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내앞파 종택: 학봉 김성일의 생가
 


안동대학교 앞에서 청송/영덕으로 가는 국도 35호를 따라 8km 정도 가면 좌측에 있다. 마을 앞에 청송에서 내려오는 반변천(낙동강 지류)이 있어 '내앞(川前)'이 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을 중시조로 하는 의성김씨 종택이 있는 내앞파(川前派) 집성촌이다.

 

[의성김씨 종택] 16세기 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사신으로 중국 연경(燕京: 北京의 별칭)에 갔다가, 그곳의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를 가져와서 지었다고 한다. 구조는 'ㅁ'자형의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로 전체 '巳'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에 붙어 있는 부속건물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윗층은 서고(書庫), 아래층은 헛간 등으로 쓰였다.
 
 
토담 너머로 본 전경

 
마당 안에서 본 전경: 정면 사랑채에 붙어 있는 좌우 부속건물은 2층구조

 
안채의 연등천장(椽燈天障)과 ''자형 우물마루

 
사랑채 왼쪽 뒤의 사당: 안쪽에 옛날 사당과 바깥에 최근에 지어진 사당이 있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을 불천위로 모시는 종택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학봉 김성일의 종택은 '검제 종가'로 안동시 서후면 권태사묘로 가는 길 중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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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는 다섯 아들을 퇴계(도산서당)에 보내 공부시켜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 으로도 불렸다(악봉 김극일 1522~1585, 귀봉 김수일 1528~1583, 운암 김명일 1534~1570, 학봉 김성일 1538~1593, 남악 김복일 1541~1591). 장남은 종택에서 살고 나머지 네 아들은 인근으로 분가하여 각각 소종택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 섯 아들 모두 과거에 급제시킨 아버지(청계)의 행장에 학봉은 "큰형이 과거에 급제하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 어버지께서 하시지 않은 일이 없었다. 한밤중 양쪽에 아이들을 안고 자다가 어린아이가 젖을 찾으면, 당신의 젖을 물려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 말씀을 듣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성김씨는 조선시대 대소과 합격자가 100여명이고 90여명이 문집을 남길 정도로 문명이 높지만 벼슬은 높지 않았는데 "벼슬은 정이품 이상 하지 말고 재산은 300석 이상 하지 말라"는 청계의 유훈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청 계공 탄생 500주년(2001년 2월) 기념 학술 논문집에 수록된 조동걸 교수의 논문인 안동 전천문중의 독립운동 내용에는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 후 엄동설한인 12월24일 백하 김대락(1845~1914)은 66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증손들이 식민지에서 태어나 일본신민이 되는 치욕을 줄 수 없다며 서간도로 망명하는데 만삭인 손부와 손녀가 따라 나서 것을 보고 내앞 사람 22가구 50여명이 함께 만주로 가면서 엄동설한의 여로에서 해산을 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일송 김동삼(~1937)은 1923년 상해에서 독립운동자 총회인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될 때 서로군정서 대표로 참석해 의장을 맏았고(부회장은 안창호 윤해)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여 만해 한용운이 삼우장에서 화장한후 소원대로 한강에 뿌렸다.


김 대락의 아들 월송  김형식(1877~1950)은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을 하던 도사댁에서 태어나 협동학교 교사를 하다 서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1948년 김구와 김일성이 만나는 남북연석회에서 사회를 보았고 노년에 금강산에서 휴양중 미군에게 수모를 당하느니 깨끗하게 생을 마친다며 절명시를 남기고 구룡폭포에서 투신 자살했다"라고 적고 있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kvipkk?Redirect=Log&logNo=20023532361)

 

 

[의성김씨 귀봉종택(鶴峯宗宅)]  청계의 둘째 아들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 1528~1583)의 종택, 위의 의성김씨(학봉 생가) 내앞파 종택 오른편에 있다.

 

 
오른쪽에 있는 귀봉종택: 토담 너머의 전경과 솟을대문
 
 
귀봉 종택: 전형적인 종택 양식으로 'ㅁ'자형의 사랑채와 안채, 오른쪽 윗편에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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