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2년전 이야기 입니다.
      
      그 때 저는 법조출입 기자였습니다.
      1961년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이 정신을 좀 차리고 
      막 안정기에 들어서니까전국 형무소 (그때는 교도소가 아니었습니
      다)에 있는 사형수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 정권때부터 일부 특별한 정치범을 사형시킨것 이외에는
      대통령이 사형집행재가를 꺼려 전국형무소에서 처형을 안하니
      사형수가 참 많았습니다. 매일 사형대가 있는 전국형무소는 바쁘게 일정을 잡아 처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팔공산 빨지산 두목 남도부도 이때 김일성
      만세를부르고 사라져 갔습니다.




      사형은 일정한 확인 절차와 입회인이 필요로 합니다. 사형을 집행하는 주무 책임자는 형무소장이고 그는 명적부 확인이
      제일 큰 일 입니다.엉뚱한 사람 목매달면 큰일 이니까. 오탁근(吳鐸根) 검사라고 고검검사가 있었는데 제 중학교 선배라
      저를 무척 아껴주었습니다. 1980년 격동기에  법무부 장관을 두번이나 지낸 분입니다. 제가 술값 밥값도 무척 많이 얻어다 썼고. 그때만 해도 고검검사는 무척 한직이라 사형집행 입회 단골
      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사형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저를
      4차례나 사형집행장에 데리고 갔습니다. 사형수가 종교를 갖고 있으면 신부나 목사 스님이 집행에 앞서
      마지막 종교의식을 집전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시보 사장을
      하던 김수환 신부가 단골로 형무소를 드나들었습니다. 그 당시 그는 막 독일 뮌헨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와 한직인
      가톨릭시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수환 신부가 마지막 가는길을 집전했던 한 사형수가,
      형무관들이 포인트를 젖히는 순간, 사형 밧줄이 끊어져 사형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모두 당황해 사색이 되었는데 오히려 사형을 당하는 사형수가 "저 때문에 모두 놀라 대단히
      죄송하다"며 달래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사형대가 일제 초기에 만들어 진거라 세월에 삭고 삭아 끊어진것
      입니다. 제 정신을 차린 사람은 사형수와 김신부 뿐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재집행 했습니다. 저는 이 좋은 특종을 기사화 하지 못했습니다. 오검사도 부탁하고 형무소장도 저와 함께 사형폐지운동을 위해 엄청 자주 머리를 맞댄
      동지(?)였습니다. 그 소장은 제가 미국으로 떠난뒤 나중에
      <순간>이란 사형 반대 책을 하나 출판했습니다. 또 하나 가톨릭시보 기자였던 단원이라는 여시인이 제게 특청을
      했습니다. 노처녀였던 단원이는 김 신부를 참 좋아했는데 넘지 못할 로만
      칼러를  한없이 한없이 바라보며 기도만 하는 착한 누이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내가 이걸 기사화 하지 않았던걸 무척 잘한 일이라
      여깁니다.특종에 눈이 멀어 기사를 썼으면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고 사회는 호기심에 소용돌이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제 판단은 수많은 애국지사를 매단 그 줄이 삭아
      끊어진것은  형무관들 탓도 아니고 서글픈 형행제도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봤습니다. 형무관들은 그 때 제비를 뽑아 운없어 포인트 젖히는걸 맡게
      되는날, 쥐꼬리만한 형무소장 판공비에서 나오는 돈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서 집행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저도 총각이었고 단원이란 누나를, 한 여인을 좋아했었나
      봅니다. 문뜩    40여년 전 내 20대가 불현듯 파노라마 처럼 스쳐 몇자 적었습니다.


      Nov 18 2008
      氏也 김 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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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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