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화(金道和)


자는 달민(達民)이며 호는 척암(拓庵)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김약수(金若洙)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문장. 덕행이 뛰어나 일천(逸薦)으로 의금부도사를 지냈으며 을미사변에 창의,의병대장으로 유공하다. 1983년 건국포장추서.


김우수(金禹銖)


자는 내석(乃惜)이며 호는 학포(鶴浦)로 아버지는 김재선(金在善)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순조 갑오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관직을 거쳐 예조참의를 지냈다.


김진우(金鎭右)


자는 국원(國元)이며 아버지는 김기수(金驥壽)로 순조 갑오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를 지냈다.


김진형(金鎭衡)


자는 덕추(德錘)이며 호는 겸와(謙窩)로 아버지는 현감 김종수(金宗壽)이다.


철종 경술 문과에 급제하여 부승지를 지냈다.


김진의(金鎭懿)


자는 미경(美卿)이며 아버지는 김평수(金平壽)이다.


고종 임오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다.


김흥락(金興洛)


자는 계맹(繼孟)이며 호는 서산(西山)으로 아버지는 목사 김진화(金鎭華)이며 문충공(文忠公) 김성일(金誠一)의 주손(胄孫)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학덕이 높아 영남유림의 유종(儒宗)으로 천거되어 음관(蔭官)으로 우부승지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김용락(金龍洛)


자는 여운(汝雲)이며 호는 춘고(春皐)로 아버지는 참봉 김진국(金鎭國)이다.


순조 기묘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다.


김달연(金達淵)


자는 이활(而活)이며 아버지는 김진락(金鎭洛)이다.


헌종 경오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김홍락(金鴻洛)


자는 우경(羽卿)이며 호는 모계(某溪)로 아버지는 김진의(金鎭疑)이다.


고종 을사 문과에 급제하여 시독. 비서감랑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김두병(金斗秉)


자는 대규(大奎)이며 아버지는 김진건(金鎭健)으로 고종 병자 문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군수를 지냈다.


김하락(金河洛)


일명 길주(吉周)이며 자는 계삼(季三)으로 호는 해운당(海雲堂)이며 아버지는 김건휘(金建輝)이다.


 천문. 지리. 병서. 의학서를 널리 탐독하였다. 고종 을미사변 후 의병을 일으켜 백현(魄峴). 노루목. 이현(梨峴)의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고 의병대장이 되어 여러 전투에서 위훈을 세우고 영덕에서 전사하여,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김대락(金大洛)


자는 중언(中彦)이며 호는 백하(白下)로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진린(鎭麟)이다. 서산공의 문인으로 안동 내앞에 민족교육의 일환(一環)으로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만주의 독립기지 건설과 각종 광복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선구자이며 계몽주의 민족운동가이다.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다.


김동삼(金東三)


일명 긍식(肯植)이고 자는 한경(漢卿)이며 호는 일송(一松)으로 아버지는 김계락(金繼洛)이다.


 경술국치 후 이상룡(李相龍)과 더불어 만주 유하현(柳下縣)으로 이주하여 백서농장(白西農場)을 개척하고. 경학사(耕學社). 한족회(韓族會).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세워 군정부(軍政府) 운동을 전개하여 통의부(統義府). 정의부(正義府)를 이끌었으며,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참모장(參謀長)을 역임하고 민족유일당촉진위원장을 겸임하여 삼군부(三軍府) 통합사업을 추진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해방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김창숙(金昌淑)


자는 문좌(文佐)이며 호는 심산(心山)으로 아버지는 김호림(金護林)이다.


왜정의 감시 아래 한때 우(愚)로 개명하였고 고문으로 다친 뒤에는 벽옹(벽翁)이라 별호 하기도 하였으며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오적(五賊)을 참하라는 소를 올리고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등과 교육. 언론운동을 창도(唱導)하였으며 파리강화회의에 유림대표로 장서(長書)를 제출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임시 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총장, 성균관장, 유도회 본부 위원장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김붕준(金朋濬)


자는 군석(君錫)이며 호는 당헌(棠軒)으로 아버지는 김의현(金義鉉)이다.


고향에서 3.1 운동을 창도(唱導)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비서장. 임시의정원 의장. 국무위원을 역임하고 해방 후 환국하여 좌우합작 우측대표. 신진당 창당위원장. 입법위원을 역임하다가 납북되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김동만(金東萬)


자는 우서(禹緖)이며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의 동생으로 한일합방후 만주로 망명하여 삼광학교(三光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항일사상 고취에 진력(盡力)하였으며 부민단, 한족회등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중 日軍에 의해 피살. 1991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김원식(金元植)


자는 계서(繼緖)이며 호는 소창(笑蒼). 아버지는 김종락(金鍾洛)이다.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 군정서독판 이상룡의 지시로 국내에 밀입국 군자금 모금. 대한통의부. 정의부. 혁신의회. 길림전만선반제동맹(吉林全滿鮮反帝同盟). 한국독립당군. 신한독립당 결성등 많은 항일애국 활동을 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국민장추서.


김  황(金  榥)


一名 우림(佑林). 자는 이회(而晦) 호는 중재(重齋)로 아버지는 김극영(金克永)이고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옹)의 12代孫이다. 곽종석의 문하에서 主理學에 전념하여 심즉이설(心卽理說)을 기반으로한 도학(道學)을 정립하여  김우옹(金宇옹)→ 이진상(李震相)→ 곽종석(郭鍾錫)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한 마지막 유종(儒宗)으로 50여 년 동안 1000여명의 門徒를 배출하였으며 서기 2000년 後孫과 後學들에 의하여 建立된 道陽書院에서 享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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