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두향과의 애톳한 사랑 이야기를 대하면 저희 퇴계학파 후예들은 그냥 빙그레 웃습니다. 寀는 외증조부 농감일과 봉제사를 위해 의령에 머물렀고 정비석이 퇴계가 두향과 연애를 했다는 1548년 2월, 바로 그 매화가 필때 둘째 아들 寀가 저승으로 떠난 달입니다. 이희대가 쓴 <퇴계문인록> 같은 책이 있긴 합니다. 아내를 내?은 사람들과는 사업도 안합니다. 家規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전 한전사장인 제고종형은 지금도 형수에게 꼭 예대를 합니다. 한국지자제의 폐해일 뿐입니다. 어느 구석 제가 읽지 않은 두향의 이야기가 묻혀 있는지 다시 한번 |
태원씨의 그 博聞强記, 저는 항상 깜짝 깜짝 놀랍니다.
정비석의 글 이전 뚜렸한 기록이 남아 있느냐가 관건인데
저는 퇴계선생님이 관기와 연분을 나눌 시간이 전연 아니라고 보는거지요.
후손들이 조상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기위해 노력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전체 퇴계의 삶을 볼때 誠實 하나인데 아내가 죽고 아들이 죽는 총중에
관비와 섬씽이 있었다는거는 저는 상상을 못합니다.
더 두고 저도 책들을 뒤적여 보지요.
확실한 자료, 부탁합니다.
퇴계가 두향을 그린 시나 글이 있으면 확실한것이겠지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깨쳐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창현아재나 태원형님 두분께서는 책 어지가이(안동말) 보십니다.
저는 (혹은 공부 하고싶으신 분들) 뭔책을 봐야 하는지 부터가 대중을 못하지요.
말하자면 대들보는 세워야 겠는데 축담을 뭘로 쌓아야 할지 기초의 개념이 없으니까요.
간혹 후진들에게 필독 할만할 서적을 나열해 주시지요.
어느 사건을 알려면 이책을 봐라~
어떤 사상은 이책에서 잘 나타나 있다~
정통학술도 좋지만 조금 빗나간듯 해도 볼만한 책은 이런게 있다~
하는 식으로요..
씨야 아재의 반짝이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과문하지만 아재의 글월 읽고 감동하였습니다.
특히 아재의 "퇴계에게 단양군수 아홉달, 생의 가장 처절했던 시간 입니다. 핑크빛 사연은 정비석의 소설일 뿐이고 두향제는 한 건 해서 관광객을 호객하려는 한국지자제의 폐해일 뿐입니다. "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두향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의문 사항이 늘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퇴계 차종손 근필 씨는 함구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혹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차제에 씨아 아재의 명쾌한 해석은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참고로 정순목의 퇴계평전 p.132~133의 일부만을 옮겨 놓겠습니다. 아직도 이 아래 옮긴 대목이 유효하다고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두향에 관한 설화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소설가 정비석 씨의 소설 "杜香傳"[명기열절 22화로 조선일보에 연재] 이 신문에 연재되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연민 이가원[퇴계 14대 후손] 박사의 교시에 의하여 두향의 무덤을 쑥대밭 우거진 강선대의 숲속에서 다시 찾고, 두향에 관한 시를 수집하는 한편, 퇴계 십세 봉사손 고계 이휘녕 선생, 운산 이휘재 선생의 두향 추모시를 발굴 소개하였다. 더구나 위기에 처한 그의 무덤을 이장토록 군 당국에 건의하는 것 역시 비석 옹이다. 그는 시율에 능하였던 정절의 여류 예능인 두향을 4백 년 뒤에 다시 소생시켰을 뿐 아니라, 인정가화(人情佳話)의 소유자로서의 '인간퇴계'로 복권시킨 공적이 있다.
이제 창순가련의 여인 두향은 퇴계와 함께 노닐던 강선대 기슭, 절승의 터를 만년의 유택으로 삼고 또다시 전설의 신비한 옷자락 속으로 길이 향기를 뿜게 되었으며, 퇴계의 후손에 의하여 해마다 제향을 받드는 퇴계가의 연인이 되고 있다. 동반하던 퇴계 16대 주손 근필(根必) 교장의 귀띰으로는, 퇴계 산성의 소임은[퇴계모소의 수호와 관리, 시향을 받드는 유사, 후손으로 선출함] 해마다 퇴계묘소의 시월 묘사가 끝나면 이곳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