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종가 제사 엿보기--의성김씨 지촌종택의 기제사




제사는 농경시대 우리의 전통 생활문화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요즘은  제사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고 참석자가 줄어들어 점차 변질되고 사라져가는 풍속 중의 하나이다.



여 타 종교의례와 마찬가지로 유교식 조상제사에도 대상이 되는 신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다름 아닌 조상신이다. 다만 모든 조상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고 4대조 곧 고조까지의 조상만을 모신다(4대봉사). 즉 5대가 되면 제사를 받을 수 없게 되는데 이를 ‘오세즉천(五世則遷)’이라고 한다.



나 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높은 관직을 역임한 경우 또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은 4대를 넘겨도 후손대대로 제사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불천위(不遷位)’라 한다.  이처럼 자손만대 받들어진다고 하여 이들을 ‘백세불천(百世不遷)’이라고 한다.



불천위로 지정되는 당사자는 물론이지만 가문의 영예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불천위조상에 대한 예우는 각별하다.

신주는 4대조상들의 신주와 달리 별묘에 모셔지고 별묘가 없는 경우는 감실의 가장 상석인 서쪽 끝에 모셔진다.

또 제사는 ‘큰제사(大祭)’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널리 알리고 제사 수행과정도 대외적으로 개방되며 성대한 제물, 수많은 참사객, 엄격한 격식 등을 수반한다.



정신문화의 수도라 일컫는 양반도시 안동지역의 불천위는 50位다.(2006년 현재)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일 것이고 주로 조선시대에 추대된 것들이다.


▲종택에서 조금 떨어진 정곡강당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창을 열면 저 멀리 반변천이 내려다보인다.




6 월 16일(토)은 주말에 안동의 의성김씨 지촌종가(지례예술촌) 차종손 김원길님의 5대 조모의 기제사가 있는 날이어서 제사를 참관하기위해 지촌종택을 찾았다. 불천위의 큰제사는 많은 이에게 개방되어 흔히 참관할 수 있지만 외부사람이 양반집의 전통 기제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이렇게 제사를 개방하는 것은 전통제례를 원형대로 보여줌으로 전통제례를 보전하기위해서 일 것이다.  



지례예술촌 지촌종택(芝村宗宅)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산769에 있는 의성 김씨 김방걸(1623∼1695)의 종가이다. 김방걸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대사간과 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낸 분이다.



지 례예술촌은 종택과 제청 그리고 지산서당이 3000여 평이 되는 담장 안에 모여 있는 고택이다. 그 후손이자 시인인 차종손 김원길씨가 운영하는 체험전통고가옥이기도 하다. 원래는 지금 위치보다 300m 아래의 강가에 60여 호 되는 전통마을이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자 1986년부터 89년까지 종택과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종택은 헌종 4년(1663)에 지었고 본채와 곳간, 문간채, 방앗간 등과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 별묘로 구성되어 있다.





1.기제사 엿보기




▲제관들은 도포와 갓, 유건을 쓰고 제사에 참여하였고 차종부도 같이 참여하였다. 고례(古禮)에 기록되어 있는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오는 출주(出主)의식도 행해졌다.



2.제사상 


1)밥과 국(메와 갱)

일상의 밥상에서 기본을 이루는 밥과 국이 제사에는 ‘메’와 ‘갱(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고례를 보면 고기만 넣거나 고기에 콩나물을 같이 넣은 국이 주로 나타나지만 안동지방에서 쇠고기갱은 퇴계종가, 풍산 류씨 양진당(류운룡)종가 등 몇 곳을 제외하고는 드물다.



콩나물갱은 밭농사 잡곡위주의 내륙산간지방인 안동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종 가는 불천위제사를 비롯한 4대조의 기제사, 명절차례 등 1년에 약 20회가 넘는 조상제사를 모시고 있다. 천석꾼이나 만석꾼이 즐비한 다른 지역에 비해 백석이 넘으면 부자로 불리던 안동지역의 빈한한 가문들에게 매 번 쇠고기제물의 장만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쇠고기갱을 사용하던 불천위제사도 이런 기제사의 영향으로 차즘 콩나물갱으로 대신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지촌종가에서는 밥과 더불어 국수도 올라간다. 그래서 밥그릇이 2개다. 국은 전국적인 경향인 쇠고기와 무를 넣어 끓인 쇠고기갱, 즉 탕국이 아니라 쇠고기 없이 콩나물과 무를 넣은 콩나물갱이 올라간다.




콩나물갱 못지않게 안동지역에 주목되는 특별한 제물이 상어(돔배기)와 간고등어이다.

안동은 주로 동해안지역에서 생선을 공급받았는데 태백준령을 넘어오는데 꼬박 이틀은 걸렸다. 그래서 삭히거나(발효) 소금에 푹 절여도 지장이 없는 생선 혹은 아예 말린 생선 등이 운반되었다.

상 어는 홍어와 같이 배설물을 피부로 배출하는 속성이 있어 피부로 흡수된 소변에 함유된 암모니아 성분이 발효를 일으켜 상하지 않도록 한다. 도막낸 상어고기(돔배기)에 소금을 듬뿍 뿌려 항아리에 잘 갈무리해 놓으면 여러 번에 나눠 쓸 수 있고 짠 맛 때문에 한 도막으로도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다. 경북 내륙지방은 돔배기 없으면 제사를 못 지낸다고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여타지방은 사람을 잡아먹는 고기라하여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 안동의 브랜드상품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간고등어는 예전에는 상어에 비해 하급어물로 여겼던 탓에 제물로는 올리지 않았다. 근래에는 대체로 사용하는 편이다.

생선이 귀했던 안동에서 비교적 저렴한 간고등어는 일상의 귀한 반찬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소금간이 강해 훨씬 짠맛이고 보관에도 유리했다.



2)탕

가문의 위상을 드러내는 과시용 제물로 이용되는 것 중의 하나가 탕(湯)이다.

탕은 우모린(羽毛鱗)의 원칙, 즉 하늘을 나는 깃털을 가진 새라는 의미에 닭을 이용한 계탕(혹은 鳳湯), 육지에 살고 있는 털 있는 짐승이라는 의미에서 쇠고기를 이용한 육탕, 비늘달린 생선을 넣은 어탕을 사용한다.



단탕인 경우 계,육,어탕을 한 그릇에 담고, 3탕은 계탕, 육탕, 어탕을 각각 진설하고, 5탕은 3탕에 조개탕, 소탕(蔬湯)이 더해진다.

일설에는 ‘대과급제 5탕, 양반 3탕, 서민 단탕’이라는 식으로 차별을 두고 있다. 안동지역의 대과급제한 불천위의 제사라도 3탕으로 하는 곳이 절반 쯤 되고 서민이 임의로 5탕을 차렸을 경우는 비난도 감수해야했다.


지촌종가는 3탕의 형식을 취해 육탕과 어탕은 제대로 놓고 계탕을 대신하여 삶은 계란을 잘라 놓았다.



3)도적(都炙)

제사상의 꽃이라 할 만큼 주요 제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도적(都炙)이다. 고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유교이념의 강화에 따라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 성대하게 차릴 필요성이 있는 제물이었다.



예 서에는 편적(片炙)이라고 해서 계적, 육적, 어적을 올리도록 되어 있는데 도적을 쌓을 때에도 우모린의 원칙이 적용되어 가장 하단에 바다 생선, 중단에 육지의 짐승, 가장 상단에 하늘의 새를 배치했다. 이는 하늘, 땅, 바다로 구성된 우주적 질서를 묘사한다.



도 적을 높이 쌓아 웅장함을 과시하기위해서 가장하단에는 북어포 등과 같이 힘을 잘 버틸 수 있는 건어물을 깔아둔다. 이는 여타지역에서는 잘 볼 수없는 안동지방의 특색이다. 아울러 고임의 형태를 잘 유지하기위해 육류나 생선을 도막내어 나무꼬지에 꿰는 관적도 사용한다. 나무꼬지가 버팀목 구실을 하기 때문에 높이 쌓을 수 있다.



도적은 생육(生肉)을 쓰는 것이 원칙인데 이는 고례에 근거한 습속이다.

「예기」에 “지극히 공경하는 제사는 맛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기와 냄새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피와 생육을 올린다”고 했다.



이 러한 지침에 입각하여 종묘, 향교, 서원의 제사에서는 날고기를 사용하고 안동향교의 경우 공자에게는 소머리와 돼지머리, 나머지 성현들은 얇게 저민 소고기와 돼지머리를 올린다.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에게는 돼지머리를, 월천 조목에게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올린다.



현 재 안동의 종가에서는 생육과 숙육의 사용비율이 대략 절반 정도인데, 처음에는 생육을 올리다가 후대에 숙육으로 바뀐 경우가 많다. 오늘날 숙육의 사용이 증가한 것은 음복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전에는 나물비빔밥으로 음복을 차리고 이튿날 제관이나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집안 어른과 이웃 어른에게 음복을 돌렸는데 최근에는 음복을 돌릴 곳도 마땅찮고, 차린 음식을 건네도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가져가기를 마다하기 때문에 당일의 음복상에 모두 차려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고 점차 숙육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지촌종가는 아직까지 생육으로 제사를 지내고 음복도 고기는 나오지 않고 떡이나 과일로 차려 내었다.



4)떡


도적과 함께 웅장함을 드러내는 양대 산맥이 떡이다.

떡 역시 편틀에 고임 형태로 높이 쌓는다. 도적의 북어포와 같이 가장 밑에 놓여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것이 본편으로 불리는 시루떡이다. 그래서 종부들은 “시루떡 제대로 되면 제사떡 한 시름 놓는다”라고 할 정도로 시루떡 찌기에 신경을 썼다.

이 에 얽힌 사연으로 봉화 닭실의 안동권씨 충재종가의 종부가 시루떡을 찔 때마다 뜸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떡이 물러지고 무너지는 등 곤혹스러운 일을 수차례 격다 결국 목을 매어 자살한 일이 발생하여 충재종가는 시루떡을 쓰지 않고 동곳떡(손가락 굵기의 절편)을 사용한다고 한다. 



시루떡을 높이 쌓은 다음에 쑥편, 맞편, 부편, 잡과편 등의 웃기떡(雜䭏)을 얹는다.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는 시루떡 대신에 술로 발효시킨 증편(기지떡)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증편은 수분이 많아 높이 쌓을 수는 없다.



5)과일

과일은 제사상의 가장 앞줄에 진열되기 때문에 제기의 개수를 늘리거나 높이 쌓아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주 자가례」에는 6果, 「사례편람」에는 4果로 제시되어 있으나 요즘은 모든 과일을 사시사철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추, 밤, 감, 배(棗栗枾梨)는 기본이고 그 외에 사과, 귤, 호두, 땅콩, 잣, 은행 등이 차려진다.

▲ 지촌종가는 대추, 밤을 먼저 놓고 중간에 참외, 수박, 바나나 등의 잡과를 배치하고 배와 (곶)감을 마지막에 놓았다. 배와 감의 자리는 흔하게 바뀌나 중앙에 잡과가 놓인 경우는 흔치 않다. 또 참외와 배의 위아래 꼭지부분만 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껍질을 깎아 잘라 놓은 것이 특이했다.



유교전통이 강한 안동의 전통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제사이다. 제사를 보지 않고 안동사람의 의식과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는 것은 빗나간 시도이며 겉핥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촌종택의 제사는 지금까지 배운 제사법과는 다른 점이 군데군데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는 말이 있다. 유학자들이 삶의 궁극적 목포로 삼고 있는 성인들조차 예를 수행함에 그때의 형편에 맞추어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예의 근본정신인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고 물질로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올바르지 않는 제사일 것 이다.

                                                                                       (김미영 '안동문화 바로알기'를 참고하였다.)
profile
작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이시간에 자판을 두드리고 계시는 아재,할배께서 바로 "작가"이십니다..
글들을 읽고나서 짤막한 댓글 하나씩 남겨주시면, 글쓰시는 다른 아재,할배께서도 기쁨을 느끼십니다.!

김이오.넷 (kim25.net) 홈페이지 운영자 : 시조에서 36代 , 학봉 16代   金在洙  010-9860-5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