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에 대하여 -- Essay

<온 땅의 구음과 언어가 하나였으나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기위하여 바벨탑을 쌓자
여호와의 징벌로 그 후부터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창세기 11:1-9>
라고 성경은 기록 하고 있다.

이때부터 인류는 소통을 위해 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고고학은 최근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2천년경 수메르어(Sumerian)와 에브라이트어(Eblaite)
3천여 단어로 기록된 점토판을 발견, 해독하므로 인류의 이중언어 기원은 성경기록보다 엄청 오래 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설형(Cuneiform)문자인 수메르어는 히브리어나 아라비아어와 달리 셈어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계통인 교착어(Agglutinative)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번역사란  매춘부 다음으로 인류가 가졌던 오래된 직업의 하나다.
서기 350년경 성경번역의 정확성을 고집하다가 로마 쥴리안 황제의 황후에 의해 목이 잘린 번역사가 100여명에나 이르렀다니 항상 논란의 와중에 휩싸이는걸 우려해야 했기에 좋은 직업은 아니였던게 분명하다. 발달된 교통, 현란한 인터넷의 출현 속에서도 다중문화권 사이 상호소통에 아직도 번역과 통역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언어란 조물주가 우리에게 나누어준 지고한 축복인 동시에 혹독한 저주다.
언어 그 자체는 언어가 표상하고자 하는 실사물 자체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언어는 결코 상징(Symbol)의 영역이지 기호(Sign)의 영역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뜻이라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늘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영역에서는 교통신호의 경우 빨간불이면 서라는 지시이고 파랑불이면 가라는 소리이지 다른 뜻은 없다. 그러나 상징의 영역에서는 언어의 지시체계나 뜻이나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카씨러 (Ernst Cassirer) 박사는 그의 <인간론 An essay on Man>에서 “사람은 더 이상 물리적 우주에서가 아니라 상징적 우주에서 살고 있다..... 사람을 합리적 동물로 규정하는 대신, 오히려 상징적 동물로 규정해야한다. (p.30-41)”라고 주장 한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도 Man and his Symbol이란 책에서 기호와 상징성에 대해 중국의 易經까지 인용하면서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다.

노자가 도덕경 제8장 <上善若水> 편에서 이야기 하는 “물”이 가장 상징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경우다. 그는 道를 물에 비유했다.
노자에게 있어서 물은 H2O라는 화학 기호가 아니고 “물과 같다. 거의 물에 가깝다(故幾於道)" 라는 상징이다. 물은 불과 달라 겸손하게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시궁창 까지 스며들고 낮게 처신하니 허물이 있을수가 없다. 그냥 H2O가 아니다. 도덕경에는 상선약수라고 쓸때의 “若”자가 무려 42번이나 나온다.

번역도 기본적으로 기호가 아니라 상징의 문제이다. 원문과 번역문의 관계는 1대 1이 아니라 1대 다양이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면 원문을 그대로 번역 한다는 것은 존재할수 없다는 거다. 번역이란 정밀과학이나 수학이 아니란 소리다. 예를 들어보자.
<君子>란 말은 詩經 周南의 關雎에서는 “사나이”란 뜻이고, 周南의 汝墳에서는 “그리던 임”, 王風의 君子于役에서는 부인이 남편을 가리키는 “나의 임”이 된다. 또 秦風의 晨風에서는 “내 임”  衛風의 淇奧에서는 엉뚱하게도 “아름다운 사내 어른”이다.
나이다 (Eugene Nida)는 The 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이란 책에서(p.12-15) "번역이란 수신자(the receiptor language)의 언어에 있어서 원어(the source language message)의 메시지를 가장 자연스런운 상응성(equivalent) 메시지로 재현 하는데 있다. 첫째는 의미이고 다음은 문체“라고 정의 한다. 그는 성서번역에서 가장 세계적 권위를 가진 학자의 하나이다. 나이다가 미국성서학회에서 50년 이상 피땀 흘려 이룩한 노작을 도올 김용옥이 그의 <도올논문집>에서 선별적으로 한글로 옮기고 있다. 동일한 원어를 동일한 번역어로 환원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게 나이다의 지론이고 동일성 보담 상징성을 선호 하는게 나이다의 입장이다. 원문의 뜻 그 자체를 똑바로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莊子는 손가락은 물건을 가리키나 물건은 손가락이 아니니 손가락은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禪家에서도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고 말이 갖는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판 한다.

영국태생으로 1938년 도미하여 선불교와 노장사상을 가장 폭넓게 전파한 알랜 와츠(Alan Watts, 1915-1973)도 그의 책 Become What You Are에서(p.12-18) 손가락을 달로 오인하지 말것을 엄중하게 경고 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가지가 있다. 번역과 통역이다. 통역에는 동시, 순차, 시각 통역 등 다양한 방법이 구사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 위대한 번역은 성경과 불교경전 번역이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게 종교경전 번역이다.

불경의 번역은 한문으로 되야 된다는 법은 없다.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나 영어로 번역하나 번역은 번역일 뿐이다. 오히려 범어는 언어학적 측면에서 보면 한문보다 印歐語 (Indo-European)에 더 가깝다. 그래서 표음문자인 범어(Sanscrit), 팔리어(Pali)를 표의문자인 한문으로 번역한 초기 역자들의 초인간적 노력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니르바나를 처음에는 노장사상에 입각하여 방편상 무위로 번역 했다가 나중에는 열반 그대로 소리 나는데로 썼다. 이러한 번역방법을 격의주의라고 한다.

또 우리가 참고로 알아야할 점은 석가 자신은 당대 상류사회가 쓰던 범어를 피하고 마가다어(Magadha)를 고집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범어 사용을 엄금하고 반드시 마가다어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파하도록 했다. (Encyclopaedia Britannica Pali어 항목)
부처님은 북인도 갠지스 평원에 있던 마가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 지방토속어인 마가다어를 일상 썼다. 대체적으로 볼때 부처님 입멸후 약 4-5백년 뒤에서야 본격적인 불전이 결집 되었다.

여기서 곁들여 말하자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당시 유식계급이 쓰던 헬라어를 잘 몰랐으며 특히 베드로와 요한은 문맹이었다. (사도행전 4:13) 그래서 그들은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통속어인 아람어
(Aramaic)를 사용했다는게 정설이다. 아람족속은 창세기 25:20와 신명기 26:5에도 언급 되어있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 나이까” (마태복음 27:46 및 마가복음 15:34)가 바로 아람어를 쓴 경우이다. 또 예수님이 아람어를 썼다는 기록은 사도행전 26:14, 바울선생의 아람어 사용은 사도행전 21:40에 나타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때문에 폐부를 찌르듯 애절하게 외치신 절규가 바로 이 아람어 이다.

히브리어와 매우 유사한 셈족 언어인 아람어는 기원전 6-7세기경 아카디아어를 대신하면서 생겨 났으며 뒤에 페르시아제국의 공용어로 사용 되기도했다. 아람어는 성서에 여러번 등장 하지만 우리말 번역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7:46에 관하여 King James Version과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은 예수님 께서는 Aramaic을 사용 하셨다고 주를 달고 있다. 1997년 Agape의 NIV 한영해설성경 에서는 “아람어” 또는 “예수님의 모국어인 아람어”(마가 15:34)로 번역 되어있다.

2003년 NIV 한글성경에서는 주석이 없고 열왕기하 18:26에서는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이사야서 36:11에서는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로, 다니엘 2:4에는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라고 나온다. 그런데 영어의 Aramaic이란 단어는 “히브리 방언” 또는 “아람 방언”(NIV 한영해설성경), “유다 말”(성경전서: 표준 새번역 개정판)등으로 다양하게 번역 되어있다. 영어 Aramaic은 아람어로 번역하는게 가장 타당 한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나 부처, 그분들이 말한 기록은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 다른 말로하면 원저자의 원본은 없다. 신약의 아람어는 그리스어로, 마가다어는 범어나 팔리어로 번역되어 전한다. 위대하신 두 분의 본래의 참뜻은 알길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것은 번역의 번역의 번역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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