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 목판에 숨은 조선의 ‘다빈치 코드’… “영화가 그려져요”

 

 
■ 국학진흥원 초대로 영화인들 안동 전통문화 체험

《 “종가를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죠?” “1년간 10번 넘게 제사를 지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제사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세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박준호 PD, ‘섹스볼란티어’를 만든 조경덕 PD, ‘두사부일체’의 시나리오를 쓴 하원준 작가…. 영화인들이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의 의성 김씨 학봉종택을 찾았다. 이들은 15대 종손 김종길 씨를 만나 이 종갓집에서 만든 안동식혜와 다과를 들며 종가문화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펼쳤다. 자유분방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젊은 영화인들이 엄격하고 보수적인 유교의 본고장을 찾은 까닭이 뭘까. 》

영화인들이 영화의 소재를 찾아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을 찾았다.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에서 해설사 서동석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안동=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안동 소재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은 지난달 30, 31일 1박 2일 일정으로 영화 PD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 25명을 초대해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 등 안동의 명소를 둘러보고 종갓집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전통문화에서 콘텐츠 소재를 찾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상호 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국학진흥원 내 장판각에 들어선 영화인들은 오래 묵은 나무 냄새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장판각은 조선시대에 책을 찍어내던 유교 목판(책판) 6만7000장을 문중에서 기탁받아 보관하는 곳이다. 조선의 기록문화를 상징하는 이 목판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라고 이 실장이 소개하자 영화인들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목판의 진가를 몰라본 사람들이 실제 빨래판으로 쓰거나 썰매를 타는 경우도 있었다”는 설명에는 안타까움과 웃음이 섞였다. “목판에 글씨를 새기다 틀리면 틀린 글자 위에 나무를 채워 넣거나 목판의 일부분을 통째로 드러내고 새 나무판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에 따라 이 목판을 모티브로 조선판 ‘다빈치 코드’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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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은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목판 사진을 연방 찍어대며 질문을 이어갔다. “각수(刻手)들은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팠나요?” “목판이 어떻게 썩지 않았죠?” “문중에서 이 귀한 자료를 쉽게 내주던가요?”

국학진흥원 강당에서 콘텐츠 전문가들의 강의와 토론회도 이어졌다. 최희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와 김성호 추계예대 영상문화학부 교수(영화감독)는 국학진흥원의 ‘스토리 테마파크’(story.ugyo.net)를 활용해 전통기록물을 영화에 접목할 구체적 방법을 설명했다. ‘스토리 테마파크’는 조선시대 일기를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로 쉽게 풀어낸 데이터베이스다. 

행사에 참여한 영화인들은 우리 전통문화가 영화에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가능성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취화선’ ‘춘향뎐’의 조연출을 맡았던 강혜연 감독은 “10여 년 전 사극을 촬영할 때만 해도 고문서를 밤새워 번역하거나 적절한 고증자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며 “콘텐츠 제작자들이 손쉽게 스토리를 발굴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미스터 주부 퀴즈왕’을 연출한 김경선 PD는 “영화제작자라면 누구나 사극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해설과 함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스토리 테마파크’ 활용법까지 배우니 안동에서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은 만화스토리작가, 방송작가, 출판기획자와 외국인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10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열릴 예정이다. 

안동=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blog_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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