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기행 1

김창현

蒙古草原서 진땀뺀 조랑말 타기

                                  씨야의 內蒙古 기행 (1)

 

 

옛날 옛적부터 몽골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바람부는 초원과 열사의 사막, 우리들의 조상이 그곳에서

왔다는 이야기와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

 

단군왕검의 도읍지였던 내몽고.

당신은 들었는가! 반만년전 홍산(紅山)문화의 유적지 우하량

(牛河梁)서 울려오는 한민족의 맥박을.

당신은 보았는가!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가 말하는 고조선의 청동기문명을.

 

800년전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칭기스 칸의 땅.

거기에는 신화소(神話素)가 같은 단군신화와 몽골인들의

무속대서사시 게세르(Geser) 신화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우리네 절 뒷켠 산신각, 칠성각에 모셔져있는 샤만의 흔적과

그들 오보산에 모셔져 있는 샤만의 자취가 무엇이 다른지.

주몽(朱夢)의 딸이자 몽골족의 시조모(始祖母) 알랑 고아가

서방을 기다리며 목이 빠져라 천막 원통천정을 처다보고 있는곳.

 

1231년부터 물경 7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공에도 고려는 살아 남았고

1254년 5차 침공에서만 206,800명의 포로가 몽골로 잡혀 갔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원간섭기 100년동안 80년은 한해도 빠지지 않고<처녀진공사신

處女進貢使臣>을 보내 우리네 젊은 여인들을 잡아간 나라.

그래서 이땅을 산 여인들의 혼은 한이 되어 창공을 맴돌고.

42년간에 걸친 처절했던 항몽전(抗蒙戰).

몽골을 쳐부수고 싶은 피눈물의 염원을 담아 깎은게

세계 유일무이의 고려팔만대장경판.

쿠빌라이는 고려를 부마(駙馬, 왕의 사위)의 나라로 만들어

제딸부터 7명의 왕비를 보내고 왕이름들 앞에 충(忠)자를

하나씩 달았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입으로는 고려의 풍속을 다치지 않겠다며 불개토풍(不改土風)을

되네이면서도 악질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깔아놓고 갖은 악행,

갖은 만행 다 저질렀다.

 

여몽연합군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앞장을 서서 일본을 침공해야

했던 세월, 제주를 기지로 3년에 걸친 삼벌초들의 피나는 항전이

그나마 우리들의 위안 인가? 무신정권의 전위부대인 삼별초가 4년간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  쿠빌라이 해양제국구상에 찬물은 끼얹었었지.

 

우리들 어휘에 수없이 남아있는 그들 간섭기 몽골어의 잔재들.

마누라, 마마, 수라, 무수리등등.....

또 직업을 나타내는 수많은 <치>들.

벼슬아치, 양아치, 장사치, 조리치(청소부), 화니치(거지), 시파치(매사냥꾼)등등.....

우리들의 의(衣),식(食)문화에 남아있는 수많은 그들의 유풍(遺風)들.

수메르에서 시작한 소주(燒酒)는 아랍을 거쳐 1258년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을 침공한 몽골군에 전수되었고 몽골군이 일본원정을

가며 개성 안동 제주 세군데에 세운 군용양조장이 이땅의 소주(燒酒)

문화의 효시(嚆矢)다.

설적(薛炙, 케밥), 설렁탕(슐루), 만두등도 이때 우리땅에 들어 왔고

족두리(고고), 여인들이 볼에 찍는 연지, 제주 조랑말도 몽골이 이땅에

남기고간 흔적들이다.

 

고비(Gobi)사막 가장자리인 쿠부치(庫布其)에 들어서기 직전

적토마(赤兎馬)를 즐겨탄 여포(呂布)의 고향 구원(九原)이 있고

거기는 진시황이 2년반만에 30만을 동원해 딲았다는 폭67m의

세계최초 고속도로 진직도(秦直道) 700Km의 시발점이다.

이 길을 딲다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어느새 구원(九原)이란

단어는 무덤이란 낱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서 구원(九原)이란 말을 무덤이란

뜻으로 쓰지 않았는가?

 

나는 묻는다.

정녕 구원(九原)옆 빠오토우(包頭) 남쪽엔 칭기스 칸이 묻혔는가?

 

과연 그 이모든 이야기의 연원을 알려면 나는 어느 초원,

어느 오르도(왕궁 게르)를 기웃거려야 하는가?

 

강(가뭄)과 쪼드(혹한)가 막 시작하는 1921년 초겨울.

공산당선언을 한국서 처음 번역한 여운형은 자동차 마차

썰매를 갈아타고 고비 막북(漠北)을 넘어 모스크바로 가 레닌을 만난다.

그가 남긴 고비사막 종단기는 나를 울린다.

젊은 혁명가는 찬서리 찬바람속에 독립을 노래했고

찬 밤하늘의 별들과도 대화했다.

 

이 상념(想念) 저 생각에 젖어 나는 내몽고로 떠난다.

 

모가라벌(蒙古草原) 찿아 가는길, 생각보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인천공항을 이륙 2시간 만에 칭기스 칸이 두번째 도읍으로 삼았던

지역 후허하오터(呼和浩特)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검역을 한다며

여객기를 허허벌판에 마냥 기다리게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내심을

떠보았다. 느려터진 입국심사를 마치고 시내로 들어 가는길.

새벽 1시라 그런지 길엔 깜둥개미 한 마리 없고 높은 빌딩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적막, 적막. 가끔 차들이 지나칠 뿐.

 

내몽고는 작년 북경 올림픽 때문에 800년의 잠에서 개어 났다.

주도(洲都) 후허하오터 근교에다가 승마경기를 야심차게 유치.

도시의 얼굴을 완전히 뜯어 고쳐가는데 올림픽 개막 넉달전

말(馬)들의 공항검역설비 미흡으로 홍콩에 승마경기를 빼앗겼단다.

겉모습은 근사한 공항과 호텔, 안도 으리 으리한데 정작 있어야할

서비스 정신과 그 무엇들 2%가 빠져 참 한심했다.

보통 침대머리에 있어야할 스위치는 없고 전화는 일어나 걸어

가야할 책상 위에 놓였고 방과 방사이도 통화 불능.

1400m 고원. 밤 찬바람이 싫어 창문을 닫으려니 고장.

열린채 요지부동. 이게 갖 개업한 새 호텔인가? 윗층에서 물이

줄줄 새 바닥을 적셔 이야기 했더니 한참 만에 나타난 몽골처녀,

늙은 우리내외를 마치 초원의 양때몰듯 어서어서 하는 시늉을 하며

다른방으로 몰아 갔는데 미안한 기색은 아예 없다.

 

새벽 호텔 창문 넘어 후허하오터 풍경은 온통 공사판.

중기소리, 차소리 온갖 훤소(喧騷)속에 자전거가 무리짖는다.

Audi, BMW등 세계 명차들도 줄을 잇는다.

 

가마속 왕소군(王昭君)이 하도 예뻐 하늘의 기러기들이

넋을 잃고 떨어졌다는 낙안(落雁)의 고사가 서린 시라무런

(希拉穆仁,‘황색의 강’이란 뜻) 대초원을 찿아 90Km의 길을 나섰다.

참 희안하게 생긴 거대한 박물관건물에 감탄을 하는데

이번엔 길가 즐비한 과일노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옛 왕유(王維)의 시에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이라더니

여기가 그짝 이다. 이길을 벗어나면 과일을 살수 없단다.

그래서 초원의 사람들은 꼭 여기서 과일을 사가지고 길을 떠난단다.

수박 멜런등등 정말 먹음직 스럽다. 고원에서 자란 탓인가.

 

차가 도심을 벗어나자 남루하다 못해 땟물이 뚝뚝 떨어질것

같은 내몽고시골의 속살이 얼굴을 내민다.

가축 3,546만 마리, 양 2,074만 마리, 산양 949만 마리,

젖소 318만 마리가 사람 2,345만과 뒤엉켜 산다는

중국낙농의 본향이 내몽고라니 보지않고도 벌써 냄새부터

코끝을 후빈다. 최근에도 세계사료업계를 주름 잡는 홍콩

동방그룹의 유영행(劉永行)이 60억 위안을 이곳에 투자했고

세계적 낙농 기업인 몽우(蒙牛)와 이리(伊利)의 본사가 이곳,

후허하오터에 있다. 중국 우유 멜라닌 파동의 진원지가 이

내몽고니 그 농촌이 어느 정도일까는 짐작 하고도 남는다.

차는 내(洗越)를 건너 황무지를 지나니 유채 밭들이 흐드러 졌다.

중국 국토의 12%나 차지하는 내몽고는 향후 세계낙농산업의

중심지를 예약하고 있는가 하면 천연자원의 보고다.

그들은 신해혁명으로 외몽고를 잃어(?)버린걸 땅을 치며 후회한다.

언젠가 등소평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는 희토류(稀土類)가 있다”고

큰소리 쳤다. 반도체 생산의 필수품인 희토류의 세계생산량 90%가

내몽고서 나온다. 또 주석도 세계생산량의 79%를 내몽고서 캐낸다.

이젠 개밥에도 변의 냄새 제거용으로 주석이 꼭들어 가야하는 세상이니

자원을 쥔자 거드럼은 불문가지다. 그외에도 석탄등 각종 광물

안나는게 없는 내몽고 땅, 년경제 성장률 15.5%를 자랑한다.

상해지역의 무려 3배. 그래서 세계 명품 메이커들의 목표시장으로

선정된곳이 이 내몽고다.

 

두어시간 달렸나 띄엄 띄엄 게르(包 혹은 Yurt)群이 나타난다.

우리일행이 오늘밤 묵을 <蒙古人經地>는 수십채의 천막 모텔 격.

가까이 차가 접근하자 한떼의 조랑말을 탄 목동들이 차를 에워싸고

호위를 한다. 버스가 주차장에 멎고 문이 열리자 몽골처녀들의

환영의식이 벌어진다. 싸움에 나가 이기고 돌아온 자기부족을

환영하던 관습 이란다. <하마酒>란 이름의 승리자축배도 한잔 주는데

꼭 오른손으로 받아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주의사항이 많은데

입에 대보니 독한 빼주이기에 얼른 되돌려주고 술을 손가락으로 찍어

처녀 얼굴에 발라줘야 한다는 의식은 까먹고 말았다.

 

방 열쇠를 받고 내게 배정된 게르를 찿아가보니 TV도 있고

시멘트 바닥에 침대, 어설프지만 화장실에 샤워 꼭지까지 달렸다.

장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짝퉁 게르다.

 

밖을 나와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은 희쁘였다.

식당게르 옆 즐비한 태양열 집적판들은 여기가 고비사막

한복판속 태고의 초원인지 의심이 갔다.

파란 하늘, 맑은 공기, 푸르른 풀밭은 공상 이었을뿐.

올들어 이지역에 온비는 단 4번.

그마져 초원에는 길어야 5분 정도 온단다.

그러니 땅은 닿기만 해도 먼지만 풀석 거리고 목동들의 시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왜 생겨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초원도 년에 1Km씩인가 줄어들어 사막이 된다니 지구온난화

문제는 여간 심각한게 아니다.

 

엄청 큰 식당게르에 차려진 점심.

왜 라면과 반찬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것같다.

도무지 내몽고서 한국 단체관광객을 받은게 지난 6월27일부터라니

아직은 우리에게 다가서지 않은 자기네식 그대로인셈.

그러나 관광객을 향한 물가는 이미 천문학적.

식당입구 흑칠판에 양다리 하나에 한글로 512위안 이라고 적혀 있다.

근 한국돈 10만원. 양 통마리는 한국돈 40만원 이란다.

 

<蒙古人經地> 앞 들판에는 조랑말들과 삼대구년 세수 한번

안한 마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멀리 있는 인근목장들에서 관광객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벌기위해 자기말 너댓마리씩 끌고 모여든 목동들 이다.

2시간에 $30씩. 목동들은 조상이 우리와 같아 그런지 모습은

우리와 영판인데 서로 떨어져 산 천년여 세월이 길고

태양에 그을고 씻지를 않아 새카만 얼굴 윤끼마져 반질반질,

그들의 고유의상 델(Deel)은 온통 때물이 줄줄 흐를것만 같다.

한국관광객이 오는게 그들에게도 빅뉴스란다.

멀리 40Km 떨어진곳에서도 관광객인 우리를 관광하러 일부러 온다고 .

그들은 우리가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 이라나.

 

일행 거의 모두 말을 타고 나섰다. 한시간 가고 되돌아오는 거리.

가이드는 말을 타면 그 끝에 오아시스도 있고 따근한 말젖차도

기다린다고 약을 팔았는데 먼지만 풀석 풀석. 바람도 생각보다는 엄청 쎄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몽골초원의 길은 칭기스 칸이

잠들어 있는 이흐 호리그(大禁區)로 나 있었다는데 그것도 하나의 전설인가?

그가 잠들고 있는곳은 학자마다 추정이 틀리고 1954년 중국정부가

국가4성문화재라며 이얼도로(卾爾多斯)에 새로 근사하게 꾸며 놓은

<청지쓰 한 릉(陵)>을 믿는사람도 별로없단다.

 

내 몸무게가 85Kg이라고 큰말을 태워 달라고 했더니

정반대로 제일적고 비리적은 말을 태워주었다.

말은 가면서 콧바람을 연신 불어 제치며 안갈려고 딱 버텨서기도 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에서 앞다리를 잘숙,

하마트면 앞으로 곤두박질 칠뻔 했다.

한마디로 내가 무겁다는 여러 표현을 계속했다.참 미안했다.

전생에 무슨 연(緣)이 있어 우리 오늘 만났는지....

제일적은 말이 아직 나이 어려 힘이 가장 쎄단다.

그래도 엄청 힘들어 하고 나를 태우는걸 싫어하니 난감.

말타자고 나선걸 후회했다. 그래 그래 40여분 달렸나.

야트막한 구능아래서 말을 내려 오보산에 올랐다.

오보산 위에는 몽골전래 신앙 샤마니즘과 조상숭배의

상징인 우리네 성황당과 똑같은 돌무더기가 있다.

돌무더기에는 돌아가며 금줄이 처져있고 프르고

흰천들이 매달렸다. 꼭대기에는 ‘술데’라는 영기(靈旗)

상징물이 꽂혔고. 오른쪽으로 세번돌고 왼편으로 세번돌며

소원을 빌라고 시킨다. 유목민인 몽골족은 모든자연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이점은 우리의 무속신앙과 꼭같다.

여기에 티벧의 라마교가 들어와 몽골족 전체가 수백년

세월을 지나며 불교란 외투를 입는다.

오보산이란 그래서 생긴 몽골 고유문화인데 부동산 거래의

기준점이기도 하고 남녀 데이트의 장소 이기도 하단다.

물론 몽골여자가 오보산에 오르는 거는 금기.

관광온 여자들이 올라가면 그건 또 묵인을 하고.

하나같이 민둥산인 이곳에서 그들은 종교의식도 거행하고

그들끼리는 척 보기만 해도 어느 성씨네 오보산인지 식별이

가능 하단다. 그만큼 우리네 눈에는 분별이 되지않는 다름이

오보산들에는 있는 모양이다.

 

다시 말을달려 유목민들의 주거지인 오아시스로 찿아 들었다.

오아시스라고 해야 야자수가 늘어진것도 아니고 지하수를 퍼올려

채전 밭도 있고 풀이 키가 좀 크다는것 뿐.

토담집 앞에는 폭스웨건 차가 서있고 소똥인지 말똥인지

취사용으로 쌓아놓은 똥무더기가 인상적 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는 말젖차 한잔씩을

권했는데 여기서 나는 육망을 처음 보았다.

마치 좁쌀처럼 생겼는데 칭기스 칸 군대는 물과 육망과 육포를

가죽주머니에 넣어메고 달리며 전쟁을 치루었다.

저 비엔나 근교까지 처들어간 몽골군의 주식이다.

여기에 젖으로 만든 마른 요구르트를 곁드리면

그게 전투용 식사란다. 육망은 당뇨에도 또 다이어트에도

그렇게 좋은 건강식품 이라고 자랑했다.

 

돌아오는 길, 내말은 여전히 불만을 표시 했지만 어쩌나,

먼지만 풀석이는 풀이 듬성듬성난 먼길을 걸어올수도 없고

도리없이 조랑말위에 올라앉아 버티는 수밖에.

말몰이꾼 몽골청년이 질주하는 맛을 보라며

채찍질 할때마다 조마조마 했다.

네다리 딱 버티고 꼼작안해 보아야 돌아가는건 매질뿐.

마장까지 간신히 몰아와 말에서 내리니 속이 다 후련했다.

아무리 말못하는 짐승이지만 점심 직후 왕복은 그렇게 투정을 부린단다.

 

게르 옆 먼지 펄펄 나는 거친 초원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파티를 벌였다.수박과 멜런들.후허하오터를 벗어나며

길가에서 사서 버스 짐칸에 넣어 온것,

차지도 않는데 꿀맛이다.

아마 내가 후허하오터에 다시 들린다면 이 멜런 맛을

못잊어서 일터다. 마치 두리안 맛을 그리며 방콕을 자꾸 가고 싶듯.

우리내외는 멕킨지 콘설턴트에서 일하던 딸 출장을 따라서 두리안먹으러

방콕을 우정 간적이 있다.

이처럼 제철, 제곳에서 나는 잘익은 과일은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미각을 자랑한다.

 

저녁먹으러 들린 식당게르에는 한국관광객보다 중국사람들이

더 법석을 떨었다. 양한마리 구운<통양 바비큐>는 먹기전 요란한

의식이 꼭 집행되었다. 마치 무당 굿풀이 하듯.

양의 목위가 조각으로 달린 카트에 실려 나온 양을 빙둘러 싸고

통양을 주문한 사람도 술잔을 붓고 몽골처녀들은 요란한 노래를 부른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새로보는 거친 음식들, 여행가방에 넣어간 반찬으로

그나마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너무 너무 시끌벅적했다.

벽에는 1206년부터 21년간 칭기스 칸이 침략한 유라시아의 전도가

러시아말로 된 해설과 함께 걸렸다.

<成吉思汗時期蒙古戰爭結構圖>란 제목을 달고.

아마 이지역서 잡은 야생동물들의 모피와 함께.

또 칭기스 칸의 제단도 조촐 하나마 한벽을 장식하고 있다.

이게 다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인테리어들 같은데 거칠기는 한량이 없다.

 

게르로 돌아와 좀 씻을려니 쨀쨀 나오는 물은 차고

더운물은 밤 9시반이라야 준다고 적혀있다.

밤되니 점퍼를 걸쳐야 할정도로 초원의 날씨는 쌀쌀했다.

해발 1400m라니 비만 좀내리면 이보다 더좋은 피서지도 드물것 같다.

 

                                     Aug 14 2009

                                     씨야 김 창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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