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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호송.gif

개호송 뒤로 일부가 남아있는 장고숲이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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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후손들이 문중의 흥망을 걸고 400여 년 동안 대대로 '이 숲이 없으면 내앞마을도 없다'며 목숨처럼 보전해왔다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개호송(開湖松). 이 이야기를 접하고, 개호송을 찾아 열심히 달려갔다. 그러나 내앞마을 서쪽의 반변천 주변을 둘러보자 실망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더 컸으리라.

마을 부근 반변천 일부에 노송 군락이 300m 정도 펼쳐져 있으나 숲 속 곳곳에 식당 시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호수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곳에 보이는 개호송 노송군락이 잡목들의 침범을 받으면서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내앞마을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했다던 숲의 모습은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400여 년 동안 의성김씨 문중이 대를 이어가며 온갖 정성과 방법을 동원해 보전해 왔다던 기록을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스럽게 와 닿았다.

#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현재 개호송

안동시 임하면 천전(川前:내앞)리 남서쪽을 흐르는 반변천은 현재 임하댐 보조댐 건설로 인해 작은 호수로 변해 있다.

이 댐 건설 이전에는 오리(2㎞)에 이르는 반변천 둑을 따라 300~400년 된 소나무와 떡버들 등 고목이 빽빽하게 늘어서 멋진 풍광을 이루고, 그 숲 아래 물가는 마을주민들이 온갖 고기를 잡곤 하던 최고의 휴식처였다. 그 숲을 장고(長皐)숲이라 불렀다. 그 좋던 숲은 댐 건설로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만 남은 250여 그루의 송림에서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넉넉했던 둑은 수려한 반변천 주변 풍광을 망쳐버리는 일직선 시멘트 제방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위로 마을주민들이 10여 년 전에 심은 벚나무와 일부 남은 옛 소나무가 볼품없는 겨울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장고숲이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지금의 황량한 풍광을 보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댐 건설 전의 장고숲 모습을 보면, 아름드리 떡버들 숲이 물가를 따라 펼쳐져 있고, 숲 아래 물가와 물속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온다.

장고숲이 끝나는 부분의 강 하류 한가운데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인 개호송은 댐 건설로 호수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 변해버렸다.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고 관리도 할 수 없는데다, 잡목까지 번식하면서 송림이 점차 손상당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외롭게 겨우 버티고 있는 듯이 보이는 100여주의 노송들이 안쓰럽게 와 닿는다.

1988년 댐 건설 때 공사 관계자나 마을주민들의 의식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오래된 시절도 아닌데, 당시에 마을숲의 가치나 소중함을 그렇게도 몰랐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다.

# 영해에서 가져온 씨를 뿌려 조성한 송림

의성김씨 청계공(靑溪公)파의 본산인 내앞마을 입향조(入鄕祖)는 청계 김진(1500~81)의 조부인 김만근(1446~1500)이다. 개호송은 김만근이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앞 수구(水口:물길이 빠져나가는 곳)가 너무 넓게 터져 있어 기운이 빠져 나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비보(裨補) 숲으로 조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후 청계의 맏아들인 약봉(藥峯) 김극일(1522~85)이 영해부사로 있을 때 그곳의 소나무종자를 가져와 파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때 조성한 숲이 1605년 대홍수로 대부분 유실돼 버리자, 청계의 손자인 운천(雲川) 김용(1557~1620/귀봉 子, 퇴계孫壻/불천위)이 1617년 선조들의 유지를 받들어 마을사람들과 함께 1천여 그루의 소나무를 다시 심었다. 운천공이 그때 남긴 송림보호 결의문인 '개호종송금호의서(開湖種松禁護議序)'가 전하고 있다.

마음을 다해 송림을 보호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이 결의문의 일부다.

“개호에 소나무를 심는 일에 대해 말하자면, 선대로부터 일찍이 소나무숲이 있었으나 들불이 일어나고 냇물이 넘쳐서 푸르름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황폐해진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마을에 사는 자손으로서 어느 곳에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붙일까. 오직 죄송스러울 뿐이다.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1천여 그루를 심었으니 거의 선인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가 소나무를 보호하지 못한 죄를 속죄하는 데 이르렀다.…오늘 소나무를 심었지만, 이후 불이 나서 탈까 두렵고 소나 양이 짓밟을까 두렵다.”

그 유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개호'라는 이름은 반변천 어느 지점을 지칭하는 지명인 듯하다. 김용의 아들인 김시주의 호가 또한 개호이다.

# 수차례의 문중결의를 통해 보호해온 숲

의성김씨 문중의 각별한 개호송 보호 노력은 갈수록 더해가고 구체적 벌칙 또한 강도를 높여갔다.

김명석 등 문중 후손 99명이 서명해 만든 1697년의 '개호금송완의(開護禁松完議)'에서는 개호숲에 대한 존숭의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그 전 해에 세금을 내기 위해 소나무를 베어 팔아 숲이 황폐해진 것을 계기로 만든 결의문이다.

여기서는 '…이 소나무가 없으면 천전도 없음이 분명하다(無此松卽無川前必矣). 천전은 우리 종사(宗祀)가 있는 곳이다. 종족 기반이 흥하고 피폐함은 이 소나무에 달려 있으니, 조상을 존중하는 뜻이 크다면 어찌 이 소나무를 보호하는 방도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관청의 명령이 비록 급박해서 진실로 어찌할 바가 없었다고는 하나 수백 년 된 선대의 유물이 하루아침에 조세 용도로 쓰이니, 길 가는 사람도 슬퍼하고 이웃사람들도 부끄러이 여겼다'고 밝히면서 내앞마을은 물론 임하, 신당, 지촌, 율리, 금계 등 인근 마을에서도 유사를 선출해 숲 보호를 맡기고, 유사들이 소임을 소홀히 하면 일가들이 모여 그 죄를 논한다는 등 9개 항목의 준수규정을 정하고 있다.

1737년에는 문중 사람의 옥바라지 비용 마련을 위해 할 수 없이 마른 나무(枯木) 25그루를 베게 된 점을 절절히 반성하며, 같은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동중추완의(洞中追完議)'를 작성했다. '…이후에는 마을 사람 가운데 비록 경향(京鄕)의 옥사를 만나는 집이 있을지라도 이 소나무에 대해서는 다시는 감히 마음을 내지 말고 선조들이 정한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개호숲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를 모아온 청계 15세손 김시명 씨(60)는 "개호숲 보전을 위한 완의문은 30~50년 주기로 만들어졌으며, 180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들려줬다.

누대에 걸쳐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며 마을이 안보일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보전해왔던 개호송과 장고숲은 어른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취재후기] 개발이냐 보전이냐

개호송은 마을 수구를 비보하는 풍수적 조경의 차원에서 처음 조성됐으나, 점차 선조가 조성한 숲을 씨족의 터전과 조상의 사당을 지키는 상징적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한 동네 숲이 아니라 사당이나 종가와 같은 존숭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고을막이'처럼 마을 입구를 지키는 개호송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공간을 '외부'와 분명히 구별되는 '내부'로 인식하면서, 조상이 마련해 준 장소 안에서 살고 있다는 안정된 느낌을 가졌다.

마을 사람들에게 더 없는 푸근함과 충만감을 주던 개호송이 지금은 겨우 100여 그루만 남아 호수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다. 그 옛날의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남아있는 소나무마저 아카시 등 잡목의 침범을 받고 있는데도 관리가 안 돼 얼마나 유지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댐 조성 때 제방을 쌓으면서 베어버려 일부만 남아 있는 장고숲 송림 역시 제대로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되고 있다. 곳곳에 말라죽는 노송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시명 씨는 "댐 조성 때 어떻게 해서든 숲을 보전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조상들 볼 낯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무분별한 개발과 몰지각으로 오래된 전통 숲이 훼손된 경우가 많지만, 선조들의 각별한 보전 노력이 담긴 내앞마을 숲의 훼손을 보는 안타까움은 다른 곳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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