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안동의성김씨종택(義城金氏 宗宅)

장르구분: 주거건축

지정종목: 보물 제450호

용도별 구분: 종가

제작시기: 16세기 말

소재지: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관련인물: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








 





개요











[의성김씨종택 전경]
안동의 천전(川前) 마을에는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명가(名家)가 있다. 바로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종가댁(宗家宅)이다. 이 집은 16세기에 불 타 없어졌던 것을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이 재건한 것이라 한다. 의성 김씨가 500여 년을 세거하고 있는 천전(川前) 마을에 위치한다. 이 터의 기운이 영험했던지 아들 5명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고 자기도 사후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그래서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소문이 났다.
이 종가댁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이다. 하지만 마당에서 보면 배산 임수의 부지에 축대 위에 지어서 마치 이층집처럼 높아 보인다. 이 집이 흥미로운 점은 생기(生氣)가 응집된 방이 따로 있어 그 곳에서만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이다. ‘태실(胎室)’ 혹은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대소과에 급제한 다섯 아들이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김진의 현손(玄孫 )김방렬(金邦烈)이 그 방을 헐어버리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영천의 영일(迎日) 정씨네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 아들을 이 방에서 낳자, 집의 정기가 쇠약해진다고 여긴 탓이다. 그 딸은 할 수 없이 셋째 아들은 다른 방에서 낳았는데, 예상대로 첫째와 둘째는 대과에 급제했으나 셋째 아들만큼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중문마당]







[행랑채]
16세기 말 학봉이 명나라 사행길에 북경에서 그 곳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를 그려다가 완성했기 때문에 그 배치나 구조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많다. 건물은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巳'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다른 '口'자형 평면과 달리 안방이 외부 쪽에 높이고 커다란 대청이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동향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오히려 깊숙히, 별채처럼 외진 곳에 배치하여 내객이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윗상방·아랫상방)들과 헛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커다란 사랑대청과 사랑방·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굴도리를 받치는 민도리집 양식이다.
가구(架構)는 오량으로 앞뒤의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접시받침만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안채의 구조는 간결한 민도리집 양식으로 안방의 전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고 툇마루 밑에는 간결한 굴뚝을 내었다. 사당은 사랑채의 서북쪽 높은 언덕 위에 따로 담장을 쌓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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