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과 경상북도(지사 김관용)에서는
『2009 경북민속문화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09.6.24(목)∼8.31(월)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제1기획 전시실에서 경북지역의
 선비문화와 유교문화를 주제로 『선비, 그 理想과 實踐 』기획 특별전시회를
 개최 합니다.

국가 보물지정 6점, 경북지역 21개 문중에서 출품한 유물들을 전시 하는데 
귀봉선조(金守一) 가 1568년도 임하에 건립한 백운정의 현판(1680년 미수 허목
글씨)와 학봉선조(金誠一)의 유서통등 경북 21개 종가관련 유물 200점이 전시 
된다.

                      ─    아             래   ─
         1.  일  시 :  2009. 6. 24 ∼ 8.31(69일간)
         2.  장  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길 35 
                            국립민속박물관 제1기획 전시실 (경북궁내)
         3.  전시내용
           - 1부 :  사람이 담은 공간, 경북
           - 2부 :  이상과 현실의 경계
           - 3부 :  유교와 인격의 완성
           - 4부 :  가(家)의 지속과 순환 
           - 5부 :  실천과 변화 
             백운정 현판.jpg 
                         백운정 현판 (미수 허목선생의 글씨, 九十老人書 서명)
             백운정.JPG 
                                                   『백운정 白雲亭 전경』

『백운정 白雲亭』
  백운정은 내앞 입향시조 청계(諱 璡) 큰 할아버지.......대조(大祖)께서 宣祖元年
  무진(戊辰),  1568년경 중자(仲子) 귀봉공(諱 守一)에게 터전을 정해 주셨고
  귀봉공이 창건하셔 장자(長子) 운천공(諱 涌)에게 전수한『백운정』의 이름을
  풀이해 보면 천상가(川上家)의 충효사상(忠孝思想)과 예(禮) · 도(道)의 참뜻을
  알수가 있다.

『등고산 망백운 사친기하...登高山 望白雲 思親其下...높은산에 오르니 뫼봉도,
  구름도 어버이 사모하는 마음아래 흐르도다!』라는  중국  추양공(秋梁公)의
  고사를 인용하여 白雲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왜?

   백운정에서 서북쪽으로 바라보면 비리실 중턱에 청계대조의 선대 승지공의
   휘 예범(諱 禮範) 묘소가 한눈에 똑바로 보인다.
   그래서 사친숭모(思親崇慕)의 뜻이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백운정 이라는 
   현판(懸板)을  걸게 되었고 여기서 부터 천전인(川前人)들의 인화(人和)와 
   도덕관(道德觀)이 지존(至尊:더없이 존귀함)하기 시작하여 天下의 대하(大河) 
   낙동강과 함께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것이다.
   현판은 미수(眉수) 허목(許穆)선생이 쓰셨다. 
            義城金氏 首都圈 副會長 金在鶴 님의   白雲亭 重修와 念願을 기리며에서 拔萃 濟德 옮김

                                                         (전시회 안내장)
                                        선비,그 이상과 실천.jpg 
 

서울에서 만난 조선조의 경북


‘경상도(慶尙道)’라는 명칭이 처음 행정구역명으로 정해진 것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1년(1314년)의 일이다. 조선시대 이후로도 이 명칭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1896년에 전국이 13개 도(道)로 개편됨에 따라 비로소 ‘경상북도’라는 명칭이 현재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조선후기에 간행된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 이르기를 경주와 상주를 대도회지(大都會地)라 하고 대구를 도회지(都會地)라 했듯이, 당시에는 경주와 상주가 현재 경상북도 지역의 중심이었고 대구·안동·의성 등이 이와 더불어 당시를 대표하는 주요 거주 지역이었다. 즐비한 권문세가와 더불어 조선시대 중앙관료의 1/4 이상이 경상도 지역에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초야에 묻힌 선비의 삶을 동경하고 검약과 청빈의 삶을 강조해 왔던 이들에게 경북의 특수한 자연환경은 유교적 이상을 꿈꾸고 개인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터전이자 스스로 극복해야할 과제였다. 경북 지역의 누정(樓亭)문화는 자연의 공간을 사람이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예이다. 산이면 산마다 누각을 지어 사람을 모아내고, 집이면 집마다 정자를 지어 심신을 수련하던 이들. 자연이 담은 사람과 사람이 담은 자연은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스스로 그러한 이치를 만들어간다. 그 공간이 경북이고 그 안에 사람이 산다. 이렇게 1부에서는 동국지도, 청구여지도, 경상도지도 등의 고지도와 택리지, 영가지 등의 지리서 속에 묘사된 경북의 자연환경 그리고 그 자연환경을 사람의 공간으로 그려낸 도산소경도 등을 통해 동일한 공간으로 존재하지만 지나버린 과거 속의 공간을 현재의 위치에서 되돌아본다.


경북지역 21개 문중의 가보를 만나다


이번 2009 경북민속문화의 해 ‘선비, 그 이상과 실천’특별전에는 경북지역에서만 총 21개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출품된다. 광산김씨, 안동권씨, 안동김씨, 의성김씨(가나다순) 등 경북지역을 대표하는 종가와 문중이 그들이다. 안동권씨 충재종택에서는 모두 보물로 지정된 충재승무청원만인소와 충재영의정교지, 충재일기, 김구진묵 등을, 의성김씨 학봉종택에서는 학봉이 사용하던 유서통, 현재 제사에 사용하고 있는 제사용구 일체 등을 흔쾌히 출품해주었다. 이렇게 각 문중과 경북지역 박물관에서 출품된 유물들 속에는 조선시대 대학자 이황 선생의 글씨도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황과 허목 등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정암서첩’,  ‘선현유묵’, ‘선현필적’, 이황 친필의 ‘조양문·이요문(朝陽門, 二樂門)’ 현판, 이황의 무이구곡도 발(跋)이 기록되어 있는 주문공무이구곡도(朱文公武夷九曲圖), 조선시대 4대 명필 중 한명이었던 김구(金絿)의 글씨 등이 그것이다. 대개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누구의 글씨인지,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로라하는 학자와 명필들의 글씨를 찾아내 보는 것도 전시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퇴계 이황은 과거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을까?


유교적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시작과 더불어 유학은 당시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정치적·학문적 바탕을 이루게 된다. 비단 학문을 하는 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유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했기에, 기초적인 글자 공부를 통해 글을 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구나 유자(儒者)로서의 덕목과 생활규범을 알고 갖추기 위해 단계적인 학습에 임하게 된다. 가학(家學)의 전통에 따라 집안에서의 공부가 끝나면 교육기관인 서당, 서원, 향교 등에서 과거시험이나 유학자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초에 조사된 전국의 서당 분포 조사를 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서당이 존재했던 지역이 바로 경북지역으로, 이 지역에서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선비의 삶은 그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문서(文書)’와 함께 한다. 그것이 학문을 위한 책이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문집이든, 혹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든 그 외형만이 달라질 뿐이다. 문서 안에서 그들의 이상을 담고, 문서 안에서 그들의 세상을 그리고, 문서 안에서 그들의 삶을 실현한다. 2부에서는 조선조를 대표하는 학자 퇴계 이황의 향시답안지, 성학십도 등과 선비들의 필독서, 충재 권벌의 영의정 추증교지 등 경북지역 선비들이 남긴 기록물들과 함께 이 기록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입체영상물이 구성된다.



세상에서 가장 바른 사람들의 이야기


맹자(孟子)는 대장부론(大丈夫論)을 통해 대장부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덕목들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곳에 거하고(居天下之廣居), 세상에서 가장 바른 자리에 서며(立天下之正立), 세상에서 가장 큰 도를 행하라(行天下之大道),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그것을 누리고(得志,與民由之)...... .뜻을 얻어 다른 이들과 함께 그것을 누리는 것이 선비가 행하는 교유이다. 사귐을 통해 노는 것이 아니라 선비다운 선비를 만나 그로 말미암아 나의 심신을 닦고, 산천에 누정을 지어 강학을 펼치고, 세상에서 세운 뜻을 더불어 이야기한다. 사람과 자연을 대상으로 한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관념들이 실천적 철학으로 드러나기까지, 선비들의 교유는 결코 멈출 수 없는 도리이며 사람과 자연에 소통하는 둘도 없는 통로이다. 교유를 통해 심신을 닦았던 경북 선비들의 일상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3부에서는 경북 선비들의 교유와 풍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구성된다. 우복 정경세가 지니고 다니던 호패, 충재 권벌의 일기, 농암 이현보가 88세 되던 해 설날에 지어진 농암병시 목판본, 학봉 김성일이 사용하던 유서통, 김구진묵 등 경북지역의 내로라하는 선비들의 유품과 풍류 이미지를 묘사한 그림들을 통해 조선시대 경북지역 선비들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찾아가 본다.


이들 중 아래는 문신이자 조선시대 4대명필 중 한 명이었던 김구(金絿, 1488~1534)의 진묵(眞墨) 내용이다. 1519(중종 14년) 권벌이 기묘사화와 관련되어 예조참판에서 외직인 삼척부사로 나가게 되자 이별의 표시로 써 준 것이다. 이 시는 왕발(王勃, 650~676)의 ‘별설화(別薛華)’라는 이별시이다.


送送多窮路  遑遑獨問津 悲凉千里道  悽斷百年身 心事同漂泊  生涯共苦辛 無論去與住  俱是夢中人

퍽이나 험한 길로 그대를 보내고 나서 허둥지둥 홀로 나루에 가서 물어 보노라 슬픈 천릿길에 애끓는 사람 마음이나 실제나 떠돌기를 함께 하니 평생토록 함께 고생만 하는구나 가고 머무는 것 따위야 논하지 말게나 모두가 꿈속의 사람이니.


세대를 이어 가는 방법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예(禮)이지만 제사에는 이미 후손의 탄생이 전제되어 있다. 자식이 없으면 제사라는 형식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 제사를 통해 한 집안의 역사가 지속적인 순환을 이루게 된다.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종가들에서는 불천위(不遷位)를 모시고 있어 4대 봉사에 더해 5대 봉사를 하게 된다. 21세기를 사는 현재에도 종가의 전통과 유풍이 여전히 살아 있어 삼년상을 치르는 모습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도 하다. 집안 친척들이 모두 모여 의관을 정제하고 전통과 가풍 그대로 제사를 모시는 풍경이 동 시대를 사는 어떤 이들에겐 오히려 특별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모습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 방식과 같이 간소하게 바뀐 요즘의 제사 방식과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그 형식도 자연히 변하기 마련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변하는 정도와 겉모습이다. 그러나 형식이 변한다 하여 그 내용과 의미가 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는 잃었지만 누군가는 간직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 시대에도 분명 공존하는 그것,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돌아볼 일이다. 4부에서는 제사를 중심으로 경북지역 종가들이 수백 년을 걸쳐 가계를 지키고 꾸려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학봉종택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제사용구를 비롯해, 집안 며느리들에게 가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제작한 한글세계, 남편이 아내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시집간 딸에게 보냈던 서간, 여성들의 놀이도구인 규문수지여행지도(閨問須知女行之圖) 등을 통해 경북지역 종가의 소소한 일상들을 살펴본다.


만인의 뜻을 모은 만인소(萬人疏)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나 일을 상소(上訴)라 하는데 상소 중에서도 만 명에 달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연명(聯名)한 상소를 특별히 만인소(萬人疏)라 한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만인소가 모두 7개 정도로 알려져 있고 그 중 5개가 영남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지역 유생들의 현실참여 의지가 얼마나 강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이 만인소가 작성되어 올려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을 소행일기(疏行日記)라 하는데, 5부에서는 정직우(鄭直愚)가 주도하여 대원군의 서원훼철을 반대하는 영남 남인들의 만인소 작성 과정을 기록한 소행일기와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의 유생들이 충재 권벌의 문묘종사를 청하는 상소인 충재승무청원만인소(?齋陞?請願萬人疏)가 전시된다.



경북의 이미지를 전시장에 담다


이번 특별전에는 산간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북의 자연공간과 현재에도 건재한 고풍스런 종가의 모습, 시원한 숲이 내다보이는 서원의 풍경 등을 오밀조밀한 구조물와 영상을 통해 형상화 했다. 전시장 입구 밖으로 튀어나온 종가의 담장, 시원하게 뚫린 여느 전시장과 달리 구불구불 이어진 관람자의 동선, 누정과 사랑방의 형상을 모아 본 딴 전시케이스 등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터렉티브 기능을 이용해 관람자가 다가서면 바람에 흔들리는 시원한 대나무 숲 영상과 목판이 제작되고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입체영상, 경북음식 영상체험 등을 통해 어려운 책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쉽게 경북의 이미지를 느껴볼 수 있는 가까운 공간으로 꾸며진다.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위철(☎ 02-3704-3153)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경북지역 21개 종가에서 출품 전시된 대표적인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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