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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다른 인종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미국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미국 고유의 예술은 미술계에서는 스튜아트 데이비스(Stuart Davis, 1892~1964)에 의해, 그리고 음악계에서는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 1898~1937)에 의해 그 출발점을 찾는다. 그리고 이들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당시 미국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재즈였다. 재즈에서 탄생한 미국식 예술 거슈인은 맨해튼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흑인들의 생활과 음악을 접했다. 그는 재즈 등 흑인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클래식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당시 큰 이변을 일으켰고 ‘Summertime’, ‘It Ain’t Necessarily So’ 등 많은 히트 곡을 탄생시켰다. 그는 음악에서 유럽의 클래식과 미국의 재즈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거슈인은 “재즈는 미국에 축적되어있는 에너지의 결과이다. 재즈는 거칠고 서민적인 힘을 지닌 음악이다”라고 말할 만큼 재즈가 당시 미국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었다. 거쉬인과 마찬가지로 데이비스 역시 재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데이비스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16세에 뉴욕으로 옮겨 로버트 헨리를 사사했다. 그는 뉴욕에 거주하는 동안 맨해튼의 밤 문화를 접하면서 당시 새로운 음악인 블루스, 스윙 등을 들으며 그림의 주제를 찾았다. 데이비스는 1930년대 스윙이 미국을 강타하며 재즈가 부상했을 당시 대중매체를 통한 재즈의 파급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1938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윙 랜드스케이프’는 재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반영했다. 이 그림은 재즈의 테마와 즉흥 연주처럼 리드미컬함과 다채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글로체스터의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구현해 재즈가 미국 전역에 퍼져있음을 나타냈다. 재즈는 더 이상 흑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미국인의 음악임을 표현하고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결합 |
무성 | 재즈에 관한 글을 가끔올려주는 김창현동문이 우리 사이트에서 재즈앰버사더역활을 해주는것 같아 마음이 흐믓합니다. |
김창현 | 제게 재즈앰버사더란 꼬리표는 참 어울리지 않습니다. 재즈, 아니 음악에 대해 저는 너무너무 문외한 입니다. 제 아들과 막내여동생이 재즈에 일가견을 갖고 있지만 저는 사돈의 팔촌 이었습니다. 아들은 대학 다닐때 전공이 Biochemistry였지만 부전공이 음악 이었기에 재즈에 무척 빠져 들었고 지금 환갑을 바라보는 막내여동생은 피아노를 하는데 재즈연주가 자칭 한국 일인자 였습니다. 미국을 알려면 재즈에 대해 뭘좀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해 무성이나 허영옥씨, 이태식씨등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겨울 파리를 방문했습니다. 1차대전 이후 파리로 건너와 센느강 좌안에 자리잡은 미국예술인들의 족적을 더듬었습니다. Fleurus 27번지에 둥지를 틀고 피카소, 헤밍웨이, 에즈라파운드, 피츠제랄드... 듣등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여왕벌 거투르드 스타인Stein을 생각하며 피츠제랄드의<재즈시대 이야기 Tales of the Jazz age>란 어떤거 였으며<잃어버린 세대Une Generation Perdu>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천착을 했습니다. 스캇 피츠제랄드는 길을 잃은 젊음의 시대를 <재즈시대>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의 젊음이란 운명이 형성되는 단계이자 꿈이 현실화되는 시점, 환상과 환멸이 교차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재즈의 시대란 계약결혼과 열광적인 재즈댄스와 密酒의 시대였으며 자유분방한 말광양이 아가씨와 모피코트가 심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즈시대는 미몽에서 깨어나 회의하는 시대고 실패한, 상처입기 쉬운 낭만주의가 질서와 진보라는 오래된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하는 시대 였습니다. <잃어버린 세대>란 스타인의 차수리를 맡겼던 정비공장의 주인 입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정비공이 하도 꾸물대며 며칠째 스타인의 차수리를 안해 주자 공장주인이 정비공에 뱉은말. 저는 스타인이 퍼뜨린 <잃어버린 세대>와 피츠제랄드가 말하는 <재즈시대>가 뭐가 다른지 궁금증을 갖고 파리에서 돌아 왔습니다.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란 영화때문에 요즘 다시 Fitzgerald의 <재즈시대>가 떠오르는 시간 입니다. 별로 부자집 도련님이 아니면서 프린스톤에 입학하여 묘한 열등감과 씨름해야 했던 피츠제랄드와 미국 양반문화가 아니였던 Jazz가 지녔던 열등감 사이에는 어떤강이 흐르고 있는지 이제 부터 더듬어 보아야할 시간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