蔚珍

김창현
 


蔚珍은

신라엔 逆鄕이고

일본인에게는 母鄕 이다.


서기 524년.  실직국悉直國의 한 구성원이었던 울진사람들은 목숨걸고 신라에 저항, 독립을 원했다. 속국생활 400여년, 이젠 노예奴人처지를 진심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울진은 부족국가 시절 원래 파단국波但國이라 불렀으나 삼척에 있던 실직국에 통합당해 파사왕 23년, 서기 102년 신라에 복속 되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에 놓인 지정학적 비애였다.

봉기는 모즉지 매금왕 牟卽智 寐錦王으로 불린 신라 법흥왕에 의해 무참히 진압 되었다.

1400여년이 지나도 울진 사람들에겐 그 저항정신이 큰 강물처럼 도도히 구비치고 있다. 해방뒤 한국전쟁이 끝날때 까지 울진의 깊은 산세는 좌익 빨찌산들의 뒷마당 이었고  TK 일원 이지만 지금도 울진가서 DJ를 부를때 선생님 소리를 빼면 싸늘한 눈초리를 면할길 없다. 표는 민주당에 쏟아지고 김대중대통령 첫 청와대 비서실장도 울진출신 이었다.


일본국보 1호.

교토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다.

이게 서기 623년 울진서 간것 이다. 日本書記에 “봄에 서거한 태자를 기린 금부처가 7월에 도착했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은 금이 다 벗겨지고 나무결이 드러났지만 원래는 금이 입혀져 있었다. 1970년 어느 여자 미술대학생이 껴안아 팔이 부러진 사건이 벌어 졌는데 그때  X-ray도 찍고 일본은 국보 1호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끝냈다. 1300여년 동안 여러번 수리한 사실도 찿아 냈다. 일본최고의 고미술복원 전문가 다까하시 준부는 일본인은 만들 기술이 없었다고 밝히고 <成人幼兒 同存化表現>이란 유명한 글을 남겼다. “성인의 입술 윤곽, 눈을 크게 뜨면 아기 모습, 작은 코와 입술은 어린이고 턱은 아이가 젖을 먹을때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적었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 Karl Jaspers는 이 일본국보 1호를 보고

“진실로 완벽한 인간실존의 최고경지를 조금의 미혹도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라고 썼다.

이철학자가 처음 거론한 것은  그리스와 로마 神像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초월하지 못한 지상의 인간체취를 지닌것“ 이라고 낮추어 말했다. 神性의 아름다움과 합리성의 이상적 표현으로 만들어진 그리스 神像 조차 이 실존주의 철학자에게는 너무 세속화되어 보였다. 나아가 그는 기독교미술에서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서 보는 것 같은 인간 실존의 순수한 환희를 찿을수 없었다. 야스퍼스는 세계미술사를 들춰 보다가 완벽한 표현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기준에 합당한 이 반가사유상을 찿아 낸것이다.

그런데 이 일본국보 1호와 똑 같은 모양의 반가사유상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83호 금동삼산관 미륵반가사유상 이다. 일본국보1호와 한국국보83호, 두 반가사유상은 보관도 같고 손가락 꾸부린 형상, 흘러내린 천의, 앉은 모양 모두 같다. 일본국보1호는 Made in 蔚珍, 한국국보83호는 울진 옆  안동 출토다.

나는 일본국보 1호, 한국국보 78호, 83호가 같은 작가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란 의심을 씼을길 없어 아직도 관련 글들을 찿고있다. 국보78호는 보관이 좀 다르고 앉은 모습도 차이가 나지만 천의 모습과 주름은 유사하고 손가락과 꾸부린 상반신은 똑같다.

내가본 어느 논문이나 글에서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란 주장을 못찿았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동반가사유상 10여구와 경주박물관 소장 몇구도 한일 국보와 너무나 닮았다.


이 일본국보 1호는 울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에 의해  급서한 섭정 쇼토쿠聖德 태자를 애도하기 위해 고류지廣隆寺에 봉안 되었다. 일본 7대 사찰의 하나인 고류지廣隆寺는 신라에서 간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가 603년에 세운 절 이다. 당시 일본은 친백제 반신라 노선을 취했고 성덕태자聖德太子 자신도 백제계 후예였지만  불심이 깊어 한반도와 일본간의 우호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신라를 공격하려는 일본내의 세력을 견제했다. 이 때문에 秦河勝과 聖德태자는 같은 정치노선을 걸었고  태자가 48세로 홍역에 걸려 갑자기 죽자 고향 울진에 급히 연락, 청동이나 금동으로 만들기엔 시간이 촉박하니까 우선 울진 적송으로 먼저 깎아간게 이 일본국보 1호다.


여기서 우리는  미륵과 반가사유상의 변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석가釋迦 당년엔 불상 이라는게 없었다. 불교가 간다라(파키스탄)에 전파 되므로 더디어 불상이 등장한다. 원래 사막인인 페르시아의 후예들이 산 간다라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를 받아 불교와 그리스 조각과 또 자기들의 고유 종교였던 조로아스터Zoroaster교를 융합, 찬란한 간다라불교, 간다라 미술을 창출한다.

한국 불교의 99%는 중국을 거쳐 이땅에 들어온 간다라 불교다. 간다라불교의 특징은 공空사상을 정립한 중관파中觀派의 비조 용수Nagarjuna, 유식唯識사상의 대성자 무착無着 세친世親형제를 거쳐 위대한 대승大乘사상 체계를 정립 시킨것이다.

또 우리가 아주 눈여겨 보아야 할것은 대승불교의 관세음, 아미타, 미륵, 지장보살의 원 뿌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아나히타,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 스다오시오神  이란 사실이다. 심지어 문학 이야기지만 단테의 神曲도 연옥 부분만 빼고 조로아스터교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빼낀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아나히타神은 사막에서 물을 찿아 헤매는 사람을 구해주는 구원의 신이기에 관세음보살상도 대부분 물가에 선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을 보라.

원래 반가사유상은 간다라에선 관세음반가사유상 이다.

이걸 미륵반가사유상으로 바꾼것은 백제인들의 독창성 이다.

미륵사상에는 도솔천에 상주하기를 바라는 상생上生신앙과 미륵이 인간세계로 내려오기를 바라는 하생下生신앙, 두형태가 있다.

백제는 위로는 고구려, 동으로 신라와 마주하며 마한까지 통합하고 일본과 혈맹관계를 맺어보지만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 때문에 반가사유상에 미륵의 하생신앙을 결합했다.

이게 신라로 넘어가서 적극적이고 아주 긍정적인 신앙으로 바뀐다.

특히 전투에 나서는 화랑들은 미륵을 수호신으로 여겼고 반가사유상의 미륵을 애지중지 했다. 조그마한 미륵 반가사유상이 대량 제작되어 마치 가톨릭의 성 크리스토퍼 메달처럼 화랑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으로 변모했다. 아울러 김유신도 사다함斯多含도 모두 미륵의 화신으로 일컬어 졌다.

우리는 한일 두국보를 보며 신라인들의 미륵불에 대한 미학이 세계 누구도, 어느 불교미술도 따라 올수없는 높은 경지임을 확인한다.


끝으로 울진사람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에 대해 좀더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신라에서 이주해간 많은 직물기술자들의 우두머리였다. 이들의 직조기술은 일본을 놀라게 한 혁명적 수준이었고 부와 명예를 한손에 쥐게했다. 秦은 당시 교토 북쪽 30Km 밖 광대한 토지를 하사받았는데 오늘날 교토시 남단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 이었다. 간무천황桓武天皇시대에 와서 秦河勝은 이땅을 새로운 일본의 수도가 들어설 터로 다시 기증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매고 다녔던 아버지의 넥타이西陣織가 1300여년 이어온 그들 후예의 솜씨고 그들의 도시 太秦시 에는 도에이東映영화사 본사가 있고 모든 시대극이 제작되는 일본의 헐리우드다. 秦씨는 일본의 호족중의 호족이고 아직도 그 종손 秦康裕가 교토에 넓은 저택을 지키고 건재 하고 있다.


울진은 원전시설이 있고 우리에게 대게와 송이만 알려진 벽촌 같지만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사를 밝히는 봉평비鳳坪碑가 서있는 역사의 열쇠를 지닌 고장이다. 1988년 발견된 이 신라봉평비 398자에는 울진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한 사실과 일본으로 떠난 秦河勝의 고향이 울진임이 적혀있다. 지금은 일본인들이 꾸역꾸역 찿아오는, 우리가 모르는 일인들의 母鄕이고 공항도 건설중 이다.

김창현 Eugene C Kim   Aug 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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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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