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의 유물.
이황 퇴계선생께서 임종하실 무렵 아들을 불러놓고 문갑 속에서 캐캐 묵은 조그마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건네주면서 유언하기를
<네가 이 주머니를 항시 몸에 지니되 일생을 통해서 살아가는 동안 불의의 재난을 당하거나 그 외 어떠한 여건으로 인해서 도저히 죽음에서 탈피하지 못할 난관에 봉착되거든 이 주머니를 풀어 보아라. 만일 그러한 난관이 없거든 네가 또 다시 임종을 하더라도 절대 이 주머니는 열어 보지 말고 오늘 내가 너에게 유언한 것처럼 네가 너의 자식에게 유언을 하여 물려주도록 하라>는 분부를 남긴 채 임종을 하였다.

유언과 더불어 주머니를 물려받은 아들은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대 현인이신 선친의 각별한 유언이며 또 꼭꼭 묶여있는 주머니를 하시를 막론하고 생명의 보주처럼 몸에 간직하면서 살아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역시 임종할 때까지 그러한 위급한 난관이 없었다. 그리하여 일생 동안 궁금증을 품으면서 간직했던 주머니였지만 한번도 풀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또 자기의 아들에게 유언과 함께 물려주게 되었다. 이로서 주머니는 벌써 삼대 째 이르게 되었다.
삼대 째인 손자 역시 그러한 난관이 없었으므로 또 그 다음으로 이어져 갔다.

이렇게 하여 그 주머니는 한번도 풀어 보지 못한 채 대대로 이어져 어느덧 칠대 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칠대 손 역시 조상으로부터 한 번도 풀러진 일이 없는 이 주머니를 마찬가지로 생명처럼 여기며 항시 몸에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한번은 이 칠대 손이 어디를 가느라고 험준한 산길을 걷게 되었다. 때마침 길가 숲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중에 놀란 칠대 손이 그곳을 달려가 보니 어떤 사나이가 목에 칼이 꽂힌 채 죽어 있었다. 그는 당황하여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길은 험준(險峻)하고 깊은 산중이라 산적들이 때때로 나타나서 인명을 살해한 일이 있으므로 때마침 관가에서 포졸들을 풀어 수색 중에 있었다.
사람 살리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온 포졸들은 현장을 목격한 뒤 이 칠대 손을 살인자로 단정하고 관가로 압송하여 투옥시켜 버리고 말았다.

요즈음 같으면 은 살인자라도 동기를 파악하여 죄의 경중에 따라 재판을 하여 처벌을 하지만, 옛날에는 <살인자(殺人者)는 세(殺)>라 하여 그대로 살인자의 누명을 씌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는 드디어 사형 집행일이 되어 사형대에 끌려 나가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가졌던 고을 원님이 관아로 나와 사형수에게 마지막 유언을 물었다. 칠대 손은 대대로 전해진 주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그 연유를 낱낱이 고하며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다.
원님이 말하기를
<지금도 그 주머니를 가지고 있느냐 ?> 물었다.
<네 그러 하옵니다. >라고 대답 하자마자 이 어찐 일인가? 원님이 서있던 누각 대들보가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면서 부러져 내려앉았다. 간신히 죽음을 모면한 원님은 칠대손이 내미는 주머니를 받아 열어보니 그 속에는 꼬깃꼬깃 접은 손바닥만한 백지한 장이 들어있었다. 자세히 펼쳐보니 글 한 구절이 쓰여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오활여압량사(吾活汝壓樑死)하니 <여활오칠대손(汝活吾七代孫)하라.>는 기적 같은 내용이었다.

그 글의 뜻은,
<나는 네가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니 너는 나의 칠대 손을 살려 달라.>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어본 원님은 모골이 숙연한 채 즉석에서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외치기를 <과연 명현이로다. 그 조상과 그 자이여! 어찌 이와 같으리오. >하고 탄성을 지르며 일언지하에 칠대 손을 무죄 석방했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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