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는가 보다.

추적거리는 창밖의 비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몇자 적기로 한다. 

할일이 노는것 밖에 없는 삶인데 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 궁리하다가

생각난게 결국 컴퓨터고 이메일이구나. 내 형님은 86세 나이에 저리도

부지런하고, 할일이 더 남아 아직 죽으면 안된다고 하시는데, 14살 밑의

나는 하루가 마냥 무료하여 죽지 못해 산다고 하니 참 면목이 없다.

60회분을 넘겼다고 하셨던 "경제개발의 길목에서"는 요즘은 회고가 아니라

평소 하고싶었던 말을 정리해 놓은 느낌이다. 물류대국구상은 몇년간의 조사와

연구와 현지실사를 거치며 마련하고, 어렵게 청와대로 김대중을 찾아가 직접 

건의하고 추진을 도모했으나, 김대중은 별 관심도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노무현이가 일부지역을 자유무역지역으로 선정하는 것에서 끝나고 말았으나,

이 양반의 구상은 한국이 경제대국 중국곁에서 향후 한두세대간 먹고 살길을

열고 선진화를 이뤄내자는 것이었다. 이 양반은 얌전한 학자가 아니다. 치밀하게

분석하고, 합리적인 실행계획을 세우며, 과감하게 추진하고 행동한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이명박독재시대가 되어있구나. 지하철안의 아줌마들도

노무현은 성군이고 이명박은 독재자란다. 내 마누라도 친구들 말이라면서 덩달아

이명박독재를 운운한다. 독재가 뭔지 잘 모르겠다. 김동길 말대로 지금 정부는

헛개비 정부고 진짜 정부는 따로 있다는게 정말 맞는 말이다. 일사분란하고 순식간에

수만개 노란 모자, 노란 깃발을 만들어 내고, 급기야 시정 아줌마들도 이명박독재를

외치게 만드는 효율적 정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인수위시절과 이명박의 대통령취임연설을 보고 이명박에 대한 기대는 일찍

접었었다. 그래도 학문을 한다고 월급 타먹는 대학교수라는 위인들이 독선과 독재를

구분 못한대서야 나라의 장래가 암담해질수 밖에 없다.

 

자네 동생과 처남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중추세력들이 노무현을 숭상하고 이명박을

타도대상으로 여긴다고 해서 그들만 탓할수는 없다. 조선조 당쟁의 유전자가 면면히

흘러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조선의 당쟁사를 아무리 미사려구로 옹호하고, 일제

식민사관의 왜곡이라고 우겨도, 그 더러운 권력투쟁의 피비릿내는 역사적 사실이고,

그것이 얼마나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건다 하더라도, 결국 조선선비들의 사회진출의

길이 몇 안되는 관직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 밥그릇 챙기고 지키려는 권력투쟁이었을

따름이다. 투표와 선거가 있고, 별의 별 민의가 다 판을 치는 지금의 개화된 세상에서

죽창과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세상을 뒤엎자는 세력을 진보라고 부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있다.

 

이 모두가 잘못된 교육의 결과가 아니겠니? 민족지상,통일지상, 순혈주의,과장된 정의, 

과장된 역사 교육..... 전교조가 문제가 아니라 나부터도 어려서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 

젊었을때 한말숙이가 어느 신문에 "꼭 통일을 해야할까?"란 글을 썼을때 "이 처 죽일년!"

했던게 나였다. 나는 지금은 한말숙이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거부들은 다 부정부패의 결과물이니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생각도 철부지 시절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엔 淸貧은 있어도 淸富는 없었다.

돈이란 항상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이지 못했다. 돈은 부를 재는 척도이지 도덕과 윤리를

재는 척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돈을 멀리할가, 가까이 할가에 있는 것이지

윤리적 돈, 도덕적 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 이 세상 어느 역사에 淸富가 있다던가?  사람들은 희대의 자선가

카네기와, 록펠러센터, 밴더빌트, 스태포드대학은 알아도 이들이  당시에는 모두

大盜로 불렸다는 것을 외면한다.카네기철강공장에서는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발포하여

20여명이 죽어나갔고, 록펠러는 석유사업독점을 위해 뇌물과 태업조장으로 경쟁사들을 거꾸러

뜨려 자신이 헐값에 주어먹었다. 황금으로 메끼한 시대(The Guilded Age)로 불리는 미국의 

산업화기는 부정, 부패의 연대기이외에 다름아니다.

소위 "도둑나으리들" Robber Barons로 불렸던 그런 더러운 부들은 산업화기의 영국, 프랑스, 

독일 어디에나 있다. 지금도 있다. 년봉 몇푼 안되는 직원들 몰아내고 이른바 구조조정을 하여

은행을 살렸다는 옛 뱅크 오브 아메리카행장은 물러나면서 퇴직금 1억달러를 챙겨나왔다.

그래, 더러운 부를 뒤엎자면서, 박연차가 무소불위로 날뛸때 정의의 사도 노무현은 뭘했으며, 

거기에 빌붙어 한밑천 잡으려한 노무현은  또 어떻게 성군인가?

 

박정희의 동상은 아직 멀었다. 이승만동상처럼 두동강 나서 끌려다닐 이유가 없다. 더 역사의

김에 쩌서 잘 익었을때 세워도 늦지 않을것이다. 나는 박정희에게 있어 독재와 경제개발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독재가 없었으면 경제개발이 없었을테고, 경제개발이 없었다면 독재도 없었을

것이다.박정희보다 심한 독재를 하고서도 산업화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나라들이 허다하다.

 

이제는 이 땅에서 대통령중심제라는 것을 뜯어고처야 할 시점이다. 공자는 朝楣 夕死可矣라고

하면서도 어찌하여 仁治만 내세우고 法治를 멀리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절대권력의 대통령 

하나 뽑아놓고 그가 군자이고 의인이기를 고대한다. 전국규모로 돈을 뿌려야 하고, 전국규모로

인적조직을 동원하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뒤 신세진 사람들을 나몰라라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몇십년의 경험은 대통령중심제가 실패작이었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데도, 이를 뜯어고칠

생각들은 아니한다. 흔히 내각책임제의 폐단으로 프랑스제4공화국을 든다. 제4공화국 12년간 

정부가 26번 바뀌었다. 결국 드골이 이원집정부제라는 절충안으로 제5공화국을 만들어 우파대통령에

좌파내각, 좌파대통령에 우파내각이 들어서는 상황에서도 나라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우리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이 관건이라고 말하는데, 운영의 주체인 인간은 때로는 악마고

때로는 천사인 동물일뿐이다. 공자도 평생 만나지 못한 의인을 어디가서 모셔오랴! 얼마든지 좋은

일에 써야할 국부를 대통령선거에 쏟아붙는 이 어리석은 짓, 대통령이 홍길동이기만을 바라는

헛된 망상들을 얼른 접어야 할것이다.

 

횡설수설 공연히 길어졌구나.

점심 먹자고 하여 쉬었다가 다시 쓰려니 좀 웃으어졌지만 그냥 보낸다.

나이 든 마누라들은 부엌이 지옥이라 나가 먹자고 하여,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맥도날드

햄버거집엘 가서 간단히 때우고 와 계속했다. 우리동네 맥도날드집은 완전히 여자중학생들의

집합장소로구나. 참 신기한 풍경들을 보고서는 역시 세상은 멀리 떠났어 하고 돌아왔다.

장마철 건강 조심해라.



<아래는 내가 답한 횡설수설>



굵은 빗줄기가 US Open도 못보게 하는구나.

내손녀가 첫 골프장 나들이를 간다며 갔는데 비로 망쳐버린것 같다. 

아들 대학 후배가 월스트릿서 아직도 잘 나가는 친구가 있어 초청해서 갔는데. 

 

玄剛이란 내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파계에 밝아 자네네집을 신익희씨네와 같은 南人계열이라고 일러주었는데 
몇년전 <同一會>에 대한 기사를 보고 南總理네가 원래는 小北 임을 알았지.  
그기사를 읽고 자네 伯氏의 궤적을 가만히 지켜보면 영락없는 小北의 성품이 남아 있어.

내가 알기로는 北人이 대소북으로 갈라지며 光海때 집권대북에 밀려 조용히 안으로 침잠하며 일을 하면 
엄청 실용적인 경향을 띄우지.

박제가 강세황 유득공등등이 小北계열의 학자들인데 28개姓 69개 가문으로 아직 똘똘 뭉쳐 400년 이상을 
유지한다는것은 아마 <北譜 >같은 줄기를 담은 보학이 유지되고 혼인에서도 小北끼리란 원칙을 근세까지 
지탱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네. 北譜에 명시된 八約條의 정신을 보면 자네 백씨나 자네의 행동 반경이 보이지. 
근년에 小北의 첫 영수 金藎國의 後추集까지 국역이 되어 나왔다니 읽어 보았는지 모르겠네. 인조반정이후 小北이 
남인으로 흡수과정을 겪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내동창이 자네네를 남인이라고 내게 일러준것 같아.

엄격하게 이야기 하면 京南이라고 호칭해야 옳지. 서울근교에 살던 남인인데 원래는 북인들의 후예를 
京南이라 일컫지. 고종때는 실용노선을 갖고 관직 진출도 많이 했지. 박제가나 유득공의 행적을 보게. 
그 불우한 신분의 벽을 지니고도 끊임없이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 모색 하지 않았는가. 
또 단원 김홍도의 스승 豹菴 姜世晃의 삶을 보면 옷깃을 여미게 되지. 그 참람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가로 늦게 정조의 밝은 눈에 들어 걸은 실용노선은 내눈에는 특이 하다네. 지난 초봄인가 마곡사의 현판 하나 
그가 쓴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

나는 사색당파중 北人들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네. 남명 조식계열을 말함인데 광해때 집권해서 
조선역사상 가장 실용노선을 추구했지.

몇가지 실책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서인과 남인이 합작을 해서 인조반정 이라며 밀어낸건 우리 역사의 
아쉬움이야. 남인은 DJ집권의 JP꼴인데 아마 퇴계에게 남명이 싫은소리를 가감없이 쏟아낸 여파로 나는
알고 있네. 또 정인홍이 퇴계에게 공부하러 왔다가 자꾸 서애와 분란을 일으키니 퇴출시킨게 큰 원인이고.

아마 자네 형님은 돌아 가실때 까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더 잘살수 있으까 고심할거야.

나는 항상 이 한반도를 구한것은 壬亂때 西厓와 朴統때 南長官이라고 생각 하지. 이걸 엮어 글을 써보고 싶지만 
아는게 너무없어.

 

우리 南人 士林派는 개혁성으로 집권에 목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西人에 못지않는 엄청난 보수꼴통으로 
돌아서 버렸다는것을 자네는 간과 하는것 같아. 화서 이항로학파가 걸었던 위정척사의 길을 우리 퇴계학파도 
똑같이 걸었다네. 유길준이 <서유견문록>을 지어 우리 종손한테 보냈더니 보지도 않고 장지문 닫아걸어버렸지. 
우리 종손 西山 金興洛은 조선천지 그가 학자라고 인정해야 선비구실을 했다는 카리스마를 지녔던 인물이지만 
우리 후손들의 앞길은 전연 도외시 했네. 머리 땋고 공자왈이나 읽어야 했지. 남들은 동경유학가는 세월에.
그래서 우리는 독립운동에 올인했고 큰종가 앞터에 노무현정부가 147억을 들여 독립기념관을 지어준 연유지. 
아마 이땅에 독립운동 유공자가 40여명 이상 되는 집은 우리집 뿐이야. 
서산 김흥락의 수제자 石州 李相龍(자네와 내가 들렸던 임청각의 종손 이었지)의 서간도 무관학교에 우리종가 
재산 400여억원을 털어 넣은 이유가 여기 있고 憲宗때 우리문중이 하사받은 태백시를 포함한 사패지 3600만평을 
총독부가 강탈해간 이유지. 팔아서 독립자금으로 쓸까바.  그 하사할때 내린 교지를 안뺏길려고 전 포항공대 학장 
김호길과 한동대 학장  김영길의 증조부 조부 父子는 12년 반이나 옥살이를 해야했어.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 인가>가 남긴 해독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 해석이야. 
이게 맞다면 시대에 따라 자꾸만 다른 역사 해석이 나와. 그래서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해석이 시대 
따라 자꾸만 달라지는지 모르지. 엣날엔 올라르를 
위시해 마티에즈, 르페브르, 소불로 이어지던 프랑스 학자들의 맑스주의적 해석은 자취를 감추고 
요즘은 영국의 코반, 미국의 테일러등은 부르주아혁명이란 소리에 코웃음치데.    
내가 볼때 역사란 "지나간 과거중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일뿐이야. 자네가 지적한  이땅의 진보도 두고보세. 
시간이 지나면 보수꼴통의 바탕일 뿐이야. 영원한 진보는 없다네. 이건 믿어도 되네. 

촛불을 깃발로 바꾸고 뇌물 받은게 부끄러워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진 투신을 횃불로 바꿔볼려는 시도는 
밑천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쑈야. 십년 단물에 대한 향수 일꺼야.

 

언젠가 내가 이야기 했듯 우리 望八(71세)의 나이는 조용히 세상 돌아가는 구경이나 하세. 
분명 우리 세월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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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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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김창현

2009.07.16
09:05:00
(*.77.187.179)
지난 50여년,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는 파리 휴스턴 파나마에 가서 살았고
저는 미주땅에 살았었습니다.
최근 이메일을 쓰기전 까지는 편지질 이었고
아마 주에 한번 꼴로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위의 글에 나타나듯 그의 친형이 남덕우 전총리 입니다.
50년대말 죄꼬리 만한 장학금을 받고 오클라호마대학서 학위 하면서
책갈피에 $100짜리 하나씩 넣어 보내면 우리둘은 그걸들고
명동 암달라상을 찿아 바꾸곤 했습니다.
그게 내친구내 생활비 였습니다.
그래 내 친구네가 전전한 셋방은 헤아릴수 없습니다.
아마 스무곳 이상 제가 가본것 같습니다.

남덕우씨는 가난 때문에 중학, 고등학교를 못다닌 분입니다.
일인 담임이 마련해준 여비로 경성사범 시험을 쳤다가 떨어져
충무로 일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손에 책을 놓지 않는 학구파 였습니다.
해방공간 혼란덕에 가라 졸업장으로 국민대학을 갔고
졸업과 동시 한국은행 수석합격을 했습니다.
처음엔 정치과를 들어 갔다가 우리집은 왜 이리 가난한가
돈이란게 뭔가 알고 싶어 경제학과로 전과 했답니다.

제친구도 망백의 나이지만 아직도 글이나 언행에 조리가 남아있습니다.
역시 그는 小北의 후예입니다. 채제공 홍양호 최성대 임정 허필 신경준 성대중 이옥등
16-18세기를 산 소북들은 하나 같이 문장이 뛰어나고 논리가 정연 합니다.
또 청빈한 삶을 추구 합니다. 제 친구도 십몇년 타던 소나타를 얼마전 처분했습니다.

파리생활 7년에 녹아있는 그의 합리성과 제 횡설수설은 이메일 이란 사이버 공간서
앞으로도 오 갈 것입니다. 심장이 나쁜 그의 건강이 우려 됨니다만.

저희둘의 사적인 이메일을 여기 띠운건 아무래도 추정 추정 내리던 비탓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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