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존칭명 : 단군(檀君),천자(天子),천왕(天王),천제(天帝)

단군조선:47대 2096년(환기4865 ∼ 6960, BC2333 ∼ BC238)

1대 ~ 21대 단군때까지 송화강 아사달 하얼빈 시대이며

 삼한(진한,번한,마한)관경으로 하여 다스리셨다.

22대 ~43대 단군때까지 백악산 아사달 시대이며

 삼조선(진조선,번조선,말조선)으로 분조하셨다.

44대 단군 때부터 나라가 기울어서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셨다. 



존칭호


즉위년도
(환기-B.C)


재위기간


약                사


1


왕검(王儉)


(4865-BC2333) 


93


단웅과 웅씨녀사이에서 태어남. 신인 왕검이 무진년(b.c.2333) 오가와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단국檀局으로부터 아사달의 檀木단목의 터에 이르러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니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다.


2


부루(扶婁)


(4958-BC2240)


58


 BC2239 소련 대련 3년상.경술 10년(B.C.2229), 신지인 귀기가 칠회력과 구정도를 만듬.무술 58년(B.C.2183), 단군께서 붕어 하셨는데 이날 일식이 있었다


3


가륵(嘉勒)


(5016-BC2182)


45


일명 읍루. 삼랑 을보록이 정음38자(가림토 문자) 제작.신축 3년(B.C.2180), 신지인 고을이 배달유기를 편수


4


오사구(烏斯丘)


(5061-BC2137)


38


 산삼발견.갑신 원년(B.C.2137), 황제의 동생 오사달 을 몽골리한(한은 임금의 뜻)으로 봉하다.


5


구을(丘乙)


(5099-BC2099)


16


양가(羊加)구을이 즉위.을축 4년(B.C.2096) 처음으로 육십갑자를 사용하여 책력을 만듬


6


달문(達門)


(5115-BC2083)


36


우가(牛加)인 달문이 뭇 사람으로부터 뽑혀 대통을 이음 .육십갑자 사용(BC2096)


7


한율(翰栗)


(5151-BC2047)


54


양가(羊加)인 한율이 즉위.


8


우서한(于西翰)


(5205-BC1993)


8


우가인 서한 즉위. 무신 원년(BC 1993) 이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는 법을 정하여 널리 쓰이게 하였다.기유 2년 이 해는 풍년이 들어 벼 한 포기에 여덟개의 이삭이 맺혔다.
갑인 7년 세발 달린 까마귀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고 한다.


9


아술(阿述)


(5213-BC1985)


35


양가(羊加).정사 2년 청해의 욕살 우착이 군대를 일으켜서 궁성을 침범하니 단군께선 상춘으로 몸을 피하신후, 새궁궐을 구월산의 남쪽기슭에 창건하게 하셨다. 우지와 우율등에게 명령하여 이들을 토벌하여 죽여버리도록 하시고는 삼년 뒤에야 서울로 되돌아 오셨다.


10


노을(魯乙)


(5248-BC1950)


59


우가인 노을이 즉위. 신원목(신문고와 같은 역할) 설치(BC1946)병오 16년(B.C.1935), 돔눔밖 십리의 육지에서 연꽃이 피어나더니 질 줄 모르고, 누워 있던 돌이 절로 일어섰다. 천하에서 거북이(중국에선 황하 또는 발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팡괴가 그려져 있어 이것이 팔괘의 시초라 하고 삼서성의 낙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 이를 하도 낙서라 하는 것이다.)가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바로 윳판과 같은 것이었다.을축 35년(B.C.1916), 처음으로 감성(천문대)을 두었다.


11


도해(道奚)


(5307-BC1891)


57


우가(牛加).경인 원년(B.C.1891), 단군 께서는 오가에 명을 내려 열 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의 소도를 설치케 하였다. 정사 28년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으사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방물을) 헌납하여, 진열한 것이 산처럼 쌓였다.정묘 38년 백성들 가운데서 장정을 뽑아서 모두 병사로 삼았다. 선사 20명을 하나라 서울로 보내 처음으로 나라의 가르침을 전함으로써 위세를 보였다.


12


아한(阿漢)


(5364-BC1834)


52


우가 아한이 즉위.정해 원년(BC 1834) 무자 2년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나다. 가을 8월 단군께서 나라 안을 두루 순수하였는데 요하의 남쪽에 이르르자 순수관경의 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겨 이를 전하게 하셨다. 이것이야말로 금석문의 가장 오래된 것이리라.


13


흘달(屹達)


(5416-BC1782)


61


우가 흘달이 즉위.대음달. 하 정벌. 무술 50년(B.C.1763),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의 자재로 하여금 글 읽고 활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은 돌아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꽃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이라 하였다.


14


고불(古弗)


(5477-BC1721)


60


우가인 고불이 즉위.신유 42년(B.C.1680) 9월 말라죽었던 나무에 새싹이 나고 오색의 큰 닭이 성의 동쪽, 자촌의 집에서 태어나니 이를 본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봉황이라 하였다.을해 56년(B.C.1666), 관리를 사방에 보내 호구를 조사, 계산하니 총계1억 8천만인 이였다.


15


대음(代音)


(5537-BC1661)


51


후음달.경진 원년(B.C.1661) 은나라 왕 소갑이 사신을 보내 화침을 구했다. 이해에 80분의 1의 세법을 정하였다.


16


위나(尉那)


(B5588-C1610)


58


우가인 위나가 즉위.


17


여을(余乙)


(5646-BC1552)


68


병신 20년(B.C.1456), 지백특사람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18


동엄(冬奄)


(5714-BC1484)


49


 


19


구모소(구牟蘇)


(5763-BC1435)


55


기미 54년 지리숙이 주천력과 <팔괘상중론> 을 지었다.


20


고홀(固忽)


(5818-BC1380)


43


우가인 고흘이 즉위.경자 40년 공공인 공흘이 구한의 지도를 제작하여 바쳤다.


21


소태(蘇台)


(5861-BC1337)


52


경인 47년(B.C.1291),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을 쳐 이기더니 또 대군을 이끌고 색도영지등의 나라를 침공하엿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우현왕은 주변 여러 사람들과 사냥족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 하였다. 단군도 어쩔수 없이 옥책, 국보를 전하고  사우여는 폐하여 일반인이 되게 하였고, 단군께서는 아사달에 은퇴하여 마침내 붕어 하셨다. 이 해에 백이와 숙제도 역시 고죽군(중국 서울 북평의 옛이름)의 자손 들로써 나라를 버리고 동해(발해만이나 요동만)의  해변가에 와서 살며 밭 갈기에 힘쓰며 혼자 살았다.


22


색불루(索弗婁)


(5913-BC1285)


48


우현왕 고등의 손자 색불루 무력으로 제위에 오름.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부쉈다.을묘 20년 이 때에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엄독골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이에 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 기에 웅거하여 나라를 세워 여라 칭하고 서융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남씨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산(恒山)의 이남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신미 36년 변방의 장수 신독이 병력을 믿고 난을 일으켰다.


23


아홀(阿忽)


(5961-BC1237)


76


갑신 원년(BC 1237) 단군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골을 통치하도록하고, 웅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읍을 설치함. 가을 7월 신독을 주살하고 수도로 돌아온 뒤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였다. 을유 2년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 구려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고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회대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씨를 엄으로, 영고씨를 서땅에 방고씨를 회땅에 각각 임명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24


연나(延那)


(6037-BC1161)


11


태자 연나가 즉위하여 황숙 고불가를 섭정으로 삼았다.


25


솔나(率那)


(6048-BC1150)


88


영나의 아우.신해 원년(BC 1150) 정해 37년 기자(箕子) 서화(西華)에 옮겨가 있으면서 인사를 받는 일도 사절하였다.


26


추로(鄒魯)


(6136-BC1062)


65


태자 추로가 즉위


27


두밀(豆密)


(6201-BC997)


26


갑신 원년(BC 997) 천해의 물이 넘쳐 아란산이 무너졌다. 이해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신묘 8년 큰 가뭄 뒷끝에 큰 비가 쏟아지듯 내려 백성들의 수확이 없으매, 단군은 명을 내려 창고를 열어 널리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28


해모(奚牟)


(6227-BC971)


28


정묘 18년 빙해의 뭇한들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29


마휴(摩休)


(6255-BC943)


34


무인 원년(BC 943) 주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
을유 8년 여름 지진이 있었다.병술 9년 남해의 조수가 3척이나 물러갔다.


30


내휴(奈休)


(6289-BC909)


35


청구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돌에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겼다. 서쪽으로는 엄독골에 이르러 제후국의 여러 한들과 만난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들과도 수교를 맺었다. 병진 5년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31


등올(登올)


(6324-BC874)


25


임인 16년 봉황이 백악에서 울고 기린이 와서 상원에서 노닐었다.


32


추밀(鄒密)


(6349-BC849)


30


갑인 3년 선비산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
계해 12년 초나라 대부 이문기가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했다. 갑자 13년 3월에 일식이 있었다.


33


감물(甘勿)


(6379-BC819)


24


계미 2년 주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무자 7년 영고탑 서문밖 감물산 밑에 삼성사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올렸다.  


34


오루문(奧婁門)


(6403-BC795)


23


 을묘 10년 두개의 해가 나란히 뜨더니 마침내 누런 안개가 사방에 그득했다.


35


사벌(沙伐)


(6426-BC772)


68


갑술 6년 이 해에 황충의 피해와 홍수가 있었다.임오 14년 범이 궁전에 들어왔다.임진 24년 큰비가 내리니 산이 무너져 골짜기를 메웠다. 무오 50년 단군께서 조을을 파견하여 똑바로 연나라 서울을 돌파하고 제나라 군사와 임치의 남쪽 교외에서 싸워 승리하였음을 알려왔다.


36


매륵(買勒)


(6494-BC704)


58


갑진 28년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무신 32년 서촌의 한 백성의 집에서 소가 다리 여덟개 달린 송아지를 낳았다.신해 35년 용마가 천하에서 나왔는데 등에는 별무늬가 있더라.갑인 38년 협야후 배반명[일본 서기는 이사람을 神武王(신무왕)이라며 건국시조로 날조하여 떠받들고 있다.]을 보내어 바다의 도적을 토벌케 하였다. 12월에는 삼도가 모두 평정되었다.무진 52년 단군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케 하였다.이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리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 고죽에 쳐들어 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서 싸워 보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걸하고는 물러갔다. 


37


마물(麻勿)


(6552-BC646)


56


 


38


다물(多勿)


(6608-BC590)


45


 


39


두홀(豆忽)


(6653-BC545)


36


 


40


달음(達音)


(6689-BC509)


18


 


41


음차(音次)


(6707-BC491)


20


 


42


을우지(乙于支)


(6727-BC471)


10


 


43


물리(勿理)


(6737-BC461)


36


을묘 36년 우화충이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백민성 욕살 구물이 장당경을 점령하니 동서의 압록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여 왔다.


44


구물(丘勿)


(6600-BC425)


29


병진 원년(BC 425) 3월 우화충을 죽임.백민성의 욕살구믈 즉위. 국호를 대부여로 고치고 삼한은 삼조선이라고 바꿔불렀다.무인 23년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 인사를 올렸다.


45


여루(余婁)


(6802-BC396)


55


을유 원년(BC 396) 장령의 낭산에 성을 쌓다.신축 17년 연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을 침범하매 수비장수 묘장춘이 이를 쳐부수었다.병진 32년 연나라 사람 배도가 쳐들어와서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에 까지 육박해 왔다. 이에 번조선이 대장군 우문헌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하고  진조선 막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여 오더니 복병을 숨겨두고 연나라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에서 쳐부수고는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46


보을(普乙)


(6857-BC341)


46


 을축 46년 한개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하니 대장군 고열가가 의병을 일으켜 이를 쳐부수었다.고열가가 43대단군 물리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받기도 하였고 또 공도 있었던터라 마침내 즉위하였다


47


고열가(高列加)


(6903-BC295)


57


임술 57년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사람이었다.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연호를 고구려라 칭했다. 단군기원 원년 무진부터2,096년이라 임술 57년고열가 단군께서 조선 폐관하시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었다.


조선폐관
(6960-BC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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