬副使(즉의부사) : 즉시 선생을 부사(副使)에 의망(擬望)하였다.




庚寅春(경인춘) : 경인년(1590, 선조 23) 봄에

與上使黃允吉(여상사황윤길) :상사 황윤길(黃允吉),

書狀官許筬(서상관허성) : 서장관 허성(許筬)과 함께

拜辭出都(배사출도) : 배사(拜辭)하고서 도성을 나가자,

朝右出餞漢江(조우출전한강) : 조정의 친구들이 모두 한강(漢江)에 나와 전송연을 베풀었는데,

卿士咸集(경사함집) : 경사(卿士)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先生顧左右正色言曰(선생고좌우정색언왈) : 그러자 선생은 좌우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정색을 하고는 이르기를,

當此時(당차시) : “이러한 때를 당하여

誰敢爲網打士林計耶(수감위망타사림계야) : 누가 감히 사림(士林)을 일망타진할 계책을 하는가.

不愧于人(불괴우인) :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며,

不畏于天(불외우천) :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하였다.

蓋時因鄭賊逆獄(개시인정적역옥) : 이때 대개 정여립(鄭汝立)의 옥사(獄事)로 인하여

構陷士類(구함사류) : 사류(士類)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있는데도

而朝廷縮首屛氣(이조정축수병기) : 조정에서는 머리를 수그리고 숨을 죽인 채

莫有言者(막유언자) :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先生位非言地(선생위비언지) : 선생은 맡은 자리가 언관(言官)의 자리가 아니라서

常懷慨歎(상회개탄) : 항상 개탄스러운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가

臨發及之(림발급지) : 출발에 임해서 언급한 것이다.

權師傅宇來別(권사부우래별) : 이때 사부(師傅) 권우(權宇)가 이곳에 전별하러 왔다가

贈以別章(증이별장) : 이별하는 시를 지어 주었다.

先生次其韻(선생차기운) : 선생이 그 시의 운을 차운하여 시를 지었는데,

有手拂琪花萬樹春之句(유수불기화만수춘지구) : 그 시에 “손끝에 꽃 스치자 온 숲에 봄빛이네.”라는 구절이 있었다.

權公謂人曰(권공위인왈) : 그러자 권우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此老氣象如此(차로기상여차) : “이 노인네의 기상이 이와 같으니

必好還矣(필호환의) : 반드시 잘 돌아올 것이다.” 하였다.




辛卯二月還朝(신묘이월환조) : 신묘년(1591, 선조 24) 2월에 조정으로 돌아왔다.

自信使回還之後(자신사회환지후) : 선생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뒤로

朝廷以防備爲憂(조정이방비위우) : 조정에서는 왜적을 방비하는 일을 걱정하였다.

申飭本道監司括民簽丁(신칙본도감사괄민첨정) : 이에 경상도 감사에게 신칙하여 민정(民丁)을 끌어모아

處處築城閭里騷然(처처축성려리소연) : 곳곳에 성을 쌓았으므로, 마을마다 어수선하여

人心大崩(인심대붕) : 인심이 크게 무너졌다.

先生在玉堂啓曰(선생재옥당계왈) : 그러자 선생이 옥당(玉堂)에 있으면서 아뢰기를,

今日之所可畏者(금일지소가외자) : “오늘날에 두려워할 것은

不在島夷(불재도이) : 섬 오랑캐에 있는 것이 아니라,

而只在人心(이지재인심) : 인심에 있습니다.

人心若失(인심약실) : 만약 인심을 잃는다면

則雖金城湯池(칙수금성탕지) : 금성탕지(金城湯池)가 있고

堅甲利兵(견갑리병) : 튼튼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가 있더라도

亦將何用(역장하용) :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하였다.




明年夏四月(명년하사월) : 다음해 여름 4월에

備局議擇閫帥(비국의택곤수) : 비국(備局)에서 의논하여 곤수(閫帥)를 뽑았는데,

慶尙右兵使曺大坤以衰耗當遞(경상우병사조대곤이쇠모당체) :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 조대곤(曺大坤)이 노쇠하다는 이유로 체차당하게 되었다.

上下備忘(상하비망) : 그러자 상께서 비망기(備忘記)를 내려서

敎大坤遞差(교대곤체차) : 조대곤을 체차하고

以誠一除授(이성일제수) : 김성일을 병사에 제수하라고 하교하였다.

先生承命卽行(선생승명즉행) : 선생은 명을 받자마자 곧바로 출발하였는데,

朝之賢士大夫(조지현사대부) : 조정의 어진 사대부들이

咸嗟惜之(함차석지) : 모두 안타까워하면서 탄식하였으며,

或有出唁於道者(혹유출언어도자) : 혹 길에 나와서 위로하는 자도 있었다.

先生曰(선생왈) : 이에 선생은 이르기를,

此身未死之前(차신미사지전) : “이 몸이 죽기 전에는

猶是盡瘁之時(유시진췌지시) : 오히려 이 몸을 다 바쳐서 일할 때이다.

成敗利害(성패리해) : 일의 성패와 이해는

非所道也(비소도야) : 말할 바가 아니다.” 하였다.

先生之年友畸佹子乘夜來別(선생지년우기궤자승야래별) : 이때 선생과 동년배의 친구인 기궤자(畸危子)가 밤을 틈타 와서 전별하면서

送之以詩曰(송지이시왈) : 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分符辭北極(분부사북극) : 부절을 나눠 받고 대궐 떠나서

鳴劍向南陲(명검향남수) : 칼 울리며 남쪽으로 향하여 가네

白日明朱節(백일명주절) : 하얀 해는 붉은 절부 밝게 비추고

淸風拂赤旗(청풍불적기) : 맑은 바람 붉은 기에 불어 오누나

精誠星日照(정성성일조) : 그 충성은 별과 해가 빛을 비추고

忠義鬼神知(충의귀신지) : 그 충의는 귀신 또한 알고 있으리

聖簡應天意(성간응천의) : 임금께서 뽑은 것 하늘 뜻이니

酬恩在此時(수은재차시) : 그 은혜에 보답하는 건 이때에 있네




行朝以本道爲賊所據(행조이본도위적소거) : 행조(行朝)에서 경상도가 왜적들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해서

而專制方面(이전제방면) :  한 방면을 전담하여 맡기고자 하였으나

未得其人(미득기인) : 적임자를 구하지 못하였는데,

廷臣薦先生爲左道巡察使(정신천선생위좌도순찰사) : 조정의 신하들이 선생을 천거해서 경상좌도 순찰사(慶尙左道巡察使)로 삼았다.

尹斗壽(윤두수) : 윤두수(尹斗壽)와

李恒福交薦之(리항복교천지) : 이항복(李恒福)이 번갈아가면서 천거하였다.




先生稟氣剛方(선생품기강방) : 선생은 기품이 굳세고 방정하였으며,

操履端正(조리단정) : 조행(操行)이 단아하고 단정하였다.

自少勇於爲善(자소용어위선) :  어려서부터 선을 행하는 데 용감하였고,

不樂小成(불악소성) : 작은 성취를 기뻐하지 않았다.

及登退溪先生之門(급등퇴계선생지문) :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서는

心悅誠服(심열성복) :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성심으로 감복하여

一言一行(일언일행) :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를 함에 있어서도

必以師門爲矜式(필이사문위긍식) : 반드시 사문(師門)으로써 본보기를 삼았으며,

中心體認(중심체인) : 마음속으로 체인(體認)하여

食息不忘(식식불망) : 언제라도 잊지 않았다.

惰慢之氣(타만지기) : 게으르고 나태한 기색을

不設於身上(불설어신상) : 몸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鄙吝之萌(비린지맹) : 비루하고 인색한 싹을

不存於胸中(불존어흉중) : 가슴속에 담아 두지 않았다.

雖在燕閒幽獨之地(수재연한유독지지) : 비록 한가로이 쉬거나 혼자 있을 때에도

不爲弛然肆意(불위이연사의) : 긴장을 풀고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서

而警省尤切(이경성우절) 경계하고 반성하기를 더욱더 절실하게 하였다.

如遇紛錯擾攘之時(여우분착요양지시) : 어지럽거나 요란한 때를 만났을 경우에는

則略不苟簡放過(칙략불구간방과) : 구차스럽게 하거나 방과(放過)해 버리지 않고

而操守愈固(이조수유고) : 조행을 지키기를 더욱더 굳건히 하였다.

聞人之善(문인지선) :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들으면

必聳聽而歎服(필용청이탄복) : 반드시 귀 기울여 들으면서 탄복하였으며,

知己之非(지기지비) : 자신의 잘못을 알면

必瞿然而勇改(필구연이용개) : 반드시 두려워하면서 즉시 고쳤다.

嘗謂學者曰(상위학자왈) : 일찍이 배우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吾平生得一語(오평생득일어) : “내가 평생에 걸쳐서 얻은 한마디 말은,

道吾過者是吾師(도오과자시오사) : ‘나의 허물을 공격하는 자는 나의 스승이고,

談吾美者是吾賊(담오미자시오적) : 나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이다.라는 말이다.” 하면서,

以此十四字(이차십사자) : 이 열네 글자로써

恒自飭勵也(항자칙려야) : 항상 자신을 책려하였다.

蓋其自治之嚴(개기자치지엄) : 대개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였던 것은

是其所性(시기소성) : 천성에서 나온 것이며,

而待人之量(이대인지량) :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포용력이 있었던 것은

積功所到(적공소도) : 오랜 공부를 쌓은 소치였다.

故晩歲所造(고만세소조) : 그러므로 말년에 이르러 도달한 경지는

漸就平正(점취평정) : 점차 평정(平正)하여져서

無復少時剛銳之氣(무부소시강예지기) : 어렸을 적의 굳세고 예민한 기상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覩形者絶麤厲之習(도형자절추려지습) : 선생의 용모를 본 사람은 거칠고 사나운 습관이 근절되고,

覿德者消非僻之心(적덕자소비벽지심) : 선생의 인격을 접한 사람은 그릇되고 편벽스러운 마음이 소멸되었으므로,

無不喜見容接(무불희견용접) : 모두들 가까이 교제하면서 대하기를 기뻐하였으며,

而樂於輸誠也(이악어수성야) : 성심을 다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且自知嫉惡大過(차자지질악대과) : 또 선생은 자신이 악한 사람을 미워함이 너무 지나쳐서

頗露圭角(파로규각) : 모난 점이 자못 드러난 것을 알고는

大書寬弘二字(대서관홍이자) : ‘관홍(寬弘)’이란 두 글자를 크게 써서

糊壁觀省(호벽관성) : 벽에 붙여 놓고 때때로 보면서 반성하여

以寓書紳之意(이우서신지의) : 항상 명심하여 잊지 않으려고 하였다.




趙月川穆嘗見先生束帶曰(조월천목상견선생속대왈) : 월천(月川) 조목(趙穆)이 일찍이 선생이 띠를 묶은 것을 보고 말하기를,

君須稍緩其束(군수초완기속) : “그대는 모름지기 묶은 것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라.” 하였는데,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公每警如是(공매경여시) : “공이 매번 이와 같이 경계하니

敢不從敎(감불종교) : 감히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卽解而改束(즉해이개속) : 즉시 풀어서 다시 매었다.

月川曰(월천왈) : 그러자 월천이 말하기를,

凡事須如是(범사수여시) : “모든 일에 대해서 모름지기 그와 같이 하라.” 하였다.

月川又戒先生飮酒(월천우계선생음주) : 월천은 또 선생에게 술 마시는 것을 경계하였는바,

嘗以鮑甲遺先生(상이포갑유선생) : 일찍이 포갑(鮑甲)을 선생에게 보내 주면서

因題一銘曰(인제일명왈) : 명(銘) 하나를 지었는데, 그 명에 이르기를,

五色燦兮(오색찬혜) : 다섯 가지 색깔이 찬란함이여

光絢爛兮(광현란혜) : 그 광채가 현란하여 아름답도다

飮雖多兮(음수다혜) : 술을 비록 많이 마시지마는

儀不亂兮(의불란혜) : 그 모습은 어지럽지 아니하도다 하였다.

先生拜而受之(선생배이수지) : 그러자 선생이 절하면서 받고는

佩服不忘(패복불망) :가슴속에 새겨 잊지 않았다.




於書無所不讀(어서무소불독) : 책에 있어서는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나,

而以朱夫子書爲一身標的(이이주부자서위일신표적) : 주 부자(朱夫子)의 서(書)를 일신의 표적으로 삼아

潛心玩味(잠심완미) : 마음을 가라앉혀 음미하면서

至忘寢食(지망침식) : 침식까지 잊을 정도였다

鷄鳴而起(계명이기) :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必貫誦一二篇(필관송일이편) : 반드시 한두 편을 왼 뒤에야

然後點燈開卷(연후점등개권) :. 비로소 등불을 밝히고 책을 펼쳤는데,

掇一心(철일심) : 일심을 가다듬고는

精思明辨(정사명변) : 정밀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변하여

不得一毫放過(불득일호방과) : 추호라도 방과(放過)하는 바가 없었다.

諸生有請業者(제생유청업자) : 제생(諸生)들 가운데 배움을 청하는 자가 있으면

亦使之字求其訓(역사지자구기훈) : 글자마다 가르침을 찾고

句求其義(구구기의) : 구절마다 의리를 찾아

剖析開曉(부석개효) : 자세히 분석하여 깨우쳐 주되,

傾倒切至(경도절지) : 온 마음을 쏟아 간절하고 지극하게 가르쳐 주었는데,

必竭其兩端而後已(필갈기량단이후이) : 반드시 그 본말(本末)을 자세하게 다 가르친 다음에야 그만두었다.

爲文章明白典雅(위문장명백전아) : 문장(文章)을 지음에 있어서는 명백하고 전아(典雅)하였으며,

筆成章(필성장) : 붓을 잡으면 곧바로 글을 지었는데,

誠激意到(성격의도) : 성심이 북받쳐 뜻이 곡진하였으며,

論議的確(론의적확) : 논의가 명확하고 분명하였다.

詩律亦沖澹(시률역충담) : 시율(詩律)을 지음에 있어서도 담박하고 순하였는데,

致尤善於五言古詩(치우선어오언고시) : 특히 오언 고시(五言古詩)를 잘 지어서

深得陶蘇體(심득도소체) : 도연명(陶淵明)이나 소동파(蘇東坡)의 시체(詩體)를 깊이 터득하였다.

柳西厓簡重(류서애간중) :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은 대범하고 묵직하여

少許可(소허가) :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경우가 적었는데,

每敬重先生(매경중선생) : 매번 선생을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又見先生晩年所作詩文(우견선생만년소작시문) : 또 선생이 말년에 지은 시문을 보고는

奬歎不已曰(奬탄불이왈) : 탄복하여 마지않으면서 말하기를,

有德必有言(유덕필유언) :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있는 법이란 말이

豈不信然乎(기불신연호) : 어찌 미덥지 아니한가.” 하고는

遂薦文衡(수천문형) : 드디어 선생을 문형(文衡)에 천거하였다.




性至孝(성지효) :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以不及事先夫人(이불급사선부인) : 미처 선부인(先夫人)을 봉양하지 못한 것을

爲平生至痛(위평생지통) : 평생의 통한으로 여겼으며,

事判書公(사판서공) : 판서공(判書公)을 봉양함에 있어서는

左右無方(좌우무방) :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직접하였으며

不違其志(불위기지) : 뜻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及登朝班(급등조반) : 조정 반열에 나아가게 되어서는

每以身在近密(매이신재근밀) : 시종신(侍從臣)으로 있어서

不得乞郡便養爲恨(불득걸군편양위한) : 고을 수령으로 나가 편하게 봉양하지 못하는 것을 늘 한스러워하였다.

兄弟之間(형제지간) : 형제간에는  

友愛彌篤(우애미독) : 우애가 돈독하여

怡怡一堂(이이일당) : 한 집안에서 화락하게 지냈는바,

人無間言(인무간언) : 다른 사람들이 그 사이를 이간질할 수가 없었다.

朝夕自奉(조석자봉) : 아침 저녁 상차림은

淡如寒士(담여한사) : 담박하기가 마치 빈한한 선비와 같았으며,

略不留意家事(략불류의가사) : 집안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유의하지 않았다.




祭必沐浴齊戒(제필목욕제계) : 제사를 지낼 적에는 반드시 목욕하고 재계하였으며,

省視牲羞(성시생수) : 제수 물품을 직접 살펴서

務令精潔(무령정결) : 정결하게 차리기에 힘썼다.

語不及凶穢(어불급흉예) : 그리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으며,

灑埽廳事(쇄소청사) : 대청을 청소하고  

點火房室(점화방실) : 방에 불을 밝혀서

如祖先之來臨其所也(여조선지래림기소야) : 마치 조상들이 와서 앞에 임하여 계신 듯이 하였다.




値壽辰(치수신) : 선생의 생신날에

家人欲設壽酌(가인욕설수작) : 집안 사람들이 수연(壽宴)을 베풀려고 하자,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豈可以劬勞之日(기가이구로지일) : “어찌 부모님께서 길러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날에

而爲宴樂之擧乎(이위연악지거호) : 잔치를 베풀고서 즐기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每念蓼莪之詩(매념료아지시) : 매번 육아(蓼莪)의 시를 생각하면서

冞增感慕之懷(미증감모지회) : 그리워하는 마음을 더욱 깊이 하였다.




治家有法(치가유법) :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법도가 있었다.

撫子女以恩(무자녀이은) : 자녀들을 기름에 있어서는 은혜로써 길렀고,

而敎之以義方(이교지이의방) : 가르침에 있어서는 의리로써 가르쳤다.

御婢僕以寬(어비복이관) : 노비들을 거느림에 있어서는 관대함으로써 거느리면서

而勖之以勤恪(이욱지이근각) :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하라고 권면하였다.

未嘗有疾遽之言(미상유질거지언) : 일찍이 꾸짖는 듯한 말소리나

嚴猛之色(엄맹지색) : 사나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而內外上下(이내외상하) : 내외 상하간에는

整然有序(정연유서) : 구별이 있었고,

門庭斬斬焉(문정참참언) : 문정(門庭) 안은 정숙하였다.

子弟有過(자제유과) : 자제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未嘗嚴責(미상엄책) : 엄준하게 꾸짖은 적이 없었고

諄諄誘掖(순순유액) : 순순하게 타일러서

令自知其過而改焉(령자지기과이개언) : 그들이 스스로 허물을 알아서 고치도록 하였다.

嘗戒子弟曰(상계자제왈) : 일찍이 자제들에게 훈계하여 이르기를,

君子當以心學爲先(군자당이심학위선) : “군자는 마땅히 심학(心學)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若徒以科業爲務(약도이과업위무) : 만약 과거 시험공부만을 힘쓴다면,

則雖得一名(칙수득일명) : 비록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其心已蔽(기심이폐) : 그 본심이 이미 가리워져서

鮮不爲利欲所誘(선불위리욕소유) : 이욕(利欲)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可不懼哉(가불구재) :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하였다.




好善嫉惡(호선질악) :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

出於天性(출어천성) : 천성에서 나왔다.

人有詖言邪行(인유피언사행) : 어떤 사람이 편파적인 말이나 사특한 행동을 할 경우에는

必直斥無隱(필직척무은) : 반드시 그 자리에서 지적하여 숨김없이 다 말하였으므로,

故寡合於世(고과합어세) :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였다.

然自處以正(연자처이정) : 그러나 스스로 처신하기를 올바름으로써 하고

好惡以公(호악이공) : 좋아하고 미워하기를 공정함으로써 하여

不以一毫私意間之(불이일호사의간지) : 터럭만큼도 사사로운 뜻이 그 사이에 끼어 있지 않았다.

故人無賢不肖(고인무현불초) :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나 착하지 못한 사람이나를 막론하고

莫不畏服(막불외복) : 모두들 두려워하고 복종하여

猶恐不善之名(유공불선지명) :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이

或及於其耳(혹급어기이) : 공에게 들릴까 봐 두려워하였다.




先生與柳西厓(선생여류서애) : 선생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과

爲平生莫逆交(위평생막역교) : 평생토록 막역한 교유를 맺었는데,

西厓語人曰(서애어인왈) : 서애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吾平生知友(오평생지우) : “내 평생의 지우(知友)로는

惟士純一人而已(유사순일인이이) : 오직 사순(士純) 한 사람 뿐이었다.

不幸今也則亡矣(불행금야칙망의) :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은 이미 죽었다.” 하였다.

至於臨終(지어림종) : 임종할 때에 이르러서도

亦道先生不離口(역도선생불리구) : 입에서 끊이지 않고 선생에 대해 말하였다.




門生問曰(문생문왈) : 문생(門生)이 묻기를,

凡人始有名(범인시유명) : “보통 사람은 처음에는 이름이 있지만

而終蔑其實者(이종멸기실자) : 끝내는 그 실상이 없게 되는 것은

何也(하야) :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非身之幸名先於實(비신지행명선어실) : “이름이 실상보다 앞서는 것은 자신의 행복이 아니다.

苟有諸已(구유제이) : 진실로 자신에게 실상이 있으면

不患無名(불환무명) : 이름이 나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善必積而後成(선필적이후성) : 선은 반드시 쌓여진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有一善自足(유일선자족) : 한 가지 선이 있다고 하여 스스로 만족하게 여긴다면,

則是喪其善也(칙시상기선야) : 이는 그 선을 상실한 것이다.

惡雖少而可懼(악수소이가구) : 악은 아무리 작더라도 두려워해야 하니,

有一惡自恕(유일악자서) : 한 가지 악에 불과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용서한다면,

則是長其惡也(칙시장기악야) : 이는 그 악을 조장하는 것이다.” 하였다.

又曰(우왈) : 또 이르기를,

涵養克治之功不力(함양극치지공불력) : “학식을 넓혀서 심성을 닦고 사욕을 이겨내어 사념을 다스리는 공부에는 힘쓰지 않으면서

而欲一蹴而到者(이욕일축이도자) : 한번에 뛰어넘어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

學者之通患也(학자지통환야) : 학자들의 공통적인 폐단이다.

譬如養苗者(비여양묘자) : 이를 비유해서 말하면, 곡식 싹을 가꾸는 사람은

慇懃培植(은근배식) : 부지런히 북돋아서 .

至於成實(지어성실) : 열매를 맺게 해야만

然後可以供粢盛(연후가이공자성) : 자성(粢盛)에 이바지할 수 있고,

去草者(거초자) : 잡초를 제거하는 사람은

朝暮鋤治(조모서치) : 아침저녁으로 김매어

剪除根柢(전제근저) : 그 뿌리를 없애 버려야만

然後不得害我嘉禾也(연후불득해아가화야) : 곡식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忘其田而不耘(망기전이불운) : 밭을 잊고 김매지 않는 사람과

與助之長而揠苗者(여조지장이알묘자) : 곡식을 기르기 위해 곡식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은

其心雖異(기심수이) : 그 마음은 비록 다르지만

而爲害則一也(이위해칙일야) : 해치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였다




平日家居(평일가거) : 평소에 집안에 있을 적에는

早起整服(조기정복) : 항상 일찍 일어나서 옷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고서

出坐外堂(출좌외당) : 외당(外堂)에 나아가 앉아 있었다.

惟以觀書史(유이관서사) : 그러면서 오직 책을 보거나

訓子弟(훈자제) : 자제들을 가르치거나

接賓客爲事(접빈객위사) : 손님을 접대하는 것으로 일삼았는데,

恂恂和易(순순화역) : 믿음직하고 화락하였다.

未嘗見其有崖岸之迹(미상견기유애안지적) : 일찍이 다른 사람과 차이 나는 행동이나

凌厲之氣(릉려지기) : 사나운 기색을 보인 적이 없지만,

而至於立朝敢言之時(이지어립조감언지시) : 조정에 벼슬하면서 과감하게 말하거나

臨事處置之際(림사처치지제) : 일에 임하여 조처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英氣凜然(영기름연) : 영특한 기운이 늠름하여

視所當爲(시소당위) :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

直前無畏(직전무외) : 그리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곧장 행하면서

不顧利害(불고리해) : 이득과 손해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不撓毁譽(불요훼예) : 헐뜯거나 추켜올리는 데 따라 동요되지도 않았는바,

雖賁(수분) : 비록 옛날에 용맹으로 소문났던 맹분(孟賁)이나

育莫能奪(육막능탈) : 하육(夏育)조차도 감히 그 기상을 빼앗지 못할 정도였다.

嘗曰(상왈) : 일찍이 이르기를,

人苟處事不愧于心(인구처사불괴우심) : “사람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참으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다면

則何患人言(칙하환인언) :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걱정하겠는가.

纔牽於外(재견어외) : 그러나 외물(外物)에 이끌리고

便動于中(편동우중) : 마음속에서 동요되면

自然事不合義(자연사불합의) : 저절로 일이 의리에 합치되지 않아,

未免枉道而徇人(미면왕도이순인) : 자신의 도를 굽혀서 다른 사람을 따르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되는 법이다.

吾平生每思直道行已(오평생매사직도행이) : 나는 평생 매번 도를 바르게 하여 실천하기를 생각하였으니,

雖死無悔(수사무회) : 비록 죽더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

而猶不能不爲外物所動(이유불능불위외물소동) : 그런데도 오히려 외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是吾剛斷不足(시오강단불족) : 이것은 나의 강단(剛斷)이 부족하여

而私意惑之也(이사의혹지야) : 사사로운 뜻에 미혹된 것이다.” 하였다.




嗚呼(오호) : 아,

斷斷自信(단단자신) : 한결같이 자신만을 믿고서

以直取禍(이직취화) : 곧게 나아가다가 화를 취하는 것은

人之所以爲戒(인지소이위계) : 사람들이 경계로 삼는 바인데도

而先生則不悔也(이선생칙불회야) : 선생은 후회하지 않았다.

變情抑志(변정억지) :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뜻을 억누르며

隨俗雅化(수속아화) : 세속을 따르고 고상하게 지내는 것은

世之所謂達者(세지소위달자) : 세상 사람들이 통달하였다고 하는 것인데도

而先生則不屑也(이선생칙불설야) : 선생은 개의치 않았다.

顧瞻徘徊(고첨배회) : 또 뒤를 돌아보고 머뭇거리면서

擇好辭難(택호사난) : 좋은 것을 취하고 어려운 것은 피하는 것이

世之所謂智者(세지소위지자) : 세상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하는 것인데도

而先生則不爲也(이선생칙불위야) :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無怪乎世之人以先生爲執也(무괴호세지인이선생위집야) :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선생을 보고 고집스럽다고 하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其自謂相知者(기자위상지자) : 자기 스스로는 선생과 서로 잘 안다고 하는 자들도

亦以過剛(역이과강) :지나치게 강직한 것이

爲先生之病(위선생지병) : 선생의 병통이라고 하면서,

而不知忠信之實(이불지충신지실) : 충신(忠信)의 실제가

存諸中(존제중) :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고,

而孝友之道(이효우지도) : 효우(孝友)의 도가

本乎家(본호가) : 집안에서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則世果有知先生者乎(칙세과유지선생자호) : 러니 이 세상에 과연 선생을 아는 자가 있는 것인가.

存諸中本乎家者(존제중본호가자) : 그마음속에 보존되어 있고 집안에서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人未必知(인미필지) : 사람들이 반드시 알지도 못하였고,

而先生亦無求知於人(이선생역무구지어인) : 선생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則宜乎知德者鮮(칙의호지덕자선) : 그러니 선생의 덕을 아는 자가 드물며,

而知而信之者尤鮮矣(이지이신지자우선의) :덕을 알고서 믿는 자는 더욱 드문 것이 마땅하다.

及其奉命於搶攘顚沛之餘(급기봉명어창양전패지여) : 어지럽고 무너진 막바지에 왕명을 받들게 되어서는

勢如狂瀾(세여광란) : 형세가 마치 광란의 물결이 휩쓸자

一潰莫可隄防(일궤막가제방) : 한번 무너짐에 막을 도리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而先生以經幄宿儒(이선생이경악숙유) : 선생은 경악(經幄)의 노숙한 유신(儒臣)으로서

未嘗聞軍旅之事(미상문군려지사) : 군대의 일에 대해서는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只以誠意動人(지이성의동인) : 런데도 단지 성의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忠信感人(충신감인) : 그충신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켜,

能使慕義者輸心(능사모의자수심) : 의로움을 흠모하는 자들은 진심을 보이게 하고,

頑暴者從順(완폭자종순) : 완악하고 난폭한 자들은 순종하게 하였으며,

懦怠者激勵(나태자격려) : 나약하고 게으른 자들은 격동되게 하였다.

莫不歡趨鼓舞(막불환추고무) : 그리하여 모두들 고무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나오게 해서

與之同事(여지동사) : 함께 일하게 하였다.

而逃將潰卒(이도장궤졸) : 그리고 도망쳤던 장수나 흩어졌던 군사들도

亦皆震疊於風聲之下(역개진첩어풍성지하) : 모두 소문을 듣고 두려워 떨면서

爭自濯磨(쟁자탁마) : 앞 다투어 스스로를 갈고 닦아

爲國效死(위국효사)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였다

而擧措布置(이거조포치) : 선생은 거행하고 조처하는 것이

皆適機宜(개적기의) : 모두 기의(機宜)에 알맞았고,

賞罰號令(상벌호령) : 상벌을 행하고 호령을 내리는 것이

大服民心(대복민심) : . 백성들의 뜻을 크게 감복시켰다.

故協謀齊奮(고협모제분) : 그러므로 함께 협력하여 모의하고 일제히 떨쳐 일어나

不相畔渙(불상반환) : 서로 간에 멋대로 굴지 않았으며,

各展其力(각전기력) : 각자가 자신들의 역량을 펼쳐서

咸樹奇功(함수기공) : 모두 기이한 공을 세웠다.

卒能吹噓灰燼之餘(졸능취허회신지여) : 그리하여 마침내 모두 불타 버린 가운데에서 기운을 불어넣어

保全嶺右一帶(보전령우일대) : 영남 우도 일대를 보전함으로써

爲當日之莒墨(위당일지거묵) : 당시의 거묵(莒墨)이 되어

以基恢復之根柢(이기회부지근저) : 나라를 회복시킬 기반이 되게 하였다.

雖天奪其壽(수천탈기수) : 그러니 비록 하늘이 목숨을 빼앗아 가

大勳未集(대훈미집) : 큰 훈업(勳業)을 다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而扶持人紀(이부지인기) : 인륜의 기강을 부지하고

撑拄一方之功(탱주일방지공) : 한 지방을 버틸 수 있게 한 공은

反有大於汗馬之勞也(반유대어한마지로야) : 싸움터에서 싸운 것보다도 도리어 더 큰 것이다.

蓋嶺南之不胥爲夷(개령남지불서위이) : 대개 영남(嶺南)이 오랑캐 땅으로 되지 않은 것이

雖曰義士倡率之功(수왈의사창솔지공) : 비록 의사(義士)들이 의병을 일으킨 공이라고는 하지만,

而義兵之終始成就(이의병지종시성취) : 의병들이 종시토록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實由於先生血誠之動人(실유어선생혈성지동인) : 실로 선생이 성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감동시킨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晉城之不陷堅守(진성지불함견수) : 그리고 진주성(晉州城)을 함락당하지 않고 굳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

雖曰金時敏力戰之功(수왈금시민력전지공) : 비록 김시민(金時敏)이 힘껏 싸운 공이라고는 하지만,

而亦由先生指授策應之得宜也(이역유선생지수책응지득의야) : 역시 선생이 지휘하고 책응(策應)하는 것을 제대로 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其身存而能使一道人心(기신존이능사일도인심) : 살아 있을 적에는 온 도내 사람들이

倚爲長城(의위장성) : 장성(長城)처럼 의지하여

隨其去留而爲之輕重(수기거류이위지경중) : 공이 떠나고 머무는 데 따라서 크게 달라졌으며,

其身歿而能使大小士民(기신몰이능사대소사민) : 죽은 뒤에는 대소 사민(士民)들이

涕泣相弔(체읍상조) :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조상하여

至今歌思追慕之不已(지금가사추모지불이) : 지금까지도 선생을 생각하면서 추모하여 마지않게 하였다.

向之不知不信者(향지불지불신자) : 이에 지난날에 선생을 알지 못하고 선생을 믿지 않던 자들도

至此而翕然稱服(지차이흡연칭복) : 모두들 칭찬하고 탄복하게 되니,

無有不知而不信者矣(무유불지이불신자의) : 선생을 알지 못하고 선생을 믿지 않는 자들이 없어졌다.

世之君子(세지군자) : 이 세상의 군자들 가운데에는

平居則談道理(평거칙담도리) : 평상시에는 도리에 대해서 떠들다가도

危亂則失故步者(위란칙실고보자) :위태로운 경우를 당해서는 지난날에 걷던 길을 내팽개치는 자들이

比比焉(비비언) : 허다한데,

夷險一致(이험일치) : 평상시나 어려울 때나 절개를 한결같이 하고

臨大節而不可奪者(림대절이불가탈자) : 대절(大節)에 임해서도 지조를 빼앗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其惟先生之謂矣(기유선생지위의) : 오직 선생을 두고 이른 말이다.

先生嘗慨然歎曰(선생상개연탄왈) : 선생께서는 일찍이 개연히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丈夫生世(장부생세) :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

未聞大道(미문대도) : 대도(大道)에 대해 듣지 못하고서

生死於醉夢中者(생사어취몽중자) : 술에 취해 꿈속을 헤매는 상태로 살다가 간다면

可恥之甚也(가치지심야) :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幸以早得依歸(행이조득의귀) : 나는 다행히도 일찌감치 의귀(依歸)할 곳을 얻었는데,

未能卒業(미능졸업) : 학업을 끝마치지 못하고

絆馽名韁(반칩명강) : 명리(名利)의 굴레에 얽매여

坐成遲暮(좌성지모) : 그대로 늙은 나이에 이르고 말았는바,

每一念及(매일념급) : 한 생각이 이에 미칠 적마다

惕然汗下也(척연한하야) : 두려워 등에 땀이 흘러내린다.” 하였다.

乃卜築石門精舍(내복축석문정사) : 이에 석문정사(石門精舍)를 짓고는

永擬退休(영의퇴휴) : 영원토록 물러나 쉬려고 하였다.




優游於閒靜之地(우유어한정지지) : 조용한 곳에서 한가로이 지내면서

專心於學問之功(전심어학문지공) : 학문 공부에 뜻을 오로지 하여

以尋先師之遺緖(이심선사지유서) : 선사(先師)께서 남기신 학문을 계승하려던 것이

乃其志願也(내기지원야) : 선생의 뜻과 바람이었으니,

此志若遂(차지약수) : 이 뜻을 만약 이룰 수가 있었다면

則晩歲所就(칙만세소취) : 말년에 성취한 바를

詎可量也(거가량야) : 어찌 헤아릴 수나 있었겠는가.

而扶斯文淑後生(이부사문숙후생) : 사문(斯文)을 부식(扶植)하고 후생(後生)을 계도해 줌이

不止於此矣(불지어차의) : 여기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惜其時事艱虞(석기시사간우) : 그런데 애석하게도 시사(時事)가 어렵고 근심스러워서

主辱民愁(주욕민수) : 임금이 치욕을 당하고 백성들이 수심에 잠기게 되어,

黽勉於事去之後(민면어사거지후) : 일이 글러진 뒤에 힘써 일하다가

身殲於軍務之勞(신섬어군무지로) : 군무에 시달리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使不得卒遂其素願者(사불득졸수기소원자) : 그리하여 선생이 평소에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니,

豈徒爲先生之遺恨(기도위선생지유한) : 이것이 어찌 한갓 선생의 남은 한일 뿐이겠는가.

實是後學之不幸也(실시후학지불행야) : 실로 후학(後學)들의 불행인 것이다.




以上(이상) : 이상은

門人崔晛錄(문인최현록) : 문인 최현(崔晛)의 기록이다 .

先生稟質淸純(선생품질청순) : 선생께서는 품부받은 기질이 맑고 순수하였으며

中心愷悌(중심개제) : 마음속이 화락하고 단아하였다.

楣旣蚤(문도기조) : 도를 들은 것이 이미 빨랐고

講學有源(강학유원) : 학문을 강론한 것은 근원이 있었으며,

德渾而剛(덕혼이강) : 덕이 혼후하면서도 강직하였고

行篤而正(행독이정) : 행실은 독실하면서도 올발랐다.

樂取諸人而明於責己(악취제인이명어책기) : 다른 사람에게서 선을 취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데에 밝았으며,

喜聞其過而勇於徙義(희문기과이용어사의) : 자신의 허물을 듣기를 좋아하고 의(義)로 옮겨 가는 데에는 용감하였다.

惰慢之氣(타만지기) : 게으르고 나태한 기색을

不設於身上(불설어신상) : 몸에 나타내지 않았고,

鄙吝之萌(비린지맹) : 비루하고 인색한 마음을

不存於胸中(불존어흉중) : 가슴속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毅然有難犯之容(의연유난범지용) : 의연하여 범하기 어려운 모습이 있었고,

確然有不可奪之志(확연유불가탈지지) : 확연하여 빼앗을 수 없는 뜻이 있었다.

故覩形者(고도형자) : 그러므로 풍채를 보는 자들은

絶麤厲之習(절추려지습) : 추하고 사나운 습관을 끊었고,

覿德者(적덕자) : 덕스러운 모습을 보는 자들은

消非僻之心(소비벽지심) : 그릇되고 편벽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士林仰如山斗(사림앙여산두) : 이에 사림(士林)에서는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와 같이 우러러보았고,

朝野倚爲屛翰(조야의위병한) : 조야(朝野)에서는 주석(柱石)의 신하처럼 의지하였다.

治家有法(치가유법) :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 법도가 있었고,

男女有別(남녀유별) : 남녀 간에 구별이 있었다.

每正至朔望及家長上壽之日(매정지삭망급가장상수지일) : 매번 정초와 동지, 초하루와 보름날 및 집안 어른의 생신날에는

令子弟聚會堂上(령자제취회당상) : 자제들을 당 위에 모이게 한 다음,

丈夫處左西上(장부처좌서상) : 남자는 왼쪽에 자리하되 서쪽을 상석으로 하고,

婦人處右東上(부인처우동상) : 여자는 오른쪽에 자리하되 동쪽을 상석으로 하여,

序立參謁(서립참알) : 순서대로 서서 참알(參謁)하게 하였는데,

丈夫再拜(장부재배) : 남자는 두 번 절하고

婦人四拜(부인사배) : 여자는 네 번 절하게 하였다.

奴婢則惟於正朝序立羅拜(노비칙유어정조서립라배) : 노비들의 경우에는 오직 정초에만 순서대로 서서 한꺼번에 절하게 하였다.

一家之人(일가지인) : 이에 온 집안 사람들이

皆知事長揖遜之禮矣(개지사장읍손지례의) :  모두 어른을 섬김에 있어서 공손하게 읍하는 예를 알았다.

一日(일일) : 어느 날엔가

以劍分贈子弟曰(이검분증자제왈) : 자제들에게 검(劍)을 나누어 주면서 이르기를,

汝等知所以贈劍之意乎(여등지소이증검지의호) : “너희들은 내가 검을 나누어 주는 뜻을 알겠느냐?

須以此斬斷義利之關(수이차참단의리지관) : 모름지기 이 검으로 의(義)와 이(利)의 빗장을 깨뜨려서

以別其取舍也(이별기취사야) : 취하고 버릴 것을 구별하기 바란다.” 하였다.

壬辰(임진) : 임진년(1592, 선조 25)에

赴右監司時(부우감사시) : 숙부(叔父)께서 우도 감사로 부임할 때

自府鎭往拜辭于道側(자부진왕배사우도측) : 부진(府鎭)에서 나아가 길 옆에서 배사(拜辭)하였는데,

叔父顧謂曰(숙부고위왈) : 나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速還府鎭(속환부진) : “속히 부진으로 돌아가서

倡率鄕兵(창솔향병) : 향병(鄕兵)을 일으켜

無徒死也(무도사야) : 헛되이 죽지 말라.” 하였다.

叔父忠孝大節(숙부충효대절) : 숙부의 충효(忠孝)의 큰 절개는

著於國乘(저어국승) : 국사에 기록되고

銘諸人口(명제인구) : 사람들의 입에 전해지는 것이

雖或有所遺載(수혹유소유재) : 비록 더러 빠진 것이 있기는 하나,

而鳳凰翔于千仞(이봉황상우천인) : 천 길 높이 봉황이 날아오르고

轟雷馳乎白日(굉뢰치호백일) : 백일(白日) 아래에서 우레처럼 치달리니,

孰不知爲瑞世之表(숙불지위서세지표) : 그 누가 상서로운 세상의 표상이요

掀天之聲也(흔천지성야) : 하늘까지 울릴 소리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猥以家庭平日所耳擩而目染者言之(외이가정평일소이유이목염자언지) : 내가 집안에서 평소에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으로써 말한다면,

則嚮善之誠(칙향선지성) : 숙부의 선을 향하는 성심과

信道之篤(신도지독) : 도를 믿는 독실함은

如水必東(여수필동) : 마치 물이 반드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고

如矢注的(여시주적) : 화살이 과녁을 향하는 것과 같아서,

不以幽暗而或間(불이유암이혹간) : 외지고 어두운 곳이라고 해서 혹시라도 방심하지 않았고,

不以細微而或忽(불이세미이혹홀) : 자잘하고 하찮은 일이라고 해서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義利公私之分(의리공사지분) : 의리(義利)와 공사(公私)의 구분에 있어서는

毫釐不容不察(호리불용불찰) : 털끝만한 것이라도 살피지 아니함이 없었고,

事物應接之際(사물응접지제) : 사물을 응접할 즈음에는

情理各得其當(정리각득기당) : 정리(情理)가 각각 적당함을 얻었다.

故述古而推今(고술고이추금) : 그런 까닭에 옛것을 이어받아 지금에 미루어 나가고,

移孝而爲忠(이효이위충) : 효성을 옮겨서 충성을 하며,

夷險一節(이험일절) : .평상시나 험난할 때나 지조를 지켜

死生以之者(사생이지자) : 삶과 죽음을 한결같이 하였다.

誠可謂質諸鬼神而無疑矣(성가위질제귀신이무의의) : 이것은 진실로 귀신에게 물어 보아도 의심이 없을 것이다

以上(이상) : 이상은

從子涌錄(종자용록) : 조카 김용(金涌)의 기록이다.

先生敎人以書(선생교인이서) : 선생은 책으로 사람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硏究義理(연구의리) : 의리를 깊이 연구하여

開示蘊奧(개시온오) : 심오한 뜻을 열어 보였으며,

未嘗一字容易放過(미상일자용역방과) : 일찍이 한 글자도 쉽사리 지나치지 않았다.

食上(식상) : 식사를 올리면

諸生受業者請退(제생수업자청퇴) : 학업을 배우는 제생들이 그만 하기를 청하는데도

猶不許(유불허) : 오히려 허락하지 않으면서

或至日中乃罷(혹지일중내파) : 한낮이 되어서야 강(講)을 파하기도 하였다.

其誨人不倦(기회인불권) :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이

類如此(류여차) : 대부분 이와 같았다.

一日(일일) : 어느 날

先生坐於堂上(선생좌어당상) : 선생이 당(堂) 위에 앉아 있는데,

興孝入見(흥효입견) : 나 장흥효(張興孝)가 들어와 뵐 적에

信足而步(신족이보) : 터벅터벅 걷자,

先生責之曰(선생책지왈) : 선생께서 꾸짖기를,

行第一步(행제일보) : “첫 번째 발자국을 떼어놓으면서는

心在第一步上(심재제일보상) : 마음이 첫 번째 발자국을 떼어놓는 데 있고,

行第二步(행제이보) : 두 번째 발자국을 떼어놓으면서는

心在第二步上(심재제이보상) : 마음이 두 번째 발자국을 떼어놓는 데 있어야 한다.” 하였다.

斯可矣(사가의) : 이는 옳다

先生嘗謂人曰(선생상위인왈) : 선생께서 일찍이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知人雖難(지인수난) : “사람을 알아보기는 어려우나

觀其眸子(관기모자) :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則可庶幾乎(칙가서기호) : 거의 알 수가 있다.” 하였다.

柳西厓先生稱先生曰(류서애선생칭선생왈) : 서애 유 선생은 선생을 일컫기를,

求爲執鞭(구위집편) : “말채찍이라도 잡고자 하지만

不可得也(불가득야) : 할 수가 없다.” 하고,

先生稱柳先生曰(선생칭류선생왈) : 선생은 유 선생을 일컫기를,

吾之師表(오지사표) : “나의 사표(師表)이다.” 하면서,

互相推讓云(호상추양운) : 서로 간에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였다고 한다.

先生嘗與柳先生會話于古刹(선생상여류선생회화우고찰) : 선생께서 일찍이 유 선생과 옛절에서 만나 말을 나누었는데,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人臣進退之道(인신진퇴지도) : “신하로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도는

必於易得之(필어역득지) : 반드시 쉬운 데에서 얻을 수가 있다.” 하니,

柳先生曰(류선생왈) : 유 선생이 이르기를,

無欲則斯可矣(무욕칙사가의) : “욕심이 없으면 될 것이다.” 하자,

先生擊節歎賞(선생격절탄상) : 선생이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였다.

先生使日本(선생사일본) : 선생께서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舟中遇風(주중우풍) : 배 안에서 태풍을 만났는데,

鯨波洶湧(경파흉용) : 큰 파도가 솟구치자

一舟人眩迷顚仆(일주인현미전부) :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허둥대면서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도

獨先生兀坐看書(독선생올좌간서) : 선생은 꼿꼿이 앉아 책을 보았다.

旣歸(기귀) : 귀국한 다음

人咸服其不動心(인함복기불동심) : 사람들이 모두 선생께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에 감복하였는데,

先生笑曰(선생소왈) : 선생께서는 웃으면서 이르기를,

看書無乃動心乎(간서무내동심호) : “책을 본 것도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였다.

以上(이상) : 이상은

門人張興孝錄(문인장흥효록) : 문인(門人) 장흥효(張興孝)의 기록이다.




復起兄弟(부기형제) : 우리 유복기(柳復杞) 형제는

十歲前失怙恃(십세전실호시) : 10세 전에 부모님을 잃고

依養於外家(의양어외가) : 외가에서 자랐다.

先生撫育極恩愛(선생무육극은애) : 선생께서는 보살펴 주고 길러 줌에 있어서 은혜와 사랑을 지극하게 하여,  

凡飮食衣服訓誨之事(범음식의복훈회지사) : 음식이나 의복, 가르치는 일 등에 있어서

一如己子(일여기자) : 한결같이 자기 자식과 똑같이 하였다.

孤等旣定居水谷(고등기정거수곡) : 우리들이 이미 수곡(水谷)에 자리잡고 살 적에는

凡事草刱(범사초창) : 모든 일을 시작하는 단계라서

罔有紀極(망유기극) : 뒤죽박죽 두서가 없었는데,

先生尤加愍恤(선생우가민휼) : 선생께서는 더욱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었다.

每於猿谷往來之際(매어원곡왕래지제) : 매번 원곡(猿谷)에서 오가는 즈음에

雖昏暮忙遽(수혼모망거) : 비록 날이 저물어 황급한 가운데서도

必親到孤家(필친도고가) : 반드시 친히 우리들의 집에 오시어

先問安否(선문안부) : 먼저 안부를 물은 다음

次及祭祀之節(차급제사지절) : 제사(祭祀)의 절차를 물었다.

農作之事(농작지사) : 그리고 농사짓는 데 관한 일에 대해서는

嚴飭奴僕(엄칙노복) : 노복들을 엄하게 신칙하면서

指敎凡百(지교범백) : 모든 일을 지시해 주었다.

又以勅身勤學之意(우이칙신근학지의) : 또 몸가짐을 단속하고 학문을 부지런히 닦으라는 뜻으로

勉戒不置(면계불치) : 면려하고 경계하여 마지않으셨다.

孤等之粗辨魚魯(고등지조변어로) : 우리들이 대충이나마 글을 알고

保守田業(보수전업) : 땅과 가업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은

秋毫皆舅氏力也(추호개구씨력야) :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외삼촌의 힘이었다.

平生慕恩(평생모은) : 그러니 평생토록 그 은공을 사모하면서

感泣何極(감읍하극) :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先生休告時(선생휴고시) : 선생께서 휴가 중일 때

隣有一閒人頻頻來見(린유일한인빈빈래견) : 이웃에 한가롭게 지내는 어떤 사람이 있어서 자주 선생을 찾아와 뵈었는데,

先生問爾有老親(선생문이유로친) : 선생께서 묻기를,“자네에게는 노친이 계시는가?

何以爲養(하이위양) : 어떻게 봉양하는가?”하자,

其人曰(기인왈) : 그 사람이 말하기를,

家貧無以養(가빈무이양) : “집이 가난하여 봉양할 길이 없습니다.”하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께서 이르기를,

爾家雖貧(이가수빈) : “자네는 집이 가난하더라도

耕田獵水(경전렵수) :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으라.

朝夕奉養(조석봉양) : 아침저녁으로 봉양하는 것이

是乃子職(시내자직) : 바로 자식의 직분인데,

何以曰無可爲養(하이왈무가위양) : 어찌하여 봉양할 길이 없다고 하는가.

如我者(여아자) : 나와 같은 자는

違親仕宦(위친사환) : 부모 곁을 떠나 벼슬살이하고 있으므로

菽水之奉(숙수지봉) : 거친 음식으로나마 봉양하는 것도

未能親執(미능친집) : 직접 할 수가 없다.

雖食君祿(수식군록) : 이에 비록 임금의 녹을 먹고는 있지만

未足爲樂(미족위악) : 즐거운 줄 모르겠다.”하고는,

慨然久之(개연구지) : 오랫동안 탄식하였다.

其人感悟(기인감오) : 그러자 그 사람이 느껴서 깨닫고는

卒以孝養聞(졸이효양문) : 마침내 효성으로 봉양한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다.




門族之窮乏者(문족지궁핍자) : 집안 사람들 가운데 궁핍한 자가 있으면

盡力周救(진력주구) : 온 힘을 다해 돌보아 주었다.

如有隣邑守宰及知舊之人(여유린읍수재급지구지인) : 인근 고을의 수령이나 친구들이

以時物相饋者(이시물상궤자) : 철에 따라 나는 물품을 보내 주었을 경우에는,

義有不可則却之(의유불가칙각지) : 의리에 있어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은 즉각 물리치고,

義有可取則受之(의유가취칙수지) : 의리에 있어서 받아도 되는 것은 받았다.

雖一斛之米(수일곡지미) : 그리고는 한 말의 쌀이나

數尾之魚(수미지어) : 몇 마리의 물고기일지언정

皆卽分送于門族隣里(개즉분송우문족린리) : 모두 즉시 집안 사람들과 인근 사람들에게 나누어 보냈는데,

而亦必先貧後富焉(이역필선빈후부언) : 반드시 가난한 자부터 먼저 나누어 주고 부자들은 뒤로 하였다.




引進後生(인진후생) : 후생들을 이끌어 줌에 있어서

每勸其依本分著實做去(매권기의본분저실주거) : 매번 본분에 의거해서 착실하게 해 나가라고 권했으며,

未嘗輕語以性命之說(미상경어이성명지설) : 일찍이 성명(性命)의 설에 대해서는 가벼이 말하지 않았다.

家居(가거) : 집에 있을 때에는

晨起盥櫛(신기관즐) :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은 다음

整衣冠(정의관) : 의관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는

出坐廳事(출좌청사) : 대청에 나가 앉아서

區處家中凡百(구처가중범백) :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조처하였다.

次授諸生書訖(차수제생서흘) : 그런 다음에 제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으며,

整衽看書史(정임간서사) : 이를 마치고는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앉아서 서책을 보았다.

無故未嘗入內(무고미상입내) : 아무런 까닭 없이 내당(內堂)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으며,

財利之談(재리지담) : 재리(財利)에 대한 말은

不出於口(불출어구) :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以上(이상) : 이상은

門人柳復起錄(문인류부기록) : 문인 유복기(柳復杞)의 기록이다.




辛卯春(신묘춘) : 신묘년(1591, 선조 24) 봄에

通信使黃允吉(통신사황윤길) :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

金誠一等回自日本(금성일등회자일본) : 김성일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允吉還泊釜山(윤길환박부산) : 황윤길이 부산(釜山)에 도착해서

馳啓情形(치계정형) : 일본의 정세에 대해 치계(馳啓)하면서

以爲必有兵禍(이위필유병화) :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旣復命(기부명) : 복명(復命)한 뒤에

上引見而問之(상인견이문지) : 주상께서 인견(引見)하고 물으니,

允吉對如前(윤길대여전) : 황윤길의 대답은 앞서와 같았고,

誠一曰(성일왈) : 김성일은 아뢰기를,

臣不見其有是(신불견기유시) : “신은 그런 낌새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因言允吉動搖人心(인언윤길동요인심) : 인하여 황윤길이 인심을 동요시키는 것은

非宜(비의) : 마땅치 못하다고 하였다.

於是議者(어시의자) : 이에 의논하는 자들이

或主允吉(혹주윤길) : 혹 황윤길의 말이 옳다고 하고

或主誠一(혹주성일) : 혹 김성일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余問誠一曰(여문성일왈) : 이에 내가 김성일에게 묻기를,

君言與黃使不同(군언여황사불동) : “그대의 말이 황 상사의 말과 다른데,

萬一有兵(만일유병) : 만약 병란이 일어나면

將柰何(장내하) : 장차 어찌할 것인가?” 하니,

曰吾亦豈能必倭終不動(왈오역기능필왜종불동) : 김성일이 이르기를, “난들 어찌 왜놈들이 끝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마는,

但黃言太重(단황언태중) : 황윤길의 말이 너무 심하여

中外驚惑(중외경혹) : 중외(中外)가 놀라고 있으므로,

故解之耳(고해지이) : 이를 풀어준 것일 뿐이다.” 하였다.

出柳西厓懲毖錄(출류서애징비록) :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나온다.




宣廟甲午二月六日(선묘갑오이월륙일) :  선묘(宣廟) 갑오년(1594, 선조 27) 2월 6일의

朝講(조강) : 조강(朝講)에서

領府事金應南進曰(령부사금응남진왈)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응남(金應南)이 나아가 아뢰기를,

金誠一盡心嶺南之事(금성일진심령남지사) : “김성일이 영남에서 온 마음을 다한 일에 대해서는

當追贈(당추증) : 마땅히 추증하여야 합니다.”하니,

上曰(상왈) : 상이 이르기를,

此則然矣(차칙연의) : “그것은 그렇다.

但渠爲秀吉所欺(단거위수길소기) : 다만 김성일은 평수길(平秀吉)에게 속아

謂其不足畏(위기불족외) : 그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黃允吉則以爲可憂(황윤길칙이위가우) : 그런데 황윤길(黃允吉)은 두려워할 만하다고 하였으니,

此人却有見識(차인각유견식) : 이 사람이 도리어 식견이 있는 듯하다.”하자,

李恒福曰(리항복왈) : 이항복(李恒福)이 아뢰기를,

當時臣爲承旨(당시신위승지) : “당시에 신이 승지로 있으면서

見誠一(견성일) : 김성일을 만나

問日本事(문일본사) : 일본의 일에 대해 물어 보니,

誠一却深憂之(성일각심우지) : 김성일은 도리어 깊이 걱정하면서도

但云南方防禦諸事甚煩擾(단운남방방어제사심번요) : 단지 ‘남방(南方)은 방어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일이 몹시 번거로워

民心騷動(민심소동) : 민심이 소요해서

敵未至而將先潰(적미지이장선궤) : 왜적이 이르기도 전에 먼저 무너지게 생겼다.

故如是言之(고여시언지)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여서

欲以鎭伏人心耳(욕이진복인심이) : 인심을 진정시킨 것일 뿐이다.’ 하였습니다.”하였다.

出堂后日記(출당후일기) : 《당후일기(堂後日記)》에 나온다.




學有淵源(학유연원) : 학문에 연원이 있는 것은

能得師也(능득사야) : 능히 스승을 얻은 것이고,

行著家庭(행저가정) : 행실이 가정에서 드러난 것은

不違顔也(불위안야) : 어버이의 뜻을 어기지 않은 것이다.

節義動世(절의동세) : 절의(節義)가 세상을 진동시킨 것은

乘間氣也(승간기야) : 뛰어난 기운을 타고난 것이며,

盡瘁死國(진췌사국) : 온 정성을 다하다가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은

出天性也(출천성야) :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餘事文章(여사문장) : 문장을 짓는 일은 여사(餘事)로 하였으나

從韓陸來(종한륙래) : 한유(韓愈)나 육지(陸贄)로부터 나왔다.

不朽芳名(불후방명) : 그러니 아름다운 이름이 썩지 않아

幷山岳存(병산악존) : 산악과 더불어 나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出李松巖文殊志(출리송암문수지) : 송암(松巖) 이노(李魯)의 《문수지(文殊志)》에 나온다.




萬曆辛巳春(만력신사춘) : 만력(萬曆) 신사년(1581, 선조 14) 봄에

公謂從姪山立曰(공위종질산립왈) : 공(公 최현(崔晛)을 가리킴)이 종질(從姪)인 나 최산립(崔山立)에게 이르기를,

居是邦(거시방) : “이 지방에 살면서

事其賢大夫禮也(사기현대부례야) : 이 지방의 어진 대부(大夫)를 섬기는 것이 예이다.

鶴峯先生(학봉선생) : 학봉 선생은

今之賢大夫(금지현대부) : 오늘날의 어진 대부인데,

同道而不得見(동도이불득견) : 도(道)는 같으면서도 만나 보지 못하였으니

可愧也(가괴야) : 부끄럽다.” 하였는데,

白公見龍適在座曰(백공견룡적재좌왈) : 백공 현룡(白公見龍)이 마침 그 자리에 있다가 말하기를,

汝欲觀金某乎(여욕관금모호) : “그대는 김성일을 만나 보고자 하는가.

此吾同門友也(차오동문우야) : 그 사람은 나의 동문 벗이다.

目今居廬于花山之臨河縣(목금거려우화산지림하현) : 현재 화산(花山)의 임하현(臨河縣)에서 여묘살이를 하고 있는데,

士子之負笈往從者皆拒之(사자지부급왕종자개거지) : 책을 싸 짊어지고 가서 공부하려는 선비들이 있어도 모두 거절하고 있다.”하자,

公曰(공왈) : 공이 말하기를,

柰何(내하) : “어찌하면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하니,

白公曰(백공왈) : 백공이 말하기를,

第躡我後(제섭아후) : “나의 뒤만 따라오라.”하였다.

公共白公至臨河(공공백공지림하) : 이에 공이 백공과 함께 임하현에 이르러

投拜于廬所(투배우려소) : 여묘살이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절한 다음,

敷衽而前曰(부임이전왈) : 옷자락을 펼치고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蒙學小生(몽학소생) : “아무것도 모르는 소생이

無所依歸(무소의귀) : 의귀(依歸)할 데가 없어서

獲拜先生(획배선생) :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願承敎誨(원승교회) :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하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南州賢士(남주현사) : “남쪽에는 어진 선비가

不爲不多(불위불다) : 적지 않을 것이다.

子苟誠矣(자구성의) : 그대는 참으로 성실하니  

何患無師(하환무사) : 스승이 없을 것을 걱정할 것이 없다.

哀疚草土(애구초토) : 현재 여묘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니,

非講學討論之時(비강학토론지시) : 강학하고 토론할 때가 아니다.”하였다.

公曰(공왈) : 이에 공이 말하기를,

嚴不敢更請(엄불감경청) : “말씀이 엄하여 감히 다시 청할 수가 없습니다.

願在別齋(원재별재) : 바라건대 별재(別齋)에 머물면서

隨子弟學焉(수자제학언) : 자제들과 함께 배웠으면 합니다.”하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癡劣輩(치렬배) : “어리석은 아이들이라

不可爲益友(불가위익우) : 도움 되는 벗이 되지 못할 것이고,

齋舍阨陋(재사액루) : 재사(齋舍)가 비좁고 누추해서

難留遠人柰何(난류원인내하) : 먼 데서 온 사람을 머물러 있게 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하였다.

伯氏藥峯先生曰(백씨약봉선생왈) :  그러자 선생의 백씨(伯氏)인 약봉 선생(藥峯先生)이 말하기를,

此人雖少(차인수소) : “이 사람이 비록 어리기는 하나

以是心來(이시심래) : 이와 같은 마음으로 찾아왔으니,

姑留以答其意(고류이답기의) : 우선은 머물러 있게 해서 그의 뜻을 들어주는 것이

可也(가야) : 좋겠다.” 하였다.

遂處齋舍(수처재사) : 이에 드디어 재사에 거처하면서

與子弟朝夕侍見數月(여자제조석시견수월) : 자제들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몇 달 동안을 곁에서 모시면서

益聞所不聞(익문소불문) : 평소에 듣지 못하였던 학설을 더욱 듣게 되었다.

乃知先生之學(내지선생지학) : 이에 선생의 학문이

踐履克治(천리극치) : 몸소 실천하여 사욕을 이겨내고

鞭辟近裏(편벽근리) : 투철하게 탐구해서 정미한 데로 깊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問人(문인) : 선생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물을 때에는

不問其才而問其行(불문기재이문기행) : 그 사람의 재주를 묻지 않고 행실을 물었으며,

勸人(권인) : 다른 사람을 권면함에 있어서는

不先其文而先其實(불선기문이선기실) : 꾸밈이 아닌 실제를 우선으로 하게 하였다.

嘗謂公曰(상위공왈) : 일찍이 공에게 이르기를,

姿質旣美(자질기미) : “자질이 이미 아름답고

前程又遠(전정우원) : 앞길이 또한 머니,

子勉哉(자면재) : 그대는 힘쓰라.”하니,

公對曰(공대왈) : 공이 대답하기를,

質鈍才短(질둔재단) : “자질이 둔하고 재주가 부족하니,

恐朽木之難雕也(공후목지난조야) : 아마도 썩은 나무와 같아 아로새기기가 어려울까 염려스럽습니다.”하였다.

先生曰(선생왈) : 그러자 선생이 이르기를,

人患立志不誠(인환립지불성) : “사람은 오직 뜻을 세우는 데 성실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지,

何患才不足乎(하환재불족호) : 재주가 혹 부족한 것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有才不免爲小人(유재불면위소인) : 재주가 있더라도 소인이 되는 경우가 있으며,

無才不妨爲君子(무재불방위군자) : 재주가 없더라도 군자가 되기에는 방해되지 않는 법이다.

在所學之爲己爲人耳(재소학지위기위인이) : 이는 단지 학문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느냐,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하였으며,

又曰(우왈) : 또 이르기를,

毋自欺三字(무자기삼자) :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무자기(毋自欺)’ 세 글자는

須終身佩服(수종신패복) : 모름지기 종신토록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爲善去惡(위선거악) :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있어서

一有不誠(일유불성) : 한번이라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則皆自欺也(칙개자기야) : 이는 모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하였다.

曰善惡何以實見得(왈선악하이실견득) : 공이 또 묻기를,“선과 악을 어떻게 하면 실제로 보아 알 수가 있습니까?”하니,

曰義利公私之分(왈의리공사지분) :  선생이 이르기를,“의(義)와 이(利), 공(公)과 사(私)의 구분은

不可不嚴(불가불엄) : 엄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毫忽之微(호홀지미) : 털끝만큼의 미묘한 차이가 ,

遠於千里(원어천리) : 끝에 가서는 천 리나 멀어지게 되니,

在學而明之耳(재학이명지이) : 학문을 해서 밝히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하였다.

曰學則何先(왈학칙하선) : 공이 또 묻기를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하니,

曰善哉問(왈선재문) : 선생이 이르기를,

學不在章句文詞之間(학불재장구문사지간) : “참 잘 물었다. 학문은 장구(章句)나 문사(文詞)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只向日用事物上求之(지향일용사물상구지) : 단지 일용(日用) 사물(事物)의 위에서 구하는 것이니,

所謂事上學也(소위사상학야) : 이것이 이른바 사물에서 배운다고 하는 것이다.

其本在於主忠信先孝悌(기본재어주충신선효제) : 그 근본은 충신(忠信)을 위주로 하고 효제(孝悌)를 우선으로 하는 데 있으며,

而其要只在收放心(이기요지재수방심) : 그 요체는 단지 방심(放心)을 수습하는 데 있다.

自灑埽應對(자쇄소응대) :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至於齊治平(지어제치평) :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其節目次第(기절목차제) : 그 절목의 차례와

工夫先後(공부선후) : 공부의 선후가

如示諸掌(여시제장) :손바닥을 보듯이 아주 쉬우니,

在乎循序漸進(재호순서점진) : 순서를 따라서 점차적으로 나아가고

深玩實體而已(심완실체이이) : 깊이 완미하여 실제로 체득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하였다.

出崔訒齋年譜(출최인재년보) : 인재(訒齋) 최현(崔晛)의 연보(年譜)에 나온다.




遠近請學者(원근청학자) : 근에서 배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

充衍堂宇(충연당우) : 원집안에 그득하였는데,

終日講劘(종일강마) : 종일토록 강마하면서도

了無倦容(료무권용) : 끝까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或辨析義理(혹변석의리) : 그러면서 의리를 분석하거나

或揭示往行(혹게시왕행) : 혹 선현들의 덕행을 예로 들면서,

勉之以孝悌敬信之道(면지이효제경신지도) : 효제(孝悌)와 경신(敬信)의 도리로써 권면하여

欲人之必立於無過之地(욕인지필립어무과지지) : 사람들을 반드시 허물이 없는 자리에 세우려고 하였다.

故從而受業者(고종이수업자) : 그러므로 공을 따르면서 학업을 배우는 자들은

雖材質最下(수재질최하) : 비록 자질이 낮더라도

而便能知自豎立(이편능지자수립) : 능히 수립할 줄 알았다.

以下(이하) : 이하는

拾遺(습유) : 습유(拾遺)이다.




人有過失(인유과실) : 남에게 과실이 있을 경우에는

雖面斥不諱(수면척불휘) : 비록 면전에서 숨김없이 곧바로 지적하였으나,

而至誠開道(이지성개도) : 지성껏 이끌어 주어

欲其改過(욕기개과) : 허물을 고치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故不敢深怨(고불감심원) : 감히 깊이 원망하지는 않았다.




有知先生者(유지선생자) : 선생을 아는 어떤 자가

從容謂曰(종용위왈) : 선생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邇來上下相蒙(이래상하상몽) : “근래에는 상하의 사람들이 서로 덮어 주면서

罕見直言(한견직언) : 직언(直言)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

公獨不顧時變(공독불고시변) : 공은 홀로 시변(時變)을 돌아보지 않고

抗顔爲之(항안위지) : 얼굴을 꼿꼿이 세우고서 직언하니,

豈非士類之慶也(기비사류지경야) : 이 어찌 사류(士類)들의 경사가 아니겠는가.”하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이 이르기를,

吁是何言也(우시하언야) : “아, 이것이 무슨 말인가.

古之事君者(고지사군자) : 옛날에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은

期於引君當道(기어인군당도) : 임금을 인도하여 도(道)로 나아가게 하기를 기필하였는데,

今之事君者(금지사군자) : 오늘날에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은

知而不言(지이불언) :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言而不盡(언이불진) : 말하면서도 다 말하지 않는다.

我亦未免有此失(아역미면유차실) : 나 역시도 이런 잘못이 있음을 면치 못하여

下負所學(하부소학) :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리고,

上負吾君(상부오군) : 위로는 우리 임금을 저버렸다.

吾子何相悉之不以古道也(오자하상실지불이고도야) :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옛날의 도로써 서로 다 말해 주지 않는가.”하였다.

嘗卄牧遞還(상이라목체환) : 일찍이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다가 체차되어서 돌아올 때

入鄕射堂(입향사당) : 향사당(鄕射堂)에 들어가 묵었는데,

適無座首(적무좌수) : 마침 좌수(座首)가 없었다.

先生命定寢所于別監房(선생명정침소우별감방) : 선생께서 침소(寢所)를 별감(別監)의 방에다 정하도록 명하니,

諸人請曰(제인청왈) : 여러 사람들이 청하기를,

鄕堂以座首房爲尊(향당이좌수방위존) : “향당에서는 좌수 방이 높은 방인데,

舍尊處而占次房未安(사존처이점차방미안) : 높은 방을 버려두고 그 다음 방을 차지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하였다.

先生曰(선생왈) : 그러자 선생이 이르기를,

不然(불연) : “그렇지 않다.

鄕堂父老所會(향당부로소회) : 향당은 부로(父老)들이 모이는 곳이다.

旣無主人(기무주인) : 이미 주인이 없으니

不可偃然自處尊位(불가언연자처존위) : 편안한 마음으로 높은 자리에 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였다.

子弟將侍寢(자제장시침) : 자제들이 장차 잠자리를 모시려고 하자,

先生顧謂曰(선생고위왈) : 선생이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爾等未參鄕錄(이등미참향록) : “너희들은 향록(鄕錄)에 들어 있지 않으니,

宿此未安(숙차미안) : 이곳에서 자는 것은 온당치 않다.

宜出他所(의출타소) : 다른 곳에 나가서 자고

待明入來可也(대명입래가야) : 내일 아침에 들어오라.” 하였다.

先生嘗敎門生(선생상교문생) :  선생께서 일찍이 문생(門生)들을 가르치다가

至宋史富弼使契丹傳(지송사부필사계단전) : 《송사(宋史)》의 부필(富弼)이 거란(契丹)에 사신으로 간 부분의 전기(傳記)에 이르자,

三復朗誦(삼부랑송) : 세 번이나 낭송하고는

擊節而歎曰(격절이탄왈) : 무릎을 치면서 탄식하기를,

爾輩知之乎(이배지지호) : “너희들은 알겠느냐?

富公單車入不測之虜庭(부공단차입불측지로정) : 부공(富公)이 홀로 수레를 타고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오랑캐 궁정에 들어갔는데도

而能毅然不屈(이능의연불굴) : 굴하지 않고 의연함을 지켜

尊重國體(존중국체) : 나라의 체모를 중하게 하였다.

大丈夫遇變亂(대장부우변란) : 대장부가 변란을 만나서는

當如是矣(당여시의) :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하였다.




壬辰之亂(임진지란) :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先生妻子(선생처자) : 선생의 처자식들이

自京流到利川境(자경류도리천경)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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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간에 자판을 두드리고 계시는 아재,할배께서 바로 "작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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