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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地名]은 인류의 생활 터전이 되는 곳의 지형, 지물地物을 구분할 필요성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땅이름은 지구상에 있는 한 지점이나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며, 사회적 계약물의 특수한 언어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땅이름은 우리 선조의 의식과 생활모습이 소박하게 스며들어 있는 역사성을 지닌 문화유산인 것이다.
그 속에 우리말과 역사가 살아 숨쉬고, 명명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적 환경이 함축되어 있다.
땅 이름의 중요성은 1997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동해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일본해'로 변해버린 '동해'의 이름을 다시 우리의 바다로 바로잡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확인한데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일본해'를 무기 삼아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땅이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결국 영토관리측면에서도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땅이름의 변천과정
땅이름은 한번 붙여지면 그대로 존속하기도 하지만, 문자의 변형이나 음운의 변천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땅이름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정치체제의 변화, 취락 및 산업구조의 변화, 행정구역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땅이름 변천사에 큰 획을 그은 세 차례의 변천 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에는 한자 사용이 본격화됨에 따라 그 동안 우리말이 향찰식, 이두식으로 적어 왔던 땅이름의 표기를 일제히 한자화했다.
땅이름의 한자화는 중앙집권체제 강화의 필요에서 각기 상이하였던 삼국의 땅이름을 일률적인 형식으로 통일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졌다. 우리 말이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음音으로, 어떤 이름은 뜻[訓]으로 적게 되었다.
이때 종전의 길동현-영동현永同縣[길=永], 사열이현-청풍현淸風縣[사열; 사늘한 바람]과 같이 바꾸는 한편 벌말-평촌坪村, 한밭-대전大田 식으로 바꾸었다.
이 와 같은 땅이름의 개편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때 세 글자 이상의 토박이 말 땅이름이 오늘날과 같은 두 글자식 한자 땅이름으로 바뀌었다. 곧 모량부리(毛良夫里)-고창(高敞), 소부리(所夫里)-부여(扶餘) 같은 경우가 모두 이때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2) 일제시대
일 제는 1910년 조선을 강점하기 전인 19세기말부터 대륙침략과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조선의 지형도를 만들었으며, 우리 땅이름을 그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이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땅이름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얼을 묶는 중요한 무형적 재산이다. 
일제는 땅이름을 퇴색시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코자 1914년 3월1일 전국에 걸쳐서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했다. 이때 6만 개 가량의 마을이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1만 5천 개에 달하는 이름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때에 고쳐진 땅이름들의 모양을 보면, 먼저 '합성땅이름'으로, 병합되는 땅이름 중에서 한 글자씩을 뽑아 짜집기식으로 만든 경우이다. 은평구(당시 은평면)는 예전의 연은방(延恩坊)과 상평방(常平坊)에서 '은'과 '평'을 따 합성한 것이다.
또 옥인동의 경우 옥류동과 인왕동의 머리글자를 합성한 것이다.
둘째, 종전의 땅이름을 우리 고유의 뜻과 관계없이 같은 음이나 비슷한 음, 혹은 자기들이 많이 쓰는 쉬운 한자로 바꾼 경우이다.
'조개 우물'을 뜻하는 서울의 합정동(蛤井洞)을 '합정(合井)으로 바꾸고, 정읍시 농산동(農山洞)은 '농'자 위를 떼어내고 진산동(辰山洞)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본래 그 지역의 상징이나 의미와는 무관한 땅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이 오늘날 땅이름 연구에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2) 광복후

1945 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일제 때 바뀐 땅이름에 대해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땅이름 개편은 주로 도시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종전의 '구리개'[銅峴]을 일제가 그들의 어운어운을 따서 '황금정'(고가네마치: 黃金町)으로 바꾸었던 것을 다시 을지로로 고쳤고, '진고개'[泥峴]을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집단거주지라 하여 '본정'[혼마치: 本町]으로 바꾸었던 것을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로 고치는 등 땅이름의 개편이 있었다.
 그 러나 일제에 의해 고쳐진 수 많은 합성땅이름은 전국적인 땅이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해왔으며, 광복 50년이 되는 1995년에는 일제에 의해 고쳐진 잘못된 자연땅이름 등 50여개를 바로 잡는데 그치고 말았다.
 
땅이름의 특성
모 든 나라의 땅이름이 그러하듯이, 그 지역의 지형이나 위치, 지리, 기후, 산물, 교통관계와 같은 자연적 상태는 물론, 인물, 역사, 언어, 종교 등 인위적 상황을 포괄하여 땅이름을 붙이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땅이름은 몇 가지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우리말과 한자의 병용이다.
동 일한 장소가 백성들 사이에서는 소귀산(세귀산), 밤나무골, 새재, 진고개와 같은 이름으로 통용되는 한편 앙반사회나 문적(文籍)에는 우이산牛耳山 또는 삼각산三角山, 율곡栗谷, 조령鳥嶺, 이현泥峴으로 사용됨으로써 땅이름 표기의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두 음절 땅이름이 많다.
원 래 순수 우리말 표기에 따라 소리나는 대로 적다보니 통일신라 이전까지 고사부리, 모량부리, 달구벌, 황등야산 등의 고을 이름과 같이 세 음절 이상 되는 땅이름이 많았다. 그러나 통일 시라 이후 당나라식 지방관제 정비에 따라 대대적인 땅이름의 한자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고사부리-고부(古阜), 달구벌(達句伐)-대구(大邱)와 같이 두 음절식 땅이름으로 바뀌었다.
셋째, 땅이름의 변천성이다.
땅이름은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땅이름은 빈번한 외세의 침략과 정치적 변혁에 따라 많은 지명이 생성, 변천, 소멸의 과정을 거쳐 왔다. 서울의 경우, 백제 온조왕 때에는
위례성, 신라 때는 남한산주, 고려의 양주, 남경, 한양, 조선의 한성, 일제 때의 경성, 광복 후 서울 등으로 바뀌었다.
넷째, 종교, 도덕관계의 땅이름이 특히 많다는 점이다.
금강산, 문수봉, 관음굴 같은 이름은 불교적인 것이며, 삼청동, 삼선암, 선유봉 등은 도교적 이름이다. 그리고 예산읍, 의성군, 숭인동, 보신각 등은 유교의 5상(五常)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땅이름을 통해 교훈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새말, 새터, 남산,교촌 따위와 같은 땅이름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넓은 들'을 뜻하는 '판교(板橋)'라는 이름은 전국적으로 60여 개소가 넘게 분포하고 있다.
이밖에 풍수사상의 영향으로
형국론에 기인한 땅이름들이 전국 도처에 분포하고 있는 점도 우리 땅이름이 가진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팔도의 명칭과 뜻


경기도  경중미인(鏡中美人) = 거울속의 미인처럼 우아하고 단정하다


함경도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맹렬하고 악착스럽다


평안도  맹호출림(猛虎出林) = 숲 속에서 나온 범처럼 매섭고 사납다


황해도  석전경우(石田耕牛) = 거친 돌 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하고 억세다


강원도  암하노불(巖下老佛) = 큰 바위 아래에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


충청도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


전라도  풍전세류(風前細柳) = 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다


경상도  태산준령(泰山峻嶺) =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우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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