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辰之亂(임진지란) :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先生妻子(선생처자) : 선생의 처자식들이

自京流到利川境(자경류도리천경) : 서울을 떠나 떠돌다가 이천(利川) 경내에 도착하였는데,

有人來護(유인래호) : 어떤 사람이 와서 보호해 주면서

意甚勤厚(의심근후) : 몹시 정성스럽게 돌봐 주었다.

問之則曰(문지칙왈) : 그 까닭을 물어 보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我此府人也(아차부인야) : “나는 이 고을 사람입니다.

前日令公推刷徙民時(전일령공추쇄사민시) : 전날에 영공(令公)께서 도망쳐 온 백성들을 추쇄(推刷)할 적에

我以座首(아이좌수) : 내가 좌수로 있으면서

犯罪受刑(범죄수형) : 죄를 범하여 형벌을 받았습니다.

令公處事嚴明(령공처사엄명) : 그런데 영공께서는 일을 엄명(嚴明)하게 조처하여

無一人橫罹(무일인횡리) : 한 사람도 억울하게 죄를 받은 사람이 없었으므로,

此道之民(차도지민) : 이 지방 백성들이

至今不忘(지금불망) :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我雖被罪(아수피죄) : 그러니 내가 비록 죄를 받기는 하였지만,

敢懷私怨乎(감회사원호) : 감히 사사로이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遠近或出米救急(원근혹출미구급) : 그리고 원근 사람들이 쌀을 내어서 식량을 대주거나

或給馬護送曰(혹급마호송왈) : 혹 말을 내어서 호송해 주면서 말하기를,

鶴峯令公(학봉령공) : “학봉 영공(鶴峯令公)께서는

乃東方砥柱也(내동방지주야) : 바로 우리 동방의 지주(砥柱)이십니다.” 하였다.

朴正郞惺(박정랑성) : 정랑(正郞) 박성(朴惺)이

嘗從容問曰(상종용문왈) : 일찍이 조용히 묻기를,

先生可謂不動心(선생가위불동심) : “선생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할 만합니까?”하니,

答曰(답왈) : 답하기를,

豈易言哉(기역언재) : “어찌 쉽사리 말할 수 있겠는가.

吾平生只有不動心者三(오평생지유불동심자삼) : 내 평생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단지 세 번 뿐인데,

奉使日本也(봉사일본야) : 일본에 사명을 받들고 가다가

卒遇風濤(졸우풍도) : 갑자기 풍랑을 만나

舟楫顚危時(주즙전위시) : 배가 뒤집히려고 할 때가  

一也(일야) : 첫 번째이고,

秀吉桀驁(수길걸오) : 평수길이 사납고 드세어서

大張聲威(대장성위) : 위엄을 크게 보이면서

脅迫恐動時(협박공동시) : 으르고 협박할 때가

二也(이야) : 두 번째이며,

亂初被拿(란초피나) : 난리가 일어난 처음에 잡혀 올라가면서

天威方震(천위방진) : 임금의 노여움이 한창 떨쳐 일을

事將不測時(사장불측시) : 장차 헤아릴 수 없을 때가

三也(삼야) : 세 번째이다.”하였다.

然先生遇變臨危(연선생우변림위) : 그러나 선생께서 변란을 만나거나 위태로움을 당해

死生在前(사생재전) :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도

而凝然不動者(이응연불동자) :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不止於此三者而已(불지어차삼자이이) : 이 세 가지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以上(이상) : 이상은

出訒齋錄(출인재록) : 《인재록(訒齋錄)》에 나온다.




辛卯冬(신묘동) : 신묘년(1591, 선조 24) 겨울에

公以弘文館副提學(공이홍문관부제학) : 공이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으면서

上箚論時事(상차론시사) : 차자를 올려 시사(時事)에 대해 논하였는데,

言甚剴切(언심개절) : 말이 몹시 절실하였으며,

且直斥王子諸宮淫刑漁利等事(차직척왕자제궁음형어리등사) : 또 왕자(王子)들이 제궁(諸宮)에서 함부로 형신을 하고 이익을 독차지한 일 등을 곧바로 지적하였다.

上爲之瞿然引咎(상위지구연인구) : 이에 상께서 두려워하면서 허물을 인책하였고,

朝野莫不膚粟(조야막불부속) : 조야(朝野) 사람들이 모두들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公拜招諭使南還(공배초유사남환) : 공이 초유사(招諭使)에 제수되어서 남쪽으로 돌아갈 때

金睟自居昌(금수자거창) : 김수(金睟)가 거창(居昌)에서

諉以勤王指雲峯(위이근왕지운봉) : 근왕(勤王)한다는 핑계를 대고 운봉(雲峯)을 향해 가다가

與公忽値(여공홀치) : .공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자,

愕喑無以爲辭(악암무이위사) : 깜짝 놀라면서 무어라 핑계 댈 말이 없었다.

公以義責之曰(공이의책지왈) : 이에 공이 의리로써 힐책하기를,

封疆之臣(봉강지신) :  “강역을 지키던 신하가

當死封疆(당사봉강) : 마땅히 강역을 지키다가 죽어야지,

何爲棄之至此乎(하위기지지차호) : 어찌 강역을 버려두고 여기까지 왔단 말입니까

全失一道而不能救(전실일도이불능구) : 온 도를 다 빼앗기게 되었는데도 구원하지 못하고서

單騎遠投(단기원투) : 단기(單騎)로 멀리 도망치니,

其能有濟乎(기능유제호) : 일을 해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願令公亟回(원령공극회) : 바라건대 영공께서는 속히 돌아가십시오.” 하였다.

睟不得已强顔回旋(수불득이강안회선) : 이에 김수가 부득이하여 억지로 돌아갔다.

然見道內士民(연견도내사민) : 그러나 도내(道內)의 사민(士民)들이

咸仰公爲響應(함앙공위향응) : 모두 공을 우러르며 메아리처럼 호응하는 것을 보고는

噎媢怏怏(일모앙앙) :. 시기하면서 불만스러워하였다.

公一以誠信待之(공일이성신대지) : 이에 공이 성심과 믿음으로 대하니,

少無疑阻(소무의조) : 조금은 의심하면서 멀리하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河東縣監文報至(하동현감문보지) : 하동 현감(河東縣監)의 문보(文報)가 올라왔는데,

捕斬偸倉穀土賊十五頭事也(포참투창곡토적십오두사야) : 창고의 곡식을 훔친 토적(土賊) 15명을 체포하여 참수하였다는 내용이었다.

公題送曰(공제송왈) : 이에 공이 공문서를 내리기를,

土民乘亂爲盜(토민승란위도) : “토민(土民)들이 난리를 틈타 도적이 되어

至發官倉(지발관창) : 관청 창고의 곡식을 훔치기까지 하였으니,

其罪宜斬(기죄의참) : 그 죄는 참으로 참수하는 것이 합당하다.

萬一戮及無辜(만일륙급무고) :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잘못하면 죄 없는 사람까지 참수할 수가 있으니,

不可不愼(불가불신) : 신중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後聞縣監誘集村民(후문현감유집촌민) : 그 뒤에 들으니, 하동 현감이 촌백성들을 꾀어

乘暮開倉(승모개창) : 어둠을 틈타서 창고를 열고는

任其取去(임기취거) : 마음대로 가져가게 한 다음,

以其奴射殺十五卽瞞報(이기노사살십오즉만보) : 종들을 시켜 15명을 사살하고 거짓으로 보고한 것이었는데,

蓋要功也(개요공야) : 이는 대개 공(功)을 노려서 한 짓이었다.

公欲誅之(공욕주지) : 이에 공이 그를 주살(誅殺)하려고 하다가

或恐人言過度(혹공인언과도) : 사람들의 말이 혹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여

只杖五十度(지장오십도) : 곤장 50대만 치고

數以貪虐啓罷之(수이탐학계파지) : 탐학하다고 판단하고 위에 아뢰어 파직시켰다.




都事自居昌來曰(도사자거창래왈) : 도사(都事)가 거창(居昌)에서 와서 말하기를,

他道監司(타도감사) : “다른 도의 감사들은

於東宮啓聞進上(어동궁계문진상) : 동궁(東宮)에 계문(啓聞)하면서 올리는 진상(進上)을

皆分封(개분봉) : 모두 나누어서 봉진(封進)하는데,

獨此道不爲(독차도불위) : 유독 이 도에서만 하지 않고 있으니,

無乃不可乎(무내불가호) : 안 되는 것 아닙니까?”하니,

公曰(공왈) : 공이 이르기를,

不可如二君焉(불가여이군언) “두 임금이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

若以他日爲君(약이타일위군) : 만약 뒷날에 임금이 되실 분이라고 하여

而預以君禮事之(이예이군례사지) : 미리 임금을 섬기는 예로 섬긴다면,

是二心也(시이심야) : 이는 두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하였다.

都事曰(도사왈) : 그러자 도사가 말하기를,

此時與平時不同(차시여평시불동) : “이런 때는 평상시와는 달라

東宮方在羈旅之中(동궁방재기려지중) : 동궁께서 현재 객지에 떠돌고 계시므로

朝夕供膳(조석공선) : 아침저녁으로 바치는 공선(供膳)

亦必匱乏(역필궤핍) : 역시 반드시 부족할 것입니다.

邊報無由得聞(변보무유득문) : 변경의 보고를 얻어들을 길이 없으니,

雖以權道爲之(수이권도위지) : 비록 권도(權道)로 하더라도

未爲不可(미위불가) : 안 될 것은 없습니다.”하니,

公曰(공왈) : 공이 이르기를,

君臣之義(군신지의) : “군신간의 의리는

截天地而不可易(절천지이불가역) : 하늘과 땅이 쪼개지더라도 바뀔 수가 없는 것으로,

非用權之地也(비용권지지야) : 권도를 쓸 곳이 아니다.”하였다.

都事又曰(도사우왈) : 도사가 또 말하기를,

不必名言進上啓聞(불필명언진상계문) : “반드시 계문에 따른 진상물이라고 말할 필요 없이,

而時産賊奇(이시산적기) : 철에 따라 나는 음식물을 왜적의 기별을 올리면서

隨便付上無妨(수편부상무방) : 편의에 따라 부쳐 보내면 무방할 것입니다.”하니,

公正色曰(공정색왈) : 공이 정색하면서 이르기를,

君使我不名言進上啓本(군사아불명언진상계본) : “그대는 나에게 진상 계본(進上啓本)이라고 말하지 말고

而爲封送書簡乎(이위봉송서간호) : 서간(書簡)을 부쳐 보내라는 것인가?

君其休矣(군기휴의) :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하였다.

以上(이상) : 이상은

出龍蛇錄(출룡사록) : 《용사록(龍蛇錄)》에 나온다.




公嘗受尙書於文忠公(공상수상서어문충공) : 공이 일찍이 문충공(文忠公)께 《상서(尙書)》를 배웠는데,

一日旣受業(일일기수업) :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退而侍立(퇴이시립) : 물러나서 시립(侍立)해 있었다.

文忠公曰坐(문충공왈좌) : 그러자 문충공께서 이르기를,

吾語汝以皇極建極民彝五福也(오어여이황극건극민이오복야) : “앉거라. 내가 너에게 황극(皇極), 건극(建極), 민이(民彛), 오복(五福)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惟皇上帝(유황상제) : 상제(上帝)께서

降衷于下民(강충우하민) : 하민(下民)들에게 충(衷)을 내려 주시니,

衷卽極也(충즉극야) : 충은 곧 극(極)이다.

天生斯民(천생사민) :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아서

使先知覺後知(사선지각후지) : 선지자(先知者)에게 후지자(後知者)를 깨우치게 하고,

使先覺覺後覺(사선각각후각) : 선각자(先覺者)는 후각자(後覺者)를 깨우치게 하였다.

古之聖人(고지성인) : 옛날의 성인은

是民之先覺者(시민지선각자) : 이 백성들의 선각자이니,

卽建極也(즉건극야) : 곧 극을 세운 것이다.

作爲君師(작위군사) : 임금과 스승이 되어

用敷五倫(용부오륜) : 오륜(五倫)을 시행해서

錫厥庶民(석궐서민) : 서민(庶民)에게 주었으니,

倫卽民彝也(륜즉민이야) : 오륜은 바로 민이(民彛)인 것이다.

庶民知愛親敬長(서민지애친경장) : 서민들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서

能保有是心(능보유시심) : 이 마음을 보존하였는바,

卽爲保極(즉위보극) : 이는 곧 극을 보존한 것이다.

宜得壽富康寧(의득수부강녕) : 그러니 의당 수(壽), 부(富), 강녕(康寧),

攸好德(유호덕) : 유호덕(攸好德),  

考終命(고종명) : 고종명(考終命)을 얻게 될 것이다.

此謂五福也(차위오복야) : 이것을 일러 오복(五福)이라 한다.

身或不壽(신혹불수) : 몸은 혹 수(壽)하지 못하더라도

此心實壽(차심실수) : 이 마음은 실제 수하고,

家或不富(가혹불부) : 집은 혹 부(富)하지 못하더라도

此心實富(차심실부) : 이 마음은 실제 부하고,

縱有患難(종유환난) : 비록 환난이 있더라도

此心康寧(차심강녕) : 이 마음은 강녕(康寧)하고,

顚沛造次(전패조차) : 낭패스럽고 황급한 사이에도 도를 떠나지 않으니

此爲攸好德(차위유호덕) : 이것이 유호덕(攸好德)이 되고,

或爲國死事(혹위국사사) : 혹은 나라를 위하여 전쟁에 죽기도 하고

或殺身成仁(혹살신성인) : 혹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루는 것도

亦爲考終命(역위고종명) : 고종명(考終命)인 것이다.

不離道(불리도) : 도리를 벗어나지 않고

論五福(론오복) : 오복을 논하면서는

當論人一心(당론인일심) : 마땅히 사람의 한마음을 논해야 하니,

此心正無不福(차심정무불복) : 이 마음이 바르면 복되지 않음이 없고,

此心邪無不禍(차심사무불화) : 이 마음이 사특하면 화되지 않음이 없게 된다.

爾其識之(이기식지) : 너는 그것을 잘 알라.”하니,

公再拜以受(공재배이수) : 공이 두 번 절하고서 이 말을 받아들여

終身佩服云(종신패복운) : 종신토록 명심하여 행하였다고 한다.

出洗馬公潗家狀(출세마공집가상) : 세마공(洗馬公) 김집(金潗)의 가장(家狀)에 나온다.




自退陶先生倡道東南(자퇴도선생창도동남) : 퇴계 선생께서 동남쪽 지방에서 도학(道學)을 주창한 뒤

遊其門者(유기문자) : 그의 문하에서 노니는 자들은

皆一時名賢(개일시명현) : 모두 한때의 명현(名賢)들이었는바,

明睿特達之人(명예특달지인) : 예지(叡智)가 특출난 사람들이

各自琢磨(각자탁마) : 각자 절차탁마하여,

成德達材者(성덕달재자) : 덕성을 이루고 재주에 통달한 자들을

指不勝屈(지불승굴) :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而老先生(이로선생) : 그런데도 퇴계 노선생께서는

手書堯舜以來禹湯文武周公(수서요순이래우탕문무주공) : 손수 요순(堯舜) 이래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

孔子顔曾思孟周程朱氏(공자안증사맹주정주씨) : 공자(孔子),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주자(周子), 정자(程子), 주자(朱子)가

相傳心法之要言旨訣(상전심법지요언지결) : 서로 전한 심법(心法)의 요언(要言)과 지결(旨訣)을 써서

以畀鶴峯金文忠公(이비학봉금문충공) : 학봉(鶴峯) 김 문충공(金文忠公)에게 주었다.

可見其微意所在矣(가견기미의소재의) : 그러니 퇴계 선생의 은미한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出李葛庵玄逸文集(출리갈암현일문집) : 이현일(李玄逸)의 《갈암집(葛庵集)》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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