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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택


학봉종택(鶴峯宗宅)은 안동시(安東市)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 8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64년 이전하여 새로 지었다.




학 봉 김성일을 불천위로 모시는 학봉종택은 이중환(李重煥,1690-1752)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우리나라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말한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천전마을, 의성 김씨 집단촌인 일명 내앞〔川前〕에서 태어났다. 의성김씨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넷째아들로 고려태조 왕건의 외손인 김석(金錫)이 시조다. 이는 김석이 ‘의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의성이 본관이 되었다.



학봉의 부친은 내앞 마을에 처음 자리잡은 김만근의 손자인 청계(靑溪)공 김진(金璡, 1500-1580)이다.

청계공의 아들 다섯이 과거에 합격하여 내앞 종택은 오자등과택(五子登科宅)이라고도 불린다. 이 중 학봉은 넷째 아들이다. 천전리에 있는 내앞종택 건물은 조선 선조 때 처음지은 건물이 불에 타자 학봉이 재건했다.



학 봉 김성일(1538~1593)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1590년(선조 23년) 정사 황윤길과 함께 통신사의 부사로서 일본을 다녀와 황윤길의 의견과 반대로 풍신수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조정에 보고했다. 학봉이 그때 불침론을 주장한 것은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정사 황윤길이 동래에 도착하자마자 곧 전쟁이 날 것처럼 말하여 민심을 뒤흔드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경상우병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대노하여 엄벌을 명했으나 류성룡의 변호로 면책되어 초유사로 임명되었고 그 뒤 경상우도 순찰사를 겸직하면서 지난 과오를 만회하기위해 열심히 의병을 모으고 전투를 격려하여 진주성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고 진주 공관에서 전염병으로 5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학 봉종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 풍뢰헌(風雷軒), 선대의 유물을 보관하는 운장각을 전부 합쳐 90여 칸이 2,000평의 대지 위에 당당하면서도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운장각은 민간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 규모로는 국내 최대이며 보물 제905호로 지정된 고문서 56종 261점과 보물 제906호로 지정된 17종 241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특히 학봉이 명나라에 서장관으로 갔을 때 구입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거북껍질테 안경과 퇴계선생으로부터 받은 병명(屛銘,병풍 병, 새길 명)이 있다.



학봉종택의 대문 앞에는 기념식수를 한 주목나무가 있다. 기념식수를 한 사람은 고경명의 후손으로 육군준장이다.

학봉집안과 고경명집안과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고 경명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금산전투에서 3부자가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분이다. 고경명은 첫째아들, 둘째아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면서 막내아들 고용후를 불러 “우리가 전쟁에 나가면 너는 안동의 학봉가문으로 피신을 해라. 그 집안은 의리가 있는 집안으로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막내아들은 가솔 50여 명을 데리고 학봉가문의 도움으로 4년간 피신하여 무사히 가문을 보전했다.

고경명이 학봉에 대한 신뢰가 어떠한가를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 후 고용후는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학봉의 부인과 큰아들을 관아로 초대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두 분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습니까?” 하고 울먹이면서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1608년에 권기(權紀)가 편찬한 안동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학봉종택이 있는 검제(금계)는 ‘천년불패지지(千年不敗之地)’ 라고 말하고 있다. 즉 천 년 동안 패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이다.

또한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로 알려져 있다. 전쟁, 기근, 전염병이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는 의미다.



학 봉의 처가인 안동 김씨 집안에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장인 장모를 모시기 위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학봉은 처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학봉 문중에서는 학봉의 장인 장모에 대해 외손봉사로 묘재를 지낸다. (조용헌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아기」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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