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 김동삼은 초명이 긍식肯植, 자字는 한경漢卿이다. 뒷날 이름을 동삼東三, 자를 성지省之, 별호를 일송一松으로 짓게 되는 것은, 일제 강점하 독립운동이라는 비밀활동의 편의를 위한 이유도 있었겠으나, 당신 스스로의 평생 지향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과 자, 별호를 그대로 나열하면 ‘동삼성지일송東三省之一松’, 곧 ‘동북 삼성의 한 그루, 청청한 소나무’라는 뜻이 된다.


 내앞 운천종가와 동쪽으로 담 하나를 격한 본제에서 귀봉공의 11대손 계락繼洛과 영해 신申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생가는 일송이 일가를 이끌고 도만한 후 풍우에 퇴락하자, 쓸쓸한 유지를 방치할 수 없다 여긴 먼 일가가 중수하여 지금까지 삼대를 이어 살고 있다. 구옥의 모습은 간 데 없지만 바로 이 터가 1907년 협동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하여 1909년 백산 안희제 서상일 등의 동지와 대동청년단을 결성하고 1911년 도만 이후의 불퇴전의 의지로 펼쳤던 항일구국활동의 태실이었다.


 1905년 일제가 을사 5조약을 늑결하자, 일송은 비분강개하여 보수의 구습을 혁파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몽사상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 29세 되던 1907년 이상룡 유인식 김후병 하중환 등의 인사와 함께 사립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교감으로 취임하였다. 또 계몽단체인 대한협회 안동지회의 설립에도 참여하였고, 대동청년단 단원으로 활약하는 등 안동지방의 계몽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다.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경술늑약 후 그는 국내에서의 국권회복운동이 한계를 맞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협동학교 제 1회 졸업생이 배출되자 서간도로 망명한다. 이 후부터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정열을 쏟아 유하현 삼원보에 설립된 자치단체 경학사에서 조직과 선전을 맡는 한 편, 경학사가 중국 현지인과의 화합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한 변장운동에 전념하여 중어학원을 설립하고, 이주한인들에게 중국어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일 간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중국과의 연합을 다방면으로 모색하다가 여의치 않자 독자적으로 혈전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부민단 간부들을 주축으로 백두산 서록에 백서농장을 꾸리고 장주로서 대일 무장투쟁을 준비하려 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그에 고무되어 서간도 일대에도 항일독립군단의 정비와 새로운 결성이 활발해지는데, 이 때 일송은 이상룡李象龍, 이탁李沰 등의 인물과 함께 유하현 삼원보에서 부민단을 한족회로 확대개편하고 서무부장을 맡았다. 한족회가 설립한 군정부가 상해 임시정부 관할하의 서간도 지구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로 재편되면서 참모장이 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송은 통의부 총장, 상해 국민대표회의 의장, 전만통일회의 의장, 정의부 외교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두 차례나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만주에서의 대일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데 전념하겠다는 표면상의 이유보다는 상해임정의 외교중심 독립운동의 노선과 자신의 무장투쟁을 통한 국내 진공 노선이 상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28년에는 정의부 대표로서 김좌진, 지청천 등과 두 차례에 걸쳐 삼부통합회의를 진행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혁신의회 의장을 맡았으며 민족유일당 재만 책진회 중앙 집행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31년 일제의 침략으로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동지 이원일李源一과 함께 북만주로 가던 길에 일제의 경찰에 붙들려 형무소에서 순국할 때까지 그의 모든 활동은 그 자체로 만주일대의 독립투쟁의 확고한 기초가 되었다. 

 일송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자 그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른 사람은 만해 한용운이다. 일송의 옥중 서거 소식을 들은 만해가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통곡하자 만해의 제자 김관호가 그 연유를 물었다. 만해의 대답이 이러했다. “광복된 나라와 민족을 통합하고 이끌 유일무이한 지도자를 잃었으니 그 애통함이 이천만 동포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다.”(만해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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