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북어국

나는 치즈를 참 좋아한다.

한국음식으론 듬북장을 즐겨 먹듯.

듬북장이란 청국장을 내고향 안동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갈로가 쓴 <나폴레옹>이란 소설에서 읽었든가.

희대의 영웅 나폴레옹이 연상이자 품행이 개차반 같은 조세핀에게 빠진거는 그녀의 은밀한곳에서 풍기는 그 치즈냄새 때문이었다고.

미국으로 가기전 가끔 빨래비누 크기의 노란 세다치즈 같은걸 맛본적은 있지만 자주 먹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가 36년전 미국을 간 이후부터는 내 냉장고에서 치즈가 떨어진적은 없다. 떨어질려고 하면 고루 고루도 사다가 채웠고 맛을 즐겼다.

그러나 미국서는 사먹기가 아주쉬운 치즈가 한국서 살면 사정이 영 달라진다. 그래서 가진 치즈가 달랑 달랑하면 신세계나 롯대백화점등을 맴돌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년에 한두번 미국에 갈때마다 돌아오는 내가방을 온통 에햄하고 차지한 녀석은 물론 이 치즈다. 냉동칸도 아니고 장시간 봇짐속에서 비행기를 타고간 치즈를 어떻게 드시냐고 아들녀석은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한국서는 워낙 비싸 이렇게라도 싸 나르는수 밖에 도리가 없다.

몇년전인가 내가 치즈를 즐긴다는것을 안 사돈이 치즈 수입상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이태리 에밀리아 로마냐주에서 나는 명품 Parmigiano Reggiano를 구해주어서 가방에 넣고 United를 타는데 검색에 걸려 혼이 난적이 있다. 크기가 대전차 지뢰만 했으니 혹시 비행기 폭파 테러범(?)하고 의심했던 모양이다. 심장이 나쁜 사돈은 치즈를 질색으로 여기지만 그래도 내게는 가끔 사보낸다.

치즈는 소나 양, 염소의 젖에 송아지 위점막에서 나오는 Rennet란 응고효소를 넣어 만든 단백질과 칼슘의 보고다.

<총 균 쇠>라는 명저를 남긴 진화 생물학자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인류가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단 14가지인데 그중에 소나 양등이 포함되어 있어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한다.

치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고대 주인인 수메르인들이 남긴 점토판 이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에 쐐기문자를 사용해 치즈 생산양을 자세히 기록하고 치즈제조용기인 토기도 남겼다. 일부 학자들의 추측처럼 수메르인이 우리의 먼 조상과 같은 뿌리라면 어쩌면 치즈란 우리고유의 음식이었다는 공상도 가능하다.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오딧세이>에도 동굴에 숨은 율리시즈가 외눈박이 거인이 소와 염소의 젖을짜서 응고시키고, 훼이를 따라낸뒤 등나무로 짠 바구니에 담아두는것을 보았다고 나온다.

또 구약 욥기나 사무엘기에도 치즈가 등장하고 테베근처에서 발굴한 옛무덤속의 프레스코 벽화 속에도 식탁에서 프레시 치즈를 서빙하는 노예들의 그림이 나온다.

발효음식이란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볼수 있지만 역시 그 역한 냄새 때문에 국경을 넘는데는 주저 주저 한다. 그래도 인도까지는 치즈가 까탈없이 국경을 넘어 들어와 있다.인도인들도 파니르Paneer라는 유명한 프레시 치즈가 있는걸 보면.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치즈문화가 발전하기에는 인도는 척박한 기후지만 내가 즐기는 인도음식에는 치즈가 꼭 얼굴을 내민다.

이미 미국화를 끝낸 인도음식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마 수도원이란 훌륭한 전승공간이 없었으면 서양에도 찬란한 치즈문화가 없었을런지 모른다. 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 유럽은 노르만, 몽고, 사라센등 주변민족의 침범. 페스트의 창궐등으로 치즈문화가 사라졌지만 산속 깊은곳에 있던 수도원에서 그명맥을 유지하는 전통적 제조기술이 남아 오늘날 까지 전해질수가 있었다. 영국산 웬즐리데일Wensleydale이나 스위스산 떼뜨 드 므완Tete de moine같은 명품 치즈가 관향이 수도원 이고 숫째 포르 살뤼Port Salut나 마르왈Maroilles 처럼 수도원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는 유명한 치즈도 많다.

지난 2월말 미국서 돌아오며 가방에 넣어온 치즈가 벌써 달랑 달랑 한다. 허리가 말썽을 부리니 우리내외가 덜덜끌고온 적은 가방 두 개에는 치즈를 욕심끝 넣어 올수가 없었다. 까르프가 없어졌으니 치즈값이 합리적인 곳도 없다. 코스코를 가야하나? 나는 출입 카드도 없다.

내가 치즈이야기를 쓰면서 북어국을 운위 하는것은 이것은 또다른 내 식탁의 스팟라읻을 받는 메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내 화회댁과 41년을 같이 살아도 북어국을 놓고 밥을 먹어본 기억은 희미하다. 며칠전 장보면서 북어를 장바구니에 담으시기에 또 우리 마님이 출타 계획이 있으시구나 짐작을 할뿐이다. 내 성격에 “또 어디가?” 묻지는 않는다.

내가 갑상선 항진과 저하로 롤러코스트를 타며 씨름 하기전인 7년전쯤만 해도 아내가 어딜 나설려면 미역국을 꿇여놓고 갔다. 그러나 미역국속에 요도성분이 들었다고 의사가 항진이 올때는 미역국을 절대 먹으면 않된다고 경고를 하니 미역 대신 등장한게 이 북어국이다. 해가 뜨나 달이지나 나라는 사람은 집에 처박혀 책이나 들고 세월을 보내니 아내가 외출이나 외박을 할려면 북어를 참기름에 달달 뽁을 수밖에 없다. 외출이냐 외박이냐의 차이는 국냄비의 크기가 달라질 따름이다.

어제사 이번 나들이는 초등학교 동창회라는걸 통보 받았고 일박여정 이라는걸 알았다. 무싯날에도 나는 갈때없으면 백화점이라도 다녀오라고 아내 등 떠미는 사람이다. 공황증 약을 몇 년째 먹고 있는 아내에겐 동창회나 백화점이 약이다. 그저 아내가 어디가서 웃을수 있는곳이 있으면 나는 북어국을 백그릇 연거퍼 먹어도 상관 없다. 아직 물리지 않으니까.

May 6 2009

Eugene C. Kim

안양 씨야 촌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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